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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재심자 온라인 명상수련 3일째 날입니다. 오늘도 새벽 4시에 기상해서 4시 20분에 명상과 함께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자세를 바로 합니다.”
죽비 소리와 함께 명상을 시작하고, 죽비 소리와 함께 명상을 마쳤습니다. 천일결사 기도를 한 후 6시 20분부터 30분씩 네 번의 명상을 연달아 했습니다.
9시에 아침 식사 시간과 휴식을 가진 후 오전 11시 30분부터 다시 명상을 이어나갔습니다. 40분씩 네 번의 명상을 연달아하는 사이 맑았던 하늘이 점차 흐려지더니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오후 3시에 식사 시간을 가진 후 5시 20분부터 다시 40분씩 두 번의 명상을 연달아 했습니다. 눈은 소리 없이 내려 쌓였습니다.
눈구름 사이로 해가 지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저녁 법문 시간이 되었습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데다 명상 장소가 건조해서 스님은 목이 계속 잠겼습니다. 수건에 물을 적셔 건조대 가득 널어놓고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스님은 두 가지 무지의 종류를 설명하고 무의식이 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조건을 알려주었습니다.
“변화가 일어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자각입니다. 지적 무지는 의식을 깨우치는 것이 중요한데,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무지는 스스로 자각을 해야 변화합니다.
‘내가 문제가 있나?’
‘내가 잘 모르네.’
‘이건 나에게 참 손해구나’
이렇게 스스로 알아차려야 변화가 일어납니다. 자각을 못 하면 바깥에서 압력을 아무리 세게 주어도 그때만 변할 뿐이지 압력이 사라지면 원래대로 돌아가버려요.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감옥에 갈 때는 다시는 같은 실수를 안 하겠다고 해도 감옥에서 나오면 같은 잘못을 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당시에는 진짜 반성을 했는데 제약이 없어지면 원래대로 돌아가버리는 거예요. 누가 개과천선을 했다면 사람들은 어떤 수련을 해서, 어디 다녀와서 바뀌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형식일 뿐이에요. 어떤 이유로든 그의 내면에서 자각이 일어나야 변화가 일어납니다.
명상은 깊은 내면에 들어가 자각을 통해 업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과정입니다. 욕망도 다 업식으로부터 일어납니다.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먼저 욕망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 결단인 계율로 욕망이 확대되는 것을 막는 한편 근본적인 치유를 하기 위해서는 마음속 깊은 무의식에서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어제에 이어 오늘은 왜 명상을 하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는지 십이연기에 따른 원리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내가 살면서 겪은 모든 경험은 현재 내 몸과 마음에 모두 내재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업식(業識), 인도어로는 카르마(Karma)라고 합니다. 업식은 형성되어진 것입니다. 이 업식을 빼고 나라고 할 것은 없습니다. 이 업식을 바탕으로 소위 나라고 하는 작용이 일어나게 됩니다.
사람은 여섯 가지 감각 기관(六處, 육처)을 통해 외부와 접촉합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감촉하고, 머리로 생각을 합니다.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이 외부와 접촉을 할 때 어떤 느낌(受, 수)이 일어나요. 쾌하거나 불쾌하거나 담담한 느낌이 일어나고, 그 느낌에 따라 욕망(愛, 애)이 일어납니다.
그 욕망에 따라 우리는 행위(取, 취)를 하게 됩니다. 테라밧다 불교에서는 직접 행한 것만 행위에 포함하지만, 대승불교에서는 마음에서 일으킨 것도 행위를 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직접 물건을 훔친 것만 계율을 어긴 게 아니라 ‘훔치겠다’라고 생각한 것도 계율을 어긴 거라고 봐요. 그래서 신, 구, 의(身, 口, 意) 몸과 말과 마음으로 업을 짓는다고 하는 겁니다. 내가 직접 먹는 것만 과보가 따르는 게 아니라 ‘먹어야지’ 하고 의도하는 것도 여러 번 되풀이하면 업식이 되는 거죠.
일어나는 욕망에 따라 말과 행동을 하면 그 결과(有, 유)가 남습니다. 그러면 이미 가진 업식에 아주 미세하지만 새로운 업식을 더하게 되는 거예요. 그 업식에 의해 또 다음 행동을 하고, 또 새로운 업식이 더해집니다. 그 과정에서 일부는 소멸하고, 일부는 덧붙여지면서 업식이 계속 변화(生老死, 생노사)해가는 거예요. 한 사람의 인생을 짧게 보면 거의 비슷한 것 같지만 길게 보면 조금씩 변화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이렇게 업식의 흐름 속에 있어요. 그래서 과거로부터 형성되어 온 업식에 의해 지금의 내가 결정되고, 지금 내가 하는 행위에 의해 미래의 내가 결정되는 거예요. 그래서 옛말에 ‘전생을 알고 싶은 자, 현생을 보라. 내생을 알고 싶은 자, 역시 현생을 보라.’라는 말이 있는 겁니다.
업식은 식물로 비유하면 일종의 종자와 같습니다. 지금 내 몸과 마음에 배어서 모든 행동을 하게 하는 바탕이라는 거예요. 컴퓨터로 비유하면 프로그램이 깔려 있는 겁니다. 말을 하고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게 만드는 습관이 다 깔려 있는 거예요.
그런데 가만히 있는데 업식이 일어나는 건 아닙니다. 어떠한 자극을 받으면 일어나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고, 몸으로 부딪히고, 머리로 생각하는 여섯 가지 감각 작용에 따라 곧바로 느낌이 일어납니다. 감각과 느낌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뜨거운 물에 손을 집어넣으면 ‘앗, 뜨거워’ 하면서 빼잖아요. 그때 감각은 ‘뜨겁다’입니다. 느낌은 ‘불쾌하다’ 예요. 마음은 ‘싫다’라고 일어납니다. 그래서 순식간에 손을 탁 빼는 행위를 합니다. 추운 날 이불 밑에 손을 넣으면 ‘아, 따뜻해.’라고 하죠. 그때 감각은 ‘따뜻하다’입니다. 따뜻하다는 말속에는 기분이 좋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어요. 그러면 손을 계속 넣고 싶은 욕구가 일어나고 손을 더 넣고 있는 거예요.
사람마다 온도를 느끼는 것도 조금씩 다릅니다. 목욕탕에 갔을 때, 온탕의 온도가 40도라고 합시다. 어떤 사람은 손을 넣어보고 ‘따뜻하다.’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앗, 뜨거워’라고 하죠. 자기의 몸이 어떤 업식에 젖어 있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과거에 쌓인 경험에 따라 업식이 다른 거예요. 절대 온도와 상관없이 내가 손을 넣었을 때 쾌하다고 느끼면 따뜻하다고 하고, 불쾌하다고 느끼면 뜨겁다고 표현합니다. 찬 물도 쾌하다고 느끼면 시원다고 하고, 불쾌하다고 느끼면 차다고 표현해요.
이렇게 과거에 쌓인 업식에 따라 자동으로 느낌이 일어나고, 느낌에 따라 욕구가 일어납니다. 욕구에 따라 행위를 하면 그 행위는 다음 행위를 하는 바탕이 됩니다. 욕망이 일어나서 행위를 하려고 할 때, 그 행위를 하는 게 좋지만 손실이 있다면 멈춰야 하고, 하기 싫지만 하는 게 이익이라면 행해야 합니다. 이때, 지혜가 있다면 손해가 나는 일은 멈추겠지요. 그러면 행위의 확대 재생산을 막아줍니다. 이것만 오래 지켜도 점점 과거에 지은 업식이 약해지면서 인생이 좋은 쪽으로 갑니다. 계율만 잘 지켜도 점점 괴로움이 줄어드는 겁니다. 그래서 테라밧다 불교에서는 계율을 굉장히 중요시해요.
그러나 이미 일어난 욕망을 제어하기란 어렵습니다. 좋으니까 더 하고 싶고 싫으니까 그만하고 싶단 말이에요. 욕망을 이성으로, 계율로 제어하려면 힘이 듭니다. 그래서 욕망으로 번지기 전에 느낌을 알아차리면 욕망으로 이어지는 고리를 끊을 수 있어요.
느낌은 길게 지속되지 않습니다.
‘나는 계속 느낌이 나쁘다.’
이것은 잘못된 표현입니다. 기분이 계속 나쁘다는 건 이미 불만스러운 감정으로 전이가 된 거예요. 느낌은 찰나찰나 일어나고 사라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느낌은 아주 예민해야 느낄 수 있어요. 느낌에 깨어있으면, 다른 사람보다 쾌하고 불쾌한 느낌을 더 잘 느끼지만 그 느낌이 하고 싶다, 하기 싫다는 욕망으로는 번지지 않습니다. 바로 이 느낌에서 욕망으로 이어지는 고리를 끊는 것이 위빠사나 수행에서 선정을 닦는 방법입니다.
명상에서 오직 호흡을 관찰하고 알아차리는 연습을 하는 이유는 감각, 느낌, 마음을 알아차리는 기초가 되기 때문입니다. 호흡도 코끝에서 들어오고 나가는 감각을 알아차리는 거잖아요. 미세한 호흡을 알아차릴 수 있으면 다른 미세한 감각도 알아차릴 수 있게 됩니다. 관심을 귀에 두면 귀에서 미세한 감각을 느낄 수가 있고 입술 부위에 두면 입술에서 일어나는 감각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미세한 감각을 느낄 수 있으면 미세하게 일어나는 느낌도 알아차릴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예를 들면 내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볼 때, 나도 모르게 싫은 감정에 빠지잖아요. 미세한 감각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되면 감정이 커지기 전에 몸에서 약간 열기가 올라오거나 거칠어진 호흡을 탁 감지할 수 있어요. 미세한 감각과 느낌을 감지하고 정신을 딱 차리면 감정으로 확대가 안 되고 바로 멈출 수 있습니다.
그런데 느낌이 이미 감정으로 옮겨 붙은 뒤에 알아차리면 그때는 감정을 억제하는 길 외에 다른 방법이 없어요. 그때는 계율을 지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면 참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요. 그래서 우리가 감각을 관찰하는 연습을 하는 거예요. 감각 관찰이 곧 느낌 관찰로 직결되기 때문이에요. 느낌을 알아차릴 수 있으면 쾌하고 불쾌한 느낌에서 좋고, 싫고의 감정으로 이어지지 않게 됩니다. 느낌은 업식에 의해 자동으로 일어나는 반응일 뿐이라는 본질을 꿰뚫어 아는 거예요. 쾌한 느낌에 현혹되지 않고 멈추면 욕망으로 번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느낌을 놓쳐서 욕망으로 갔다 하더라도 초기에 알아차리면 진정할 수 있습니다. 불이 붙어도 초기에는 바로 끌 수 있는 것과 같아요. 이것이 마음 알아차리기예요.
그런데 감정이 커져버리면 마음을 알아차린다고 제어가 안 돼요. 이 때는 각오하고 결심을 해서 막아야 합니다. 계율로 딱 차단을 하는 거지요. 계율을 억지로 참고 견디는 게 아니라 결국 나에게 이익이라는 것을 알면 스트레스를 덜 받습니다. 계율도 무너져 내렸다면 참회를 해서 다시 둑을 막아야 합니다.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첫째, 감각, 느낌을 알아차려서 욕망으로 번지기 전에 내려놓습니다.
둘째, 느낌을 놓쳤다면 마음을 알아차리고 내려놓습니다.
셋째, 마음도 놓쳤다면 계율을 지켜 과보를 막습니다.
넷째, 계율도 놓쳤다면 참회를 해서 둑을 보완합니다.
이렇게 정진을 해 나가 봅니다. 계율도 지키지 않고 자기 마음도 잘 모르면서 명상만 해서 선정을 닦는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아요.”
두 시간 동안 법문을 하고 마지막으로 스님은 원리보다 연습이 중요함을 강조했습니다. 또 졸음에서 벗어나 미세한 호흡을 알아차린 참가자들에게 한발 더 나아가 감각을 알아차리는 과제도 주었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명상을 통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원리에 대해 설명을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러분에게 중요한 것은 연습이에요. 실전에서 원리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여러분은 그저 꾸준히 연습만 해나가면 됩니다.
호흡이 잘 알아차려지지 않는다고 너무 한탄할 필요는 없어요. 혹 놓치더라도 소득이 많습니다. 호흡을 놓치고 과거 생각에 빠졌더라도 내가 과거에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 알 수 있어요. 미래에 구상을 한다면 내가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또 좋은 아이디어를 얻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소득은 해탈로 가는 길에서 놓쳤을 때 생기는 부산물에 불과합니다. 이것이 목표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가능하면 원래 가야 할 길을 가려고 노력하되 잘 안 되더라도 실망하지 말라는 겁니다. 명상할 때는 포기만 안 하면 다 공덕이 돼요.
내일부터는 이제 미세한 호흡을 알아차려 봅니다. 아직 거친 호흡만 알아차려지는 사람은 호흡만 알아차려도 돼요. 호흡이 거칠다면 지금 용을 쓰고 있는 거예요. 편안하지가 못하고 뭔가 악을 쓰고 있는 겁니다. 미세한 호흡이 알아차려지면 미세한 감각도 알아차려봅니다. 먼저 얼굴 주위에 미세한 감각을 느껴 보는 거예요. 미세한 호흡을 알아차리면 곧 미세한 감각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감각 알아차리기는 앉아서 명상할 때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할 수 있어요. 먹을 때는 미각, 무언가 볼 때는 시각, 무언가 들을 때는 청각이 반응을 하죠. 감각을 알아차리고, 감각에 따르는 쾌, 불쾌의 느낌도 한 번 알아차려 보세요. 감각과 느낌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시원하다 할 때는 쾌함이, 뜨겁다 할 때는 불쾌함이 맞물려 있어요. 좋고 싫은 마음도 수도 없이 일어납니다. 이런 마음 알아차리기를 생활 속에서 한번 해봅니다.
우리는 평소에 많은 자극 속에 살다 보니 끊임없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감각, 느낌, 마음을 잘 모르고 지냅니다. 호흡을 늘 하고 있지만 호흡하는 줄 모르고 지내는 것과 같아요. 감각과 느낌에 무뎌지는 게 수행이 되어가는 게 아니에요. 수행을 할수록 감각과 느낌에 굉장히 예민해집니다. 대신 감정은 무뎌집니다. 여러분은 감각에 무디다 보니 감정이 격하게 올라오는 거예요. 감각이 예민하면 오히려 감정은 무뎌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감정으로 전이를 덜 시키기 때문이지요.
내일은 별 말없이 죽비만 치더라도 꾸준히 연습해봅니다. 내일 저녁에 또 대화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호흡을 알아차리는 연습으로 어떻게 욕망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연습뿐 입니다. 법문을 들은 후 잠시 명상을 하고 오늘 수련을 마쳤습니다.
밖으로 나오니 눈이 쌓인 명상원 위로 달빛이 은은히 내리고 있었습니다. 달빛에 감탄하는 행자와 달리 스님은 사람들이 다칠 것을 염려했습니다.
“내일도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기 때문에 길이 얼면 다칠 수 있겠어요.”
생방송을 마치고 다 함께 눈을 쓸고 미끄러워지기 쉬운 곳마다 염화칼슘을 뿌려두었습니다.
내일은 재심자 온라인 명상수련 4일째 일정이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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