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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울주군 두동면과 두서면에 살고 계신 마을 어르신들을 모시고 순천 선암사로 봄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농촌에서 혼자 사시는 독거노인분들은 무관심 속에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요. 해마다 봄과 가을이 되면 스님은 노인 분들을 모시고 나들이 가는 일을 해오고 있습니다.
스님은 어르신들보다 먼저 두북 정토수련원 운동장에 도착해 어르신들을 맞이했습니다. 어르신들과 반갑게 인사하며 차에 오르는 것을 도왔습니다. 버스가 출발하고 각 버스의 어르신들에게 수신기가 전달된 후 스님의 인사말과 함께 오늘 목적지인 선암사에 대한 소개가 이어졌습니다.
“오늘 가는 순천은 경상도인 하동을 지나 섬진강을 건너 전라도인 광양 다음에 나타나는 도시입니다. 선암사는 순천에 있는 조계산의 동쪽 자락에 있는데, 한국 불교 태고종의 본사예요. 다른 큰 절과 달리 새롭게 불사를 하지 않았어요. 그 덕분에 옛 모습 그대로 유지할 수 있어 옛날의 운치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절입니다.
버스에서 내리시면 15분 정도 걷는 길이 있는데, 걷기 힘드신 분들은 절에서 제공해주는 작은 버스를 타고 올라가도록 하겠습니다. 내려서 걷는 길 중에 있는 승선교가 우리나라 최초의 무지개 다리로 이 절의 유명한 볼거리에요. 또한 600년 된 천연기념물 홍매화와 백매화가 볼만한데 지금은 꽃피는 시기가 지나 꽃은 볼 수 없을 것 같아 아쉽네요.”
11시가 조금 넘어 선암사에 도착하여 미리 안내한 대로 걷거나 차로 이동하여 스님의 설명을 들으며 사찰순례를 시작했습니다.
주차장에서 절까지 15분 정도 걸으면서는 스님의 설명대로 승선교(무지개 다리)를 볼 수 있었습니다.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신선이 승천하는 곳이라고 해서 ‘승선교’라고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 승선교를 지나
바로 연이어서 또 하나의 보물인 ‘강선루’가 나타났습니다. 이곳은 반대로 신선이 내려 앉는다는 곳입니다. 때마침 범종루에서 종이 울렸는데 스님은 “불교에서 종을 울리는 이유는 지옥 중생을 구제하려는 의미이고, 북을 치는 이유는 짐승들을 구제하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목어는 물고기를, 운판은 새들을 구제한다고 합니다. 불교는 이렇게 사람뿐만 아니라 지옥중생과 짐승까지도 구원하고자 하는 넓은 사고를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법회를 하기 위해 ‘만세루’로 이동하면서는 버스에서 간략하게 소개했던 선암사의 유래에 대해 더욱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선암사의 기원은 신라 진흥왕, 백제 성왕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도화상이 창건하였고, 이때로부터 1500년이 된 절입니다. 그 이후 통일신라 말에 도선스님에 의해 선암사로 재창건되었는데, 이때로부터는 1200년이 됩니다. 고려시대에 왕자의 신분으로 출가해서 스님이 된 대각국사 의천이 다시 선암사를 크게 중창했는데, 대각암에는 그 스님의 유골을 모신 승탑이 남아 있어서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선암사도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절과 마찬가지로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어요. 임진왜란 때 불에 탄 이유는 일부러 불태웠다기 보다 스님들이 주축이 된 의병들의 본거지가 사찰이었기 때문입니다. 의병을 소탕하려다 보니까 절을 불태웠던 겁니다. 6.25 때도 많은 사찰이 불에 타서 소실되었습니다.”
작은 사찰이지만 담길을 따라 꽃나무 아래를 걸었습니다. 스님은 “절 예쁘죠. 오목 조목하니…” 라며 웃음을 머금었습니다. 모퉁이를 돌아 조계산 전경이 펼쳐지자 어르신들은 “아! 경치가 끝내주네.” 하고 크게 감탄을 했습니다.
또 스님은 탐스럽게 열매처럼 핀 왕벚꽃이 나타나자 “아따 좋다 좋아!” 라고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어르신들도 장면 장면에 따라 터지는 스님의 리액션에 함께 웃으며 기뻐했습니다.
▲ 왕벚꽃
‘신검당’을 지나면서는 현판을 읽으면서 ‘우리의 번뇌를 자르고 지혜를 증득한다’라는 의미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원통각’은 관세음보살을 모신 곳입니다. 여기서는 옛날 어느 스님이 꼬박 1000일을 기도했는데도 아무 영험이 없자 실망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할 때 어느 여인이 홀연히 나타나 구해주었는데, 그 여인이 알고 보니 관세음보살이었다는 전설 같은 옛이야기를 재미있게 해주었습니다. 또 정조대왕이 아들을 한참 동안 얻지 못하다가 이곳에서 기도를 한 후 순조 임금을 낳게 되었다는 영험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만세루에 도착해서는 주지스님인 호명 스님의 인사말씀을 청해 들은 후 이어서 법륜 스님이 어르신들을 위한 법문을 들려 주었습니다.
특히 스님은 늙었을 때 꼭 유의해야 할 점을 어르신들의 눈높이에 맞춰 다양한 비유를 들어가며 아주 재미있게 얘기해 주었습니다.
“제가 작년에 법회할 때 나이 들어서 하면 안 되는 것이 있다고 했는데, 다들 기억하세요?”
“예.”
“첫째, 과로하면 안 됩니다. 젊을 때와 달라서 이제 과로해서 한번 몸져누우면 건강에 아주 해롭습니다. 그래서 늘 과로를 조심하셔야 합니다. 농사도 재미로 지어야지 돈 생각하고 지으면 안 됩니다. 젊을 때는 악착같이 농사를 지어서 돈을 벌어야 했지만 이제는 운동삼아 지으세요. 아무 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오히려 건강에 안 좋으니까요.”
“농사는 운동 삼아 지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농사를 재미삼아 심심풀이로 하시라는 겁니다. 죽기 살기로 하면 힘들어서 못 합니다. 요즘 제가 젊은 사람들을 상담해 보면 이런 하소연을 많이 합니다. ‘부모님께 농사를 짓지 말라고 했는데도 부모님이 농사일을 벌려놓고는 저희더러 주말마다 와서 거들라고 하세요. 그래서 막상 가면 여기저기 아프다고 하시고, 또 아침이 되면 호미를 찾아 들고 밭에 가세요. 아프다고 할 거면 농사를 짓지 마시고, 농사를 지으려면 아프다고 하지 마시라고 해도 부모님이 말을 안 듣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자식들더러 자꾸 주말에 오라고 하지 마세요. 아셨지요?”(모두 웃음)
“예.”
“그리고 요즘 같은 세상에는 며느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됩니까? ‘우리 아들 안 버리고 같이 살아주는 것만 해도 고맙다’ 라고 생각해야 됩니다. 요즘에는 여자들의 발언권이 커졌으니까요.(모두 웃음)
제가 며칠 전에 중국 북쪽 몽고족이 사는 도시에 다녀왔어요. 거기가 바로 우리 조상들이 5000년 내지 6000년 전에 살았던 곳이어서 유물이 엄청나게 많이 나왔다고 해서 이번에 다녀왔거든요. 그런데 지도만 보고 찾아가려니까 위치를 잘 모르겠기에 그 동네 할아버지께 여쭤보고 찾아갔어요. 유적지를 찾아가는 동안 그 할아버지와 대화하면서 알게 된 걸 여러분께 말씀드려 볼게요.
중국의 시골에는 여자들이 다 도시로 나가버려서 마흔에서 오십 먹은 노총각들이 많이 있어요. 그런 노총각들은 결혼하기가 어려우니까 북한여자라도 데리고 와서 같이 살려고 해요. 또 북한여자들은 중국으로 넘어왔으니까 어디에라도 숨어서 살아야 되잖아요. 그래서 요즘 우리나라에 베트남 여자들이 시집오듯이 북한여자들도 그렇게 중국 시골로 시집가는 거예요. 그런데 이번에 갔더니 결혼하려면 여자 집에 20만 위안, 즉 4,000만 원은 줘야 한 대요.(모두 놀람) 그래서 제가 ‘촌에 무슨 그런 큰 돈이 있느냐?’고 물으니까 ‘아들들이 촌에 안 있고 다 도시로 나간다. 그래서 돈을 벌어서 그 돈을 마련하면 장가가는 거고, 아니면 못 가는 거다. 그리고 요즘은 도시에 아파트도 마련해줘야 된다’고 말하더라고요. 아파트는 30만 위안, 즉 6,000만 원이 든답니다. 그러니까 아들 장가를 보내려면 얼마나 든다는 거예요?”
“1억 원이요.”
“그래서 제가 ‘그래서야 어떻게 장가를 보내느냐?’고 했더니 ‘그렇기 때문에 못 보내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세상이 지금 이렇게 바뀌었어요. 그러니까 며느리를 자꾸 구박하지 마세요. 만약 며느리랑 아들이 싸우면 여러분은 누굴 야단쳐야 됩니까?”
“아들이요.”(모두 웃음)
“예, 아들을 야단쳐야 돼요. ‘입 다물고 가만 있어라. 며느리가 너랑 살아주는 것만 해도 고맙게 생각해라’ 이래야지, 아들 편만 들면 안 됩니다. 지금 세상이 많이 바뀌었는데, 50년 전, 60년 전 옛날 생각만 하고 살면 안 됩니다.
농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농사를 죽기살기로 짓지 마세요. 그냥 놀이 삼아 조금 지어서 본인 드시고 남는 게 있으면 아들딸 왔을 때 상추나 좀 뽑아주고 그러세요. 여러분 입장에서는 아들이 와서 농사일을 도와주면 고맙겠지만 울산이나 부산에 사는 아들 내외가 여기까지 왔다가 집으로 돌아가서는 싸웁니다. 싸우는 거 아세요?”
“앞으로는 오라고 안 할게요.”(모두 웃음)
“예, 자꾸 자식들 더러 오라고 하지 마세요. 알아서 와주면 고맙지만 억지로 오라고 하지는 마세요. 아들이 지금 여러분들 농사 좀 거드는 게 중요해요? 아들 내외가 안 헤어지고 잘 사는 게 중요해요?”
“안 헤어지고 사는 게 중요하지요.”
“예, 농사 좀 거들어주고 사는 게 효자가 아니고, 안 헤어지고 잘 사는 게 효자예요. 저도 촌에 살아봐서 여러분들 입장을 이해는 합니다만 땅을 놀리는 한이 있더라도 무리하지는 마시고, 과로하지도 마세요.
둘째, 과식하지 마세요. 맛있다고 너무 많이 먹어서 배탈 나면 안 됩니다.
셋째, 술을 몇 잔 마시는 건 괜찮지만 과음하는 건 안 됩니다. 젊을 때는 토하고 자더라도 아침에 일어나면 괜찮았을지 모르지만 연세 들어서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이 세 가지는 하지 마시라고 작년에도 말씀드렸는데, 기억하세요?”
“네.”
“그리고 자식이 사업하다가 부도가 나서 어렵다고 하소연 해도 내 집, 내 먹을 것 심을 집앞 땅, 묘자리 할 선산, 이런 것들은 은행에 잡히면 안 됩니다. 부도가 나서 집이 없느니, 길거리에 나앉느니 해도, ‘엄마, 조금 있다가 금방 갚을게’라고 해도, 그런 말은 절대로 믿으면 안 됩니다. 저희 동네에도 그러다가 집이고, 땅이고, 다 도시 사는 사람들한테 팔고는 고향에 못 돌아오는 사람이 많습니다. 빈터라도 남겨놔야 나중에 아들 딸이 늙어서 고향으로 돌아올 거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욕심으로 재산을 지키라는 게 아니라 나를 위해서, 나중에 아들 딸을 위해서 고향 땅을 지키라는 겁니다.
또 너무 큰 땅을 갖고 있으라는 게 아니고 누울 묘지 자리랑 식량 일굴 땅 몇 마지기 정도는 남겨놓아야 합니다. 내가 죽고 난 뒤에야 땅을 팔든지 말든지 알게 뭐예요. 그런데 살아있을 때는 꼭 내가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늙어서 집도 땅도 없으면 추해지니까요.
아들 딸들이 안 해 줘도 우리끼리 이렇게 1년에 두 번씩 놀잖아요. 또 동네 청년들이 노인잔치도 해 주잖아요. 그리고 저희 동네에도 보니까 누가 차를 가지고 와서 동네 어르신들을 싣고 목욕도 다녀오더라고요. 그러니까 옛날에 어려울 때도 살았는데, 요즘 같은 세상에 왜 못 살겠어요. 그지요? 그러니 부디 편안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화를 버럭버럭 내는 것보다는 참는 게 좋은데, 참기만 하면 병이 됩니다. ‘안 참으면 어쩌냐?’ 하시는데 참지 말라는 게 아니라 이해하시라는 겁니다. 며느리가 꼴 보기 싫어도 그걸 참을 게 아니라 ‘며느리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내 입장에서는 그게 아니지만, 며느리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이렇게 이해하세요. 며느리가 옳다는 게 아니고 ‘며느리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이해하면 화가 안 납니다. 화가 나더라도 덜 나요.
며느리가 잘 했다는 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자식이 ‘선산을 잡히자’고 하면 ‘이놈아, 선산까지 팔아먹으려고 하느냐?’ 하지 말고 ‘자식이 사업을 하다 보니 궁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이렇게 이해하시라는 거예요. 그렇다고 주지는 마시고요. 아시겠어요?” (모두 웃음)
“예.”
“그럴 때는 ‘아이고, 그래. 네 마음 알겠다. 네가 지금 어렵구나’ 이렇게만 얘기해 주세요. 절대로 집문서, 땅문서는 주지 마시고요. 집문서, 땅문서를 주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입니다. ‘엄마, 그렇게 내 마음을 이해한다면 선산이라도 잡혀주면 되잖아’라고 해도 ‘너를 이해는 하지만 주지는 못 하겠다’라고 하세요. ‘너 그러면 안 된다’ 하면서 화를 내면 내 건강에 해롭고, ‘네 말이 옳다’고 하면 재산을 줘야 되니까 내 살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러니까 제일 좋은 방법은 뭐겠어요? 내가 자식을 이해하면 화가 안 나고, 자식에게 재산을 안 주면 내가 먹고는 살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런 걸 ‘꾀가 많다’고 해요. 꾀가 많다는 건 나쁜 뜻이 아닙니다. 자기 살 궁리는 스스로 한다는 뜻이에요. 스스로 살 궁리는 해야 돼요.
그래서 제가 젊은 사람들한테는 ‘노인을 고치려고 하지 마라. 평생 그렇게 살았는데 어떻게 고치겠느냐? 그러니까 아침에 호미 찾으면 호미 갖다드리고, 저녁에 아프다고 하면 허리 주물러드리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합니다. 자식이 아무리 ‘어머니, 이러지 마세요. 아버지, 이러지 마세요’ 해도 노인들은 ‘응. 알았다’고 말만 하지 결국은 당신네들 뜻대로 하니까요. 그래서 젊은 사람들은 노인들이 하자는 대로 따르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제가 오늘은 젊은 사람들이 아니라 여러분들을 만났으니까 ‘젊은이들을 생각해서 농사 너무 벌이지 마라. 그리고 잔소리 너무 하지 마라’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자식이 안 찾아오면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자식들이 안 오니까 내 살림이 좋구나’라고 고맙게 생각하세요. 또 자식이 찾아오면 ‘그래도 인사라도 오니 고맙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안 그러면 나이 들어서 자식 때문에 속상한 일만 생깁니다.”
어르신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스님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공감했습니다. 어떤 분은 맞장구도 치면서 아주 기뻐했습니다.
이렇게 간단히 법문을 한 후 혹시 질문이 있으면 무엇이든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모두 같은 동네 사람들이다보니 소문이 날까 걱정되어서 그런 것 같았습니다. 더 이상의 질문이 없자 스님은 앞에서 강조한 ‘놀이삼아 해보라’는 말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면서 법회를 마쳤습니다.
“여기 공기 참 좋지요? 또 내가 심은 것 키워서 내가 먹으니까 좋으시지요? 요즘 식재료들이 오염이 되어서 문제가 많은데, 내가 심어서 깨끗하게 키워서 먹으니 얼마나 좋아요?”
“예.”
“여러분들이 사는 곳은 물이 맑기로 유명한 곳이잖아요. 가뫼들 가보시면 얼마나 좋습니까? 전 거기가 설악산보다 더 좋아요. 최근에 ‘태화강 백리길’이라는 관광상품으로 만든 후부터 관광객들이 너무 많이 다녀서 좀 문제이긴 합니다만, 물이 좋은 데서 사니까 건강에도 좋잖아요. 그렇다고 노인정에서 가만히 놀기만 하면 건강에 안 좋으니까 밭일도 조금씩 하기는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농사로 돈벌이를 하려고 하면 안 되고, 놀이 삼아 소일거리로 하면서 편안하게 생활하셔야 해요.”
스님의 감로 법문에 어르신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법회가 끝나고 나서는 근처 식당으로 이동해 삼합과 각종 산나물이 곁들여진 점심식사를 함께 했습니다.
점심식사 후에는 야외 평상에 앉아 어르신들과 함께 여흥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각 마을에서 한 분씩 나와 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신나는 노래 한 곡씩을 불렀습니다.
올해 89세라고 소개한 한 어르신은 “세계적으로 덕 높으신 법륜 스님이 우리 마을 분이셔서 저는 참으로 영광입니다.”라며 노래 한 자락을 멋들어지게 불렀습니다. 또 다른 어르신은 “해마다 봄 가을로 이렇게 나들이와 잔치를 열어주시니 우리 마을 사람들은 너무 너무 행복하고 축복받은 사람들입니다.”라고 인사한 후 노래를 불렀습니다. 흥겨운 노래 가락은 쉼없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여흥을 모두 마치고 나서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모두 버스에 다시 탑승했습니다. 스님은 봉사자들에게 “돌아가는 길에도 어르신들이 즐겁고 신나게 즐기시도록 잘 도와주세요” 라고 재차 당부했습니다. 마을 입구 앞까지 길 안내를 하며 한 분 한 분에게 인사를 하며 조심히 내려드린 후 봄나들이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내일은 두 번의 즉문즉설 강연이 있습니다. 오전 10시에는 충주시 문화회관에서 충주 시민들을 위해, 저녁 7시에는 목포시민문화체육센터에서 목포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이 열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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