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9.1 정토대전 회의, 수행법회
“어떻게 하면 불안함과 의지하는 마음이 줄어들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새벽 5시, 예불을 마치자마자 스님은 곧바로 차에 올랐습니다. 한국 불교의 대표적 선승인 고우(古愚) 스님이 지난 29일 봉암사에서 입적했습니다. 5일 동안 전국선원수좌회장으로 장례가 치러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스님도 봉암사로 향했습니다.

정토회에서는 고우 스님의 가르침을 소중하게 생각하여 행자들이 만행을 갈 때 고우 스님을 한 번씩 찾아뵐 것을 권하기도 했습니다. 스님은 봉암사의 선풍과 결사 정신을 되살린 고우 스님의 업적을 되새기며 조문을 한 후 봉암사를 출발했습니다.

두북 공동체 대중들의 발우공양 시간이 끝날 무렵 스님이 두북 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문경 연수원과 수련원, 죽림정사에서 정토대전 사상팀 소속 법사님들은 새벽에 도착해 두북 공동체 대중들과 아침 농사 울력을 함께 했습니다.

스님이 도착한 후 10시 30분부터 정토대전 사상팀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사회사상팀에서 지난 한 주 동안 공부해 온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육화합을 오늘날의 민주주의라는 가치로 재해석했을 때 어떻게 볼 수 있는지 여러 가지 의문점을 준비해 와서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대한민국이 세계 문명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

“스님은 대한민국이 세계 문명을 주도하는 국가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를 20년 전부터 계속하셨잖아요. 그때는 ‘아, 그런가?’ 하고 반신반의했지만 지금은 그 말씀이 실제로 가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려면 창조성이 발휘되도록 국가 정책이나 국민들의 의식이 뒷받침이 되어야 할 같은데, 대한민국이 세계 문명의 중심이 되기 위해서 우리가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것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국민들의 창조성을 뒷받침해 주는 바탕이 바로 정치입니다. 정치가 국민을 끌고 나아가려고 하는 권력지향적 행태에서 벗어나 국민들이 창조성을 발휘해 나가는 것을 방해하지 않고 뒷받침해 주는 역할로 바뀐다면 현재 일어나고 있는 한국인의 창조력이 대성공으로 갈 가능성이 높아요.

그런데 정치가 권력투쟁을 하느라 이런 성과들을 자기들이 이룬 성과인 양 선전하고, 자기들이 이끌고 나아가려 하고, 과거 문제를 갖고 갈등을 일으키는 일이 계속된다면, 창조성이 꺾일 위험이 큽니다. 창조성이라는 것은 희망이 꺾이게 되면 급격하게 쇠락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에요. 일본은 그런 희망이 이미 한 번 꺾여 버렸기 때문에 다시 일어서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여러 가지 부정성도 있지만 아직 희망이 꺾이지는 않았어요. 대한민국은 아직 역동성이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일본과 같은 노쇠함도 이 속에 공존하고 있고요.

여기서 대한민국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국민들의 의식이 깨어나서 정치 질서까지 바꿀 수 있도록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추진력으로 삼아 나아가는 것입니다. 둘째, 엘리트 계층이 이런 역동성을 전부 받아들여서 한국 사회가 더 발전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는 겁니다.

두 가지 방법 중에 엘리트 계층이 변화를 수용하고 길을 열어주는 방법이 훨씬 속도가 빠르긴 합니다. 그렇게 되도록 저도 지금까지 여러 가지 시도를 해왔지만 승려라는 신분의 한계가 있었어요. 남을 내세워서 ‘이렇게 하면 좋다’, ‘저렇게 하면 좋다’ 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아래로부터 밀어 올리는 전자의 방법은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요. 30년 정도 시간이 충분하다면 해볼 만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도중에 희망이 꺾일 경우 그동안의 노력이 보잘것 없어지고 맙니다. 지금 한국이 처한 상황은 이런 양면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여러분도 알다시피 지금 한국 정치를 보면 조그마한 문제도 해결을 못 하고 있어요. 견해가 다른 것을 합의해서 풀어내지를 못합니다. 예를 들어 언론법이 문제라고 하면 국회의원의 숫자가 많고 적고를 떠나 합의를 통해 언론법을 합리적으로 개정해야 하잖아요. 언론의 자유도 중요하지만 현실에서 언론이 우리 사회에 피해도 많이 주고 있다면 서로 대화를 해서 이 문제를 풀어야 할 텐데, 언론법 뿐만 아니라 뭐든지 한쪽에서는 무조건 하려고 하고, 한쪽에서는 무조건 하지 말라는 식입니다.

부동산 문제도 이 정도로 심각해졌으면 여야가 합의해서 풀어가야 하잖아요. 불로소득이 이렇게 늘어나면 사람들이 일할 의욕을 잃어버립니다. 그 결과 지금 노동자를 구하기가 어려워요. 젊은이들은 일할 직장이 없다고 하지만, 나라 곳곳의 많은 기업에서는 다 일할 사람이 없다고 아우성입니다. 기업인들을 만나서 얘기를 나눠보면 중소기업에서는 특히 일할 사람을 구할 수가 없다고 해요. 전부 거대 기업으로만 몰려가버리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거대기업은 두 가지를 뜻해요. 바로 재벌기업과 공무원입니다. 공무원은 국가 기업이라는 제일 큰 기업에 속하는 셈이니까요. 다들 거기에만 목매달아서 경쟁률이 수십 대 일입니다. 안 그러면 젊은이들까지도 전부 주식이나 코인 같은 데에 뛰어들어요. 여기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수가 천만 단위를 넘어간다고 하니까 사실은 전 국민이 투기 대열에 참여를 하고 있는 셈이죠.

상황이 이렇다 보니 창조와 근면이라는 개념이 점점 사라지고 모든 게 돈 중심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돈이 되면 하고, 돈이 안 되면 안 하는 식이 되어 버렸어요. 자선사업도 그렇고 모든 게 다 돈 되는 사업 중심으로만 생각합니다.

이런 분위기는 창조성에 큰 장애가 됩니다. 구글이든 페이스북이든 세계적인 기업들의 성공 사례들을 한번 보세요. 처음부터 돈 되는 방법을 찾은 게 아니라 세상에 이로운 새로운 방법을 찾아낸 것이 결과적으로 돈이 된 겁니다. 흥부가 복을 받으려 선행을 한 게 아니라 선행을 하니까 복을 받은 것과 같아요.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하면 복 받나’ 해서 놀부 심보로 접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자세는 결국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겁니다.

‘K-방역’의 성공도 너무 단면적으로만 보지 않는 게 좋아요. 물론 아직도 공동체성이 강한 우리의 전통 속에 이런 긍정적인 면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구사회가 개인주의적 자유주의라는 한쪽으로 너무 치우친 상태에서 코로나라는 재난 상황에 딱 부닥쳤을 때 그 부작용이 나타난 반면, 우리는 이런 개인주의적 자유주의를 뒤따라가고 있는 단계였기 때문에 오히려 뒤처진 것이 장점이 되어서 ‘K-방역’이 나왔다고 보는 게 더 맞지 않을까 생각해요.

정부가 ‘K-방역’이라고 홍보하지만 정말 정부가 잘해서 방역을 잘한 게 아닙니다. 첫째, 국민이 정말 협조적이었습니다. 외국에 비하면 정부의 정책이나 지침에 대해 진짜 잘 협조했어요. 둘째,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나라가 없습니다. 이익을 추구한다고는 하지만 다른 나라에 비하면 정말 몸을 바쳐서 위기를 막아줬어요. 셋째, 공무원들이 열심히 밤잠 안 자고 일했습니다.

그러면 정부는 뭘 했을까요? 적어도 방해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잘한 일이라면 잘한 일이에요. 그래서 칭찬을 받을수록 더욱더 국민에게 감사하고 의료인에게 감사하고 공직자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정치인이 나와서 자기가 잘한 덕분이라고 자꾸 주장하니까 계속 논쟁거리가 되고 문제가 되는 거예요. 이러다가 방역이 잘못되면 정부가 전부 바가지를 써야 합니다.

그런데 정부가 지금과 달리 국민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가진다면 방역이 잘못돼도 정부 혼자 바가지를 쓰는 게 아니라 국민과 책임을 나눠질 수 있어요. 항상 성과는 국민에게 돌리고 실패에 대해서는 책임지려는 자세를 가져야 하는데, 성과는 자기 것으로 하고 실패는 남 탓하는 태도로 임하니까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겁니다.”

이어서 불교사상팀에서도 지난 한 주 동안 공부해 온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오온과 십이연기를 뇌과학과 접목시켰을 때 인간의 인식 작용을 어떻게 규명할 수 있는지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많이 공부해 오셨네요. 수고했어요.”

오후 3시 30분에 정토대전 회의를 마치고 오후 공양을 한 후 4시 30분부터 공동체 법사단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내일 열릴 예정인 공동체 지부 공청회 관련한 안건을 비롯해 전법활동가와 서원행자, 법사 신청자에 대한 자격 심사 등 다양한 안건에 대해 토론하고 스님의 조언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수행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저녁반 정토회 회원 78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정토회는 많은 분들의 자원봉사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월급을 주고 고용한 노동자는 정토회 전체를 통틀어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전부 다 자신의 직장과 가정을 갖고 틈나는 대로 시간을 내어서 봉사를 하는 분들에 의해 정토회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직장처럼 전일 봉사를 하고, 어떤 분은 파트타임으로 봉사를 하고, 또 어떤 분들은 저녁 시간이나 주말 시간을 내어 봉사를 합니다. 이런 가운데 정토회가 유지되고 발전되고 있습니다.

자원봉사로 운영되는 수행공동체

또 정토회는 수행 단체이기 때문에 기복적 행위로 인해 보시를 받은 적은 없습니다. 어떤 특정한 사람이 큰돈을 보시해서 유지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여러분이 내는 회비와 보시금으로 정토회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정토회는 스스로 행복해지는 ‘수행’, 그리고 조금이라도 남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보시’와 ‘봉사’로 운영되는 단체입니다. 이런 정토회에서 운영하는 정토불교대학에 입학생을 모집했는데 이번에 2100명이나 새로 들어왔어요. 새로 들어오신 분들을 환영합니다.

현재 정토회에서는 월요일에는 전법활동가들을 위한 법회, 수요일에는 정토행자를 위한 수행법회, 금요일에는 일반인들을 위한 즉문즉설, 이렇게 3개 법회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경전대학과 불교대학 학사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말인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각 지부별 으뜸절에서 오프라인으로 봉사할 수 있는 일이 주어져 있습니다.

제가 있는 이곳 두북 정토수련원에는 농사 지을 일손이 많이 부족해요. 처음에는 농사 규모가 3천 평이었는데 주위에 계시는 어르신들이 자꾸 ‘우리 밭도 너희가 지어라’, ‘우리 논도 너희가 지어라’ 이러다 보니 땅이 1만 평 가까이로 늘어나 저희 공동체 대중만으로는 좀 힘든 상태가 됐습니다. (웃음) 여러분도 가을이 되어 선선해지면 으뜸절에 놀러도 오시고 봉사도 와주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4명이 사전에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불안하고 의지하는 마음이 자꾸 일어나는 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불안함과 의지하는 마음이 줄어들 수 있을까요?

“최근에 동생을 배웅하고 헤어질 때 불안한 마음이 크게 일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돌아보니 전 남자친구와 마지막 인사를 할 때도 약간 불안했다가 질척거리는 마음이 든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인간관계를 가볍고 바삭하게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불안한 마음, 외롭고 관심받고 싶은 마음, 의지하는 마음 등 질척거리는 마음이 올라올 때가 있어요. 앞으로 어떤 관점을 가지고 수행하면 이런 질척거리는 마음이 줄어들 수 있을까요?”

“네, 물론 그런 마음이 안 일어나면 좋죠. 그런데 일어나는 걸 어떡해요? (웃음) 가령 내가 키가 크면 좋지만 키가 작은 걸 어떡하겠어요? 내가 장애가 없으면 좋지만, 장애가 이미 있다 하면 그런 장애가 있는 가운데서도 나는 행복하게 살아야 해요.

지금 질문자는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라 마음이 저절로 그렇게 일어나는 겁니다. 이것은 내 까르마입니다. 이건 누구 책임인지를 따진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에요. 현재에 이것이 나의 모습으로 나타나 있으니까요.

그래서 자기를 아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자꾸 남하고 비교해서 남처럼 되려고 하면 내가 남들과 조건이 같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되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그러나 이게 내 현실이에요. 이렇게 질척거리는 마음이 있고, 의지하는 마음이 있고, 관심받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물론 이런 마음이 없으면 더 좋을 수도 있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100미터 달리기를 12초에 뛰면 좋지만, 20초에 뛰는 것만 해도 어디냐.’

이렇게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필요해요. 질척거리는 마음을 보면서 ‘그래, 좀 질척거리는 마음이 남아 있네. 좀 의지하는 마음이 남아 있네. 에이, 아직도 기대고 싶은 마음이 있네’ 이렇게 알고 인정하는 게 우선 필요합니다. 그걸 인정하는 가운데 바뀌겠다는 결심이 필요해요. 그렇게 살아가면 나에게 손해이고 내가 을이 되잖아요. 그러니 그런 마음이 일어나긴 하지만 그렇게 안 살아야겠다는 것을 지향하고 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릴 때부터 음식을 좀 짜게 먹는 습관이 있다고 합시다. 시골에서는 반찬이 귀하니까 짜게 해서 조금 먹도록 했거든요. 그게 오랜 습관이 되다 보니 다른 사람과 같이 식사를 해보면 조금 짜게 먹는 편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짜게 먹으면 건강에 안 좋다고들 하잖아요. 이럴 때는 짜게 먹어서 건강이 나쁜 것을 받아들이든지, 건강이 안 나빠지게 하려면 입맛에는 좀 안 맞더라도 싱겁게 먹으려는 노력을 자꾸 해야 합니다. 애초에 짜게 먹는 습관이 없으면 좋겠지만 이미 그런 습관이 있는 걸 어떡하겠어요? 이미 이런 습관이 있다면 짜게 먹고 건강이 조금 나쁜 것을 받아들이든지, 건강이 안 나빠지려면 좀 입맛에 안 맞더라도 좀 싱겁게 먹든지, 이 두 길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러니 질문자에게도 두 가지 길이 있어요. 질척거리는 마음으로 뒤끝을 갖고 살든지, 아니면 그런 마음을 보면서 ‘아, 이렇게 살면 세상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늘 내가 을이 되어 매달리며 살아야 하는구나. 나는 을로 살지 않겠다’ 이런 마음으로 내 까르마를 바꿔가며 살든지요. 을로 살 수밖에 없는 조건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되, 내가 을로 안 살려면 그런 질척거리는 마음을 보면서 ‘어, 이게 내 까르마구나’ 이렇게 알아차려서 자꾸 의지하는 마음을 버려가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까르마라는 것은 오래된 습관이기 때문에 잘 안 고쳐져요. 그러나 본인이 그걸 꾸준히 알아차리고 노력하면 조금씩 개선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음식을 싱겁게 먹는 연습을 1년이고 2년이고 3년이고 계속하면 변화가 생깁니다. 맛을 따지자면 간장을 약간 더 넣으면 좋겠지만 건강을 생각해서 간이 덜 맞는 음식을 계속 먹는다면 혀가 거기에 조금씩 적응이 돼요. 이런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가만히 있는다고 바뀌는 게 아니에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질문자와 같은 성향이 어느 정도 있어요. 의지하고 싶고, 관심받고 싶고, 주목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것은 표현은 다르지만 한마디로 ‘사랑고파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사랑고파병’은 우리 모두에게 다 있어요. 그러나 정도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의지심이 누구나 다 갖고 있는 평균 수준이 아니라 좀 심하게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병입니다. 몸에 병이 나면 아픈 것처럼, 이것도 조금 심하면 마음이 아파요. 헤어질 때마다 아프고 늘 불안하게 됩니다.

그러면 이런 ‘사랑고파병’은 주로 어떻게 해서 생길까요? 어릴 때 엄마로부터 학대받지 않고 충분히 사랑을 받아서 부족함이 없으면 이런 성향이 좀 적습니다. 그런데 어릴 때 엄마의 사랑이 마음에 채워지지 않아서 좀 껄떡거렸다면 어른이 돼도 이게 계속 남아있어요. 또한 성장하는 과정에서 계속 부모가 과잉보호를 해서 의지를 했다면 이게 습관이 됩니다. 커서도 계속 의지하는 이런 습관이 남아있어요.

그런데 사춘기 때부터 부모가 돌보지를 않아서 내가 밥해먹고 다니고, 내가 돈 벌어서 학교 다닐 수밖에 없었다면, 자연스럽게 자립심이 생기게 됩니다. 어떤 일이든 자기가 판단하고 자기가 결정해서 해결하는 게 어릴 때부터 익숙해져 있으면 그렇게 됩니다.

그런데 부모들의 대부분은 거꾸로 하고 있죠. 아기 낳아서 키울 때는 자기가 힘드니까 짜증 내거나 성질내고, 자기가 바쁘다며 아기를 떼놓잖아요. 이렇게 우리들 대부분이 어릴 때 사랑을 충분히 못 받았기 때문에 속이 좀 허전해진 겁니다.

그런데 아이가 초등학교에 가면서 말썽이 생기기 시작하면 부모가 그때서야 반성해서 또 과잉보호를 해요. 사춘기 때는 자립을 해야 하는데 부모가 과잉보호를 하는 겁니다. 공부만 하라고 하고, 청소도 대신해주고, 빨래도 대신해줍니다. 아이는 이런 부모의 과잉보호 하에 자립할 기회를 놓쳐버려요. 그래서 두 가지 병이 생기게 됩니다. 하나는 사랑고파병이고, 또 하나는 지나치게 의지하는 병입니다.

오히려 어릴 때는 좀 많이 보호해주고, 초등학교 들어갈 때부터는 자기 일은 자기가 하도록 하는 게 좋아요. 야단만 안 칠 뿐이지 딱히 잘해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이렇게 되면 아이가 스스로 알아서 하기 시작해요. 그러면 이 껄떡거리는 병이 없어집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부모들은 이게 거꾸로 되어 있어요. 어려서 보호해야 할 때는 팽개치고,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자립해야 할 때는 과잉보호한 결과 대부분 이런 사랑고파병에 걸리게 됩니다.

얘기를 들어보니 질문자는 사랑고파병이 좀 심해요. 그게 부모로부터 왔는지, 질문자가 사춘기에 지나치게 의지를 해서 왔는지는 모르지만, 누구를 원망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에요. 다만 그게 현재 본인의 상태일 뿐입니다. 이건 사주도 아니고, 팔자도 아니고, 전생의 업도 아니고, 하느님이 내리는 벌도 아니고, 내 심리와 자아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거예요. 즉 나의 까르마 또는 업식입니다. 이것은 형성되어진 것이기 때문에 개선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어릴 때 형성된 것은 개선이 어렵습니다. 무의식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개선을 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첫째, 늘 자기를 주시해서 관점을 분명히 해야 해요.

‘내 업식은 껄떡거리는 것이지만, 껄떡거리면 내가 한평생 을로 살아야 한다. 나는 을로 살기 싫다. 이것이 내 업식이긴 하지만 나는 여기에 끌려다니지 않겠다.’

우선 이런 관점을 분명히 가져야 해요. 헤어질 때 불안하더라도 ‘어, 또 내 업식이 작용하는구나’ 이렇게 자기를 알아차리고 그 마음을 떨쳐내야 합니다. 이 관점이 분명해야 해요. 자꾸 껄떡거리고, 자꾸 의지하고 싶어 하고, 자꾸 불안해하면 계속 병이 더 확대됩니다. 관점을 이렇게 먼저 가지세요.

둘째, 이걸 일상화하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아침에 정진할 때마다 이렇게 기도해야 해요.

‘저는 편안합니다. 잘 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불안할 때 ‘나는 편안합니다’ 하고 기도하라는 겁니다. ‘불안하지 않게 해 주세요’ 이런 기도는 지금 불안하다는 뜻이잖아요. 그러니 불안할 때 자기의 불안한 마음을 보면서 이렇게 기도하세요.

‘저는 편안합니다.’

힘들면 이렇게 기도하세요.

‘저는 잘 살고 있습니다.’

절을 할 때마다 자꾸 이렇게 자기에게 암시를 줘야 합니다. 그래야 심리가 점차 안정돼요.”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 단군 조선과 민족의 역사 공부를 정토회에서 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합니다. 부처님 법과 한민족의 역사인 단군신화 공부를 연결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 국제법이나 국제기구에서 백신으로 돈을 벌지 못 하게 하고 백신 개발을 인류를 위해 사용하도록 하는 건 왜 어려운지 설명 좀 해주세요.

질문자와 대화를 마치고 나니 생방송을 마쳐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다음 주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내일은 하루 종일 농사일을 하고, 저녁에는 공동체 지부 온라인 공청회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50

0/200

ㅎㅎ

일어나는 마음 알아차리고 내려놓겠습니다

2021-09-12 14:10:23

이수정

고맙습니다 스님_()_^^

2021-09-07 06:19:39

보각

스님 저도 의지심이 많아서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저는 편안합니다. 저도 잘 살아가겠습니다.

2021-09-06 14:43:20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