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0.12.31. 재심자 온라인 명상 5일째 회향식, 실무자 연말 수련
"지난 한 해 다 내려놓고, 새해 새 아침을 맞이합시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지난 4박 5일간 진행했던 재심자 온라인 명상을 회향했습니다. 오후부터는 봉화 수련원으로 이동해 실무자들과 연말 수련을 했습니다.

고요한 새벽 4시 20분, 화면에 나온 스님은 말없이 죽비를 쳤습니다.

탁, 탁, 탁

40분간 명상을 하고 5시부터 천일결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수련생들은 4박 5일 명상을 돌아보며 소감문을 적었습니다.

참가자들이 소감문을 다 쓰고 휴식하는 동안 진행 측에서는 소감문 전체를 읽어보고 발표자를 선정했습니다. 오전 7시부터 발표자로 선정된 분들이 화상으로 소감문을 낭독했습니다. 약 1시간 동안 한국과 해외 곳곳에서 함께한 참가자들의 소감문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스님의 하루를 통해 초심자 과정 온라인 명상수련 법문한 내용을 들으면서 스님 법문을 잘 듣고 따라 하면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집에서 혼자 하니 긴장된 마음이 덜 일어나고 좀 더 편안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

“명상 중에 매미 소리가 들려도 우리는 그것을 바꾸려고 하지 않고, 그 가운데에서도 명상할 수 있다는 스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내 맘대로 하려고 했는지 반성을 했다. 앞으로 함께 지내는 강아지에게 덜 화를 내고, 다른 사람의 인생에 함부로 간섭하지 않으며, 그저 가볍게 내 마음의 상태와 숨을 알아서, 바람에 맞서지도 않고, 굴복하지도 않는, 가벼운 나뭇잎처럼 살아봐야겠다.”

“명상하는 중에 아들이 유튜브를 크게 틀어놓고 노래를 부르며 통닭 피자를 비롯한 온갖 배달음식을 시킨다. 나도 모르게 나가서 ‘조용히 해라’ 말하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내가 간섭이 심한 사람이구나 보게 되었다.”

“흐뭇한 마음이다. 습관을 고치는 게 이토록 힘이 든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이 자리까지 온 나 자신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틀째 저녁과 삼일째 저녁,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누룽지를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하필 그날 스님이 계율을 어기며 하는 명상은 명상이 아니라 하셨는데... 법문을 들으며 요즘 내가 온통 욕구 통제가 안 되고 살고 있음을 알았다. 그래도 명상을 마치니 명상 잘했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명상을 하고 있는데 퇴근한 남편이 찌개를 끓여 먹는지 가스렌지 불 켜는 소리가 나고, 조금 있으니 맛있는 냄새가 코끝을 스치는 순간 저절로 침이 고이고 먹고 싶다는 생각으로 훅 가 버렸다. 그런데 지금쯤 불을 꺼야 하는데 끄지 않는 걸 보고 마음이 조급해지면서 순간 내가 일어나 나갈 뻔했다. 조금 있으니 타는 냄새가 나고 남편의 쿵쾅이는 발자욱 소리가 나면서 모든 상황이 종료되어서야 나도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웃음)

남편이 찌개를 끓여먹다 태운 이야기에 함박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소감문 발표를 모두 경청한 후 마지막으로 스님이 이에 대해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다 잘했습니다

“여러분은 ‘명상을 잘했느니 못했느니’ 하는데, 제가 볼 때는 다 잘했어요. 졸음이 쏟아지는데 눕지 않은 것만 해도 칭찬할 만하고, 다리 아픈 데 참은 것만 해도 칭찬할 만하고, 설령 다리를 한두 번 폈다 하더라도 칭찬할 만하고, 눈앞에 음식이 널려 있는데 안 먹은 것도 칭찬할 만한 일이고, 밖에서 음식이 타는 걸 보고 간섭 안 한 것만 해도 대단한 일입니다. 평소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잖아요.

명상을 시작하고 잠깐 사이에 한 시간이 지났다면 명상을 잘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금 입정하고 잠시 있다가 죽비를 쳐서 눈을 떠 보니 죽을 때가 다 되었다면 잘한 걸까요? 제 말은 오래 앉아 있는 것이 명상하는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여러분은 자꾸 명상의 목표를 엉뚱하게 설정하는 거 같아요. 명상을 해서 뭘 찾는다고 하는데 찾기는 뭘 찾아요. 눈을 감고 있는데 뭘 본다는 거예요. 그냥 가만히 호흡을 느끼는 거죠. 코 끝에 관심을 두면 저절로 숨이 들어오고 나가는 게 느껴집니다. ‘호흡을 알아차려야지’ 이렇게 의도하고 욕심을 내면, 호흡은 거칠어지고 제대로 잡히지도 않습니다. 편안한 상태에서 코끝에 관심을 가지면 호흡은 언제든지 늘 그곳에 있어요. 찾으러 다닐 필요가 없습니다. 그 집으로 가기만 하면 돼요. 관심만 두면 늘 그분은 항상 그곳에 앉아 계셔요.

우리가 4박 5일 동안 정진을 했는데, 어떻게 했든 하기만 했다면 다 잘했습니다. 어떤 증상이 있었든 일어날 만해서 일어난 거예요. 그러니 다시 기운을 내셔서 일상으로 돌아가시기 바랍니다. 일상생활에서 호흡을 관찰한다고 운전하다가 사고 내지 말고요. 상대하고 대화할 때 눈은 상대의 눈에, 귀는 상대의 소리에 집중하는 것이 깨어있는 거예요. 손으로 작업을 할 때는 손에 깨어있어야 하고, 운전할 때는 운전에 딱 깨어있어야 합니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후 10분 후에 회향식을 시작했습니다. 삼귀의와 수행문을 읽은 후 스님에게 명상을 마치며 법문을 청했습니다.

4박 5일간 명상을 하는 동안에도 코로나19 바이러스는 퍼져나갔고, 사망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스님은 참가자들에게 병실이 부족한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수행으로 욕망을 자제하는 힘을 키워나갈 것을 당부했습니다.

스스로 욕망을 통제하는 힘이 커질수록 삶이 풍요로워집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가 있습니다. 제일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들, 특히 노약자들이겠죠. 건강하고 젊은 사람들은 감기나 독감 걸린 것 같은 정도인데, 노약자들은 증상이 심각해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노약자가 아닌데 급성으로 며칠 만에 돌아가신 분들도 있고요. 지난 28일에는 코로나로 하루에 40명이 사망하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연말에 참 슬픈 소식입니다.

지금 중환자를 치료할 병실이 부족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합니다. 병실을 기다리다가 돌아가시는 분들이 자꾸 생기고 있어요. 행정 관청의 얘기를 들어보니까 격리자나 환자를 보호하기 위해 추가적인 시설을 확보하기가 굉장히 어렵대요. 해당 지역 주민들이 반대를 해서 민원을 제기하기 때문이에요. 이런 현실을 보면 우리가 너무 이기적이지 않은가 싶습니다. 자기나 자기 가족이 병에 걸렸는데 병실이 없어서 밖에서 대기하다가 죽었다면 얼마나 슬프고 가슴 아픈 일이겠습니까.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주의는 하되 너무 두려워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마스크를 잘 끼고, 손을 잘 씻으면 전염될 위험이 낮은 병이잖아요. 사람이 죽어가는 마당에 병실을 제공하는 걸 꺼린다면 시민의식이 수준 이하라는 걸 보여줍니다. 특히 부유층이 사는 고급 아파트 가까이에 시설이 생긴다고 하면 반대가 더 심하잖아요. 이런 것을 보면 우리가 정말 잘 사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신사의 나라라고 하는 영국에서 최근 전염성이 아주 높은 코로나 변종 바이러스가 발생했죠. 스위스 정부는 스위스 스키리조트에 휴가 온 영국 사람 4백여 명에게 격리를 명령했어요. 그런데 12명 빼고 모두 탈출을 해버렸다고 해요. 세상이 이렇게 각박해졌다는 거죠. 우리가 그동안 동경했던 신사의 나라니, 선진국이니, 민주주의 국가니 하는 것이 마치 모래성이 무너지듯, 거품이 사그라지듯 허망하다는 사실이 점점 드러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그에 비해서는 비교적 건강하지만, 일부 사회지도층이나 부유층, 특히 별 어려움 없이 자란 젊은이들이 정부의 지침이나 방역 수칙을 실천 안 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염병이 유행하는 때에 일출을 보러 간다고 난리를 피우니까 정부가 결국은 일출 명소를 모두 폐쇄했잖아요. 스스로 자제해서 해결하면 얼마나 좋겠어요.

나를 괴롭히고 남도 괴롭히는 욕망을 스스로 자제할 수 있다면 아름답겠죠. 누군가 강제로 욕망을 자제시킨다면 얼마나 속박을 받겠어요. 중국 사회가 그렇습니다. 중국 정부가 방역은 잘했을지 몰라도, 국가가 인간의 기본적인 인권이나 자유를 완전히 통제했잖아요. 전염병 앞에서 인류는 외부에서 강제로 통제를 하거나 자기 욕망에 속박을 받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통제하는 힘이 적을수록, 자기 욕망을 스스로 통제하는 힘은 클수록 삶은 더 풍요롭고 자유로워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수행은 지금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모든 사람이 행해야 할 일입니다. 수행은 천당이나 극락에 가기 위한 방법도 아니고 복을 받는 방법도 아닙니다. 제도를 개혁하는 것만으로는 나도 행복하고 다른 사람도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어렵습니다. 사회 제도도 바꿔야 하지만, 개인이 자각하고 자제하는 힘도 함께 키워야 정말 평화롭고 자유로운 사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수행자들이 이 길을 가는데 자부심과 확신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수행을 더 이상 특정 종교의 울타리 안에 가둬놓지 말자. 나라, 종교 등에 관계없이 누구나 이 가르침을 배워서 나도 남도 행복한 삶을 살아가도록 우리 수행자들이 조금이라도 역할을 해보자’는 발원을 해보면 좋겠습니다. 합장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참가자들을 축원하며 함께 발원했습니다.

“부처님. 저희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감각을 알아차리고, 느낌을 알아차리고, 마음을 알아차려서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도록 수행정진하였습니다.

저희들이 오늘 이렇게 마음을 내지만, 부족하기 때문에 내일 또한 잊어버리고 삶의 습관대로 살 위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저희를 어여삐 여기시어 저희를 바른 길로 이끌어 주십시오. 저희는 비록 더디고 때로는 되돌아갈 때가 있지만, 법에 귀의했기 때문에, 다시 돌아오고 다시 일어나서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오늘 저희가 수행 정진한 공덕, 고통받는 일체중생에게 회향하오니. 배고픈 자에게는 양식이 되고, 병든 이에게는 약이 되고, 배우지 못한 아이들에게는 배움의 터가 되는 등 고통받는 모든 중생들이 그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여지이다.

생명 가진 모든 존재들에게 평화와 안락이 깃들기를.”

9시가 넘어 사홍서원을 끝으로 재심자 온라인 명상수련을 마쳤습니다. 23일부터 31일까지 4박 5일간 두 번의 온라인 명상이 모두 끝이 났습니다. 스님은 수련을 잘 진행해준 스텝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두 번 연속으로 수련을 진행한다고 수고 많았어요.”

인사를 나누고 바로 짐을 싸서 오전 10시에 문경 수련원을 출발해 봉화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눈이 하얗게 덮인 소백산맥이 절경을 이루었습니다.

차 안에서 스님은 의료인 관계자들에게 전화를 연달아하면서 자문을 구했습니다.

“지금 코로나 환자가 증가하면서 의료인들이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은데 제가 그분들에게 어떤 도움을 주면 좋을까요? 지금 의사가 간호사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게 뭡니까? 책이나 선물을 보내줘도 다들 지쳐있어서 별로 도움이 안 될 것 같고, 연예인들과 같이 유튜브로 의료인들을 격려해주는 즉문즉설이나 콘서트를 열어서 그분들의 미담도 듣고 하면 힘이 좀 될까요?”

여러 명의 자문을 받다 보니 벌써 봉화 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이 도착하자 봉화 수련원에서 4박 5일 동안 명상수련을 했던 공동체 법사단과 실무자들이 스님을 반갑게 맞이하였습니다.

삼배로 스님에게 인사를 한 후 곧바로 실무자 새해맞이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명상 잘하셨어요? 많이 춥지는 않았어요?”

“두북 수련원처럼 웃풍이 세지는 않았어요. 따뜻하게 수련 잘했습니다.”

“그럼 명상을 한 소감을 같이 나누어 봅시다.”

먼저 각자 명상수련을 마치고 작성한 소감문을 돌아가며 읽었습니다.

“조바심 내지 않고 코 끝에 집중해 보았고, 그러다 보니 평정심이 유지되었다. 코 끝에 관심만 기울이니 호흡은 거기에 있었다.”

“먹고 싶은 욕구, 성적인 욕구, 일에 대한 생각이 많이 떠올랐다.”

“휴식 시간에도 눕지 않아 보았다. 동작 알아차림을 하는데 조급 해지는 마음이 자주 느껴졌다.”

“명상을 하던 중 가장 크게 올라온 망상은 짜파게티를 먹고 싶다는 욕구였다. 이제 곧 한국을 떠나 인도에 다시 파견을 가야 하는데 짜파게티 먹을 시간이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호흡으로 돌아가지지 않고 짜파게티만 계속 생각이 났다. 죽비 소리가 나고 명상이 끝났지만 지금도 여전히 짜파게티 생각이 난다.”

행자님의 소감을 듣고 여러 명이 “내일 짜파게티 좀 먹게 해 줍시다” 하고 건의를 했습니다.

스님은 웃으며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조언해줄 내용을 메모지에 기록했습니다.

소감문 발표를 다 듣고 나서 스님이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특히 욕구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에 대한 소감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 다시 한번 강조를 해주었습니다.

“여러분들 얘기 잘 들었습니다. 만약에 부모님이 돌아가셨거나, 애인하고 헤어졌거나, 중요한 물건을 잃어버렸거나 해서 정말 슬펐는데, 길을 가다가 갑자기 5만 원짜리 지폐가 여기저기 바람에 나뒹군다면 어떻게 될까요? 길에서 공짜로 5만 원짜리를 줍는 순간에도 슬픔이 그대로 있을까요?”

“아니오.” (웃음)

“5만 원짜리를 줍는 것에 집중되면 다른 고민이나 슬픔은 다 없어져 버려요. 마찬가지로 호흡에 집중되면 다른 망념들이 사라지게 되는데, 그런데도 집중이 안 되는 이유는 우리에게는 호흡에 집중하는 것이 5만 원짜리 줍는 것보다 훨씬 못하기 때문입니다.

호흡에 집중을 하는 이유

어떤 문제를 풀 때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첫째, 그 원인을 규명해서 하나하나 풀어서 해결하는 방식입니다. 둘째, 문제 자체를 삼지 않아서 해결하는 방식입니다. 두 번째 방식은 선불교에서 ‘화두를 든다’, ‘한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으로 돌아가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느 한 곳에 집중하면 생각이 끊어집니다. 이것을 무념의 상태라고 하죠. 큰 소리가 나면 작은 소리가 안 들리는 것처럼 이것은 우리가 일상에서도 실제로 많이 경험하고 있어요. 그런데 생각이 한 곳에 집중이 안 되니까 온갖 잡념이 드는 겁니다.

명상이 욕구를 따르는 거라면 욕구를 자극하기만 하면 금방 집중이 될 거예요. 물고기에게 낚싯밥을 던지면 바로 물듯이 저절로 명상에 집중이 될 겁니다. 그런데 명상은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을 가는 것이기 때문에 욕구를 자극해서 집중력을 키울 수는 없지 않습니까. 어린아이들을 다룰 때 다 경험하잖아요. 아이들이 울면 우선 달래 보죠. 아무리 달래도 안 되면,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합니다. 첫째, 사탕을 주면 울음을 딱 그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주면 그전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는 잊어버립니다. 둘째, ‘호랑이 온다’ 하면서 겁을 주면 울음을 딱 그칩니다. 더 큰 재앙이 닥치면 그 전 재앙이 작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에게 닥친 문제가 큰일이라고 하지만, 더 큰일이 생겨버리면 그전에 있었던 문제는 아무 일도 아닌 게 됩니다. 우리의 정신 작용이 그렇습니다. 반대로 더 좋은 것이 나타나버려도 그 유혹에 이끌려서 그 이전에 문제라고 여겼던 것이 사라집니다. 그런데 명상은 욕구를 따르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 정신 작용이 그렇기 때문에 한 곳에 집중하는 연습을 하는 겁니다.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은 생각 작용이 아니에요. 그냥 주시하는 것입니다. 생각은 스토리가 있는 거잖아요. 딱 한 곳에 주시해서 스토리가 다 끊어져 버리면 사실은 아무런 괴로워할 일이 없게 됩니다.

명상의 두 가지 효과

명상의 첫 번째 효과는 한 곳에 집중함으로 해서 다른 번뇌를 잠재우는 것입니다. 어떤 복잡한 일이 있거나 번뇌가 생길 때 한 곳에 딱 주시함으로 해서 복잡한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거예요. 우선 이것이 먼저 되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명상의 두 번째 효과는 미세한 감각을 알아차려서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미세한 호흡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미세한 감각을 알아차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주의 집중력이 생깁니다. 미세한 감각은 우리가 사람들과 얘기하거나 같이 지낼 때도 일상에서 늘 일어나는 것인데, 우리는 거의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에 모르고 지냅니다. 그러나 그 미세한 감각이 불씨가 되어서 큰 불이 납니다. 우리는 그것이 아주 큰 불이 됐을 때, 즉 화가 나거나 감정이 격화됐을 때가 되어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때도 알지 못하면 바깥으로 표출을 해서 과보가 따릅니다. 그 때라도 알아차리면 자제는 할 수 있는데, 자제하는 것 자체가 본인에게 엄청난 스트레스가 됩니다. 왜냐하면 이미 불길이 너무 거세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불길이 커지기 전 막 불이 붙으려는 시점에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으면 자기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가 훨씬 더 쉬워집니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해야 할 일

이번 4박 5일 명상에서 자기를 점검할 수 있었듯이, 일상으로 돌아가서도 자기를 점검해가면서 돌이키고 수정해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이 일상으로 돌아가면 거의 습관대로 계속 굴러가죠. 조금 멈칫하다가 그냥 그대로 또 굴러가고, 또 어떤 계기를 만나서 약간 멈칫하다가 원래대로 또 굴러가고 이러다 보니까, 시간이 흘러서 되돌아보면 별로 변한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변했겠지만 눈에 띄는 변화가 없는 거예요.

그러나 다시 돌아가더라도 예전만큼만은 안 돌아가면 변화가 있는 겁니다. 명상수련을 통해 자각이 100으로 일어났다면,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다시 후퇴하긴 하지만 0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50쯤에서 멈춥니다. 그리고 다시 또 계기가 있어서 앞으로 100을 가면 150이 되는데, 다시 뒤로 후퇴하더라도 한 70쯤에 멈춘다면, 앞으로 전진을 한 겁니다. 이렇게 늘 전진했다 후퇴했다를 반복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앞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전진할 때는 주로 어떤 계기를 통해서 사람의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나는 편이에요. 길을 가다가 돌부리에 치어서 넘어지면서 깨닫든지, 법문 듣고 깨닫든지, 변화가 급격하게 일어납니다. 반면에 후퇴는 천천히 원래 자리로 돌아갑니다. 자각의 힘이 커져서 탁 깨달아버리면 거기에서 뒤로 안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뒤로 물러나지만 원래 위치로는 안 가고 다시 또 나아가고 다시 또 나아가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수행도 자꾸 욕심을 내서 하니까 ‘난 늘 안 된다’ 이렇게 생각하는데, 안 되는 게 아니라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겁니다.

다만 그것이 어느 정도로 나아갈 거냐 하는 것은 첫째, 법문이나 수련 정진을 통해 얼마나 깊은 자각을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둘째, 본인이 일상에서 얼마나 알아차림을 하느냐와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법문을 듣거나 집중해서 수련 정진을 하는 등 어떤 계기를 통해 자기가 평소에 안고 있던 문제가 탁 풀어질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명상하면서 느꼈듯이 ‘내가 정말 간섭을 많이 하는구나’, ‘내가 정말 욕심이 많구나’ 이런 자각을 그냥 생각해서 아는 정도를 넘어서서 마음속 깊이 자각하게 되면 실제로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점점 원래 습관대로 흘러가죠.

그래서 명상수련을 끝내고 이제 일상에서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뒤로 물러나지 않도록 보완을 하는 겁니다. 4박 5일 동안 집중해서 정진을 할 때는 한 발 앞으로 성큼 나가 주는 것이 필요하고, 명상수련을 끝마치고 일상에서는 꾸준한 연습을 통해 한 발 앞으로 나간 것이 후퇴하지 않도록 최대한 막아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하면 내 삶이 날이 갈수록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집중해보기

그런데 꾸준히 할 수 있으려면 편안한 마음으로 해야 됩니다. 긴장하고 결심하고 각오하면 단기적인 효과는 있지만 힘이 드니까 오래 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긴장하지 말고 가능하면 편안한 상태에서 자꾸 집중하는 연습을 해봐야 해요. 어떤 일을 하더라도 긴장하면서 조마조마하게 하기보다는 마음을 조금 편안하게 하면서 집중하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일을 안 해야 편안하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어떤 일에 딱 집중하게 되면 훨씬 더 심리가 편안해집니다. 아이들도 하기 싫은 걸 억지로 시키면 심리가 굉장히 불안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게임을 하거나 만화를 볼 때는 심리가 굉장히 안정되어 있는 편이에요.

그런 관점에서 여러분들이 스스로 발심을 좀 해야 됩니다. 자기가 자기 삶을 어떻게 살 거냐 하는 문제예요. 조금 더 나를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는 좋고 싫은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겠다는 목표로 분명히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가 싫어서 팩 돌아서다가도 그 감정을 탁 내려놓을 수 있고, 막 좋아하다가도 ‘아!’ 하고 딱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이런 연습을 계속해나가야 해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명상할 때만 연습을 하고 일상에서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 버립니다.

방금 행자님 한 분이 짜파게티 먹고 싶다고 하니까 여러분들이 사주자고 건의를 하잖아요. 먹고 싶은 욕망이 한이 되어서, 그걸 못 먹은 것이 상처가 있으면 그걸 너무 계율이라고 해서 안 된다고만 그럴 게 아니라 ‘그럼 한 번 해봐라’ 이렇게 한풀이를 해줄 수도 있습니다. (모두 웃음)

그런데 먹고 싶다고 자기가 사 먹든지, 먹고 싶어 한다고 옆에서 누가 사주든지, 이런 식으로 자꾸 욕구를 따르게 되면 그게 습관이 된다는 겁니다. 우리가 수행하는 이유가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잖아요. 한 군데에 욕망이 맺혀 있다면 수행자는 그걸 딱 끊어줘야 합니다. 세게 맺힌 욕구는 끊어주고, 작은 욕구는 오히려 그냥 안고 가도 되는데, 우리는 자꾸 반대로 해요. 세게 맺힌 욕구는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 줘서 풀어주자고 하고, 작은 욕구를 끊으려고 하거든요. 제가 이렇게까지 이야기했으니 행자님은 이제 인도에 가기 전날까지 짜파게티를 못 먹겠네요.” (모두 웃음)

대화 속에 웃음이 계속 나왔지만, 자연스럽게 수행의 관점도 분명하게 잡혔습니다.

수련을 총괄하는 무변심 법사님이 휴식 시간에 스님에게 찾아가 상의를 했습니다.

“스님, 대중들이 그 행자님을 위해 짜파게티를 내일 점심때 같이 먹자고 하네요. 저희 공동체 계율에 따르면 수행도량에서 비닐에든 인스턴트식품은 못 먹게 되어 있는데, 만약 제가 허용을 해주면 이게 관례가 될 것 같아요.”

“그러면 스님이 이번만 특별하게 예외로 허용해주었다고 하고 하세요. 법사님은 원칙을 분명하게 이야기하시고요. 그래야 관례가 안 될 수 있으니까요.”

이어서 명상을 하면서 궁금했던 점이나 평소 개인적으로 고민이 있었던 내용을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업적으로나 실무적인 건의사항도 뒤섞여서 자유롭게 대화가 계속되었습니다.

온라인으로 진행된 명상수련에 대한 평가와 개선점, 코로나19 이후 온라인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좋은 점과 힘든 점, 해외에서 현지 언어로만 법회를 진행할 경우 준비해야 할 것 등 다양한 의견이 제안되었습니다. 스님은 각각에 대해 더 큰 비전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개인적인 고민은 질문이 잘 나오지 않아 내일 아침에 대화 시간을 더 갖기로 하고 새해맞이 실무자 수련 첫째 날 일정을 마쳤습니다. 새해를 2시간 앞두고 스님이 덕담을 해주었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있었던 일들은 다 내려놓아버리고, 내일은 새해 새 아침을 맞이합시다.”

“감사합니다.”

모두 잠자리에 들고, 스님은 행복한 100일 법문 추진단과 늦은 밤에 화상회의를 시작했습니다.

“늦은 밤에 갑자기 회의를 소집해서 미안합니다.”

밤 11시에 회의를 마치고 원고 교정 업무를 본 후 스님은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새해 첫 천일결사 기도를 한 후 실무자 새해맞이 수련 2일째 일정을 가질 예정입니다.


2025 3월 정토불교대학

전체댓글 61

0/200

곽완신

내려놓을것도 없는 자리에 오니 삼일째!하품만나오고 졸리기만합니다 이마져도 놔버리어
흘러갈거나 생각(언설)로는 들어올곳이 아나요 나 없는 자리에서 나 없음을 보노라?
언설이되는가 ?오월 논에는 낮 구름만 떠있구나?
법륜이 애쓰는구먼?

2024-05-22 09:46:46

하심

내 삶이 날이 갈수록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게 후퇴하지않게 막아내며 살아가겠습니다~감사합니다!

2021-01-25 17:40:13

나그네

다 여자들 밖에 없구나
정토회는 비구니 도량인가?!

2021-01-21 20:23:56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