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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행자대학원 졸업을 앞둔 행자님들과 함께 농사일을 한 후 수행생활 중 생겨났던 어려움에 대해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침 일찍 밭에서 상추와 호박을 따는 일을 하며 오늘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스님이 방금 밭에서 따온 상추와 호박은 곧바로 아침상에 올려졌습니다.
▲ 스님이 가꾼 호박으로 만든 반찬
채소를 밭에서 직접 재배해서 먹는 기쁨과 보람은 시장에서 사먹는 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을 겁니다. 거기에 들어간 노고를 알기 때문에 음식을 남기는 일도 절대 없고요.
아침식사 후에는 졸업 수련의 일환으로 5일째 스님과 동행을 하고 있는 행자대학원 행자님들과 함께 농사일을 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오늘 해야할 일에 대해 설명하자 행자님들은 일사분란하게 역할 분담을 한 후 곧바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 일나누기
먼저 감자를 수확하는 일을 했습니다. 지난 3월 북한에 통일 씨감자 10만 개를 보내려고 준비했는데, 남북 갈등이 전쟁 위협으로까지 치닫게 되면서 계획했던 통일 씨감자 보내기 사업을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오늘 지구가 망하더라도 한 그루 나무를 심어야지”라고 하면서 “나부터 밭에서 실험 재배를 해봐야겠다”며 감자를 심었습니다.
감자를 심은지 3개월, 드디어 아주 일부이지만 첫 수확을 하게 된 것입니다. 잎과 줄기 부분을 걷어내고 호미로 땅을 파니 흙 속에 묻혀 있던 감자알이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알이 굵은 것도 있고, 작은 것도 있었습니다.
▲ 통일 씨감자를 수확하고 있는 스님
알이 굵은 것은 대야에 따로 모아서 철수세미로 깨끗이 씻어 점심식사 때 삶아낼 수 있게 했습니다. 알이 작은 것은 다음에 다시 심을 수 있게 통에 담아 두었습니다. 이 감자는 씨감자이기 때문에 다시 감자를 증식할 수가 있습니다.
감자를 캐낸 빈 자리에는 화분에서 키우고 있던 호박들을 모두 옮겨 심었습니다. 삽으로 땅을 파고 그 위에 화분 모종을 옮긴 위에 다시 기름진 흙을 부었습니다.
▲ 씨감자를 캐낸 빈 자리에 호박을 심는 모습
스님의 빠른 손놀림에 맞추어 행자님들의 동작도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이 “화분” 하고 말하면 화분이 바로 전달이 되고, 스님이 “흙” 하면 흙이 가득 담긴 양동이가 바로 전달이 되었습니다.
▲ 새로 만든 밭고랑
옮겨 심을 공간이 부족해지자 마당을 침범해서 밭을 조금 더 만들기로 했습니다. 흙을 가져다 붓고, 화분 모종을 옮기고, 다시 기름진 흙 붓기를 반복하자 금새 밭고랑 하나가 새로 만들어졌습니다. 밭고랑 주위에는 넓적한 돌로 테두리를 만들어서 흙이 쓸려내려가지 않게 했습니다.
▲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는 호박
여러 명이 합심하니 순식간에 많은 모종을 모두 옮겨심을 수 있었습니다. 옮겨 심기를 마치자 스님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아이고, 근심거리 하나 덜었다. 옮겨 심어야 하는데 계속 시간이 안 났거든.” 하고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호박 줄기가 길게 자란 것들이 몇몇 보였습니다. 호박 줄기가 마당으로 계속 뻗어나가면 사람들이 자꾸 밟아서 죽게 되니까 길게 자란 줄기들은 대나무 막대 위로 자라도록 줄기의 부분 부분을 끈으로 묶었습니다.
호박을 심은 밭고랑이 그럴 듯 하게 완성되자 수도꼭지에 호수를 연결해 물을 듬뿍 주었습니다. 햇살이 강렬하게 내리쬐는 가운데 물이 흠뻑 쏟아지자 ‘쏴아’ 하고 물을 빨아들이는 소리가 났는데, 흡사 호박들이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텃밭 주위와 마당 곳곳에 잡초가 많았습니다. 행자님들은 곳곳에 흩어져서 쭈구리고 앉아 잡초를 뽑았습니다.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스님 혼자서 하루 종일 해도 다하지 못할 일들이 금방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 잡초를 뽑고 있는 행자님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해서 일하다 보니 어느새 점심 시간이 되었습니다. 점심상에는 아침에 캔 감자들이 포실포실하게 삶아져서 나왔습니다. 특히 스님은 행자님들을 위해 손수 감자를 씻어주었습니다.
▲ 삶은 감자
감자는 뜨거울 때 먹어야 제 맛이죠. 감자를 포크로 콕 찔러서 반으로 가르니 속에서 분이 생기면서 김이 모락모락 나와 절로 군침이 생겼습니다. 그냥 먹어도 담백했는데, 입맛에 따라 설탕이나 소금을 찍어 먹으니 더욱 맛있었습니다. 호호 불어가며 먹으니 온 몸에 후끈하니 땀이 났습니다.
이렇게 농사일을 모두 마친 후 오후에는 각자 수행생활을 하면서 궁금한 점에 대해 스님에게 묻고 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행자님들은 8월이 되면 지난 3년 동안 진행된 행자대학원 9기 과정을 모두 마치게 됩니다. 오늘 스님과의 대화 시간은 졸업을 앞두고 지난 3년을 다시 돌아보고 각자 앞으로의 수행 과제를 더욱 분명히 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스님이 법당에 들어서자 행자님들은 삼배로 스님에게 인사를 올렸습니다. 스님은 “궁금한 점이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먼저 말해 보세요.”라며 곧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
7명에게 질문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 중에서 마지막으로 질문한 행자님은 행자대학원 졸업 이후 정토회에 계속 남아 있을지 고심했지만 지금은 밖에 나가서 연애를 해보기로 마음을 정했다며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솔직한 질문에 웃음이 터져나왔고, 스님은 선택에 따른 책임을 강조하며 지혜로운 답변을 들려주었습니다.
“저는 정토회에서 3년 동안 살아보면서 정토회의 사상과 이념이 무척 좋았고, 이곳에서 일해보고 싶은 마음도 많이 들었어요. 처음 행자대학원에 입재할 때는 부모님의 반대가 심해서 마음이 흔들렸어요. 그것을 극복하고 정토회에 들어왔는데, 이곳에서 다시 3년을 지내고 나니 헌신적으로 가르침을 주신 스님과 법사님에 대해 애착이 생겨서 다시 마음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애를 꼭 해보고 싶어요. 그래서 행자대학원을 마치면 밖에 나와서 연애를 하면서 살아보기로 마음을 먹은 상태입니다. 어떻게 수행해야 할까요?”
“정토회에서는 한번 출가하면 영원히 출가해서 살아야 한다고 하지 않잖아요. 백일출가를 해 보고 출가자의 삶이 낫다 싶으면 행자대학원 과정인 3년 출가를 해 보고, 계속 있고 싶으면 있고, 나가고 싶으면 나가고, 다시 들어오고 싶으면 다시 들어와도 됩니다. 그건 자유롭게 생각하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여기 있으면 좋을까? 나가면 좋을까?’ 하는 것 때문에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사실 누구나 젊은 시절에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싶어요.
그런데 연애라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 봐야 해요. 연애를 하고 싶다고 할 때 그 ‘연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더 깊이 살펴봐야 합니다. 첫째, 성관계를 하고 싶은 것을 연애라고 보는 것인지 살펴봐야 합니다. 둘째, 이성과 서로 의지해서 살고 싶거나 뭐든 함께 나누고 싶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 말고 ‘나는 널 사랑해. 너도 나 사랑해’ 이렇게 한 사람을 정해서 그 사람과 사랑을 주고 받는 개인적 특수 관계를 연애라고 보는 것인지 살펴봐야 합니다. 이 경우에도 성적인 욕망이 결합될 수 있겠지만 단순히 성적인 욕망과는 조금 구분하는 게 좋아요. 성적인 욕망이 핵심인지, 아니면 아기자기한 관계를 원하는 것이 핵심인지 말이에요. 셋째, 가정을 이루어 자식 낳고 살겠다는 꿈을 연애라고 보는 건지 살펴봐야 합니다. 셋 중 어느 쪽이든 그런 가운데에서도 우리는 사회의 바람직한 변화를 위해서 살아갈 수가 있어요. 그러나 이 셋 중에 어느 경우인지를 살펴서 결정을 해야 돼요.
첫째, 성적인 욕망의 문제라면, 이건 여자든 남자든 건강한 육신을 가지고 있으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니 그걸 나쁜 일이라고 죄악시해서는 안 돼요. 그러나 거기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돈을 빌리는 것과 똑같아요. 돈을 안 벌고 빌려서 쓰면 편하긴 한데, 나중에 이자 쳐서 갚아야 되는 책임이 따르지요. 성관계를 맺는 건 좋은데, 그러다가 아기가 생긴다면 결혼까지 해야 되는 거예요. 결혼을 한다는 것은 경제적인 책임도 지고, 아이에게 아빠 역할도 해야 된다는 걸 의미합니다. 이 사람을 내가 사랑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성적인 관계에서는 아기가 생길 확률이 매우 높은 거예요. 요즘은 피임 방법이 다양하다 하더라도 그렇습니다.
성적인 관계를 맺고 아기를 가졌는데 ‘나는 싫다. 지워라’ 그러면 상대는 굉장히 큰 충격을 받게 돼요. 그래서 ‘내가 네 성적 노리개냐?’ 하며 문제제기를 할 수도 있어요. 그러니 성적인 욕망에는 책임을 어떻게 질 거냐 하는 문제가 따르게 됩니다. 만약 책임질 일이 없다면 굳이 성적인 욕망을 절제하라고 할 게 뭐가 있겠어요. 처음에는 작은 쾌락이나 즐거움을 위해서 했는데, 뒤에 감당해야 될 일이 너무 많은 겁니다. 안 해본 사람은 아직 안 해봤으니까 그 뒤에 어떤 문제가 생길지 예측을 못 하잖아요. 그런데 실제 해보면 자기가 상상도 못했던 복잡한 일이 뒤따라오니까 즉문즉설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 문제에 대해 스님에게 조언을 구하는 거예요.
성적인 욕망이 있다는 것 자체를 죄악시 하면 안 됩니다. 다만 그에 따른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성적인 욕망의 문제에 있어서는 대부분이 주로 무책임하기가 쉽습니다. 미국처럼 여자들도 스스로 즐기고 스스로 책임을 지는 문화라면 괜찮은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남자가 여자와 성관계를 맺으면 관계를 맺음과 동시에 ‘네가 나를 책임져야 된다’는 윤리 문제가 따릅니다. 옛날엔 손을 잡거나 껴안기만 해도 책임을 져야 했다면, 지금은 키스까지는 괜찮지만 성관계는 책임을 져야 된다는 의식이 아직 많습니다. 본인은 책임을 안 지고 싶어도 상대는 그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서로 책임을 지지 말자’라고 약속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말뿐이고, 마음은 그와 다른 겁니다. 그래서 이 문제에 대해서 이성적으로 자각하고 행동해야지, 이걸 놓치면 마치 고리대금업자한테 돈은 조금 빌려놓고 이자 갚느라 집을 날리는 것처럼 즐거움은 작았는데 나중에 생각하지도 못한 엄청난 고통을 받게 됩니다.
둘째, 둘이 서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지만 성애보다는 마음을 나누고 싶은 것이라면, 이런 경우에도 내가 상대에게 의지해서 좋은 만큼 상대도 나한테 의지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건 성애보다도 더 정신적으로 책임을 져야 돼요. 그리고 성애는 헤어지게 될 때 아기가 생겼다거나 하는 문제가 없을 경우 서로 합의하면 정신적인 충격이 덜 한데, 이건 헤어지게 될 때 ‘배신’이라는 딱지가 붙게 되고, 상대에게는 증오심을 유발시킵니다. 내가 상대를 떠나게 되면, 상대가 슬퍼서 울고 괴로워하는 걸 보면서 본인은 죄의식을 갖게 됩니다. 반대로 상대가 나를 떠나게 되면 나는 늘 상대를 그리워하며 울어야 되는 엄청난 열병을 앓게 됩니다. 이런 경우는 서로 좋아하는 마음이 지속되어서 결혼까지 가는 경우도 드물고, 서로 좋아하는 마음이 다해서 둘 다 웃으면서 ‘안녕’ 하는 경우도 드물어요. 이런 경우는 10명에 1명 내지 2명밖에 안 되고, 나머지 8명 중에 4명은 내가 싫어서 떠나든지, 4명은 상대가 싫어서 떠날 확률이 높아요. 그래서 내가 울든지, 상대가 우는 걸 보면서 내가 죄의식을 느끼든지, 둘 중에 하나가 되는데, 이런 걸 알고 연애를 시도해야 됩니다.
셋째, 가족을 이루고 사는 게 목적이라면, 사회운동을 하더라도 그 범위 안에서 해야 돼요. 인생의 목표를 세울 때 가정도 꾸리고 직장도 갖되, 먹고 사는 건 최소한으로 해서 ’정토회 활동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라고 정해서 재가수행자의 길을 가야 합니다. 실제로 현재 정토회에서 활동하는 봉사자의 90%가 직장 다니고 가정을 이룬 사람들이잖아요. 만약 인생의 목표가 그렇다면 결혼할 여자를 너무 예쁘거나 똑똑하거나 돈이 많은 사람을 구하면 본인이 굉장히 어려워져요. 그런 사람은 거기에 버금가는 기대를 나한테 하기 때문에 내가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반발을 하게 되어서 돈을 벌든지 출세를 하든지 해야 되는 거예요.
물론 청년정토회에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도반을 만나서 ‘혼자 사는 건 어려우니까 우리 결혼하자. 그런데 아기는 안 갖든지 갖더라도 하나만 갖든지 해서 우리는 간단하고 소박하게 살면서 남는 여력은 모두 활동하는데 쓰자’ 이렇게 합의를 보면 좀 낫지요. 그런데 합의를 봐도 실제 살아보면 쉽지만은 않습니다.
정토회에도 법사님 중 어떤 분은 도가 열려서 가정사고 뭐고 아예 걸림이 없으신 분도 있어요. 오히려 법사님의 친정에서 ‘네가 미쳤냐?’고 난리지요. 그러나 남편이나 자식들에게도 항상 열려있고, 나와서 살고 계시지만 명절에는 시댁에도 가고, 집안의 대소사에도 자주 가시는 특이한 케이스이긴 합니다. 도무지 문제제기에 대해서 구애를 받지 않으세요. 집착이 끊어져버렸어요. 여기 있든, 저기 가든, 전혀 구애를 안 받으니까요. 그런데 오히려 옆에서 법사님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정토회에 가면 저렇게 된다. 조심해라’라고 하니까 이런 게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모두 웃음)
그런데 이 법사님은 스스로 자유로워져 버렸어요. 결혼하든 안 하든, 죽든 살든, 자식이 어떻게 되든 이런 생각을 놓아버린 겁니다. 그렇다고 가족을 외면하고 집을 버리고 온 것도 아니고, 그렇게 그냥 사시는 겁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케이스가 있으니까, 이런 것들을 고려해서 선택을 하면 됩니다.
정토회 안에 있으면서 연애를 해서 결혼을 해도 돼요. 그런데 아까 말씀드렸듯이 거기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거예요. 게다가 이 여자와 결혼을 해 놓고 다른 여자를 만난다면, 그것 자체는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지만 정토회 활동가로서 윤리적으로는 문제가 되겠지요. 이런 책임도 져야 되는 거예요.
즉문즉설 할 때 스님한테 묻는 사람들도 자기가 좋아서 결혼해 놓고 다 괴롭다고 하잖아요. 하고 싶은대로 해서 좋았는데 책임을 지려니까 힘들어서 괴로운 거예요. 그래서 스님이 늘 ‘과보를 달게 받으라, 그냥 받아들여라’라고 하는 겁니다. 가령 결혼을 했다면 정토회에 나가고 싶은데 남편이 못 나가게 한다고 괴로워하면 안 됩니다. 남편 입장에서는 살림은 안 살고 정토회에만 나가니까 항의하는 것이 너무 당연합니다. ‘그럼 상대가 시키는 대로만 해야 됩니까?’ 라고 묻는데, 그건 본인의 자유예요. 정토회에 나오고 싶으면 나와도 됩니다. 남편이 정토회에 나가지 말라고 한다 해도 나오는 건 본인의 자유인데, 남편이 항의하는 것도 인정하라는 겁니다. 왜냐하면 남편은 그렇게밖에 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 속에서도 나는 자유를 얻어야 하는 겁니다. 이것이 수행입니다.
정토회 안에서도 연애는 자유입니다. 그런데 연애가 그렇게 낭만적이기만 한 건 아닌 게, 반드시 현실적인 책임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첫 번째 해결책은 수행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수행을 통해서 성적 욕망을 욕망인 줄 알아차리고, 그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라는 겁니다. 두 번째는 연애를 해서 다정다감함도 얻고, 성적인 것도 함께 나누는 해결책도 있습니다. 재가수행자에게 결혼하면 안 된다는 건 없어요. 그러나 책임을 안 지면 괴로움이 따릅니다. 우리는 괴로움이 없어야 되잖아요. 괴로움이 없으려면 첫째, 원인을 짓지 말든지, 둘째, 지은 인연의 과보를 달게 받든지 해야 됩니다. ‘달게 받는다’는 건 ‘책임을 진다’는 거예요. 책임지면 되는데 책임을 안 지려니까 괴로워지는 겁니다. 그런 관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어떤 것이든 현실에 있는 욕망을 죄악시하거나 부정하면 안 됩니다. 욕망이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과 그 욕망을 우리가 어떻게 볼 것이냐는 건 다른 문제예요. 부처님은 욕망 그 자체를 부정시한 게 아니라 그것이 괴로움의 원인임을 말씀하신 거예요.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원인을 짓지 말든지, 원인을 지었으면 책임을 지든지, 다시 말하면 지은 인연의 과보를 달게 받든지, 과보가 싫으면 다음에는 그런 인연을 짓지 말든지 하라는 말씀을 하신 거예요. 이게 계율이잖아요. 그래서 ‘계율’은 인연을 짓지 않는 것이고, ‘참회’란 이미 인연을 지어버렸으면 지은 인연에 대한 과보를 달게 받고 다음에는 안 짓겠다고 발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회에는 반드시 발원이 따라야 합니다. 돈을 빌렸으면 갚고, 갚기 싫으면 빌리지 말고, 그러나 이미 빌렸으면 기꺼이 갚고, 다음부터는 빌리지 말라는 거예요. 이게 인생이에요.
우리는 인생에서 일어나는 그 어떤 것도 다 인생의 한 부분으로는 받아들여야 합니다. 금기란 없어요. 그러나 책임은 져야 됩니다. 마리화나를 피워도 되고, 안 피워도 되는데, 피우면 환각이 일어나니까 그만큼 부작용이 따른다는 겁니다. 그래서 피우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부처님께서는 ‘술을 마시지 말라’라고 하시지 않았고, ‘술을 먹고 취하지 말라’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술을 먹으면 취하게 되는 성질이 있으니까 마시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이런 관점을 갖고 수행을 해나가면 됩니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질문한 행자님은 밝게 웃으며 스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겼습니다. 다른 행자님들도 공감이 가는 주제였는지 아주 흥미롭게 스님의 답변을 듣는 모습이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해도 괜찮지만 그 선택에는 반드시 과보가 따른다는 말씀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습니다.
이 외에도 6명이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첫 번째 행자님은 지난 3년 동안 화가 자꾸 나는 성질을 고쳐보려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며 어떻게 수행을 해야 하는지 물었고, 두 번째 행자님은 눈물이 많고 작은 일에 자책을 자주 하는 성향을 고쳐보고 싶었지만 잘 안 된다며 어떻게 수행을 해야 하는지 물었고, 세 번째 행자님은 정토행자의 기준에 비추어볼 때 느슨한 생활을 하는 것 같아 고민이라고 질문했고, 네 번째 행자님은 혼자서 컨텐츠를 제작하는 것은 잘 하는데 사람들과 어울려서 함께하는 것이 어렵다며 어떻게 수행을 하면 좋은지 질문했고, 다섯 번째 행자님은 닥쳐서 하는 일은 잘 하는데 계획을 갖고 전략적인 사고를 잘 하지 못하는 것이 고민이라고 질문했고, 여섯 번째 행자님은 지금까지 고집불통으로 살아왔는데 내 마음대로 하고 싶어하는 성향을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스님의 애정이 담긴 조언은 행자님들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었습니다.
행자님들은 스님과 더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기를 원했지만, 스님은 목이 너무 아파서 더 이상 법문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스님은 “기회가 되면 다음에 또 보자”고 하며 답변을 마쳤습니다.
행자님들은 행자대학원 졸업 수련의 일환으로 스님 가까이에서 보고 듣고 배우는 체험을 하기 위해 지난 5일 동안 스님과 동행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지난 5일 동안 무엇을 느꼈어요?”라며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행자님들은 “스님께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지만 그 사람들의 처지에 맞게 통일을 이야기하시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스님과 함께 농사지었던 경험이 가장 재미있고 기억에 남습니다”, “통일을 위해 발로 뛰는 스님의 모습을 보며 나도 통일을 내 일로 여겨야겠다 생각했습니다.”라고 대답하며 활짝 웃었습니다.
이에 대해 스님은 “2017년은 한반도가 통일로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해이기 때문에 졸업을 하더라도 2017년까지는 꼭 활동을 함께 하면 좋겠다”라고 당부하면서 수련을 마쳤습니다.
행자님들은 스님이 타는 차량 앞까지 나와 합장으로 감사 인사를 하며 스님을 배웅했습니다. 스님은 “다음에는 졸업식 때가 되어야 다시 볼 수 있겠네. 잘 지내요.” 하며 다시 한 번 행자님들을 격려한 후 두북 정토수련원을 나왔습니다.
스님은 목이 계속 아파서 휴식을 취한 후 새벽 2시에 울산 두북을 출발해 서울로 향했습니다. 내일은 새벽 6시에 서울에 도착해 7시부터 평화재단에서 연이어 미팅 및 회의 일정을 가질 예정입니다.
※ 2017년 1월에 진행되는 '인도 성지순례' 참가자 접수가 지금 진행 중입니다.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인도의 10대 성지를 내 발로 직접 밟아보고 그 감흥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신청마감 : 6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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