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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상카시아 석가족들과 함께하는 수련 2일째 날입니다. 오늘 스님께서는 어제에 이어서 새벽부터 오후까지 석가족들을 위해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 많은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석가족들과 함께하는 2일째 수련은 새벽 5시 30분부터 명상을 하며 시작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명상하는 방법에 대해 석가족들에게 안내를 해주셨습니다.
▲ 석가족들에게 명상을 지도해 주시는 스님
“콧구멍 끝을 가만히 주시하면 내가 호흡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호흡을 한다는 것은 숨이 들어가고 나온다는 것입니다. 숨이 들어갈 때는 숨이 들어가는 줄을 알아차립니다. 숨이 나올 때는 숨이 나온는 줄을 알아차립니다. 숨이 길게 들어올 때는 숨이 길게 들어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숨이 길게 나올 때는 숨이 길게 나온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숨이 규칙적이면 규칙적이구나 알아차립니다. 의도적으로 숨을 들이쉬거나 내쉬지 않고 자연상태로 그대로 숨을 두고 그 숨의 상태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합니다. 긴장하지 않습니다. 애쓰지도 않습니다. 편안한 상태로 마음을 코 끝에 집중합니다. 시작합니다.”
스님의 안내가 끝나자 죽비 삼성과 함께 명상이 시작되었습니다. 고요한 정적 속에서 명상은 30분간 계속되었고 어두웠던 창밖이 서서히 밝아올 즈음 죽비 삼성과 함께 명상을 마쳤습니다.
명상을 마치고 스님께서는 어제에 이어서 즉문즉설을 계속 진행하셨습니다. 석가족들은 어제 스님께 들은 법문 중에서 또는 자신들이 평소에 궁금해했던 것들에 대해서 계속해서 질문했습니다. 1시간 30분 동안의 즉문즉설을 마치고 아침 7시30분에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잠시 휴식을 한 후 8시30분부터 다시 수련을 계속 이어갔습니다. 오전 시간에는 스님께서 “이 좋은 붓다 담마를 어떻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할 것인가?”에 대해서 법문을 해주셨습니다.
▲ 스님의 설법을 듣고 있는 석가족들
“오늘은 이 좋은 붓다 담마를 어떻게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할 것인가 하는 주제를 갖고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그럴려면 첫째, 내가 먼저 담마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담마를 공부해야 합니다. 그럴려면 담마를 가르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배우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배울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담마를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내 삶의 경험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담마에 대해 많이 안다는 지식에 불과합니다. 내가 아무리 많이 알아도 경험하지 않으면 번뇌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매일 수행을 해야 합니다. 세 번째는 이 좋은 담마를 다른 사람도 들을 수 있도록 전파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공간이 필요합니다. 이곳에 담마센터가 지어지면 상카시아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와서 담마를 배우고 수행을 할 수 있습니다. 또 각 디스트릭마다 작은 센터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혼자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모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을 누가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어떻게 했냐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부처님은 왕자였습니다. 부처님이 왕자일 때는 밑에서 말을 모는 종도 있고, 옷 갈아 입혀주는 종도 있고, 침실을 청소하는 종도 있는 등 하인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이 출가할 때 그 시종들을 데리고 갔어요? 안 데리고 갔죠. 깨달음을 얻으신 뒤에도 시종들을 다 데리고 살았어요? (아닙니다) 시종들 없이 살았지요.
당시 사회는 노예제 사회였습니다. 모든 일을 다 노예들이 하는 사회였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그 제도를 버리셨습니다. 상가 안에는 어떠한 노예 제도도 없었습니다. 오직 여기는 수행자만 있었습니다. 마하가섭 존자도 굉장한 부자집의 아들이였지만 출가하고 나서는 걸식하고 살았습니다. 상가를 돕기 위한 어떤 노예도 시종도 없었습니다. 만약 그 당시에 큰 절을 지어서 밥을 해먹고 살려면 누군가는 일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할 거예요. 그러나 부처님은 옷은 주워서 입고, 밥은 얻어 먹고, 잠은 나무 밑에서 잤습니다. 그러니 아무런 노예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노예제 사회에서 노예 없는 삶을 사셨어요.
부처님이 나이가 드셔서 누군가 도와주는 사람들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아난다가 그 일을 하는 사람이 되었어요. 아난다는 수행자로서 부처님을 도와주는 사람이였어요? 노예로서 부처님을 도와주는 사람이였어요? 수행자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사는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돈을 주고 사람을 부리는 사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 살려면 돈을 주고 사람을 부리는 시스템 없이 이 세상을 살기가 어려워요. 제가 만약에 절을 운영하는데 수위가 필요하다고 해서 돈을 주고 수위를 고용한다, 밥 할 사람을 돈을 주고 시킨다, 청소할 사람을 돈을 주고 시킨다면 이 절은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것이잖아요. 그러면 그 수위가 저를 볼 때는 제가 사장으로 보이겠어요? 스승으로 보이겠어요?”
“사장으로 보일 것 같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에게는 제가 사장이예요? 스승이예요?”
“스승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스님이 수자타아카데미에서 22년째 활동하고 있어요. 둥게스와리에 있는 마을 사람들은 제가 스승일까요? 사장일까요?”
“사장으로 보일 겁니다”
“그래서 제가 둥게스와리 마을 사람들에게는 아직까지 담마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저를 볼 때 스승으로서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사장으로서 존경합니다. 우리가 모두 수행자이고 제가 스승이라면 여러분과 저하고 사이에 돈을 주고 받는 거래는 없어야 합니다. 그럼 제가 여러분들에게 돈을 줘야 해요? 여러분들이 저에게 보시를 해야 해요?”
“저희들이 보시해야 합니다.“
“법륜 스님이 지난 20년 동안 무언가를 해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지금까지 아무것도 안하고 있잖아요. 제가 여러분들의 사장이 되려면 지금이라도 금방 절을 지을 수 있어요. 월급을 1만 루피씩 주면서 금방 지어버리면 되거든요. 그렇게 되면 여러분들은 제가 주는 돈을 받고 생활하게 되잖아요. 그러면 저는 여러분들의 스승이 아니고 사장이 된단 말이예요. 이해하셨어요?”
“스님은 저희들에게 스승이시지만 우리는 너무 가난해서 때로는 사장으로 보일 때가 있어요.” (웃음)
“아주 솔직하게 잘 말했어요. 그래서 진짜 붓다 담마가 행해지려면 제가 여기서 사장이 되면 안되고 스승이 되어야 해요. 절이 중요한 게 아니예요. 절은 필요하지만 핵심은 아니예요. 아난 존자가 부처님을 시봉할 때 노예로서 했어요? 월급 받고 했어요? 같은 수행자로서 하신 것이지요. 부처님이 빔비사라왕에게 돈을 달라고 해서 그 돈을 받아서 사람들에게 줘서 절을 지으라고 했어요? 사람들이 절을 지어서 부처님에게 주었어요?”
“사람들이 절을 지어서 부처님께 드렸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왜 저한테 절을 지어달라고 해요?”
(석가족들 모두 웃음)
“아난다핀디카(급고독 장자)라든지 빔비사라왕은 재산이 많았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할 수 있었지만 우리는 그렇게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해드릴 수 없어요. 우리들 말고 한국에서 스님한테 배운 수행자들 중에 많은 돈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보시하면 우리가 거기에 보태서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는 주로 몸으로 노동을 해서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인도 사회에서 우리들은 석가족이 멸망할 때 겨우 도망쳐서 숨어서 살다가 노예로 살게 되었고, 노예로 살면서 밥도 제대로 못 먹었는데 이제 와서 어느 정도 살만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아직 형편이 넉넉지 않기 때문에 스님한테 이런 부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도 해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잘 알았습니다. 우선 원칙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절을 짓는 것은 여러분들이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이해하셨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의 실제 사정은 그런 경제력이 없다는 것 아니예요? 그렇다면 절을 지을 수 있는 땅이나 철근이나 시멘트 등 자재는 스님이 일부 지원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절반을 모으면 제가 절반을 지원해 주겠다고 지난번에도 회의를 했잖아요.”
(석가족들 모두 박수)
석가족들은 근심어린 표정이었다가 스님께서 자재는 지원해줄 수 있다고 하니 박수를 치며 금새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그런데 한분이 다시한번 질문했습니다.
“스님한테는 아난다핀티카(급고독 장자)처럼 돈이 많은 수행자들이 한국에 많이 있지 않나요?”
“그런데 부처님이 아난다핀티카에게 ‘너는 돈이 많으니 절을 하나 지어라’ 이렇게 말을 했어요?”
“아닙니다. 스스로 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돈 많은 사람들 중에는 스스로 이곳 상카시아에 절을 지어주겠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없는데 어떡해요? 인도에서도 누군가 돈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절을 지어주겠다고 하는 사람이 없는데 어떡해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절이 필요하잖아요. 그렇다면 여러분이 절을 지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돈이 없다고 해서 절반은 여러분이 모으고 절반은 제가 지원해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절을 지으려면 누군가는 여기 와서 책임을 지고 관리를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먹고 살아야 한다’ 고 하면서 아무도 할 사람이 없잖아요. 그런데 어떡해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월급 줄게" 하면 당장 시작할 수 있어요. 그러면 제가 여러분들에게 스승이예요? 사장이예요? 제가 사장을 해서 절을 지으면 거기서 어떻게 붓다 담마를 할 수 있어요? 스승도 없이 건물만 크게 지어서 무슨 일을 할 거예요? 여러분들이 여기서 절을 지으면서 월급을 받으면 그것은 노동자이지 부디스트는 아니예요. 그러니 여러분들은 여기서 수행자로써 쉬람단을 해야 합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이 돈을 내어서 절을 지으면 그 사람들이 그 절의 주인이 됩니다. 만약에 한국에서 다 돈을 가져와서 여기에 절을 지으면 이 절은 한국 절이예요? 석가족들의 절이예요? 여기 땅을 산 이유는 한국 절을 지으려고 한 것이 아니고 석가족들의 절을 지으려고 한 것이예요. 여러분들이 아무 것도 안하면 석가족들의 절이 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스님이 계속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제가 벌써 상카시아에 온지 20년이 되었습니다. 왜 아무것도 안하고 있을까요? 절 하나 못지어서 가만히 있을까요? 여러분들이 참여해야 여러분들의 절이 되는 것이예요. 저는 사장이 되기 싫어요.”
“스님의 마음 속에서는 석가족들을 사랑하는 자비심이 있다는 것을 저희들이 알고 있는데...”
“저는 여러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장이 되기 싫다 이말입니다. 부처님도 전륜성왕이 될 것이냐, 부처가 될 것이냐 두 가지 길이 있었잖아요. 둥게스리에서 수행하실 때도 마왕이 나타나서 붓처가 되기를 포기하고 전륜성왕이 되라고 자꾸 요구하잖아요. 그것처럼 여러분들은 저보고 자꾸 스승이 되지 말고 사장이 되라고 요구하잖아요. 여러분들이 마왕이예요?”
(석가족들 모두 웃음)
“저희도 스승으로 모시고 싶지만 저희들 형편이 워낙 안 좋으니까요. 스님이 이곳에 오신 것은 담마를 전하러 온 것이지 절을 지으러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요. 스님께서 이렇게 1년에 한번씩 오셔서 담마를 가르쳐 주셔서 너무 좋지만, 스님께서 가시고 나면 다시 똑같은 자리로 돌아옵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돈을 벌어야 하고 가족들도 돌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도 스님들이 마을마다 계시는데 이 스님들이 스님이 가시고 나서 스님처럼 담마를 계속 알려주실 수 있으면 좋은데 그렇지 못해요.”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분명히 하고자 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저는 사장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 담마가 인도 사회에 널리 퍼져나갈 수 있어요. 담마에 대해서는 스님께 의지하는 것이 괜찮은데, 절 짓는 것은 여러분들이 해야 합니다.”
“스승 역할도 해주시고 사장 역할도 해주시고 두 개 다 해주시면 안될까요?”
“그럼 부처님이 전륜성왕도 되고 부처도 되고 두가지 다 하셨어요?”
"아니요"
“인도 불교를 부흥하기 위해서는 석가족이 앞장서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인도 전체에 불교도가 0.5% 밖에 안됩니다. 그런데 그것도 북쪽에 있는 탄트라 불교는 티벳 난민들이거나 소수민족이예요. 동쪽에 있는 테라바타도 소수민족이예요. 암베드카르는 신분적으로 낮은 사람들이예요. 모두 인도의 비주류예요. 숫자도 적지만 사회의 중심이 되기에도 어려워요. 그렇다고 영향력 있는 브라만이 불교로 바꾸지는 않을 것 아니예요? 그래도 여러분들은 계급이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은 평민이잖아요. 여러분들이 마음을 내면 인도 사회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20년 전에 젊은 석가족 청년들이 저한테 약속을 했어요. 자기가 출가를 하든지 아니면 아들을 출가시키든지, 그렇지 않으면 스님이 안되더라도 일생을 바쳐서 불교를 부흥시키는 운동을 하겠다고요. 많은 청년들이 그렇게 하겠다고 손을 들었어요. 지금은 다 어디 갔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조금 더 각성을 하라는 것입니다. 스님이 못되었으면 세속에 살더라도 스님이 된 것 같은 마음으로 시간을 더 내고 마음을 더 내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교를 새롭게 일으키는 것에 대한 책임의식을 좀 가지시라는 것입니다.
담마는 신에 의지하지 말고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라는 것이잖아요. 그것처럼 상카시아의 불교 발전을 위해서는 저를 신으로 만들지 말고, 여러분들이 중심이 되어서 하면 제가 스승 역할을 하면서 서포트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좀 어렵다는 것을 저도 잘 알고 있어요. 담마 센터를 지으려면 더 마음이 모여져야 해요. 아직 부족해요. 여러분들이 준비가 되면 저는 언제든지 지원을 해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석가족들의 머리가 다들 복잡해지면서 웅성거리게 되자, 여기까지만 말씀하시고 일단 휴식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이것 뿐만 아니라 스님께서는 수련이 진행되는 동안 석가족들이 이 일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독려하고 설명하고 때론 반복해서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수 차례 “사마지가 헤?” (이해하셨어요?) 라고 물어보시고 표정이 갸우뚱 하면 다시 다른 비유를 들어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그러면서 석가족들은 점점 더 스님의 뜻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휴식 시간을 마치고 나서 다시 법상에 오르신 스님께서는 이번에는 우리들의 삶이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시면서 열가지 계율을 함께 지켜보자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리고 협동조합 운동을 통해 새로운 마을개발 모델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인도 석가족 청년 8명이 자신이 그런 일을 해보겠다고 당당하게 손을 들어서 스님도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붓다 담마만 공부한다고 불교 전파가 되느냐? 그것도 아닙니다. 석가족들에게는 그래도 불교 전파가 쉽지만 다른 카스트로 전해지는데 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게 됩니다. 부디스트들이 수행도 잘 하지만 생활하는 모습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더 좋아보여야 합니다. 그래서 첫째, 계율을 잘 지켜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보고 훌륭하다고 말할 때는 그 행동을 보고 말하는 것입니다. 말과 행동을 바르게 하는 것이 계율입니다. 올해는 10가지는 꼭 지켜봅시다.
첫째, 때리지 않는다. 애 키우면서 안 때릴 수 있어요? (숙제 안 하고 하루 종일 놀 때는 때리고 싶어요)
그래도 불교신자는 아이를 때리면 안됩니다. 아이를 교화해야 합니다. 학교에 갔더니 선생님이 불교신자라고 하면 아이들이 ‘올해는 맞을 일은 없겠구나’ 하도록 해야 합니다. 결혼을 할 때 남자가 불교신자라고 하면 ‘저 남자는 부인을 절대 때리지는 않겠구나’ 이것이 분명해야 합니다.
둘째, 훔치지 않는다. 지킬 수 있어요? 여기에 아무리 물건을 놓아두어도 잃어버릴 일이 없어야 해요.
셋째, 성추행하지 않는다. 남자들은 특히 잘 지켜야 해요. 아무리 외진 곳에서 둘이 있다고 하더라도 상대를 성추행하면 안돼요. 상대가 부디스트라고 하면 ‘절대로 나를 괴롭히지는 않겠구나’ 이것이 분명해야 해요.
넷째, 거짓말하지 않는다.
다섯 번째, 욕설하지 않는다.
여섯 번째, 잔소리하지 않는다.
일곱 번째, 짜증내지 않는다.
여덟 번째, 술먹고 취하지 않는다. 술먹고 취하게 되면 때리게 되고 훔치게 되고 성추행하게 되고 욕하게 되고, 그래서 나머지 계율을 다 어기게 돼요. 그래서 술을 안 먹는 것이 가장 좋고, 술을 먹더라도 취하면 안돼요. 술 먹고 취하면 불자라고 할 수 없어요.
아홉 번째, 음식에 탐착하지 않는다.
열 번째, 사치하지 않는다. 옷이나 가방을 유명 상품으로 산다거나 하지 않고 돈이 있더라도 수행자는 검소하게 살아야 합니다. 가난하게 살아라는 것이 아니라 검소하게 살아라는 것입니다.
지킬 수 있겠어요? 물론 살다보면 어길 수 있어요. 그러나 그럴 때는 반성하고 참회를 해야 합니다. 이 열가지만 잘 지켜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겠죠? (네)
그리고 우리가 사는 모습이 좀 잘 살아야 사람들이 존중하겠죠? 그런데 여러분 개개인이 잘 살려고 하면 굉장히 어렵습니다. 물론 개인도 열심히 일을 해야하지만 그러면 경쟁이 너무 치열해져요. 그러나 우리가 협력을 하면 조금 쉽습니다. 협동조합이라고 아세요? 협동조합에는 크게 세 가지 사업이 있어요. 첫째, 공동구매입니다. 비료나 농약, 벽돌, 시멘트 등 우리가 필요한 것을 한꺼번에 많이 공장에서 구매하면 값을 낮게 살 수 있어요. 둘째, 공동판매입니다. 여러분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개인이 판매하는 것보다 모아서 한꺼번에 사업자한테 팔면 더 비싸게 팔 수 있어요. 셋째, 마을금고입니다. 우리가 남는 돈을 저축하고, 저축했을 때 이자는 은행보다 더 받고, 우리가 돈을 빌릴 때는 사채보다 더 값싸게 빌리고요. 이런 것을 부디스트들이 공동체를 이뤄서 마을을 공동개발해서 다른 마을보다 잘 살게 되면 이것도 굉장한 효과가 있습니다. 개개인들은 힘이 없지만 뭉치면 힘이 생깁니다. 이런 것들을 여러분들이 앞으로 해나가야 합니다.
첫째, 붓다 담마를 공부해야 합니다. 둘째, 붓다 담마를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합니다. 셋째, 붓다 담마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해야 합니다. 넷째, 개인이 계율을 잘 지켜서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다섯째, 협동 조합을 만들어서 우리들의 생활이 더 좋아지면 이것 역시 불교의 영향력을 크게 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다른 카스트라 하더라도 부디스트들이 잘 산다고 하면 관심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다른 카스트들도 조합원이 되고 싶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담마 센터에 가서 수련을 해야 조합원이 될 수 있다고 하면 그들도 담마를 배울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이렇게 확대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는 순수하게 담마를 전파시켜 나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담마를 전파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만드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이런 운동을 하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네마다 있는 담마센터가 이런 일을 같이 해야 합니다. 그래서 수행하는 것과 사회활동이 따로 분리가 되지 않고 같이 이뤄져야 합니다. 다른 곳에서도 이런 일을 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붓다 담마를 수행하고 전파하기 위해서 이런 일을 한다는 목표의식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스님께서는 석가족들을 천천히 둘러보시면서 누가 한번 이 일을 해볼 것인지 물으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누가 나서서 이 일을 할 것이냐 하는 것이죠. 월급을 주면 노동자가 되잖아요. 한국의 정토회는 많은 일을 하지만 100% 자원봉사자로만 운영이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수행자로서 이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인도에서는 이것을 어떻게 만들 것이냐, 이것이 큰 과제입니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좀 나서야 합니다. 여기 청년들 중에서 ‘결혼 안하고 내가 평생 이런 일을 하겠다’ 하는 사람 없어요?”
▲ 인도 불교 부흥을 위해 평생 일해보겠다고 당당히 일어선 청년들
스님께서 이렇게 묻자, 인도 청년 8명이 당당하게 손을 들고 일어섰습니다. 남자 4명, 여자 4명이였습니다. 스님께서 “부모님이 반대해도 할 자신이 있어요?” 라고 묻자 “허락 받으려고 노력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했고, “허락 안하면 그냥 집을 나와버릴 수 있어요?” 라고 다시 묻자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당당히 이야기를 해서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 스님과 함께 일해보겠다고 말하고 있는 인도 석가족 여성 4명
그리고 한 청년의 아버지가 함께 자리하고 있어서 스님께서는 아버지에게도 물어보았습니다. “아들이 하겠다고 하면 반대 안할 거예요?” 그러자 아버지는 “아들이 하겠다고 하면 저도 할 말이 없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스님께서는 흔쾌히 마음을 낸 청년들을 위해 이렇게 격려를 해주셨습닌다.
▲ 부모의 반대를 무릎쓰고 일해보겠다고 말하는 인도 석가족 청년 4명
“물론 세상살이도 좋은 면이 많이 있어요. 그러나 결혼하고 농시짓고 아이 낳고 그것 밖에 더 하겠어요? 죽을 때까지 밥 벌어 먹고 살고, 아이 키우기만 하다가 죽어요. 그런데 우리가 크게 마음을 내면 붓다 담마도 공부할 수 있고, 붓다 담마를 널리 전할 수도 있고, 또 우리가 마을 개발을 한다면 동네를 발전시킬 수도 있습니다. 공동판매, 구매 같은 협동조합 운동도 할 수 있고요. 그러나 우리는 붓다 담마를 하면서 이 일을 하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이익을 얻을 수 없다 뿐이지 활동은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오늘 손 든 청년들은 학교 공부하면서 준비하고 있어요. 스님이 데리러 올 테니까요. 스님이 아주 기뻐요. (웃음)
인도 사람들은 나고 죽고 윤회한다고 믿고 있잖아요. 계속 이 일을 하라는 것이 아니고 이번 한 생만 이런 일을 해보자는 것이예요. 우리가 이번 한 생만 투자하면 이 인도를 변화시킬 수 있어요. 여러분들도 이 청년들처럼 완전히 집에서 나오지는 못해도 마음을 더 내셔야 해요. 여러분들도 처음보다는 조금 더 마음을 내셨어요? (네) 한번 해볼까요? 변화를 위해서 스타트를 할 준비가 되었어요?”
이번에는 마을 주민들이 큰 목소리로 대답을 했습니다.
“준비되었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다니는 자녀를 둔 사람 손들어 보세요. 사미승 학교를 만들면 보내줄 거예요? 스님이 되어도 괜찮아요?”
“문제 없습니다.”
“아주 좋았어요. 그러면 올해 1년 동안 준비해서 무엇이든지 한번 해봅시다. 인도에 다시 불교가 일어날 기회가 지금 왔습니다. 거기에 여러분들이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담마만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도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해나가야 합니다. 나의 인격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비록 가난하게 살지만 정말 서로 협력해서 좋게 사는 모습을 이 세상에 보여줘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이 시골에서 가장 모범적인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불법이 인도 사회에 빠른 속도로 전파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누군가가 나서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나서지 못하면 여러분들의 자녀라도 나서도록 하고 서포트 해주어야 합니다. 누군가가 이런 일을 앞장서서 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이 일이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정토회가 이렇게 이뤄진 것도 누군가가 활동을 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외에 나와 있으면 부모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어요? 그러나 이렇게 활동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이 일이 이뤄지는 것이예요. 개인 생활만 생각하면 우리는 아무 일도 못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조금씩 마음을 내어서 같이 해봅시다. 준비 되었어요?”
“네!” (주민들 모두 큰 목소리로)
1박2일 동안의 스님 법문을 듣고 하루밤 사이에 이렇게 사람들이 달라지다니 놀라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법문 곳곳에서 느껴진 스님의 석가족들에 대한 사랑과 자비심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인도 불교의 새로운 부흥은 가난한 석가족 사람들의 초발심을 통해 그 첫바퀴가 막 굴러가려고 삐끄덕 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난 20년 동안이나 석가족들이 스스로 마음을 낼 수 있도록 매년 법문을 해주고 기다려주고 하셨던 스님의 애틋한 사랑이 아니였다면 석가족들도 오늘처럼 이렇게 마음을 내지 못했을 겁니다. 스님의 간절한 서원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그리고 점심 시간에는 인도 대학에 다니면서 박사 학위 과정에 있는 인도 스님 몇분들과 함께 식사를 하시면서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특히 요즘 스님께서는 인도에 와 있는 동안 오후 불식을 하고 계신데, 오후 불식 하는 계율이 생기게 된 배경과 현재 남방 불교의 스님들은 어떻게 걸식을 하고 어떻게 오후 불식이라는 계율을 지키고 있는지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시고 이야기를 들으셨습니다.
▲ 남방 불교의 계율에 대해 대화를 나누시는 모습
또 스님께서는 마을에 살고 있는 인도 스님들을 보시면서 한국인 스텝들에게 “이런 스님들이야 말로 진정으로 출가한 스님들 같다”고 하시면서 “대부분의 남방 스님들은 목에 힘이 들어가 있는데, 이 마을 스님들은 여기 온다고 아무런 대접도 안해주는데 법문도 열심히 듣고 참 소박하지 않느냐?”고 이야기하셨습니다.
이어서 마지막 순서로 지금까지 스님 얘기를 듣고 더 궁금한 것에 대해 더 묻고 답하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스님께서는 석가족들의 다양한 질문들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해주신 후 이번 수련을 마무리하면서 다시 한번 석가족들이 부디스트로서 자긍심을 가질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부디스트로서 자신감이 있어야 해요. 전 인도 사람이 다 힌두교이고 나 혼자만 부디스트라고 하더라도 자신있게 살아야 해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셨을 때는 전부 브라만교이고 혼자 부디스트이였잖아요. 우리가 잠을 자고 있다고 합시다. 제가 혼자 깨었어요. 여러분들이 다 꿈을 꾸면서 잠꼬대를 해요. 그럴 때 이 한 사람이 백명을 깨우겠어요? 이 백명을 따라서 한 사람이 다시 잠꼬대를 하겠어요?”
“한 사람이 잠꼬대 하는 사람들을 깨울 수 있습니다.”
“붓다는 깨달은 이, 깨어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인도 사람 전체를 깨워야지 여러분들도 같이 따라서 잠을 자면 안돼요. 자, 그러면 붓다 담마를 공부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면서 이번 수련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석가족들은 큰 박수를 치면서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이곳 인도 절의 주지이신 담마빨 스님이 남방불교 방식으로 법회를 마치는 의식을 해주셨습니다.
법회를 모두 마치고 나서는 수바스지의 사회로 지난 1박2일 동안 도움을 주신 분들에 대한 소개 시간이 있었습니다. 매 끼니 때마다 식사를 준비해주신 분들, 설거지를 해주신 분들, 법당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신 분, 한국에서 이곳까지 함께 와준 스텝들 등 모두에게 큰 박수로 다함께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어린 아이 중에서 한명, 여성들 중에서 한명, 남자들 중에서 한명, 한국 사람 중에서 한명 각각 나와서 노래 한곡씩을 부르며 오늘 수련을 마치는 기쁨을 표현했습니다. 한국 사람 중에서는 스님 의전을 맡고 계신 최말순 보살님이 한국 가요를 멋지게 불러주셔서 석가족들로부터 큰 박수와 환호를 받았습니다.
▲ 인도 석가족들에게 한국 가요를 들려주는 최말순 보살님
이어서 수련에 참가한 석가족들은 스님께 꽃 공양을 올리고 스님의 발에 손을 올리는 예를 취하면서 감사의 마음을 담아 보시를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보시 들어온 돈 전체를 이곳 인도 절을 수련을 할 수 있게 빌려주신 담마빨 스님께 전달하셨습니다.
▲ 법문을 해주신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꽃공양을 올리는 석가족들
스님께서도 참석한 석가족 모두에게 선물로 단주를 하나씩 직접 손목에 끼워 주셨습니다. 석가족들은 단주를 받고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 스님께 단주를 선물 받는 석가족들
이렇게 수련을 모두 마치고 나서는 다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먼저 여성들이 나와서 스님과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남자들이 나와서 사진을 찍고, 마지막으로 20년 전부터 스님과 함께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석가족 청년회(YBS) 멤버들이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 스님과 함께 단체 사진 촬영
석가족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난 후에는 석가족 청년회(YBS) 구성원들과 함께 회의를 하였습니다. 오늘 수련을 한 것을 토대로 올 한해 동안 어떤 일들을 할지 등에 대해서 서로 의견을 나누고 최종 계획을 세웠습니다.
▲ 상카시아 불교 부흥 사업에 대해 논의하는 모습
회의를 마치고 나서 다시 숙소인 미얀마 절로 돌아오니 저녁 7시가 넘었습니다. 스님께서는 오후 불식을 하고 계셔서 곧바로 휴식을 취하시며 한국에서 온 이메일 등을 체크하시며 업무를 보셨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상카시아 스투파 근처에 또다른 불교 유적지가 있다고 해서 잠깐 둘러본 후 슈레스지가 인도 불교 관련해서 하고 있는 사업장을 둘러보고 격려를 해주신 후 이따와로 와서 기차를 타고 다시 수자타아카데미로 들어가실 예정입니다. 내일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에 배워야 합니다. JTS가 인도 둥게스와리 아이들을 위해 펼치고 있는 기아, 질병, 문맹 퇴치 활동에 함께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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