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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캘커타 공항에 11시 10분경에 도착해서 짐 찾고 숙소에 도착하니 새벽 2시가 거의 다 되었었습니다.
다들 간단히 씻고 잤는데, 시차 적응이 안 되는지 새벽 4시, 5시부터 일어나 부산스러웠습니다.
오전 8시에 출발한다고 했는데도, 해가 나서인지 아침 7시가 되니까 벌서 짐을 챙겨들고
1층 마당으로 나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지금 한국 시간으로 오전 10시정도 돼요. 이 시간까지 어떻게 잠이 오겠어요?”하면서
늦게 잔 것에 상관없이 일찍부터 소란스러웠습니다. 아마, 여행 첫 날이라 그렇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아침에 참가자들에게 달러를 루피로 환전해 주고, 따뜻한 물을 끓여 차를 마실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아침으로는 간단하게 달걀 1개, 바나나 1개, 머핀 1개를 나눠 주었습니다. 다들 잠시간이 부족했는데도
여행에 대한 설레임때문인지, 이국에 대한 궁금함 때문인지 차가 1시간동안 칼리사원으로 향하는 동안에도
자지않고 창밖을 바라보며 인도의 냄새를 실컷 맡고 있었습니다.
감기기운이 있으신 스님은 약이 독한 지 차에서 계속 주무셨습니다.
칼리사원 앞에서 내려 긴 행렬을 만들며 힌두교 사원인 칼리사원으로 향했습니다.
아침 일찍 사원에 참배하러 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칼리사원으로 가는 길이 전보다
훨씬 깨끗해져 있었습니다. 칼리사원의 이름은 “깔리까트”인데 꼴까타 도시 이름이 이 사원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여신 깔리는 쉬바신의 부인으로서 독립적이며 도전적이고 파괴자적인
성격이 부각되는 여신입니다. 이 곳에선 양의 목을 쳐서 그 피로 기도를 드리는 곳도 있었습니다.
참배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사원에는 들어가보지 못하고 사원밖만 빙 둘러보고 나왔습니다.
칼리 사원에 속한 한 건물에 있는 죽음을 기다리는 집으로 갔습니다. 죽음을 기다리는 집은
마더 테레사가 이 곳 행려자를 보호했던 곳으로 유명합니다. 저희들이 도착한 시간이 목욕시간이라
개방이 되지 않아, 죽음을 기다리는 집도 직접 들어가 보지는 못했습니다.
마더 테레사의 사진을 보며 인사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다시 덜컹이고 급정거를 시도 때도 없이 하는 버스를 타고 인디안 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인디안 박물관은 영국지배기에 세워진 박물관으로 성지에서도 보기 어려운 유물이 많은 박물관이었습니다.
사람이 많아 스님께서 두 팀으로 나누어 안내를 했습니다. 불상과 신상을 보면서
인도에서 불교와 힌두교의 문화가 뒤섞여 서로 영향을 준 것들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12시까지 자유롭게 나머지 전시실들을 둘러보게 하고, 스님께서는 전에도 둘러보신 전시관을
하나 하나 빠지지 않고 다 둘러보셨습니다. 불교 유물, 인도의 문화와 역사를 전시한 전시실과 더불어
고고학, 예술, 민속, 지질, 산업, 생물 등 여섯가지를 전시실을 다 둘러보았습니다.
깨끗하거나 세밀하게 정리가 되어 있진 않았지만 많은 내용들이 담겨져 있는 전시실이었습니다.
저도 여러번 와 봤는데, 전체를 둘러본 것은 오늘 처음이었습니다.
12시까지 박물관 관람을 한 후, 조별 자유시간을 가졌습니다. 인도라는 곳, 그 중에서도 켈커타라는 곳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도록 조별로 같이 식사도 하고, 쇼핑도 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인디안박물관 뒤편에는 시장도 있고, 인도음식 거리도 있고, 고급식당들도 있어서
인도사람들의 생활과 문화를 짧은 시간에 느끼기엔 적당한 곳 같았습니다. 시장은 깊고 넓어서
충분한 구경거리가 되었습니다. 자료집 뒤에 주변 지도까지 부착을 해 두어 길을 잃지 않도록
배려를 한 부분도 눈에 띄었습니다.
저희 스텝들도 스님을 모시고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식사 후 조금 있으니, 인도 현지 스텝이 “스님. 큰 일 났습니다. 오늘 저녁 예약된 기차가 취소되었습니다.
북쪽에 안개가 너무 많이 끼어서 운행이 취소되었다고 합니다.” 하고 걱정스런 표정으로 보고를 했습니다.
221명이 예약되어 있고, 이 기차를 안 타면 내일부터의 일정들이 당장 문제가 되는데,
기가 차지만 또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곳이 인도이기도 했습니다.
바로 간단한 대책회의를 했습니다. 한 쪽에서는 켈커타에 오늘 잘 수 있는 숙소가 있는 지 체크를 하고,
제이티에스 박지나 대표님과 쁘리앙카, 제이제이 브라더가 급히 하울라역에 역장을 만나러 떠났습니다.
소식을 기다리는동안 스님께서는 처음 인도성지순례를 하러 왔다가, 아이 우유를 사달라는 여인의 요구를
외면했다가, 그것이 계기가 되어 배고파도 먹지 못하고,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 못하고, 아파도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제이티에스를 설립하게 되었던 그 현장에서 그 때의 상황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이 집이 내가 제일 처음 인도에 와서 묶었던 집입니다. 길에 나오니 아이를 안은 여인이 자꾸 저를
어디로 데리고 가는 거예요. 그래서 이 길을 따라 계속 따라 나왔더니,
저렇게 조그맣고 어두침침한 가게에 들어가요. 그 여인이 분유를 가리키고 아이 입을 가리키기를
계속 반복하는 거예요. 아, 아이 우유를 사달라고 하는구나. 그런데 분유가 60루피인 거예요.
인도 사람들에게 1루피 이상은 절대 주지 말라는 교육을 받았던 터라, 얼른 외면하고 돌아섰지요.
그런데, 숙소에 와서 60루피가 얼만지 물어보니 그 때 돈으로 2400원인 거예요. 얼마되지 않는 돈인데
배곯는 아이를 외면한 내 모습이 죄스럽고 부끄러워서 얼른 다시 그 자리에 가보니
아이를 안은 그 여인이 없었습니다. 그 때 제가 세운 원이 오늘날 제이티에스가 생기게 된 이유가 되었죠.”
항상 법문 속에서 듣던 스님의 고전같은 이야기였는데 오늘 직접 그 현장에서 스님께 이야기를 들으니
감회가 더욱 새로웠습니다. 그 때의 아이 안은 여인이 관세음보살님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 보았습니다.
다시 식사했던 곳으로 돌아오니 전화가 왔습니다.
하우라역이 아닌 켈커타역에서 17시간동안 가는 완행 기차를 겨우 예약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와, 역시 일은 또 되는구나 싶으면서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습니다.
4시 30분, 박물관 앞에서 다같이 버스를 타고 켈커타역으로 향했습니다.
기차표를 반환하고, 다시 예약해서 받는 과정을 거치는동안, 대중들은 역사 바닥에 앉아 저녁도 먹고,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뭔가 돌발현상이 생기고, 또 해결을 하고, 기차에 짐을 싣기 위해서
짐지키는 몇 사람을 빼고는 모두 짐을 나르는 모습도 재미있었습니다.
지금은 기차를 타고 가고 있는 중입니다. 완행이라 중간중간 계속 기차가 섭니다.
자리가 입구라 화장실 냄새가 인도냄새인 것처럼 진하게 밀려 옵니다.
그래도 앉아서 자지 않고 누워서 잘 수 있는 기차를 탈 수 있어서, 내일까지 바라나시에 갈 수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내일은 부처님이 처음 5비구에게 설법을 하셨던 녹야원에서 수계식이 있을 예정입니다.
기차가 오후 1시에 무갈사라역에 도착을 한다고 하는데, 별 일 없이 도착할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오랜만에 인도의 침대기차에서 잠을 청합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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