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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정토불교대학 가을학기 입학생 1200여명과 함께 경주 남산 순례를 한 후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늘도 새벽 4시에 일어나 예불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한 스님은 아침 식사 후 곧바로 경주 남산으로 향했습니다. 차창 밖으로 남산이 모습을 드러내고, 산 너머에는 새벽녘 찬 공기를 가르며 아침 햇살이 서서히 온기를 내리쬐기 시작했습니다.
▲ 경주 남산 순례를 시작하기 위해 삼릉 주차장에 모인 정토불교대학생들
7시 30분에 망월사에 도착해 주지인 청운 스님을 만나 잠시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청운 스님이 망월사 주위에 700평 정도 되는 공터가 있는데 이곳을 정토회에서 야외 법회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다고 해서 직접 공터로 찾아가 둘러보았습니다.
▲ 망월사 주위의 공터
스님은 앞으로 정토회에서 경주남산순례에 참가하는 인원이 점점 늘어날 것을 대비해 남산 주위에 야외 법회 공간이 많이 필요한데 잘 되었다고 하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어서 8시부터 경주남산순례를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전국에서 정토불교대학 가을학기 입학생 1200여명이 참가했습니다. 어제에 이어서 정토회 법사단은 각 골짜기로 흩어져 지부별 불교대학생들을 인솔하고 안내했습니다.
법사님들이 불교대학생들을 안내하는 사이 스님은 새로운 순례 코스를 개발하기 위해 답사를 나섰습니다. 앞으로 순례 인원이 점점 많아지면 순례 코스가 더 개발되어야 하는데, 오늘은 남산 주위를 돌며 평지로 된 길을 걸을 수 있는 코스를 답사했습니다.
삼불사를 출발하여 포석정을 지나 창림사지 삼층석탑, 남간사지 당간지주와 석정, 일성왕릉을 둘러보고 절골에 있는 불곡석불좌상을 참배한 후 옥룡암까지 걸었습니다. 남산의 북쪽 주위를 빙 두르는 코스였습니다.
먼저 배리석불입상이 있는 삼불사를 참배한 후 지마왕릉에 도착했습니다. 지마왕릉 앞에는 넓직한 솔숲 터가 있었는데 스님은 이곳에 2000여명 정도 앉아서 법회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되는지 점검해 보았습니다.
▲ 지마왕릉
이어서 마을에 난 골목길과 눈두렁길을 빠른 걸음으로 걸었습니다. 집집마다 감나무에는 홍시가 주렁주렁 열려 있고, 길가에는 코스모스와 갈대가 하늘거리고, 추수를 마친 논에는 볏짚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는 등 가을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음은 발굴이 한창 진행 중인 창림사지에 도착했습니다. 창림사지는 남산의 서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데 삼국유사에 신라 최초의 궁궐지로 기록된 유서 깊은 곳입니다. 언제 궁궐이 창림사로 변경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후기에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 창림사지 삼층석탑
추사 김정희가 이곳을 찾았을 때 모사해 둔 무구정탑원기(無垢淨塔願記)를 근거로 통일신라 시대 때의 사찰로 추정되는 곳이라고 하는데, 안내표지판에는 동탑과 서탑, 건물지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뚝 솟아있는 삼층석탑에 가까이 다가가보니 동탑인지 서탑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동탑이라면 서탑 자리가 있을 터인데 그 자리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 창림사가 있었다는 건물지. 현재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이였습니다.
마침 저녁 때 경주 즉문즉설 강연에 경주남산연구소 소장님이 와서 확인해 보니 그 탑은 동탑과 서탑이 아닌 별도의 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즉, 동탑과 서탑은 건물지가 발견된 곳에서 함께 발굴 작업이 진행 중이었던 겁니다. 홀로 남은 삼층석탑의 기단부에는 팔부신중이 조각되어 있었는데 양각아 아주 도드라지게 잘 표현되어 있어 눈길을 끌었습니다.
다음에 도착한 곳은 남간사지 당간지주입니다. 꼭대기에는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십자형의 간구(竿溝)가 있고, 몸체에는 두 곳에 동그란 구멍이 나 있었습니다. 특히 십자형 간구는 다른 당간지주에서는 볼 수 없는 특수한 것이여서 스님도 무척 신기해 했습니다.
▲ 남간사지 당간지주
다시 남산 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니 일성왕릉이 나왔습니다. 스님은 아직 한번도 이곳에 가보지 못했다고 하면서 유심히 이곳을 둘러보았습니다. 신라 제 7대 왕인 일성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데 일성왕은 신라 초기에 박씨로서 왕위에 오른 분입니다. 스님은 이 지역이 박혁거세를 비롯한 박씨들의 근거지가 되었던 지역이라고 알려주면서 이 지역에는 박혁거세의 탄생설화가 있는 ‘나정’도 인근에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 일성왕릉
무덤은 남산 북쪽의 해목령 아래 솔숲 속에 가지런하게 잘 가꾸어져 있었고, 왕릉의 양쪽 능선을 따라서 궁성인 월성을 지키던 남산신성도 함께 위치해 있었습니다.
일성왕릉을 나와 다시 마을 안으로 들어가니 ‘남간사지 석정’이 나왔습니다. 석정은 말 그대로 돌우물인데, 신라 시대 때의 사찰인 남간사의 옛터에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땅을 파고 돌을 짜올린 후 그 위에 다듬은 돌로 틀을 얹은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단순하면서도 간결하게 다듬어져 시원스런 느낌을 주었습니다.
▲ 남간사지 석정
남간사지 석정을 본 후 원래는 도로를 따라 상서장까지 남산을 둘러가려 했는데 스님이 먼 발치서 남산을 가로지르는 낮은 언덕길을 발견해서 그리로 향했습니다. 지름길을 발견한 스님은 “직접 답사를 하니 이런 좋은 소득이 있다”며 기뻐했습니다.
산길에 오른 김에 상서장으로 가지 않고 계속 산길을 따라 절골까지 걸었습니다. 절골에는 불곡석불좌상이 있는데 앞으로 경주남산순례를 책임질 전병찬 거사님이 절골을 아직 가보지 못했다고 해서 그쪽으로 향했습니다.
상서장에서 불곡석불좌상까지 이어진 산길은 오르막이 없고 평탄한 길이 계속 되었습니다. 스님은 “여기가 산책하며 걷기에는 최고의 코스”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가을 낙옆과 떨어진 솔잎을 밟으며 평탄한 산길을 걷다 보니 절로 콧노래가 흥얼 흥얼 나왔습니다.
오늘의 답사 일정 중에서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은 불곡석불좌상입니다. 이 불상은 자연암을 파내어 감실을 만든 후 조각한 여래좌상입니다. 두건을 덮어쓴 것처럼 귀 부분까지 덮여 있고, 얼굴은 약간 숙여져 있고, 눈은 은행알처럼 두툼하게 나타낸 것이 인상적이였는데, 마치 동네 할머니처럼 보였는지 이곳에서는 ‘할매부처’로 많이 부른다고 합니다. 이 불상으로 인하여 계곡 이름도 절골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불상 앞에서 잠시 휴식도 취할 겸 명상도 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발원 기도도 했습니다.
▲ 불곡석불좌상
부처골로 내려와 옥룡암까지 걸으니 벌써 시간이 10시 30분이 다 되었습니다. 11시에 통일암에 도착한 스님은 점심 식사를 한 후 11시 30분부터 통일암 입구에 서서 속속들이 도착하는 불교대학생들 모두에게 악수를 해주었습니다. 불교대학생들은 일일이 손을 잡아주는 스님에게 모두들 감격해 했습니다.
▲ 통일암
불교대학 학생들은 돗자리를 펴고 삼삼오오 모여 각자 싸온 도시락으로 맛있게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12시 30분이 되자 아직 식사가 끝나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스님은 “식사를 다 마칠 때까지 잠시 여흥을 즐기자”며 노래자랑대회를 시작했습니다.
스님과 사진 한 컷이라도 찍어보고 싶은 마음에 노래를 부르고자 곳곳에서 달려나왔습니다. 트로트부터 발라드, 댄스까지 다양한 재능을 가진 분들이 앞에 나와 흥을 돋구워 주었습니다.
▲ 점심 시간을 이용한 노래자랑대회
배꼽을 잡고 웃다보니 어느새 점심 식사를 모두 마쳤습니다. 1시가 되자 드디어 모두가 기다리던 즉문즉설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먼저 경주 남산에 대해 개괄적으로 설명해 주었습니다. 특히 황룡사나 불국사에 비해 경주 남산이 가진 민중 불교적인 측면에 대해 강조하면서 몇가지 일화들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황룡사, 분황사, 불국사 같이 큰 절들은 신라 시대 때 왕족들이나 귀족들의 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반 평민이나 서민은 들어갈 수도 없었어요. 심지어 스님들도 천민이나 종처럼 낮은 신분 출신이면 그런 큰 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신분이 더 중요한 사회였기 때문이에요.
당시 신분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하나 전해집니다. 신라를 도와준 당나라 황제에게 감사하다 하여 지은 절이 망덕사인데, 여기서 임금이 참석하는 큰 재를 지냈어요. 임금이 신하들을 데리고 쭉 들어가다 보니 입구에 초라한 행색의 스님 한 명이 못 들어가고 있는 거예요. 스님인데도 불구하고 행색이 남루하고 초대장도 없다 보니 입구에서 걸린 거예요. 그걸 임금이 보고 들여보내주었습니다. 재가 끝나고 나올 때 임금이 그 스님을 놀리느라 ‘임금이 친히 참석한 재에 나도 참석했다고 자랑하고 다니지 마라’ 하고 이야기했어요. 그러니까 그 낡은 옷을 입은 스님이 임금을 빤히 쳐다보더니 ‘임금님도 어디 가서 석가 진신이 참가한 재에 참여했다고 말하고 다니지 마시오’ 이러는 거예요. 그러고는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어요.
놀란 임금은 말을 탄 군사를 시켜서 스님이 날아간 쪽으로 따라가 보라고 했어요. 따라가보니 남산의 서쪽 바위에 주장자와 발우를 두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어요. 주위를 살펴보니 불상이 새겨져 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부처님 얼굴이 아까 본 스님과 얼굴이 똑같았어요. 그래서 그 불상이 있는 자리에 절을 세워 석가사라고 이름 짓고, 스님이 주장자와 발우를 놔두고 사라진 자리에 세운 절은 부처님이 없어진 곳이라 해서 무불사라고 했어요. 그런 일을 겪고 임금이 크게 반성했습니다. 껍데기, 즉 모양이나 형상만 봐서는 안 된다는 말이죠.
큰 절은 부처님도 크고, 황금으로 칠해서 높은 단에 모셔놓아서 사람이 범접하기 어려워요. 신분이 낮은 사람은 아예 들어갈 수도 없고요. 그런데 남산은 우리가 부처님을 직접 만져볼 수도 있고 팔짱을 껴볼 수도 있을 만큼 부처님이 우리 가까이에 계십니다. 그래서 남산은 신라 시대부터 이런 민중불교의 요람으로 여겨진 곳입니다.
신라시대에는 국가와 왕이 불교를 옹호했어요. 즉 국가에서 많은 지원을 해서 절도 짓고 승려들을 대우했기 때문에 승려의 사회적 지위가 굉장히 높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왕족 출신의 승려들이 많이 배출되었어요. 그래서 우리가 그냥 말하기로는 ‘불교가 국교화되었다’고 하지만 서민들이 볼 때는 그것은 기득권층의 일부였어요.
아무리 위대한 분도 한순간 상에 집착하면 불보살을 친견할 수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다 귀족불교, 권위주의적인 불교가 진짜 불교가 아니라는 이야기이고 기존의 권위주의적 불교에 대한 하나의 반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런 민중불교의 요람이 이곳 남산입니다.
그래서 정토회에서는 매년 이렇게 남산을 순례하는 자리를 갖습니다. 물론 우리가 통일 기도 같은 것을 할 때는 황룡사나 분황사, 사천왕사 같은 곳도 정기적으로 순례를 합니다. 그러나 특별히 불대생들은 남산을 꼭 한번은 순례하도록 계획이 잡혀 있습니다.”
기존의 권위주의적인 불교와는 대비되는 민중 불교에 대해 명확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정토회도 이런 민중 불교의 정신을 계승해서 남녀노소 누구나 수행의 주체가 되는 운동을 해나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평소 불교대학 수업을 들으며 궁금한 점이 있었거나 인생을 살면서 고민이 되었던 것이 있으면 질문하라”고 하자 여기저기서 질문을 하기 위해 앞으로 달려나왔습니다. 여러 질문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 아내와의 갈등 때문에 고민인 남자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질문자의 질문 속에는 자기 생각에 사로잡힌 게 분명하게 드러나서 질문 자체가 또 다른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청중들도 쉴 새 없이 웃음을 빵빵 터뜨렸습니다.
“아내와의 갈등 때문에 여쭙습니다. 추석날 저녁에 처가에서 돌아온 뒤 아내와 다투다가 아내를 박스 둘둘 말린 것으로 한 대 치고 말았습니다. 명백한 제 잘못이라 무조건 사과했습니다. 그러나 한 대 맞은 것은 일부일 뿐, 사건의 본질이 아니었습니다. 사건의 본질은 20년 동안 제가 화가 많고 성질을 내어 아내에게 고통을 준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인문학적이고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타입이며, 주관이 뚜렷하고 고집이 무척 셉니다. 저는 반대로 이과 쪽이라 생각이 단순하고, 화는 내지만 뒤끝이 없고, 상황이 닥치면 그냥 감으로 판단해 행동합니다. 한마디로 쥐와 고양이의 관계 같습니다. 저는 둘 다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아내는 나만 고치면 된다고 합니다. (청중 웃음)
제가 이혼하자고 한 것은 화가 나서 한 소리일 뿐 진심이 아닌데 아내는 진짜라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저는 이혼은 꿈에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아내는 수 년 전부터 기회가 오면 이혼하겠노라 다짐했다고 합니다. 부부 간에도 의리가 있어야지, 이건 아니죠. 아내는 저를 불교대학에 인도한 사람이 아내인데 저보다 못한 것 같습니다. (청중 웃음)
아무리 양보를 해도 제 생각이 좀 더 정확한 것 같은데요. 독신주의였던 아내를 제가 마음대로 데려왔는데 요즘은 제가 아내에게 간섭하는 편입니다. 아내는 일찍 죽어도 별 여한이 없고 자기에 대한 관심을 절반으로 줄여달라고 합니다. 제 아내는 고집이 무척 셉니다. 지난 시간 동안 제가 그 고집을 다독이고 이해하며 살아왔지만 이제 나이가 드니 제 말이 잘 먹히지 않습니다. 매사에 남편 생각을 이기려고 하고, 특히나 저의 철학과 가치관을 가볍게 생각합니다...”
“상황은 어떤지 대충 알겠어요. 그래서 질문자가 어떻게 하겠다는 거예요?”
“여기 아내가 같이 나와 있는데요. 아내의 고집을 좀 꺾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내가 자기 고집을 좀 내려놓으면 좋겠다, 그 부탁을 하러 나온 거예요?”
“예.”
“스님이 그런 부탁 들어주는 거 봤어요? 어떻게 그런 야무진 꿈을 꾸고 나와요? 턱도 없는 소리 하지도 말아요. (스님 웃음) 질문자는 아내와 이혼하고 싶어요? 그냥 같이 살고 싶어요?”
“같이 살고 싶습니다.”
“아내는요? 아내는 이혼해도 괜찮다고 배짱이에요?”
“예.”
“그러면 같이 살고 싶은 사람이 빌어야 할까요? 안 살고 싶은 사람이 빌어야 할까요? (청중 웃음) 그러니 잔소리하지 말고 오늘부터 매일 108배 절하면서 ‘여보, 같이 살아만 주면 내가 뭐든지 다 할게. 같이 살아만 주면 내가 앞으로 절대 잔소리도 안 하고 뭐든지 시킨 대로 다 할게.’ 이렇게 기도해야 해요. 알았어요?”
“네, 알겠습니다.” (청중 박수)
“이 많은 대중 앞에서 약속했는데, 할 수 있어요?”
“예,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불교대학 다니는 사람이 ‘아내가 좀 변했으면 좋겠다’라는 말을 합니까? 가을 학기면 이제 입학한지 한 달 남짓밖에 안 된 신입생이니까 이번에는 봐줄게요. (스님 웃음)
그런데 첫째, 빠른 시일 내에 깨달음의 장에 우선 다녀와야겠어요. 그리고 오늘 집에 가면 깨달음의 장에 가기 전까지 우선 100일 동안 절을 하되 ‘나하고 같이 살아만 주면 뭐든지 다 하겠습니다’ 하고 절을 하세요. 그렇게 절을 해야지, 지금 질문자가 써온 것처럼 하면 안 돼요. 아까 질문자가 이공계라고 했는데, 저도 과학을 좋아하지만 지금 질문자의 태도와 생각은 전혀 이치에 맞지 않잖아요. 길게 설명해서 망신을 팍 줘버릴 수도 있지만 길게 설명은 안 하겠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내가 마침 독신주의를 좋아한다니까 ‘그래, 너 살고 싶은 대로 살아라’ 하고 보내주는 방법이 있어요. 애들은 몇 살이에요?”
“대학교 1학년, 3학년입니다.”
“그럼 애들은 성인이 되었으니 신경 쓸 필요가 없네요. 질문자가 결정을 하세요. 같이 살고 싶으면 질문자가 좀 바뀌어야 하고, ‘너도 바꾸고 나도 바꾸자’ 이러면 각자 사는 수밖에 없어요. 각자 주장이 있으니까요.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하잖아요. 같이 살고 싶어 하는 질문자가 먼저 숙여야 해요.”
“예, 알겠습니다.”
“여기 남자들 손 들어봐요. 제 말이 남자의 존엄에 위배되는 이야기예요? ‘스님, 좀 너무합니다. 반반씩 섞어야지 한 사람에게만 너무 무거운 책임을 매깁니다.’ 이런 남자 있으면 손 들어봐요. 하하, 보세요. 남자들도 다 제 말에 동조하잖아요. (남자들 박수)
그렇게 기도하세요. 내가 절해서 내가 숙이면 내가 좋잖아요. 나중에 이혼해도 내가 좋아요. 차이는 게 항상 좋은 거예요. 차이면 나만 놓아버리면 되지만 차면 나중에 스님 법문 들으면 들을수록 죄의식이 들어서 괴로워요. 하하.” (웃음)
스님의 호탕한 웃음에 질문자도 청중도 함께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답변이 좀 짧기는 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핵심이 더 잘 드러나고 명쾌했습니다. 질문자도 바로 깨닫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에 청중들도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치니 어느덧 3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스님은 즉문즉설 시간을 마무리하며 불교대학생들에게 이제는 공부만 하는 것을 넘어서서 수행, 보시, 봉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즐거웠습니까? 정토불교대학 다니면서 중간에 빼먹지 말아야 해요. 다니고 싶거나 안 다니고 싶다는 감정기복에 흔들리면 안 돼요. 다음으로, 지금은 학습이 주안점이 되었지만 이제 한 달 넘고 두 달 넘어가면 수행, 보시, 봉사를 해야 합니다. 정토회의 모토가 수행, 보시, 봉사 세 가지예요. 지금은 무엇이 불교인지를 배웠다 한다면, 그 다음 첫 번째로 해야 할 것이 수행이에요. 정토회에는 천일결사라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자기수행을 하는 이 천일결사에 참여해서 수행을 해야 해요. 다들 안 하려고 웃지요? (청중 웃음)
수행을 안 하면 자기 업식 못 고치고 계속 윤회하면서 살아야 해요. 거기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려면 매일 정진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보시입니다. 불교의 가르침이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堤 下化衆生)이잖아요. 자기를 변화시켜서 행복으로 가는 길을 찾는 것이 상구보리이고, 내가 사는 이웃을 보살펴서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하화중생인데, 하화중생을 실천하려면 우리가 조금 보시를 해야 해요.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 베풀어야 한다는 말이에요. 북한의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도 베풀고, 인도의 불가촉천민들을 위해서도 베푸는 보시를 해야 합니다.
또 항상 법회가 끝나면 보시 시간이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부터 법사는 법을 보시하고 재가자는 재물을 보시하면서 그걸 가지고 이 승단을 운영하는 거예요. 스님들이 오시면 음식이나 꽃을 보시하는 것도 재보시죠. 요즘은 다 돈으로 환산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100원이든 1000원이든 법회가 끝나면 반드시 보시를 하세요. 돈을 많이 내라는 게 아닙니다. 보시는 기복과 다릅니다. 기복은 ‘돈을 내고 기도를 하면 복을 받는다’라고 해서 선금을 먼저 내야 해요. 그래야 결과를 받는다는 거예요. 그런데 원래 보시는 그런 게 아닙니다. 아무런 대가를 바라는 게 없어야 해요. ‘법문을 듣고 너무 좋으니까 나도 그 은혜를 좀 갚겠다’라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보시하는 데는 대가에 대한 기대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 정토회는 전부 후불제입니다. (모두 웃음)
이렇게 보시하는 게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꼭 정토회에 안 내도 돼요. JTS에 후원을 해도 좋고, 어쨌든 보시를 하세요.
세 번째, 봉사를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불교대학 수업을 들을 때 앉아서 공부만 하면 되고 대우도 받았지만 앞으로는 남을 위해 서비스를 해야 해요. 먼저 오면 방석도 깔고, 법당 청소도 하고, JTS 모금운동을 한다고 하면 참여하고, 희망세상만들기 강연을 한다고 하면 가서 봉사도 하고요. 정토회에는 부자도 없고 높은 사람도 없습니다. 봉사를 하도록 규칙을 정해놨기 때문에 높은 사람들이 와서 길거리에서 전단 나눠주고 주차 관리하라고 하면 좀 창피하다고 하면서 잘 안 나와요. 그걸 안 하면 졸업을 안 시켜주니까, 높은 사람, 돈 많은 사람, 연예인들은 안 다녀요. 연예인 중에 그걸 통과한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통과 못 해요. 정치인들도 대부분 말로는 저를 좋아한다 해도 그걸 통과 못 해요. 보시하라는 건 할 수 있고, 수행도 집에서 혼자 하니까 하는데, 봉사는 ‘아이고, 정토회에 그것만 없으면 좋겠다’ 이래요.
그러나 수행이라는 것은 자기를 내려놓는 것이잖아요. 여기 오지 말라는 것은 아니지만, 누구나 다 똑같이 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봉사가 수행에서 제일 중요한 거예요. 그걸 해야 하는데 특히 직장에서 좀 높은 자리에 있거나 하는 사람은 좀 힘들어해요. 여러분들 더러 인도의 불쌍한 사람들이나 북한 동포를 돕는 JTS 모금을 하라 그러면 그냥 자기 돈 삼만 원 넣어서 빨리 갖다 주고 가고 싶어집니다. 창피하니까요. 돈을 십만 원 내라면 내겠는데 길거리에서 모금함 들고 서 있다가 ‘친구라도 마주치면 어쩌나’, ‘저게 또 종교에 미쳤나 하는 소리를 들으면 어쩌나’ 이런 심리적인 게 있거든요. 이런 걸 딱 극복하는 게 수행이에요. 그래서 봉사해야 합니다.
공부만 한다고 수행이 되는 게 아니에요. 그건 지식에 불과합니다. 이제 이치를 조금 알았으니까 이렇게 수행, 보시, 봉사를 실천하면서 생활 속에서 계속 공부를 해나가야 합니다.”
스님의 힘주어 강조하자 모두들 공감하며 큰 박수로 실천을 다짐했습니다.
이어서 다함께 염불사로 내려가 염불 및 발원 기도를 함께 했습니다. 염불사의 동탑과 서탑 주위에는 1200여명의 대중들이 자리해 한 목소리로 염불을 했습니다. 신라 시대에도 이곳에서 염불을 하니 서라벌 전체에 염불 소리가 들렸다는 전설이 있는데, 그것처럼 오늘 정토불교대학생들의 염불 소리는 통일을 바라는 간절한 울림이 되어 저 북녘 땅까지 전해지기를 기원해 보았습니다.
▲ 염불사
염불을 마치고 스님은 오늘 순례를 정성껏 마친 대중들을 위해 축원 기도와 통일 발원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스님의 간절한 목소리를 들으며 많은 대중들이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오늘 이곳 염불사 탑 앞에 선 저희들은 2015년 가을불교대학 야간반 학생들을 중심으로 경주 남산 순례를 마치고 이와 같이 발원하옵니다. 저희들은 부처님 법 만나기 전에는 세상 살다가 힘들면 아내를 잘못 만나 남편을 잘못 만나 자식을 잘못 만나 부모를 잘못 만나 내가 이 괴로움에 빠졌다고 남을 탓하고 원망하며 괴로워하였습니다. 그러다 부처님 법 만나 스스로를 돌이켜보니 쥐가 쥐약을 먹듯이 물고기가 낚싯밥을 물듯이 내가 어리석어서 이 고통을 스스로 자초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지은 인연이 있어서 과보를 받는구나 하고 알게 되니 그 누구를 원망할 일도 없고 미워할 일도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괴로움이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 돌아옴을 알게 되어 이제 이 어리석음을 깨뜨린다면 모든 괴로움은 사라지고 행복이 가득 찬 열반과 자유로운 경지인 해탈을 증득할 수 있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인연과보를 알고 진리를 알고 이치를 알았지만 아직 그것이 체험되고 실천되고 행해지는 경지에까지는 이르지 못했기에 넘어지고 자빠지는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있지만 그래도 불법 만나기 이전과 비교해보면 많이 좋아졌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렇게 꾸준히 정진해가면 나도 부처님 같이 해탈열반을 증득하여 괴로움이 없는 삶,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하오니 부처님이시여, 오늘 이 염불사 탑 앞에 두 손 모아 합장하옵고 발원하옵나니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치더라도 이 수행의 길을 포기하지 않고 놓치지 않고 꾸준히 정진할 것을 다짐하옵니다.
저희가 순례한 공덕, 발원한 공덕, 기도한 공덕 저희 모두의 공동체인 나라와 겨레에 회향하오니 이 공덕으로 한반도에 다시는 전쟁이 없는 항구적 평화가 도래하고 남북이 갈등을 딛고 넘어서서 교류하고 화해하고 협력해서 마침내 통일조국을 이루는 그 날이 하루 속히 도래하도록 제불보살님들께서는 증명하여 주옵시고 천룡팔부 신중님들은 저희의 이 간절한 발원이 성취될 수 있도록 옹호하여 주옵소서.”
기도를 마치고 나서 스님은 오늘 골짜기마다 흩어져 안내를 해준 법사님들을 먼저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순례를 위해 실무 준비를 도맡아 해준 대구경북 지부 자원봉사자들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대중들은 뜨거운 환호와 박수 소리로 수고해준 분들을 위해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사홍서원을 끝으로 경주남산순례를 모두 마친 후 각 지부 별로 탑 앞에 서서 기념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갈 길이 먼 지부부터 차례대로 앞으로 나와 사진을 찍었습니다. “화이팅”을 외치는 얼굴에는 보람과 즐거움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이렇게 스님, 법사님들과 함께한 즐거웠던 순례를 마치고 대중들은 모두 각 지역으로 돌아갔고, 스님은 각 코스별로 길 안내를 비롯해 각종 실무 준비를 하느라 수고한 자원봉사자들을 이끌고 칼국수를 먹으로 갔습니다.
스님이 칼국수를 맛있게 먹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에게 “이렇게 칼국수를 사주는 이유는 오늘 수고했다는 의미도 있지만 내년에도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뜻이에요” 라고 말하자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 자원봉사자들은 당장 다음주 주말부터 야외 법회 장소인 통일암 주위를 정비하는 일을 같이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봉사자들을 이렇게 격려해 준 후 스님은 곧바로 경주 즉문즉설 강연을 하기 위해 식당을 나왔습니다. 이어서 저녁7시부터는 경주 시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이 서라벌 문화회관에서 열렸습니다. 다음 이야기에 계속 됩니다...
* 가을이 무르익는 11월, 가볍고 밝은 행복 에너지를 나눕니다. 법륜 스님과 함께하는 <야단법석> 북 콘서트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11월9일(월) 오후3시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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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콘서트와 함께 따뜻하고 행복한 기운 가득 받아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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