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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전법당에서 새벽예불과 기도후 원고교정업무를 보시느라 예정보다 조금 늦게 아침공양을 한 후 진주 강연이 있는 경남과기대로 출발했습니다. 10시 강연이라 서둘러서 왔는데, 도착하고 보니 강연이 10시 30분이라고 해서 조금 여유가 있었습니다.
대기실에서 경남지부장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오늘 경남지부 소속 활동가들과 점심 식사를 겸한 모임을 가지기로 했는데, 식사 장소가 한정식 집이라는 말을 듣고 스님께서는 취소하는게 어떻겠냐하시니 예약이 되어 재료가 준비되어서 취소는 어렵다는 말을 듣고 그러면 스님께서는 그런자리에 가기가 어렵다고 활동가들만 가도록 조정했습니다.
스님과 경남지부 활동가들과의 모임을 대기실에서 강연이 끝난 후 하기로 하고 모임을 끝낸 후 활동가들은 식사를 하러 가기로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내가 한끼 먹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한번하게 되면 다음에 또 하게 되고 다른 지역도 또 본받게 됩니다. 또 내려가면서는 법사님들께도 그렇게 하게 되면서 점점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식당은 취소할 수 없다고 하니 모임 후에 활동가들이 가서 먹고 나는 행자들과 함께 가다가 먹겠습니다.”라고 하시면서 정토회 활동가가 스님을 모실 때 유의해야 할 것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오늘 강연에는 일반인 807명과 자원봉사자 68명으로 총 875명의 인원이 참가하였습니다. 예전보다 젊은 층의 관객들이 많아진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고 입장하시는 분들의 표정이 밝고 환했습니다.
스님께선 즉문즉설 시작하기 앞서 최근 근황에 대한 소개와 함께 서두에 지혜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은 자기 인생에서 겪는 고뇌, 의문에 대해 마음껏 대화하면서 좀더 진리(진실)에 접근해가면 고뇌가 사라지고 의문이 풀립니다. 괴로움을 없애겠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니라 지혜가 생기면 저절로 사라집니다. 방안에 어둠이 있을 때 불을 밝히면 바로 어둠이 없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괴로워도 지혜로워지면 바로 밝아지고, 아무리 지혜로운 자도 한 순간 자기 생각에 사로잡히면 바로 괴로워져요. 그래서 육조 혜능대사는 중생이 깨달으면 부처가 되고, 부처가 어리석으면 중생이 된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러니까 우리의 고뇌가 얼마나 크냐 하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지혜가 생겨나면 바로 고뇌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어 본격적인 즉문즉설에 들어갔는데, 총 7명이 질문하였습니다. 업무가 본인에게 몰려서 힘든데 귄위적인 상사를 싫어하니 부하직원에게 권위를 세울 수도 없고, 친절하면 오히려 주위에서 지나친 요구를 해서 불편하다는 여성, 농담으로 말하는데도 지인들이나 남편이 진심으로 받아들여서 싸움이 된다는 여성, 두 종류의 미운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될지를 묻는 청년, 스님 법문 듣고 그동안 욕심과 이기심을 내며 잘못 살았던 것에 대해 고뇌가 생긴다는 여성, 8차부터 입재해서 기도하는데 제법이 공하다, 옳고 그름이 없다 등의 말씀이 그동안 가치관과 상충되어 분별심이 일어난다는 불대생, 땅에 대한 욕심이 많아 빈 땅만 보면 농사를 지으려고 하는데 욕심이 과해서 그런지 묻는 여성, 종교에 대해 비판적이었지만 스님 법문을 듣고 전율이 느껴질 정도의 공감이 있었는데 살생에 대한 기준을 어디로 잡아야 하는지와 경전 구절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남성, 이렇게 다양한 사연들을 나누었습니다.
특히 농담으로 말을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진담으로 받아들여 싸움을 하게 된다는 여성 분과의 대화에서는 시종일관 개그 콘서트장처럼 웃음바다가 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질문자가 청중들에게 큰 웃음과 힐링의 기회를 주었으니 나갈 때 질문자에게 보시하라고 말씀하셔서 청중석은 또 다시 웃음이 터졌습니다.
오늘은 나이 드신 분과의 대화내용을 자세히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69살입니다. 스님의 책과 동영상을 통해 저를 돌아보니 그동안 ‘잘못 살았구나, 살려고 욕심과 이기심을 부렸구나’싶어 마음이 괴롭습니다. 스님을 알고부터 참회를 하고 있습니다만, 어떻게 참회를 해야 마음의 고뇌를 줄일 수 있을까요? 기독교에서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모든 죄를 회개만 하면 즉석에서 사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스님께선 불교에서는 내가 지은 모든 업보는 피해갈 수 없다, 산 속이나 바다 속에 아무리 숨어도 피해갈 수가 없다 라고 하던데요. 참회를 할수록 죄 아닌 것이 없습니다. 제가 70이 다 됐는데 얼마나 참회를 해야 이 마음의 괴로움을 놓을 수 있을까요? 문의드립니다.”
“질문자의 앞뒤 말이 좀 안 맞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은 괴로운 자의 무거움을 내려놓게 하고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 그러니까 괴로워하는 중생을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에요. 우리가 현실에서는 윤리, 도덕, 법률 등 온갖 것에 속박받고 삽니다. 부처님의 말씀은 이 모든 속박의 그물을 끊어버리고 저 자유로운 세계, 해탈의 세계로 인도하는 가르침입니다. 질문자가 스님의 법문을 들었으면 괴롭던 게 덜 괴로워지고, 이 눈치 저 눈치 보다가 사는 게 가벼워져야 효과가 있는 것인데, 지금 보면 법륜스님 법문을 듣고 더 괴로워졌단 말입니다.(웃음). 이것은 법문을 거꾸로 들었거나 잘못 들어서 생긴 문제이지 법문을 들어서 생긴 문제는 아니에요. 뭘 어떻게 들어서 괴로운지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어디가 잘못됐는지 지적해 드릴게요.
“아니요, 법륜스님 말씀 듣고 모든 사람은 적든, 크든 고통받고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동안 많이 배워서 마음의 평화에도 도움을 받았습니다.”
“나만 괴로운 줄 알았는데, 스님 법문을 듣고 다른 사람도 괴롭구나하니 위로가 되었어요?”
“스님말씀이 명쾌하구나, 왜 빨리 스님을 만나지 못했을까를 많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왜 늦게 만났나, 이것 때문에 괴로운 거예요?(웃음). 스님을 지금이라도 만난 게 낫지 않아요?”
“지금이라도 만난 게 감사하지요.”
“그럼 안 만났을 때보다 좋아져야지요. 너무 늦게 만나 괴로워졌으면 안 만나는 게 더 낫죠.”
“그런 건 아닌데, 스님 만나고 많이 밝아지고 좋아졌는데 제가 말을 좀 잘못한 거 같습니다(웃음).”
“보통 좋아졌다라고 하면 악하다가 선해지고, 고집이 있다가 고집이 약해지는 건데, 더 괴로워졌다면 주위사람에게는 덕이 되고 나에게는 손해가 난 것이에요. 근데 부처님 가르침은 나부터 좋고 남도 좋아야 되는 것입니다. 남은 좋은데 나는 괴로워졌다면 세상에서는 훌륭한 사람인데 수행에서는 수행이 된 사람이 아니에요.”
“스님 말씀을 통해 나빠진 건 전혀 없고 배우고 도움이 되는데, 명쾌하게 내려놓고 이만하면 됐다는 마음보다는 죄의식이 많이 남아있어요.”
“구체적으로 얘기해 봐요.”
“뚜렷한 건 없지만 아이들한테 정서적으로 돌봐주지 못하고, 살려고 욕심을 부렸습니다.”
“자기가 젊을 때 살기 힘들어서 애들한테 악을 좀 썼다는 거죠? 그럼‘미안하다’하면 되죠(웃음)”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지나고 보니 별거 아닌데 왜 내가 너희 어릴 때 너희들에게 악다구니를 썼는지 그때 내가 참 어리석었구나’라고 그 정도만 해도 좋아요. 대부분 엄마들은 아이들이‘엄마 왜 어릴 때 야단쳤어?’ 하면 ‘너도 애 키워봐라(웃음).’라고 오히려 자기 변명하기 일쑤입니다. 질문자가 중생이다 보니 자식들에게 악다구니 쓴 것뿐이지, 잘못된 것 아닙니다. 정신병원 실려 간 아이 있어요? (없어요) 그럼 됐어요. 내가 판단해줄테니까, 죄를 낱낱이 고해 봐요. 남편한테는 뭘 잘못했어요?”
“남편한테는 싸우고 대들고 순종하지 않은 적이 많았고, 간섭도 많이 하고, 시어머니한테 불효하고 제 생각을 많이 얘기한 것 같고, 일일이 꼬집을 수는 없습니다.”
“그럼 죄를 지었다 치자, 죄값을 받아야 될까요? 빚을 져 놓고 부처님한테 대신 갚아달라고 해야 될까요?”
“빚 갚으려고 하고, 참회를 해도 마음이 맑아지지 않습니다.”
“마음이 맑아지지 않는 것은 공짜로 먹으려고 해서 그래요(웃음). 아들이 아무리 행패를 부리고 남편이 뭐라고 해도‘공짜가 없구나, 예전에 내가 그랬으니 이렇게 돌아오는 구나’라고 마음을 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이런 이치를 가르쳐 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데, 빚까지 갚아달라고 해서 되겠어요? 우리 아들 능력 없는데 좋은 직장 갖게 해 달라고 비는 것처럼 결혼, 사업, 공부도 부처님께 빌어 부처님이 다 해 주시면 자기는 뭐할 겁니까? 얼마나 공짜를 바라면 그런 게 귀에 들어오겠어요. 예전에 약 팔때 이 약 하나만 먹으면 모든 병이 낫는다고 하니 사람들이 솔깃하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예전보다 좀더 지혜로워지니까 그런 이야기를 그냥 재미로 듣잖아요. 죄는 지으면 벌을 받고 돈을 빌렸으면 갚아야 합니다. 복을 지어야 복을 받습니다. 죄 짓고 저승에 가면 저승에 가서라도 갚아야할 것 아닙니까? 이승에서 빚을 청산하고 가는 게 낫겠어요? 저승에까지 갖고 가는 게 낫겠어요?”
“청산해야겠지요.”
“근데 무엇이 겁 납니까? 지은 죄는 감해지지 않고, 지은 복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인생의 주인이 되라고 하셨지, 종이 되라고 하신 게 아니에요. 자식이 무조건 부모 시킨 대로만 하면 부모 입장에서는 효자지만, 자식 입장에서는 노예입니다. 스님 시킨 대로 다하면 스님이 보면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지만, 여러분 입장에선 노예입니다. 스님의 말이니까 따르는 게 아니라 내가 봐도 올바르니까 따르는 겁니다. 부모님 말씀이면 다 따르는 게 아니라 듣고 보니 맞다 싶으니까 따르는 거예요. 자식이 20살 넘으면 부모님께 의지해도 안 되고 노예가 되도 안 돼요. 그동안 남편한테 심하게 했으면 앞으로는 안 그래야겠다, 시어머니한테 심했으면 앞으로 내 며느리가 나에게 그렇게 대해도 당연하다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질문자는 부처님 법 듣고, 깨친 게 아니고 후회하는 쪽으로 가버린 거예요. 심리적으로 분석하면 후회는 참회가 아니에요.‘어, 틀렸네.’하고 바로 고쳐버리는 게 참회고, 후회는 땅바닥에 앉아서‘내가 왜 잘못 했는고’하고 우는 거예요. 무슨 말이냐면 나는 잘 해야 되는 존재인데 잘못한 나를 용서 못하는 거지요.‘내가 이거밖에 안 되나’하면서 자기를 학대하는 겁니다. 후회는 수행이 아니에요. 참회는‘어, 잘못했네. 틀렸네.’하면서 고치면서 가는 거예요. 못 고치면 또 틀렸네 하면서 자꾸 일어서는 게 수행이에요. 옛날에는 남편, 부모, 아들 원망했다면 이제는 자기를 원망하는 거니, 옛날이랑 별 다른 게 없어요. 남편도 원망 받을 일이 아니지만 자기도 원망 받을 일이 아니에요. 지금까지 잘 살았어요. 그 정도면 됐어요. 앞으로 안 그러면 돼요. 계속 앞으로 나아 가야지, 자기를 한탄하는 것은 수행이 아닙니다.”
“잘 알겠습니다.”
긴 문답을 통해 가벼워진 질문자의 대답을 듣고 모두 큰 박수를 쳤습니다. 그리고 그 외 다른 질문에 대한 답을 간단히 소개드립니다.
업무가 몰리고, 친절해서 주위에서 지나친 요구를 한다는 질문자에겐 과대망상과 피해망상이 있다고 하시면서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구나’라고 살펴봐야 된다고 말씀하셨으며, 두 종류의 미운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되는 지와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해 남을 해쳐야 하는 경우에도 자비를 행해야 되는지에 대해 묻는 청년의 질문에는 이유 없이 미운 것은 정신작용에 문제가 있어서 그렇다는 말씀과 성인의 길을 가르치는 부처님의 말씀을 범부 중생의 잣대로 받아들이는 것의 모순됨에 대해 긴 문답을 통해 밝혀주셨고, 봄 불대생의 질문에는 사는 데는 이유가 없고, 왜 살아야지 연구해도 결론이 없으며, 태어난 존재이기에 모두 존엄하다는 말씀과 함께 심리불안에 대해 짚어주셨습니다. 지금 이런 상태임을 알아차리고, 알아차리다 보면 개선의 길로 들어선다는 말씀으로 힘을 주셨습니다. 빈 땅만 보면 농사욕심이 생긴다는 분의 질문에는 그 정도는 욕심이라기보다 습관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주변 사람들이 불편해하면 습관을 고치든지, 과보를 감수해야 됨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금강경의 구절에 대한 의문과 살생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봐야하는지를 묻는 분께는 자세한 비유를 들어 보이시며 공의 개념을 설명해주셨고, 살생의 문제는 우선 사람부터 해치지 않기, 그게 되면 포유류, 조류 이렇게 나가는 것으로 하면 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각 질문마다 혼신의 정성으로 묻고 깨우쳐주는 스님과 함께 웃고 감동하는 사이 2시간 20여분의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스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정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부부지간에 싸우지 말아야 되지만 현실에서는 싸웁니다. 싸우는 것은 나쁘지만 싸울 수밖에 없는 존재가 우리 중생입니다. 그런데 그런 존재의 바탕이 본질적으로 우리를 괴롭게 만들어요. 그래서 우리의 목표는 싸움이 없는 세계, 괴로움이 없는 세계로 나아가는 거예요. 그런데 불교를 믿고, 부처님 법을 만나면 단박에 깨우쳐서 괴로움이 없는 세계, 싸움이 없는 세계로 가게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여전히 싸우네, 그러니 수행이 필요 없네' 라고 하면 극단으로 치우치는 거예요. 반면 싸우긴 싸워도 덜 싸우면 ‘옛날보다 많이 나아졌잖아’라고 하며 스님도 아닌데 이 정도면 됐지 하고 안주하는 것도 안됩니다.
좌절은 욕심 때문에 생기고, 안주는 교만 때문에 생기는 거예요. 좌절할 땐 뒤를 돌아보고 앞으로 많이 왔다는 거에 희망을 가져야 되고, 안주하는 마음이 들 때는 앞을 보면서 아직 목표에 이르지 못했으니 좀더 계속 가면 목표까지 갈 수 있다는 마음을 내야 합니다. 인생은 꾸준히 가는 것이며, 가는 과정 자체가 인생이에요. 근데 여러분들은 항상 주저앉아서 괴롭다고 아우성치거나, 왜 빨리 도착 못하냐고 원망합니다. 삶이라는 것은 과정인데 늘 과정은 무시하고 목표만 얘기하거나 현실만 주장하게 되는 거예요. 우리의 현실은 욕심내고 갈등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벗어나려면 늘 다른 사람을 이해해야 되요. 내가 안 되는 것을 보고 남을 이해하고, 내가 되는 것을 보고 세상에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내가 되는 것 보니 우리 아이들도 되겠구나’이렇게 믿음을 가지되, 내가 된다고 무조건 남도 되라고 강요해선 안 되며, 먼저 자기부터 해야 됩니다.”
질문을 통해 환하게 밝고 가벼워지고, 오늘 강연내용을 통해 지혜를 얻고 힘을 낼 수 있겠다는 참가자의 소감을 들으며, 희망강연을 통해 밝음과 행복, 평화가 퍼져나가는 파동이 느껴졌습니다.
스님께선 강연을 마치고 책 사인회와 봉사자들과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봉사자들은 기념촬영 후, 스승님에 대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담아 모두 함께‘스승의 은혜’와‘우리의 소원은 통일’노래를 불렀는데 목이 메이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많은 참가자와 봉사자들의 힘으로 진주 희망강연이 성황리에 마무리 될 수 있었습니다.
강연일정이 모두 끝난 후 경남지부 소속의 활동가들 약 10명과 모임이 있었습니다. 진주를 중심으로 경남지역에 속하는 사천(삼천포통합), 남해, 하동, 거창, 산청, 함양등 6개 법당을 책임지고 있는 분들이 자리를 함께 해서 각자가 속한 지역의 특징들, 법당 현황을 소개하였습니다. 각 법당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들으신 스님께서는 인구가 많지 않은 시골지역에서 개척할 때 어떤 마음으로 해야 하고 또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지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농촌은 농촌의 특성에 맞춰서 연구가 좀 되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전국적으로 현재 해 온 방식으로 진행해왔고 또 이 방식이 통했는데, 지금 해 보니까 군단위에서는 딱 맞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모델이 진주까지는 가능한데, 그 아래 군 단위에는 잘 맞지 않는다면 군단위로 개척해 들어갈 때는 방식을 조금 더 연구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현재 우리 기도하는 방식도 2차 만일에 들어가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외포교를 한다면 지금처럼 해서는 안되고 좀 더 외국인들의 특성에 맞게 개선되어야 합니다.
군 단위를 가지고 있는 지부에서는 운영방식도 그렇지만 무엇이 현실과 맞지 않는지,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등을 검토해서 중앙으로 올려야 합니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접근해야 하는데 나도 내가 태어나서 자란 곳이 한국이고 만난 사람이 한국사람들이 많고 그러다 보면 보편적으로 접근한다고 했지만, 그 속에서 또 놓치는 오류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저께 북한 사람들과 함께 했는데, 이 사람들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보편적인게 어떤 것인지가 고민이 됩니다. 또,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연령적 세대문제, 생활환경이 달라서 오는 문제등에 따라 기도법이나 내용들이 조정이 필요할 수 도 있습니다.
군단위 이하에서는 부담을 갖지 말고 성과를 내기보다는 실험을 해 본다는 마음으로 해 나가면 어떨까요? 심리적 부담을 가지게 되면 미안해서 못나오기도 하고 또 나오려면 뭔가를 해야만 하는 강요를 받게 되면서 사람이 떨어질 수도 있으니 부담 갖지 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하는게 좋습니다.”라고 하시며 어떤 일을 하든지 부담을 갖지 말고 가볍게 해 나가기를 당부하셨습니다.
스님과 7기 행자대학원 졸업수련생들은 강연장을 떠나 두북으로 오는 길에 함안 휴게소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점심을 먹고 난 후 행자들은 수행하면서 미진했던 부분에 대해 스님께 질문을 하였고 스님께서는 질문에 대해 하나하나 지도해 주셨습니다.
수행자로서, 정토행자로서 사는 것은 좋으나 공동체 삶이 힘들다고 하는 행자에게 스님께서는 업대로 살려면 밖에서 대중부 활동을 하면 되고, 업을 고치겠다고 생각하면 밖에 나갈 필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특히 사람에 대한 상처가 있으면 어디를 가도 똑같이 부딪히기 때문에 업식을 바꾸려면 지금 이 자리, 공동체에 살면서 고쳐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인생을 살것인지는 자신의 선택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다른 행자님은 그동안 수행정진하면서 자신을 좀더 깊이 알게 된 것을 편하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저의 과제는 의지심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행자대학원 공부하면서 확실히 불안한 마음이 많이 줄고 스스로 느낄 때 안정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제가 빈틈을 잘 만듭니다. 일을 빨리 끝내고 사람 찾아서 놀고, 음악도 가끔 들어요. 그 정도 욕구는 뭐 어때라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한번은 욕구따라 가는 줄도 모르고 이 정도는 괜찮네 하다가 엄청 크게 하기 싫은 마음이 올라온 적이 있었습니다. 모든게 하기 싫고 시비가 되었습니다. 그때서야 스님께서 하신 말씀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게 되더라구요. 그러고 나서는 업무에 집중도 되고, 일을 책임지고 했을 때 더 재미있구나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마음이 많이 나서 나의 업식도 알아가고, 강점도 개발해
가면서 재밌게 하고 있습니다.”
“집의 잔디밭에 클로버 씨가 떨어지더니 쫙 번져있어요. 근데 그냥 뽑아서는 막아지지 않아요. 그래서 지난번에 완전 파 뒤집었어요. 클로버를 뽑으려면 잔디까지 죽일 정도로 파헤쳐서 제압을 했는데도 또 보면 이쪽과 저쪽에 있어요. 욕망이라는것도 이와 같아요. 예를 들어 먹고 싶은 욕망이 있으면, 먹고 싶은 것에만 작용하면 되는데 그게 나중에 결혼하고 싶은 욕망으로, 직장가고 싶은 것으로 금방 번집니다.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늘 관찰해야 됩니다. 일 끝내고 책보고, 영화보는게 무슨 문제가 있겠어요. 그리고 잠깐 모임에서 술 한잔 먹는게 무슨 문제겠어요. 그런데 이런 건 중독성이 있어서 한번 하면 계속 할 가능성이 있어요. 그리고 욕망은 어떤 상황에 부딪치면 확 번져나가기 때문에 항상 자기를 관찰하고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계율을 잘 지키고 원칙을 지키며 사는게 좋습니다.
의지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사람은 누구나 의지하고 싶어해요. 그러나 좀 심한 사람이 있습니다. 의지한다는 것은 좋게 말하면 상대를 신뢰한다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노예 근성이 있다는 겁니다. 자기가 자기 인생을 안 보고 누군가에게 의탁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건데, 이것은 또 나쁘게 말하면 공짜로 먹으려고 하는 겁니다. 나에게 닥치는 문제를 스스로 노력하고 애를 쓰고, 그래도 부족한 것은 스승한테 물어 해결해야 합니다.”
스님께서는 행자들이 현실적으로 부딪히는 질문에 자상하게 구체적으로 답변을 해주시면서 마지막으로 공부하는 자세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행자대학원 다닌다고 다 공부가 되는건 아닙니다. 이때는 기본을 공부하는 거고, 진짜 공부는 업무에 배치되면서부터 시작됩니다. 일에 대한 책임을 맡고 잘하려다 보니 갈등이 생기기도 하고, 업무에 배치되면 자신의 능력에 한계를 느낍니다. 수행은 능력과 관계없지만 다른 사람한테 잘보이고 싶으니까 성과가 안 나면 힘들어집니다. 학습은 학습대로 정리를 하고 이제 업무에 배치되어서 하다가 안되면 그만둘 수도 있습니다. 이미 기수에서 절반이 그만뒀잖아요. 결혼해서 아이 낳으면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신중해야 하지만 그 외의 일은 하다가도 그만둘 수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심리적으로 부담을 가질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또 한번 지도자로서의 삶의 자세를 말씀하시면서 스승 열명 모시고 사는 것보다 한명 제자 두고 사는 게 더 어렵다 하셨습니다. 제자는 스승이 윗사람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따라 본받습니다. 그래서 윗 사람은 원칙대로 살아줘야 한다 하시며, 밑에 사람이 잘못하면 그 사람의 문제지만, 위가 흐트러지면 나중에 가풍이 되어 내려가므로 전체가 무너진다고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휴게소에서 스님과 함께 한 후 행대생들은 봉화로 스님께서는 두북으로 이동하셨습니다. 오는 도중에 스님께서는 옥수수, 참외, 수박등의 종자를 구입해서 두북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삽을 들고 오셔서 땅을 파고 작물들을 심었습니다.
간단한 농사일을 끝난 후 원고교정 업무를 하신 후 일과를 마무리 하셨습니다.
내일은 통일의병 경주역사기행을 위한 답사와 농사일을 하실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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