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1.8.31 농사일
“다단계와 종교에 빠져 피폐해진 가족들, 저는 어떡하죠?”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오늘은 탑곡 수련원 아래에 위치한 가메달 밭으로 올라갔습니다. 마을 가까이에 있는 밭이 아니고 산속 깊숙한 곳에 있는 밭입니다.

얼마 전 단호박을 수확하고 난 자리에 브로콜리 모종을 심기로 했습니다.

스님과 두북 공동체 행자들 모두 고랑마다 한 줄씩 자리를 잡고 모종을 심기 시작했습니다. 행자님 한 명이 모종판에서 모종을 꺼내 두둑 위에 하나씩 놓고 지나가면, 나머지 사람들이 모종을 두둑에 심고 흙을 덮어 주었습니다.




모종을 심으며 스님과 행자님들은 농사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아침에 동네 할머니를 만났는데 어떻게 농약을 안 치고 농사를 짓느냐며 저보고 엄청 뭐라고 했어요.” (웃음)

“이 밭에도 약을 안 치기 위해서 한랭사를 씌울 예정입니다.”

“그러니까요. 동네에는 이렇게 한랭사를 씌우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 할머니들이 보기에는 별짓을 다한다 싶나 봐요.” (웃음)

산속 깊숙한 곳에 있는 밭이지만 땅이 정말 좋았습니다.

“여기까지 왕래하기가 좀 힘들어서 그렇지 땅이 정말 좋은 밭이에요.”

모종을 심고 난 뒤에는 구멍이 뚫린 비닐이 펄럭거리지 않도록 흙을 살포시 덮어 주었습니다.

모종을 빈자리 없이 다 심고 나서 아침 울력을 마쳤습니다. 가메달 밭 바로 아래에는 계곡이 있습니다. 스님은 계곡에서 세수를 하고 신발과 장갑을 씻은 후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오전 9시부터는 두북 공동체 대중과 함께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발우공양을 마치고 나서 두북 수련원에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스님은 손님을 모시고 인근 지역의 유적지를 둘러보고 안내하며 하루 종일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내일은 새벽에 한국불교의 대표 선승인 고우 스님의 영결식에 참석해 조문을 한 후 하루 종일 정토대전 사상팀 법사님들과 회의를 하고, 저녁에는 수행법회를 생방송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27일 금요 즉문즉설 강연에서 소개하지 못한 즉문즉설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다단계와 종교에 빠져 피폐해진 가족들, 저는 어떡하죠?

“제 나이는 21살입니다. 어머니는 현재 당뇨 등 지병으로 집에서 쉬고 계시고, 아버지는 일용직 노동자인데 다단계에 빠졌다가 얼마 전 사기를 당해서 5000만 원이라는 빚이 생겼고, 동생은 종교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 탓에 저는 20살 때부터 직장을 다니고 있습니다.

저의 고민은 이런 가족들에 대한 부담감입니다. 다단계와 종교 때문에 피폐해진 가족들을 보며 사람에 대해 불신이 생겼습니다. 부모님이 고생하신 것을 너무 잘 알기에 효도를 하고 싶지만, 제가 갖고 있는 꿈을 이루기에는 시간도 부족하고 금전적으로 힘듭니다. 제 인생을 살아가고 싶은데, 가족들을 생각하면 답답하고 불안합니다. 그래서 가족들을 떠날 생각도 해봤는데, 스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아직 나이가 21살밖에 안 된 청년이 무슨 인생을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해요?” (웃음)

질문자는 눈물을 글썽이자 스님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질문자는 우리나라 최고의 재벌인데 식물인간 상태인 게 좋겠어요? 빈털터리여도 21살인 게 낫겠어요?”

“네?”

“다시 물어볼게요. 대통령 한 번 해보고 감옥살이하는 게 낫겠어요? 빈털터리여도 21살인 게 낫겠어요?”

“21살인 게 낫습니다.”

“그래요. 질문자는 지금 재벌 회장보다도 낫고, 대통령 했던 사람보다 낫잖아요.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렇게 심각하게 인생을 고민해요? 나이가 21살이라는 것만으로도 어떤 재벌보다 부자이고, 어떤 지위 높은 사람보다 더 높은 사람입니다. 이런 자부심을 가져야 해요. 지금 질문자는 찬란히 빛나는 자신의 가치를 모르고 그런 조그마한 일에 매달려서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겁니다. 자신이 다이아몬드인데도 불구하고 흙덩어리로 잘못 알고 있는 거예요. 질문자의 고민은 이런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만약 질문자와 어머니가 강을 건너다 물에 빠져서 둘이 떠내려간다고 합시다. 내가 어머니를 껴안고 강 밖으로 헤엄쳐 나와서 둘 다 살면 최고로 좋겠죠. 그런데 어머니는 수영을 못하고 나는 수영이 서툴러서 어머니를 끌고 나오려면 둘 다 빠져 죽게 생겼어요. 어머니 손을 놓아버리면 나 혼자는 어떻게든 헤엄쳐 나와서 살 수는 있을 것 같아요. 그럴 때 질문자는 어떻게 하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해요? 어머니 손을 잡고 같이 빠져 죽는 게 나아요? 안타깝지만 어머니 손을 놓고 나라도 일단 사는 게 나을까요?”

“잘 모르겠어요. 그 상황이 실제로 닥치면 어떻게 할지 모르겠지만 지금 마음에서는 같이 빠져 죽을 것 같아요. 혼자 도망치면 삶이 괴롭게 느껴질 것 같아서 그냥 엄마랑 같이 떠내려가는 선택을 할 것 같아요.”

“그럼 엄마 입장에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엄마는 같이 죽는 게 나을까요? 딸이라도 사는 게 나을까요?”

“딸이라도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하실 것 같아요.”

“이럴 때 엄마하고 같이 안 빠져 죽고 질문자만 혼자 살아남는 게 나쁜 행동일까요? 내가 엄마를 살릴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버리고 나왔다면 그것은 나쁜 행동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현재 나의 수영 실력이나 물살의 세기로 봐서 어머니까지 끌고 나온다면 같이 죽을 수밖에 없고, 어머니의 손을 내가 놓아버리면 나는 겨우 살 가능성이 있다면, 어머니의 손을 놓고 나라도 사는 게 나쁜 행동일까요?

어머니의 손을 못 놓고 둘 다 죽는 것은 선한 행동이고, 손을 놓고 나라도 사는 것은 악한 행동인가요? 어머니의 손을 못 놓고 둘 다 죽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고, 손을 놓고 나라도 사는 것은 지혜로운 행동인가요? 과연 이 문제가 악하고 선한 문제일까요? 어리석고 지혜로운 문제일까요?”

“어리석고 지혜로운 문제요.”

“지혜로운 행동인데 왜 죄의식을 느껴요?”

“스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렇네요.”

“이 질문을 질문자의 상황에 적용해보면 질문자가 어느 쪽을 선택할지는 이미 나와 있어요. 질문자는 자기 인생을 꿈꾼다고 말하지만 이미 자기의 성향은 부모님의 늪에 같이 빠져서 죽을 가능성이 훨씬 더 큽니다. 질문자의 능력이나 정신상태로 봐서는 자기 힘으로 부모님과 동생을 다 건져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요. 고생만 하다가 좌절을 하게 되어서 본인이 먼저 죽게 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런데 질문자가 이 상황에서 이렇게 마음을 먹는다면 어떨까요?

‘아! 이건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다. 부모님을 구하는 건 나중 일이고, 우선 나부터 살아야겠다. 내가 살아나가서 장대를 가져오거나 사람을 불러와서 어머니를 구하든지 해야겠다. 이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시신이라도 건져서 장례라도 치러드려야겠다.’

이렇게 마음을 먹는 것이 둘이 같이 빠져 죽는 것보다 훨씬 더 낫지 않을까요? 그렇게 해서 가족으로부터 벗어나서 자기 혼자라도 살면 좋은 일이고, 또 그게 제대로 되어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도와줄 수 있게 되면 더 좋은 일이잖아요.

지혜로운 자라면 지금은 일단 여기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안타까움에 사로잡혀서 같이 빠져 죽는 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것은 어리석은 행위예요. 부모님이 나를 낳아주고 키워주신 은혜도 있고, 부모님의 어려운 처지를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지금 상황에서는 나부터 살아야겠다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은 이기심이 아니라 지혜로운 판단이에요.

‘일단 내가 살아야 하고, 내가 살려면 이 복잡한 상황을 끊어내야 한다. 어머니는 어머니 인생이고, 아버지는 아버지 인생이고, 동생은 동생 인생이다. 원망할 필요도 없고, 기댈 필요도 없다. 나는 내 인생을 먼저 살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일단 질문자가 먼저 살아야 해요.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든지, 돈을 벌든지, 결혼을 하든지, 우선 독립을 먼저 한 후에 형편이 되면 아버지의 빚을 갚아주든지 어머니를 간호해주든지 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가족의 어려운 처지에 연연하면 같이 빠져 죽는 길밖에 없어요. 세상 사람들로부터 효녀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자신의 인생은 불행으로 점철된 길을 가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착한 사람이 될래요? 지혜로운 사람이 될래요?

착한 사람이 돼서 어리석게 살다 죽는 게 낫겠어요? 지혜로운 사람이 돼서 나도 살고 형편이 되면 가족도 구하는 사람이 되는 게 낫겠어요? 어느 쪽을 선택할래요?”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이제 답답할 일이 없어졌어요. 우선 21살이라는 것만 해도 식물인간 상태인 재벌보다 낫고, 감옥에 있는 대통령보다도 낫잖아요. 질문자가 21살이라는 것만 해도 고귀한 겁니다. 그 고귀함을 살리는 게 중요해요. 그렇지 못하고 정에 연연해서 같이 불행을 겪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이지 효도가 아닙니다.

부모님이 지금은 섭섭해 할지 몰라도 온 가족이 물에 떠내려가서 빠져 죽는 상황이 되면 모든 부모가 ‘우선 너부터 살아라’ 이렇게 말해요. 옛날부터 부모들은 다 그랬습니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이에요. 그러니 딱 여기서 정을 끊고 자기가 먼저 살아나야 합니다. 가족들을 외면하라는 말이 아니에요. 질문자는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럼 부모님은 어떻게 될까요? 대한민국은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어서 기본생활은 다 보장이 됩니다. 먹을 게 없으면 구청에서 쌀을 대줄 것이고, 아무 수입이 없으면 보조금이 나올 거예요. 그래서 그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처음에만 좀 가슴이 아프지 집착을 딱 놓아버리면 저절로 해결됩니다.

재물이 많고 건강한 사람도 교통사고 나서 죽는 경우가 생기는데, 설령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장례 치러드리면 되지 후회할 필요는 없어요. 그것은 자기 잘못이 아닙니다. 자기 잘못이 아닌 것을 갖고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관점을 이렇게 갖고 표정도 환하게 하고 내일부터 부모님에게도 잘 대해드리세요. 아버지가 빚에 관해 얘기하더라도 그건 아버지 일이지 내 일이 아니라는 관점을 고수해야 합니다. 나는 내 직장 다니고 내 할 일 하고 내 공부할 거 한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해요. 부모님과 한집에서 생활하기가 불편하면 독립해서 나오면 됩니다. 설령 함께 살더라도 집안일에 상관을 안 해야 해요. 질문자가 그걸 책임질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책임져야 할 일이지 질문자가 책임져야 할 일이 아니에요.

물론 자식이 건강하고 돈도 많다면 그런 경우는 자식이 부모를 책임지면 됩니다. 하지만 자기 수준의 정신력과 나이, 건강 상태라면 가족을 책임져야 할 아무런 의무가 없어요. 질문자는 자기를 책임지는 게 먼저이고 가족의 문제는 나중 일이라는 관점을 가져야 자기도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아무리 가정 형편이 어려워도 스무 살까지는 부모가 자식을 키워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 그건 질문자가 부모에게 진 빚이 아니에요. 그러나 스무 살이 넘었는데도 부모에게 의지하면 그건 부모로부터 빚을 지는 게 됩니다.

스무 살 아래일 때는 부모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는 것에 해당하기 때문에 자식이라고 해서 빚을 졌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또한 스무 살이 넘었을 때 부모를 도울 수 있으면 물론 좋지만 제가 볼 때 질문자는 남을 도울 처지가 안 됩니다. 질문자의 나이 또래에 대부분의 청년들은 부모로부터 오히려 도움을 받고 싶어 하기 때문에 질문자가 부모의 도움을 안 받는 것만 해도 장한 일이에요. 부모에게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해서 부담을 가질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건 죄가 아니에요. 죄의식을 갖지 말고 이렇게 생각하세요.

‘이런 가정에서 태어나 이렇게 자란 나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이런 마음으로 자기 인생을 개척하면서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제 잘못이 아니라고 말씀해주시니까 마음에 있었던 무거운 짐들이 다 내려가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전체댓글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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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연

스님의 현명한 대답이 묵은 체증이 다내려가는것 같습니다. 허지만 처음에는 질문자의 물음에 내생각도 단호히 부모형제를 거절못했을것 같았는데 스님의 시원한 대답에 다시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감나합니다.

2022-09-17 02:50:51

봄봄

스님의 지혜로우신 답변에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2021-09-16 00:37:30

김대현

감사합니다 ~~~~~~

2021-09-08 20:5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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