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5.10.24 경주남산순례, 정토불교대학 가을학기 주간반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정토불교대학 가을학기 입학생 600여명과 함께 경주 남산을 순례한 후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지난주 주말에는 정토불교대학 봄학기 입학생들과 경주 남산 순례를 했고, 이번주 주말에는 가을학기 입학생들과 순례를 했습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예불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 스님은 아침 식사 후 8시부터 경주 남산의 새갓골에서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이번 경주 남산 순례의 실무 총괄을 맡고 있는 대구경북 지부 전병찬 대표님이 새갓골을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고 해서 스님은 흔쾌히 이곳을 오늘의 코스로 정했습니다. 앞으로도 대구경북 지부에서 경주 남산 순례를 계속 준비해 나가야 하기 때문에 이에 대비해 전 대표님에게 남산의 이곳 저곳을 다 보여주고자 하는 스님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정토불교대학 가을학기 수강생들은 오전에는 같이 산행을 하면서 대화를 나누며 도시락도 같이 먹고 노래도 하는 등 소풍의 시간을 가졌고, 오후에는 그동안 정토불교대학 수업을 들으면서 느꼈던 여러가지 의문들에 대해 묻고 답하는 야단법석 시간을 가졌습니다. 

 

법사님들이 각 골짜기마다 흩어져서 불교대학 학생들을 인솔해서 오는 사이 스님은 새갓골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새갓골을 출발하여 봉화대를 거쳐 백운재를 지나 용장골로 내려오다가 산정호수를 지나 이영재로 가는 지름길로 갔다가 이영재에서 통일암으로 내려왔습니다. 

 


▲ 새갓골

 

새갓골 코스를 오르며 스님은 “이 코스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코스야” 라며 웃음을 띠었습니다. 

 


 

가파른 길이 없고 완만한 길을 올라가다 보면 봄에는 양 옆으로 진달래와 연달래가 지천에 깔려있다고 표현할 정도로 만발해 있는 곳입니다. 스님은 진달래와 연달래는 잎모양이 서로 다르다고 하면서 “연달래는 잎이 둥그렇게 넓은 타원형이고, 그에 비해 진달래는 잎이 삐쭉하다” 고 하면서 서로 비교해서 알려주었습니다. 

 


▲ 연달래

 


▲ 진달래

 

꽃 이야기를 시작으로 천천히 걷다 보니 어느새 새갓골의 대표적인 유물인 열암곡 석불좌상에 도착했습니다. 남산의 7부 능선 쯤에 자리한 이곳에는 험준한 산비탈에 곤두박칠 친 상태로 놓여 있는 마애불상이 철창 속에서 복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불상의 콧날이 맞은편 암반과 불과 5cm 정도만 겨우 떨어진 채 엎어져 있었습니다. 조금만 더 기울어졌어도 정교하게 새겨진 콧날이 박살이 날 뻔한 형국이었습니다. 문화재청에서는 이 마애불상을 원래대로 일으켜 세우려고 하고 있지만 육중한 바위의 무게 때문에 쉽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 열암곡 마애석불

 

그리고 엎어진 마애불상 바로 옆에 열암곡 석불좌상이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항마촉지인을 맺고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한 모습이었는데, 얼굴의 일부가 파손되었고, 특히 광배는 여러 조각으로 갈라져 주변에 흩어져 있던 것을 보수 정비해 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얼굴은 상당히 양감이 있지만 코와 입 주변은 마멸이 심해 보였습니다. 

 


▲ 열암곡 석불좌상

 

스님은 정성껏 삼배를 하고 다시 산길을 계속 올라갔습니다. 땀이 이마에 송글송글 맺힐 무렵에 봉화대에 도착했습니다. 바위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시원한 바람에다가 풍경도 절경이었습니다. 

 

 


▲ 봉화대

 

그리고 조금 더 가니 저 멀리 산 아래에 칠불암이 보였습니다. 아직도 칠불암에서 법사님의 설명을 듣고 있는 팀이 보였습니다. 스님은 먼 발치서 송수신기의 주파를 맞춰가며 “내 목소리 들리나?” 하고 장난 삼아 깜짝 출연을 시도해 보았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서 그랬는지 아무런 반응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 저 아래 칠불암에 있는 대중들에게 송수신기 접선을 시도하고 있는 스님

 

이러다가 대중들보다 늦겠다 싶어 내려가는 길에는 발길을 재촉했습니다. 빠른 걸음으로 걷다 뛰다를 반복하다가 또 스님이 알고 있는 지름길을 통과하여 다행히 대중들보다 일찍 통일암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 스님은 “산 중턱을 옆으로 가로지르는 평탄한 길이 참 좋다” 며 성큼 성큼 아주 빠르게 걸음을 옮겼습니다. 

 

11시에 일찍 식사를 마친 후 스님은 통일암 입구에서 속속들이 도착하는 불교대학생들 600여명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스님은 영상을 통해서만 가르침을 전하고 직접 만나는 기회를 자주 갖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컸는지 정성껏 손을 잡아 주었습니다. 어떤 불교대학 학생들은 “스님 손이 정말 보드랍다”며 기뻐서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 600여명의 불교대학생들 모두와 악수를 해주고 있는 스님

 

오후 1시부터는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늦게 도착한 몇몇 분들은 식사를 아직 마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스님은 “다른 사람들이 식사하는 동안에 노래를 보시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하고 여흥을 즐기는 무대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여기 저기서 노래 실력을 뽐내보겠다며 앞다투어 나왔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에게는 스님 옆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특전이 주어졌습니다. 마음공부에 관한 이야기로 개사를 해서 대중가요를 부르는 분, 판소리를 멋들어지게 부르는 분, 성악을 부르는 듯 하다가 뽕짝을 부리는 분, 하모니카 연주를 들려준 분 등 다재다능한 분들이 연이어 신나는 무대를 보여주었습니다. 

 


 


▲ 여흥을 즐기는 노래자랑대회

 

박수 치며 웃다 보니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고, 이 분위기를 이어서 오늘 함께 순례를 한 참가자 소개 시간을 가졌습니다. 

 


 

서울제주 지부는 유수 스님과 자광 법사님의 안내로 봉화골로 올라와서 주로 칠불암에 대해 안내를 받았고, 부산울산 지부는 여광 법사님과 대광 법사님의 안내로 부처골로 올라왔고, 대구경북 지부와 경남 지부는 보수 법사님과 선주 법사님의 안내로 포석골로 올라왔고, 대전충청 지부와 광주전라 지부는 묘당 법사님과 덕생 법사님의 안내로 삼릉골로 올라왔고, 강원경기동부 지부와 인천경기서부 지부는 묘수 법사님과 무변심 법사님, 희광 법사님의 안내로 용장골로 올라와서 칠불암 순례를 하면서 봉화골로 내려왔습니다. 원래 용장사로 와야 하는데 공사 때문에 막아 놓아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박수 소리와 함께 순례를 무사히 마친 서로를 격려하며 드디어 오후 법문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즉문즉설을 시작하기에 앞서 경주 남산에 대해 개괄적으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신라의 수도는 서라벌이죠. ‘서라벌’의 옛말은 ‘서벌’이고 ‘서벌’은 ‘아사달’에서 온 말이에요. ‘아시’는 우리말로 ‘처음’이라는 뜻입니다. 콩밭이나 보리밭을 맬 때 제일 처음에 매는 것을 ‘아시 밭 맨다’고 말해요. 처음 듣나 봐요? 이래서 사람은 촌에 살아야 해요.(청중 웃음) 

 


 

서라벌의 동서남북에 산이 있는데 서쪽에는 선도산이 있고, 남쪽에는 남산, 즉 금오산과 고위산이 있고, 북쪽에는 소금강산이 있고, 동쪽에는 명월산이 있고, 그리고 중앙에는 낭산이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오악(五岳)이라고 해요. 이것이 신라의 중요한 명산입니다. 

 

남산은 서라벌의 남쪽에 있다고 해서 부르게 된 이름입니다. 남북으로 길이가 10킬로미터 되고 동서로는 4킬로미터 정도 되고, 큰 봉우리가 두 개 있어요. 북쪽에 있어서 시내 쪽에 가까운 것이 금오산이고 더 남쪽에 있는 것이 고위산입니다. 저희가 어릴 때 부르던 원래 이름은 수리뫼였습니다. ‘수리’는 가장 높은 곳이란 뜻이에요. 독수리, 정수리 같은 말에도 쓰이는 순우리말이에요. ‘뫼’는 산이죠. 그래서 이걸 한자로 고치니까 ‘수리’는 ‘고위(高位)’가 되고 ‘뫼’는 ‘산(山)’이 되어서 현재는 고위산이라고 씁니다. 이렇게 금오산, 고위산 둘로 이루어져 있는데 고위산이 494미터로 더 높고 금오산은 468미터예요. 

 

두 봉우리 사이를 가르는 골짜기가 용장골이에요. 용장사가 있다 해서 용장골이라 부르고, 그 골짜기 너머 고개가 이영재입니다. 방금 모든 팀이 함께 넘어온 고개입니다. 용장골을 경계로 북쪽은 금오산, 남쪽은 고위산입니다. 금오산 골짜기에 불상이 더 많아요. 고위산에는 유명한 천룡사와 칠불암 같은 큰 절이 있고, 오늘 우리가 다닌 골짜기는 대부분 금오산 자락에 있습니다. 금오산 자락에서 가장 큰 절은 용장사였는데, 조선조 초기에 김시습이 용장사에 9년 정도 은거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을 썼어요. 그게 <금오신화>입니다. 이 산 이름인 금오산에서 따온 이름이에요. 

 


▲ 통일암에서의 즉문즉설

 

남산에는 크고 작은 골짜기가 많은데, 절터든 불상이든 탑이든 무덤이든 전설이 서린 곳이든 그런 유물이나 유적이 있는 골짜기만 해도 43골짜기나 됩니다. 오늘 각 팀은 그 43골짜기 중 한 골짜기를 올라왔고 또 한 골짜기를 내려온 거예요. 절터만 해도 147군데, 불상이 100여 군데 등 굉장히 많습니다. 산 전체가 박물관과 같아요. 그래서 이곳은 불교인들만이 아끼는 문화재가 아니라 우리나라 전 국민이 보호해야 할 문화재이며 나아가 전 인류가 보호해야 할 문화유산이라고 해서 2000년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아주 소중한 곳입니다.”

 

앞서 법사님들의 안내가 있었지만 스님을 통해 다시 한 번 명료한 설명을 들으니 남산 전체가 한 눈에 그려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어서 즉문즉설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총 10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달서 법당에서 오신 분은 기도를 하거나 봉사를 하거나 법문을 들을 때 마음이 기쁜 것도 쾌락을 쫓는 것에 해당하는 것인지 물었고, 40대 여성 분은 내 아이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다른 아이도 건강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상처 받은 아이들을 위해 우리 사회와 정토회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물었고, 한 할머니는 아들 부부가 이혼을 하고 며느리가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아들도 아빠로서 아이를 만나고 싶어하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고, 연세가 있으신 어머니는 직장 다니던 서른살 아들이 얼마 전에 불치병으로 죽어서 너무나 가슴이 아픈데 어떻게 아들을 위해 기도를 해야 할지 물었습니다. 

 


 

30대 여성 분은 어릴 때 엄마로부터 받은 상처 때문에 어려움에 부딪히면 나도 모르게 ‘나는 살 가치가 없어’ 하는 자살 충동 쪽으로 가게 되는데 어떻게 치유를 할 수 있는지 물었고, 4남 1녀 중 맞이로 태어났다고 소개한 여성 분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재산 분배 문제로 형제 간에 갈등이 생겨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물었고, 불교대학을 입학하고 나서 매일 수행을 하면서 삶이 많이 행복해졌지만 요즘은 수행을 했다가 안 했다 하는 것이 반복되어서 어떻게 다시 발심해야 하는지 물었고, 마지막 질문자는 아들이 둘 있는데 둘째 아이는 너무 예뻐서 사랑 표현을 많이 해주었지만 첫째 아이와는 계속 갈등이 생겨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너무 이야기가 진지하게 흘러간 듯 하여 스님은 마지막 질문자에게는 노래를 하나 시켰습니다. 질문자는 갑작스런 부탁에 얌전을 빼더니 갑자기 엉덩이를 흔들며 노래를 불러 큰 웃음을 자아내었습니다. 스님은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하며 웃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남편과의 이혼을 고민 중인 여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이혼하려는데 아이들 때문에 고민 중입니다. 아이를 둘 두었어요. 결혼하고 남편이 일주일에 네 번 이상 회식을 가서 늦게 오고, 회사 생활이 힘들다며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고, 자기만의 시간을 갖겠다며 주말에는 골프를 치러 가거나 야구를 하러 가서 또 하루 종일 없어요. 게다가 첫째를 낳은 이후로 남편이 저와의 부부관계를 계속 거부했어요. 그러던 중 어쩌다가 둘째가 생겼는데 남들이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저는 남편에게 여자로서 무시당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화를 해도 남편이 자기 하고 싶은 건 다 하면서 제가 원하는 건 말솜씨를 발휘해서 어떻게든 못 하게 막아요. 그러면서 남들에게 보이는 옷이나 가방은 또 비싼 걸로 다 사주고요.”

 

“예, 사정은 알겠는데 지금 이혼을 했어요? 하려는 거예요?”

 

“하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애들이 마음에 걸려서요. 제가 그동안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아서 아이들이 좀 심리적으로 안정이 안 되어 있어요.”

 

“아이들이 몇 살이에요?”

 

“여섯 살, 네 살입니다.”

 

“지금 이혼하려고 마음을 먹었다고 하셨는데, 그런데 이혼하면 어차피 그 남자와 부부관계를 안 가질 거 아니에요? 그리고 이혼하면 어차피 그 남자는 일주일 내내 안 들어올 거 아니에요? 또 이혼하면 어차피 그 남자가 애들을 안 돌볼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속으로만 ‘이혼했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그냥 살면 될 것 같은데요. 자꾸 ‘결혼했다’ 생각하니까 내 요구를 안 들어주는 것이 문제가 되잖아요. (청중 웃음과 박수) 

 


 

본인이 처음에 ‘여자로서 이런 남자하고 못 살겠다, 다른 남자를 사귀어서 여자로서 사랑받고 싶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또 관점이 달랐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 이혼을 할 건지 그냥 살 건지가 전적으로 아이를 기준으로 하고 있어요. 아이 입장에서는 지금 엄마 아빠가 이혼하는 걸 원하지는 않을 거예요. 질문자가 아이를 위한다면, 그래서 아이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는 갖추어진 가정 환경에서 키워야겠다면 이혼을 속으로만 해버리면 되죠. 오늘 여기서 이혼을 해버리세요. (청중 웃음) 

 


 

‘가끔 비싼 가방도 사주고 하니까 괜찮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오늘 이 순간부터 생각을 바꿔버려요. 이혼을 할까 말까 고민하지 말고, 마음으로는 이혼을 하세요. 

 

나 혼자 속으로만 이혼하라는 말은 기대를 놓아버리라는 말이에요. 속으로는 기대를 놓아버리고 바깥으로는 생활을 그대로 하면 이 정도 되는 남자가 별로 없어요. 지금 이혼하고 애 아빠 역할을 해줄 다른 남자를 새로 구하면 이보다 못해요. 나한테 더 잘하는 남자는 찾을 수 있지만, 어떤 남자를 구해도 아이한테는 이만한 남자가 없어요. 그러니 정말 질문자가 아이를 생각해서 고민을 하고 있다면 그냥 사세요. 

 


 

그런데 ‘나는 아직 젊으니 남자가 있어야 하는데 이 남자가 남자 역할을 제대로 못 합니다.’ 이렇게 나온다면 관점이 좀 달라요. 그게 주 관심이면 이혼 소송 사유가 됩니다. 남자가 남편 구실을 제대로 안 하는 것은 이혼 사유가 될 수 있거든요. 그럴 경우에는 이혼을 해야 내가 다른 남자를 합법적으로 만날 수 있어요. 

 

그런데 간통죄가 없어졌기 때문에, 남편에게 두 번 세 번 이야기해 보고 개선이 안 되면 ‘오케이, 너 계속 이러면 나는 다른 남자 만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돼요. (청중 웃음) 

 


 

‘젊은 나이에 내가 스님도 아니고 이렇게는 못 산다. 너는 밖에 나가서 어떤 여자를 만나고 다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럴 수는 없으니까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정기적으로 남편 구실을 할래? 어떻게 할래?’ 

 

이렇게 얘기해 보세요. 질문자가 이혼 신청을 했는데 남편이 안 하겠다 할 경우에, 일을 저지르면 상대가 이제 그걸 이혼 사유로 삼아 이혼소송을 걸겠죠. 이렇게 하는 경우도 있어요.

 

여성으로서 자기 권리를 어떻게 행사하느냐 하고 엄마로서 아이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질 거냐는 꼭 일치하지만은 않아요. 제 주장은 아이가 어릴 때는 여성으로서의 권리보다는 아이 엄마의 책임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아이가 좀 크면 아이를 위해 인생을 다 바칠 필요는 없으니 자기 권리를 행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아이가 여섯 살이니까, 한 4년 정도는 더 속으로만 이혼하고 겉으로는 그냥 생활하세요. 

 

중학교 갈 때까지는 그냥 사는 게 좋긴 하지만, 그래도 남자 없이는 못살겠다고 하면 애가 10살이 되고 대화가 되면 아이에게 사정을 한번 이야기해보는 거예요. ‘이러저러해서 엄마도 한 사람으로서 생활하기가 어려워서, 너희들에게는 힘들겠지만 이혼을 하면 어떻겠니?’ 그래서 아이가 동의를 하면 이혼해도 돼요. 그런데 아이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아이가 동의하지 않으면 안 돼요. 아직 아이가 동의할 수 있는 수준이 안 되기 때문에 지금은 아이들에게 더 충실한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또 아이들에게 충실한 것과 여성으로서 권리를 행사하는 것 사이에 문제가 있다면, 남편에게 아내로서의 권리 요구를 정당하게 먼저 하셔야 해요. 요구해보고 안 되면 ‘그러면 이 문제에 대해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고 토론을 해서 거기에 따르는 다른 권리를 획득하든지요. 

 

그런데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이럴 수도 있고,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어요. 사람의 성에는 네 가지가 있어요. 이성을 좋아하는 이성애가 있고, 동성을 좋아하는 동성애가 있고, 양성애가 있고, 무성애가 있어요. 혹시 남편이 무성애나 동성애 성향이라면 신체적으로는 이상이 없어요. 관계를 맺으면 아이도 생기고 하지만 심리적으로는 그게 내키지 않는 거예요. 아이를 두 명 낳고 나서 남편이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해서 아내가 그 문제로 저를 찾아와 상담한 적이 있습니다. 그럴 경우에는 어느 정도 용인을 하고 가정을 유지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남편도 행복할 권리가 있으니 권리를 주는 게 좋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모든 사람은 행복할 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윤리 도덕에 지나치게 매여서 불행하게 사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아이가 어느 정도 컸느냐를 항상 봅니다. 아이가 아직 어리면 부모는 아이를 위해서 자기의 권리를 좀 희생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이가 크면 부모도 자기 권리를 정당하게 찾아가는 게 좋지 않겠나 이렇게 생각해요.”

 

“감사합니다.”

 

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질문자가 환한 웃음을 보였습니다. 청중들도 질문자에게 뜨거운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모든 답변을 마치고 스님이 “재미있었어요?”라고 묻자 모두들 우렁찬 목소리로 “네!” 하고 대답했습니다. 즉문즉설 시간을 마무리하며 스님은 꾸준히 수행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불교대학 다니다 보면 다니기 싫을 때도 있고, 바쁠 때도 있고, 몸이 아플 때도 있고, 어려워서 흥이 안 날 때도 있어요. 사람의 감정은 일정하지 않고 늘 오르락 내리락 합니다. 

 


 

그런데 수행이란 것은 꾸준히 하는 것이에요. 굉장히 좋아서 ‘불교가 최고다, 스님이 최고다’ 이게 수행이 아니에요. 그건 약간 흥분된 상태니까 약간 가라앉혀야 합니다. 한편 마음이 쫙 가라앉아서 만사가 귀찮다면 이건 또 약간 기운을 차려야 할 문제거든요. 그래서 꾸준히 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감정기복에 너무 연연하면 안 돼요. 예컨대 우리나라 대통령 정도 되면 북한이 어떻게 하든, 중국이 어떻게 하든, 일본이 어떻게 하든, 감정으로 막말을 하면 안 돼요. 감정이 있더라도 조금 진정해서 해야 하는데 감정적으로 막말을 해버리면 전체 공동체의 삶에 영향을 주게 됩니다. 그것처럼 여러분들도 그냥 혼자 살 때는 좀 감정적으로 해도 되지만, 회사에 가면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을 조금 자제해야 하고, 자녀를 키워도 너무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안 됩니다. 

 


 

참으라는 게 아니라 항상 그런 알아차림을 유지하면서 감정에 놀아나지 않도록 하라는 뜻입니다. 감정에 놀아나면 부작용이 굉장히 많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공부를 꾸준히 해나가시기 바랍니다.”

 

큰 박수 소리와 함께 즉문즉설 시간을 모두 마쳤습니다. 울고 웃다 보니 어느덧 오후 3시가 넘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산 너머로 넘어가고 있을 무렵 다함께 통일발원 기도와 회향식을 하기 위해 염불사로 내려갔습니다. 

 

 

▲ 염불사


염불사에서 스님은 통일 발원 기도와 더불어 오늘 순례에 참가한 정토불교대학 학생들을 위해 축원도 함께 해주었습니다. 

 

“이곳에 모인 대중 일동은 2015년 가을불대 주간반을 중심으로 한 불교대학생 대중이옵니다. 저희들은 부처님을 만나기 전에는 나의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억울하고 분하였습니다. 남편 잘못 만나 부모 잘못 만나 자식 잘못 만나 세상 잘못 만나 이와 같이 내가 억울한 일을 당한다고 생각되어 원망하고 미워하고 괴로워하였습니다. 

 


▲ 발원 기도를 하고 있는 스님

 

그런데 부처님을 만나 돌이켜보니 모든 괴로움은 나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빚어짐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그것이 우연에 의하기보다는 과거에 내가 지은 인연의 과보임을 알아 그 과보를 달게 받아들이는 마음이 되었고, 그것이 싫다면 다시는 그런 인연을 짓지 않는 다짐이 이루어져 이 생이 훨씬 가벼워지고 괴로움이 사라지고 불만족이 사라지고 만족이 커지는 등 인생의 새로운 활로를 열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기쁨을 가지고 불교대학에 다니지만 때로는 엎어지고 자빠지는 것처럼 물러나는 마음이 들기도 하고, 내가 받는 이 모든 것이 내가 지은 인연의 과보라고 하기에는 너무 억울한 때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지은 바 인연의 과보임을 알게 되어 어떤 일이든 이미 일어난 일은 달게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런 과보가 싫다면 다시는 그런 인연을 짓지 않겠다는 다짐을 함으로써 어제보다는 오늘이, 지난 해보다는 올해가, 불교대학 입학하기 전보다는 입학한 후가 좀 더 좋아지고 있습니다. 

 

오늘 남산 순례를 한 인연공덕으로 이 불대생들의 재앙은 사라지고 괴로움은 소멸하고 각각  원하는 소원들이 원만성취될 수 있도록 제불보살님들께서는 증명하여 주옵시고 천룡팔부 신중님들은 옹호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순례하고 발원한 인연공덕 먼저 돌아가신 영가님들께 회향하오니 영가님들과 더불어 유주무주 일체 영가님들도 왕생극락 하옵소서. 

 


 

오늘 남산순례 인연공덕을 내가 살고 있는 내 나라 내 겨레에게 회향하오니 이 인연 공덕으로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없는 항구적 평화가 정착되고, 나아가서 남북 간의 갈등이 해소되고 남북 간에 하나 되는 통일이 성취가 되어 우리 나라만이 아니라 주변 나라들과 더불어 공동 번영하는 동아시아 공동체가 성취되고, 나아가서는 인류 문명의 중심이 아시아가 되고, 우리가 그 문명의 중심에 서는 새로운 문명의 꽃을 피움으로써 고구려 발해의 멸망 이후 천 년의 한을 풀고 미래 천 년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그런 가피를 저희들에게 내려주시옵소서.” 

 

스님의 간절한 기도에 많은 대중들이 훌쩍 훌쩍 눈시울을 훔쳤습니다. 몇몇 대중들은 스님의 법문을 듣고 조금씩 행복해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감사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사홍서원으로 회향식을 한 후 스님은 수행, 보시, 봉사하는 삶에 대해 다시 한번 강조해 주었습니다. 

 

“정토회는 수행, 보시, 봉사를 합니다. 여러분들이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수행이에요. 또 다음달부터는 봉사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경험을 해야 합니다. 이번에 희망세상만들기 강연을 준비하는 활동을 하면서 봉사를 좀 했죠? 그뿐 아니라 모금 캠페인도 하고, 법당 청소도 하고, 이렇게 봉사를 해야 해요. 

 


 

다음으로는 보시를 해야 하는데, 보시라는 것은 내가 법문을 듣고 참 기쁨을 얻었다는 표현입니다. 돈을 많이 내라는 게 아니라, 항상 법회가 끝날 때 감사의 표시로 100원이든 1000원이든 자기 내고 싶은 대로 내는 게 보시예요. 그래서 법사들은 법을 보시하고 여러분은 감사의 표시로 재물을 보시해서 그걸 가지고 우리의 공동체를 유지해 나가는 거예요. 오늘도 이렇게 법문을 듣고 나니 기분이 좀 좋죠? 이럴 때도 끝나고 나갈 때 보시함에 보시를 해야 합니다. 이건 부처님 당시부터 있어 온 것입니다. ‘보시하면 복 받는다’는 의미의 보시가 아니에요. 보통 기도비라 해서 돈을 먼저 내고, 기도비를 많이 내야 복을 많이 받는다고들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선불제가 아니라 후불제예요. (모두 웃음) 

 

먼저 내가 혜택을 입고, 즉 법의 가피를 입고 나서 감사해 하는 마음으로 얼마간을 보시하기 때문에 이건 기복이 아닙니다. ‘내가 얼마 낼 테니 뭘 주세요’ 하는 대가성 거래가 아니라 기쁨의 표현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것을 아시고 수행, 보시, 봉사를 하십시오. 불교 교리 공부만 하러 왔다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불교대학에서 학습은 50퍼센트 이하입니다. 이런 것을 통해서 우리가 행복해지는 길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스님의 이야기에 큰 박수로 공감하며 수행 보시 봉사하는 삶을 다짐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지부 별로 단체 사진을 찍자고 하면서 혹시나 사진을 찍을 때 대중들이 극성을 부릴까봐 단도리를 했습니다. 

 

“아까 저와 악수할 때 찍고 싶었는데 못 찍게 해서 섭섭했어요?”

 

“예!” (모두 웃음)

 

 

“악수를 안 해줬으면 사진 찍을 생각도 안 했을 텐데, 악수해주니 사진 찍자 하고, 사진 찍으면 포옹하자 그럴려고 그래요? (모두 웃음) 

 

뭐든지 멈추는 게 수행입니다. 뛰면 걷고 싶고, 걸으면 서고 싶고, 서 있으면 안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고, 자면 등허리 배긴다고 푹신한 걸 찾고, 이렇게 끝이 없어요. 우리는 어느 순간에 멈춰야 합니다.”

 

수행은 멈추는 것이라는 말에 모두들 수긍하고 질서있게 차례대로 나와 스님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김치”하고 외치는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길가에 핀 코스모스보다 더 예뻐 보였습니다. 

 

이렇게 경주남산순례를 모두 마치고 스님은 곧바로 울산 두북으로 돌아왔습니다. 먼저 두북 정토수련원에 잠깐 들러 JTS 창고를 둘러보며 북한에 보낼 구호물품들을 점검했습니다. JTS 창고에는 곳곳에서 후원을 받은 물품들이 산적해 있었는데, 마침 중국에서 조선족 교포 두 분이 함께 와서 북한에 어떤 물품들을 보내면 좋을지 함께 의논을 하였습니다. 

 


 


▲ JTS 두북 창고

 

조선족 교포 분들을 반갑게 배웅한 후 저녁에는 오늘 경주남산순례를 안내한 법사단과 함께 평가 회의를 하였습니다. 스님은 어떤 코스에서 어떤 문제들이 있었는지 꼼꼼히 체크한 후 당장 내일 개선할 수 있는 것과 장기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할 것들을 구분해서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평가회의를 하는 사이 산 너머에는 반달이 휘영청 떠서 가을밤의 정취를 더해 주었습니다. 

 


 

내일은 정토불교대학 가을학기 저녁반 수강생 1000여명과 함께 경주남산순례를 한 후 저녁 7시부터는 서라벌문화회관에서 경주 시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 가을이 무르익는 11월, 가볍고 밝은 행복 에너지를 나눕니다. 법륜 스님과 함께하는 <야단법석> 북 콘서트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11월9일(월) 오후3시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 참가신청 : [바로가기]

 


 

* 북콘서트와 함께 따뜻하고 행복한 기운 가득 받아가세요. 

전체댓글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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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란

하루도 안빠지고 공부합니다 오늘도 열심하겠습니다 늘 실천하려고 애를 씁니다

2015-10-29 23:50:39

여일

어제 경주 남산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중학교 때 수학여행으로 불국사를 다녀온 기억이 났습니다 삼국유사에서 남산을 만난 적이있습니다 신라의 찬란한 문화와 꿈을 실현시킨 역사의 현장이라 히말리야처럼
신비하고 설악이나 치악이나 월출산마냥 수려하고 신령스런 산이리라 기대를 해서인지 새볔안개를 벗고 나오는 경주남산은 너무나 평범한 아무데서나 보는 산이었습니다

순간 무엇인가가 허물어지 듯 기대감이 와그르르 ! 무너져 버렸습니다 헌데 다음 순간 담담해졌습니다.
아 , 그렇구나 그렇구나 ! 알아차려졌습니다 특별한 것을 만들고 거기에 의미를 붙이고 감동하고 들뜨고 헐떡거리는 나란놈의 까르마, 꼭두각시 놀음에 빠져 살아온 참나가 번뜩 !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저 눈 뜨면 일어나고 예불하고 이부자리 정리 정돈하고 청소하고 세수하고 밥 먹고 발길 닿는데로 시절인연따라 생하고 멸하면서 시냇물이 흐르 듯이 갈바람이 들풀을 만나면 흔들어주고 솔을 만나 솔잎을 쓰다듬고 대를 만나면 대를 휘고 바다를 만나면 잔물결도 일고 파도도 치면서 파문도 그리며 사는 것이 길임을 알아차리게해 주었습 니다 참나에게 경주남산이, 그냥 평범하게 경주남산처럼 겉으로는 평이하지만 내면에 적멸보궁을 지으면서 담담하게 부처님 가르침대로 그렇게 살겠습니다.

2015-10-29 16:13:20

박문정

스님 사진만 봐도 맘이 편해지고 모든게 아름다워 보이네요

2015-10-29 14:5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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