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5.5.30 저녁부 자원활동가 수련 1일째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께서는 전국에서 모인 저녁부 담당 자원활동가 200여명과 함께 수련을 하셨습니다. 

 

그동안 정토회는 주간부를 담당하고 있는 주부 자원활동가들이 주축이였는데 최근에는 직장인들의 참여가 늘어나면서 저녁부의 위상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흐름을 반영하여 작년에 이어서 올해도 저녁부 자원활동가 수련을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비가 와서 일정이 어찌 되려나 걱정이 되었으나 다행히 행사를 시작할 때는 비가 그쳐서 야외에서의 즉문즉설도 무사히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오전 10시가 되자 전국의 저녁부 자원활동가들이 일제히 문경새재로 모여들었습니다. 문경새재 앞에 위치한 숙소의 대강당에 모인 활동가들은 삼귀의, 반야심경, 청법가로 스님께 입재 법문을 청해 들었습니다. 

 


▲ 저녁부 자원활동가 수련 입재 법문

 

입재 법문에서 스님께서는 먼저 직장 일과 가정 일, 정토회 활동까지 겸해야 하는 저녁부 자원활동가들의 애로 사항을 격려해 주신 후 이를 위한 극복 방법으로 수행자의 관점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절에 와서 봉사활동 하는 것을 더 할 수 있는 ‘자유’로 볼 것인지, 이것까지 해야 하나 하는 ‘의무’로 볼 것인지, 여기서 큰 차이가 납니다. 정토회의 회원은 모두 수행자라고 제가 그랬잖아요. 수행자라면 원래 절에서 혼자 살아야 돼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수행자임에도 결혼생활 하는 것을 허용했으니까 특혜이지요? 또 수행자임에도 불구하고 결혼 안 한 사람들에게도 밖에 가서 머리 기르고 맛있는 것 먹어도 되도록 허용했으니까 이것도 특혜이지요?

 

 

그러면 수행자로서의 본본을 좀 하고 나서 특혜를 누려야 해요? 수행자라는 것을 까마득히 잊어버려야 해요? 본분은 좀 지켜야 하잖아요. 그러니 저녁에 퇴근하고 나서 또는 주말에는 수행자로서의 본연의 의무를 좀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도 안하려고 하면 수행자라는 이름을 떼야 해요. 인생을 사는데는 규정을 어떻게 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해요. 여러분들이 자신을 수행자라고 규정하면 이 시대에 태어난 것은 진짜 잘 태어난 겁니다. 옛날에는 수행자가 되면 밥도 얻어 먹으러 다냐야 하고, 여자 남자 손도 못 잡아보고, 사회 생활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수행자이면서 이것도 저것도 다 하잖아요. 대신 오계와 팔재계만 꼭 지키셔야 해요.

 

여러분들은 저녁반이니까 직장도 다니랴, 활동도 하랴, 힘들다고 아우성인데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파견을 나와 있는 수행자입니다. 수행자이므로 아침에는 그 징표로 1시간은 수행을 해야하고, 저녁에는 그 본분을 지키기 위해 법문을 듣고 정진하며, 또한 다른 사람들이 수행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직장 나가지 않는 주말에는 법당에 나와서 수행자의 본분을 좀 지켜야 합니다. 그럼 이것은 특혜입니까? 힘든 일입니까?” (웃음) 

 

“특혜입니다”

 

 

“마음을 이렇게 먹으면 똑같은 일도 다르게 보입니다. ‘이것까지 하려고 하니 힘들다’ 이렇게 사물을 보는 것과 ‘아, 이것까지는 허용해주네’ 이렇게 사물을 보는 것은 천지 차이입니다. 제가 만번을 격려해주는 것보다 이렇게 관점을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관점을 바꾸면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어 버리고, 관점을 엉뚱하게 잡으면 허공에 헛꽃을 꺽는 것이 됩니다. 헛꽃를 꺽기 위해 밤새도록 쫓아 다녀야 해요? 눈을 번쩍 떠야 해요? 눈을 번쩍 떠야 합니다. 눈을 번쩍 뜨면 아무런 할 일이 없어집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제가 아무리 수행자라고 관점을 잡아줘도 겉으로는 수행자라고 하지만 속으로는 ‘신도다’ 하고 있어요. 그래서 ‘신도가 이런 일을 해도 되나?’, ‘신도가 일이 너무 많다’ 이러고 있으니까 지금 스트레스 받고 힘든 거예요. 그러니 오늘 수련을 통해서 관점을 딱 바로잡아 정립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수행자로서의 관점을 바로 잡으면 오히려 허용해 주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어 고민거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말씀에 활동가들의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활동가들은 마음을 가볍게 해 준 스님께 큰 박수 갈채를 보내주었습니다. 

 


 

입재 법문을 마치고 나서는 산책 나갈 채비를 하고 숙소 앞마당에 모두 모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산책을 출발하기 전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가고 싶은 산책길 1위가 어딘지 아느냐?”고 물으시면서 “문경새재라고 인터넷에 되어있더라” 하시면서 문경새재 제1관문을 향해 앞장서 출발하셨습니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서 스님을 알아보고 인사하는 시민들이 많았는데 스님께서는 반갑게 인사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 문경새재 1관문으로 가는 산책로 

 

비가 온 뒤라 뜨거운 뙤약볕은 온데간데 없이 산책하기에 최적의 날씨였고 멋진 길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가는 도중에 하얀 찔레꽃을 지날 때 스님께서 송수신기를 통해 “찔레꽃 노래 한번 불러봐라”하시자 활동가들은 일제히 함박 웃음을 피우며 “찔~레꽃 붉게 피~~는” 하며 노래 한자락을 뽑았습니다. 

 


▲ 찔레꽃

 

문경새재 1관문 옆에 위치한 성황당 자리에 도착하자 점심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성황당에 참배를 한 후 아침에 싸오신 도시락을 드셨고, 자원활동가들도 지역별로 둥글게 모여 앉아 소박하지만 맛있는 도시락 공양을 하였습니다. 

 


▲ 점심 공양 시간 

 

공양 후에는 레크리에이션과 함께 즐거운 친교의 시간을 가진 후 즉문즉설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무엇이든지 물어 보세요”라고 하시며 질문을 받으셨습니다. 

 


 

어리석음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인데 자식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다며 그 방법을 물으신 분, 직장을 다니면서 집안일과 정토회 활동을 함께 하는 것이 힘들다며 주 5일제 근무도 하는데 수행도 일요일은 쉬게 해달라는 분, 반야심경과 예불문이 한자라서 뜻이 잘 이해되지 않으니 우리말로 된 경전 독송을 하게 해주면 좋겠다는 분, 사람을 처음 만나면 불편하고 오래 만나면 안주하게 되는데 사람을 대할 때 어떻게 대하는 것이 좋은지 물으시는 분 등 모두 4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직장일과 집안일, 정토회 활동 사이에서 힘들어하는 여성 분의 질문과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정토회 봉사활동을 나오시는 많은 분들이 이와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는 직장일도 하면서 엄마이면서 주부이면서 정토회 활동도 하는 것 사이에서 심적으로 굉장히 힘듭니다. 직장에서 일하고 와서 저녁에는 밥도 해야 하지만 다시 정토회로 출근합니다. 밤늦게 집에 들어오면 저는 수행이 되어서 너무 즐거운데 집에 있는 식구들은 먹을 것이 없다고 아우성이예요. 화요일은 불교대학 수업 끝나고 뒷정리까지 하고 집에 들어가면 밤12시가 넘을 때도 있습니다. 새벽에는 5시에 일어나서 절도 해야 하고요. 

 

남편이 기분이 좋을 때는 친구들에게 ‘우리 집사람은 보살이야’ 이렇게 자랑하기도 해요. 그런데 집안 일과 정토회 일이 겹칠 때는 굉장히 안좋게 생각해요. 어제는 시동생이 결혼 앞두고 상견례가 있었는데 오늘 수련 때문에 못간다고 하니까 그것 때문에 소리를 지르면서 크게 싸웠어요. 정토회 일도 제대로 마무리 못하고 집안 일도 제대로 못해서 어정쩡한 이 불편함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또 건의하고 싶은 건 요즘 다 주 5일제로 바뀌었잖아요. 새벽 정진도 주 5일제까지는 아니어도 일요일 하루 정도는 쉬면 안될까요? 요즘 너무 무리를 하고 있어서 이러다가 남편이 독거노인이 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한번 빼주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어요. 주 2일 빼주다가 주 3일 빼주다가... 그럴 바에야 아예 하지를 말지 그래요? (웃음) 

 

신자로서는 지금 무리를 하고 계신 것이 맞아요. 그러나 수행자는 관점이 바뀌어야 해요. 방금 ‘몸은 견딜만한데 심적으로는 힘들다’ 이렇게 말했잖아요. 그러나 수행자는 ‘마음은 편안한데 몸은 너무 힘들어요’ 이렇게 말해야 해요. 안 그러면 수행자가 아니지요. 열가지를 하든 천가지를 하든 ‘마음은 상관이 없는데 몸이 도저히 못견디겠어요’ 이러면 ‘좀 쉬어라’ 하겠는데, 지금은 ‘몸은 견디겠는데 마음이 힘들다’ 그러니까 저의 대답은 ‘너는 수행이 안되었다’ 이렇게 나오는 겁니다. (웃음)

 


 

수행이 안되었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욕심을 낸다는 얘기입니다. 수행을 더 많이 하기 위해서 욕심을 내는 것은 수행일까요? 욕심일까요? 욕심입니다. 수행에 대해 욕심을 내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수행이 아닙니다. 가끔씩 남편의 요구가 지나칠 때는 ‘여보, 내가 당신 마누라이긴 하지만 나도 독립된 인간인데 요구가 지나치지 않아요? 제가 당신 종이 되려고 결혼한 것도 아니고, 서로 행복하려고 결혼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좀 지나친 것 같아요’ 이런 얘기를 할 필요는 있습니다. 

 

그러나 남편 입장에서 볼 때는 질문자를 수행자로 알고 결혼했어요? 내 마누라 되어달라고 결혼했어요? 내 마누라 되어달라고 결혼했는데 마누라 역할은 제대로 안하고 자꾸 밖에 나가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 남편이 불만을 표현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남편이 하자는 대로 따라가라는 것이 아니라 남편이 불만을 표현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거기에 응할 것이냐 안 응할 것이냐는 내 문제인데 불만 그 자체는 당연한 것입니다. 남편을 미워하거나 남편에게 항의할 권리는 없어요. 남편은 애 엄마 역할을 해달라고 나와 결혼을 했지 정토회에 가서 활동하라고 결혼한 것이 아니거든요. 처음부터 그렇게 결혼한 것이 아니라 중간에 역할을 바꿔서 내가 딴짓을 하고 있단 말이예요. 그렇기 때문에 첫째, ‘남편 입장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겠구나’ 이렇게 인정을 해야 해요. 참으려고 하지 말고 이것을 먼저 인정해야 해요. 그래서 항상 ‘죄송합니다’ 말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남편의 요구가 정당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내가 응할 것이냐. 이것은 선택의 문제입니다. ‘당신의 요구가 합당하니 그 요구에 응하겠습니다’ 하는 길이 있고, ‘내가 결혼할 때는 이런 일을 예상 못하고 당신의 요구대로 결혼한 것이 맞는데, 내가 살다보니까 이렇게 사는 건 힘들고 너무 재미가 없다. 그래서 나는 수행자로서 좀 살고 싶다. 그렇다고 내가 엄마 역할과 아내 역할을 전혀 안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수행자의 역할을 하고 싶으니까 기존에 당신이 나에게 요구하던 수준을 좀 조정하자. 5일을 원했으면 3일로 좀 조정을 하자’ 이렇게 타협을 하는 길이 있습니다. 물론 이해관계가 있으니까 남편은 안 내려놓으려고 하겠지요. 그러나 나는 쟁취를 해야 하니까 밀당을 해서 타협을 해야 하는 겁니다. 

 

한번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보세요. ‘내가 옛날에는 당신에게 짜증을 많이 내었잖아. 이제는 짜증을 좀 적게 낼 테니까 저녁 시간을 나한테 좀 주라. 아니면 당신이 방청소를 좀 해주라. 만약 내가 짜증을 내면 짜증 낼 때마다 그 과보로 하루씩 일찍 들어올게’ 이렇게 하면 내 수행도 되잖아요. 타협안을 마련하는 수 밖에 없어요. 그래도 계속 불평을 하면 다른 여자를 구해주는 수 밖에 없고요. (대중들 크게 웃음)

 


 

왜냐하면 서로 계약을 했잖아요. 내가 계약을 지킬 수가 없으면 계약을 해지 해야지요. 이 때 수행자는 ‘당신이 싫어서 같이 안 산다’ 이렇게 하면 안됩니다. 정말 그 사람을 위해서 계약 해지를 해야 합니다. 나는 이 길을 가야되고 남편은 계속 다른 요구를 하면 결국 해결책은 나는 이 길을 갈 수 밖에 없다고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게 수행입니다.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다 하려고 욕심을 내지 말고요. 

 

결국 조절을 해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참지 말고 대화를 좀 해야 합니다. 참는 것은 수행이 아닙니다. 질문자는 참았기 때문에 터진 거예요. 그런 감정이 생길 수는 있지만 그 요구를 정당하게 받아들이면 참을 것이 없습니다. 

 

매일 아침 절하는 것은 ‘부처님은 6년 고행도 했는데 그 정도는’ 하면서 한번 넘겨보든지요. 병원에 실려가서 까무라치는 한이 있더라도 한번 해보는 겁니다. 저는 단식 하다가도 까무라쳐 봤고, 예전에는 학원 강의를 하루에 16시간 했었어요. 강의가 새벽 5시10분부터 시작해서 밤 12시30분에 끝나고 그랬거든요. 그렇게 강의하다가 분필 쥐고 쓰러져서 마이크도 땅바닥에 다 떨어뜨리고 삼일 있다가 깨어났거든요. 그래도 안 죽고 살더라구요. 일주일 동안 잠 안자고 용맹정진 할 때는 너무 잠이 와서 화장실 문고리 잡고 자기도 하거든요. 이것을 정진으로 생각해야지 힘들다고 생각하면 안돼요. 몸이 힘든 것은 이해가 되는데 마음이 힘든 것은 안돼요. 관점이 좀 바꿔야 해요. 

 

정진에는 휴가가 없어요. 일에는 휴식이 필요하지만 정진에는 휴식이 없어요. 여러분들이 수행자라면 머리를 깍아도 그 생활, 머리를 길어도 그 생활, 혼자 살아도 그 생활, 같이 살아도 그 생활, 군대 가도 그 생활, 전역해도 그 생활, 이렇게 수행자로서 삶의 길은 그대로 한결 같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목탁 치는 일을 하다가 타이핑 치는 일을 하든지, 종 치는 일을 하다가 빗자루로 마당 쓰는 일을 하든지, 이렇게 일하는 대상만 바뀌는 거예요. 빗자루질 하다가 49재 기도 한다고 하면 빗자루 놓아두고 49재 기도하고요. 기도가 끝나면 다시 걸레질을 하든지 이렇게 일하는 대상만 바뀌는 것이지 ‘왜 일을 2개, 3개나 하라고 하느냐?’ 이렇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여러분들은 같은 나무를 열 개 심으라고 하면 ‘왜 똑같은 걸 열 개 심어야 해요?’ 이러고, 나무를 바꿔 가면서 열 개 심으라고 하면 ‘왜 열 종류나 심어야 해요?’ 이럽니다. 종류별로 열 개를 심든 같은 종류를 열 개 심든 어차피 열 개 심는 건 같잖아요. 그러면 스님도 즉문즉설을 하면서 ‘물을려면 수행만 일관되게 묻지 왜 이것 물었다가 저것 물었다가 하느냐?’ 하지 않잖아요. 이거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고, 저거 물으면 저렇게 대답하지요. 여러분들도 실제로 그렇게 살고 있어요. 엄마, 아이, 남편, 나 이렇게 넷이서 대화를 나눌 때 엄마가 말하면 딸로 역할하고, 아이가 말하면 엄마로 역할하고, 남편이 말하면 아내로 역할하잖아요. 이게 헷갈려요? 한 개 역할도 못하는데 세 개 역할을 해야 해서 힘들어요? (아니요) 

 

여러분들은 이렇게 실제로 일상 속에서 도를 행하고 있어요. 여러 역할도 멀쩡하게 잘 하다가 지금처럼 질문할 때는 ‘절에 와서 수행도 해야지, 직장도 다녀야지, 집에 가면 마누라 역할도 해야지, 엄마 역할도 해야지, 살림도 해야지’ 이렇게 얘기하니까 굉장히 역할이 많은 것 같잖아요. 이럴 때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진공청소기를 사용하든, 세탁기나 전기밥솥을 사용하든, 아니면 아이한테 적절히 역할을 주면 됩니다. 남편은 내 마음대로 안되지만 아이는 내가 낳아서 키웠으니 내 마음대로 좀 되어야 할 것 아니예요? 아이를 살살 꼬셔서 ‘아빠가 저러니까 너가 밥을 해서 엄마가 했다고 해라’ 이러면 되잖아요. (대중들 웃음) 

 


 

이게 어려우면 아이를 잘못 키웠다는 얘기지요. 아이가 다 컸을 때 일을 시키려고 하니까 안되잖아요. 어릴 때부터 연습을 시켜야지요. ‘얘야, 밥그릇 좀 가져오거라’ 이렇게 계속 어릴 때부터 연습을 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일곱 살 정도가 되면 엄마 일의 절반 정도는 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열 살만 되면 집안 살림을 다 맡겨도 될 정도로요. 인도에 가보면 유치원 아이들이 그릇을 태산처럼 가져와서 설거지를 합니다. 키우기 나름이예요. 우리 세대가 왜 이렇게 부지런하냐면 어릴 때부터 일을 해서 그런 겁니다. 이런 건 아이한테도 좋은 거예요. 공부 좀 더해서 지식 더 쌓는 것은 본인한테는 좋을지 몰라고 엄마한테는 하나도 도움이 안되요. 설거지를 시키든지 밥을 하게 하든지 상을 펴게 하든지 어릴 때부터 교육을 시켜야 엄마 살기가 점점 편해지지요. 질문자가 지금 가정부를 둘 형편은 안되잖아요. 아이 잘 키우면 가정부 절반 역할은 한다니까요. (웃음) 

 

어릴 때부터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다니면서 어디를 가더라도 항상 같이 일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엄마는 안 하면서 ‘휴지 주워라’ 이러면 안돼요. 엄마 하나 줍고, 아이 하나 줍고 이렇게 엄마도 하면서 ‘너도 하나 주워라’ 이렇게 시켜야 일꾼이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아이를 임금 모시듯이 가만히 모셔 놓으니까 나이가 스물이 넘었는데도 ‘밥해달라’, ‘빨래해달라’ 이렇게 하는 겁니다. 지금와서 새삼스럽게 임금을 용상에서 끌어내어 하인으로 시킬려고 하니까 안되지요. (웃음) 

 


 

그런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천하가 다 내 말을 안들어도 자식은 내 말을 들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왜 자식이 내 말을 안 들을까요? 이것은 잘못 키웠다는 얘기입니다. 아이는 세 살 때까지는 극진히 보살피고,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아이 앞에 오면 딱 부처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네 살 때부터는 일을 조금씩 시키기 시작해야 합니다. 이렇게 키워야 부모와 자식 관계도 좋아지고, 아이가 자립도 되고, 엄마 마음도 알고, 아이도 엄마를 도와주기 때문에 좋아지지요. 아이도 엄마와 같이 고생한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같이 고생한 것이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아이에게 이런 추억을 만들어줘야지요. 옛날에는 아이 키우는 것이 힘들었지만 크고 나면 다 효자 역할을 했습니다. 농사 지을 때 다 자식들이 일꾼이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왜 여러분들은 지금 그 좋은 일꾼을 그냥 버려둡니까. 어릴 때 잘못 키워서 그런 겁니다. 

 

아이가 초등학생 정도 되면 집안일은 아이한테 맡겨 두고 이런 수련에 참가하면 됩니다. 아이가 ‘엄마 왜 가?’ 하면서 뭐라 뭐라 하면 ‘너 낳아서 이만큼 키웠줬잖아. 그럼 엄마가 맨날 성질 내는 게 낫니? 하루씩 자리를 비우고, 너가 밥을 하더라도 짜증 안 내는 게 낫니? 엄마가 수행을 해서 요즘은 화를 안내잖아. 옛날로 돌아갈까?’ 이렇게 얘기해주면 되지요. (대중들 배꼽 잡고 웃음) 

 

 

아이들과 남편하고 도란도란 얘기하면서 일도 분장하고 하면 되지요. 생각을 좀 바꿔야 해요. 인생을 너무 피곤하게 사는 것 같아요. 남편한테도 ‘아이고, 저와 같이 살아줘서 고맙습니다’ 이런 마음을 내고, 소탈하게 툭 터 넣고 얘기를 하세요. 자꾸 참으면서 착한 여자 되려고 하지 말고요. 이 좋은 시절에 그렇게 기죽고 살 이유가 뭐가 있어요? 허심탄회하게 얘기해보고 서로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면 헤어질 수도 있는 겁니다. 서로가 불행하면 같이 안 사는 것이 나을 수도 있어요. 그럴 때 성질 내면서 헤어지면 안돼요. 상대가 싫어서 헤어지는 것은 수행자가 아닙니다. 이혼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런 이혼은 수행자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 자세로 좀 당당하면서도 화목하게 사는 게 필요합니다.”

 

스님의 재미있고 유쾌한 답변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습니다. 질문자의 어두웠던 표정도 어느새 환한 웃음으로 밝아져 있었습니다. 

 

오후 1시부터 시작된 즉문즉설은 3시가 훌쩍 넘어 끝났습니다. 비가 온 뒤라 숲 속은 쌀쌀했지만 그 덕분에 졸지 않고 또렷이 법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문경새재 1관문 앞으로 내려와 전국 저녁부 활동가들 모두와 함께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께서 사진을 찍기 위해 가까이 오시자 활동가들 모두 너무나 행복해 했습니다. 

 


 

숙소로 돌아온 저녁부 활동가들은 8개 모둠으로 나뉘어 모둠 토론을 했습니다. 1모둠은 저녁팀 지부 운영사례에 대해, 2모둠은 효율적인 불교대 경전반 운영 방안에 대해, 3모둠은 소규모 법당의 자치조직 운영 사례에 대해, 4모둠은 중간 규모의 법당 운영 사례에 대해, 5모둠은 경전반 활성화 방안에 대해, 6모둠은 마당발 불교대학 운영 사례에 대해, 7모둠은 임진각 통일기도 사례에 대해, 8모둠은 통일의병 활동 방안에 대해 함께 성찰하고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둠 토론과 발표 준비를 하는 도중에는 공연 리허설 노래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습니다. 수련을 와서도 잠시도 쉬지 않고 여러 활동들을 하는 활동가들의 모습에서 일과 수행의 통일을 보는 듯해서 흐뭇했습니다. 

 

저녁 식사 후 7시30분부터는 다시 대강당에 모여 모둠토론 결과 발표를 함께 경청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모든 발표자의 발표를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들으신 후 스님의 생각을 함께 나누어 주셨습니다. 

 


 

먼저 발표 내용을 들으면서 “정토회가 지향하는 것이 모자이크 붓다인데, 여러분들의 이런 경험들을 서로 잘 공유한다면 어떤 뛰어난 리더 한사람의 지도보다 훨씬 더 나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라고 격려해 주시면서 한 분 한 분의 발표 내용에 대해 피드백을 해주셨습니다. 

 


 

소규모 법당의 운영사례를 발표한 김천법당 전순연님의 발표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김천법당에서 발표한 것처럼 불교대학생들은 마음이 답답해서 들어오니까 우선 많이 보살펴줘야 해요. 그런데, 우리가 그럴 수 있는 여력이 지금 안 되죠. 또 경전반은 사춘기 청소년 같아서 조금 보살핌도 필요하지만 이것 저것 역할을 줘서 지켜봐 줘야 합니다. 그런데 역할을 주면서 책임을 너무 무겁게 주면 부담스럽고, 너무 간섭하면 어린 애 취급을 한다고 기분 나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임무를 주고 역할을 하도록 지켜보고, 안되는 것은 비판하지 말고 책임은 위에서 져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줘야 해요. 그리고 졸업하고 수행법회에 나올 정도가 되면 독립된 역할을 줘서 가능한 참견하지 말아야 합니다. 간섭하지 말라는 것은 내버려두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일을 회의를 해서 결정하지 아랫사람 다루듯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통일 기도 사례 발표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절을 하나 크게 지을 때도 정성을 다해서 기도합니다. 예를 들어 큰 불사를 할 때는 일할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더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한 명은 반드시 법당에서 기도를 하도록 합니다. 나머지는 다 일을 하고요. 그런데 일만 하다 보면 수행자라는 것을 놓치기 쉽기 때문에 돌아가면서 한사람씩 기도를 반드시 대신하도록 합니다. 목탁 소리 들으면서 대패질 하고 삽질을 합니다. 절을 하나 짓는 것도 큰 불사인데, 대한민국을 통일시키는 것은 어마어마한 대작 불사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정성을 쏟아야합니다. 기도를 하면 하느님이 다 해준다는 얘기가 아니라 통일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이냐 하는 그 간절한 정성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옛말에 ‘지성이면 감천이다’ 라는 말이 있지요. 아무 것도 안하고 법당에서 목탁만 친다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일이 되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하지만 그것만 갖고는 어렵습니다. 누군가 한 사람은 기도를 해야 하는 것처럼 대한민국이 통일되려면 우리가 통일 운동도 하지만 기도도 간절히 정성을 다해 해야 합니다.” 

 

또 통일의병 활동에 대한 발표에 대해서는 통일 한국의 희망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역사를 보면 그리고, 로마, 당나라, 명나라, 영국, 프랑스 등이 역사 속에서 세계 문명의 중심이 된 적도 있었고, 지금은 미국이 실질적인 세계 문명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지요. 그런데 우리 나라가 세계 문명의 중심이 된다거나 우리 나라가 문명을 전세계로 수출한다 이런 것은 누구도 꿈꾸지 않는 것 같아요. 불과 50년 전만 하더라도 전세계 사람들이 우리나라 제품을 사려고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어요. 그런데 요즘 몇 가지 기계는 전 세계 사람들이 우리나라 제품을 사려고 열망하잖아요. 아직 문명의 중심은 아니지만 몇가지 가능성은 보였어요. 한류 문화도 그렇고, 태권도도 그렇습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중국 문명의 아류인줄 알았는데, 6000년부터 3000년 이전까지만 해도 세계 최고의 청동기 문명을 창조해낸 민족이고, 그것을 중국에까지 전파했었습니다. 그러나 이후 철기 문명 때부터 중국에 역전되어 이후 3000년은 이렇게 뒤쳐진 겁니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문화가 중국을 앞서가고 있어요. 조선시대 유생들은 이런 것을 상상도 못했을 겁니다. 중국이 오히려 우리를 따라 배우기 해서 턱밑에 따라오고 있잖아요. 역사적으로 보면 이것은 3000년 만에 일어난 사건이예요. 이런 것처럼 어쩌면 우리가 세계 문명의 꽃을 피우는 꿈을 꿀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까지 오는데 50년이 걸렸으니 100년 이후에는 이런 꿈을 꿀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꿈을 꾸려면 한국만 가지고는 안돼요. 일본, 중국과 힘을 합쳐서 동아시아 공동체를 이루어야 합니다. 왜 합쳐야 하느냐? 우리는 규모면에서 세계 최대가 될 수 없어요. 그래서 규모는 일본과 중국을 합쳐서 세계 최대 문명권으로 만들고, 거기에 문명의 꽃은 우리가 피우는 것을 목표로 해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남북이 분단된 상태로는 안돼요. 2020년경에는 남북이 통일을 하고, 2050년에는 동아시아 경제공동체가 세계 최대 규모가 되고, 21세기 말에는 우리가 세계 문명의 중심이 된다는 꿈을 우리가 꿀 수가 있어요. 

 

그러면 통일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지금은 북한이 주도해서 통일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고 이제 남한이 중심이 되어 통일해야 하는데, 그럴려면 남한에 통일 지향적인 정부를 구성해야 합니다. 그래서 1단계로 통일 지향적 정부를 구성하고, 2단계로 북한을 포용해서 통일을 하고, 3단계로 한국이 중심이 된 동아시아 공동체를 구성하고, 다시 세계 최대의 경제권을 가지고 그 위에서 우리가 세계 문명의 꽃을 피우는 꿈을 꿀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될 때 우리가 생각하는 정토 세상에 비교적 근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기고 너희는 죽어라 하는 민족주의가 아니고, 우리와 더불어 너희들도, 아시아와 더불어 세계도 한 차원 높아지는 그런 꿈을 우리가 꿀 수가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국민들에게 희망을 줘야 합니다.”

 

통일에 대한 원대한 꿈을 다시 들으니 가슴이 두근 두근 뛰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께서는 각자의 소임에 대해 연구하는 자세로 임하고 있는 활동가들의 모습을 칭찬하시면서 일과 수행의 통일을 강조하신 후 오늘 수련을 마치셨습니다. 

 


 

“오늘 여러분들 보면서 공부가 잘 되어가는구나 하고 느꼈어요. 이렇게 연구해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절하는 것만이 수행이 아니고요. 이것이 일과 수행의 통일입니다. 일이 곧 여러분의 수행을 발전시켜나가고, 또 이렇게 수행을 함으로 인해서 일도 지치지 않고 효과적으로 해나가게 되니까 일도 잘 됩니다. 발표하신 분과 토론하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이후 이어진 어울림 마당에서는 백성희님의 사회로 신나고 흥겨운 무대가 펼쳐졌습니다. 초를 들고 나와서 함께 노래를 불러주는 팀, 대중들의 환호 속에서 밸리 댄스를 멋지게 보여준 분, 기타와 하모니카 연주로 김광석의 노래를 아름답게 들려주신 분, 트로트 노래를 ‘수행하기 딱 좋은 나이야’ 라고 개사를 해서 즐거운 율동과 함께 보여준 팀, 또 통일 노래를 다함께 부르는 퍼포먼스를 대중들에게 요청하는 분 등 재미있고 다양한 분들이 앞다투어 나왔습니다. 

 


 


 


 

재미난 공연들을 보면서 배꼽을 잡고 웃다 보니 1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소원은 통일’ 노래를 함께 부르면서 모두 손에 손 맞잡고 한반도의 통일을 간절히 소망하며 저녁부 활동가 수련 첫째날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저녁부 자원활동가 수련 회향식을 가진 후, 오후에는 전국 불교대학 및 경전반의 저녁부 담당자들을 위한 수련이 있을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전체댓글 19

0/200

Diogo

We need more ingihsts like this in this thread.

2015-10-15 21:32:25

난장

조령이 뭣땜시 생겼는지도 몰라~. 영남의 선비들은 없었던가? 아니다.<br />야은 길재 선생도 있었고. 숱한 아리랑 고개에서 죽어간 선비들이 많았다.<br />아리랑 아라리요.

2015-06-05 00:47:16

^^^^

스님 정말 대단하시네요!즉문즉설도 끝내주시고,결국 궁극의 목표는,한반도 통일을 넘어&lt;우리가 세계 문명의 꽃을 피우는 꿈&gt;&lt;아시아와 더불어 세계도 한 차원 높아지는 그런 꿈&gt;이셨군요! <br />&lt;&lt;절을 하나 짓는 것도 큰 불사인데, 대한민국을 통일시키는 것은 어마어마한 대작 불사입니다.&gt;&gt;<br />&lt;&lt;통일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이냐 하는 그 간절한 정성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gt;&gt;

2015-06-02 05:27:36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