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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모교인 경주고등학교를 방문하여 후배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곧바로 두북 정토수련원 법당으로 이동한 스님은 5시부터 법사단과 함께 새벽 예불과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마친 후에는 아침 식사를 한 후 곧바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텃밭 채소들을 위해 물을 주었습니다. 어제는 하루 종일 남산 순례를 하면서 걸었고, 저녁에는 즉문즉설 강연을 하며 계속 서 있었기 때문에 몸이 많이 피곤했을 법도 한데 스님에게는 농사일을 할 수 있는 여유 시간이 항상 부족하기 때문에 아침부터 바쁘게 일을 했습니다.
8시에는 신규 법사님들과 함께 탑곡 정토수련원으로 올라가 가을 배추를 심어놓은 밭에도 물을 듬뿍 주었습니다. 올 가을에는 탑곡에서 생산한 배추로 맛있는 김장 김치를 담굴 예정인데, 이곳 김치가 아주 맛있다며 주위에 소문을 많이 내어놓은 터라 스님도 책임감이 느껴졌는지 배추 한 포기 한 포기에 정성을 듬뿍 기울였습니다.
스님은 농사일 하는 것을 가장 즐거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농사일에 여념이 없는 모습을 보니 언젠가 스님의 꿈이 무엇이냐는 청년의 질문에 “은퇴하면 농사일을 하며 사는 것”이라고 대답한 것이 생각났습니다.
한편 감나무에는 울긋불긋 잘 익은 홍시가 탐스럽게 열려 있었습니다. 모두들 군침을 삼키고 있자 스님은 장대를 가져와서 감을 따기 시작했습니다. 감이 땅에 떨어져서 터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가지를 장대 끝에 끼워 톡 꺾었습니다. 감을 너무 잘 따는 스님을 보고 법사님들이 “어떻게 감을 이렇게 잘 따세요?” 물으니, 스님은 “아니, 내가 시골 사람인데 무슨 소리야” 하며 웃었습니다.
스님이 직접 따준 감은 아주 꿀맛이었습니다. 보통 도시에서는 나무에서 감을 딴 후 오랫동안 냉장 보관이 된 감을 먹게 되는데 오늘은 나무에서 따자마자 먹는 감이여서 그런지 더욱 싱싱하고 맛있는 것 같았습니다.
한참 동안 재미있게 감을 따던 스님은 “오늘 감 따다가 아무 일도 못하겠다”며 감 따던 일을 멈추고 탑곡에서 내려왔습니다.
법사단과 함께 칼국수로 점심 식사를 한 후 12시 30분부터 2시까지는 법사단과 회의를 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나서는 경주고등학교 강연을 위해 경주로 향했습니다.
3시부터 강연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조금 일찍 도착한 스님은 가장 먼저 ‘전몰학도병 추념비’를 참배했습니다. 6.25 전쟁으로 경주고 학생들 320명이 학도병으로 출정했는데 애처롭게도 돌아오지 못한 이가 139명이고, 39명은 전사하고 100명은 지금도 행방이 묘연하다고 합니다. 추념비는 이들의 넋을 기르는 비석입니다. 스님은 전사자 39명을 추모하며 흰 국화꽃 39송이를 헌화 한 후 합장을 하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스님은 교정에 들어서면서 “경주중학교 다닐 때부터 처음 1년을 제외한 5년 동안 학비를 내지 않고 장학금을 받고 다녔는데 왠지 빚을 진 것 같아 부담이 되네” 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스님에게는 오늘 그 빚을 갚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 경주고등학교
이어서 교장실로 들어가 교장선생님 이하 학교 관계자 분들과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작년부터 스님을 초청하려고 정토회 측에 여러번 전화를 하였지만 세계 100회 강연 중이라는 답변만 들었다”며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내어 준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원래는 지난 6월에 초청 강연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메르스 때문에 취소가 되어서 강연을 못할 뻔 했지만 오늘 이렇게 다시 일정이 잡히게 되었습니다.
특히 교장선생님이 “모교에 오신 김에 스님의 손결이 묻어 있는 물품을 기증해 주십사” 부탁하자 스님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작은 목탁과 새책 ‘야단법석’을 사인해서 선물했습니다.
강연을 위해 강당으로 이동하는 길에는 강연을 듣지 못하고 수능 시험 준비를 해야 하는 고3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스님은 손을 꼭 잡아주며 격려를 해준 후 함께 사진도 찍었습니다.
오후 3시부터 본격적으로 즉문즉설 강연이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경주고 재학생들이 축하 공연을 보여주었습니다. 기타 연주와 대중가요를 자신들의 학창시절에 빗대어 개사한 노래 등을 부르며 스님을 반갑게 환영해 주었습니다.
스님은 학생들이 부르는 노래 가사 중에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잖아요. 숫자로 사람을 평가할 순 없는 거잖아요” 라는 구절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스님도 답례로 지금까지 발행된 스님의 책 한 박스를 도서관에 기증했습니다.
다음은 학생 회장이 앞으로 나와 꽃다발을 건넨 후 “차렷! 대선배님을 향해 경례” 라고 우렁찬 목소리로 구령을 외치자 학생들 모두 큰 목소리로 스님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이어서 교장선생님이 앞으로 나와 “신라시대 때 온 국민의 정신적 스승이 원효 스님이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신적 스승은 법륜 스님이 아닌가 생각한다” 며 큰 박수로 스님을 소개했습니다.
스님은 환한 웃음을 머금으며 후배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먼저 스님이 “공부하기 힘들죠?” 물으니 모두 “예” 하고 대답했습니다. “공부가 재미있어요?” 라고 묻자 “아니요” 라고 대답하고, “그럼 왜 학교에 다녀요?” 물으니 “몰라요” 라는 답이 이어졌습니다. 학업의 부담감에 짓눌린 무거운 어깨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님은 학생들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고자 밝게 웃으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저도 여러분처럼 이 학교에 다녔습니다. 저는 고향이 내남 위의 봉계예요. 행정 구역상으로는 울산시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중학교 때 경주로 와서 6년간 이곳에 다녔어요. 저는 주로 과학을 좋아했기 때문에,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주로 과학실에서 과학실 장학생으로 근무했어요. 그 때는 조례를 마당에서 했기에 주로 앰프를 들고 다니면서 스피커를 나무 위에 설치하는 일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웃음)
여러분들 만나서 반갑고요. 오늘 여러분과의 대화 시간은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나오는 지식적인 이야기 말고 정말 내가 고민하고 고뇌하는 이야기, 다시 말해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를 하는 시간입니다. 무슨 하늘의 이야기나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 여기 나의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정말 궁금한 걸 물어보는 시간입니다. ‘왜 그렇지? 왜 그래?’ 이렇게 정말로 궁금한 걸 물어보세요. 남이 들으면 ‘야,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 할 만한 것이라도 괜찮아요. 남의 눈치 볼 필요 없이 내 이야기를 해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선생님한테 물어보거나 책을 뒤져보거나 인터넷을 검색하면 나오는 이야기는 여러분이 저보다 검색을 더 잘 할 테니 그렇게 찾아보시고, 오늘은 우리들의 이야기를 가지고 같이 대화를 해봅시다.
그것이 무엇이든 질문의 종류는 관계가 없습니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하면서 행복한 세계로 함께 나아가 보자는 거예요. 그러니 긴장하지 마시고 그냥 친구끼리 식당에서 앉아서 이야기 나누듯 편안하게 이야기해보면 좋겠어요. 자, 시작해보세요.”
스님의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미리 질문을 준비한 친구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한 학생은 3년 동안 세계 여행을 한 후 영화감독이 되는 것이 꿈인데 주위에서는 현실을 모르는 허황된 꿈이라고 해서 고민이 된다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고, 한 학생은 일상 생활을 하면서 화를 낼 때가 많은데 화를 내면 후회하게 되고 참으려고 하면 답답해져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고, 한 학생은 우리가 느끼는 행복감과 만족감이 일시적인 경우가 많아서 인생이 공허하게 느껴지는데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이유가 필요한 것인지 물었고, 한 학생은 영재고등학교 입시에 실패해서 좌절을 했는데 어떻게 하면 주변 상황에 신경쓰지 않고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지 물었고, 한 학생은 나와 성향이 맞지 않는 친구들과는 어떻게 잘 지낼 수 있는지 물었고, 마지막으로 질문한 고3 학생은 동생이 인생을 사는데 흥미가 없어보이는데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스님은 각각의 질문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들려주어 학생들 모두 기뻐하였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최근에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게 되어 고민이라는 학생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학생의 눈높이에 맞게 재미있게 답변해 주는 스님의 모습에 많은 감동이 느껴졌습니다. 특히 스님은 어른들에게 강연할 때처럼 말을 너무 빨리하면 학생들이 못 알아들을 것을 염려하여 평소보다 아주 천천히 말을 하였습니다.
“최근 들어 어머니와 사이가 매우 좋지 않게 되어 대선배님께 질문 드립니다. 저는 평소에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어머니 말씀도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너무 피곤해서 어머니 말씀에 좀 소홀히 반응했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왜 어머니 말에 시큰둥하냐며 크게 화를 내시고, 그 일 이후 제가 하는 행동들을 일일이 간섭하십니다. 이런 상황이 너무 싫은데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여쭤보고 싶습니다.”
“싫으면 집을 나오면 돼요. (큰 웃음과 박수) 중국집에 취직해 짜장면 배달하거나 치킨집 보조 일 하면서 사는 게 나아요? 아니면 ‘아직은 자립할 때가 좀 멀었다’ 고 받아들이고 어머니 잔소리 좀 들으면서 학교 공부하는 게 나아요? 질문자의 선택이에요. 어느 쪽이 나아요?”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질문자 망설이다 대답, 모두 웃음)
“지금은 내가 자립해서 살아요? 부모님 도움 받고 살아요?”
“의존하면서 삽니다.”
“의존하고 살지요? 질문자가 나중에 어떤 사람을 도와주게 되면 ‘내가 너를 도와주니까 네가 내 말을 들어야 하지 않겠냐’라는 생각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있습니다.”
“그러니 ‘엄마니까’ 하고 따지지 말고 질문자가 현명하게 판단해보세요. 질문자는 어린애예요? 어른이에요?”
“아직은 어린...”
“아니요. 어른이에요. 15살 넘었잖아요. 광개토대왕이 왕위에 올라서 만주벌을 달릴 때가 19살이었어요. 옛날 같으면 장가 가서 애 하나 있을 나이 쯤 돼요. 그러니까 절대 어린애가 아니에요. 우리가 원시 시대에 산다면 독립을 12살 때부터 합니다. 12살부터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장점이 있는 대신에 부모로부터 독립해야겠지요. 내가 토끼를 잡든 뭐든 잡아서 먹고 살아야지, 부모가 절대로 안 도와줘요. 농경사회에서는 독립이 15살이에요. 조선시대에는 15살이면 장가보내고 시집보냈어요. 임금도 7살에 임금이 되면 15살까지는 ‘수렴청정’이라고 해서 엄마가 뒤에서 보살피다가, 15살 딱 넘으면 ‘친정’이라고 해서 임금이 직접 정사를 결정하는 거예요. 오늘날에는 산업사회다 보니 학습기간이 길어졌어요. 그래서 세계적으로 만 18세가 성년이에요.
그러니 질문자는 생물학적으로는 이미 어른이지만 현재 시스템 상으로는 아직 미성년자니까 부모의 밑에 있는 거예요. 미성년자의 장점은 부모의 도움을 받을 수가 있다는 것이고, 단점은 아직은 부모 말을 좀 들어야 한다는 거예요. ‘부모니까 말을 들어야 한다’ 이렇게 소극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나를 후원해주시는 분이니까 나도 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저라면 딱 집어치우고 중국집에 가버리겠어요. (학생들 감탄)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중국집에 가는 것보다는 엄마 잔소리 좀 듣고 공부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성년이 될 때까지는 엄마의 지원을 받는 대신에 조금 비위 맞추고 사는 게 낫지 않을까요? ‘에잇, 비위 맞추기 싫다’ 이렇게 해서 중국집 짜장면 배달을 하더라도 독립하는 게 더 나을까요? 질문자가 생각하기에 18살 될 때까지 앞으로 2년 동안은 어떻게 사는 것이 둘 중에 더 나아 보여요?”
“전자 쪽이...”
“전자가 낫죠? 그러면 이걸 ‘엄마가 잔소리 하는데 어떻게 할까’ 하고 소극적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내가 먹고 살고 공부하는데 이 정도 잔소리 쯤은 능히 들어줄만 해요, 들어줄만 하지 않아요?”
“들어줄 만합니다.” (모두 웃음)
“그래요. 그러니까 늘 ‘감사합니다’를 입에 달고 살고, 엄마가 잔소리 좀 해도 ‘감사합니다’ 하세요. 엄마는 어쨌든 의도적으로 질문자를 나쁘게 만들려고 잔소리하는 건 아니잖아요. 엄마는 나름 잘 한다고 하는 거예요. 엄마가 잘 한다고 하지만 그게 꼭 좋은 건 아닐 수도 있어요. 그러나 질문자의 지금 처지를 질문자가 알아야 해요. 얻어먹는 주제니까 주인 말을 좀 들어야 해요. 대신 고등학교를 딱 졸업하면 바로 독립하세요. 알았죠?”
“예.”
“그 때는 좀 더 얻어먹으려고 잔소리 듣는 것보다야 확 독립해버리는 게 나아요. 그러니까 지금 얻어먹는 동안에 공부 바짝 해서 괜찮은 대학에 가야겠죠? 아르바이트라도 하려면 괜찮은 대학에 들어가야 아르바이트 구하기도 좀 쉬울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소극적으로 임하는 건 바보예요. 지금 질문자가 엄마 성격을 바꿀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어차피 안 바뀌는 걸 바꾸려고 신경 쓰다가 자기 공부를 못 한단 말이에요. 이 상황을 그냥 유리하게 받아들이세요. 교회 다녀요?”
“안 다닙니다.”
“교회 좀 다니세요. (학생들 웃음) 교회 다니면 이런 경우에 딱 맞는 예수님 말씀이 있어요. ‘5리를 가자면 10리를 가주어라.’ 누가 나보고 5리를 가자고 해서 따라가면 가자고 한 사람이 갑이고 나는 을이에요. 그런데 내가 ‘10리 가 줄게!’ 하고 마음을 내버리면 누가 갑이 돼요?”
“제가 갑이에요.”
“그래요. 그런데 질문자는 지금 엄마한테 을이잖아요. 엄마가 갑이고 질문자는 을이어서 ‘잔소리 듣기 싫어’ 이렇게 해왔는데, ‘잔소리 안 들으면 좋겠지만, 지금 내 형편을 보니까 1~2년은 엄마의 지원을 받고 공부를 하는 게 나한테 유리하다.’ 이렇게 생각을 바꿔 봐요. 그러면 스폰서에게 좀 잘 보이는 게 좋겠죠? 그렇게 생각하고 ‘죄송합니다. 제가 몸이 좀 피곤해서 들어갔는데 어머니께서 오해하셨나 봅니다. 잘 하겠습니다’ 이렇게 싹싹하게 2년은 잘 보여야 안 쫓겨나요. (학생들 웃음)
그런데 2년 넘어서도 계속 그렇게 빌붙어 살면 질문자는 주인이 못 됩니다. 질문자는 한 명의 독립된 인간이에요? 엄마의 노예예요?”
“독립된 인간입니다.”
“그래요. 그러니까 엄마의 노예가 되면 안 돼요. 2년만 딱 지나면 엄마 말을 안 들어도 불효가 아니에요. 그러나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지원을 받지 않을 때’라는 조건이 있어요.”
“충분히 해결된 것 같습니다.” (모두 웃음과 박수)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춘 명쾌한 즉문즉설이었습니다. 학생들도 예상치 못한 속시원한 답변에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스님도 선생님들처럼 엄마 말 잘 들어라, 공부 열심히 해라, 이렇게 정해진 답변을 할 줄 알았는데, 예상 밖의 직설적인 답변에 깜짝 놀라 모두들 눈을 동그랗게 뜨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강연 중간에 스님의 강연을 듣고 싶어하는 고3 학생들이 우루루 몰려 들어왔습니다. 스님은 자발적으로 강연을 들으러 온 고3 학생들을 위해 수험생은 어떤 마음자세로 공부하면 좋은지 짧게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수능을 공부한다니까 여러분들을 위해서도 한 말씀 드릴게요. 시험을 부담스러워하지 마세요. 자기 실력보다 더 나오길 바라기 때문에 시험이 부담스러운 거예요. (모두 웃음)
시험 칠 때는 내가 가진 실력대로 치는 거예요. 내가 가진 실력이 100이라 할 때 밖으로 표현되는 것은 70 정도가 되면 평균적으로 잘 한 축에 속해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자기 실력이 100이면 120이나 130쯤 나오기를 바래요. 그러다가 70이 나오면 기대했던 130에 비해 반타작으로 느껴지니까 ‘으아, 시험 못 쳤다’ 이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시험을 한 두 번 못 쳐야지 맨날 못 치잖아요. (모두 웃음)
▲ 자습 시간 중간에 강연을 들으러 온 고3 수험생들
잘 하고 싶다는 마음은 좋은 마음이긴 하지만, 다른 말로 하면 자기 능력 밖을 원하는 거예요. 내가 실력이 100이라면 70이 나오는 게 정상입니다. 그러면 이것을 90으로 만들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요행으로 잘 치기를 바라지 말고, 실력을 한 150까지 끌어올리면 평균치로 해도 100 이상 나옵니다.
수능이 얼마 안 남았는데 지금 며칠 더 한다고 성적이 더 나오는 것도 아니고, 안 한다고 안 나오는 것도 아니고, 논다고 더 나오는 것도 아니에요. 그러니 얼마 안 남은 기간 동안 욕심내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임하세요. 그러면 확률상 긴장했을 때보다 편안할 때가 잘 나와요. 자기 실력이 100인데 긴장했을 때 70이 나온다면 편안할 때는 75나 80이 나와요. 여러분들도 해봐서 알겠지만, 긴장하면 놓치는 경우가 많아요. 아닌 걸 고르라는데 꼭 맞는 걸 골라놓고 지난 뒤에 ‘어’ 하잖아요.
그래서 지금 중요한 것은 욕심을 줄이는 것입니다. 욕심을 내려놓으면 바보가 되는 것이 아니라, 긴장을 내려놓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여러분들의 실력을 표현하기가 훨씬 용이해집니다.”
스님으로부터 깨알 같은 시험 공부 팁을 들은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을 모두 마치니 약속된 2시간이 모두 지났습니다. 강연을 마무리 하면서 스님이 학생들에게 “재미있었어요?” 라고 묻자 모두들 큰 목소리로 “예” 하고 대답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후배 학생들이 살아가게 될 새로운 세상에 대해 이야기해 주면서 창조력의 중요성을 강조해 주었습니다.
“제가 살아온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지금 여러분들이 속한 청소년 시기의 특징은 심리가 약간 불안하다는 점이에요. 대신 굉장히 궁금한 게 많고 엉뚱한 것도 많아요. 그런데 현재 우리의 교육 시스템은 이 궁금하고 엉뚱하고 뭔가 시도해보려는 것을 규격에 집어넣어서 일단은 안정시키는 쪽에 중점을 두는 모방 시스템이기 때문에, 어긋나는 것을 막는 효과가 있는 반면 창조력을 말살시키는 부작용도 함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사회에 나가서 주요하게 살아갈 시기, 즉 지금부터 20년 후는 이런 모방 시스템이 거의 종말을 고하고 창조력이 빛나는 시대가 될 거예요. 어느 학교 나왔고 전공이 뭔지가 별로 중요하지 않고 실제 실력을 얼마나 갖추었느냐가 중요한 시기로 바뀌어가고 있어요. 물론 그때에도 아직 학벌이 있고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만, 빠른 속도로 추세가 그렇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세상이 짜놓은 틀에 너무 얽매여 자기를 속박하지 마세요. 여러분들 한 사람 한 사람 다 소중한 사람들이에요. 성적이 조금 떨어졌다고 특별히 부족한 사람이 아니에요. 저도 여기 고등학교 다닐 때 월말고사 쳐서 수학성적이 조금 떨어지면 막 가슴아파했는데, 솔직히 그때 수학 점수가 70점에서 90점 됐다거나 100점에서 80점 되었다고 제 인생이 달라졌을까요? 그러니 실력은 쌓되 성적에는 너무 연연하지 마세요. 등수나 점수에 너무 연연하지 말라는 말이에요.
선생님들, 학부형들 계시는데 죄송합니다. 저를 초청했기 때문에 이런 말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거예요. 저는 학생을 위해서 이야기하지, 학교를 위해서 이야기하지 않으니까요, (스님 웃음)
그런데 이건 실력을 쌓는다는 걸 전제로 하고 하는 이야기예요. 우리가 살아갈 미래의 사회에서는 실력은 필요하지만 등수는 그렇게 중요하진 않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지금 꿈꾸는 창의력, 혼자서 하는 망상, 이런 것이 창조력의 근본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분황사에 들어가 살았는데 학생으로서는 공부도 안 하고 좀 엉뚱해졌어요. 그런데 거기서 제가 많은 상상력을 갖게 됐습니다. 최제우 선생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원효대사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다양한 것을 접하면서 여러 가지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과학이라고 하는 울타리 안에만 있다가 과학을 넘어서는 상상력을 갖게 됐어요.
여러분들이 살아갈 미래의 시대는 수학이면 수학, 화학이면 화학, 물리면 물리로 그치는 게 아니라 융합 학문이 됩니다. 나아가서는 이과와 문과까지 융합이 돼요. 종교도 불교와 기독교로 나뉘어 싸우는 시대가 아니라 불교와 기독교가 서로 융합해서 동서양이 통합된 새로운 철학을 만들어내고, 나아가서는 종교와 과학이 융합되는 새로운 창조가 나올 겁니다. 학문이 이제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그런 새로운 시대에 여러분들이 지금 서 있으니까 성적 좀 떨어졌다고 너무 좌절하지 말고 여러분들이 가진 재능들을 살리고 키워서 새로운 창조를 해나간다면, 꼭 노벨상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우리 나라, 우리 학교에도 그 정도의 창조력을 가진 인물이 많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여러분들이 학교와 나라의 꿈을 이루어주길 바라면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매일 성적에 연연하며 살아왔던 학생들은 스님이 그려주는 큰 그림을 듣고 시야가 확 넓어지고 가슴도 활짝 열리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감탄사를 연발하는 학생도 보였습니다. 2시간 동안 후배들을 위해 열강을 해준 대선배님에게 경주고등학교 학생들은 큰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성적에 연연하지 말라는 이야기에 뒤에 서 계시던 몇몇 선생님들이 약간 당혹스런 표정을 짓기도 했지만 스님의 취지에는 모두 공감해하는 모습이였습니다.
강당을 나온 스님은 학교 건물 앞에서 학생들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자랑스런 대선배님을 뵌 학생들의 기뻐하는 표정이 역력해 보였습니다. 함께 강연을 듣지 못한 고3 학생들도 2층과 3층 교실의 창 밖으로 손을 흔들며 “선배님, 감사합니다” 하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의 손을 꼭 잡아주며 격려도 해주었습니다. 몇몇 학생들은 스님에게 사인을 요청하면서 “좋은 말씀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며 거듭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이 자습을 하러 다시 교실로 들어간 사이 스님은 교장실에서 학교 관계자 분들과 더 차담을 주고 받았습니다.
차담을 나누는 중에 스님은 “사춘기 때 모든 씨앗이 형성된다”고 강조하면서 스님의 중고교 시절 때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말에 절에 들어와서 살았는데, 저희 은사 스님이 늘 저보고 ’최제우 선생은 미래 100년을 내다보고 동학을 만들었다. 너는 1000년을 보고 살아라’ 라고 자주 말씀하셨어요. 그 때는 저도 무슨 뜻인지 잘 모르고 지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 때 가졌던 막연한 생각들이 결국 문명을 길게 보게 만들어주었고, 한반도의 통일은 통일에 끝나는 것이 아니고 동아시아 공동체가 형성되면 1세기 후에는 동아시아 시대가 도래할 수 있다는 큰 그림을 그리게 만들어주었어요. 작은 그림을 그리면 자꾸 남북 사이에도 싸우게 되거든요. 큰 그림 속에서는 작은 것들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것이죠. 이렇게 크게 사물을 보는 눈이 필요해요. 그래서 오늘 저도 이런 얘기를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었어요."
경주고등학교 관계자 분들은 스님의 이야기에 모두 공감하면서 “다음부터는 스님과 학생들만 딱 모여서 법문을 들을 수 있게 해드려야겠다” 며 웃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강연을 학부모들과 선생님들도 함께 들었는데, 그로 인해 자유롭게 대화가 오고가지 못한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스님은 초청해준 학교 관계자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한 후 학교를 나왔습니다. 저녁 7시에 울산 두북에 도착한 스님은 아침에 농사일을 도와 준 신규 법사님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한 후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양산문화예술회관에서 양산 시민들을 위해, 저녁에는 경남문화예술회관에서 경남 시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 2015년 한해 동안 전국을 순회하였던 청춘콘서트가 마지막 피날레 무대를 갖습니다. 11월1일(일) 16시 서울 시청광장으로 오시면 김제동과 법륜 스님으로부터 듣는 행복 메시지를 비롯해 청년 인디밴드들의 다채로운 뮤직과 함께 신나는 페스티벌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행복의나라 페스티벌 in 서울광장' : [참가 신청하기]
* 자세한 사항은 http://청춘콘서트.kr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전 청춘콘서트와는 달리 2030 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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