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우공양을 마치고 오전 10시 30분부터 정토대전 경전팀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법사님들은 지난주에 이어서 화엄경의 내용을 각각 발췌해 와서 발표했습니다.
경전을 함께 읽고, 스님의 점검을 받는 과정이 다섯 시간 동안 이어졌습니다. 화엄경의 전체 내용을 돌아보며 묘수 법사님이 한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화엄경의 핵심을 요약한 부분이 결국 ‘법성게’와 ‘보현행원품’인 것 같아요. 실천을 할 때 싫어하는 마음 없이 하고, 그 실천 역시 누구를 위한다는 생각도 없이 하는 내용이 반복해서 나오는데, 법성계와 보현행원품을 공부하면 화엄경의 전체 내용을 다 파악하게 되는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스님은 요점을 자꾸 정리하게 되면 법문이 지식화 될 수 있음을 지적했습니다.
“법성계와 보현행원품을 공부하면 화엄경의 핵심을 알게 되는 것은 맞는데, 그것은 지식적으로만 알게 되는 겁니다. '아, 화엄경 요지가 이런 거다' 이렇게 지식적으로 알아도 실제로는 아무것도 실천이 안 되잖아요. 스님의 즉문즉설 1000개의 요점은 이거다’ 하고 알아도 실제로 삶이 변하지는 않는 것과 같습니다.
법문이 지식이 되면 삶은 변하지 않습니다
한 가지 즉문즉설만 읽고도 인생의 고뇌가 사라지는 걸 경험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즉문즉설 1000개의 요점을 정리한 내용을 지식으로 아는 사람은 실제로 자신의 삶은 아무것도 변한 게 없어요. 이게 문제입니다. 법문이 지식화 되어 버리면 마음 작용에는 크게 영향을 안 줍니다.”
“경전에서는 지식적으로 알면 안 되고 반드시 실천해야 된다고 반복해서 강조하는데, 그것도 하나의 지식이 되어버릴 수 있겠네요.”
“우리 뇌구조가 그렇습니다. 뭐든지 아는 순간 그게 전제가 되어 버립니다. 백만 원을 매월 준다고 하면 처음에는 기쁘지만 백만 원을 매월 받는 게 전제가 되어 버려서 상대가 백만 원을 주는 게 당연시됩니다. 그러면 기쁨이 줄어듭니다. 그래서 백만 원 이상을 준다고 해야 기쁨이 생기지, 백만 원을 주는 것은 더 이상 기쁨을 주지 않습니다. 다음에 이백만 원 주면 조금 기쁨이 생기죠. 또 매달 백만 원씩 오른다는 걸 알아버리면 또 오른다는 게 전제가 돼서 아무 의미가 없어져요.
인간의 사고방식이 이렇게 되어 있기 때문에 번뇌가 끝이 없는 겁니다. 백만 원을 받는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끝없이 내야 번뇌가 사라지지, 무엇이든 전제가 되어 버리면 번뇌는 계속 일어납니다. 잘 먹고 잘 산다고 번뇌가 적고, 지위가 높다고 번뇌가 적은 게 아니에요. 밥을 굶지 않고, 추위에 떨지 않고, 비를 맞지 않을 수 있다면, 그다음부터는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 사이에 심리적인 측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어요. 서로 안 보면 심리적으로는 아무 차이가 없는데, 서로 비교하게 되면 논 열 마지기를 가진 사람이 스무 마지기 가진 사람을 부러워하게 되는 겁니다.”
긴 시간 동안 함께 해 준 스님에게 법사님들은 삼배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회의를 마쳤습니다.
오후 공양을 한 후 스님은 다시 작업복을 입고 농사일을 했습니다.
“산 밑밭에 수확을 해야 하는데 3일 동안 못했어요. 저녁에라도 가서 수확을 좀 합시다.”
행자님 두 명이 스님의 뒤를 따라 산 밑밭으로 향했습니다. 며칠 사이에 가지, 오이, 토마토가 더 커져 있었습니다.
“큰 것만 따 주세요. 작은 것은 며칠 지나면 더 커져요.”
가지를 두 바구니 가득 찰 때까지 수확한 후 오이도 수확해서 포대에 담았습니다.
토마토와 방울토마토는 껍질이 갈라져 있어서 만지면 툭 터졌습니다.
“토마토는 왜 이렇게 껍질이 갈라졌을까요? 일단 다 수확합시다. 갈아서 먹으면 되니까요.”
밑밭에서 수확을 끝내고, 다음은 아랫밭으로 향했습니다. 아랫밭에는 걸어다니기 힘들 정도로 고구마 순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습니다.
“여기는 고구마 덩굴을 전부 뒤집어줘야 합니다. 고구마 순을 잘라주면 더 좋은데 오늘은 시간이 없어요. 그냥 덩굴을 뒤집어 놓기만 합시다.”
고구마 순을 잘라주면 고구마 알에 영양분을 더 많이 가도록 할 수 있습니다. 굵은 고구마를 수확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이미 고구마 순이 너무 많이 자라서 고랑에 잔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양 손으로 고구마 덩굴을 잡고 온 힘을 다해 들어 올려야 겨우 덩굴이 뒤집어졌습니다.
“아이고, 엄청나게 힘이 드네요.”
스님은 5분 간격으로 숨을 몰아쉬며 허리를 폈습니다. 고랑 끝에서 끝까지 덩굴을 뒤집고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막막한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부지런히 덩굴 뒤집기를 했지만 세 명이서 전체를 다 뒤집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날이 저물어 가자 스님이 행자님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합시다. 다 끝내지는 못하겠어요.”
덩굴을 뒤집으며 틈틈이 잘라 놓은 고구마 순은 삶아서 무침을 해서 먹기 위해 포대에 담아 두북 수련원으로 가져왔습니다.
“수고했어요.”
산을 내려오는 길에 마을 어귀에는 가을 장미꽃이 활짝 피어 있어서 특유의 향기와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저녁 7시 30분부터는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시도별 밴드 구독자들을 대상으로만 생방송을 공개하여 1600여 명이 접속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인사말을 건네고, 요즘 농사와 날씨 이야기를 한 후 질문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4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본인 뜻대로 안 되면 짜증과 화를 내는 남자친구와 어떻게 지내면 좋을지 질문했습니다.
짜증과 화를 많이 내는 남자친구, 결혼해도 될까요?
“저는 11년째 만나고 있는 남자 친구와 결혼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남자친구는 고아원에서 학대받으며 자랐지만 현재는 나름대로 자수성가한 사람입니다. 그래서인지 이기심이 강하고 본인 뜻대로 되지 않으면 짜증과 화를 많이 냅니다.
제 고민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제 남자친구와 저와 취향이나 입맛, 취미 등이 다른데 남자친구는 제가 틀렸다고 생각하고 비난합니다. 예를 들어 남자친구는 짜장면을 싫어하기 때문에 제가 짜장면을 혼자 먹는 것도 싫어해요. 그래서 뭐든지 남자친구의 취향이나 뜻에 맞춰야 하고, 제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없습니다.
둘째, 저는 가볍게 좋은 뜻으로 한 말을 상당히 꼬아서 듣고 화를 많이 냅니다. 예를 들어 남자친구가 부동산 투자로 스트레스가 심해 있을 때 ‘욕심을 조금 내려놓으면 오빠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아’라고 말했는데 자기가 언제 욕심을 많이 냈냐면서 ‘그렇게 부동산을 잘 알면 네가 혼자 다해’라고 화를 많이 냈습니다. 그래서 남자친구를 대할 때 심적으로 부담이 많이 되고 눈치를 많이 보게 됩니다.
지금은 연애만 하고 떨어져 있으니 제가 다 맞출 수 있지만, 결혼은 생활을 함께 해야 하는데 제가 다 맞출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듭니다. 제가 어떤 마음으로 남자친구와 지내야 하는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남자친구와 결혼하려면 무조건 맞춰야 해요. 남자친구를 고치는 건 어렵습니다.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네, 맞습니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상대에게 맞춰야 해요. 수행의 입장에서는 맞춰주는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고, 세속적으로 말하자면 질문자가 평생 을로 살아야 합니다. 대등하게 대하거나 갑이 되는 것은 포기해야 해요. 남자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상처로 인해 생긴 성격적인 문제는 결혼해서 내가 어떻게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예’ 하고 살 수 있으면 결혼을 해도 돼요. 그런데 '내가 뭐가 부족해서 그런 식으로 눈치 보면서 살아야 하나?' 이런 생각이라면 연애까지는 좋지만 결혼은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결혼하게 되면 연애할 때보다 10배는 더 부딪히면서 살게 됩니다. 자기주장을 하고 살려면 결혼은 안 하는 게 낫고, 질문자가 그 사람을 특별히 사랑해서 결혼을 하겠다면 무조건 맞춰야 해요. 둘 중에 질문자가 선택을 해야 합니다.
설령 결혼한 뒤에 도저히 못 맞추겠다 싶으면 이혼을 하면 됩니다. 결혼을 하냐 안 하냐, 이혼을 하냐 안 하냐, 이런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어떻게 하면 괴로움 없이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결혼을 하려니 갈등이 생길 것이 두렵고, 결혼을 안 하려니 너무 아쉽고, 질문자는 이 사이에서 지금 방황하고 있는 겁니다.
일단 결혼해 보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그만두면 돼요. 비록 이혼하는 아픔을 겪어야 하지만, 결혼에 대해 아쉬워하는 병은 끊을 수가 있습니다. 결혼을 안 해 보니까 아쉬운 겁니다. 결혼해 보고 ‘같이 못 살겠구나’ 하고 깨닫게 되면 더 이상 미련이 남지 않거든요.
질문자가 결혼을 하겠다는 입장이라면, 내 생각은 버려 버리고 주변에서 ‘너는 뭐가 못나서 그러냐?’ 하고 비난하더라도 남편에게 ‘예’ 하고 살면 됩니다. '조선시대에는 모든 여자들이 그렇게 살았는데 뭐가 어려운 일인가' 이렇게 딱 마음을 먹고, 음식도 뭐든지 맞추고, 잔소리도 하지 말고, 조언도 하지 말고, 그저 웃으면서 지내면 돼요.
남편이 뭐라고 하든 ‘네, 그럴게요’ 하면 됩니다. 남편이 ‘소를 지붕 위에 올려라’ 하면 일단 소를 몰고 지붕 밑에 가보는 거예요. 그런 후 남편에게 ‘소를 올리려고 했는데 안 올라갑니다. 어떡하면 될까요?’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이 정도로 남편에게 맞출 각오를 해야 해요. 이렇게 하기가 어렵다면, 아쉽지만 미련을 끊고 연애까지만 하고 멈추어야 합니다. 결혼은 어려워요.
세 가지 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면 됩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돼요. 결혼을 안 하면 죽을 때까지 아쉬움이 남는데 그걸 받아들여야 되고, 결혼을 하면 더 이상 못살겠다는 고통이 따르는데, 그걸 해결하려면 그냥 고통을 감수하든지 아니면 헤어지는 선택을 해서 또 새로운 고통을 만들든지 해야 합니다.
남자친구와 같이 살기 위해서는 남녀 간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무조건 ‘예’ 하고 맞춰야 합니다. 남하고 비교하지 마세요. 같이 살려면 맞춰야 한다는 것을 선택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상대편을 나무랄 필요는 없어요.
이런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을 거냐 하는 건 나의 문제예요. '남자가 어떻게 좀 해주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은 의미가 없습니다. 비가 안 오면 지하수를 파면되는데, 하늘 쳐다보고 비 오게 해 달라고 비는 것과 같아요.
관점을 이렇게 잡으면 별로 어려운 게 없습니다. 가령 누가 절을 하나 짓고 싶다고 합시다. 돈이 없으면 절을 짓고 싶어도 못 짓는 것이고, 짓고 싶으면 지금부터 돈을 모으면 되는 것이고, 그것도 역부족이면 다른 사람한테 아쉬운 소리 하면서 보시해달라고 부탁을 해야 합니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는 하기 싫고 절 짓는 걸 포기하려니 아쉽다.'
이런 말을 한다면 그 사람은 괴로울 수밖에 없는 어리석은 자에요. 선택을 하고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어떤 선택을 하든 반드시 과보가 따르고, 그 과보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해요.
결혼을 안 한다고 선택하면 아쉬움을 각오해야 하고, 결혼을 한다고 선택하면 부딪칠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의견 충돌이 생겼을 때 내가 상대에게 맞춰서 무조건 ‘예’ 하고 해 보고, ‘예’ 하는 게 잘 안되면 같이 못 사는 거예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늘 미련을 갖고 있으면 평생 괴롭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사람들과 교류하며 지내지만 어렸을 때부터 늘 내가 남들과 다르게 동떨어진 섬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떡하면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을까요?
즉문즉설에서 가끔 신기가 있는 사람 이야기를 듣습니다. 신기가 있다는 것은 정신분석학적으로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에 장악되면서 많은 난민이 발생했습니다. 생사의 기로에 놓인 난민을 도와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들이 우리나라에 끼칠 영향력이 걱정되어 선뜻 나서기가 어렵습니다. 난민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대화를 마치고 나서 스님이 질문자들에게 한 줄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짜증과 화를 많이 낸다는 남자친구에 대해 질문한 분도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스님과 대화를 하니까 관점이 정확하게 잡히는 것 같습니다. 남자친구 때문에 제가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스님과 대화를 나누고 나니 제 욕심 때문에 스스로 고민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소감을 듣고 나서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굉장하네요. 그걸 알았다고요? 저는 거기까지 기대를 안 했습니다. (웃음) 이건 남자친구의 문제가 아니고 누구 문제라고요? 내 문제입니다. 이런 남자에 대해 어떤 선택을 할 거냐는 내 문제이지 그 남자의 문제가 아닙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방청객 중에서도 한두 명 소감을 듣고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밤 9시가 넘었습니다.
내일은 새벽에 천일결사 기도 생방송을 한 후 결사행자 회의를 하고, 농사일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50
연어
제가 바로 절짓기 싶은데 돈은 없고 포기하자니 아쉬워 하는 사람입니다.
애기는 낳고싶은데 무상함을 감당하기 무섭고 애를 낳지 않자니 세상사람들의 비난을 받기두럽고...
2021-09-13 05:57:30
현진맘
현실을 직시하세요 결혼 힘든생활입니다 맟춰주다간 홧병나서 이혼하죠 이혼도 쉬운게아녜요 잘 결정하셔요
2021-09-12 16:28:31
땡깡
고맙습니다
법사님들 머리가 하얀 걸보니 제가
문경다너온지가 십년이 넘었습니다
열정을가지고. 다니든때가 새롭습니다
가을과 함께 무루익어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