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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정토회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전국 대의원 회의에 참석해 회의를 시작하기 전 입재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오늘도 새벽 예불과 108배 정진을 하며 하루를 시작한 스님은 아침 7시에 외부 손님과 평화재단에서 조찬 모임을 가진 후 8시 20분에 서울을 출발해 문경 정토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문경 정토수련원에서는 아침 10시부터 전국 대의원 회의가 열렸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새벽부터 출발해 문경으로 모인 100여 명의 정토회 대의원들은 삼귀의 반야심경을 봉독한 후 스님에게 입재 법문을 청해 듣고자 기다렸습니다.
원래는 전국 대의원 회의가 대전 정토법당에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같은 시간에 가을 불교대학 특강수련이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진행되고 있어서 법륜 스님을 비롯해 법사단이 강의를 해야 해서 이동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문경에서 회의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통사고가 났는지 고속도로가 계속 막혀서 스님은 11시가 넘어서 겨우 문경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예정된 시간 보다 30분이 늦어진 채 곧바로 입재 법문이 시작되었습니다.
▲ 전국 대의원 회의 입재식
매년 11월에 열리는 전국 대의원 회의는 내년도 사업 계획과 예산을 심의하고 결정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정토회는 일정한 자격을 갖춘 회원을 정회원으로 임명하고, 정회원들의 투표에 의해 각 지역별로 대의원을 선출하는 대의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전국 대의원 회의는 국회와 비유하면 정기 국회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정기 국회가 지난 9월부터 열려서 12월 초까지 예산 심의를 하고 있는데 여야가 서로 갈등하는 바람에 제대로 진행이 안 되고 있어서 국민들의 걱정이 많은 상황이죠. 스님은 이런 국회의 모습을 예로 들며 국가를 위해 국회의원이 하는 일이 곧 정토회의 대의원이 하는 일과 비슷하다고 하면서 대의원은 어떤 자세로 활동해야 하는지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 전국 대의원 회의
먼저 대의원은 정토회의 설립 취지와 목표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정토회는 어떤 일을 하고자 설립된 단체인지 설명해 주었습니다.
“발전이라는 게 전 세계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우리는 개중에서도 특히 고속으로 발전한 나라다 보니 발전을 하면서 나타나는 ‘환경 파괴’, ‘공동체 붕괴’, ‘자아 상실’ 등의 부작용 또한 세계에서 손꼽히게 심한 상태입니다. 나쁘게 말하면 더없이 혼란스러운 나라에 살고 있고, 좋게 말하면 우리나라의 문제를 풀면 세계인의 문제를 푼다고도 할 수 있어요. 우리가 제일 모순이 심한 편이기 때문에 우리의 문제를 풀면 세계의 문제가 풀립니다. 진흙탕 속에서 한 송이 연꽃을 피우듯이 가장 모순과 혼란이 극심한 이곳에서 우리가 세계의 문제를 풀 답을 찾아야 해요.
더 이상은 다른 곳에서 답을 찾아서 여기에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외형의 발전은 다른 곳에서 모방해 와서 이루었지만 이제는 그것도 거의 끝에 도달해서 성장이 정체됐어요. 우리 내부적으로 일어나는 모순이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모순보다 훨씬 더 극심하기 때문에, 우리가 답을 가진다면 다른 곳에 도움이 되지만 다른 곳이 가진 답은 우리에게 별로 도움이 안 됩니다.
우리 앞에 놓인 선택은 두 가지입니다. 급속도로 붕괴될 것인가? 아니면 이 두 가지 모순을 극복할 창조적인 대안을 찾아서 우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물론 전 인류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양약으로 삼을 것인가? 이것은 위기이자 기회예요. 이 위기를 극복하면 우리는 세계 문명의 새로운 꽃을 피울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정토회는 이런 진단과 가능성 위에 창립되었습니다. 출발 자체가 ‘단순한 불교 단체를 하나 만들자’, ‘불교계가 어려우니 좀 잘 해보자’, ‘좀 나은 시민 단체를 하나 만들자’, ‘우리나라를 좀 잘 만들어보자’, 이런 수준을 훨씬 넘어서는 문제의식이에요.
그런데 여기에 참여한 사람들이 이런 설립취지를 꼼꼼히 읽지 않아요. 정토회가 어떤 포부와 문제의식, 가능성에 맞춰서 운영되고 있고 운영되어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 중에 어떤 것을 계승해야 하고 어떤 것을 시정해야 하는지, 어떤 것이 부족해서 보충해야 하는지와 같은 문제의식을 가지려면 목표의식이 분명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정토회 안에서 새로운 방향, 개선점, 보충하는 역할에 대해 지도법사인 제가 많은 아이디어를 내고 시도한 이유가 ‘스님의 역량이 탁월해서다’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신비주의에 빠져서 결국에는 ‘스님 없으면 못 한다, 정체된다’라는 결론밖에 안 나와요. 제가 가진 역량은 여러분과 똑같습니다. 부처님이 저만 사랑해서 뒤에서 영감을 주는 것도 아니에요. (모두 웃음)
다만 저는 목표의식과 문제의식이 뚜렷한 편이라면 여러분은 그 문제의식이 덜 뚜렷하다는 점이 차이입니다. 그냥 좋으니까 따라오는 수준을 넘어 이걸 꼼꼼히 살펴서 우리가 지금은 이렇게 부족하고 작은 씨앗이지만 그런 목표를 추구하며 나아가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현실 또한 수용해야 합니다. 현실을 수용한다고 해서 현실에 안주하면 안 되지만, 목표만을 앞세우느라 비현실적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이론이나 말로만 가지 말고 이 현실에서 실현해나가야 해요.”
목표의식을 뚜렷이 갖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스님의 이야기를 통해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뚜렷한 목표의식을 어쩌면 ‘원(願)’이라고 표현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이런 일을 하는 정토회 회원들은 어떤 자세로 이 활동에 임해야 하는지 수행적 태도에 대해 강조했습니다. 즉, 이런 많은 활동을 하면서도 개인은 늘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였습니다.
“늘 강조하지만 수행을 기초로 해야 합니다. 우리는 수행자로서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합니다. 그저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들자는 것도 아니고, 모인 우리만 행복하면 된다는 것도 아닙니다. 국가는 발전해야 하고 국민은 행복해야 한다는 목표처럼, 공동체인 정토회는 발전해야 하고 그 속에 있는 정토회 회원들은 행복해야 합니다.
첫째, 정토회 회원들이 행복하려면 개개인이 수행이 되어야 해요. 둘째, 정토회가 발전하려면 사회적인 모순들을 우리가 해결해내야 합니다. 대안을 내야 대중이 지지를 해줍니다. 지친 대중에게 어떤 수행법을 전달해서 한 사람 한 사람 참여하면 행복한 개인들은 늘어나지만, 그들이 사는 공동체가 건강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공동체가 건강해지려면 제도적 모순과 잘못된 관습은 개선하고 좋은 것은 계승·발전시켜야 해요. 그래서 우리는 사회적 실천을 피할 수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회적 실천을 하는 개인은 수행자가 돼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좋게 바꾸고 정토회를 발전시키고 법당을 늘리고 회원을 확충시키고 통일운동을 하는 등 여러 가지 일을 하다 보면 힘들고 지치기 쉬워요. 가정생활도 해야 하고 회사도 다녀야 하고 정토회 활동도 해야 하다 보니 몸도 지치고 가족들의 불만도 생깁니다. 이걸 극복하는 게 바로 수행입니다. 그 속에서 내가 지쳐 나가떨어지는 존재가 아니라 더 힘을 얻어가는 존재로 바뀌어야 하는데, 그게 수행이에요. 아침마다 매일 절은 하지만 활동하면서 지쳐 나가떨어진다면 그건 절만 했지 수행을 한 건 아니에요. 이런저런 과제가 닥치지만 수행적 관점을 딱 유지하고 해나간다면 내가 거기에 구애받지 않는 자가 되거나 그것들이 융합돼서 더 이상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장애로 남아 있더라도 내가 거기에 쓰러지지 않고 넘어설 수 있고, 그러다 보면 그것들이 융합되어서 장애가 아니라 오히려 토대가 되어줍니다. 반대하는 남편에게 내가 억눌리는 게 아니라 구애받지 않는 존재가 되고, 나아가서는 반대하던 남편이나 자식이 오히려 나의 협력자, 후원자, 동지가 되는 과정을 거쳐나가는데 그 핵심이 수행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관점을 확실히 잡아서 행복해야 합니다.
내일 하다 그만두든, 내일 죽든, 내가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을 하는 것보다 이 일이 더 보람차고 의미가 있어야 해요. 붓다의 길을 따르다가 중간에 희생된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목련존자도 이교도들에게 희생됐고, 앙굴리말라도 희생됐고, 병이 나서 중간에 죽은 사람들도 많았어요. 경전을 보면 그렇게 마지막을 맞는 제자들이 부처님의 손을 잡으면서 한결같이 한 이야기가 ‘부처님, 저는 아무런 후회도 없습니다’였습니다.”
불법을 전하면서 엄청난 희생이 뒤따랐지만 죽는 순간까지 아무런 후회가 없었다는 부처님의 제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작은 일에도 대가를 바라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많이 되돌아봐 졌습니다.
그러면서 스님은 이런 수행의 힘을 바탕으로 해서 우리 나라가 처한 분단의 모순을 극복할 뿐만 아니라 그 모델을 토대로 인류의 위기도 극복해 나가보자는 큰 비전을 그려주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수행의 힘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모순, 즉 우리나라가 처한 분단의 모순과 통일의 과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인류가 처한 절대빈곤의 문제, 온갖 차별의 문제, 인권 문제, 평화 문제, 환경 문제, 빈부격차의 문제 등을 해결할 모델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지금 당장 한꺼번에 해결하자는 건 아니지만 모델을 만들자는 거예요. 좁게는 우리 정토회가 운영되는 이 방식이 작은 모델입니다. 이것이 실험실의 모델이라면 밖에 가서 실천가능한지를 봐야 해요. 정토회는 운전 교습소에서 하는 연습과 같다면 사회적 실천은 도로주행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그런 실천 모델이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이 그런 나라가 될 수 있는지 적용해보자는 것입니다. ‘대한민국만 잘 되면 된다’는 애국주의나 ‘우리는 민족과 나라를 초월했기 때문에 나라 일에는 관심을 안 갖는다’는 초월주의가 아니라, 우리가 인연되어 살고 있는 이 나라를 가지고 실험을 해보는 겁니다. 과연 이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지, 평화를 유지해낼 수 있는지, 극단의 모순을 우리가 얼마나 해결해낼 수 있는지 조금 더 큰 실험을 해보는 거예요.
정토회는 우리끼리 하니까 조금 힘들어도 우리가 만들어 나갈 수 있어요. 그러나 온실에서 실험한 것은 밖의 노지에 나가서 실제로 농사를 지어보고 성공해야 농민들에게 널리 보급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좀 더 큰 실험을 해 봐야 인류에게 실제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실현 가능한 모델이 돼요. 그래서 우리가 대한민국의 문제에 집중하는 것은 단순한 애국심을 넘어서는 문제입니다. 우리가 여기 났기 때문에 나라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저 제 나라만 사랑하는 애국심이 아니라 우리가 전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는 그런 모델로 이 나라를 잘 만들어보자는 거예요.
정토회의 설립취지는 불교중흥과 민족중흥입니다. 불교중흥이라는 것은 정토회가 새로운 불교의 모델이 되자는 뜻이고, 민족중흥이라는 것은 단순히 국수주의적인 애국주의를 넘어서서 우리나라를 이런 모순을 극복할 모델로 만들어보자는 뜻입니다. 이러한 우리의 실험을 기반으로 해서 자신감을 가지고 이것을 좀 더 보편화시켜서 인류애를 실현하는 쪽으로 확산시켜보자는 거예요. 이것이 제1차 만일결사의 목표이고, 인류애를 실현해보는 것이 제2차 만일결사의 목표입니다. 그런 큰 목표 속에서 지금 제8차 천일결사에 다다랐고, 그 8차 천일결사의 목표를 달성하고 마무리하는 내년도의 사업계획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모순을 극복하는 길이 곧 인류 문명의 새로운 대안이 된다는 말씀에 정신이 번쩍 차려졌습니다. 스님은 정말 큰 그림을 그리고 이 일을 하고 해나가고 있음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이런 큰 목표를 실행해 나가기 위한 대의원의 역할은 무엇인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첫째, 대의원 회의는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해서 의사를 결정하는 기구입니다. 행정처가 결정된 의사를 집행하는 기능을 한다면 여러분은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기능을 해야 해요.
둘째, 대중의 의견을 수렴만 한다면 민주주의가 갖는 최대의 위기인 대중 추수주의, 즉 세상을 바꿔가는 게 아니라 세상에 따라가는 쪽으로 가기 쉽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은 다시 그 회원들이 정토회의 목표를 끊임없이 숙지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물론 연수원에서 중점적으로 해야 하지만 여러분도 그런 역할을 동시에 해야 해요. 회의할 때도 내 의견을 갖고 하기보다는 민주적으로 대중들의 의견을 잘 수렴해줘야 합니다. 또한 대중이 정토회의 이상과 목표를 향해 힘을 모아가도록 돕는 역할도 해야 합니다. 행정부가 끌고 가는 역할을 한다면 여러분은 뒤에서 밀어주는 역할을 해야 해요. 이런 두 가지 역할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셋째, 정토회 안에서는 앞에서 방향을 잡아가는 역할, 그래서 사업계획을 심의하고 결정해주는 역할을 해야 해요. 또 한 해를 마치면 결산을 하고 일이 제대로 됐는지 평가를 해야 돼요. 아직 감사 기능이 제대로 없는데 앞으로 중간 과정에 감사 기능을 추가해야 합니다. 그렇게 계획 수립을 승인해주고, 중간에 제대로 되는지 감사 기능을 해주고, 결과가 나오면 결산을 해주고요. 결산은 사업결산 뿐 아니라 예산결산도 해줘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 당장의 현안 처리도 하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이것 역시 연습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세상에 좋은 일이어야 할 뿐 아니라 우리가 일하는 방식도 세상에 모범이 될 만해야 합니다. 과정을 좀 잘 못하더라도 결과가 좋을 수도 있어요. 독재를 해서라도 세상에 좋은 일을 만들어낼 수도 있잖아요. 그럴려면 성인 군자가 정치를 해야 할 텐데, 우리는 그런 성인 군자가 아니고 모자이크 붓다입니다. 부족한 우리들이 모여서 일한 결과가 부처님이 하시는 일처럼 되는 거예요. 부족한 우리들이 그런 결과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가장 최종 의결기구가 바로 대의원회입니다. 그래서 정토회가 하는 일은 그 과정도 모범적이어야 하고, 또는 모델이 될 만해야 해요.
그런데 지역에 다니면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과정에는 아직 일방통행이 많은 것 같아요. 사업을 추진해야 하다 보니 효율성이라는 문제와 과정의 민주성이라는 문제가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것 같아요. 상층은 그래도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것 같아요. 법사단 회의는 민주적으로 이루어지고, 대의원 대회도 어느 정도 그렇고, 집행위도 거의 민주적으로 진행되고요. 그런데 법당 수준으로 내려가면 거의 독재 수준입니다. 의견 수렴도 잘 안 되고, 집행도 상명하달식이이에요. 수행의 과제인 ‘예 하고 합니다’가 행정 집행의 명심문으로 쓰여서 뭔가 문제제기를 할라치면 ‘명심문이 뭐라고요?’ 이렇게 하면서 밀어붙인다면 이건 좀 문제가 있어요. (청중 웃음)
그렇다고 의견을 다 수렴해주는 쪽으로 하다보면 집행이 안 되죠. 목표가 있어서 그 목표를 달성해야 하다 보니 이런 부작용이 생기는데, 대의원들이 이제는 법당 단위에서도 어떻게 민주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집행부가 문제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풀라는 게 아니에요. 민주적으로 하면서도 집행이 일사불란한 길을 찾아야죠. 이게 모순이에요. 민주적으로 하려면 집행이 어렵거든요. 집행을 잘 하려면 지금까지 인류가 개발한 전제적인 방식이 효율적이에요. 중국은 전제적인 방식을 따라서 집행은 잘 되지만 민주주의가 잘 안 되고, 미국은 민주적인 건 잘 되지만 그러다보니 포퓰리즘에 빠져서 효율적이지 못하고 나눠먹기식이 됐어요. 그래서 니콜라스 베르그루엔(Nicolas Berggruen)이 만든 베르그루엔 거버넌스 연구소에서는 동양식 정치의 전통, 즉 유교적 정치의 전통인 전제 정치 혹은 왕도 정치와 서양에서 전통으로 내려온 민주 정치를 서로 어떻게 보완·융합해서 새로운 정치 시스템을 마련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토회는 그 사람보다 이걸 먼저 고민한 거예요. (청중 웃음)
정토회가 창립되기 전에 ‘서원과 연대’라고 하는 잡지를 발행한 적이 있습니다. ‘서원’이라는 것은 개인이 철저하게 수행을 해서 우리가 먼저 행복한 사람이 되면서 이 땅을 정토화하는 실천을 하자는 것을 말합니다. ‘연대’라는 것은 그것을 상호 민주적으로 하자는 것을 말합니다. 민주적으로 운영하되 수행자이기 때문에 일사불란함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제도적으로 밀어붙이거나 강압에 의한 일사불란함이 아니라, 수행자들이 모여있기 때문에 ‘합니다’ 하면 ‘네’ 하고 받아들여서 일사불란하게 하는 거예요. 그러나 회의를 할 때는 민주적으로 연대하고요. 이런 ‘서원과 연대’라는 문제의식을 가졌던 것은 바로 ‘이 두 가지 모순을 어떻게 극복할 거냐’에 대한 초보적인 문제의식이었어요. 정토회는 처음부터 그런 입장과 목표를 두고 창립되었습니다.”
정토회를 창립하기 전부터 효율성과 민주성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문제의식을 가졌었다는 이야기에 모두 감탄을 하면서 지금의 현실도 함께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정토회가 창립된지 20여 년이 흘렀지만 지금 그 실험은 진행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입재 법문을 마치면서 스님은 이 모순을 극복하는 길은 바로 개개인들이 수행자적 관점을 확실히 갖는 것이라고 명쾌하게 정리해 주었습니다.
“이런 토대 위에서 효율성과 민주성을 어떻게 융합해 내느냐가 우리의 과제입니다. 쉽지는 않겠지요. 쉬우면 다른 데서 이미 다 했을 테니까요.
제가 보기에 이 일은 수행자라는 관점만 확실히 가지면 가능합니다. 그런데 수행자적 관점을 갖지 않으면 어떤 질서를 만들거나 사회를 변화시키려면 부담이 되고 억압이 됩니다. 그러면 괴로워지니까 수행의 본분에 어긋난다는 문제가 발생해요. 행복하려고 여기 왔는데 다시 괴로워지고, 세상이 너무 힘들어서 여기 왔는데 더 힘들어져버려요. 그래서 우리가 수행적 관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고, 그 중에서도 대승보살의 수행적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명상하고 절하는 것만 수행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이런 과제를 수행으로 돌려서 상구보리(上求菩堤)하고 하화중생(下化衆生)한다는 수행적 관점을 가질 때에만 우리의 이런 이상을 실현할 최소한의 모델이라도 만들 수 있습니다. 인류 문명의 꽃을 피우는 건 우리 후손들이 해야 할 일이지만, 그럴려면 우리가 우리 시대에 그 씨앗을 심고 싹을 틔워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수행적 관점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씀이 가슴에 깊이 남았습니다. 왜 스님이 항상 수행을 강조하는지 더 큰 시각에서 다시 한 번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스님의 입재 법문을 듣고 있는 대의원들의 눈빛은 반짝 반짝 빛이 났습니다. 간간히 터져 나오는 웃음 속에는 공감의 뜻과 실천에 대한 의지가 가득 묻어 났습니다. 모두들 스님이 그려주는 비전을 나의 비전으로 삼으며 마냥 설레여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렇게 정토회의 설립 취지와 목표, 대의원의 역할에 대해 자각하는 시간을 가진 후 대의원들은 내년도 사업계획과 예산에 대한 심의를 진행했습니다. 분과별로 흩어져서 꼼꼼히 검토를 해보고 같이 토론도 해보는 등 다양한 문제점과 가능성을 발견하며 함께 의견을 모아 나갔습니다.
대의원들이 열띤 토론을 하고 있는 사이에 스님은 집무실에 머물며 오후 내내 새책 원고 집필 작업을 했습니다.
내일은 새벽 6시부터 9시까지 경전반 특강수련 참가자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오후에는 전국 대의원 회의를 마치며 회향 법문을 할 예정입니다.
※ 법륜 스님의 세계 100회 강연을 한 권의 책으로 엮은 '야단법석'을 지금 인터넷 서점에서 만나보세요. 14만 킬로미터의 여정에서 만난 2만 2천여 명 세계인과의 행복한 대화가 생생하게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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