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아침에 농사일을 한 후 오전에 개원 기념법회 추진단과 화상회의를 하고, 오후에는 공동체 법사단과 정토대전 편찬에 대해 회의하고, 저녁에는 제3기 온라인 행복학교 마음편 이수 특강을 생방송으로 진행했습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스님은 행자들보다 먼저 논밭 주변에 떨어진 밤을 주웠습니다. 한 시간 정도 밤을 줍고 산 윗밭으로 갔습니다. 윗밭으로 오르는 길에도 밤송이가 많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행자들이 도착하자 밤 줍기를 멈추고 산 윗밭으로 올라갔습니다. 어제 미리 고구마순을 걷어두어서 바로 고구마를 캤습니다. 고구마가 얼마나 컸을지 기대하며 삼지창으로 땅을 뒤엎는데 땅이 시멘트처럼 딱딱했습니다.
호미로 살살 고구마를 찾아보았습니다. 딱딱한 땅속에 용케 고구마가 자라있었습니다.
“여기서 자란 것만 해도 장하네.”
삼지창으로 땅을 뒤엎고, 호미로 고구마를 캐는 역할을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삼지창으로 땅을 뒤엎었습니다.
“이게 제일 크다!”
땅이 딱딱한 데다 고구마보다 큰 돌들도 계속 나왔습니다.
고구마를 평평한 땅에 소물게 심어서 고구마를 피해 땅을 뒤엎는 일도 쉽지 않았습니다.
“아이고.”
삼지창에 고구마가 푹 찔려 나오기도 했습니다. 스님은 5일간 단식을 하고 죽으로 보식을 하고 있습니다. 계속 땅을 뒤엎던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아이고, 이거 죽 먹고는 못하겠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두둑이 끝날 때까지 삼지창을 놓지 않았습니다.
뒤돌아보니 그래도 꽤 많은 고구마가 쌓여있었습니다.
10시에 공동체 법사단과 회의가 있기 때문에 스님은 먼저 일을 마쳤습니다. 행자들은 한 두둑을 더 캐고 고구마를 가지고 내려왔습니다.
농사일을 마치고 와서 오전 10시부터는 개원 기념법회 추진단과 화상회의를 시작했습니다.
개원 기념법회 추진단은 내년 봄에 행사를 원만히 진행하기 위해 지금 우선적으로 결정되어야 할 사항들을 안건으로 준비해서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안건별로 하나씩 질문하면 스님은 그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법문 생방송 후 다시 보기 할 수 있는 시간을 어느 정도 허용할 것인지, 불교대학과 경전대학 외에 사회대학을 새로 신설할 것인지, 홍보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 다양한 안건에 대해 토론했습니다.
여러 가지 쟁점들에 대해 경청한 후 마지막으로 스님은 이번 개원 기념법회의 취지에 대해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내년 3월부터 6월까지 100일 동안 개원 기념법회를 하는 취지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정토회가 1차 만일결사를 마무리하면서 30년 전에 처음 출발할 때 세운 목표를 달성해 보자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이번 개원 기념법회에 최대한 많은 대중을 참석시키자는 거예요. 둘째, 미래 30년을 대비하기 위한 콘텐츠를 확보하자는 것입니다. 1차 만일결사 기간 동안 사용한 법문 영상들이 대부분 10년 내지 20년 전에 촬영한 것들이기 때문에 새로 촬영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 둘 중에 어느 목표에 더 비중을 둘 것인지에 대해 법사단 내부에서도 논쟁이 많았습니다. 콘텐츠 개발에 초점을 두는 사람들은 대중이 많이 참여하느냐 보다는 어떤 콘텐츠를 제작할 것인지를 더 중요시하는 것이고, 1차 만일결사를 잘 마무리 짓는 것에 초점을 두는 사람들은 일단 기존의 불교대학과 경전반의 운영 틀을 유지해야 많은 대중이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 두 가지 의견이 팽팽히 맞서서 결국 두 가지 의견을 모두 수용하는 것으로 법사단에서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도 둘 중에 어느 것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1차 만일결사를 잘 마무리하는 것에 더 비중을 두었다고 보시면 돼요. 왜냐하면 콘텐츠는 나중에라도 필요하면 부분적으로 보완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대중을 많이 참여시키는 문제도 100일 개원 기념법회가 끝난 후에 영상을 정교하게 편집해서 그걸 갖고 다시 많은 대중을 참여시켜도 되는 문제예요. 그렇게 해서 양쪽을 모두 수용하는 쪽으로 추진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화상회의를 마치고, 오후 1시 30분부터는 공동체 법사단과 정토대전 편찬에 대해 회의했습니다.
오늘도 어제에 이어서 정토대전 중 제1권에 해당하는 경전 모음집에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지에 대해 집중적인 논의를 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만들고자 하는 정토성전은 경전 모음집입니다. 법륜스님이 이야기하는 부처님의 일생이 아니에요. 그래서 부처님의 일생에 대한 각각의 경전 속 근거가 모두 제시되어야 해요.”
법사님들은 부처님의 일생이 기록된 여러 경전들을 발췌하고 조사한 결과를 하나씩 발표했습니다. 스님은 법사님들의 질문에 대해 하나씩 답변하며 피드백을 해주었습니다.
똑같은 부처님의 일생도 여러 경전들 사이에 차이가 많이 보였습니다. 무엇이 맞는 것인지 설왕설래가 있자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종교 성전 중에 불경만큼 정확한 게 없거든요. 성경은 예수님이 죽고 나서 한참이 지난 후에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를 적은 기록이에요. 마가가 들은 이야기가 마가복음, 누가가 들은 이야기가 누가복음, 요한이 들은 이야기가 요한복음이거든요. 이에 비해 불경은 부처님 생전에 직접 그 설법을 들은 사람들이, 그것도 깨달음을 증득한 사람 500명이 모여서 결집했기 때문에 정확도가 굉장히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일부 오류가 있잖아요. 그러니 오류가 일부 있다고 해서 위서라고 주장해서는 안 돼요. 그럼 다른 성전들은 말할 것도 없으니까요.”
부처님의 일생에 대해 전반적으로 검토를 한 후 내일은 그동안 경전을 조사하면서 들었던 의문에 대해 질의응답을 하기로 하고 오후 5시 30분에 정토대전 편찬 논의를 마쳤습니다.
“밤 주우려고 일부러 해 지기 전에 회의를 일찍 마쳤어요. 밤이 깔려있는데 아침에 시간이 없어서 다 못 주웠거든요.”(모두 웃음)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빠른 걸음으로 산 윗밭으로 갔습니다. 이미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구름이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습니다.
30분 동안 빠르게 밤을 주웠습니다. 밤알이 굵어서 30분 만에 한 보따리가 찼습니다. 밭을 내려오니 어둠이 내린 마을에 가로등이 켜져 있었습니다.
밤 줍기를 마치고 다시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온 스님은 저녁 7시 30분에 생방송 카메라 앞에 앉았습니다.
오늘은 제3기 온라인 행복학교 참가자 중 마음편 과정을 이수한 사람들이 그동안 수업을 들으며 들었던 의문과 일상의 고민을 스님께 묻는 시간입니다. 생방송에는 3기 마음편 참가자뿐만 아니라 행복학교 참가자 누구나 시청할 수 있게 했습니다.
900여 명이 접속한 가운데 스님은 책상 앞에 놓인 꽃을 소개하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이 꽃 예쁘죠? 제가 가을에 제일 좋아하는 꽃입니다. 제가 어릴 때 시골에서는 들에서 피는 꼿이라고 해서 ‘들국화’라고 불렀는데, 표준어로는 꽃 이름이 ‘쑥부쟁이’인가 봐요. 가을 들녘에 가장 많이 피는 연보라색 꽃입니다. 꽃이 아주 깔끔하게 생겼죠. (웃음)
제가 살고 있는 이곳 두북 수련원은 주위가 황금 들판으로 변해서 누렇고, 산기슭에 가면 알밤이 많이 떨어져 있습니다. 저도 오늘 새벽 6시 반에 나가서 한 시간 동안 밤을 한 자루 주워 왔어요, 저녁에도 회의를 마치고 잠시 나가서 5킬로그램이나 주워왔습니다. 아침에는 고구마도 캤습니다. 역시 가을은 수확의 계절인 것 같아요. 이런 좋은 가을 저녁에 여러분들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어서 행복학교 마음편 과정을 이수한 것에 대해 축하하며 다음에는 무엇을 배우는지에 대해 안내했습니다.
“행복학교 ‘마음편’ 과정을 잘 마치셨어요? 마음편에서는 ‘어떤 상황에서든 내가 행복하려면 마음을 어떻게 가져야 되느냐’ 하는 주제로 공부를 했습니다. 마음편 과정을 잘 마친 것을 축하드립니다. (웃음)
다음에 배우게 되는 과정은 ‘관계편’입니다. 마음편은 주로 ‘내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하는 것이 주제라면, 관계편은 나와 타인, 나와 세상, 나와 사회 등의 관계에서 ‘사회적인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것이 주제입니다.
개인의 문제로 인해 머리가 아픈 경우도 많지만, 요즘은 사회 문제 때문에 머리가 아픈 것도 있죠? 남북관계도 그렇고, 여당과 야당이 싸우는 것도 그렇고, 온갖 일로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이런 것을 어떻게 올바르게 바라봐야 되는지 공부하는 것이 관계편 과정입니다.
아무리 상대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되어도 상대에게 물어보면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이쪽 사람들에게 보면 도저히 말이 안 되는 것이 저쪽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너무나 정당한 것이 되는 것이 세상사입니다. 이런 것들을 어떻게 올바르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것도 인생의 고뇌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여는 이야기를 한 후 질문을 받았습니다. 7명이 화상으로 연결되어 스님에게 질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중 한 명은 불합리한 점을 개선하려고 하면 저항이 크니까 스트레스를 자꾸 받게 되는데 어떻게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저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직장인입니다. 평소에 사회의 불합리한 문제점에 대해 유독 집중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불합리하다고 느끼는 것이 있으면 해결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서 목소리를 높입니다. 그래야 변화가 일어나니까요. 최근에는 환경 문제에 관심이 생겼는데,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가 너무 암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주류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가끔은 저의 몸을 상하게 할 정도로 커서 힘듭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보지 않고 개인의 행복만을 추구하고 살거나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 사회문제를 회피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도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지 사회의 발전과는 거리가 멀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딜레마에 빠질 때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네. 제가 묻는 말에 질문자가 한 번 대답해 봐요. 비가 굉장히 많이 와서 둑이 넘치고 농경지가 물에 잠기고 농작물이 휩쓸려 갔다고 합시다. 그럴 때 괴로워하고 화를 내고 하늘을 욕 한다고 이 문제가 해결이 될까요?”
“아니오.”
“가뭄이 엄청나게 들어서 논밭에 작물이 다 말랐다고 합시다. 그럴 때 하늘을 욕하고 화를 내고 괴로워한다고 이 문제가 해결이 될까요?”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뭔가 우리가 행동하면 변화시킬 수 있는 점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세상이 자본주의 논리에 지배당하고 있어서 행동하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지배 계층은 환경 문제에 관심이 없잖아요. 우리가 노력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데, 그러지 못하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그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 우리가 이렇게 대화를 하는 거예요. 홍수가 크게 져서 둑이 무너지면 화를 내거나 괴로워하거나 울어야 될까요? 아니면 다음에는 홍수가 나도 아무 문제가 없도록 어떤 행동을 해야 될까요?”
“홍수가 나지 않도록 제가 직접 고치거나, 사람들을 모아서 고쳐야죠.”
“우선 둑이 넘칠 것 같으면 둑을 더 높이 쌓아야 되겠죠. 그런데 둑을 더 높이 쌓았는데도 물이 넘쳐서 집이 떠내려간다면, 나도 집하고 같이 떠내려가야 될까요? 아니면 집이 아깝지만 일단 집을 버리고 몸부터 피해야 될까요?”
“일단 피해야 될 것 같아요.”
“다음에는 둑을 더 높이 쌓아야 되겠죠. 그것도 부족하면 댐을 만들어야 되겠죠. 만약에 가뭄이 든다면, 지하수를 파서 물을 공급하고, 그래도 더 가물어서 지하수마저 고갈되었다면 그 해 농사를 포기해야 되겠죠. 그러나 이듬해에는 댐을 막아서 물을 저장하고 지하수를 더 깊이 파서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울고 불고 화내고 스트레스받는다고 해서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사회의 불합리한 면을 봤을 때도 그걸 보고 내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만 괴롭지 문제 해결에는 아무 도움이 안 돼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연구를 하고 대응을 해야 됩니다.
연구를 하고 대응을 해도 결과는 원하는 대로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습니다. 홍수에 대비해서 미리 둑을 높이 쌓아도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수해를 입을 수가 있고, 가뭄을 대비해서 지하수를 팠지만 가뭄이 너무 심해서 지하수마저 고갈되어 버릴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괴로워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됩니다. 올해 농사는 포기하고, 내년을 다시 준비해야 합니다.
그런 것처럼 지구환경의 오염이든, 민주주의의 훼손이든, 인종차별이나 성차별, 계급 차별의 문제이든, 그걸 보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만 괴로운 겁니다. 울고불고 화내면 나만 괴롭지 문제 해결에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이럴 때 괴로워하지 않는 것이 수행입니다.
그럼 괴로워하지 않고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느냐? 그건 아닙니다. 괴롭고 화가 나면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괴롭지 않고 화가 안 나면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안 하는 것이 보통 사람입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괴롭지 않으면서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하나라도 해결할 수 있는지 연구하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내가 노력해봐야 지배 계층은 환경 문제에 관심이 없으니까 해결하기가 어렵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공짜로 먹겠다는 심보입니다. 내가 책임을 지는 자세가 아니고 남을 탓하고 있는 겁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 나무를 심겠다’
이런 말이 있잖아요. 사람들이 환경오염을 시키더라도 나 하나라도 합성세제를 적게 쓰고, 휴지를 적게 쓰고, 플라스틱을 적게 쓴다면 그만큼 개선이 되는 겁니다. 지구가 망하더라도 그만큼 망하는 속도가 늦어지겠죠. 이 운동을 이웃에 확산시키는 만큼 또 좋아지겠죠.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싶으면 정부의 정책을 바꾸는 운동을 해야 되겠죠. 인터넷으로 매일 댓글을 달거나, 정부에 항의 편지를 쓰거나, 인터넷 상에서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서 항의를 하거나,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화내고 짜증 내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정말로 변화를 원한다면 노력을 해야 됩니다. 그런데 노력을 한다고 해서 반드시 100퍼센트 성공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노력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고, 못 할 수도 있습니다. 해결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해서 아무런 노력을 안 한다면 아무런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서 한다’
이렇게 관점을 가지면, 스트레스를 안 받고도 세상을 위해서 얼마든지 변화를 위한 노력을 해나갈 수 있습니다.
저는 평화 운동, 환경 운동, 구호 활동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는데, 여러분이 보기에는 ‘스님이 무슨 일을 이렇게 많이 하냐’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스님이 주로 하는 일은 여러분이 스트레스를 안 받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수행을 가르치는 것이지만, 환경 운동,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 북한동포 돕기 운동, 한반도 평화 운동, 제3세계 구호활동, 로힝야 난민 돕기 등 사회 변화를 위해서도 많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질문자도 이것이 우리 사회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으면, 화내고 짜증 내는 대신 그 시간에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돼요.
그런데 실제로 행동하는 사람들은 태극기 부대처럼 주로 극단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태극기 부대를 한번 보세요. 열성적으로 모여서 집회를 하잖아요. 아주 진보적인 사람들도 열심히 댓글을 달고 행동을 합니다. 그런데 질문자처럼 환경 운동이나 평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열심히 안 하잖아요.
환경 위기는 정말 심각한 상황입니다. 지구를 살리기 위해서는 태극기 부대보다 더 열심히 죽기 살기로 댓글을 달고 정부에 청원을 하고 집회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어떤 변화가 올 수 있어요. 그런데 정말로 해결해야 하는 환경 문제나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는 사람들이 그렇게 열성적으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근본적인 사회변화를 가져오기 위해서 환경 운동, 평화 운동, 인권 운동을 조금씩 확대해 나가야 합니다. 꼭 화가 나고 스트레스를 받아야 이런 운동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마음은 편안하게 가지면서 행동은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어야 나도 좋고 세상도 좋습니다. 화를 내서 하는 운동은 세상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자기 인생이 괴롭습니다. 내 마음만 편하자고 세상을 외면하면, 나는 편할지 몰라도 세상이 혼란스러워집니다. 세상이 혼란스러워지면 그 속에 사는 나도 결국은 피해를 입게 됩니다. 환경이 오염되면 결국 나도 피해를 입게 되고, 전쟁이 나면 결국 나도 피해를 입게 돼요. 그 피해가 지금 당장 안 나타날 뿐이죠.
정의감이 있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정의감으로 인해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꾸준히 하기 힘듭니다. 화가 나면 바짝 열심히 했다가 안 되면 포기해버려요. ‘나 혼자 한다고 해결이 될까, 나도 모르겠다’ 이렇게 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스트레스를 안 받고 꾸준히 하는 사람은 같이 운동하는 사람들이 다 그만두어도 혼자서 이 운동을 계속해나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수행이 필요합니다. 사회 운동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화를 내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중간에 그만두고 변절하는 일이 생기는 겁니다. 질문자도 처음에는 성질 꽤나 내면서 열심히 하다가 중간에 그만둘 사람 같아요. (웃음)
그러니 마음공부를 해서 내가 행복한 가운데 환경 운동을 지속적으로 해나가야 합니다. 인상 쓰지 말고 웃으면서 해야 돼요. 환경을 오염시키는 사람들에게 ‘왜 오염시키냐!’ 하고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아이고, 그렇게 환경을 더럽히면 자기도 나중에 더러워져요. 깨끗이 합시다.’
이렇게 할 수 있어야 환경 운동을 오래 할 수 있어요.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둑을 막는 일도 스트레스받지 않고 재미있게 해야 무너지면 또 막고 무너지면 또 막을 수 있습니다. 힘들어 하면서 둑을 쌓으면, 둑이 무너져버렸을 때 ‘에이, 해봐야 도움도 안 되더라. 이제 안 한다. 막아봤자 또 터질 거 해서 뭐하나’ 이렇게 됩니다. 그런데 즐겁게 둑을 쌓는 사람은 올해 둑이 터져도 또 막고, 내년에 둑이 터져도 또 막고, 이렇게 꾸준히 합니다. 그래야 어떤 홍수가 와도 무너지지 않는 튼튼한 둑을 쌓을 수 있는 거예요.”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두 마치고 나서 스님은 질문자들에게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저하고 대화하면서 어땠는지 짧게 소감을 한 번 얘기해봐요.” (웃음)
사회의 불합리한 점을 고치고 싶다고 질문했던 여성분도 웃으며 소감을 말했습니다.
“꾸준함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행복학교를 통해 내가 행복해지는 연습을 좀 했었거든요. 오늘 스님 말씀을 들으면서도 제가 할 수 있는 것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추면서 조금씩 사회를 바꿔나가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그런 일을 즐겁게 해야 됩니다. 혁명도 웃으면서 즐겁게 해야 하고, 독립운동도 웃으면서 즐겁게 해야 돼요. 내일 죽더라도요.” (웃음)
질문자의 환한 웃음 속에 모니터 속 다른 질문자들의 얼굴도 함께 밝아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사회적 정의감을 갖되 웃으면서 행동하자고 다시 한번 강조하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행복학교 마음편을 마치고 관계편에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좀 더 정의롭고 평화롭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이것이 관계편에서 공부하는 내용입니다. 잘 공부하셔서 나 개인도 행복해지고, 우리가 사는 사회도 정의롭게 만드는 민주시민이 되시기 바랍니다.
약간 미친 사람처럼 자기 혼자 행복한 것은 좀 정신이 없는 사람이에요. 마약 투여한 사람처럼 그렇게 행복하면 안 되고 사회적 정의감을 가져야 됩니다. 그렇다고 방금 질문자처럼 신경질 내면서 사회적 정의를 주장하면 안 되고, 웃으면서 사회적 정의를 실현해 나가야 해요.
운동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지속성이 있어야 합니다. 지속적으로 오래 하려면 즐거워야 합니다. 괴로운 일을 어떻게 오래 하겠어요. 힘이 들면 바짝 하고 그만두게 돼요. 그러니 아무리 가는 길이 힘들어도 미소 지으면서 가는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생방송이 끝나자 행복학교 참가자들은 모둠별로 다시 화상회의 방에 접속해서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스님은 농사팀 행자님들과 내일 일정을 공유한 후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 내내 두북 공동체 모든 대중이 다 함께 고구마 캐는 일을 할 예정입니다. 오후에는 공동체 법사단과 정토대전 편찬회의를 하고, 저녁에는 금요 정기법회를 생방송합니다.
▼법륜 스님과 함께 하는 온라인 행복학교에 초대합니다. 지금 신청하세요. 아래 배너 클릭! (신청 마감 : 10월11일)
전체댓글 50
전체 댓글 보기스님의하루 최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