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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재심자 온라인 명상수련 4일째 날입니다. 오늘도 새벽 4시에 기상해서 4시 20분부터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탁, 탁, 탁!
말없이 죽비 소리와 함께 명상을 시작하고, 죽비 소리와 함께 새벽 명상을 마쳤습니다.
천일결사 기도를 한 후 6시 20분에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30분씩 네 번의 명상을 했습니다. 명상을 하는 사이 해가 떠올랐습니다.
오전 명상을 하고 식사를 했습니다. 오늘은 식사 후 목욕하는 시간이 30분 더 주어졌습니다. 깨끗이 씻고 나서 자리에 앉아 오후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따사로운 햇살에 소복이 쌓였던 눈이 점차 녹아내렸습니다.
40분씩 네 번의 명상을 연달아 한 후 오후 공양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사이 참가자들은 지난 4일 동안 명상을 해보면서 들었던 의문점을 질문지에 작성해서 제출했습니다.
저녁 명상을 두 차례 더 한 후 7시 20분에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3백여 명 중 30명이 질문을 했습니다. 질문한 사람들은 모두 화상 회의 방에 초대되어 방청객이 되고, 그중 질문자로 선정된 15명은 스님에게 직접 질문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스님이 이름을 부르면 마이크를 켜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부모님과 함께 사는 집에서 명상을 하니 집중을 하기 어려웠다며 시끄러운 곳에서 명상을 해도 효과가 있는지 물었습니다.
“1층은 부모님이 생활하시고, 저는 2층 제 방에서 명상 수련을 했습니다. 오전에는 조용해서 호흡에 집중이 잘 되었습니다. 오후에는 1층에서 들려오는 TV 소리나 부모님께서 식사하실 때 나는 소리가 커서 ‘호흡에 집중해야 한다’라고 바짝 긴장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수련을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이런 상태로 명상해도 효과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어떤 상황이든 자신이 어떻게 받아들일 건지가 중요해요. 아무런 잡음이 없는 조용한 곳에서 명상을 해도 집중이 잘 안 되는데, 옆에서 사람 말소리나 덜거덕거리는 소리가 나면 집중이 흐트러지기 마련입니다. 자꾸 소리에 신경이 가니까요. 늘 얘기했다시피, 졸린다고 수행이 안 되는 게 아닙니다. 졸리는 가운데에서도 호흡 알아차리기라는 목표를 향해 가는데, 어쩔 수 없이 조는 것은 하나의 과정이기 때문에 수행에 장애가 안 돼요.
다리가 아프면 대부분 집중을 하기 어렵습니다. 통증에 마음을 빼앗기면서도 그래도 호흡에 집중하려는 노력을 계속하는 거예요. 나도 모르게 관심을 빼앗기는 게 현실이에요. 현실을 받아들이되 계속 연습을 하면 나중에 다 공덕이 됩니다. 아무 생각도 안 일어나면 제일 좋지만, 현실은 지나간 과거에 대한 생각이나 미래에 대한 생각이 자꾸 떠오르고, 호흡에 집중하려고 해도 나도 모르게 어느덧 다른 곳에 생각이 빠져 있는 일을 반복해요.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수행이 안 된 게 아니에요. 내가 늦게라도 알아차리고 호흡으로 돌아오는 연습을 계속하는 것과 안 되니까 ‘에잇!’ 하고 포기하는 것은 다르거든요.
소리도 마찬가지예요. ‘아무리 소리가 들려와도 나는 호흡에 집중하리라’ 이렇게 마음먹고 하는데 나도 모르게 자꾸 바깥 소리에 마음이 가버리고 또 나도 모르게 마음이 가버려도 크게 문제는 없습니다. 지금 호흡에 딱 집중이 되느냐만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 나아가느냐가 중요하다는 얘기예요. 어느 정도 수행이 되면 저자 한가운데에서도 명상을 할 수 있다고 하잖아요. 저자는 원래 시끄러운 곳입니다. 옛날 기록을 보면 그렇게 시끄러운 곳에 딱 앉아서 명상하는 거지 도인들이 있었잖아요. 그런 사람들은 차나 사람 소리처럼 시끄러운 소리에 전연 개의치 않고 자기 집중을 딱 하는 것이거든요.
물론 초심자는 아무래도 눈에 보이는 게 있고 귀에 들리는 게 있으면 자꾸 마음을 빼앗기게 됩니다. 질문자가 2층에 앉아서 명상을 하는데 아래층에서 부모님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도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내가 2층에서 이렇게 혼자 할 수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다. 부모님께서 허락해 주신 것만도 감사하다.’
내가 수련한다고 부모님 생활까지 못 하게 할 권리는 나한테 없잖아요. ‘나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면 도저히 집중이 안 된다’ 하는 사람이면 명상을 할 때는 집을 떠나야 해요. 아니면 그 정도는 내가 집중하는 연습을 하는 기회로 삼든지요. 처음에는 집중하기가 좀 어렵지만, 시끄러움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런 소리를 매미 소리처럼 여기는 거예요.
여름에 명상을 할 때는 매미 소리가 내내 시끄러워도 명상을 하고, 차 소리가 들려도 하잖아요. 차 소리나 매미 소리는 내가 포기하는 부분이 있어요. ‘저건 내가 어쩔 수 없다. 그러니까 집중하자’ 이렇게 됩니다. 그런데 가까이 있는 남편이나 부모님이나 아이들이 딱딱대고 시끄러운 건 잘 못 견뎌요. ‘좀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이런 생각을 내가 못 버리기 때문에 집착이 계속 일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차나 매미 소리처럼 질문자가 처한 조건에서 1층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어쩔 수 없는 소리라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 조건에서 내가 수행을 하든지 다른 장소를 구하든지 둘 중 하나를 해야 합니다. 그런 조건에서라도 하겠노라고 내가 선택했다면 조건에 대한 미련은 꺼야 해요.
여기서 핵심은 소리 때문에 집중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미련을 못 버리는 거예요. ‘부모님이 조금만 조용했으면 좋겠다. 아이고, TV 소리를 조금만 낮춰줬으면 좋겠다’ 이런 자기 욕구를 못 버려서 생긴 문제지, 소리 때문은 아니에요. 소리는 아주 부차적인 문제예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안 된 것에 지금 사로잡혀서 계속 끙끙대고 있다는 게 핵심입니다. 이렇게 봐야 해요.”
“네, 감사합니다.”
질문자는 자신의 모순을 깨달았는지 스님의 답변을 들으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명상을 하며 올라오는 과거의 기억을 어떻게 인생의 거름으로 만들 수 있는지 질문한 분도 있었습니다.
“호흡이 좀 미세해지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지나간 일들이 무성하게 올라오기를 수도 없이 반복합니다. 어떻게 이런 망상들을 수행에 도움이 되는 거름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그냥 ‘그렇구나, 그랬구나’ 하며 지켜보기만 하면 스르르 사라지기도 하지만, 다시 금방 다른 비디오가 상영됩니다.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할까요?”
“의도가 많네요. 벌써 거름 만들 생각부터 하고 있잖아요. 끊임없이 욕구를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명상수련에서는 무엇을 얻으려고 마음이나 어떤 의도를 모두 내려놓아야 합니다. 자꾸 ‘깨닫겠다’, ‘거름으로 만들겠다’, ‘성격을 변화시키겠다’ 이런 욕구를 가지고 하기 때문에 명상을 해도 마음이 한가해지지 않는 거예요.
무엇을 이루겠다는 욕구가 있으면 자꾸 평가를 합니다.
‘아, 이건 잘됐다.’
‘아, 이건 잘 안 됐다.’
‘이럴 바에야 안 하는 게 낫겠다.’
‘다음에 또 해야지.’
그러지 말고 그냥 한가하게 아무 할 일 없다는 자세로 명상에 임해 보세요. 어떤 의도나 목표 같은 건 갖지 말고요.
크게 보면 명상의 목표는 해탈과 열반입니다. 즉 자유롭고 행복한 삶으로 나아가는 길이에요. 우리가 지금 여기서 해야 할 일은 아무런 할 일 없는 편안한 상태에서 딱 호흡만 주시하는 거예요. 의도가 아니라 주시입니다. 다시 말해 딱 비춰만 보는 거예요. 코끝에만 딱 관심을 주세요.
주시하는 데는 에너지가 안 듭니다. 코 끝을 딱 주시하기만 하면 호흡을 알아차릴 수 있어요. 머릿속으로 비디오를 돌리거나 딴 걸 하지 말고 호흡만 딱 주시하는 연습을 좀 해보세요. 그러면 몸에 쓰이는 에너지가 줄어들어요. 평소에 우리가 머리에 쓰는 에너지가 전체 혈액의 3분의 1에 해당하는데 그것까지도 확 줄어들면 숨이 굉장히 부드러워집니다.
아무리 숨이 부드러워도 딱 주의를 집중하면 호흡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숨을 안 쉬면 몰라도 숨을 쉬는 한은 주의만 집중하면 감지할 수 있어요. 그러면 우리 몸의 다른 감각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런 연습이 어느 정도 되면 마음이 언짢거나 어떤 느낌이 일어날 때 빨리 감지할 수 있어요. 그러면 바깥으로 감정적 대응을 하는 빈도나 폭도 자연스럽게 줄어들겠죠. 이를 악다물고 감정을 참지 않아도 돼요.
욕망으로부터 점점 자유로워지는 1단계로 우선 편안한 가운데 호흡을 알아차리는 거예요. 지금은 이 연습이 중요하지, 이다음에 뭐가 되는지는 지금 중요한 게 아니에요.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는 이미 다 전제되어 있잖아요.
모든 의도를 딱 내려놓고 지금은 호흡을 알아차리는 연습만 하세요. 여러분은 명상 올 때 고작 5일 해서 뭘 깨달을 것처럼 기대하는 것 같아요. 일확천금을 노리고 복권을 사는 심보로 명상에 참여한 것 같습니다. 스스로 한 발도 나아가지 않은 상태에서 자꾸 열 발, 백 발 가겠다고 하고 있어요.
‘내가 찬찬히 한 발 한 발 가고 있는데 어떤 부분이 조금 안 된다’ 이렇게 딱 질문을 하면 자신에게 도움이 됩니다. 질문자는 지금 욕구로 질문을 하고 있어요. ‘내가 뭐가 돼야 하겠다’ 이게 욕구예요. 우리는 지금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지는 훈련을 하고 있잖아요. 하기야 여러분 입장에서는 돈 들이고 시간 들였는데 얻을 게 없으면 아쉽게 느껴지긴 하겠네요. 우리는 평생을 이렇게 뭘 얻으려고 합니다. 이번 명상수련만큼은 뭘 얻으려는 생각을 내려놓고 한가하게 지내는 연습을 해보세요. 그렇다고 게으름을 피우지는 말고, 한가하게 있는 연습과 주의를 집중하는 연습을 한번 같이 해보는 거예요.”
15명과 대화를 나눈 후 방송을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질문자들에게 한 줄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해외에서, 또 집에서 명상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질문까지 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큰 착각을 하고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명상을 하는 목적은 잊고 쉬고 싶어 했구나 알았어요.”
“상태 보고를 해도 호흡에 집중하라는 답변만 받았는데 스님께 질문하고 해답을 얻어서 속이 시원합니다.”
“감각을 잘 관찰하여 감정에는 무뎌지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봐주시는 부모님께 감사하지 않고 성질냈구나 부끄러웠습니다. 지금은 가볍습니다.”
“명상 중에 모든 생각은 망상이라는 걸 확실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멍청한 질문에 시원하게 답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주인 행세했구나 반성했습니다.”
소감을 다 듣고 스님은 질문을 올렸지만, 직접 하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인사를 건넸습니다.
“방청객, 한번 손들어 보세요. 질문 채택을 다 못 해줘서 미안해요. 그래도 얼굴이라도 한번 봐야죠. 자, 방청객이 누군지 손을 딱 들어봐요. 시간이 남으면 추가로 질문을 받을까 했는데 시간이 다 되어서 이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내일 여러분의 소감을 듣는 시간이 있으니까 그때 또 이야기를 나눕시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명상을 통해 어떻게 무의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알려주며 한 발 한 발 꾸준히 정진해나가자고 독려했습니다.
“명상을 너무 만병통치약처럼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의식의 무지는 잘못된 생각을 탁 깨우치면 삶에 큰 변화가 옵니다. 무의식의 무지는 의식을 깨우치는 것만으로 전부 다 청소할 수는 없어요. 명상을 통해서 의식 이전에 과거로부터 형성된 나의 업식에 대해서 좀 더 깊은 자각이 일어나야 해요. ‘나를 안다’라고 말할 때 나의 까르마, 나의 업식을 안다고 할 수 있는 거예요. 느낌과 욕망이 일어나는 걸 보면 나의 업식을 알 수 있어요.
‘아, 내가 이 문제에서 이렇게 반응하는구나’
마지막 질문자가 명상 중에 질투심이 올라오는 걸 보며 ‘전처의 아들이 재혼한 남편을 빼앗아간다고 생각했구나. 그래서 얄미웠구나’ 이렇게 깨달았습니다. 내가 재혼하고 10년간 잘 살다 보니까 무의식 중에 남편이 내 것인 양 여기게 된 거예요. 사실 그 사람은 이미 결혼을 한 번 했고 자녀도 있던 사람이에요. 그런데도 세월이 지나면 나도 모르게 무의식에서는 ‘내 것’이라고 여기는 겁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살펴보니까 ‘그가 본래 내 것이 아니구나’ 하고 알 수 있어요. 그러나 내 입장에서는 내 것을 빼앗아가는 것처럼 느끼니까 반응을 하게 되거든요. 이처럼 무의식적인 반응도 의식적으로 자각을 하면 많이 완화가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에서는 아직 ‘내 것’이라는 생각이 확 없어지지는 않아요. 의식을 깨우치면 전처럼 격렬하게 감정이 올라오지는 않아도 감정 자체는 계속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기분 나쁨이 일어날 때 ‘아, 이건 내 까르마 때문이구나. 내 것이라 여기는 습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구나’라고 자각하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반응을 사전에 막을 수 있어요.
평소에는 조금 언짢은 감정이 들어도 의식으로 마음을 통제하니까 스스로 그런 감정이 없는 줄 알아요. 명상을 하면 억압이 없어져서 자기 속에 있던 감정이 그대로 다 드러납니다. 그래서 나를 알 수 있어요. 옆에서 아무리 말해도 모르다가, 명상을 하면 도중에 망상을 피우든 어쨌든 자기를 자각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자각, 즉 스스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 나는 조금 아픈 걸 진짜 못 참는 인간이구나.’
‘나는 배고픈 건 진짜 못 참는 인간이구나.’
‘나는 남을 못 믿는구나. 온갖 의심을 하는 사람이구나.’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자신을 깊이 자각하면 변화가 생깁니다. 어제도 말씀드렸지만, 알고리즘과 같아요. 어떤 점을 깊이 자각하면 그것을 고치려고 하는 힘이 내면에서 조금씩 조금씩 일어나는 거예요. 의식으로는 아무리 각오하고 결심해도 안 되던 것도 깊은 자각이 일어나면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명상 중에 졸았든, 다리가 아팠든, 망상을 피웠든, 모두 있을 만 해서 일어난 일입니다. 결과적으로 다 당연한 거예요. 이 과정을 건너뛸 수는 없어요. 이런 과정을 거쳐서 앞으로 나아가는 거죠. 빨리 가고 싶다고 빨리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안 가겠다고 안 가지는 것도 아니고, 꾸준히만 해나가면 됩니다. 거쳐야 할 과정을 거치면서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는 거예요.
그 한 발이라는 게 여러분 입장에서는 건강해지거나 성질이 고쳐지는 것이라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해탈과 열반으로 나아가는 거예요. 우리는 명상을 통해 자기의 업식으로부터,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로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어느 순간에 이르면 팍 하고 급격하게 변화가 일어날 때도 있어요. 멈춰서 안 가는 것 같다가 축적이 되면 어느 순간에 돌발적으로 변화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고요.
인생에 어떤 변화가 갑자기 일어난다고 좋아하고 안 일어난다고 싫어할 게 아니에요. 눈에 보이지 않는 한 발 한 발이 쌓여야 변화가 일어납니다. 변화가 없다면 아직 그 한 발 한 발이 덜 쌓인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항상 내가 한 발 한 발 가는 게 중요하지,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결과를 자꾸 생각한다는 것은 수행마저도 욕망으로 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다만 한 발 한 발 나아갑시다. 이렇게 앉아서 명상할 때만이 아니라 일상에서도 늘 깨어있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꾸준히 공부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취침 안내 방송이 나간 후 참가자들은 노트북을 덮었습니다. 명상수련 마지막 날 밤에는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하루하루 차오르던 달은 어느새 보름달이 되어 환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내일은 5일간의 명상수련을 마치며 소감 나누기와 회향식이 있을 예정입니다. 9일간의 명상을 마치고 스님은 봉화로 이동해 공동체 실무자들과 연말 수련을 함께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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