스님의하루

2021.9.4.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 결사행자회의, 가을배추 심기
“상대의 말과 행동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는 방법”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새벽 4시 30분, 방송실에 불이 켜지고 종소리가 랜선을 타고 전국에 울려 퍼졌습니다. 스님은 조용히 명상을 하며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삼귀의, 수행문, 참회, 108배, 명상, 경전 독송을 차례대로 하고 사홍서원으로 천일결사 기도를 마쳤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오늘 읽은 경전의 내용에 대해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오늘은 10-6차 백일기도를 시작한 지 48일째 날입니다. 백일기도에 처음 동참하신 분들은 이제 절반 고비를 넘어 내리막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이후로는 70일 고비가 아직 남았는데 잘 넘기시기 바랍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경전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변경의 도시에 성을 쌓아 안팎으로 지키듯
자기 자신을 지켜라.
한 순간도 헛되이 보내지 말라.
한 순간을 헛되이 보내는 자는
지옥에 떨어져 슬퍼하리라.

여기에서 ‘안팎으로 지킨다’는 말은 변방의 성을 쌓아서 외적을 막고, 궁성을 잘 쌓아서 내부의 반란세력을 막는다는 의미입니다. 이처럼 자신도 안과 밖을 잘 지켜야 합니다.

밖을 잘 지키는 것

밖을 지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우선 보는 눈을 잘 지켜야 합니다. 우리는 늘 눈으로 무언가를 보고 그것에 대해 욕심을 내고 시비합니다. 그래서 보는 것에 끄달리지 않도록 잘 지켜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듣는 귀를 잘 지키고, 냄새 맡는 코를 잘 지키고, 맛보는 입을 잘 지키고, 몸에 부딪혀 일어나는 감촉을 잘 지켜야 합니다. 이렇게 오감을 지키는 것은 변방을 잘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안을 잘 지키는 것

그런데 아무리 눈을 감고, 코를 막고, 입을 막고, 가만히 있어도 우리 마음속에 이미 형성된 번뇌, 상념, 생각, 망상은 여전히 계속 일어납니다. 명상을 해보면 쉽게 알 수 있죠. 모든 것을 차단하고 눈을 감고 가만히 있는데도 온갖 생각들이 자기를 괴롭힙니다. 아무것도 보지 않고, 아무것도 듣지 않고, 아무것도 맛보지 않고, 가만히 있는데도 괴로운 것은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난 것과 같습니다. 이런 망념에 끌려다니면 안 됩니다. 이것이 궁성을 쌓고 안을 잘 지킨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번뇌에 끌려가지 않는 것과 생각에 골똘히 빠지지 않는 것이 안을 잘 지키는 것이고, 보고 듣고 맛보고 감촉하는 것에 끌려가지 않는 것이 밖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

법구경은 시(詩)의 구절처럼 부처님이 설법한 내용을 축약해서 짧게 표현하니까 자세한 설명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라의 경우에는 변경에 성을 쌓아서 적으로부터 나라를 보호하고, 궁성을 잘 쌓아서 국내에서 일어나는 반란 세력을 막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도 외부로부터 감각을 받아들이는 오근(五根)을 잘 지키고, 내부에서 일어나는 번뇌와 지나간 과거의 상처로부터 일어나는 의근(意根)을 잘 지켜야 합니다. 불교교리에서는 이 오근과 의근을 합해서 육근(六根)이라고 하죠.

지금 여기에 깨어있기

한 순간도 헛되이 보내지 말라는 말은 한순간도 깨어있음을 놓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깨어있음을 놓치면 금방 보는 것에 사로잡히고, 듣는 것에 사로잡히고, 냄새 맡는 것에 사로잡히고, 맛보는 것에 사로잡히고, 감각에 사로잡히고, 망상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해 시비심이 일어나게 되고, 다른 사람의 말, 소리, 경계에 금방 끄달리게 됩니다. 부처님은 상대방이 비난하는 말을 해도 그 소리에 끄달리지 않았습니다. 비난하는 것은 상대방의 몫입니다. 부처님께서 상대방이 비난하는 데도 빙긋이 웃었다는 것은 상대의 의도와 행동에 끌려가지 않았음을 말합니다.

이렇게 늘 깨어있어야 합니다. 보는 것에 깨어있고, 듣는 것에 깨어있고, 냄새에 깨어있고, 맛에 깨어있고, 감촉에 깨어있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내부의 적인 생각, 망념에 깨어있어야 합니다. 망념에 정신을 팔고 있으면 이는 마치 내부의 반란세력에게 왕성이 함락당하는 것과 같습니다.

한 순간도 헛되이 보내지 말라는 건 어디에 가서 막 열심히 일을 하라는 의미가 아니에요. 깨어있음과 알아차림을 한 순간도 놓치지 말라는 뜻입니다.

한 순간을 헛되이 보내는 자, 즉 알아차림을 놓치는 자는 내외의 적에 침공을 당하는 것처럼 경계에 끄달리거나 생각에 빠져서 결국 괴로움에 빠지게 됩니다. ‘지옥에 떨어진다’는 말은 괴로움에 빠지게 된다는 의미이고, ‘슬퍼한다’는 건 후회하고 뉘우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늘 지금 여기에 깨어있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잘 지켜내는 방법

계율이란 자기 자신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자기 자신을 잘 지켜내는 사람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경계에 팔려서 자기를 함부로 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자신을 아끼고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남을 아끼고 사랑하겠습니까? 내가 나 자신도 아끼고 사랑하지 않는데, 어떤 사람이 나를 아끼고 사랑해 주겠어요? 나 자신도 안 하는 걸 대체 누가 하겠어요?

정작 자기 자신은 아끼고 사랑하지 않으면서 남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건 가능하지 않은 일입니다. 나를 아끼고 사랑하지 않으면서 남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것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더러운 물건을 내놓고 다른 사람이 사가기를 바라는 것과 같고, 고장 난 물건을 주면서 다른 사람을 돕겠다는 같습니다. 나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남도 사랑할 수 있고,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남으로부터 사랑받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나를 사랑하라는 말은 나만 사랑하는 이기주의가 되라는 뜻이 아닙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즉, 자신을 잘 지켜내는 사람입니다. 외부 경계로부터 자기를 지켜내고, 내부에서 생겨나는 망념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성질, 자신의 욕망, 자신의 어리석음으로부터 자기를 잘 지켜내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바깥의 백만 대군을 이겨내는 것보다 자신을 이겨내는 자가 더 큰 영웅이다.’

이런 부처님의 말씀을 다시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구절을 접하면 그저 ‘아, 글귀가 좋구나’ 이렇게 감상만 하고 넘기지 말고 일상에 적용하면서 자신을 잘 보살펴 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음식에 끄달려서 과식을 하고, 냄새에 끄달리기도 하고, 소리와 모양에 끄달리기도 하고, 부드러운 접촉에 끄달리기도 하고, 때론 자기 생각에 빠져서 스스로 고통을 만들기도 합니다.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재물이 없어도 그것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자신을 지켜내야 합니다. 몸이 아프다고 해서 몸에 끄달려 마음까지 괴로워지면 외부에 끄달리는 것입니다. 몸이 안 좋으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 되고, 과로를 했으면 휴식을 취하면 되지, 괴로워할 일은 아닙니다. 최소한 그것에 마음을 빼앗기지는 않아야 합니다.

제1의 화살을 맞을지언정 제2의 화살을 맞지 말라

그런데 여러분들은 이런 조건에 휩쓸려서 마음까지도 괴로워지기 때문에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제1의 화살을 맞을지언정 제2의 화살을 맞지 말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놓친 경우입니다. 일이 많을 때 괴로워한다고 해서 그 일이 적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하는 데까지 지혜롭게 처리를 할 뿐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안 될 때 화를 낸다고 해서 원하는 대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재도전할 건 재도전을 하고, 포기할 건 포기를 하면 됩니다. 이렇게 지혜롭게 대응해 나가야 합니다.

오늘 읽은 법구경 구절을 다가오는 한 주를 살아가는 기준으로 삼아 보시기 바랍니다. 그럼 다음 주에 또 뵙겠습니다.”

생방송이 끝나고 방송실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작업복을 입고 산 윗밭으로 올라갔습니다.

작년 봄에 심어 놓은 도라지와 모란이 잘 자라고 있는지 한번 둘러보았습니다.

“도라지는 씨를 받아야 하는데, 아직 며칠 더 있어야 할 것 같네요.”


도라지는 꽃이 다 지고 씨방 봉오리들만 가득 달려 있었습니다. 며칠 후에 봉오리를 따기로 하고, 오늘은 모란 씨앗을 심기로 했습니다.

도라지를 심어놓은 옆 두둑에는 작년 봄에 심은 모란이 이미 자라고 있었습니다.

“모란을 심은 지 일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제대로 자라지를 않네요.” (웃음)

먼저 행자님이 비닐에 구멍을 뚫고 호미로 땅을 한 번씩 파준 후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뒤이어 스님이 모란 씨앗을 하나씩 심으며 뒤따라 갔습니다.




행자님은 요즘 뉴스에 연일 보도되는 아프가니스탄 난민 문제에 대해 궁금한 점을 계속 질문했습니다. 스님의 답변을 듣다 보니 어느덧 두둑 한 줄에 모란을 다 심었습니다.

“행자님이 많이 궁금해하는 것을 보니 아프가니스탄 문제에 대해 강의를 한 번 해야겠네요.” (웃음)


스님이 씨앗을 심어 놓은 자리에 다시 행자님이 흙을 살포시 덮었습니다. 행자님이 흙을 덮는 일을 하는 사이에 스님은 두둑 주변에 난 잡초를 뽑았습니다.

“몇 주 전에 풀을 다 베었는데, 풀들이 언제 풀을 벴냐고 하는 것 같네요. 금방 자랐어요.” (웃음)

밭 주변에 난 잡초까지 말끔히 제거한 후 산을 내려왔습니다.

다시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와 오전 9시부터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발우공양을 마치자마자 10시부터 결사행자회의를 시작했습니다. 2차 만일결사 준비위원회에서 9월 온라인정토회 정식 출범을 앞두고 지부장 회의에 제출해야 할 6개의 안건을 발표하고 결사행자들의 의견을 수렴했습니다.

법제위원회에서는 회칙 및 운영규정 개정안에 대해 발표하고, 기획위원회에서는 만일준비위원회와 상임 천일준비위원회, 온라인 불사위원회의 멤버 재구성과 역할분담 방안에 대해 발표하고 결사행자들의 의견을 수렴했습니다.

토론은 4시간 30분 동안 진행되었고, 오후 2시 30분에 회의를 마쳤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결사행자회의가 끝난 후 스님은 다시 작업복을 입고 비닐하우스 4동으로 향했습니다.

엊그제 땅을 갈고 두둑을 다섯 개 만든 후 두 줄은 가을감자를 심었습니다. 오늘은 나머지 한 줄에 배추 모종을 심기로 했습니다.

“파종기에 호스를 달아서 땅도 파고 물도 주고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야겠어요.”

스님은 곧바로 파종기에 호스를 연결했습니다.

“제가 먼저 땅을 파놓고 물을 주면서 지나갈게요. 여러분이 뒤따라오면서 배추 모종을 심어 주세요.”

스님은 구멍을 숭숭 뚫고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행자님 한 명이 모종을 구멍 속에 쏙쏙 집어넣고 스님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이어서 행자님 두 명이 모종을 땅속에 심고 흙을 덮어 주었습니다.




두둑이 두 줄 가까이 더 남았지만 배추 모종이 부족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심읍시다. 모종이 커서 배추가 금방 자랄 것 같아요.” (웃음)

엊그제 심어 놓은 감자에도 파종기로 물을 듬뿍 준 후 비닐하우스를 나왔습니다.

비닐하우스 4동을 나와 스님은 마루에 널어놓은 고추를 다시 가져왔습니다.

“태양초 고추를 만들려고 했는데 비가 계속 와서 도저히 안 되겠어요. 건조기를 좀 사용합시다.”

며칠 전 밑밭에서 수확한 고추가 습도를 못 견디고 썩기 시작했습니다. 네 개의 판에 고추를 골고루 펼쳐놓고 건조기 안에 넣었습니다.

가위와 상자를 하나씩 들고 비닐하우스 1동에 들어갔습니다. 1동에서는 빨간 고추가 하루에도 몇 박스씩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매일 고추를 따줘야 하는데, 인력이 부족해서 큰일이네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고추를 따다 보니 벌써 저녁 6시 30분이 되었습니다.

“아이고, 해가 지니까 빨간색인지 다홍색인지 분간이 안 되네요.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


오늘 딴 고추는 모두 평상에 널어놓은 후 자연건조를 시켰습니다.

“수고했어요. 오늘도 많이 땄네요.”

해가 산 너머로 저물었습니다.

저녁에는 여러 가지 업무들을 처리한 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아침에 농사일을 하고, 오전에 영어 즉문즉설 강연을 생방송한 후 오후에는 주말 온라인 명상수련 회향식에 참석하고, 저녁에는 온라인 일요명상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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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찬

감사합니다.

2023-08-28 06:55:16

도원행

외부 경계와 내부의 망념으로부터 자신을 잘 지키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겠습니다. 마음이 가볍습니다. ^^

2021-09-15 16:11:35

방민영

많은 도움이 되는글이었습니다
때로 즉문즉설보다 이런글이 더 도움이 되기도하네요
그때는 상세하게 설명보다 답을 던지고 그 답에 매달리거나 그답대로 해보거나 상세한 설명을 못하기 감정이 상하기도하고 오해가 생기기도 하는더...

2021-09-12 14: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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