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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께서는 모처럼 여유로운 주말을 맞으셨습니다. 숨 쉴 틈도 없이 하루에도 몇 건씩 중요한 일정을 소화하시느라 늘 바쁜 모습이었는데, 오늘은 서울 공동체 대중들과 탑곡수련원에서 농사운력을 하기로 했는데 어제 저녁부터 비가 와서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조금 여유로운 일정이었습니다.
서울 대중들은 원래대로라면 아침 일찍부터 탑곡수련원에 올라가 울력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비바람이 몰아치면서 운력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밭이랑마다 비닐을 씌우는 일을 하려고 했는데, 비가 와서 땅이 너무 질척거려 흙을 덮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스님께서는 탑곡수련원 운력을 못하게 됐으니 두북수련원에 있는 JTS창고를 어떻게 정리하면 될지 살펴보고 의논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몸이 너무 피곤한 사람은 울력에 나오지 말고 푹 쉬다가 같이 점심식사를 하자고 하셨습니다. 몸이 아파서 공동체 울력에 빠지고 쉬게 되면 알게 모르게 마음의 부담을 느끼게 마련인데, 스님께서 먼저 배려해주시니 휴식을 취하는 대중들도 모처럼 마음 편히 쉬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대중들이 JTS 창고 운력을 하는 동안 화광법사님과 수련원 안팎을 돌아보면서 수련원 내에서 정비해야 할 것과 어떤 농사를 지을 것인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해 안내를 받으면서 수련원을 둘러보셨습니다.
그리고 JTS 창고에 잠시 들러 어떤 물건들이 얼마나 있는지 한번 둘러보시고 창고에 보관된 물품들을 어디에 어떻게 지원하고 정리할 것인지에 대해 잠시 의논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두북수련원을 둘러보신 후 탑곡수련원으로 이동하셨습니다. 탑곡수련원에서는 어떤 농사를 지을 것인지, 농사에 대한 이런저런 의견들을 주고 받으셨습니다.
점심 식사 시간에는 마을잔치가 열린 것 같았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최말순 보살님께서 대중들을 위해 부추전과 파전, 그리고 맛있는 후식들까지 맛깔난 식단을 마련해주시고, 어제 도반의 언니가 보시해주신 먹거리까지 더해져 식탁이 그 어느 때보다 풍성했습니다. 한쪽에서는 고소한 기름을 둘러 부추전과 파전을 지지고, 한쪽에서는 쉼 없이 웃음꽃이 피어나는 정겨운 풍경이었습니다. SBS 촬영팀도 오늘은 카메라를 놓고 마음 편히 어울리는 모습이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각자의 소임에 따라 뒷정리를 했는데, 서울 대중들이 가고 나면 곧 문경 대중들이 들어오기 때문에 본래 사용하기 전의 자리처럼 깔끔하게 치웠습니다. 그리고는 곧 스님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께서는 식사를 잘 했는지 물어보시고는, 어제 역사기행 다녀온 소감을 나눠보자고 하십니다.
스님 옆에 앉아 있던 도반부터 한 사람, 한 사람 어제 청년대학생 청년들의 역사기행에 뒤따라 다녀온 소감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꽃놀이를 실컷 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고, 300명 넘는 젊은 청년대학생들을 만나 덩달아 기분이 즐거웠다는 얘기, 예전에는 꽃이 예쁜 줄 모르겠더니 나이가 들면서 꽃이 정말 예뻐지더라, 스님을 닮아서인지 꽃이 좋아졌다는 얘기, 스님의 배려 덕분에 역사기행까지 할 수 있어 감사했다는 소감이 이어졌습니다. 스님께 감사한 마음을 표할 때마다 스님께서는 “아유 낯간지럽다”시며 웃으셨습니다.
공동체 성원으로 같이 살지만, 그동안 서로 맡은 소임이 달라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 별로 없는데, 이번에 두북수련원으로 내려가는 길에 차량 안에서 큰 소리로 통일노래를 메들리로 부르면서 피로가 확 풀렸고, 또 스님과 함께 역사기행을 다녀서 들뜬 기분이었다는 소감도 있었습니다.
또 통일의 기회가 이번 한 번뿐이라는 스님 말씀에 정말 가능할까 회의적인 마음도 있었는데, 이번 역사기행을 통해 우리 역사 속에서 신라와 가야가 통합한 사례를 다시 돌아보면서 ‘우리도 가능하겠구나’ 희망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신라와 가야가 통합해서 삼국통일의 과업을 이루고 국가 발전을 이룬 얘기는 누구나 공통적으로 깊은 인상을 받은 대목이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처한 현실과 빗대어 말씀해주셔서 이해하기가 쉬웠고, 신라와 가야의 통합 얘기는 박제된 역사가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생생한 과제로 다가왔습니다.
자기 업무와 연관시켜 스님의 통일강좌와 역사기행을 통해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제안하기도 했습니다. 스님의 이 좋은 컨텐츠들을 어떻게 하면 대중들에게 접근하기 쉽고 편리하게, 그리고 이해하기 쉽게 알리면 좋을지, 문화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연구해야 할 부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도반들의 생각과 소감 속에서 자기 생각을 정리하고 발전시키며 성장합니다. 여기에는 늘 스승님의 통찰력과 구체적이고도 실현가능한 조언이 더해져 언젠가 현실로 이뤄지기 마련입니다. 이런 시간이 그냥 흘려버리는 시간이 아니라, 놀면서 일하는 일과 수행의 장이 되는 것입니다.
스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소감을 귀 기울여 들으시고는, 봄에는 공동체 성원들과 꽃놀이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경위를 말씀해주셨습니다.
“나도 사실은 경주 기행을 한 것이, 예전에 대불련 학생들이나 청년들 데리고 현장 학습을 하러 다닐 때 한창 다니다가 중간에는 평리아나 청리아 등 특별한 일정 빼고는 안했어요. 예전에는 꽃 피는 순서도 다 알았는데 까마득하게 잊고 살았어요. 그러다 전국 300강하면서 전국을 다니잖아요. 남쪽에서부터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어떤 꽃이 피는지, 산 아래에서 산 위로 언제 꽃이 피는지, 꽃 피는 시기가 달라지는 것을 다시 알게 된 거야. 그러니 우리 대중들도 봄에는 자연을 느끼는 게 좋겠다 싶어서 4월 한 달만이라도 주말에는 두북에 내려오자고 제안을 하게 된 겁니다.
이번 역사기행은 청년들의 수가 많고, 꽃놀이하러 온 사람들이 많아서 일반적으로 역사 강의를 할 때보다 1/2이나 2/3 수준밖에 못했어요. 만약 촬영을 한다면 통일의병 역사기행 할 때나 이렇게 집중적으로 역사 얘기를 할 때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이번에는 사람 수도 많고, 시간에 쫓기니까 그렇게까지 자세히 얘기는 못했어요. 이번 4월 주말에는 여기 계속 있게 되는 것 같아요. 통일의병 역사기행도 있고, 청리아와 평리아 역사기행도 있고, 불대생 경주 남산 순례도 있고. 나도 이런 일들이 안내하는 것이기도 하고, 놀이기도 하고 운동이기도 해요. 다만 봄에는 농사를 좀 지어야 하는데 그 시간이 잘 안 나네요. 앞으로는 여러분들도 봄에 여기 내려오는 것을 정례화 하다시피 해서 꽃놀이도 하고 자연을 벗삼아 그렇게 지내봅시다. 내년에는 백운산 등반을 하면 좋겠어요. 저도 여기 살면서 치술령이라고, 초등학교 교가에도 ‘치술령 정기를 받아’ 이런 가사가 있는데, 한 번도 못 올라가봤어요. 단석산에도 못 올라가봤고. 거기 가려고 해도 한나절은 시간을 내야 해요. 이번에는 그럴 시간이 없지만, 다음에는 운동 삼아 기분 전환겸 한 번 가보는 것도 좋겠어요.”
<벚꽃 나무>
벌써 내년 4월 일정을 짜는 스님 말씀에 공동체 성원들의 얼굴이 저절로 밝아집니다. 지난 2주 연속 두북수련원에서 일정을 보내고 있는데, 서울을 떠나 자연과 벗 삼는 것이 왜 필요한지 다들 실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님께서는 불현 듯 당신의 마지막 과제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제가 법문이나 사회활동이나 이런 데서 은퇴하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게 농사와 수행을 결합하는 농업공동체를 구성해보는 일이에요. 자원봉사와 전문가가 결합해서, 또 도시문명과 농촌문명을 결합하고, 일과 수행이 결합되는, 그래서 놀이를 생산화사키는 이런 모델을 만들어보려고 해요. 이게 미래 문명 전환의 계기가 될 거라고 봐요. 꼭 앉아서 명상을 한다든지, 운동한다고 밥 먹고 자전거를 타면서 운동한다던지, 이런 것들이 어떻게 보면 낭비하는 거잖아요. 동물은 어때요? 노동이 운동이잖아요. 그런데 인간은 공짜로 먹으니까 운동을 따로 한단 말이죠. 그래서 이런 것을 결합하는 방식, 이게 미래 문명을 여는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해요. 우리가 민족의 과제인 통일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민족이니 통일이니 이런 것을 넘어서서 모든 인류를 위해서 이런 것을 실험해보는 것이 필요해요.”
모든 일은 정토행자들이 스스로 일궈나가도록 하고, 우리 공동체 성원들은 시골에 내려가 농사를 짓고 생태문명을 실험해보자는 말씀을 이전에도 여러 차례 듣기는 했지만,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는 하루빨리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통일 문제가 어서 평화롭고 지혜롭게 해결돼서 우리 스님께서도 하고 싶은 일을 하시면서 인류문명의 새 기틀을 닦는 일에 기여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습니다.
업무관련 논의까지 간단히 마친 뒤, 스님께서는 서둘러 일어나시며 두북수련원 앞마당에서 사진을 찍자고 하셨습니다. 커다란 벚꽃나무 두 그루가 화려한 위용을 자랑하며 서있는 앞에서, 스님께서는 직접 카메라를 들고 위치를 잡아보시면서, “어느 게 더 낫나. 벚꽃나무가 한 그루만 나오는 게 낫나, 두 그루가 다 나오는 게 낫나?” 물어보셨습니다. 대중들은 웃으면서 카메라 위치를 잘 잡는 도반에게 부탁하는 게 좋겠다고 대답했습니다. 스님께서도 곧 카메라를 넘겨주시고는 대중들 사이에 자리를 잡으셨습니다. SBS촬영팀과의 기념 촬영까지 마친 뒤 모두 각 차량에 탑승해 백운산으로 향했습니다.
급경사 길을 굽이굽이 돌아가는 산길을 오르고 올라 평평한 산길에 이르러 차량들을 먼저 보내고 대중들은 내려 걷기 시작했습니다. 백운산에는 유독 연분홍 진달래꽃이 많이 보였습니다. 간혹 꽃망울이 크고 진한 분홍 꽃도 보였는데, 그럴 때마다 스님께서는 발을 멈추시고는 대중들에게 여기 보라며 손짓을 해주셨습니다. 대중들은 스님께서 꽃을 좋아하신다는 것을 잘 알기에 꽃이 보이면 “우와아~” 평소보다 크게 함성을 질렀습니다. 그리고는 서로 서로 “좀 더 영혼을 담아서 감탄해야지”라며 한바탕 웃습니다.
스님께서는 산나물 이름과 꽃 얘기들을 들려주셨습니다. 다들 맑은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시며, 서울 공기가 얼마나 나쁜지 알게 됐노라고 말씀드리니, 스님께서는 “그렇지. 나도 서울에서 자면 5시간을 자도 머리가 안 개운해. 그런데 여기 오면 하루에 3시간만 자도 아주 가볍고 개운하게 일어나. 그러니 사람은 공기 맑은 데서 살아야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거야”라며 시골예찬을 하셨습니다.
스님과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걷다보니 어느새 저 앞에 차량 운전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서있습니다. 스님과 대중들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사진을 찍고 있었던 가 봅니다. 시간이 늦어지기도 하고 비가 온 뒤라 춥기도 해서 더 걷지는 못하고, 다시 차량에 올라타 언양의 작천정으로 향했습니다. 작천정은 마침 벚꽃축제가 열려 수많은 인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벚꽃터널 밑으로 사람들이 물결처럼 올라갔다 내려오고 길목 옆에는 온갖 먹거리와 볼거리가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습니다. 일행들을 놓칠까 싶어 종종걸음으로 선두에 가시는 스님 뒤를 따라붙으면서도, 대중들은 연신 핸드폰 카메라를 들어 쏟아질 것 같은 벚꽃을 찍기에 바쁩니다. 몽실몽실한 벚꽃이 얼마나 탐스럽게 피었는지 사진을 찍으면서도 절로 입이 벌어집니다.
작천정은 “수석이 기이해서 마치 술잔을 주렁주렁 걸어놓은 듯 하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조선 세종대왕 시절에 지방의 학자들이 세종대왕을 생각하며 지었다는 작천정이라는 정자도 있고, 임진왜란 때는 많은 의병이 순국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탑곡 수련원의 앵두나무>
기나긴 벚꽃터널을 지나 시끌벅적한 거리를 빠져나오자, 작괘천이라는 시내가 흐르는 조용한 계곡이 나타납니다. 몇 년 전에 스님께서 친히 일러주셔서 이곳에서 신나게 물놀이를 한 기억이 났습니다. 스님께서는 위에 온천장이 생기면서 물이 그렇게 맑지는 않다고 하셨습니다. 어제 내린 비로 강물은 그 어느 때보다 세차게 넘쳐흘렀습니다.
계곡을 짧게 둘러보신 스님께서는 저녁에 문경대중들과 일정이 잡혀있어 여기서 그만 돌아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스님과 헤어지려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스님께서 다 같이 저녁식사를 할 만한 장소가 없으니 각자 알아서 먹고 싶은 것 사먹고 가라며 용돈을 주기 시작하자 또 웃음꽃이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스님께 세뱃돈으로 천원만 받아도 다음 생에 스님 따라 인도에 태어나야 한다는 말씀을 익히 들어온 터라, 스님 용돈은 함부로 받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퍼뜩 지나갔습니다. 그렇지만 스님께 용돈 받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는 없어 대중들은 한 사람, 한 사람 합장하고 용돈을 받아들었습니다. 대중들은 간단히 저녁 요기를 한 뒤 서울로 향하기로 하고, 스님께서는 문경 대중들과 일정을 보내기 전에 모종을 심어야 한다며 집으로 향하셨습니다.
문경 공동체 대중들과의 일정은 저녁 7시 30분부터 시작됐습니다. 문경 공동체에는 수련을 진행하는 법사님들과 교육팀, 수련팀, 살림팀 그리고 행자원 등이 있습니다. 이번 모임에는 각 부서에서 소임을 맡고 있는 실무자와 상근자 40여 명이 함께 했습니다. 서울 공동체에는 10년, 20년이 넘는 오래된 실무자들이 모여 있다면, 문경 공동체에는 갓 백일을 넘긴 상근자들로 초심자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스님께 인사 올리는 자기소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문경 대중들은 내일 천마총 앞에서 자전거를 빌려 첨성대와 계림을 지나 교동 최씨 저택을 구경하고, 교촌교와 월정교 앞으로 해서 경주박물관을 거쳐 황룡사지에서 사시예불을 드린 뒤 분황사에 갔다가 보문단지를 둘러보는 일정을 보낼 계획이라고 합니다. 스님께서는 일정을 가만히 들어보시더니 차로도 15분 걸리는 거리를 자전거로 20분을 잡았다며, 그렇게 주파할 수 있겠느냐 웃으며 물으셨습니다. 스님 머릿속에는 지명만 들어도 거리와 시간이 착착 계산되는 자동계산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디로 가면 꽃놀이를 더 잘 할 수 있을지 조언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일정 공유를 한 뒤에 곧이어 상근자들의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수련팀에서 수련장 시설을 맡고 있는 한 상근자는 불쌍한 아이들을 돕고 싶어 소득이 적은데도 봉사활동을 해왔는데, 어느 날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딸이 시력을 잃어가고 치료는 불가능하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렇게 사람을 돕고 살았는데도 내 딸에게 힘든 일이 오니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힘들고, 병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면서, 자기 안의 모순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이런 모순에 어떻게 처신해야 될지 여쭤보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진단을 통해 암을 발견하면 좋은 일입니다. 발견을 못했으면 암인 줄 모르고 살다가 죽었을 텐데, 암인 줄 알았으니 이제는 선택이 자신한테 주어진 게 아니겠어요? 알기 전에도 잘 살았으면, 알고 난 뒤에 방황할 이유가 뭐가 있겠어요? 그런데 그렇지 않으니 이게 더 큰 모순입니다. 자기가 모순된 마음을 가진 줄 딱 알아차리고 각성한다면 내 아이를 돕는 데 남의 아이 돕는 것 이상으로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습니다. 욕심이 있어서 내 아이만큼은 병에 안 들기를 원하는 것은 절에 들어와서 살아도 수행과 아무 관계없이 살고 있는 것입니다. 수행자는 놓쳤을 때 놓쳤구나 바로 돌아올 수 있어야 합니다. 놓치지 않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놓칠 수 있지만 놓쳤을 때 바로 알아차리고 돌아오는 게 수행입니다.”
행자원에서 백일출가 스텝 소임을 맡고 있는 한 젊은 상근자는 스님께 무대공포증을 호소했는데, “무대공포증이 있는 걸 알면 됩니다. 무대공포증이 있는데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니 자기가 문제를 만드는 거예요. ‘죄송합니다. 제가 무대공포증이 있어서 말이 잘 안 나와요.’ 이렇게 사람들 앞에 솔직하게 인정하고 생활하면 시간이 흐르면서 극복이 되는데, 그걸 숨기고 없는 것처럼 살려고 하니 더 긴장되고 자꾸 안 되는 쪽으로 가는 겁니다. 이처럼 부족한 게 있기 때문에 여기 들어와서 사는 것이 아니겠어요? 진리의 길을 걸을 수 있게 해준 이 과제를 문제 삼지 말고, 좋은 것이다 나쁜 것이다 이런 생각 자체를 놓아버리고 수행정진하세요.”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올해 1년 째 상근중인 대학 휴학생인 상근자도 “잘하려고 하면 완벽하게 생활을 하다가 어느 순간 자포자기로 빠지고, 또 완벽하게 하다가 자포자기 했다가 반복합니다. 최근에는 우울증 진단을 받아 일을 편하게 하다가도 잘하려다 보면 숨이 턱 막힙니다. 정도를 어떻게 맞춰야 될지 어렵습니다.”라고 스님께 질문을 드렸습니다.
스님께서는 “잘 해야지 하면서 노력은 안하니까 모순이 생긴다”고 집어주셨습니다. 또 ‘잘 한다’의 기준은 상대적인 데 있다고 말씀해주십니다. “상대 평가는 내가 속해있는 상황에 따라 나오기 때문에 내 실력하고 아무 관계가 없다”며, 나 자신과 아무 관계없는 일에 목매달기 때문에 문제 해결이 안 되는 것이라고 일러주셨습니다. “안하는 것보다는 열심히 하는 게 낫지만 그 결과가 좋을지 나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할 뿐”이라 말해주십니다.
“수행이라는 건 무엇을 어떻게 하는 게 아니라 상황에 부딪히면서 ‘내가 성질이 이렇구나, 내가 저런 점에 집착했네.’ 발견하면서 자기 상태를 점검하고 나를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내 습관을 잘 알면 더 이상 그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법사님들 보고 나는 언제 법사님들처럼 될까하는 마음도 욕심입니다. 수행한지 20년, 30년이 되도 부족하지만, 그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우리는 그런 부족함을 안고 살아가지만 계속 노력할 뿐입니다. 부처님은 열반하시면서 내 능력이 어떠했다가 아니라 ‘지난 오십 몇 년 동안 근면하고 성실하게 정진해왔노라. 세상은 덧없다. 부지런히 정진해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본받아야 합니다.”
스님과의 시간을 마친 문경공동체 상근자들의 얼굴이 밝아보였습니다. 절에 들어와도 끊임없이 올라오는 불편한 마음들을 보게 되는데, “놓치지 않는 게 수행이 아니라 놓쳐도 알아차리고 돌아오는 것이 수행”이라는 말씀에 한결 가벼워진 모습입니다. “자전거를 배우며 수없이 타다가 넘어져도 내가 타고자 연습하고 있다면, 그건 넘어져도 타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말씀을 되새겨봅니다. 문경 대중들은 조금 더 자기 과제에 집중하고자 새롭게 발심하며 스님께 감사함을 표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늦은 시각까지 한 사람, 한 사람의 질문에 정성껏 대답해주셨습니다. 내일은 아침부터 평화재단에서 종교인모임 조찬이 있어 새벽 3시에 서울로 출발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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