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15.5.31 저녁부 자원활동가 수련 2일째 및 불교대학 경전반 담당자 산나들이


 

안녕하세요. 오늘은 전국 저녁부 자원활동가 수련 2일째 날입니다. 스님께서는 오전에 즉문즉설과 회향식으로 자원활동가 수련을 마친 후, 10시30분부터는 저녁부 불교대학과 경전반 담당자들과 함께하는 수련을 이어나가셨습니다. 

 

대중들은 문경새재의 시원한 새벽공기를 마시며 모둠별 숙소 공간에서 중앙 방송을 들으며 천일결사 기도를 함께했습니다. 기도 후에는 6시30분부터 스님의 즉문즉설을 듣기 위해 모두 대강당에 모였습니다. 이번 즉문즉설 시간은 정토회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들었던 의문을 주제로 스님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으로 마련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천일결사 기도 후 원고 교정 업무를 보시다가 강연장에 들어오셨습니다. 

 

즉문즉설 시작에 앞서 스님께서는 “무변심 법사님이 노래를 참 잘하시는데 어제 어울림 마당에서 왜 노래를 안 시켰어요?”하며 잠이 아직 덜 깬 대중들의 마음을 밝게 환기시켜 주기 위해 법사님께 노래를 청했습니다. 명상을 하듯 눈을 감고 듣는 무변심 법사님의 맑고 고운 노랫소리는 문경의 새벽공기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내며 참가자들의 마음을 포근하게 해주었습니다. 

 


 

이어진 즉문즉설 시간에는 많은 분들이 그동안 봉사활동을 하면서 답답했던 점에 대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어제밤 12시 넘어서까지 논 사람 손들어 보세요” 하며 혹시나 법문 중에 대중들이 졸까 염려되어 체크를 하셨는데 다행히 손을 드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총 6명이 스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총무님의 조언이 지적으로 들려서 기분이 상할 때가 많은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법당에서 엑셀, 한글 등 컴퓨터 작업 요청이 많은데 직장생활과 집안일로 다 응해드리지 못해서 고민이 된다는 분, 정신 분열을 갖고 있는 친정 엄마를 모시는 게 너무 힘들어서 고민인 분, 팀원 중 한 사람이 주위 사람들에게 자꾸 간섭을 해서 화합이 깨지는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는 분, 대중들의 다양한 건의사항을 수렴하는 양식과 절차를 마련해 달라는 분, 목탁 및 의식 교육을 영상 교재로 제작해서 언제 어디서든 배울 수 있게 해달라는 분 등 다양한 질문에 대해 스님께서는 어떻게 수행적 관점을 잡아야 하는지 자세히 일러주셨습니다. 

 

그 중에서 저녁부 팀장을 맡고 계신 분의 질문을 소개합니다. 팀원 중 한 분이 일은 잘하는데 간섭을 자꾸 하여 다른 팀원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고 힘들어 하는데, 팀장으로써 어떻게 서로 화합할 수 있도록 잘 이끌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저녁부 팀장 소임을 맡고 있습니다. 팀원 중에 한분이 있는데 일도 잘 하고 면밀하게 잘 챙기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은 이분이 지적을 많이 하고 간섭을 한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몇몇 분들은 상처를 크게 받고 법당에도 나오기 싫다고 합니다. 저는 우리가 봉사활동 단체이니까 나오지 말라고 할 수는 없고 감싸안고 가야하지 않느냐 얘기는 했습니다. 봉사자들 사이에도 벽이 쌓이는 느낌이 드는데 이럴 땐 어떻게 사람을 다루고 화합을 해야 하나요?” 

 


 

“세속에 살면 현실을 좀 감안해야 하지 않아요? 이익과 손해를 좀 따질 줄 알아야 하지 않나요? 수행자라면 자신이 옳다고 생각할 때 목숨 걸고 가야함에도 불구하고 저는 늘 여러분들에게 현실적 이익을 살펴보라고 말씀드리잖아요.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 사람이 있음으로 해서 이런 긍정적인 면이 있고, 또 그 사람이 있음으로 해서 이런 한계가 발생한다면, 이 두 경우를 계산해보고 이익이 많으면 그냥 놔두면 되는 겁니다. 손해가 많으면 자를 수 밖에 없습니다.” 

 

“인선은 총무님이 권한을 갖고 있으니까요.”

 

“자른다는 것은 나오지 말라고 얘기하라는 것이 아니고, 일에 있어서 질문자가 그 사람에게 의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즉 일을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토회에서는 본인이 나가지 않는 이상 강제로 내보내지는 않잖아요. 그 사람이 나가도 좋다는 결론이 나면 그 때부터는 지적을 하면 됩니다.”

 

“지적하는 것을 잘 못하겠습니다.”  

 

“왜 지적을 못하냐면, 혹시 그 사람이 기분 나빠서 가버리면 손실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보살이여서 지적을 안하는 것이 아닙니다. 잔머리를 굴리고 계산하기 때문에 지적을 못하는 겁니다. 남편에게 필요한 것을 말 못하는 이유도 남편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고 언제 말해야 내 뜻이 관철될까 요리조리 계산하기 때문이예요. 

 


 

그러니 이익이 많고 손실이 적다면 그 손실을 내가 감수하면 됩니다. 내가 보살이여서 손실을 감수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영악하기 때문에 손실을 감수하는 겁니다. 그래도 이 사람이 있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일 잘하는 사람은 지적을 하면 기분 나빠하기 때문에 그냥 놔두고 그로 인한 손실은 내가 감수하는 겁니다. 그 사람이 저지른 행동에 대해 내가 대신 참회를 해주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사람을 두둔하지도 말고 ‘아이고, 그러시죠. 그래도 다 우리들의 수행 아닙니까. 같이 합시다’ 이렇게 위로를 해주면 됩니다. 이 사람을 위로해준다고 저 사람을 욕해도 안됩니다. 자기가 그 사람이 필요해서 데리고 있으면서 그 사람을 비난하면 어떡해요? 이 일이 내 일이니까 마치 내가 잘못한 것처럼 대신 참회를 하는 겁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정토회가 잘하려고 하지만 저도 그렇고 다 부족함이 조금씩 있지 않습니까. 함께 수행하면서 해갑시다’ 이렇게 말해주면서 다독여 가면 됩니다. 

 

그런데 보니까 아무리 많은 일을 해도 이 사람이 화합에 끼치는 해가 너무 커서 그 일을 안하는 것이 숫제 낫다면, 차라리 일을 절반 밖에 못해도 못난 우리들이 힘을 합해서 일을 하고 화합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면, 일도 해야 하고 화합도 해야 하는데 화합에 너무 금이 가니까 일을 조금 조정하고 화합을 하자고 결론이 서면, 질문자가 그 분에게 딱 얘기를 하면 됩니다. ‘거사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런저런 일이 있어서 다른 분들이 너무 힘들어하니까 좀 지적을 안해주시면 어떻겠어요?’ 이렇게 얘기해 보세요. 열심히 했는데 이렇게 요청하면 기분이 나쁘겠죠. 그러나 개선하는 데에 방점을 찍었다면 그 사람이 안 나올 각오를 해야 하는 겁니다. 약간 고쳐쓰면 되는데 조금 부작용이 있다고 버리면 바보 아니예요? 그러나 개선하겠다고 시작할 때는 나중에 포기할 것까지 이미 각오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남편을 고치겠다고 마음을 먹을 때는 안 고칠 경우에 포기해야 할 각오를 해야하고, 포기할 각오가 안되었으면 가능한 고칠려고 생각을 안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쓸만한 것은 잡고 있으면서 고치고 싶은 것만 상대편에게 자꾸 얘기하니까 싸우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필요하다면 그 사람 때문에 일어나는 비난의 과보를 내가 다 받습니다. 그리고 개선을 얘기할 때는 그 사람이 상처를 입지 않도록만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화합을 깨는 것이 지나쳐서 아무리 일을 잘해도 안되겠다고 판단이 되면 그 사람이 떨어질 것까지를 속으로만 각오를 하는 겁니다. 그 다음에 부작용에 대한 개선을 시도합니다. ‘법우님, 이건 도저히 안됩니다. 일을 잘하시는 것은 좋은데 이것은 개선해야 합니다’ 이렇게 얘기해야 하는 겁니다.” 

 

“네, 제가 과보를 받고 개선하겠습니다.” (청중들 웃음과 박수) 

 


 

“세상을 그대로 다 놔두고 내 마음만 바꾸라는 것도 아니고, 때로는 세상도 바꾸어야 하고, 때로는 내가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여기에서 관점이 중요한 겁니다. 남을 고쳐서 내 마음에 들도록 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항상 있는 그대로 두고도 쓸만한지를 먼저 평가해야 합니다. 산을 낮춰서 올라가려고 하지 말고, 산을 그대로 놓아 두고도 내가 올라갈 수 있는지를 점검해서 내가 가면 됩니다. 

 

그리고 상대를 좀 바꿔야겠다고 할 때는 포기할 각오까지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어렵더라도 한번 시작한 것은 끝까지 할 수가 있습니다. 포기할 각오가 되어있기 때문에요. 그렇지 않으면 조금만 반발이 있어도 혹시 떨어질까 겁이 나서 건드리다가 놔놓고, 놔놓으면 또 못봐줘서 잔소리를 하고, 또 반발하면 다시 놔놓고, 이러니까 내 머리가 자꾸 복잡하고 시끄러워지는 겁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심적으로 고통스러운 것은 다 자기의 욕심 때문에 그렇습니다. 좋은 것만 다 가지려는 것은 자신의 욕심입니다. 욕심을 내려놓고 접근을 해야 합니다.” 

 

질문자는 스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곧바로 ‘과보를 받겠다’며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청중들도 질문자의 선택에 큰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다음으로는 정토회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의견이나 제안을 하고 싶어도 사업이 촉박하게 진행되다보니 어려운 경우가 있다며. 의견이나 제안을 형식을 갖추어 올려줄 수 있는 서식을 마련했으면 좋겠다는 건의에 대한 스님의 답변을 소개합니다.

 

“정토회에서 봉사활동을 한지 5년째입니다. 전국에 법당이 100개가 있는데 그 중에는 활동을 의욕적으로 하려는 분들이 많을 것이고,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제안할 수 있는 내용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제안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은데, 현재는 지시가 촉박하게 떨어지다보니 보고 절차를 밟아서 의견을 제안하기에는 무리가 따르고, 또 피드백이 바로 오지 않으면 열정이 식어버리게 됩니다. 의견 수렴을 해주는 서식들이 갖춰져서 좋은 아이템들은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면 좋겠습니다.” 

 


 

“좋은 제안을 해주셨습니다. 행정처에서는 건의 사항들을 문서화해서 제출할 수 있는 양식과 절차를 만들어보면 좋겠습니다. 간단한 양식으로 제안 이유, 제안 내용, 결재받는 란을 만들고, 해결이 안되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건의가 올라오면 바로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가부 간에 대답을 못한다’는 답변이라도 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대부분 건의가 올라가면 답이 없는 경우가 많잖아요. 건의 내용을 전달 받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경우도 있거든요. 받았으면 받았다고 답을 해주거나 그렇지 않으면 ‘지금은 바로 답변드릴 수 없으니 3개월 뒤에 답변해주겠다’고 얘기를 해줘야 합니다. 된다, 안된다고 답변해 줄 수 있는 것은 해주고, 그렇지 못한 경우는 받았다고 먼저 알려주고 얼마 정도 기다리라고 답변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3개월 뒤에 답변해 준다고 했지만 그 때 가서 또 잊어버릴 수 있으니까 ‘그 때까지 답변이 없으면 다시한번 환기를 시켜 주십시오’ 덧붙여 주면 좋습니다. 행정처에서 알아서 답변을 해주면 좋은데, 시간이 지나면 문제 자체를 잊어버리거든요. 그 때 한번 더 문제를 제기해 주면 ‘아이고, 잊어버렸구나’ 하면서 다시 논의를 해서 답변을 보내줄 수가 있습니다. 

 

최소한 3일 이내에는 ‘접수를 받았다’는 한줄 만이라도 즉각적으로 답을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안심을 할 수 있고, 답이 오지 않으면 또 문제제기를 할 수 있습니다.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을 보고 ‘조급하다’, ‘수행이 덜 되었다’ 이렇게 말하면 안됩니다. 이런 건의는 받아들여서 규정으로 정하는 게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정토회의 원칙은 이렇습니다. 누구에게든 세 번까지는 계속 건의를 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담당자인데 팀장이 ‘No’ 하면 다시 제안을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얘기해도 ‘No’ 하면 또 제안을 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예기해도 또 ‘No’ 하면 이제 팀장한테는 포기해야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끝이 아니라 다시 그 위에 총무님한테 건의할 수 있습니다. 세 번 제안해보고 안되면 포기할 것이 아니라 그 윗선으로 다시 제안할 수 있습니다. 총무님한테 세 번 제안해서 또 ‘No’ 하면 이제는 지부 사무국장님한테 제안을 올릴 수 있습니다. 지부 사무국장님이 세 번 다 ‘No’ 하면 이제는 행정처장님한테 제안을 올리면 됩니다. 행정처장님이 세 번 다 ‘No’ 하면 그 다음은 전국 대의원회의에 건의할 수 있습니다. 

 

행정적으로 건의할 수 있는 것은 행정처장님이 마지막입니다. 행정처는 정해진 것을 집행하는 사람들인데, 회원들의 건의를 받아서 수렴하는 곳은 전국 대의원회의입니다. 대의원회의에서 안건으로 받아서 결정해버리면 행정처는 무조건 받아서 가야 합니다. 이렇게 해도 안되면 이제는 행정 업무가 아닌 수행 차원에서 법사단에 건의해야 합니다. ‘이런 문제로 이런 행정 절차를 거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것을 내려놓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합니까?’ 이렇게 법사단에 수행적으로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법사단은 행정 업무와는 관계가 없거든요. 법사단에 건의를 올렸는데도 ‘내려 놓아라’ 하면 그것이 아무리 좋아도 한 순간에 바로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법사단이 살펴보고 나서 ‘이분이 이렇게 꾸준히 제기하니까 재검토할 필요가 있겠다’ 하면 재검토 요청이 들어가게 됩니다. 법사단에 올라와서도 애매모호하다면 이 내용은 지도법사에게 올라오게 됩니다. 일리가 있다면 지도법사가 다시 행정처나 대의원회의에 재검토 요청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화가 나면 이렇게까지 할 수 없겠죠. 두 번 건의해보고 ‘에이, 정토회에 안 나가고 말지’ 이렇게 됩니다. 그러나 화가 나는 것이 아니고 이 일이 정말 필요한데 정토회에서 아직 이해를 못한다면 이 정도까지 할 수 있는 끈기가 있어야 합니다. 가끔씩 신문에 보면 요금 천원을 환불 못받아서 10년 소송해서 해결해내는 경우가 있잖아요. 화가 나면 천원 환불 받으려고 그렇게까지 할 수 없겠죠. 그것이 정말 개선이 되어야 한다고 인식하게 되면 그렇게까지 할 수 있게 됩니다. 이런 길이 있다는 것을 아시면 좋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건의사항이 금방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답답할 때가 있었는지 많은 분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 화를 내지 않으면서 개선해나가는 방식을 일러주시니 수행자는 어떻게 세상을 바꿔나가야 하는지 그 자세도 함께 배울 수 있었습니다. 

 

저녁부 자원활동가들의 고민과 의문으로 진지하게 진행되었던 즉문즉설을 마치고 1박2일의 수련을 마무리하는 회향식이 열렸습니다. 스님께서는 정토회 회원은 신도가 아니라 수행자라고 강조해 주시며 수행자의 6가지 덕목에 대해 강조해 주셨습니다. 

 

“여기 모인 우리는 수행자입니다. 머리카락이 길든, 세속에 살든 우리들의 본분은 수행자입니다. 수행자가 가져야 할 첫 번째 덕목은 괴로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일을 해도 좋은데 괴로우면 안됩니다. 괴로워지면 탁 돌이켜서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수행자가 심적으로 괴로워서 힘들다면 그것은 고장난 것입니다. 설령 괴롭더라도 그것이 나로부터 일어난 것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놓쳤더라도 ‘어, 내가 사로잡혔구나’ 하고 돌아오는 맛이 있어야 해요. 

 


 

둘째, 수행자라면 검소하게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생활은 검소하게 해야 합니다. 사치하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수행자라면 좀 겸손해야 합니다. 그저 보통 사람으로 살면 된다는 얘기입니다. 일부로 겸손하라는 것이 아니라 직위를 자기로 착각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잠시 그 역할을 할 뿐이지 직위가 내가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으면 저절로 남이 겸손하다고 얘기를 해줍니다. 보통 사람일 때는 겸손하다는 얘기를 잘 안하는데, 직위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보통 사람처럼 행동하면 ‘아이고, 그 사람 겸손하네’ 이런 얘기를 하는 겁니다. 

 

넷째, 수행자는 게으르지 말고 성실해야 합니다. 

 

다섯째, 수행자는 마음이 편안해야 합니다. 긴장해 있으면 안됩니다. 즉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섯째, 수행자는 남의 덕을 보려고 하면 안됩니다. 조금이라도 이웃과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남에게 손해를 끼치는 사람이 되면 안됩니다. 남편과 아내라면 서로 덕 보려고 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부모가 되었으면 자식에게 조금이라도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자식이라면 부모를 조금이라도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이 세상을 살면서 다른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정도의 원칙만 지키고 이 세상을 마음껏 사세요. 이렇게 살면 이게 수행자입니다. 머리 깍은 스님들이나 신부님들 중에 이 정도도 못사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개미를 죽여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 이런 것 갖고 자꾸 시비하지 말고, 이런 것들만이라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짧지만 깊은 당부의 말씀이셨습니다. 수행자라는 것이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이렇게 기본을 성실히 지켜나가는 것임을 다시한번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회향식을 마치고 다시 야외로 나왔습니다. 수련을 마친 저녁부 자원활동가들은 문경새재 제1관문을 지나 전나무가 우거진 넓은 공터에 모여 앉아 오늘 수련을 함께 하게 될 저녁부 불교대학과 경전반 담당자들을 기다렸습니다. 10시부터 전국 각지에서 출발한 불교대학과 경전반 담당자들이 속속 도착했고, 대구정토회 권복분님의 재치있는 진행으로 율동과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이 10시30분이 되자 스님께서 막 도착하셨습니다. 

 

참가자들은 간식으로 지급된 떡과 오이 2개를 양손에 들고 목을 축인 뒤, 환하게 웃는 얼굴로 스님을 맞이하였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전국에서 382명이 모였다는 사회자의 멘트에 모두들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몇몇 분들은 “전국에 불교대학 담당자들이 이렇게 많이 있었나?” 하며 놀라기도 했습니다. 

 


 

곧게 뻗은 전나무 사이 사이에 빼곡이 걸터 앉은 참가자들은 삼귀의, 반야심경, 청법가를 부른 후 스님께 입재 법문을 청해 들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입재 법문을 통해 불교대학생들이 입학 후 가장 큰 어려움으로 느끼고 있는 불교 예식에 대한 거부감을 어떻게 지혜롭게 극복할 것인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불교대학 졸업을 해야 불교대학 담당을 맡을 수 있잖아요. 그러면 자신이 불교대학에 다닐 때 어떤 점이 좀 힘들었는지 다 기억하실 것 아니예요? 즉문즉설만 듣다가 절에 처음 왔는데, 오자마자 아무런 예고도 없이 바로 예불이나 삼귀의, 반야심경을 한다든지 이렇게 예식 때문에 힘든 경우도 있었을 겁니다. 이런 불편함을 자신이 알기 때문에 내가 담당을 할 때는 처음 오신 분들에게 이런 불편함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안내를 해주고, 교과과정에 이런 안내 시간이 따로 배정되어 있지 않더라도 예불하기 전에 ‘이것은 불교의 전통 문화입니다. 그 뜻은 다음에 배울 시간이 따로 배정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다만 부처님을 찬탄하는 전통 가락이니까 같이 한번 연습해 보겠습니다. 다 익히지는 못하더라도 그냥 한번 구경하십시오’ 이렇게 안내를 해줄 수 있거든요. 

 

예불과 반야심경은 전통 음악이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교회에 가면 하나님을 찬탄하는 성가가 있지요. 처음 가는 사람들은 그 노래를 모르니까 그냥 옆에서 듣고 있으면 되잖아요. 그러다가 ‘기쁘다 구주 오셨네’ 이 노래가 나오면 따라 하면 되고요. (대중들 웃음) 

 


 

이것은 문화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어색해요. 문화는 금방 바꿀 수가 없어요. 제사를 지낼 때 진짜 귀신이 와서 밥을 먹는지 따지면 굉장히 복잡해집니다. 조상 대대로 해온 거니까 그냥 하는 것이죠. 전통 문화는 계승한다고 말해요. 문화는 그것이 진짜냐 가짜냐 따질 수가 없어요. 

 

여러분들이 즉문즉설을 듣거나 지금 불교대학에서 배우는 내용은 문화가 아닌 ‘담마’예요. 담마는 진리입니다. 진리라는 것은 이것이 옳으니 그르니 따질 수가 있어요.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눈 있는 자는 와서 보라’ 이렇게 말하셨죠. 과학적 진실은 누가 검증을 해도 똑같은 결론이 나옵니다. 우리가 배우는 것은 담마이지만, 절에 오게 되면 전통 문화가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전통 문화를 다 없애버리면 남들이 보기에는 그건 불교 아니다 이렇게 되어 버립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상’을 갖고 사물을 보기 때문입니다. 제가 담마의 눈으로 여러분들을 보면 여러분들은 모두 스님입니다. 마음이 청정한 자가 스님이니까요. 그런데 저기 밖에 있는 사람들이 우리 모습을 보면 ‘거기 스님 두명 하고 대중들이 많이 모여 있다’ 이렇게 말합니다. (대중들 웃음)

 


 

담마를 담는 그릇은 문화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문화를 불교라고 봅니다. 그래서 이런 문화를 없애버리면 불교가 아닌 것이 되고, 이런 문화를 그대로 두면 접근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정토불교대학 안에서도 이런 문화 때문에 학생들의 충격이 많습니다. 즉문즉설은 이런 문화를 없애버렸기 때문에 아무런 부담 없이 교회다니는 사람도 옵니다. 그러나 절에서 하는 예불이나 천도재는 문화이지 담마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볼 때는 그것이 불교입니다. 여기에 서로 모순이 있습니다. 

 

정토회는 문화 계승보다는 담마의 계승을 중요시하지만,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한국말을 쓰듯이 불교의 전통 문화를 일부 계승했기 때문에 불교대학생들에게는 여기에 적응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어려움을 다 겪었으니까 학생들에게는 이 내용을 자세히 설명해 주면 좋겠어요. ‘밥을 먹으려면 밥그릇을 씻어야 하듯이 담마를 배우러 오셨지만 이 담마가 절이라는 전통 문화에 담겨 있으니까 이런 수고를 좀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학생들에게 이해를 좀 시켜줘야 합니다. 이 문화를 갖고 너무 곧이곧대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하면 안됩니다. 대충 하도록 놔두면 됩니다. 절할 때 엉덩이를 너무 들면 엉덩이 좀 눌러주고 이런 정도만 하면 돼요. (대중들 웃음) 

 


 

이렇게 처음에는 한국의 불교 문화 때문에 힘들었다면, 이제 두 번째는 부처님의 일생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인도의 문화에 대해 자세히 강의를 하잖아요. 인도의 자연환경과 기후에 대해 얘기하니까 꼭 고등학교 수업 듣는 것 같아서 머리가 아픕니다. 육사 외도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무슨 소리인줄 모르겠고, 그 다음에는 부처님을 인도의 전통문화 입장에서 이해시키기 위해 그 분의 전생 이야기를 하는데 ‘무슨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싶잖아요. 처음에 나타나는 이런 어려운 고비들을 잘 넘어가도록 안내해 주셔야 합니다. 

 

저는 고등학교 다니다가 그만두었지만 학원에서 서울대 갈 학생들을 가르쳤거든요. 그 때 저의 가장 큰 장점은 ‘내가 모른다’는 것이였어요. 내가 모르니까 모르는 학생들의 심정을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알았던 겁니다. 매일 매일 가르칠 때마다 학생들의 심정으로 연습해서 가야 했으니까요. 그러나 학생들이 수업을 들을 때는 일류 선생들보다 제가 더 나았던 겁니다. 그러니 스님이나 법사님들이 불교대학생들을 관리하는 것보다 초짜배기 여러분들이 관리를 더 잘할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불교대학 다니면서 무엇이 힘들었는지 내 기억이 생생하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도 자세하게 안내해 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래 절에 다닌 사람들은 너무나 익숙해져서 처음 온 사람들의 심정을 모릅니다. 그래서 불교대학을 갓 졸업하고 불교대학 담당자가 되면 서투른 것도 있지만 더 잘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모르는 것이 있다고 너무 신경쓸 필요 없습니다. 모르면 총무님이나 팀장팀님한테 물어가면서 하면 됩니다. 여러분들 같은 담당자들이 학생들을 어떻게 대해주느냐가 학생들이 계속 다닐지 말지 상당부분 결정이 납니다. 공부가 좀 힘들 때 담당자가 다가와서 ‘아이고, 힘드시죠? 저도 그 때 무슨 소리인줄 몰라서 황당했어요’ 이렇게 맞장구를 쳐주면서 ‘그런데 그 시기가 지나고 나서는 진짜 재미있었어요’ 말해줘 보세요. 이렇게 여러분들이 잘 운영해 나가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오늘은 특별한 교육이 있는 것이 아니고, 말이 수련이지 그냥 산나들이입니다. 그냥 같이 산책하는 겁니다. 스님 뒷통수를 보고 가든지 어쨌든 주욱 걸으면서 얘기도 나누고 밥도 같이 먹고 서로의 고충도 좀 얘기하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그동안 여러분들이 수고 많이하신 것에 대한 보답을 이렇게 몇마디 말로 때우겠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대중들 웃음과 박수) 

 


 

불교대학 담당자들이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애환을 콕 짚어서 말씀해 주셔서 그런지 모두들 스님의 답변을 듣고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특히 문화와 담마는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씀, 경험이 적기 때문에 오히려 장점이 많다는 말씀 등은 담당자들에게 자신감을 주고 큰 위로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입재식을 마친 후 전국에서 가장 걷고 싶은 길 1위로 선정되었다고 하는 문경새재 옛길을 걸어보는 산나들이를 하였습니다. 스님이 선두에 서시고, 382명의 대중들은 5월 마지막날의 시원한 바람을 즐기며 걷기 산책을 하였습니다. 

 


▲ 지름틀바위

 

기름을 짜는 틀처럼 생겼다는 지름틀바위를 지나고, 과거 시험을 보러 가는 유생들이 잠심 머물렀던 곳이라는 조령원터를 지나 숲속의 나무 그늘에 도착한 자원활동가들은 스님과 함께 고요히 명상을 하였습니다. 

 


 

푸르른 나무 그늘 아래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코로 들어가는 숨과 나오는 숨에 집중하며 고요히 명상에 잠긴 대중들의 모습은 마치 2600년 전의 부처님과 그 제자들의 모습처럼 느껴졌습니다. 

 


▲ 숲속 명상 

 

스님의 죽비 소리로 명상을 마친 후에는 즐거운 점심 식사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어제부터 수련에 참여한 분들은 자원봉사자들이 정성껏 준비해준 주먹밥과 반찬을 받고, 오늘 합류한 불교대학과 경전반 담당자들은 집에서 싸온 도식락을 펼쳐 놓고, 삼삼오오 함께 어우러져 즐거운 식사 시간을 가졌습니다. 

 

점심 식사 후에는 그 자리에서 간단한 레크리에이션을 하며 몸과 마음의 긴장을 푸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늘진 숲속의 빈터 앞쪽에 자리를 잡은 스님께서는 멀리 있는 대중들을 스님 가까이로 불러 모으셨습니다. 특히 “질문할 사람과 노래로서 대중들을 즐겁게 해 줄 사람은 스님 곁에 자리를 잡으라”고 하시며 오래 앉아 있는 것이 힘든 대중들을 즐겁게 해줄 비상약을 갖춘 후 법문을 시작하셨습니다.  

 


 

숲이 우거진 곳에서 새소리 바람소리와 함께 그야말로 ‘야단법석’이 펼쳐졌습니다. 그러나 자연 속에서 함께해서 그런지 졸거나 지루해 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송수신기 이어폰으로 들려오는 스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때로는 저 멀리 연두색 불빛의 나무들을 보았다가, 저 하늘 위를 보았다가, 질문자의 목소리에 집중했다가, 스님의 답변에 크게 웃어보기도 하다가 보니 어느새 3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질문자도 13명이나 되었습니다. 오늘 자리가 불교대학과 경전반 담당자 수련인 만큼 불교대학과 경전반을 진행하면서 느낀 의문점과 애로점에 대한 질문이 많았습니다. 

 

불교대학을 운영하면서 내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학생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인 분, 불교대학 졸업을 위해서는 깨달음의장 수련이 필수인데, 자의 또는 타의로 깨달음의 장 수련을 가지못하는 사람들이 자꾸 생겨서 마음이 불편한 분, 올해부터 새로 도입된 불교대학 교과과정의 봉사활동 프로그램이 시간에 쫓기는 저녁반에게는 부담이 된다는 분, 수업에도 열심이고 봉사활동에도 열심이었던 한 도반을 하늘나라로 보낸 후 마음이 많이 우울한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묻는 분, 올해 봄 불교대학의 교과과정에 들어온 수행맛보기 프로그램이 오히려 많은 탈락자를 유발했다고 지적해 주신 분, 이동수업이 잦은 직장인들에게 타 법당 수업의 진도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이 필요하다는 건의를 하시는 분... 

 

새로 일하게 된 직장이 구호단체에서 후원자 모집을 하는 일인데 정토회의 정회원으로서 JTS가 아닌 다른 단체에서 일하는 것 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다는 분, JTS의 거리모금은 학생들에게 좋은 봉사 프로그램인데 학생들의 봉사확인증 발급을 중단한 이유를 묻는 분, 경전반 수업을 들을 때는 ‘아, 그렇구나’ 하는 감동이 있는데 금방 돌아서서 잊어버려서 오래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을 묻는 분, 학생들을 지나치게 가르치려 하는 불교대학 모둠장을 어떻게 해야할지 묻는 분, 법당 회원들의 전체 카톡방이 좋은 소통 공간이었는데 올해 그 카톡방을 모두 폐지하게 되어 아쉽다는 질문 등 많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때로는 명쾌하게 때로는 따뜻하게 질문자 한사람 한사람의 질문에 자상하게 답변해 주셨습니다. 

 

그 중에서 첫 번째 질문인 담당자로서 불교대학을 운영하면서 내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학생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질문한 내용에 대한 스님의 답변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봄 불교대학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학생 중 한명이 저보다 나이가 많은 여자 분이 있어요. 수행법회에 자주 참석하시는 분이라 정토회에 대해 잘 아시는 분이라고 생각하고 여러 가지 봉사활동 소임을 제안했어요. 그런데 많이 부담스러웠는지 자꾸 거절을 하시다가 나중에는 ‘너 때문에 나는 불교대학을 못 나오겠다’ 말씀하시는 겁니다. 걸레질 소임을 시켰는데 손이 지저분해진다고 하기 싫다 그러시고, 방석 깔기를 부탁했는데 법회 시작하고 나서 오고 끝나기 전에 그냥 가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저도 상처를 받았고, 앞으로도 어떻게 이 분을 대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스님께서는 이렇게 답변해 주셨습니다. 

 

“그 사람 문제가 아니고 자기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그 분이 ‘평균적인 사람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되면 ‘저 분은 참 이상한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아, 저 분은 좀 많이 힘드신가 보다’ 이렇게 접근해야 됩니다. 보통 사람들도 다 짜증내고 성질내고 말 안듣고 하지요. 여러분들도 학교 선생님이 되어서 수업해 보면 반에서 꼭 한 두명은 ‘저 아이만 없으면 수업할만한데’ 이런 학생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저 아이 문제다’ 이렇게 접근하지 말고 ‘저 아이가 참 힘든가 보다’ 이렇게 보셔야 해요. 즉, 보통 사람과는 다른 특이한 성향을 나타낸다면 그 사람의 성장 배경 측면에서 그 사람 나름대로 어려운 점이 있는 거예요. 자라온 환경 때문에 그렇든, 내가 모르는 어떤 경험 때문에 그렇든, 어떤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그러므로 ‘아, 저분은 좀 어려운가 보다’ 이렇게 먼저 이해하는 마음을 내야 합니다. 

 

 

그 다음은 그 사람을 주시해서 관찰을 좀 해야 합니다. 방석을 깔아라 했는데 안 깔았다 이렇게 보지 말고 테스트를 한번 해보는 거예요. 방석 깔아라고 했더니 수업 시작 이후에 오고, 또 법회 끝나고 방석 치우는 일을 맡겼는데 수업 끝나기 전에 나가버렸다 했는데, 이렇게 테스트를 해보면 그 사람이 일반적인 사람과는 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잖아요. 문제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업식으로 들어가 보면 그 사람에게는 무언가 어려움이 있다는 겁니다. 

  

이럴 때는 두가지 방법이 있어요. 소극적인 방법은 조금 놔두는 경우입니다. 방석깔아라 뭐해라 하지 말고 조금 놔두고 지켜보는 게 필요합니다. 두 번째는 어려움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주는 것이 필요해요. 방석깔아라 뭐해라 이렇게 말할 게 아니라 어떤 일을 도와주면서 ‘힘드시죠? 뭐 어떤 일이 있어요?’ 이렇게 물어서 내가 하는 일을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의 어려움을 내가 조금이라도 이해하거나 들어라도 줄 수 있는 것이 있는지 살피는 겁니다. 접근을 이렇게하면 지금처럼 심리적으로 불편하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자꾸 내 생각만 하게 되지요. 나 보다 나이도 많고 수행법회도 자주 나오니까 잘 도와주지 않겠느냐 예측을 했는데 실제로 해보니 그 예측이 안 맞잖아요. 이것은 나이라든지 얼굴이라든지 경력이라든지 이런 것만 보고 사람을 평가해서 생긴 문제입니다. 그 사람의 심리는 내가 전혀 몰랐잖아요. 그러면 ‘아, 내가 판단을 잘 못했구나’ 이렇게 일단락 짓고, 두번째는 이 사람이 어떤 분인지 몇가지 테스트를 해보고, 그러니까 ‘이분에게는 이렇게 대하면 되겠다’ 이렇게 방안을 마련하면 되는 겁니다. 인간이든 사물이든 모든 게 다 마찬가지예요. 기계도 다 똑같아요. 기계를 이렇게 쓰면 된다 해서 써봤더니 제대로 작동을 하면 다행인데 그렇게 작동을 안하면 ‘뭐가 문제지?’, ‘아! 이 기계는 이런 문제가 있구나’ 하면서 거기에 맞게끔 쓰면 되거든요. 고장나면 고치면 되고요. 

 

그래서 그것은 그 사람의 문제는 아니예요. 자기가 그 사람에 대해서 전혀 이해가 없는 겁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이 조금씩 다 다른데 자기는 모든 사람을 다 자기같이 생각하고 접근하는 거예요. 질문자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세상을 볼 때 다 질문자처럼 생각하고 접근을 합니다. 그런데 접근은 그렇게 하지만, 접근해 보고 안 맞으면 ‘이 사람은 나하고 다르구나’, ‘이 사람은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 이렇게 연구를 하면서 그 사람을 이해해야 된다는 거예요. 질문자가 접근을 처음에 그렇게 한 건 문제가 안 됩니다. 그런데 계속 그걸 가지고 나한테 안맞다고 하고, 내가 접근하는 방식에 이 사람이 부응을 안해준다고 계속 문제를 삼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것은 전적으로 자기 문제라는 겁니다. 그 사람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는 문제입니다. 연구를 안한다, 게으르다, 다른 말로 하면 고집이 세다 이말입니다. 

 

 

자기 잣대로만 계속 보고 있는 거예요. 어떤 일이든 한번 해보고 두 번 해보고 세 번 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어, 왜 이러지?’ 하면서 몇 가지 체크를 해봐야 하지요. 그 사람과 자세히 이야기를 나눠보면 걸레질을 그렇게 할 때는 그 사람 나름대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있습니다. 정신적인 문제가 있든지, 주변 환경적인 문제가 있든지, 그 사람 나름대로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절에 와서 ‘나 걸레질 안할래’ 이런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그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벌써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잖아요. 그러면 ‘이게 어디 절에 와서 걸레질도 안할려고 그래?’ 이렇게 접근하지 말고 ‘어,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이렇게 접근하면서 ‘왜 그래요?’ 이렇게 물어보면 되죠. 시비 걸듯이 물어보지 말고요. 걸레질 말고도 그 사람이 할 수 있는 다른 일도 많이 있잖아요. 다른 일들을 맡겨도 다 그렇다면 이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야 되느냐? ‘이 분은 나와서 강의 들어주는 것만 해도 고맙다. 수업 안 빼먹고 나와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 분이다. 여기 나와서 강의라도 들어야 저 사람이 좋아지지. 여기 강의라도 안들으면 얼마나 힘들까?’ 이렇게 생각을 탁 바꾸어야 해요.”

  

그러자 질문자의 질문이 다시 이어졌습니다.

 

“또 수행맛보기를 할 때는 ‘108배를 굳이 해야하나’ 이렇게 이야기 하시면서 부담스러워 하고, ‘나는 여기에 수업만 들으려고 왔지 정진하러 온 것이 아니다’ 이렇게 딱 잘라서 말하시거든요.” 

 

스님의 답변이 계속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그렇게 하도록 그냥 놔 놓으면 돼요. 그런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또 자연스럽게 참석하니까요. 내가 학생 10명을 관리해야 하면 열명 리스트를 만드세요. 곱표 세모표를 하면서 이 분은 수업만 듣게 하지 현재로서 다른 것은 하기 어렵다고 표시를 딱 해놓고요. 또 어떤 사람은 봉사활동 점수가 안 되어서 나중에 졸업을 못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러면 뭘 하라고 강요하지 말고 ‘졸업 하실려면 지금 봉사 점수가 조금 부족하시네요’ 이렇게 애기해주면 본인이 알아서 합니다. 그렇게 민감하게 대응하는 사람을 내 뜻대로 끝까지 할려고 하는 것도 내 고집입니다. 우리는 이 좋은 법을 권유하고 안내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지 그것을 하고 안하고는 그 사람의 문제입니다. 

 


 

내 마음에 두 가지가 있으면 내 문제예요. 하나는 ‘저 사람을 어떻게든 기를 꺽어가지고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야 되겠다’ 하면 이것을 집착이라 그래요. 다른 하나는 몇 번 해보고 안되면 ‘아이고, 저 인간은 안된다. 니 알아서 해라. 난 모르겠다’ 하면 이것을 외면이라 그래요. 집착도 안되고 그렇다고 외면도 안됩니다. 이 두 가지는 다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니고 내 문제예요. 그러니까 나는 좋은 법을 지속적으로 권유해 줄 뿐이예요. 그 사람이 반발을 해도 크게 개의할 필요가 없어요. 반발을 하니까 ‘에이, 모르겠다. 니 알아서 해라’ 이렇게 외면하는 심리 상태가 일어나면 ‘내가 집착했구나’ 하고 알아야 됩니다. 권유를 했을 때 상대가 안하겠다고 했는데도 내가 섭섭하지 않으면 그것은 집착이 아니예요. 그러면 다음에 또 권유할 수가 있어요. 권유를 했더니 ‘니 때문에 안 나오겠다’ 이러면 ‘아이고. 죄송합니다’ 이러면 되지 ‘아이고, 나 때문에 저 사람이 떨어졌다’, ‘그 사람이 문제다’ 이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요. 왜냐하면 세상 사람은 다 반응을 달리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애기를 하더라도 사람들의 저항이 있을 수가 있어요. 그 사람이 나빠서도 아니고 내가 잘못해서도 아니고 서로의 까르마가 다르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 괴로워하기 때문에 문제예요. 그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거든요. 

 


 

불교대학 담당 맡기를 잘 했어요. 그런 성질 안 뜯어고치면 앞으로 결혼해서 못 살아요. 그 분이 문제가 아니라 질문자가 문제라니까요. 남편이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고 사람이라는 건 늘 똑같지가 않고 이러저러 하거든요. ‘아, 오늘은 화가 났구나’, ‘오늘은 친구를 만나서 늦게 들어왔구나’ 이렇게 받아들여야 둘이 사는게 유지가 되지요. ‘저게 어제는 저러더니 오늘은 이런다. 오늘은 이런데 내일은 저런다’ 이렇게 따지면 같이 살수가 없어요. 

 

그러니 불교대학을 담당하는 것이 우선은 정토회를 위해서 자기가 봉사하는 것 같지만 이렇게 자기가 마음 편해지는 공부도 같이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어떻든 상관없이 내가 편안해지는 공부를 해나가면 그것이 곧 내 결혼생활에도 도움이 되고 직장생활에도 도움이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 직장에 가면 ‘사장은 이게 문제이고, 부하는 저게 문제이고...’ 내내 그런 이야기만 하게 됩니다. 결혼하면 남편이 문제이고, 애 낳으면 애가 문제이고, 그럼 이 세상을 어떻게 뜯어고쳐야 자기 마음에 다 맞을까요? 이 세상은 큰 나무도 있고 작은 나무도 있고 공작 같은 새도 있고 작은 거미 같은 벌레도 있고 보이지 않는 세균도 있고 온갖 것들이 어우러져 사는 세상이기 때문에 다 똑같지가 않다는 거요. 또 사람들 사이에서도 피부 빛깔이 다르든지 생김이 다르든지 또 생긴 건 같아도 그 속을 보면 성질이 다르든지 이렇게 다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접근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사람을 사귄다는 것은 연구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알아가는 것이 사귀는 것이예요. 내 마음에 맞도록 뜯어고치는 것이 사귀는 것이 아니예요. 그건 독재이지요. 그 사람을 알아가는 것, ‘아, 이 사람은 이런 특성이 있구나. 저런 특성이 있구나. 이런 상처가 있구나’ 이렇게 알아가면서 서로 적응하는 겁니다. 이것이 조화입니다. 서로 적응해가면서 살아가는 게 공동체입니다. 억지로 성과를 내기 위해서 그 사람과의 관계를 풀어라는 것이 아니라, 연구해 가면서 그런 사람 하고도 잘 사귈 수 있게 되면 인간관계의 폭이 넓어지니까 내 공부에 도움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 불법이라는 것은 나에게도 도움이 되고 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길로 나아가는 겁니다. 그래서 그 분을 통해 이런 인생 공부를 좀 하세요.” 

 

스님의 답변에 질문자의 표정도 밝아졌습니다. 함께 법문을 들은 대중들도 질문자처럼 말 안듣는 학생 한 명 쯤은 경험해 봤기 때문인지 무척 공감하는 표정이였습니다. 그래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많은 대중들이 이 답변 내용에 대해 소감을 말하기도 했습니다. 

 

스님께서 답변하시는 중간 중간에 노래 잘 부르는 사람들이 나와서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시간을 아주 흥겹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또 어떤 분은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서 노래를 한곡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노래 한 곡 부르고 질문하는 풍경이 계속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 법문 중간에 노래를 불러서 대중들을 기쁘게 해주겠다고 나온 청년

 

3시간 동안의 긴 즉문즉설이 끝나자 조금이라도 깨우침을 주기 위해 정성을 다해 법문을 해주신 스님께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의 수련을 마무리하는 회향식이 진행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회향식에서 다음과 같이 마무리 말씀을 주셨습니다.

 

“현재의 인류 문명은 지속가능하지 못합니다. 이 문명은 반드시 한계에 다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정토회는 큰 원이 있습니다. 현대 문명의 병폐를 시정할 그 다음 문명의 모델을 만드는 것입니다. 세상을 모두 정토세상으로 만드는 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우리들의 후손들이 해야 할 일이고, 그것을 준비하기 위한 모델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언제 이런 기회가 올까요? 우리는 열심히 모델을 만들고 있으면 됩니다. 세상이 지 풀에 죽어서 내리막길을 걸으면 그 때부터 싹이 틀 겁니다. 30년 만에 내리막길에 다다르면 30년 만에 싹이 트기 시작할 것이고, 50년 만에 내리막길에 다드르면 50년 만에 싹이 트기 시작할 겁니다. 현대 문명이 스스로 자정 작용을 해서 100년을 지속하면 100년 뒤에 싹이 틀 겁니다. 우리는 현대 문명이 빨리 망해라고 얘기할 필요도 없고, 망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러나 이런 수준으로 가면 어치피 한계점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러면 그 이후에 우리 인류는 어떤 삶을 살아야 되겠느냐? 여기서 가장 큰 이슈는 환경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에 대비한 삶을 이 현대 문명 속에서 연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우리들의 방식이 이 현대 문명 안에서는 안 맞는 것이 많아요. 여러분들이 보기에 비효율적이고 적응도 잘 안되는 경우도 있을 거예요.    

 

두 번째는 내가 인연이 되어 자란 대한민국이 세계 문명의 꽃을 한번 피워보자는 것입니다. 다음 문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문명 안에서는 조금 더 앞서가는 기회를 한번 만들어보자는 것이죠. 그럴려면 세계 문명의 중심이 동아시아로 오도록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들어야 하고,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들려면 통일 한국이 이뤄져야 하고, 통일 한국이 이뤄지려면 남한에 통일 지향적인 정부가 들어서야 합니다. 이런 수순으로 한 100년 정도의 계획을 잡고, 그 안에서 다시 3년 계획, 10년 계획, 30년 계획, 100년 계획을 세우고 해나가는 현실적인 목표가 있습니다. 

 


 

세 번째는 더 줄여서 이런 꿈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개인은 행복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꿈은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는 일이니까 일단은 되든 안되든 진행해나가는 과정에서 내가 행복하면 안되더라도 손해날 일은 없습니다. 이게 수행입니다. 항상 수행자들이 모여서 이런 일을 하기 때문에 ‘그거 될 것 같아요? 안 될 것 같아요?’ 이런 얘기는 할 필요가 없어요. 되면 좋은 일이지만, 안되어도 별로 상관 안하기 때문입니다. 

 

천당과 지옥이 있든지 말든지 별로 상관 안하지만, ‘천당이 있다면 나 빼고 갈 사람이 어디 있겠나?’ 하는 이런 정도의 자부심이 있어야 되고, ‘지옥이 아무리 있더라도 내가 갈 일은 없다’ 이런 정도의 자부심이 있어야 됩니다. 지옥 갈 행동을 해놓고 누구한테 빌어서 천당 가려고 하는, 이런 비겁한 생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수행자들아, 비굴하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라’ 이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돈에 비굴해도 안되고 신에 비굴해도 안되고 인기에 비굴해도 안되고 권력에 비굴해도 안됩니다. 그렇다고 내가 정토회 회원이라고 목에 힘을 주고 교만해서도 안됩니다. ‘수행자들아, 교만하지 말고 겸손해라’ 는 부처님의 말씀을 우리가 명심하면서 살아야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중생이다 보니까 원칙에 안 맞는 행동을 많이 하잖아요. 이런 걸 좀 이쁘게 봐주세요. 아직 우리는 완성된 인간이 아니니까요. 그렇게 해서 이 현실적 한계는 인정하되 그러나 우리들의 꿈은 버리지 말고 꿈을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갑시다. 그런 길에 함께 동참해서 가고 있는 도반들이니까 소중한 줄을 알고 서로 아껴가면서 함께 가면 좋겠습니다.”

 

이 길을 함께 가는 도반들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말씀에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이런 큰 원을 잊고 사니까 도반들에 대한 애정도 부족했던 것이였구나 새삼 알게 되는 순간이였습니다. 

 

회향식을 마치고 나서는 야단법석이 열린 숲속에서 다함께 단체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렇게 1박2일 간의 저녁부 자원활동가 수련 및 불교대 경전반 담당자 수련이 마무리되었습니다. 

 


 

나눠준 가래떡을 성큼 입에 물고 문경새재 옛길을 따라 걸어 내려오는 길에는 오랜만에 도반들과의 이야기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내 마음, 도반의 마음을 느끼며 나만 바라보던 시야를 도반들에게까지 더 넓혀봅니다. 

 

또 신발을 벗고 맨발로 흙길을 걷는 모습이 많이 보였습니다. 나무 위에서는 새들이 지저귀고, 계곡에는 졸졸졸 시냇물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렇게 자연으로 돌아가 나무, 흙, 바위, 바람과 하나가 되어봅니다. 

 

  

 


 

제1관문을 통과해서 나오자 스님께서는 “사진 찍고 싶은 사람은 10명 이상씩 모여서 여기로 오세요” 하시면서 참가한 모든 대중들과 일일이 사진을 찍어 주셨습니다. 맨날 영상으로만 보던 스님을 이렇게 가끼이서 뵙고 사진도 함께 찍으니 모두들 입가에 웃음이 한가득입니다. 

 


 

대중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본 뒤 스님께서는 두북으로 이동하셔서 오늘 일정을 모두 마치셨습니다. 

 


 

내일은 두북에서 농사일을 하신 후 오후에는 서울로 올라오셔서 저녁7시부터 서초구민회관에서 ‘통일 안 하면 안되나요?’를 주제로 통일 즉문즉설 강연을 하실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전체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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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원

어떠한 문제가 있을때 그사람의 문제가 아닌 내문제로
보고 이해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는것을 귀한스님 법문을 통해 깨우치게됩니다. 감사합니다.

2015-06-10 19:59:17

박미건

스님 감사합니다. 내 잣대로 상대를 저울질 하지 않겠습니다. 무탈하시길 빕니다.

2015-06-04 06:10:59

정토세상

잘 읽었습니다. 누구든 현실에서 어떤 경계에 부딪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잘 안 되죠. 감정적으로 대응하거나, 홧김에 엉뚱한 곳으로 화살이 튀거나, 아니면 그냥 참다가 혼자서 마음앓이만 하고 말죠. 스님의 하루를 읽으며 항상 느끼는 거지만
1. 어쩌면 요렇게까지 현장을 잘 파악하고 계시나 싶어 감탄
2. 당장 실천 가능한 현실적인 답변을 해 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3. 가끔은 개떡같이 물어 무슨 소린지 알아 들을 수가 없는데도, 찰떡 같이 답변해 주시니 청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늘 수행의 힘이 뒷받침 되는 깨어있는 삶을 사시기 때문에 가능한게 아닌가 싶네요.

2015-06-03 22:5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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