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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문경에서 문경공동체 대중들과 새벽예불과 기도를 함께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제 다리를 다쳐 절을 하지 못하고 명상을 하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오늘 발우공양후 대중공사 시간에 스님께서도 108배를 하지 못해서 대중앞에 참회하셨습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문경 수련원의 특성상 매일 매일 많은 분들이 오가며 입재와 회향을 하는데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해주셨습니다.
“이곳 수련원은 많은 분들이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합니다. 입재하기도 하고, 회향하기도 하고요. 똑같은 날인데도 하루를 정해서 오늘을 한 해의 첫 해이다, 설날이다, 초하루다 등 이렇게 정해서 특별하게 합니다. 그러나 크게 보면 첫 날도 없고, 끝 날도 없고, 초하루도 없고 그믐도 없습니다. 매일 같은 날 입니다. 다만 마음을 새롭게 한다는 차이입니다.
여기 오신 분들이 오늘 들어왔다고 새로운 마음을 가지는 건 좋은데, 오늘 집에 간다고 헤이한 마음을 가진다면 그것은 수행자가 아닙니다. 수행자는 오늘 군대 가면 아침 먹고, 일상생활처럼 군대 가고, 군대 가서는 책을 보던 것을 훈련 한다던지 하는 주어진 조건과 업무만 바뀌었을 뿐입니다. 군대를 제대하면 그날로 돌아와서 또다시 업무가 바뀐 것을 맡아서 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밖에 있다 들어와도, 안에 있다 나가도 마음이 한결 같아야 합니다. 한결같지 않은 마음이 중생심이고, 한결같은 마음이 부처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한결같지 않습니다. 태어나는 날이나 죽는 날이나 다 같은 날인데 태어나는 날은 기쁘고, 죽는 날은 슬프고 그래서 고락이 늘 윤회합니다. 그러나 조금 더 크게 보면 그 날이 그 날이고, 그 모습이 그 모습입니다. 낙엽이 떨어져야 움이 트고, 움이 트야 낙엽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한결같은 것이고, 우리 현실은 한결같지 못한 것입니다. 한결같지 못한 현실에서 한결같은 마음을 가지는 것을 목표로 우리는 연습하고 있고 노력하는 이것이 수행입니다.
잘 안 되는 것이 현실이지만 안 되는 것을 합리화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오늘 이곳을 나가는 분들은 여기 살 때와 같은 마음으로 일상생활을 해야 합니다. 공양하는 방식이 발우공양이면 경건히 하고, 상공양이면 함부로 하는게 아니라 방식이 바뀌었을 뿐이지 상을 펴고 공양을 해도 발우공양 하는 마음가짐으로 해야 합니다.”
수행자는 한결같은 마음을 내어야 하고 그것이 안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한결같은 마음을 내는 것을 수행의 목표로 정진해야 함을 일러주셨습니다.
“여기는 수행도량이니 목소리를 가능하면 낮춰야 합니다. 멀리 가는 사람을 부르려고 ‘아무개야’라고 큰소리로 부르며 희희낙락하는데, 즐거운 마음을 같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빠져서 목소리가 올라가는지 내려가지는지도 모르고 떠들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편안하게 하되 항상 마음작용과 동작에 깨어있는 연습을 하는 곳이 수행처입니다. 그러니 그것을 놓쳤을 때 공양시간에 참회하게 되는데 참회 따로, 행동 따로 이러지 말고 항상 주시해서 놓치지 않도록 하되 나도 모르게 과거 업식 때문에 놓쳤을 때는 ‘아이고, 놓쳤구나’하고 알아차리며 참회해야 하고, 그리고 대중 앞에 드러내는 발로참회, 또 자자 시간에는 대중으로부터 지적받아서 늦게라도 알아차리는 참회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참회는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내가 가야 하는 목표를 나도 모르게 놓쳐버렸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이고, 다시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다짐을 하는 것을 발원이라고 합니다.
수행자라 하면 이 목표를 분명히 간직하고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목표로 나아가는데 도움되는 것은 행하고, 도움되지 않는 것은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목표로 나아가는데 놓쳤을 때 놓친 줄 알고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 다짐하는 것이 참회 발원입니다.
여기 사람들이 100명이 산다면 하루 10~20명 들락날락 해도 마치 샘가의 물이 새로 들어오고 흘러나가면서도 샘물이 한결같듯이 정토수련원 수행자의 분위기는 한결같아야 합니다. 새사람이 들어오면 웅성거리고, 일부 빠지면 허전한 것이 아니라 1명이 있어도 수행도량, 100명 들어와도 수행도량이에요.
그런 자세로 누군가가 들어오면 마음이 편안하도록 도와 주고, 전체 대중들도 그런 마음으로 생활해야 합니다. 그런 자세를 오늘 나가시는 분들도 가져야 합니다. 여기서는 음식을 쥐꼬리만큼 먹다가 나가자마자 자장면 곱빼기 시켜 먹기도 합니다. 이렇게 기분따라 풀어지면 원래대로 돌아가버리는 것입니다. 자기 까르마(업식)대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러면 늘 제자리에서 돌고도는 것입니다. 앞으로 간 것 같지만 또 제자리로 돌아 가게 됩니다.
한번 배운 것을 꾸준히 노력 한다면 돌아가더라도 50%쯤 해서 멈추고, 또 150% 갔다가 100%에서 멈추고 그래서 오고가고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향상되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100으로 갔다가 100으로 돌아오면 노력은 하는데 아무런 진전이 없습니다.”
수행자는 항상 마음에 깨어 있어서 알아차림이 있어야 하고 또, 그렇지 못할 때는 참회를 하고 참회발원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 늘 실패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수행생활 하며 늘 놓치고, 실패하는 그것이 연습입니다. 그러나 목표를 가지고 정진을 하면 매번 실패하는데 시간 지나면 어느덧 성공의 반열에 서 있습니다. 늘 안 되는데 시간이 지나면 어느 순간 되는 경지에 되어 있다는 이런 얘기예요. 그것이 저축하는 삶입니다.
순간순간 실패해도 이 실패는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고 이걸 보는 사람은 실패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다 하는 건 실패가 성공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목표가 분명하면, 목표로 나아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실패를 받아들이게 되면, 실패에 연연하지 않게 되고, 실패를 통해서 ‘이것때문에 실패했구나, 이걸 놓쳤구나’하면서 점점 더 좋은 방법을 찾아가는 계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다’라고 말합니다.”
비록 순간순간에는 실패를 하더라도 목표를 놓치지 않고 하다보면 실패가 쌓여서 성공의 길로 접어들 수 있음을 다시한번 새기게 됩니다.
“우리는 실수하고 실패하는것이 단순한 반복이면 중생살이고, 알아차림으로 인해 개선하는 쪽으로 나아가게 되면 그것은 성불의 길이라고 볼 수 있어요. 어제도 계율을 어기고, 오늘도 어기며 참회를 하는데 열흘 지나고, 한달 지나고 보면 전에는 많이 놓쳤다면 지금은 적게 놓치게 된다면 출발점보다 개선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달 전이나 지금이나,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은 행동을 똑같이 반복하고 있다면 그건 본인이 수행 관점을 놓치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누구도 자기를 점검해줄 수 없습니다. 자기 스스로 점검하면서 정진해 나가야 합니다. 여기 들어온다고 정진되는 것도 아니고, 옷 갈아입는다고 정진이 되는 것도 아니고 3000배 한다고 정진 되는 것이 아니고,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 어떤 관점을 가지고 하느냐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른 관점, 바른 도를 알고 연습해야 합니다. 목표점 없이 연습하면 수고가 많고, 목표점은 있는데 아무런 노력을 안하면 제자리에 있게 됩니다. 부족한 우리들이 꾸준히 성불의 길을 향해서 연습 해나가는 것이 수행자이고 수행자가 모인 수행자 집단이 상가입니다. 다들 부지런히 정진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수행자는 목표를 가지고 스스로 점검하면서 부지런히 정진해나가야 함을 당부하셨습니다.
이어서 8시 30분부터는 경전반 특강수련에서 법문이 있었습니다. 경전반 공부를 하면서 궁금하거나 의문이 든 점을 스님께 묻고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께서는 지역별 참가자를 확인 후 문경에 처음 온 사람, 깨달음의 장 아직 안한 사람, 천일결사 입재 안한 사람을 물어보시고, 손드는 사람을 보자‘별종이다~’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참가자들은 한바탕 웃었습니다. 스님께서 명상수련, 나눔의 장 참가 등 몇가지를 더 확인 하신 후 이번 강의는 인생에 대한 즉문즉설이 아니라 경전반 공부하면서 궁금했던 것을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임을 알려주셨습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불교대학과 경전반 교과과정에 대한 설명으로 강의를 시작하셨습니다.
“지금은 불교대학 1년과 경전반 1년으로 나뉘어 진행되지만 원래 정토불교대학은 2년제였습니다. 보통 4년제 대학교의 경우 2년은 교양, 2년은 전문과정부로 나뉘는데, 대학의 교양과정부에 해당하는 것이 불교대학이며, 전문과정부에 해당하는 것이 경전반입니다. 원래 둘을 모두 합한 것이 불교대학 교과과정이었으므로, 경전반까지 졸업을 해야 불교대학을 졸업한 것입니다.
교양과정에서 다루는 것은 총 4과목으로, 첫번째 ‘불교란 무엇인가’입니다. 가장 핵심적인 내용으로 만들어진 과정이며, 불교의 아이덴티티를 정리한 것입니다. 핵심은 삼귀의오계인데, 불자가 되기 위해서는 삼보에 귀의하고 오계를 받아야 합니다. 두번째는 ‘부처님의 일생’입니다. 부처님은 누구시며 어떤 분이신가 하는 부처님의 일생을 배웁니다. 세번째는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입니다. 역사적으로 소승불교, 대승불교, 밀교 이렇게 3종류가 있는데, 우리가 배우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근본불교로써, 가장 초기 원형의 불교입니다. 네 번째는‘ 불교 변천사’입니다. 초기 불교가 시간과 공간이 확대되면서 어떻게 변해갔는가. 나쁘게 변질된 것도 있고 좋게 발전한 것도 있는데 불교의 역사를 배우는 과정입니다.
수행자로서 예불할때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느냐, 일상의 삶을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느냐, 밥 먹을 때 어떤 마음으로 먹어야 하느냐를 기본적으로 요약한 예불문과 소심경 과목이 있습니다.
전문과정으로 들어오면 부처님이 말씀하신 실제 경전을 가지고 공부하게 되는데, 우리가 공부해야 할 경전은 소승불교인 아함경, 대승불교인 대승경전, 선불교인 선어록 이 세가지입니다. 태국 불교신자라면 아함경만 공부하면 되고, 대승불교 지역이라면 아함경 + 대승경전을 공부하면 됩니다. 역사적으로 소승불교를 거쳐 대승불교가 됐기 때문에 소승불교는 소승경전만 공부하면 되지만 대승불교는 소승불교가 변화, 발전되어 온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소승불교를 공부하고 대승불교를 공부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불교현실은 대승이 소승을 공부하지 않기 때문에, 서로간에 배타적입니다.
우리 한국불교는 대승불교 안에 교종과 선종이 있는데, 대한불교 조계종은 선종에 속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아이덴티티가 선종이기 때문에, 선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합니다. 선은 교를 바탕으로 성립됩니다. 대승과 소승을 공부하지 않고 선불교만 공부하면 기존 불교를 부정하게 됩니다. 선종은 대승에 속해 있고, 대승은 소승을 기초로 한 것입니다. 즉 소승불교가 변화 발전한 것이 대승불교이며, 대승불교가 변화 발전한 것이 선불교입니다. 종파를 바꿔 소승불교로 가겠다고 하면 대승불교와 선불교를 안 배워도 되지만, 선종에 속해 있으면 소승경전, 대승경전 다시 그 둘을 변화 발전시킨 선어록도 공부해야 합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일생도 알아야 하고, 소승불교, 대승불교, 선도 알아야 하며, 다른 종파에 대해서도 배타적이면 안됩니다. 그런데 자기 정체성을 가지고 포용하면 좋은데, 자칫 이것도 저것도 아니어서 자기 정체성이 없어지거나, 잘못 공부해서‘선만 최고고 다른 건 필요 없다’이렇게 배타성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배운 불교는 모든 것들을 포용하는 종교인데, 흔히 사람들은‘대승만 옳고 소승은 수준이 낮다’이런 교만을 갖게 됩니다. 종교를 잘못 배우면 배타성을 갖게 되는데, 배타적인 것을 극복하는데 진리, 즉 종교가 필요합니다. 유대교가 유대민족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배타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예수님은 다른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이 있다고 넓혀 놓았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일부 기독교인들은 유대교의 사고방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불교는 소승보다는 대승이, 대승보다는 선이 더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소승을 공부하고 소승을 뛰어넘어 대승을 공부하고, 대승을 뛰어넘어서 선을 공부하고, 선을 공부하되 뛰어넘어서 진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기독교냐 불교냐, 종교냐 과학이냐를 뛰어 넘어서 무엇이 진리인가를 규명해 가는 자세가 참다운 선수행자고, 참다운 대승이고, 참다운 불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기 정체성을 갖되 세상에 대해서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생활 속에서 적용해 보면 결혼했는데 포용성을 가진다고 이 남자, 저 남자에게 똑같이 잘 대해야 하나요? 내 남자, 내 아내는 기본적으로 챙기되, 내 가족만 챙길 게 아니라 이웃 남자나 여자 라도 어려움에 처하면 내 가족처럼 보살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경전반에서 소승경전, 즉 아함경 공부를 왜 안하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겁니다. 아함경은 제가 즉문즉설 하듯이 부처님께서 평이한 일상 언어로 대화했습니다. 그 당시에 종교 언어를 쓰지 않고 일상어로 썼기 때문에 한국어로 번역하면 굳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즉문즉설을 따로 해설하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듯이, 아함경은 강의없이도 여러분이 독송하면 되기 때문에, 천일결사 경전으로 매일 조금씩 읽고 있습니다. 불교방송에서 아함경을 설법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붓다에게 물들다’‘붓다 나를 흔들다’이므로 읽어보시면 됩니다.
금강경, 반야심경, 화엄경, 법화경, 육조단경, 류마경 등 많은 대승경전이 있지만 우리는 금강경, 반야심경과 화엄경을 요약한 법성게, 육조 혜능대사의 어록인 육조단경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정토회는 부처님이 구현하셨던 근본정신을 다시 이 세상에 구현해보고자 하는 것이 목표기 때문에, 근본교설의 정신에 투철한 경전을 배우고 있습니다. 나머지 경전을 더 공부하고 싶은 사람은 지금까지 공부한 것을 기초로 틈틈이 시간내서 따로 하면 됩니다. 실제로 생활 속에서 자기가 체득하는 게 중요하지 알음알이로 공부하는 건 이 정도로 충분합니다. 경전반은 몸과 마음으로, 경험적으로 체득하는데 더 많은 비중을 둬야 합니다. 그럴려면 수련도 해야 하고 마음나누기도 깊이 해야 하고 보시, 봉사, 인욕, 참회하고 경험도 해야 합니다.”
스님께서는 이렇게 불교대학과 경전반 교과를 정리해주시면서 참가자들에게 착실하게 수행할 것을 주문하셨습니다. 그리고 참가자들이 기다리던 즉문즉설을 시작하셨고 총10분의 질문이 있었습니다.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 하는 구절이 잘 이해가 안된다며, 어떤 것도 바라는 것 없이 어떻게 마음을 낼 수 있는지 궁금한 분과 스님들 공성을 몸으로 체득하는 깨달음을 체험하고 싶다며, 이법계를 확실히 보려면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 묻는 분, 집착에서 벗어난 중도의 기준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묻는 분, 남편과 딸의 요구사항을 맞춰주면서 살아왔는데 숙이는 것과 맞추는 것의 구분이 어렵다는 분, 청소년 시절부터 궁금했던건데 여기 이 시간 이 사람들과 왜 함께 있을까 인연법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다는 분, 불교에서는 인간의 본성을 성선설이나 성악설 중 어떻게 보는지 묻는 분, 원효스님의 화쟁사상을 좀 더 쉽게 알고 싶다는 분, 돈이 사람의 인격이 되고, 권력이 되어 비굴해지는 느낌인데 어떤 마음으로 돈을 벌어야 지혜로운지, 어떻게 돈거래를 해야 현명한 수행자인지 묻는 분, 어린이법회는 내용이 따로 정해지지 않아서, 선생님과 논의해서 하는데 어떤 마음가짐으로 진행할지를 묻는 분, 경전말씀에서 궁금했던 내용부터 생활속의 고민까지 다양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이 중 한 질문에 대해 소개드립니다.
“정토회에서 통일의병학교 강의를 듣고 있는데, 통일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지금같이 어려운 현실에서 통일이 될 수 있을지 의심이 듭니다. 어떻게 통일을 염원하고 기여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일제시대 때 일본 사람들이 우리를 지배했었죠. 그 때 일본이 주위에 있는 청나라하고 싸워서 이기고, 러시아하고 싸워서 이기고 세계 최강국인 영국하고 동맹을 맺어서 우리를 지배하였습니다. 그때 다른 나라가 우리를 도와줬습니까? (대중들)아니오. 우리는 일본에 꼼짝을 할 수 없었어요. 독립운동도 처음에 하다가 나중에 포기하기도 했어요. 그 당시 일본이 패망하고 우리가 독립을 한다는 것이 쉬웠을까요? 지금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리가 통일을 할 가능성이 더 높을까요? (대중들) 지금이요.
그런 일제시대 때 독립운동을 한 사람도 있는데 우리가 왜 통일운동을 못하겠어요? 그 당시 사람들도 독립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어요. 일본은 1937년 중국을 침공하고, 1941년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서 하와이, 사이판, 괌, 필리핀을 점령하고, 베트남에서 미얀마, 인도네시아까지 점령을 하는 등 당시 세계 최강국이었어요. 그래서 그 당시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많이 변절했습니다. 그 전에는 어떻게든 독립이 되겠지 하는 희망이 있었는데 일본이 세계를 제패하여 독립이 불가능하다고 보였어요. 그래서 일본천황만세를 부르고, 이 전쟁에서 일본하고 협력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학도병으로 군대가는 것을 3.1 독립선언할 때 서명했던 사람들까지 나서 권유하고, 일부 신문들도 절판 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독립이 되었어요. 우리가 독립이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기 때문에 독립에 대한 준비를 못해서 독립 후 극심한 혼란을 겪었지요.
그런 암울한 시대에도 독립의 희망이 있는데, 지금은 우리가 경제력도 있고, 민주화도 됐고, 교육도 많이 받아 통일의 기초가 있으므로 통일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중국이 커지고 미일동맹이 강화되는 등 판세가 어려워지는 건 사실입니다. 가능성이 10%나 있을까요? 그러나 일제시대 때 독립 가능성보다는 높나요? 낮나요? (대중들) 높아요. 10% 가능성은 높은 거에요. 1% 가능성만 있어도 도전해 볼만 하지요.
중생이 부처되는 게 1%의 가능성이 있나요? 없나요? 중생이 부처가 되겠다고 원을 세웠는데, 통일이 불가능하면 여러분들이 부처되는 건 아예 불가능해요. 우리는 지금 중생이 부처된다는 꿈을 가지고 모였는데 통일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그런 말을 하면 안됩니다.
통일은 어렵지만 가능은 합니다. 연습을 많이 해야 합니다. 옛날엔 총 들고 싸워서 투쟁해야 했지만, 지금은 총 들고 안 싸워도 되고 투표만 잘해도 됩니다. 선거에서 통일을 지향하는 정부를 선택하면 통일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통일정책을 확실하게 가지고 추진해야 합니다. 미국과는 종속적 한미동맹이 아니라 자주적 한미동맹을 굳건히 맺어야 합니다. 종속적 동맹하에서는 우리의 이익이 미국의 이익에 종속되기 때문에, 우리의 이익인 통일을 확실하게 담보하기가 어렵습니다.
미국이 나쁜 나라여서가 아니라, 모든 나라는 다 자기나라 이익을 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일본, 중국, 미국, 북한은 각자의 국가 이익에 따라 목표가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정신을 차리고 통일을 목표로 국가정책이 추진되어야 합니다. 이 정도 우리의 발전에 만족하고 쇠락의 길을 가도 좋다고 한다면 모르겠지만, 여기까지 발전된 이 좋은 기반을 가지고 조금 더 업그레이드를 생각한다면 통일을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이뤄놓은 성과에 손실을 안 끼치려면 한반도에 반드시 평화를 유지해야 합니다. 남북간에 소소한 것으로 싸우면 안됩니다. 남북간에 갈등을 일으키면 다른 나라에 어부지리로 이익을 주게 됩니다. 평화를 이루고 통일을 하면 남북한 서로에게 도움이 됩니다.
통일한국은 동아시아의 갈등을 화합시키는 역할을 해서, 동아시아 평화와 협력을 가져 와서 동아시아 시대를 열 수 있습니다. 즉 문명의 중심이 동아시아로 넘어오게 되며, 동아시아의 중심이 한국이 되면, 발해 멸망 이후 천년만에 꿈이 이루어집니다. 고조선이 멸망한 이후 2천년 이상 중국으로부터 문명이 흘러왔는데, 잘 살펴보면 지금 우리 문화가 중국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 현상이 몇십년 있으면 멈출 거에요. 하지만 한반도가 통일되면 한류를 비롯한 우리의 인권, 민주적 제도 등의 문명을 지속적으로 중국 쪽으로 흘려보낼 수 있어요. 물량은 중국이 크지만 문명의 꽃인 기술과 문화를 창조하고 생산할 능력이 한국에 있습니다. 삼천년의 꿈이 이루어지는 겁니다. 그런 가능성이 열려 있는데, 한국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젊은이라면 이런 가능성을 향해서 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중생이 부처되겠다는 가능성을 열고 수행하는 사람이 그 정도에요? 중생이 부처되겠다는 가능성 보다, 정토세상을 건설하겠다는 가능성보다는 통일한국 건설이 훨씬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해볼만 하고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첫 단계는 통일을 추구하는 한국정부가 먼저 들어서야 합니다. 통일을 지향하는 주체세력과 국민운동이 형성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현실 속에서 최선이 아니면 차선이라도 선택해야 합니다. 차선이 없으면 최악을 막기 위해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풀어 가면 됩니다. 뭐 그리 어렵다고 생각하세요? 50년 전에 우리가 다른 나라에서 얻어먹고 살 때, 이렇게 성장 할 것을 누가 상상이나 했나요. 그 암울한 독재시대에 민주화가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나요?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생각들을 했었죠. 이런 성공의 경험을 가진 우리들이 패배의 이야기를 해야 되겠어요? 통일운동한다고 감옥을 가나요? 죽기를 하나요? 원이 없고 목표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생의 목표가 분명하면 소소한 일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국가적인 목표에 이익을 두면서 개인의 이익을 추구할 수는 있지만, 정치의 목표는 공공의 이익입니다. 이 나라의 주권이 국민한테 있는데 주인이 비실비실해서 지역주의에 빠지고 자기 권리를 제대로 행사 못하면 나라가 어렵습니다. 대한민국의 주인도 못되는 사람들이 부처가 되겠다는 어림도 없는 소리를 하고 있어요. 자세가 확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가 양보를 하는 것은 더 큰 꿈을 이루기 위해서 동아시아의 큰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꿈이 없기 때문에 그런 소심한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중생이 부처될 수 있는 1%의 가능성에도 부처가 되겠다고 우리가 원을 세우듯이, 10%의 가능성이 있는 통일은 원을 세우면 어떤 조건에서도 가능하다는 스님의 말씀을 다시 되새겨 봅니다. 그리고 통일을 위해 어떤 역할이든지 해보겠다는 원을 세워 봅니다. 어제 낫에 찔려 아픈 다리로 세 시간을 꿈쩍 않고 법상을 지키는 스님의 법문앞에서 경전반 학생들의 표정은 웃다가 울다가 감동의 시간이었습니다.
점심공양을 드시고 원고점검등의 업무를 보시다가 법사님들이 수련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산책을 가려고 했으나 새벽부터 내린비가 계속 내려서 법사님들에게 공양을 사드리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법사님들과의 시간을 마친 후 스님께서는 내일 조찬회의가 있으셔서 서울로 향하셨습니다. 9시 30분경 서울에 도착하셔서 원고 점검등의 업무를 보시면서 하루를 마무리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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