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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후에는 청주특별법회를 마치고 갑자기 서울에서 약속이 생겨 서울로 이동했습니다.
약속 후, 밤 12시에 오늘 강연이 있는 대구정토회로 향했습니다.
새벽 3시에 도착해서 잠시 휴식을 한 후, 5시에 새벽기도를 했습니다.
새벽 6시, 오늘도 스님을 따라 새벽 산책을 나섰습니다. 산책 장소는 대구 앞산공원이었습니다.
앞산공원에도 눈이 많이 와 있었습니다. 새벽녘에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어제 이 눈길을 걸은 사람들의 흔적은
눈밭에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계속 오르막이라 천천히 걸었습니다.
앞산 중턱을 넘어서니 대구 시내가 훤히 내려다 보였습니다.
보통명사 앞산이 아니라 고유명사로 대구에 앞산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5km를 넘게 걷고 돌아왔습니다. 스님의 새벽산책 덕분에 요즘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습니다.
정성껏 준비해주신 아침식사를 하고 나니, 벌써 법회 시간이 거의 다 되었습니다.
회관 곳곳에 대구정토회 회원들이 서서 안내를 하고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얼굴들이 반가웠습니다.
300회 강연동안 자주 지방에 오면서 정이 든 것 같습니다. 구미, 경산, 상주, 안동, 달서, 현풍에서
활동하신 자원활동가분들도 다 같이 모였습니다. 법당에 사람들이 꽉 찼습니다. 열기가 가득합니다.
스님께서는 어제 대전, 청주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원봉사자들에게 격려와 위로와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또한 우리가 수행자로서 어떤 관점을 가지고 생활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짚어주셨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해도 괴로우면 수행이 아닙니다. 이번에 일하면서 괴로워했다면 수행자가 아닙니다.
어떤 일을 해도 수행차원에서 해야 합니다. 어떤 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집착하게 됩니다.
집착인지 원(願)인지를 알려면 안 되었을 때 괴로워하면 집착이고, 괴로워하지 않으면 원(願입)니다.
원(願)이라는 것은 꼭 이루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안된다고 해서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살펴보고 다시 시작합니다.
그런데 꼭 이루고자 하다 보면 원(願)이 아니라 집착이 되기가 쉽습니다.
좋은 일도 집착해서 하면 괴로움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이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스님을 존경하다가 스님이 돌아가셨을 때 울고불고 하면 이것은 집착입니다.
스님이 돌아가셨다해서 내 눈에 눈물이 떨어지면 ‘내가 집착했나?’하며 한 생각 돌이켜서
‘스님 못다 하신 일을 내가 대신 해야 되겠다’하고 원을 세워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원을 가진 자를 보살이라고 하는데 금강경에서는 발심한 자, 깨달음을 얻겠다고
마음을 낸 자(발보리심자), 최상의 깨달음을 얻겠다고 마음을 낸 자(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자)를
보살이라고 합니다.
금강경에서는 보살이 그 마음을 어떻게 가져야 되느냐고 부처님께 물었을 때 부처님께서는
『일체중생을 구제하겠다고 마음을 내라. 그래서 일체중생 구제했다 하더라도 사실은 내가 구제한 바가
없느니라. 왜냐하면 상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니라.』 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집착하면 보살이 아닙니다. 집착하지 마라 하면 무관심하기 쉽고, 원을 가져라 하면
집착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중생은 집착했다, 무관심했다 이렇게 극단에 처하기 쉽습니다.
수행자는 최선을 다하고 안되면 다시 털고 새롭게 시작해야 합니다.
어떤 일을 하다가 안될 때는 차선을 선택해야 합니다. 차선 안되면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수행자가 자기 삶을 아름답게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수행자로서의 자세에 대해서 스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스님께 자주 들었던 이야기지만, 다시 들으니 또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아마 듣는 사람의 처지가
항상 바뀌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모두들 스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스님 말씀이 끝나자,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불교대학생이라는 여자분이 일어나서 질문을 했습니다.
“어려서 형편이 어려워 절제하게 되니 기가 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충족이 되면
정서적으로도 좋은 것 같아서 제가 아이를 키울 때는 경제적 여건이 되어서 요구대로 많이 해주었습니다.
이제 아이가 비싼 것을 안해 주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어디까지 아이를 충족시켜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부잣집에서 태어나서 망나니가 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열등의식이 없는 당당한 사람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서 검소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열등의식을 가진 비굴한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그것은 자랄 때 부잣집이고 가난한 집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엄마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떤 자세로 살아가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아이를 키울 때 돈이 있더라도
아파트 평수를 줄여 살면서 부모가 솔선수범하고 검소하게 생활하면 아이들은 마음이 당당하고
검소하게 자라게 됩니다. 아이가 원한다고 다 사주면 나중에 버릇이 나빠집니다.
결국, 엄마는 아이를 위해 했지만 결과적으로 아이를 버립니다. 그렇다고 너무 아이의 요구를
안받아주고 무시하면 욕구불만이 쌓여서 반향하고 저항하는 아이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사주고 안사주고의 문제가 아니고 엄마가 어떤 마음상태에서 사주고 안사주느냐가 중요합니다.
내가 내 성질을 절제하지 못하고 성질대로 하니 아이도 어렵습니다. 자기가 너무 아끼고 강요하고
자기식대로 해서 아이에게 열등의식이 전이됩니다. 먼저 자기 정진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를 하면서 자기를 늘 돌아보고 자기 업식의 반응을 보면 경계에 휘둘리지 않게 됩니다.
자기 성질에 의해서 아이를 야단치면 안됩니다. 아이 감정을 헤아려서 해야 합니다.
대부분 자기 감정으로 야단을 치니 아이가 불안정한 감정을 가지게 됩니다.
자기 기도를 하면 저절로 감정이 조절이 됩니다. 아무리 아이가 울어도 나쁜 것은 안 사줘야 합니다.
아이는 두고 자기 정진을 먼저 하세요.”
23살 딸과 같이 온 엄마는 딸이 밤새 악몽을 꾸고 잠을 푹 못 자는 것이 부부가 공직생활을 하면서
딸에게 사랑을 못줘서 그런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스님께 질문한 후 남편과 잘 살아보려고
남편을 집에 불러 들였는데, 다시 남편이 원룸을 얻어 나가 선물옵션을 하면서 1억원 이상을 날렸는데
지켜보고 있어야 하는지 묻는 여자분, 대학들어간 아들이 7주간 혼자서 동유럽 배낭여행을 떠난다는데
걱정이라는 여자분 등 오늘도 질문이 많았습니다.
바깥 공기는 차지만, 법당 공기는 따뜻했습니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더 따뜻한 것 같았습니다.
스님도 웃으시며 법문을 하시고, 듣는 사람들도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법회 후, 스님께서는 사람들과 웃으며 인사를 나누시고, 정성껏 준비해 주신 식사를 하시고,
다음 법문이 있는 울산으로 향했습니다.
울산정토회는 오랜만에 방문했습니다. 300강 동안 강연을 모두 외부에서 하다보니, 울산정토회에는
한번도 들리지 못했습니다. 올 들어 제일 춥다고 언론에서 떠드는데도, 자원활동가들이 한 명 한 명
긴 코트와 두꺼운 외출복을 입고 법당으로 들어섰습니다.
스님께서 자원봉사자들에게 지난 1년동안 애 많이 썼다며 격려와 함께 감사함을 전했습니다.
이어 즉문즉설이 이어졌는데, 질문자가 많았습니다. 가까이서 대화하듯이 서로 주고 받으며 문답이 오갔습니다.
그 중, 한의사 한 분의 질문을 옮겨 봅니다.
“저는 정토회를 만나서 편안하고 좋아졌습니다. 한의사입니다. 정토회에서 절하라고 하면 절 하고,
깨달음의 장도 다녀오고, 명상수련도 다녀왔습니다. 새벽기도도 하고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환자 중 힘들고 답답한 사람을 보면 정토회를 많이 소개합니다.
그런데 저도 모르게 가르치려고 하고, 알게 모르게 제 것을 들이민다고나 할까요? 안타까운 마음에서
하긴 하는데, 하다보면 장황하게 제 흥에 겨워서 법사님 이야기를 옮기고 있습니다.
그런 부분에서 고민이 됩니다.”
“정토회 40계본 중에 ‘가르치지 않는다’라는 계본이 있어요.
목탁 좀 가르쳐 달라 하는데 안 가르쳐주는 그런 것이 아니라, 남의 인생에 간섭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육체적인 병은 의사로서 육체적으로 다스리면 됩니다. 그런데 때로는 육체적인 병이 마음 잘못 써서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때는 마음을 올바르게 가지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 일을 내가 법사인양 상대편 마음 바꾸는 것을 이야기하면 상대편은 간섭이나 잔소리로 느껴
거부반응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하면 되겠다 하는 내 생각이 들더라도
직접 이야기하기보다는 인연을 맺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정토회나 깨달음의 장 팜플렛을 옆에 두고, 종이 하나 주면서 ‘이것 한 번 읽어보세요.’ 하든지,
‘그런 경우에는 깨달음의 장이라는 수련이 있는데 도움이 되더라구요.’ 이 정도로 하면 됩니다.
인연을 맺어 주는 것입니다.
저도 이야기를 할 때 그 사람에게 어떻게 해라 말 잘 안하잖아요? 절을 시키거나 할 때는 반드시
종교가 뭐냐고 묻잖아요. 천주교다, 기독교다 하면 성경구절에 맞게 명심문도 주고, 천주교인이라고 하면
한국의 천주교인 중에 성인이 된 사람이 있는데 103명이예요. 그들에게 한 배 한 배 절하라고 하면서
103배를 하라고 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먼저 상대를 파악해서 인연을 맺어주는 것이 필요하고,
치료해 주는 것 이외에 남의 인생을 이래라, 저래라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법사님들은 물으니까 이야기를 합니다. 저도 물으니까 이야기하는 거예요.
평화재단이나 이런 모임에서 아무리 많은 사람들과 만나도 제가 그 사람들에게 인생에 대해서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습니다. 자기도 누가 와서 몸이 아픕니다하면 어떻게 해라 이야기해 주잖아요.
상대가 물으면 이야기해 줘도 됩니다.”
“경험한 것은 이야기해도 됩니까? 이야기하다 보면 제가 답답해집니다.”
“예, 경험한 것은 이야기해도 됩니다. 그리고 자기가 답답한 것은 자기 문젭니다.
자기가 법당가서 절을 해야합니다.”
가만히 뒤에서 사람들과 스님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런 자리에 함께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처음 괴로워서 헤매던 사람들이 행복해지고, 이제는 세상을 위해서 자신이 가진 것을 하나씩 둘씩 내어놓으면서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안내해 주시는 스님. 스님과 법을 찾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음이 참 감사했습니다.
즉문즉설이 끝나자 이어서 김용주대표님의 인사가 있었습니다. 김용주 대표님도 인사말씀을 하시면서,
스님께 정말 감사하다며 순간 말을 잇지 못하고 울컥 눈물을 비치셨습니다. 그러면서 유럽의 경우,
정말 좋고 감사하면 기립해서 박수를 치지 않더냐는 대표님의 말씀에, 모두가 일어서서 스님께
큰 박수를 올렸습니다. 모두 대표님과 같은 마음이었을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도 법회를 마치면서 참가한 모든 분들 손을 잡아주며 감사함을 전했습니다.
감사함이 오가는 자리였습니다. 참 감동적이었습니다.
내일 스님께서는 재단에서의 일정들이 있고, 저녁에는 평화리더쉽아카데미 송년모임에 참가하실 예정이십니다.
많이 춥습니다. 옷 잘 여미시고, 따뜻한 하루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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