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6.4.20 광주 청년 즉문즉설 강연


 

안녕하세요? 오늘은 광주교육대학교 풍향문화관에서 청년대학생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어제밤 목포에서 강연을 마치고 새벽 2시가 넘어서 서울에 도착한 스님은 잠시 눈을 붙인 후 아침 7시부터 오전 내내 평화재단에서 미팅과 회의 일정을 가졌습니다. 평화재단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친 후 오후 3시에 강연이 열리는 광주로 향했습니다. 

 


 

강연이 열리는 광주교육대학교 풍향문화관에는 흐린 날씨와 강풍 때문인지 좌석이 다 차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300여 명이 넘는 청년대학생들이 자리에 앉아 스님의 강연을 기쁜 마음으로 기다렸습니다. 

 

저녁 7시 30분, 소개 영상이 끝나고 스님이 무대에 올라서자 박수와 환호가 터져나왔습니다. 

 

 

스님은 먼저 봄소식을 전하면서 '사는 게 재미있느냐?'는 질문을 던진 후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사는 게 재미있습니까?”

 

“.......”(웅성웅성)

 


 

“젊은 사람들은 대답이 없고, 늙은 사람들만 대답을 하네요. 어떤 일이든 재미있다고 생각하면 재미가 있고, 재미없다고 생각하면 재미가 없는 겁니다. 그런데 어차피 해야 하는 일이니까 이왕이면 재미있게 하는 게 좋습니다. 그러면 누구한테 좋을까요? 자기한테 좋습니다. 

 

누가 나한테 욕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 입장에서는 속이 시원할지 몰라도 몸에는 열이 오르기 때문에 건강에 안 좋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상대가 화내는 걸 보고 ‘그렇게 화내면 자기만 손해인데…….’ 이렇게 측은하게 생각해 주세요.(모두 웃음) 

 


 

여기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상대가 입으로 쓰레기를 뱉어 나한테 던졌어요. 그런데 나는 그걸 얼른 받아서 그 쓰레기를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면서 ‘네가 어떻게 나한테 이런 쓰레기를 던질 수 있느냐’라면서 그것을 10년씩 들고 다니며 내내 곱씹어요. 그건 바보 같은 짓이에요. 내가 받은 게 쓰레기인 줄 알면 얼른 버리면 됩니다. 제일 좋은 건 처음부터 받지 않는 것이지만요. 그런데 그게 잘 안 되지요. 상대가 던지면 넙죽 잘도 받게 되잖아요. 

 

그러니 ‘어떤 상황에 처하든 내가 어떻게 대응할거냐’하는 건 ‘어떻게 스스로를 행복하게 할 거냐’의 문제입니다. 누가 내 대신 인생을 살아주지도 않고,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도 않아요. 그러니 내가 나를 행복하게 해야 합니다. 오직 자기만 할 수 있지,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그 행복과 불행,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 아니네.'

 

그럼에도 우리는 이 행복과 불행을 다른 사람이 나에게 준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나를 행복하게 해 주십시오’라며 매달리고, ‘왜 나한테 이런 불행을 주느냐’고 원망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다 보니까 한평생을 자기가 자기 삶의 주인으로 못 살고, 남에게 매여 사는 거예요. 자, 그러면 오늘도 여러분들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는 문제들을 주제에 제한 없이 대화해 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시작하세요.” 

 

상대가 던진 수많은 쓰레기들을 가슴에 안고 사는 것 같다는 말씀에 정신이 번쩍 차려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시작부터 머리가 시원해진 느낌입니다. 

 

이어서 본격적으로 즉문즉설이 시작되었고, 2시간 동안 7명이 질문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낯선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덜 외롭고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 있는지 묻는 분, 지금까지 너무 열심히 살아와서 언제까지 계속 열심히 살아야 되는지 모르겠다는 여성 분, 공부를 하고 싶은데 취업을 할지 대학원에 진학 할 지를 묻는 분, 취업 준비를 해야 하는데 놀기만 하는 것이 걱정이라는 분, 출산을 앞두고 출산휴가와 직장일을 고민하는 여성분 등 다양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아버지가 재혼을 했는데 새어머니와 친어머니 중 누구를 결혼식에 모셔야 할지 고민이라는 여성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스님은 답변 도중 지금까지 즉문즉설 중 이렇게 어려운 질문은 처음이라고 말할 정도로 해결책을 내기가 쉽지 않았던 질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어렸을 때 재혼하셨는데, 저는 새어머니도 친어머니 못지않게 아끼고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올해 결혼을 하게 됐는데, 두 어머니 모두 제 결혼식 당일에 부모님 자리에 앉으시길 희망하셔서 고민입니다.”(모두 웃음)

 

“어떤 사람은 앉을 사람이 없어서 고민인데, 질문자는 너무 많아서 고민이네요. 두 분 다 모시면 되지요.” 

 

“그 생각도 해 봤는데, 그건 시댁 측에서 원치 않으십니다.” 

 


 

“질문자는 누굴 모시면 좋겠어요? 두 분 어머니 모두 모시고 싶은 마음은 이해가 되는데, 그래도 한 분만 선택해야 하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어쩔 수 없이 어떤 분을 모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아버지랑 오래 사신 새어머니께서 앉는 게 맞다 생각했는데, 친어머니께서는 여태 혼자 외롭게 사셨기 때문에 자녀의 결혼식에 참석할 기회마저 빼앗기신다면 너무 힘들어하지 않으실까 염려됩니다.” 

 

“친어머니는 재혼을 하셨어요?”

 

“안 하셨어요.”

 

“아버지는 누가 앉기를 원해요?”

 

“아버지께서는 당연히 새어머니와 앉기를 희망하시는데, 그래도 제가 원한다면 결혼식 당일만큼은 친어머니와 앉겠다고 말씀은 하셨습니다.” 

 

“그러면 새어머니한테 양해를 한번 구해 보세요. ‘마땅히 어머니께서 앉으셔야 되는데, 그래도 어머니는 제가 앞으로 계속 뵈면서 모시고 살 분이고, 생모는 혼자 사시기 때문에 앞으로 다시 이런 기회는 없으실 테니 섭섭하실 겁니다.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하고 말씀드려 보세요. 아버지와 새어머니 사이에도 자녀가 있어요?”

 

“없습니다.” 

 

“아이고, 이거 보통 일이 아니네요.”(모두 웃음)

 


 

“새어머니께서는 제가 힘들어하는 걸 아시고는 ‘우선은 네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제가 마음이 많이 쓰입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새어머니를 위로해 드려야 할지 모르겠어요.”

 

“두 분 어머니 모두 앉히면 어떨까요?”

 

“아버지께서 ‘만약에 친어머니가 앉게 되면 새어머니는 결혼식에 못 오신다’고 말씀하신 상태입니다.” 

 

“여태껏 누가 나한테 물었을 때 내가 답하기 쉽지 않은 일이 없었는데, 이번엔 쉽지 않네요.(모두 웃음) 친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 자녀는 질문자 한 명뿐이에요?”

 

“아니오, 오빠가 있습니다.” 

 

“오빠는 결혼 했어요?”

 

“안 했습니다.” 

 

 

“만약 오빠가 결혼한다면 예식장에 누굴 앉힐 것 같아요?”

 

“오빠는 친어머니를 모시고 결혼한다고 했습니다.” 

 

“그럼 질문자는 친어머니한테 양해를 구해 보세요.” 

 

“제가 그 말씀도 드려봤는데 친어머니께서는 ‘그래도 내가 앉겠다’는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십니다.” 

 

“친어머니는 질문자를 몇 살까지 키웠습니까?” 

 

“제가 3살 때 쯤 이혼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질문자가 몇 살 때 재혼했어요?” 

 

“제가 초등학교 3학년이었으니까 10살쯤입니다.” 

 

“그 사이에는 누가 질문자를 키웠나요?”

 

“할머니께서 키우셨습니다.” 

 

“그럼 할머니가 앉아야 되겠네요.”(모두 웃음) 

 

“예, 그런데 할머니께서는 돌아가셨습니다.”(모두 웃음)

 

“아이고, 이거 점점 어려워지네요. 내가 즉문즉설 한 뒤로 이렇게 곤란한 질문은 처음입니다.”(모두 웃음)

 


 

“제가 너무 괴롭습니다. 저는 한 분이라도 서운한 분이 없도록 하고 싶어서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해 봤는데, 뾰족한 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는 ‘두 분이 서운하시든말든 나도 모르겠다’ 싶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팟캐스트를 통해서 스님 법문을 들었을 때 스님께서 ‘어른들이 생각하시게 놔두라’는 말씀을 많이 하시기에 저도 ‘부모님들께서 서운함을 느끼신다면 그것은 당신들께서 감당해야 할 몫이다’라며 마음을 다잡고 지금은 크게 고민 안 하고 있지만 그래도 스님께 여쭤보고 싶습니다. 스님 생각은 어떠신가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거 진짜 어렵네요.”(모두 웃음)

 


 

“예.”

 

“제가 왜 질문자에게 꼬치꼬치 물었느냐 하면요, 만약 친어머니가 질문자를 9살까지 키웠다면 저는 질문자에게 친어머니를 모시라고 했을 거예요. 또 새어머니가 질문자를 3살부터 키웠다면 ‘새어머니가 엄마다. 누가 낳았는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를 했을 겁니다. 엄마는 낳은 사람이 아니라 기른 사람이 엄마거든요. 그런데 질문자의 중요한 시기를 사실은 할머니가 키워주셨네요. 그런데 그 할머니는 돌아가셨다고 하니, 이제 남은 두 어머니는 모두 ‘엄마의 절대적 자격’이 없습니다. 친어머니도 ‘내가 이 결혼식에 반드시 참여해야 된다’고 할 자격이 없어요. 질문자의 육신은 친어머니가 만들었지만 그렇다는 거예요. ‘육신’이라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거든요. 왜 그럴까요? 앞으로 정자와 난자를 인공수정해서 제3자의 자궁에서 기른 뒤에 데리고 와서 키우면, 그 아이는 낳은 사람의 외양은 하나도 안 닮았을 거잖아요? 그래도 낳긴 그분이 낳았잖아요. 그렇지요?”

 

“예.”

 

“또 미래에 인공자궁이 발명된다면, 그때는 부부가 결혼해도 아기를 안 낳을 겁니다. 인공수정을 해서 인공자궁에 넣어달라고 회사에 주문해 놓고는 아홉달 반 뒤에 가서 아기만 받아오면 될 거예요. 그런 것까지 생각해 보면 낳은 사람이 아니라 기른 사람이 엄마입니다. 

 


 

그리고 실제 육체는 생물학적으로 친부모를 닮지만 우리의 정신, 이 마음바탕은 기른 사람의 것을 다운 받습니다. 예를 들어서 애를 낳자마자 프랑스에 입양시켜서 프랑스인 어머니가 양육하도록 했다면, 그 사람은 외양만 동양인일 뿐 마음의 바탕이 되는 업식은 다 프랑스인 어머니의 것으로 형성됩니다. 그래서 한국적인 사고방식은 전혀 없는 사람이 되지요. 그런데 한국에서 3살까지 크다가 4살 때 입양을 가면, 마음바탕은 기본적으로 한국적인 것 위에 서양 것이 더해지기 때문에 생각은 서양식이라도 정서적으로 마음이 작용하는 건 한국식입니다. 

 

그러니까 두 분 어머니 모두 엄마의 절대적 자격이 있다고도 말할 수 없고, 또 두 분 모두 자격이 없다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두 분 중에 한 분이 양보를 하든지 해야지, 이건 질문자가 합당하게 결정하기가 어려운 문제예요. 이럴 때는 친어머니와 의논해 보는 게 좋겠어요. 새어머니는 자손이 없으니까 이런 기회가 앞으로도 없을 거잖아요.”

 

“예.” 

 

“그런데 친어머니는 앞으로 질문자 오빠의 결혼식에 참석할 기회가 남아있으니까, 먼저 친어머니한테 양해를 한번 구해 보는 게 좋겠습니다. 질문자는 종교가 있어요?”

 

“예, 천주교입니다.” 

 

“천주교라니 잘 됐네요. 그러면 질문자는 결혼식을 두 번 하면 되겠어요. 성당에서 신부님을 주례로 모시고 가족만 초대해서 천주교 식으로 한 번 하고, 또 한 번은 예식장에서 친척들 초대해서 하는 겁니다. 두 분 어머니 중에 어느 분이 천주교 신자예요?”

 

“새어머니요.” 

 


 

“그러면 예식장에서 결혼할 때는 친어머니를 모시고 하고, 친구들과 모여서 성당에서 결혼할 때는 새어머니를 모시고 하면 좋겠네요. 신랑과 시어머니한테는 ‘저희 집안 사정이 이러이러해서 제가 어느 분도 외면하기가 어려우니, 대외적으로는 생모를 모시고, 대내적으로는 양모를 모시고 결혼식을 하면 어떻겠습니까?’ 하고 의논을 드려보세요. 그렇게 하면 두 분 어머니 중 누구도 섭섭하지 않으시겠지요. 그러나 역시 제일 좋은 방법은, 친어머니한테는 다음 기회가 있으니까 양해를 해 달라고 말씀드려보는 겁니다.” 

 

“예, 감사합니다.(모두 박수)”

 

“네. 젊은 사람들은 성당에 좀 다니세요. 그래야 이런 문제가 생길 때 해결책이 나오지요.”(모두 웃음)

 

스님도 선뜻 해결책을 내놓기가 어려웠던 질문은 정말 오늘이 처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스님이 제시해준 해결책에 질문자도 환하게 웃었고, 청중들도 큰 박수로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7명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 마쳐갈 때 쯤 되자 시간은 어느덧 2시간을 훌쩍 지나 있었습니다. 쉼없이 답변을 이어가던 스님은 이제 마쳐야 될 시간이 되었다며 마무리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오늘도 긍정적 사고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며 강연을 마쳤습니다. 

 


 

“자꾸 사람을 미워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아무리 잘 나갈 때라도 너무 교만하면 안 됩니다. 교만은 재앙을 불러옵니다. 반대로 아무리 안 된다고 해도 좌절하면 안 됩니다. 꾸준히 하다보면 어느 순간에 해 뜰 일이 생깁니다. 이렇게 무엇이든 꾸준히 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욕하는데 에너지를 허비하지 말고, 세상을 좀 긍정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건 ‘다 좋다’는 얘기와 다릅니다. 넘어지면 ‘아, 이래서 내가 넘어졌구나’ 하고 교훈을 얻어서 다음에는 안 넘어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해요. 그러면 결과적으로 넘어진 게 안 넘어진 것보다 더 좋은 일이 됩니다. 그렇다고 일부러 넘어지자는 게 아니라 결과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거기서부터 또 출발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자세를 가지면 ‘실패가 곧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현실이 되고, 늘 웃고 살 수가 있어요. 

 

이런 공부를 하는 게 원래 불교이지 복 비는 게 불교가 아니에요. 그러니 틈 날 때마다 와서 종교에 상관없이 이 공부를 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볼 때 보통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종교심’이라는 게 저한테는 있는 것 같아요? 없는 것 같아요? 없어요. 저 같은 사람도 이 공부를 하는데 여러분들이 왜 못 하겠어요? 믿음은 헌법에 보장된 권리로서 각자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마음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가지느냐. 그래서 어떻게 스스로 행복하게 사느냐’에 대한 이 공부는 누구나 하셔야 됩니다. 꼭 이 마음공부를 하셔서 여러분 모두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모두 박수)

 


 

오늘도 스님으로부터 행복의 기운을 듬뿍 선물 받은 기분입니다. 열정적으로 강연을 해준 스님에게 청년대학생들은 큰 박수갈채를 보냈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로비에서는 스님의 새 책 ‘행복’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스님은 책에 사인을 해주며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린 많은 분들에게 웃음을 건넸습니다. 많은 분들이 스님에게 자신의 이름도 사인과 함께 적어달라고 했는데 스님은 “자기 이름은 자기가 적고, 내 이름은 내가 적겠다.”고 웃으며 거절해서 모두를 웃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질문을 했던 여성분에게 스님의 답변을 듣고 어땠는지 소감을 물어보니 “혼자만의 생각에 갇혀서 답을 찾기 어려웠던 문제를 스님께서 잘 꿰뚫어보시고 대답해 주셨다.”며 수줍은 듯 만족스러운 얼굴로 강연장을 나갔습니다.

 

끝으로 오늘 강연을 주관한 광주 청년정토회 자원봉사자들과 스님은 “지화자, 좋다!”라는 힘찬 구호로 다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밝고 웃는 얼굴로 친절하게 관객들을 맞이해준 봉사자들 덕분에 무사히 강연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내일은 오전 10시에 부산MBC 삼주아트홀에서 부산 시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저녁 7시에는 여수 시민회관에서 여수 시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있을 예정입니다. 

 

--------

※ 2016년 봄,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갑니다. 강연일정 확인하시고 가족, 이웃, 친구와 함께 오세요. 강연은 선착순 무료입장입니다. 질문자 접수는 강연장에서 받습니다.


전체댓글 53

0/200

사랑둥이

막힘없는 스님의 해법에
큰존경을표합니다.

2016-04-26 15:14:17

이기사

고맙습니다_()_

2016-04-24 11:44:24

박서경

스님 넘 존경합니다

2016-04-24 03:27:02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