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전에 농사일과 수행법회 법문을 한 후 공동체 법사단과 오후 내내 회의를 했습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공양을 하고, 작업복을 갈아입고 밭으로 나갔습니다. 밖으로 나오니 두북수련원 운동장 위로 파란 가을 하늘이 펼쳐져있었습니다.
스님은 먼저 논 뒤에 떨어진 밤을 주웠습니다.
“늦밤이 아직 많이 떨어지네요.”
10월이 되고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직 알밤 줍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아이쿠, 무를 솎아야 하는데.”
스님은 서둘러 비닐하우스로 돌아왔습니다.
비닐하우스 4동에 들어서자 하루 사이에 키가 자란 갓 떡잎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오늘도 무순을 솎아주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잔뿌리는 자르고 상한 잎은 다듬어 상자에 담았습니다.
싹이 나지 않은 구멍에는 어린 무순을 옮겨 심었습니다.
“무는 옮겨 심으면 잘 못 산다는데, 밑져야 본전이니까….”
옮겨 심고 구멍이 촘촘한 물뿌리개로 물을 듬뿍 주었습니다.
무 한 두둑을 다 솎고 다듬고 나니 9시가 넘었습니다. 10시에 수행법회가 있어 울력을 마쳤습니다.
농사일을 마치고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온 스님은 오전 10시 정각에 생방송 카메라 앞에 앉았습니다.
오늘은 온라인 수행법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은 먼저 두북 수련원에서의 일상을 나누면서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추석 연휴 잘 보내셨습니까? 저는 5일 동안 문경 수련원에서 온라인 명상수련을 잘 끝내고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와 농사일을 다시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작물을 심고 가꾸는 일에 몰두했는데, 가을이 깊어가니까 이제는 수확하는 일이 남았습니다. 벼도 추수해야 하고, 고구마도 캐야 하고, 밤도 주워야 해요. 가을이 결실의 계절이라더니 과연 그러네요. (웃음)
저도 어릴 때 시골에서 자라긴 했지만 지금까지 도시 생활을 더 오래 했습니다. 물론 예전에 주로 생활했던 문경 수련원도 시골이긴 하지만 이렇게 농사짓고 살았던 건 아니에요. 그런데 요즘은 마치 한 사람의 농부가 된 것처럼 이렇게 농사짓고 살아보니까 좋은 면도 있고 어려움도 있습니다. 이 세상살이를 다 아는 것 같아도 시골에 와서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여다보니까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어요. 동네에 소소한 민원도 참 많습니다.
얼마 전에는 어떤 분이 도로의 일부가 자신의 사유지라는 이유로 길을 막고 다니던 차를 못 다니게 해서 주민들이 많이 불편해 했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빨리 해결될 것 같지만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도 해결이 안 되고 있습니다. 타협도 안 되고, 법으로도 해결이 안 되고, 강제집행도 안 돼요. 이런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이런 걸 보고 겪으면서 정토회 회원들은 이 세상에서 참 훌륭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고 사는데, 정토회 회원들은 그런 것을 떠나서 자기 마음을 닦는 수행을 하고, 정토회를 통해 세상을 이롭게 하는 여러 가지 봉사를 하니까요. 남에게서 무엇이든 빼앗아가려는 세상에서 자기 돈을 보시해서 어려운 사람을 돕잖아요. 그래서 저는 요즘 여러분의 소중함을 더욱 깊이 느끼고 있습니다.” (웃음)
오늘부터 2주간 정토회의 모든 정회원들은 ‘정토를 일구는 사람들(약칭 정일사)’이라는 집중 수련에 참여합니다. 그래서 오늘 수행법회는 정일사 수련 입재식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스님은 왜 정토회에서는 정일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지 그 취지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오늘부터 시작해서 2주간은 정일사 정진 기간입니다. 정진이 끝난 뒤 2주간은 회향 수련이라는 나누기 프로그램을 법사님들이 진행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세상에 물드는 것을 방지하고 수행자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예요.
매일 정진하고 법문을 듣더라도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다 보면 조금씩 세상의 물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눈으로 세상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입으로 맛을 보고, 손으로 감촉하고, 머리로 생각하면서 사니까 안개비에 옷이 젖듯 내가 수행자라는 정체성을 일상에서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아요. 어느덧 이름만 수행자일 뿐 그냥 세상 사람과 다름이 없어져 버립니다.
특히 수행공동체에 들어와서 사는 사람들은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고 싶고,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고, 영화관이나 노래방에 가고 싶고, 술도 마시고 싶은데, 이런 것들을 규범상 못 하게 하니까 갑갑해하고, 속박을 받는 것처럼 느끼는 것 같아요. 세상살이가 힘들어서 수행공동체 들어왔다면, 몸은 좀 피곤하더라도 마음이 힘든 것에서는 좀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야 할 텐데, 소소한 일상의 집착을 못 버려서 삶이 피곤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큰 욕심은 버리고 들어왔지만 정작 작은 욕심을 못 버리는 것 같아요. (웃음)
그래서 일 년에 적어도 두 번은 다소 긴 시간을 내서 업무에 약간 차질이 생기더라도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수행자가 되어 이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들어보자.’
이게 정토회의 목표이잖아요. 정토회의 정회원은 자선사업가도 아니고, NGO 활동가도 아니고, 수행자입니다. 먼저 수행자가 되고, 그다음에 수행자로서 세상에 기여하는 거예요. 그냥 앉아서 수행만 하는 게 아닙니다. 수행을 통해 자기 인생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한 사람들이 세상을 위해서 여러 가지 필요한 일을 하자는 거예요. 그런데 세상 속에서 살다 보면 수행의 본분을 자꾸 놓치기 때문에 수행자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유지해 나가려면 일 년에 두 차례씩은 ‘정일사’라는 수련을 하는 겁니다.
제일 좋은 것은 이런 세상 일을 놓아버리고 공동체에 들어와서 사는 거예요. 세상을 안 보고 살면 세상에 물들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정토회가 지향하는 것은 세상 속에서 세상에 물들지 않는 삶을 살아보자는 거예요.
제가 전 세계를 다니면서 세계 곳곳의 불교를 돌아보았는데, 불교가 불교의 정체성을 다 잃어버렸어요. 겉으로만 ‘수행’, ‘불교’ 이렇게 말할 뿐이지, 사는 모습을 보면 승려들이고 사찰이고 할 것 없이 어디든 욕망에 찌든 더러움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 더러움이 세상보다 더 심하다고 할 수도 있을 정도로 모두들 속으로는 돈과 명예, 욕망을 추구하며 살고 있습니다.
돈을 추구하는 세상 속에 살면서도 돈에 물들지 않을 때 그것이 진정한 미래의 대안입니다. 부처님은 왕궁에 사셨지만 그걸 버리고 출가를 하셨잖아요. 잠시 수행할 때만 그렇게 산 것이 아니라 평생을 그렇게 검소하게 살아가셨습니다. 그렇다고 욕망을 추구하는 세상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욕하지도 않으셨어요. 오히려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어려움을 도와주셨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돈에 깊이 물들어 있습니다. 세상이 돈에 물들어 있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어요. 그 속에 살면서도 괴롭지 않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어요? 그러나 그 속에 살면서 다들 괴롭다고 아우성을 치니까 무엇이 진정한 행복인지 자기를 돌아보도록 하자는 겁니다.
지금 한국 사람들은 힘들어서 죽겠다고 야단이지만, 다른 나라에 가서 물어보면 한국은 정말 잘사는 나라예요. 옛날에 우리가 미국을 부러워했지만 정작 미국에 가보면 미국 사람들은 살기 힘들어했던 것과 같습니다. 이런 문제는 GDP가 높아지거나 기술이 좋아진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에요. 이 점을 확연히 꿰뚫어야 여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왕자로서 살아봤기 때문에 부와 권력으로는 인생의 고뇌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연히 알 수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 거기에 미련이 없었던 거예요.
그런 점에서 여러분은 굉장한 사람들이에요. 이런 세상 속에서 대학 공부도 하고 직장도 다니다가 그걸 그만두고 정토회에 와서 수행하고 헌신하고 봉사하니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능력이 없어서 도피 삼아 정토회에 온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능력이 있지만 그 능력을 개인을 위해서 쓰지 않고 세상을 위해서 쓴다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입니다.
정토회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세상 사람들도 자기 삶의 일부를 이런 아름다운 일에 동참하도록 하기 위해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마련해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비록 몸은 재가에 있지만 ‘수행자’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아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이런 재가 수행자의 길이 없었다 해도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기에 재가 수행자의 길을 새로 만들어야 할 형편인데 부처님 당시에도 이미 재가 수행자의 길이 있었습니다. 비록 그것이 중간에 없어지고 재가 수행자들이 일반 종교의 신도가 되어버리긴 했지만요. 이것을 다시 복원하기 위해 정토회에서는 수행자의 길을 강조하는 겁니다.
‘나는 신자가 아니라 수행자이다.’
이렇게 자기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도록 하는 일을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겁니다. 수행자가 추구해야 하는 삶의 목표는 ‘해탈’과 ‘열반’입니다. 비록 세상에서는 직장에 다니거나 가게를 운영하는 등 온갖 일을 하더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법에 귀의해서 자기를 행복하게 하고 세상 사람에게도 유용한 사람이 되자는 거예요. 세상에 피해를 주는 사람이 아니라 좀 도움이 되는 삶을 한번 살아보자는 뜻입니다. 한 명도 좋고 두 명도 좋으니 조금이라도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도록 해보자고 해서 우리가 이렇게 모였습니다.
그런데 세상 속에서 살다 보니까 자꾸 이 목표를 잊어버려요. 법문을 들을 때는 ‘아, 해탈이 목표이지’ 하는데, 돌아서면 다 잊어버리고 세상에 물들어버리기 쉽습니다. 자본주의 속에 살면서 자본주의에 물들지 않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소비주의 속에 살면서 소비주의에 물들지 않고, 거짓말하는 사람 속에 살면서 거짓말하지 않고, 부패와 타락이 있는 속에 살면서 부패하지 않고 타락하지 않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중생은 물드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물들지 않는 존재예요. 우리는 지금 물들지 않는 존재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살다 보면 자꾸 물이 들어요. 그래서 상반기와 하반기에 한 번씩은 정일사에 참여해서 집중 수행을 하는 겁니다. 정일사는 우리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작업입니다. 매일 108배 절을 하고 기도를 하긴 하지만, 이런저런 일을 하다 보면 그냥 세상살이가 되기 쉬워요. 그래서 이번 2주 동안은 하루에 300배씩 절을 하면서 집중 정진을 해봅시다.”
이렇게 정일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유에 대해 충분히 설명한 후 사전에 올라온 질문에 대한 답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총 7개의 질문이 올라왔습니다. 그중 하나는 정토회가 추구하는 일과 수행의 통일이 무엇인지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일을 하다 보면 수행을 놓치고 늘 정신없이 일을 합니다. 정토회는 ‘일과 수행의 통일’을 추구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일과 수행의 통일을 이룰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수행자라면 자기에 대한 알아차림을 유지하는 것을 가장 중요시해야 합니다. 자기가 게으르면 ‘아, 내가 지금 게으르구나’, 자기가 화가 나면 ‘내가 지금 화가 나는구나’, 자기가 지금 괴로우면 ‘지금 내가 괴롭구나’, 이렇게 항상 자기 진단을 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수행자가 첫 번째로 해야 하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더 잘 아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더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은 그 반대예요. 다른 사람은 저 사람이 욕심이 많은지 짜증이 많은지 다 아는데 정작 본인은 몰라요.
도반들과 같이 일을 할 때 겉으로 보기에는 정신없이 일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자기는 딱 자기를 체크하고 있어야 합니다. 몸은 바쁘더라도 마음은 항상 자기 점검을 하고 있어야 합니다. 마음이 흔들리면 ‘내가 지금 흔들리고 있구나’ 이렇게 자각하고 있어야 해요. 혹시 내가 실수해서 그런 흔들림이 바깥으로 노출됐을 때 다른 사람이 문제 제기를 하면 금방 수긍해야 합니다.
‘네, 제가 지금 그런 상태입니다. 노력은 하지만 아직 개선을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어야 하는데, 남이 지적을 하면 도리어 ‘언제 내가 그랬냐! 너는 안 그러냐!’ 이렇게 화를 내고 또 받아치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하면 수행자라고 하기가 어렵죠. (웃음)
수행자라면 일을 할 때 항상 자기에게 깨어있고, 남이 문제 제기를 하면 ‘아, 그래요? 고쳐보겠습니다’ 이렇게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해요.
일을 잘하려고 할수록 다른 사람과 갈등이 생기게 마련이에요. 반면에 일을 대충 하면 갈등이 생길 일이 없어요. 남이 하자면 ‘네, 그럽시다’ 하면 되니까요. 저리 되어도 그만, 이리되어도 그만이니까 갈등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사이좋은 것도 괜찮지만, 수행자는 일을 깔끔하게 하면서도 고집하지 않아야 해요.
일을 깔끔하게 하는 사람은 고집이 굉장히 센 경우가 많습니다. 이게 일 잘하는 사람의 흠이에요. 일을 깔끔하게 하는 대신에 다른 사람과 늘 충돌합니다. 반면에 일이야 되든지 말든지 관심 없고 그저 사람만 좋은 사람도 있어요. 일이 이렇게 되어도 좋고, 저렇게 되어도 좋으니까 주위 사람들과 관계는 좋습니다. 그런데 수행자는 일을 깔끔하게 하되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일이 자기가 원하는 만큼은 안 되더라도 80퍼센트 정도만 절충되면 ‘오케이’ 하는 게 좋아요.
첫째, 남과 싸우고 갈등하면서 100을 할 것인가?
둘째, 다른 사람의 의견도 수용해서 조금 부족하지만 80을 할 것인가?
셋째, 사람 좋다는 소리만 듣고 일은 50 정도만 할 것인가?
이 가운데 선택하는 게 우리 인생이에요. 일을 중심으로 하는 회사는 싸우더라도 100을 달성하는 쪽을 좋아할 겁니다. 그런데 수행공동체인 정토회는 싸워가면서까지 100을 달성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정토회는 수행자들의 모임이지 회사가 아니잖아요. 일을 잘하더라도 조금 양보해서 80 정도를 하는 게 싸우면서 100을 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면서 일도 100을 하면 물론 제일 좋겠죠. 그거야 말할 것도 없어요.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조금 부족하더라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가는 게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사람 좋다는 소리만 듣고 일은 50만 한다면, 일의 능률이 너무 없어서 또 문제가 돼요. 그래서 일을 깔끔하게 하되 80 정도로 만족하면서 화합을 하는 편이 바람직합니다.
그런데 양 극단 중에서 택일하라면 여러분은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어요? 주위 사람과 싸워가면서도 일은 아주 깔끔하게 잘해서 100을 해내는 것과 일을 제대로 못 해서 50만 하지만 주위 사람들과 사이가 좋은 것, 이 두 가지 중에 선택해야 한다면 수행자는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까요?
수행자는 일을 50만 하는 쪽을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일이 아니고 수행이기 때문이에요. 법사 수계의 기준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성실하고 일도 착착 잘하는데 성격이 모가 나고 고집이 세다면, 이 사람은 그냥 일꾼으로서는 적합할지 몰라도 법사가 되기에는 자격이 부족합니다. 이와 반대로 사람은 좋은데 일은 잘 못하는 사람도 법사로서는 문제가 있을 수 있죠. 법사의 역할을 잘 못할 수가 있으니까요. 그래도 굳이 둘 중에 선택하라면 후자는 법사를 해도 괜찮아요. 왜냐하면 정토회는 회사가 아니라 수행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일을 잘하는 것과 수행하는 것 둘 중에서 하나만 선택하라고 하면, 정토회는 일과 수행의 통일을 추구하기 때문에 둘 중에 하나만 선택할 수는 없어요. 그러나 어느 것을 더 우위에 두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수행을 더 우위에 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일과 수행의 통일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두 가지가 같이 가야 합니다.
좀 더 길게 봐야 합니다. 일은 잘하지만 갈등이 심하면, 그 갈등 때문에 길게 보면 일의 효율도 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사실은 일을 잘하기 위해서라도 갈등을 극복해야 하는 거예요. 일에서 좀 손실을 보더라도 정일사를 하는 이유는 이게 장기적으로 일에 더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짧게 계산하면 손실 같지만, 길게 보면 더 도움이 돼요.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갈등이 생길 수 있어요. 잘하려고 하다 보면 의견 차이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대충 하려면 갈등이 생길 것도 없잖아요. 그렇게 갈등이 생길 때 나를 돌아보고, 고집을 내려놓고, 합의점을 찾아나가는 게 수행입니다.”
다음 질문은 정진을 하고 나서 마음 나누기를 할 때 솔직한 마음을 말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음 나누기를 할 때 마음을 솔직히 말하면 왠지 수행이 안 된 느낌이라서 수행이 된 것처럼 포장해서 얘기하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마음 나누기가 부담스럽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나누기를 해야 할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자기 치부를 다 드러내고 싶은 사람이 이 세상에 누가 있겠어요? 있다면 부처님 정도겠지만, 부처님은 내놓을 치부조차 없다고 하잖아요. 누구나 다 숨기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 사실을 부정하는 건 아니에요. 그러나 가능하다면 솔직하게 얘기하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 자기 스트레스가 해소돼요. 다른 사람에게 좋아서가 아니라 자기에게 좋기 때문에 솔직하게 얘기하라는 겁니다. 불만이 있는데 그걸 움켜쥐고 있으면 나한테 스트레스가 돼요.
그렇다고 일상적으로 불만을 토로하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러면 사람 관계에 갈등이 심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음 나누기를 할 때는 그 불만을 가볍게 얘기해야 합니다. 마음 나누기를 할 때 불만을 얘기하고 받아들이는 방법은 일반적인 불만 제기와는 조금 달라요.
‘너 때문에 내가 죽겠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책임이 상대편에 있다는 뜻이에요. 그건 수행자의 태도가 아니에요. 그냥 세상 사람에 불과합니다.
‘저 사람의 행동을 봤을 때 제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을 탓하는 건 아니에요.
‘요새 비가 계속 와서 제 마음이 힘듭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비 때문’이라고 하는 것 같지만, 비가 사람을 괴롭히려고 내리는 것은 아니잖아요. 비를 보고 자기가 괴로운 거죠. 마찬가지로 상대를 보고 내가 괴로운 겁니다. 즉 괴로움은 내 문제라는 뜻이에요.
이렇게 솔직하게 얘기하되 괴로운 이유는 내 문제라는 점을 전제로 하고 얘기해야 합니다. 솔직하게 얘기하라고 해서 남을 욕하고 시비하면 마음 나누기가 아니에요. 마음 나누기는 자기의 솔직한 마음을 내어놓되, 이것이 나의 문제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내어놓는 것입니다.
물론 내 입장에서 보면 ‘너 때문에 내가 힘들다’ 이게 솔직한 속마음이자 현재 사실이에요. 그러나 그렇게 내놓으면 상대의 기분이 나빠집니다. 마음 나누기를 하다가 싸우게 돼요. 나는 저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그 순간 화가 났지만, 수행자라면 자기에 대한 알아차림이 먼저 있어야 합니다. 화가 난 것은 내 문제이니까요.
그러나 저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보면 내 마음이 불편하다는 것은 솔직하게 내어놓아야 합니다. 안 그러면 마음 나누기를 굳이 할 필요가 없잖아요. 이런 건 솔직하게 내어놓아야 해소가 됩니다. 솔직하게 내어놓고 대화를 나누다 보면, 내 얘기를 듣고 상대편도 ‘아, 저의 그런 말이 당신을 불편하게 했군요. 저도 앞으로 유의하겠습니다’ 이렇게 받아들일 수가 있는 거예요. 그래야 상대편도 개선이 되죠. 또 상대편이 개선되는 것과 관계없이 자기를 돌아볼 수 있게 됩니다. 나 혼자서는 원인을 찾기 어렵지만, 도반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좀 더 수월하게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내가 요새 일에 너무 집착을 했구나. 그러다 보니 자꾸 짜증을 냈구나.’
우리가 수행문을 늘 읽지만 현실에서는 수행문대로 잘 안 되잖아요. 그게 되면 무엇 때문에 매일 읽겠어요? 잘 안 되니까 수행문을 매일 읽고 비춰보는 겁니다.”
여기까지 답변을 한 후 법문을 마쳤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법문이 끝난 후 곧바로 300배 정진을 시작했습니다.
300배를 마친 후에는 모둠별로 마음 나누기를 하고, 각자 자신의 수행과제를 하나씩 정했습니다. 매일 300배 정진을 하면서 든 소감은 모둠별 소통방에서 서로 공유하기로 하고 정일사 입재식을 모두 마쳤습니다.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 1시 30분부터 공동체 법사단회의를 시작했습니다. 한가위 온라인 명상수련을 지나고 첫 회의라, 명상수련 평가와 각종 현안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먼저 당장 결론을 내려야 하는 현안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논의해야 하는 현안들은 무엇이 있어요?”
온라인 불교대학 학생들을 위한 경주 남산 순례 온라인 진행 방안, 깨달음의 장 시작 여부, 포살 법회 운영 방안, 가을에 농작물 수확 일정, 공적인 업무로 수행법회를 못 듣는 사람들의 경우 법회 출석 인정 여부 등 다양한 현안들이 안건으로 올라왔고, 하나씩 토론을 진행했습니다.
이어서 지난주에 진행된 한가위 온라인 명상수련에 대해 평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법사님들은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온라인 명상수련에 참가해 본 소감을 이야기하며 개선점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했습니다.
“이번에는 불교 용어나 교리, 경전에 대한 설명을 일절 하지 않고, 체험을 중심에 두고 법문을 해주셔서 더욱 좋았습니다.”
“명상수련 초심자와 유경험자를 나누어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좋겠어요.”
“공양 후 휴식 시간이 길게 주어졌는데, 이때 알아차리기를 할 수 있는 과제를 구체적으로 주면 좋을 것 같아요.”
“휴식 시간이 길어서 초심자들은 명상에 대해 거부반응이 많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감각, 느낌, 마음을 어떻게 알아차리고, 그 원리가 무엇인지 설명한 법문이 명확해서 좋았습니다.”
스님은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메모했습니다.
오늘 평가한 내용을 잘 반영해서 연말에도 온라인 명상수련을 진행하기로 하고, 이후에는 정토대전 편찬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했습니다.
경전 모음집을 제작하는 정토 성전 편찬팀은 부처님의 일생을 기록한 경전을 어떻게 편집할 것인지 초안을 만들어 왔습니다. 헷갈리는 부분은 스님에게 질문을 하고, 조사가 더 필요한 부분은 더 조사하기로 하고 회의를 마쳤습니다.
“벌써 6시가 넘었네요. 오늘은 여기까지 논의합시다.”
회의를 마친 후 스님은 원고 교정과 여러 업무들을 처리했고, 공동체 법사단은 서울과 봉화에 있는 법사님들과 온라인으로 화상회의를 했습니다.
내일은 아침에 농사일을 한 후 하루 종일 정토대전 편찬 논의를 하고, 저녁에는 행복학교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온라인 즉문즉설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55
전체 댓글 보기스님의하루 최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