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6.5.19 정토회 서원행자 임원단 수련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정토회의 서원행자 중 대표, 총무, 상임위원 등의 소임을 맡고 있는 임원진들과 함께 정토회의 미래에 대해 회의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정토회에서는 법사단 회의, 실무자 안거 회의, 상임위 회의, 전국대의원대회, 집행위 회의, 총무단 회의, 국장단 회의 등 다양한 회의 기구가 있어서 각 부서별로는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해오는 구조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부서를 넘어서서 임원들 전체가 모여서 정토회의 미래를 구상하는 공식 회의가 아직 없습니다. 물론 결사행자대회와 전국대의원대회에서 큰 방향이 논의가 되지만 실무적인 논의를 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오늘과 같은 수련이 마련되었습니다. 

 

새벽부터 전국에서 출발한 대중들은 화창한 봄날씨에 소풍가는 마음으로 문경 정토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운데 저 멀리 희양산의 암벽과 뇌정산의 짙은 녹음이 병풍처럼 멋진 풍경으로 대중들을 맞이해 주었습니다. 

 


▲ 문경 정토수련원

 

아침 10시가 되자 정토회 대표단과 총무단, 상임위원회 위원, 행정처 국장단과 부장단, 지역사무국 부장단, 저녁부 선임 팀장단, 청년국, 대중부 법사단 등 총 100여 명이 대수련장에 자리했습니다. 큰 박수와 함께 정토회 이기혜 대표님의 인사말씀으로 회의가 시작되었습니다. 

 


 

대표님은 “오늘은 정토회가 설립취지에 맞게 계속 나아가기 위해서 지금 우리가 가슴에 새겨야하는 것이 무엇인지 큰 틀에서 논의가 될 것이다”라며 “가벼운 마음으로, 진지하게 회의에 임해주면 좋겠다”고 당부하면서 회의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법상에 올라 정토회의 설립취지에 대해 입재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본격적인 회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정토회는 무엇을 하고자 설립되었는지 스님의 자세한 설명이 있었습니다. 

 

“1980년대를 지나면서 한국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게 됩니다. 이렇게 변화된 세상에서 앞으로 우리 사회가 갈 길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많은 연구와 토론을 한 끝에 정토회가 설립되었습니다. 당시에 대안을 얘기했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렴했고, 수많은 의견을 검토하고 토론을 거친 결과 저희는 네 가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첫째, 전지구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는 ‘환경 문제’라고 봤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문명은 결국 환경 문제에 의해서 제동이 걸릴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생태적 가치를 기반으로 해야 지속가능한 문명이 될 수 있지 생태적 가치를 기반으로 하지 않은 문명은 유한한 문명일 수밖에 없다고 보고 환경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둘째, 세계가 많이 발전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지구상에는 인구의 20%가 절대 빈곤 선상에 놓여 있는 이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고 봤습니다. 굶어서 죽는다든지, 간단한 질병으로 죽는다든지, 초등교육도 받지 못한다든지, 이런 절대 빈곤 상태에 놓인 사람들의 문제는 내 나라 중심의 사고를 넘어서야 풀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 때 당시만 해도 다들 우리나라 문제에만 신경을 썼지 남의 나라의 고통에는 신경쓸 형편이 못 되었어요. ‘선진 강대국들이 우리를 착취해서 우리가 못 사는 것이다’ 이런 생각만 가졌는데, 이미 우리나라도 지구 전체로 보면 상위 20%의 기득권층에 속하게 됐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우리나라도 하위 20%에 대해서 나라와 민족을 떠나서 인류적 관점에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빈곤퇴치 운동을 시작하게 된 겁니다. 

 

셋째, 갈등을 해결하는 평화 문제가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밥 먹고 살만 함에도 불구하고 이념적 충돌, 종교적 충돌로 끊임없이 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당시만 해도 남한과 북한, 중국과 대만, 중국과 베트남, 필리핀의 민다나오, 스리랑카의 타밀족, 북아일랜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등 전세계 40여 곳에서 끊임없이 충돌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 중에 1,2위를 다투는 가장 큰 갈등이 우리의 처지이기도 한 남북분단의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평화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넷째, 그 당시에 제일 잘 사는 나라가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등 북유럽 국가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자살율이 제일 높은 나라가 또한 북유럽이었어요.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데 자살율은 제일 높은 겁니다. 이런 사실을 접하면서 아무리 환경이 좋더라도 인간이 자기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행복해질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부분 사회를 바꾸는 운동만 했지 인간의 마음을 잘 관리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되었습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앞으로 마음을 잘 관리하는 것이 인류의 가장 큰 과제가 될 것이라고 봤습니다. 인간의 마음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재앙이 초래될 수 있다고 본 겁니다. 그래서 수행 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수행에 대한 노하우는 불교가 가장 많이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죠. 그러나 기존의 불교는 용어만 수행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실제로는 수행적 관점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복을 비는 것에만 치우쳐져 있던 불교의 모습은 부처님이 왕위와 재물을 버리고 출가한 정신과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복을 빈다는 것은 결국 ‘왕위를 달라’, ‘재물을 달라’, ‘인기를 달라’ 하는 얘기 아닙니까? 부처님은 그것을 버렸는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부처님의 이름으로 그것을 구하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이름만 불교이지 불교라고 할 수가 없는 겁니다. 또한 이것은 우리나라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세계 불교인들이 대부분이 그렇다고도 볼 수 있어요. 그 중에 개인 몇 명은 수행적 관점을 가진 분들이 우리나라 안에도 다른 나라에도 존재할 수가 있겠죠. 그러나 불교를 믿는 대중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전혀 근접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서 이 수행을 새로운 문명의 한 요소로 받아들이고 이것을 대중화할 필요가 있다고 봤습니다. 특정한 한 사람이 위대한 수행자가 되어서 산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누구나 일상 속에서 그렇게 수행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세상을 파악한 것이 정토회가 설립되기 전에 저희가 세상을 바라본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출발했는데, 이 때도 ‘불교’란 이름을 쓸 거냐 안 쓸 거냐의 문제로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불교’란 이름을 쓰는 순간 그 틀에 갇혀 버리기 때문입니다. 기존의 불교가 경전, 교리, 복을 구하는 것, 사회에는 관여하지 않고 개인의 행복만 찾는 이런 이미지가 굳어져 있었기 때문에 불교란 이름을 쓰게 되면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과는 전혀 맞지 않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종교로 출발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는데, 그렇다면 불교가 아닌 것으로 출발한다면 그것은 또 도대체 무엇이냐는 문제도 제기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는 ‘종교 단체냐?’, ‘시민단체냐?’ 하고 물을 텐데, 시민단체라고 하기에는 수행이 중심인 곳이고, 종교 단체라고 하기에는 환경운동, 구호활동, 평화운동 같은 사회실천활동들이 담겨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런 문제의식을 갖지만 일단 새로운 불교로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엇을 하는 곳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길게 설명을 할 수밖에 없게 되고, 말이 길면 오해가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종교의 한 형태로 출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문명으로 전환하는 시기에 놓여 있습니다. 예전에는 종교와 철학, 인문학, 사회학, 자연과학, 정치 등이 각기 다 구분되는 사회였다면, 지금은 종교 안에서도 불교니 기독교니 내가 잘났느니 네가 잘났느니 하고 따지는 것이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됐습니다. 서로 좋아서 결혼한 두 부부가 갈등을 일으켜서 원수가 되고, 자기 몸으로 낳은 아이가 말을 안 들어서 엄마와 아이가 원수가 되는 이런 문제들을 과연 누가 해결해줄 수 있느냐는 겁니다. 우리가 실제로 살아가면서 겪는 구체적인 고통들, 즉 개인적으로는 부부 간의 갈등, 부모 자식 사이의 갈등, 직장 동료 사이의 갈등, 사회적으로는 남북의 충돌, 여야의 충돌, 진보와 보수의 충돌, 노동과 자본의 충돌 등 여러 갈등을 도대체 무엇으로 해결하느냐는 겁니다. 지금 종교에서 가르치는 것들이 과연 이런 개인적 고뇌와 사회적 고뇌들을 해결하는데 얼마나 효용성이 있느냐는 것이죠. 

 

예전에는 사회적 리더십을 종교가 다 갖고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우주와 천체에 대한 것은 과학이 다 가져가버렸고,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정치와 사회과학이 다 가져가버렸고, 육체의 아픔을 치료하는 것은 의학이 다 가져가버렸고, 정신적인 아픔을 치료하는 것은 정신분석학과 상담심리가 다 가져가버렸잖아요. 지금 종교가 갖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 종교에 남은 것이라곤 네 가지 밖에 없어요. 첫째, 권위주의에요. 둘째, 조직이 갖고 있는 힘이에요. 셋째, 신비주의에요. 넷째, 그들이 갖고 있는 돈이에요.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런 것들을 다 배격하시고, ‘교만하지 말고 겸손해라, 비굴하지 말고 당당해라’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서 우리는 만 명 중에 한 명 어쩌다가 나타나는 그런 수행자를 지향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모두가 다 붓다처럼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수행에 있어서 ‘대중주체’입니다. 이제는 더이상 스님이나 종교라는 형식과 이름을 갖고 사람을 줄세우는 문화는 없어져야 합니다. 필요에 의해서 역할이 나눠지는 것일 뿐인데, 스님, 법사, 처장, 국장 하는 역할이 지위가 되어 귄위주의로 흘러가서는 안 됩니다. 물론 쉽지는 않겠죠. 우리들의 오랜 습관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수행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역할은 역할대로 하면서 평등성은 평등성대로 보장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수행이 부족하면 역할이 차별로 가고, 평등성이 무질서로 갈 소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먼 미래를 보면 한 사람 한 사람이 붓다의 길로 간다는 이런 대중주체의 길이 맞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 길을 가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숫제 승려나 종교지도자라는 이름으로 대중을 확 이끌고 가는 것이 사람들을 더 많이 결집시킬 수 있고 파워도 있지 않느냐, 지금의 현실에서는 대중주체를 실현해내기가 굉장히 비효율이지 않느냐, 하는 우려가 많았습니다. 부처님도 처음에는 그렇게 시작했지만 부처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시간이 흐르면서는 다시 종교화 되었고, 이것을 다시 극복하기 위해 ‘보디사트바’란 새로운 이름을 갖고 대승불교 운동을 일으켰지만 다시 또 종교로 돌아갔죠. 대승불교도 처음에는 재가자가 중심이 되어 출발했는데, 대중들로부터 권위가 안 서니까 다시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게 됩니다. 처음에는 자기 실력을 갖고 지도자가 되었지만, 나중에는 실력만으로는 안 되니까 권위주의로 돌아간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들도 종교지도자에 대한 권위의식에서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우리는 직분에 따른 역할분담을 할 뿐입니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겸손하되 당당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관점을 계속 가져나가려면 우리가 같이 모여서 함께 수행해 나가야지, 함께 하지 않으면 이런 관점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꿈을 갖고 우리가 모인 겁니다. 이런 꿈이 없으면 우리가 무엇 때문에 모였겠습니까? 스님들은 사찰에서 스님 생활을 오래하면 종회 의원도 하고 본사 주지도 하는 그런 꿈이 있을 수가 있는데, 여러분들처럼 이렇게 정토회에서 봉사활동을 하면 그런 게 없잖아요. 그러나 우리는 그런 것과는 다른 이러한 꿈을 갖고 출발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여러분들이 남편이 반대하고, 부모가 반대하는 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겁니다. 주위에서도 자꾸 ‘네가 그런다고 돈이 벌어지냐, 출세를 하냐, 인기가 있어지냐?’ 라고 묻잖아요. 그래서 만약 여러분들이 우리의 행복과 미래 사회에 대한 이런 원을 잃어버리게 되면, 이렇게 주위에서 문제제기하는 것들을 이겨낼 수가 없게 돼요. 

 

그런데서 환경운동, 구호활동, 평화운동, 수행, 이 네가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역시 ‘수행’입니다. 수행은 나머지 세 가지와 맞먹는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은 이것을 ‘상구보리’와 ‘하화중생’ 두 가지로만 나누었어요. 즉 ‘하화중생’ 속에는 환경운동, 구호활동, 평화운동이 다 들어가 있는 겁니다. ‘수행을 기초로 한다’, ‘수행을 근본으로 한다’ 하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 겁니다. 그러면 수행만 하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분리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토회는 불교라는 형식을 빌리고 있기 때문에 사회 실천을 할 때마다 비난을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굶주리면 먹을 것을 주고, 아프면 치료를 해주고, 학교에 못가면 아이들에게 학교를 지어주고, 독재를 하면 독재에 저항을 하고,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면 전쟁을 막고, 이런 실천들은 인연 따라 할 뿐인데, 이런 모습을 보고 대중들은 ‘왜 정치에 관여하느냐’라고 시비할 수밖에 없거든요. 세상은 그런 시비를 할 수가 있어요. 그러나 여러분들마저 이런 시비에 마음이 흔들린다면 그것은 정토회의 설립취지를 모르는 겁니다. 우리의 사회 실천은 인연을 따라서 몸을 나투는 것에 불과한 겁니다. 그런데서 개개인이 어떤 상황 속에서도 관점을 잘 잡아서 그 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수행과 전법 활동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의 고통이 줄어들 수 있도록 환경을 잘 만들어주는 사회실천활동도 함께 중요한 겁니다. 

 

1차 만일결사를 마무리짓고 2차 만일결사를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2차 만일결사에서는 세계적인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우리가 당장 사회적인 변화를 가져오기에는 역량이 안 되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개인 수행 문제에 초점을 두면서 환경운동과 구호활동, 평화운동을 해나가야 할 겁니다. 

 


 

그러면 지금 하고 있는 1차 만일결사에서 우리의 과제는 무엇일까요? 1차 만일결사에서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해결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성장 국면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정체와 쇠락의 길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어요. 이 몰락을 조금 더 늦추든지, 상황을 개선해서 성장 국면으로 약간 방향을 전환하든지 해야 하는데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통일은 이런 정체 국면을 전환시키는 역할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통일은 지금까지 생각해 온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통일해야 한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문제가 됐습니다. 

 

통일은 첫째, 경제적인 성장과 직결된 문제이고, 둘째, 국제관계의 역학 변화 속에서 우리의 자주성을 확보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점점 갈등 국면으로 나아가는 형국에서 지금과 같은 분단 상태로는 아무런 전망을 가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일반 국민들은 이런 정세를 읽기가 힘듭니다. 어떤 이유로 전쟁이 안 일어난 것인지, 어떤 이유로 경제적인 붕괴가 안 일어난 것인지, 개인들이 어떻게 알겠어요? 그러나 국민들이 알든 모르든 예견된 위기를 막아내고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보살이 해야 할 역할입니다. 

 

우리가 장기적으로 보고 멀리 내다보면서 이뤄나가야 할 목표는 ‘문명 전환’이고, 이것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불교중흥’, ‘정토구현’이라고 할 수 있겠죠. 반면에 우리가 대한민국에 태어난 인연으로 단기적으로 해나가야 할 일은 ‘남북의 평화적인 통일’입니다. 이것은 통일만 하면 된다는 뜻이 아니라 통일을 통해서 평화문제도 풀고, 경제성장도 도모하고, 정치 갈등도 풀어나가는 계기를 만들고, 이 기운을 통해서 지금까지 서양을 모방해오던 시스템에서 새로운 창조시스템으로 전환해나가는 기회도 만들어내자는 뜻입니다. 

 


 

이것이 1차 만일결사의 목표라면, 2차 만일결사가 되면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대한민국의 문제에만 머물러서만 안 됩니다. 인류 전체를 보고 인류의 행복을 위한 구상을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세대에서 빨리 대한민국의 문제를 해결해줘서 다음 세대들은 세계의 문제를 갖고 정토회를 발전시켜나갈 수 있는 길을 터줘야 하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세대는 통일 문제의 해결에 조금 더 집중해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주위 상황도 더 이상 방치할 수가 없게 되었고, 기회도 놓쳐서는 안 되는 시기가 된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조금 더 깊이 있는 토론을 해봤으면 합니다.”

 

스님이 그려준 큰 그림에 대중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고, 특히 통일 문제는 더 이상 놓칠 수 없는 기회이자 위기로 다가왔다는 얘기에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짓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입재식을 마치고 다함께 점심식사 시간을 가졌습니다. 엊그제 스님과 법사님들이 경주 통일암에서 죽순을 가득 따왔는데, 부드러운 죽순이 맛있는 초고추장에 버무려져 반찬으로 나왔습니다. 스님이 “고생해서 따왔으니까 맛있게 드세요”라고 하자 대중들은 너무나 기뻐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점심식사 후에는 휴식 시간이 여유롭게 주어져서 문경 정토수련원 곳곳을 산책하며 꽃구경을 할 수 있었습니다. 바람에 흔들거리는 꽃들을 보며 감탄사를 자아내기도 하고, 스마트폰으로 사진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산책 시간을 뒤로 하고 오후 1시부터 본격적으로 회의가 시작되었습니다. 회의 시작에 앞서 졸음도 쫓을 겸 참가자 소개 시간을 가졌습니다. 각 정토회를 대표하는 대표님들, 법당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총무님들, 행정처 국장단과 부장단, 법사단에 이르기까지 각 직급별로 앞으로 나와 한 명씩 자기 소개를 했습니다. 한 명 한 명 모두 너무나 소중한 분들이기에 대중들은 뜨거운 박수갈채로 환영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 자기 소개를 하고 있는 각 정토법당 총무님들

 

참가자 소개 시간을 마치고 곧바로 스님의 기조 발제가 이어졌습니다. 스님은 현재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과 과제에 대해 진단한 후 정토회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방향을 잡아 주었습니다. 특히 남북이 통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각성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를 위해 정토회가 어떤 활동들을 펼치면 좋을지 대중들의 의견을 들어보기도 했습니다. 

 


 

대중들은 현장 활동 경험을 바탕으로 다양한 의견들을 내놓았습니다. 오후 1시에 시작된 토론은 오후 6시가 다 되어서 일단락 되었습니다. 저녁 식사와 저녁 예불을 한 후 7시부터 다시 회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녁 회의에서도 많은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특히 저녁 회의에서는 불교의 사회적 실천 활동에 대해 일부 대중들의 거부감이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습니다. 

 

스님이 전국을 순회하며 통일 강연을 하는 것에 대해서도 ‘스님이 인생 상담만 하면 정말 좋겠는데, 왜 통일 이야기를 자꾸 하느냐?’ 하는 얘기가 심심찮게 제기 되곤 합니다. 이에 대해 스님은 단호하게 입장을 얘기해 주었습니다. 

 


 

“지금 미국이나 유럽에서 불교가 유행하는 것은 신비주의, 즉 불교를 믿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정도의 수준이지 사회적인 실천에 대한 관점이 없어요. 그리고 과거에는 훌륭한 스님들이 사회 의식이 있었다 하더라도 당시 사회는 왕조 사회였기 때문에 어떤 행동도 할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나라의 주인이 백성이 아니라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왕조 사회에서는 왕이 부르면 ‘네’ 하고 가서 무조건 왕을 칭송하든지, 아니면 아프다고 핑계대고 안 가든지,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두 가지 밖에 없었잖아요. 그런 시대에 있었던 불교를 자꾸 생각하면서 ‘불교는 이래야 한다’고 하는 얘기를 이제 더 이상 해서는 안 돼요. 우리는 지금 왕이 주인인 시대에 사는 게 아니라 국민이 주인인 시대에 살고 있단 말이에요. 우리나라 헌법에는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라고 되어 있어요. 

 

부처님은 왕이 주인인 시대에도 계급 차별과 여성 차별은 옳지 않다며 사회 변화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런 전통을 계승한 우리들이 우리가 주인인 시대에 살면서도 사회 변화를 이야기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부처님 당시의 제자들보다 못한 것이죠. 그런데도 왕조 시대에 왕에게 복종해서 국사의 칭호를 받거나, 여기에 저항해서 죽림칠현처럼 산속에 숨어서 안 나오거나 했던, 이런 전통을 갖고 ‘지금의 불교가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전혀 불법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의 생각도 확 바뀌어야 해요. 

 


 

사람이 주인된 세상, 사람이 행복해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제도를 바꿔야 하면 제도를 바꾸고, 이 속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잘못 되었으면 마음가짐을 바꾸고, 관계가 잘못 되었으면 관계를 개선하고, 몸이 아프면 약을 먹어서 치료하고, 이렇게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죠. 지금까지 인류가 발견한 모든 지혜를 다 사용해서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자유롭고 행복해지는 길이 무엇이겠느냐, 이것을 찾아가는 것이 불교입니다.

 

사회적 모순을 합리화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단박에 고치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개선해야 할 목표를 향해서 점진적으로, 평화적으로, 꾸준히 나아가서 변화를 가져와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비교적 괜찮은 사회가 되면 그곳이 바로 ‘극락’입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얼마나 괴로웠으면 저 멀리 타방세계나 먼 미래의 이상세계를 그렸겠어요? 옛날에는 그 고통을 없앨 역량이 안 되니까 그리워만 하거나, 죽어서 가겠다고 꿈만 꾸었는데, 지금은 우리가 주인인 시대이니까 우리가 그런 사회를 만들면 됩니다. 전쟁의 위협이 있다면 우리가 평화롭게 관계를 개선할 수가 있잖아요. 부처님이 말씀하신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개념도 이런 관점에서 봐야 합니다.”

 

스님의 단호한 말씀에 대중들도 모두 큰 박수로 공감을 표했습니다. 

 


 

이어진 토론에서는 각 법당의 현황에 대한 얘기를 자세히 들었습니다. 각 법당별로 앞으로 사회적인 실천활동을 더욱 늘려 나가기 위해서는 법당 운영 방식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 등에 대해 다각도로 검토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든 토론을 마치고 나니 저녁 8시가 다 되었습니다. 해가 지고 가로등 불빛이 켜진 가운데, 마지막으로 오늘 회의를 마무리하는 회향식을 가졌습니다. 

 

회향 법문을 통해 스님은 다시 각 법당으로 돌아가 왕성하게 활동을 해나갈 정토회 임원들을 위해 격려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3년 후인 2019년이 되면 3.1독립운동 100주년이 됩니다. 우리의 스승이신 용성조사께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독립운동을 시작한 지가 올해로 100년이 넘은 셈입니다. 용성조사께서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자 산 속에서 나오셔서 전국을 다니면서 민심을 살피셨고, 7~8년을 준비해서 시절 인연이 도래하자 3.1운동을 주선하셨습니다. 그 이후 평생 독립운동을 하셨지만 모두 실패하고, 결국 열 가지 유훈만 남기시고 돌아가셨습니다. 용성조사님이 남기신 미완성의 독립을 완성하는 길은 우리가 통일 국가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에는 통일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통일로 갈 수 있는 남북 간의 징검다리라도 꼭 만들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런 우리들의 원을 오늘 다함께 가슴에 새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수행자의 상이 달라져야 합니다. 과거 왕조 시대에 수행자들이 어쩔 수 없이 걸었던 그런 모습을 잣대로 해서 지금 이 시대의 수행자 상을 그려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지위, 권력, 돈에 집착하는 기성 종교에 희망을 걸어서도 안 됩니다.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고 앞으로 닥칠 위기에 대비해서 대안적인 사회 모델을 만드는 것은 이제 우리들의 일입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너무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요.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런 일을 한 번 해보다가 죽는다는 것은 얼마나 보람있는 일인가요? 그냥 밥만 먹다가 죽는 것은 좀 재미가 없지 않아요? 조금 힘이 들긴 하지만, 이런 꿈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들이라면 정말 의기투합할만 하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개인으로 보면 조금씩 부족한 면이 있다 하더라도, 요즘 같은 시대에 이 정도의 헌신성을 갖고, 이 정도의 순수성을 갖고 의기투합할 만한 사람들은 극히 드물다고 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정말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첫째, 자신이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하고, 동시에 도반들에 대해서도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셨으면 합니다. 

 

그런 면에서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임했으면 해요. 그러나 현실에 머물지 말고 우리가 세운 원을 기필코 이루리라 하는 큰 원을 가지고 함께해 나갔으면 합니다. 넘어야 할 산이 조금 크기는 하지만 능히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우리의 활동이 바깥으로 볼 때는 실패했다 하더라도 그러나 긴 역사에서 보면 성공입니다. 3.1운동 자체는 그 당시에 실패했지만, 우리 역사에서 3.1운동이 없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은 뿌리가 없는 것과 다름 없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활동은 성공하든 실패하든 관계 없이 역사적으로는 성공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세 명만 힘을 합해도 천하를 움직인다고 하는데, 우리는 오늘 100명이 힘을 합했는데 무엇을 못하겠어요? 다음에는 통일의병 1000명이 모여서 희망을 만들고, 그 다음에는 1만명이 힘을 모아낸다면 우리들도 능히 통일 대한민국을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런 희망을 갖고 함께 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스님의 따뜻한 격려에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오늘 대중들은 스님으로부터 용기와 희망을 듬뿍 받아가는 것 같습니다. 

 


 

끝으로 사홍서원을 한 후 정토회 임원단 회의를 모두 마쳤습니다. 다함께 고행상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모두들 통일을 향한 염원을 가득 담아 “가자 통일로!”를 크게 외쳤습니다. 

 

대수련장을 걸어나오자 뇌정산 위로 보름달에 가까운 둥근 달이 휘영청 밝아 있었습니다. 모두들 “우와! 보름달 좀 보세요” 하면서 하늘을 가리키며 기뻐했습니다. 원래 스님은 회의가 일찍 끝나면 문경 용추계곡으로 대중들을 데리고 달구경을 가려고 했는데, 회의가 늦게 끝나는 바람에 그러지 못했습니다. 대중들은 뇌정산 보름달로 아쉬움을 달래며 정토수련원을 즐겁게 내려왔습니다. 

 

스님은 대중들을 모두 떠나보낸 후 울산 두북으로 이동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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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5월 21일(토) 저녁 7시, 서울시청광장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청춘콘서트&청춘박람회가 열립니다. 법륜 스님, 김제동, 박원순 서울시장, 노희경 작가가 펼치는 행복 토크, 뮤지션들의 공연, 150여 개의 청년 단체가 참여하는 박람회 등 세상을 바꾸는 즐거운 축제가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전체댓글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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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숙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2016-05-25 08:49:02

개인적으로

환경사회평화운동을 해오고있는 정토회가 그들의 수행을 바탕으로 사회정치문제에도 건전한 기여와 영향을 미치는 세계적인 사회단체로 성장하면 좋겠다. 결국 믿을만한건 올바른사람외에는 없으니.

2016-05-23 12:05:51

지니

스님 고맙습니데이 .

글을 올려 주신 분 감사드립니다.
읽으며 밝은 기운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 기운으로 행복하게 살고
이웃에 나누겠습니다.

정토회 감사합니다.


2016-05-22 17: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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