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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오전에 나라살림연구소 정창수 소장님으로부터 국가의 재정운영 정책에 대해 대화를 나눈 후 밤 10시부터는 평화와 통일을 위한 천일 기도 중 300일째를 맞이하여 기념 법문을 했습니다.
아침 7시, 평화재단에서는 나라살림연구소 정창수 소장님을 초청해 국가의 재정운영정책에 대한 세미나를 진행했습니다. 평화재단에서는 비정기적으로 우리 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시고 통일 대한민국 건설을 위한 국가 비전에 대한 연구를 해오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도 재정운영정책에 대해 한 차례 세미나를 가졌는데, 발표 내용이 방대하다 보니 한 차례 모임으로 끝맺지를 못해서 오늘 다시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7시에 시작된 강연과 토론은 11시까지 4시간 동안 진행됐습니다. 강연을 마치면서 정창수 소장님은 예산 개혁을 위해 3대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예산 개혁을 위한 3대 방향은 첫째, 적극적인 정보 공개로 예산을 투명하게 하는 것입니다. 둘째, 납세자소송법과 주민소환, 주민소송, 주민투표를 통해 예산에 대해 책임지게 하는 것입니다. 셋째, 시민 참여의 확대로 주민이 참여하는 예산 제도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 ‘납세자소송법’은 꼭 제정되었으면 좋겠어요. 납세자소송법은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남북전쟁 때 처음으로 시행했는데, 가령 예산을 낭비한 사람을 찾아내면 환수한 액수의 10%를 신고자에게 주는 제도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예산이 법령으로 되어 있지도 않고, 정책이 실패했다고 처벌하는 경우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납세자소송법이 제정되면 예산 낭비를 차단하는 효과가 생깁니다. 현재 이 정책의 효과에 대한 검증과 검토는 다 끝난 상태인데 의지가 없어서 안 하고 있거든요. 그 이유는 관료들의 저항 때문입니다. 신고가 남발이 되면 일을 못한다는 것이 관료들의 논리인데, 그렇다면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미국도 행정이 마비되어야 하는데 안 되고 있죠. 남발되는 것은 법원에서 기각해버리면 통제가 되는 겁니다.
여기 보시는 이 건물이 여의도에 있는 ‘IFC몰’입니다. 일반 시민들은 ‘여의도에 AIG생명이 건물을 지어서 무언가를 하는구나’ 정도로 생각합니다. 이 땅은 원래 서울시 땅이었는데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에 90년 간 외국 기업인 맥쿼리 그룹에 임대권을 팔았고, 맥쿼리 그룹은 다시 미국 기업인 AIG 그룹에 팔아 넘겼습니다. 그래서 저 땅은 지금도 0.1%의 임대료만 내고 계속 AIG가 사용하고 있습니다. 보통은 임대료를 최소 5% 이상을 내어야 하는데도 말입니다. 계약을 할 때 아무도 막지 않았던 겁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어요. 대안은 이미 존재하고 있고, 그것을 조금씩 조금씩 조합해서 집행하는 능력이 새로운 대안 세력이 가져야 할 핵심적인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서 4시간 동안 예산이 낭비되는 수많은 사례들을 이야기 했기에 마지막에 강조한 말씀에 모두들 공감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세미나를 마치면서 스님도 강연을 들은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제 소감은 첫째, 국회의장에게 얘기해서 국회 산하에 이것을 연구하는 기구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둘째,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의원들이나 청와대 비서관들을 모두 불러서 이 내용을 알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셋째, 지자체장들이나 교육감들도 이 내용을 좀 알아야 되지 않을까 싶었고요. 결국은 정치가 이런 국가 예산의 낭비를 막을 수가 있잖아요.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오히려 더 귀담아 안 들을 수도 있겠네요. 그러면 숫제 청년들이 이런 교육을 받아서 국가 예산이 낭비되는 일을 찾아내는 일을 하는 게 효과적일까요?
지금 우리나라 정치인들 중에 디테일에 강한 분들은 좀 있는데, 이렇게 큰 문제들을 교통정리해내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공무원 연금 개혁도 실패하겠다고 느낀 이유가 공무원은 대통령의 직계 부하인데 ‘공무원은 철밥통이다’라고 하면서 나쁘게 얘기를 하면 아무리 정책이 좋아도 반발할 것 아니겠어요. 오히려 ‘지난 몇 십 년 간 국가가 발전하는데 공무원들의 기여가 컸다. 그런데 옛날에 박봉일 때는 미래의 이익을 보장해 주려다보니 연금을 많이 주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월급 문제가 상당히 개선되지 않았느냐. 지금은 공무원 연금이 너무 눈덩이처럼 불어서 국민 전체와 균형이 안 맞게 되었다. 그러니 조금 개혁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국가를 개혁하려면 공무원들부터 앞장서줘야 해결이 되지 않겠냐’ 이렇게 얘기해야 설득력이 생기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고 그냥 ‘너네는 철밥통이다’라고 몰아세우기면 하면 저는 개혁이 어려울 거 같거든요.
새로운 지도자는 이렇게 대중들과 대화하면서 ‘개인은 충분히 이해가 되지만 국가 전체를 고려하면 여러분들이 손해를 조금 감수해주지 않으면 국가가 어려워진다. 그런 차원에서 손해를 좀 감수해주면 경착륙이 아니라 연착륙을 하겠다’ 이렇게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네, 스님 이야기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정창수 소장님도 스님의 이야기에 공감을 표하면서 세미나를 모두 마쳤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평화재단을 찾아온 여러 손님들과 연속으로 미팅을 갖거나 회의를 했습니다. 특히 오후 1시에는 조계종 포교원장 지홍스님, 조계종 화쟁위원장 도법스님, 정웅기 화쟁위 기획위원 등 불교계 인사분들이 찾아와 불교 포교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어제부터 갑자기 목소리가 잘 안 나오고 목에 통증이 계속 있었는데, 오후에는 잠시 시간을 내어 이비인후과에 가서 진료를 받기도 했습니다.
원고 교정 등 여러 업무들을 처리한 후 밤 10시부터는 평화와 통일을 위한 천일기도 중 300일째 날을 맞이해 서울 정토회관 1층 법당에서 열린 기념법회에 참석했습니다.
정토회에서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 1000일 동안 1초도 쉬지 않고 24시간 기도를 해오고 있습니다. 1000일 기도는 지난 2015년 8월 27일 오후 4시부터 2018년 5월 22일 오후 4시까지 진행되는데 오늘은 300일째 날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1시간 이상씩 릴레이 기도를 해오고 있는 300여 명의 정토회 회원들이 모인 가운데 성동법당에서 준비한 통일 원더우먼 퍼포먼스와 함께 기념법회가 시작됐습니다. 이어서 100일 동안 부지런히 기도에 동참해 온 성동법당 이린 님이 앞으로 나와 소감문을 발표했습니다.
이린 님은 “기도를 시작하고 나니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보람있게 살아가는 것 같아 뿌듯했다”라고 하면서 “한 분 한 분의 작은 정성이 모여 통일을 이루는 큰 에너지가 될 것”이라며 300일을 축하하는 기쁜 마음을 표현해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다음은 지난 100일을 돌아보는 영상물을 시청했습니다. 영상 속에 한 새터민이 기도를 마치고 나서 “북에 있는 가족들이 설 명절이라도 배불리 먹게 해달라는 기도를 하였습니다.”라고 소감문을 적는 모습이 나올 때는 큰 박수갈채가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새터민분이 소감문을 적은 날은 설날 바로 전 날이었다고 합니다.
영상 한 편으로 벌써 눈시울이 붉어진 가운데 이어서 법륜 스님을 모시고 통일기도 300일째 기념 법문을 청해 들었습니다. 스님은 북한동포돕기 운동을 처음 시작하게 되었을 때를 떠올리며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돌아보면 1995년 8월의 일입니다. 저는 고구려·발해 유적지를 답사하고 있었어요. 그 때 제가 아는 조선족 한 분이 이런 얘기를 했어요. ‘김정일 생일날 북한에 초대받아서 갔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조선 청년들 키가 너무 작고, 식량 때문에 굶는 사람이 너무 많고, 일부는 굶어죽는 사람도 있답니다. 만약 이대로 한 세대가 지나면 남북한은 민족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이 얘기를 들었을 때 저는 솔직히 ‘북한이 어렵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래도 굶어죽을 정도이겠느냐? 이 사람이 조금 과장한다’ 싶었어요. 물론 그 친구가 하는 말이 다른 사람보다는 신빙성이 있었지만 그래도 썩 믿기지는 않았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북한을 괜찮게 사는 나라로 알고 있었거든요.
제가 그즈음 인도의 불가촉천민마을에 학교를 세워서 한참 돕고 있을 때였기 때문에 그 이듬해인 1996년 8월 초에 다시 유적지 답사를 가면서는 열악한 인도 아이들과 장애인을 촬영한 사진첩을 들고 가서 조선족 친구한테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시대가 달라졌다. 옛날에는 내 민족, 내 나라 사람을 우선적으로 도왔지만 지금은 세계가 한 가족이다. 그래서 비록 우리 민족이 아니라도 더 열악한 사람을 먼저 도와야 된다. 이것 한번 봐라. 인도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의 상황은 이 지경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친구가 사진첩을 보고 ‘와, 북조선보다 더 하네요’라고 말할 걸로 예상했는데, 그게 아니라 ‘아이고, 북조선은 이보다 더 심합니다’ 하는 거예요. 제가 전 세계를 다녀 봐도 인도 둥게스와리 불가촉천민 마을보다 더 심한 곳을 아직 못 봤거든요. 아프카니스탄이 굉장히 열악하다고 했는데, 막상 그 사람들을 도우러 갔을 때는 JTS 자원활동가가 ‘이 사람들을 도울 바에야 우리 둥게스와리 사람들을 더 도웁시다’라고 할 정도였거든요. 그랬는데 그 조선족 친구가 그렇게 말을 하니까 저도 긴가민가했어요.
그 때 그 조선족 친구가 ‘스님, 여기는 늘 스님이 다니는 데잖아요. 그러니 여기는 저 여행사 직원한테 잠깐 맡겨놓고 저와 잠깐 어디 좀 가십시다’ 하기에 제가 ‘어디?’ 그랬더니 ‘제가 북조선을 좀 보여 드릴게요’ 하는 거예요. 그래서 배를 타고 갔는데, 압록강 이쪽이 중국의 집안이고, 건너편이 북한의 만포였습니다. 그런데 배를 북한 강변 가까이로 붙여서 쭉 타고 올라가니까 강변에 있는 사람들의 옷이 진짜 남루해요. 그러다가 오래된 부두 옆을 지나가는데 보니까 부두의 쇠파이프가 다 녹슬어서 형편도 없고, 쓸모도 없을 정도인데 7, 8살 된 어린 아이가 한 명 앉아서 고개를 숙인 채 돌멩이를 쥐고는 그 쇠를 땅땅땅 때리면서 놀고 있어요.
아이의 옷은 정말 형편없고, 얼굴과 손도 새까맣고, 대충 봐도 영양실조 상태가 확실했어요. 저는 너무너무 놀랐어요. 배의 속도를 늦추게 해서 ‘얘야! 얘야!’ 하고 그 아이를 불렀어요. 그래도 아이는 절대로 고개를 안 드는 거예요. 그러자 이 조선족 친구가 ‘스님, 조선 아이들은 구걸할 자유도 없어요’ 그래요. ‘그게 무슨 소리야?’ 하니까 ‘애들한테 구걸하는 건 나라 망신시키는 일이니까 하지 말라고 다 교육을 합니다’ 라는 거예요. 그렇게 작은 아이도 벌써 자기 나라 망신 안 시키려고 절대로 외국 사람한테 손 내밀지 않는 거예요.
제가 거기서 ‘이 배를 부두에 좀 대라’ 라고 했더니 그 친구가 ‘스님, 여기는 국경입니다, 국경에서는 안 됩니다’ 라는 겁니다. 그때 저한테 ‘국경이라는 게 도대체 뭘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어요. 새도 이쪽에서 먹을 게 없으면 저쪽으로 날아가서 모이를 쪼는데, 하물며 사람이 굶어 죽고 있는데 국경이라니요. 강 이쪽에는 사람이 굶어죽고, 이쪽에는 음식이 남아 도는데도 나누어 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저한테는 음식 살 돈도 있었고, 얼마 되진 않았지만 배에 먹을 것도 조금 있었는데, 바로 건너편 내 눈 앞에는 굶주리는 아이가 있어도 음식을 줄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큰 의문이 들었어요.
‘도대체 국경이 뭘까? 나라가 뭘까? 나라니 국경이니 하는 건 다 사람을 잘 살게 하려고 있어야 되는 건데, 오히려 그것 때문에 사람이 짐승보다도 못 하게 살게 됐구나. 국경 때문에, 나라가 다르기 때문에 굶주리는 사람을 눈앞에 두고도 음식을 줄 수가 없다니... 과연 국가라는 게 뭘까?’
그리고 깊은 참회가 되면서 제 스스로가 위선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내가 저 먼 인도까지 그 더운 나라에 가서 가난한 사람들 돕는다고 그 난리를 피우면서도 바로 이웃에서 내 동족이 굶주리고 있는 사실을 내가 몰랐다니... 아무런 실천적 행동을 안 했다니...’
또 조선족 친구가 작년부터 그렇게 얘기를 했는데도 제 눈으로 확인 안 했다고 ‘에이, 무슨 굶어죽기는’ 그랬거든요. 게다가 제가 북한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갖고 있어서 북한의 진실을 몰랐다면 그럴 수 있는 일이겠지만 저는 북한에 대해서 그렇게 거부 반응을 갖거나 부정적이지도 않았는데도 그랬던 겁니다. 오히려 북한에 대해서 비교적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사람이었는데, 그것이 도리어 장애가 되어서 ‘설마 굶어죽기야 하겠느냐’라고 했던 겁니다. 제가 실제로 그 이후에 북한돕기운동을 해보니까 진보적인 사람들 대부분이 ‘에이, 북한이 무슨 굶어죽기는요. 그렇게 북한에 대해서 자꾸 험담하지 마세요’라며 북한 돕기에 더 소극적이었습니다. 그러니 뭔가를 좋게 생각하는 것도 선입관이고, 결국은 진실은 외면하게 합니다.
어쨌든 제가 그렇게 충격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바로 북한돕기운동을 하려고 보니까 북한에 대한 아무런 자료가 없는 거예요. 조선족 친구한테 말 몇 마디 듣고 현장을 한번 본 것밖에는 없는 거예요. 그런데 마침 제가 1996년 8월 말, 9월 초에 미국 순회법회를 갈 일이 있어서 미국 LA에 갔다가 일부러 시간을 내어 북한에 관련된 책을 판다는 서점을 찾아갔습니다. 거기에 1995년에 북한에 대홍수가 나서 피해 입은 현황에 대한 자료가 있는 겁니다. 100년 만에 닥친 대홍수였는데, 저희도 그때 중국에서 일주일 내내 장대 같은 빗속에서 역사기행을 다녔거든요. 그런데 그에 대한 비디오를 구해서 봤더니 과연 그 피해가 엄청난 거예요. 저는 그때만 하더라도 북한에 아사자가 생기는 이유가 북한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라는 생각을 못 했고, 홍수피해 때문인 줄만 알았어요.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와서 ‘북한에 홍수피해가 엄청났단다. 남한에 사라호 태풍보다도 더 심한 피해를 입어서 사람들이 굶어죽고 있으니까 북한동포를 도웁시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정토회 안에서도 동조해주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때 홍제동에 60평짜리 건물을 하나 빌려서 정토포교원을 내고 포교를 했는데, 정토회가 생긴 이후로 처음 모금을 했거든요. 그래서 그때 여기에 200평 정도 되는 땅을 사서 7층 건물을 지으려고 했었어요. 설계도까지 나와서 막 불사를 하려고 할 즈음에 제가 북한을 돕자는 얘기를 했던 거예요.
그런데 그때 부자 신도가 몇 명 있었어요. 20년 전에 벌써 5,000만 원씩 낸 사람이 7, 8명 있었고, 그 사람들이 불사위원회를 구성해서 땅을 물색한 끝에 이 땅을 샀던 거예요. 그렇게 불사위원회가 모든 걸 계획해서 추진했는데, 제가 ‘북한동포돕기 하자’고 하니까 말은 안 했지만 속으로는 ‘이 중이 미쳤나?’ 하는 눈으로 저를 쳐다보더라고요. 그 문제로 우리 정토회에서도 총회를 했는데 ‘스님, 안 됩니다’라고 했어요. 정토회 회원들이 안 된다고 한 이유는 두 가지였어요. 하나는 불사 때문이었고, 하나는 그때 스님이 너무 너무 건강이 안 좋아서 자기네가 볼 때는 제가 죽을 때가 다 됐다 싶었는지 미국 순회법회 다녀오면 무조건 연말까지 쉬어야 한다며 총회에서 결의까지 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미국에서 돌아오더니 갑자기 ‘북한돕기를 하자’고 하니까 모두가 반대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건물은 지금 못 지으면 다음에 지어도 되지만, 사람은 한번 죽어버리면 다시 못 살리지 않느냐? 그러니 우리가 불사를 뒤로 미루고 북한동포를 돕자.’
제가 그런 생각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저희 어머니의 유언 때문이었습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돌아가실 때가 다 되어서 제 형제들한테 저를 찾으니까 우리 누님이 ‘걔는 바쁘잖아요’라고 했더니 어머니께서 ‘아이고, 아무리 바빠도 내 죽는 것보다 더 바쁜 일이 어딨노? 나는 한번 죽으면 다시 못 보지만, 제 바쁜 일이야 오늘 못 하면 내일 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말씀하셨대요. 제가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소리를 듣고 고향으로 내려갔는데 누님이 울면서 저한테 ‘어머니께서 얼마나 너를 보고 싶어 하셨는데 조금만 일찍 오지 그랬냐? 어머니께서 너를 찾으시면서 하신 말씀이 있다’ 하면서 전해 주신 말씀이 그 말씀이에요. 저도 어머니의 그 말씀이 항상 마음에 걸렸는데 그때 어머니의 말씀을 따라서 그런 말을 했던 거예요. 그리고 제가 ‘만약 정토회에서 북한돕기를 허락 안 해 주면 나는 정토회를 탈퇴하겠다’라고 했어요. 결국은 제가 탈퇴 안 하는 조건으로 저는 북한동포돕기만 하고 정토회 일은 안 하는 걸로 했는데, 실무자 두 사람을 더 붙여주면서 그렇게 북한동포돕기가 시작됐던 겁니다.
그때 제가 정토회에서 돈을 하나도 안 받고 밖에서 모금을 해서 하겠다고 했는데, 마침 일이 되려니까 그랬는지 중국으로 여행을 갔던 분이 백두산 밑에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는데, 그분의 아는 분이 49재를 정토회에 맡기면서 500만 원을 보시한 거예요. 그 돈이 북한돕기운동의 밑천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을 했는데, 여러분들은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1996년 9월 말에 강릉 잠수함사건이 터져서 그때도 지금의 남북관계처럼 완전히 경색이 되어서 다 막혀버렸어요. 그런데도 제가 그때 ‘북한동포를 돕자’ 하면서 다니니까 어떤 분은 저한테 ‘스님, 반공교육 좀 더 받으셔야 되겠어요’라고도 했어요.(모두 웃음)
강릉 잠수함사건이 난 뒤에는 기존에 북한을 돕던 단체들도 다 중단을 했는데, 스님은 새로운 단체를 시작하려고 하니 남이 볼 때는 제 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던 거예요. 그런데 저는 ‘그 강변에서 내가 만났던 그 굶주린 아이의 문제가 해결이 됐느냐? 나는 그 아이를 돕겠다고 시작을 했는데, 그 문제가 해결이 안 됐는데 강릉 잠수함사건이 났다고 그만 둔다면 앞뒤가 안 맞는 것 아니냐?’라고 생각했어요. ‘그 아이의 문제가 해결돼서 그만 두는 건 이치에 맞지만, 전혀 해결이 안 됐는데 그저 강릉 잠수함사건에 대한 뉴스가 매일 TV에 나온다고 해서 북한돕기를 그만둔다면 애초에 시작을 왜 했느냐’ 이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저는 그냥 한 거예요. 제가 무슨 데모를 한 것도 아닌데 과격하다는 이미지가 붙은 이유는 아마 그때 아무도 안 하는데 저 혼자 역류해서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제가 이 얘기를 다시 꺼낸 이유는, 제가 본 그 아이에 대한 기억을 잊지 못했기 때문에 제가 이 일을 할 수 있었다는 얘기를 하려는 겁니다. 그때는 강릉 잠수함사건이 나고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금방이라도 전쟁이 날 것 같은 분위기였거든요. 그런데 제가 만약 그 아이를 잊어 버렸다면 북한돕기운동을 할 수가 없었을 거예요. 제가 요즘 하루에 두 번씩 하는 희망세상만들기 강연을 보고 사람들은 스님이 무리한다고 얘기하는데, 그 때와는 비교도 안 됩니다. 그땐 하루에 세 번, 네 번씩 강연을 하고 다녔거든요. 그때 제가 수첩에 적어놓은 걸 보면 3개월 동안 거의 200회 강연을 했으니까요.
지금 여러분들도 남북 관계에 아무런 진척이 없고 뭐가 되는 게 없으니까 기도를 하는 재미가 없지 않겠느냐 싶어요. 그런데 스님은 이런 과정을 다 겪었기 때문에 안 되는 것에 별로 걸림이 없습니다. 너무 안 되는 데서 시작을 했기 때문이에요. 시작할 때부터 강릉 잠수함사건이 나서 반대 여론이 극심한 가운데 시작을 했거든요. 그렇게 시작해서 좋은 점은 안 되는 것에 대해서 별로 좌절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지금 되는 것만 보다가 ‘상황이 이런 데 기도하면 뭐하나?’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환경이 이렇고 저런 건 그들의 문제이고, 우리는 우리의 뜻대로 가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환경과 맞아 떨어지면 꽃이 피는 것이고, 안 맞아떨어지면 그냥 손해보는 것이고요. 그런데 우리가 환경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너무 환경을 눈치 보며 놀아나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이 천일기도를 통해 우리가 기적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저와 같은 경험이 없다 보니까 기도할 때 ‘졸린다’, ‘다리 아프다’, ‘괜히 했다’라고 하는 건데, 마음만이라도 이렇게 가져야 합니다. ‘지금 내 눈에 굶주리는 사람이 안 보이니까 그런데 본인들은 얼마나 괴롭겠느냐’ 하고요. 올해에도 유엔 안보리 제재가 시작되면서 북한 주민들이 또 엄청나게 어렵게 됐다고 하거든요. 그리고 작년에 가뭄이 심해서 올해 흉년이 들었고요. 그런데 지금은 ‘인도적 지원’이라는 말도 꺼낼 수가 없는 형편이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인도적 지원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 정부가 통일에 전향적인 정부로 바뀌는 겁니다. 그래야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평화와 통일은 대한민국 정부가 해내야 되고, 우리가 그런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표의식이 뚜렷해야 합니다.
우리는 너무 자기 생각, 우리 생각만 하지 상대편이 어떤 고통에 처해 있는지는 생각을 안 합니다. 여러분들이 기도를 할 때도 북한 주민들의 생존권과 인권이 보장되어서 그들도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야 기도가 간절해지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의 이러한 염원은 북한동포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우리의 이 답답한 현실에 돌파구를 가져오기 위해서도 필요한 겁니다.
오늘 북한에서 무수단 미사일을 쏜다니까 일본에서 공격하겠다고 나오는 거 봤지요? 어느 쪽이든 한번만 공격 제스처를 취하면 바로 전쟁이 일어날 겁니다. 한국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우리는 여기서 미사일 한 발만 맞아도 피해가 엄청납니다.
여러분들이 그동안 기도를 많이 했지만, 앞으로는 조금 더 간절하게, 그러나 조급하게 굴지는 않으면서도 항상 희망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분단의 현실을 우리 후손들에게는 넘겨주지 말고 우리 대에 해결해 버리자는 겁니다. 조급하게 할 건 아니지만 가능하면 빠른 시일 내에 해결해서 젊은이들이 통일에 대한 부담 없이 통일된 나라에서 국제적인 안목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하자는 겁니다. 통일된 나라에서 우리 젊은이들이 세계평화를 위한 일, 지구를 위한 환경운동 같은 일을 하도록 해야 되지 않겠어요?(모두 박수)
저는 스님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 사람들한테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참 곤란할 때가 많아요. ‘중이 되어서 너는 늘 네 나라 문제만 얘기하느냐’라고 하거든요. 그래서 체면이 안 서지만, 여기 태어나서 밥을 먹고 자랐으니까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는 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들이 다시 한 번 발심을 해서 꾸준히 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사실 여러분들도 제가 경험한 것과 같은 경험을 갖고 있다면 꾸준히 할 수 있는데, 여러분들은 그런 경험이 없기 때문에 꾸준히 하기도 힘들 거예요. 여러분들은 본 것도 없고 경험한 것도 없이 그냥 잘 먹고 잘 살다가 괜히 법륜 스님 만나서 고생인 거예요.(모두 웃음)
‘스님 안 만났으면 이 고생을 안 해도 되는데, 괜히 저 스님을 만나서 내가 이 고생이다’ 이런 수준에서 생각을 하니까 힘이 드는 건데, 북한 주민들의 고통도 생각하면서 우리가 꾸준히 해 나갑시다. 제가 볼 때는 3년 안에 돌파구가 열려서 일점돌파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지 못 하거든 그때 가서 ‘스님도 앞을 못 보시네’ 하더라도, 지금은 스님을 믿고 ‘가능하다. 길이 열린다’ 하고 희망을 품고 정진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감사하다는 말씀도 드립니다. 새벽 2시, 3시에 와서 기도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에요. 저도 알아요. 스님도 밤늦게 일할 때가 많으니까요. 그러나 일주일에 1시간만 하면 되잖아요. 1시간씩 매주해 봐야 3년이면 150번 정도 밖에 안 돼요. 그렇게 염원을 하다 보면 아마 여러분들은 역사적 기적을 만든 사람들이 될 겁니다. 혜택을 보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어떤 노력을 해서 혜택을 주는 사람이 되면 더 보람되지 않을까요? 앞으로 날씨가 무더워지면 더 기도하기가 힘들 거예요. 그래도 다시 힘을 내서 더 정진해 주시기 바랍니다.”
스님의 간곡한 목소리에 정토회 회원들은 뜨거운 박수갈채로 그 다짐을 표현했습니다.
압록강변에서 만난 굶주리는 아이를 잊지 않았던 것이 지금까지 통일운동을 계속해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습니다. 그 첫마음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스님의 들려준 진솔한 경험담은 매일 기도를 이어가고 있는 정토회 회원들에게는 그 어떤 격려보다도 큰 힘이 된 것 같습니다. 더욱이 여름의 한복판으로 갈수록 기도하겠다고 마음내기가 더욱 쉽지 않을 텐데 오늘 스님의 법문 덕분에 다시 발심을 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기념법문을 한 후 스님은 천일기도 300일째를 맞이해 1초도 쉬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릴레이 기도 중 11시 30분부터 12시까지를 직접 이어서 했습니다. 스님이 기도를 시작하자 대중들도 함께 간절한 마음을 담아 한 배 한 배 절을 했습니다.
▲ 1초도 쉬지 않고 계속 이어지고 있는 통일 기도
“넓고 깊은 원력 세워 보살도를 닦고 닦아 고통중생 구하시는...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스님의 기도를 이어 받아 다시 유수 스님이 기도를 했고, 유수 스님의 기도를 이어받아 다시 대중들이 릴레이 기도를 이어갔습니다.
내일은 아침 7시부터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을 가진 후 하루 종일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들과 미팅 및 회의를 계속 할 예정입니다.
▼ 통일기도 300일째 기념영상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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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신 작가가 법륜 스님에게 직접 묻는 독립운동과 통일 이야기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6월 25일(토) 저녁 7시 30분 서울 정토회관 1층 법당에서 진행되오니 통일에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아래 배너를 누르고 지금 신청하세요. (선착순 신청마감)
[참가 신청] http://goo.gl/ozQI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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