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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30분, 대전에서 완도로 향했습니다. 가는 중간에 휴게소에서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강연 시작시간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완도 강연장에 도착했습니다.
오래전 대학교를 졸업하고 남도 여행 중에 보길도로 들어가느라 완도에 들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올 해 배타고 제주도에 갔다오느라 제주도 갈 때, 올 때 잠시 잠시 들려서 낯설지만은 않은 지역이었습니다.
확실히 남쪽으로 가니까 날이 따뜻했습니다. 푸성귀들도 아직 파릇파릇했습니다.
오늘은 수능시험이 있는 날이고, 이 곳 완도는 지난 태풍 피해가 많아 아직도 복구 중이라
강연 참가자가 많지는 않을 것 같았습니다. 전국 전복의 81%를 완도에서 생산하는데, 볼라벤 등의 태풍으로
양식장이 다 폐허가 되다시피해서 아직도 복구 중인데 어려움이 많다고 합니다.
완도군의 인구는 57,000여명이 되는데, 그 중 완도읍에는 2만명 정도가 살고 있다고 합니다.
오늘 강연이 오전인데도 200여명이 참가해서 자원봉사자들의 걱정과는 달리 적지 않은 인원이 참가해서
강연을 들었습니다.
스님께서 태풍 피해에 대한 위로 말씀을 전하고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연세드신 분들이 많았는데 질문도 잘 하시고 스님 말씀도 잘 받아들였습니다.
우울증인 딸 때문에 괴롭다며 딸을 위해 지장경을 7년째 읽고 있다는 할머니에게는 제대로 기도하는 방법을
알려 드렸습니다. 북한을 왜 도와주어야 하는가? 교회는 신도와 같이 의논해서 운영을 하는데
절은 신도가 설 자리가 없다, 권리와 의무가 더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제안하는 할아버지도 있었습니다.
다문화 가정에 대해 물어보는 분도 있었습니다. 재미있어 하셨습니다. 때론 박수를 치고 때론 다같이 웃으면서
강연을 마무리했습니다.
완도는 정토회나 평화재단 회원이 없어서 홍보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서울의 지인으로부터
스님의 ‘새로운 백년’을 선물받은 78세의 할아버지의 원력으로 거의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새로운 백년을 읽고 너무 감동을 받아 마지막 책 몇 페이지를 넘기기가 아쉬웠다는 할아버지는
이 지역 주지스님들을 찾아 다니며 협조해 줄 것을 요청했고,
마침 주지스님 한 분이 지원을 많이 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외에도 이렇게 훌륭한 스님이 오시는데
동참해 달라며 홍보를 많이 해서 주변에서 할아버지의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2년전 식도암을 앓은 할아버지는 이 번 강연을 준비하면서 더 얼굴이 건강해지고 밝아진 것 같다고
주변 사람들이 전합니다. 스님께서 감사하다며 인사를 전했습니다.
다음 강연장은 완도 옆에 있는 땅끝마을 해남이었습니다. 땅끝마을, 땅끝마을 해서 그리 크지 않은 줄 알았는데,
시가지도 크고 인구도 78,000명이나 되었습니다. 완도에서 해남으로 이동하는 길가에 차를 세워놓고,
완도에서 싸주신 도시락으로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시간 맞춰 강연장으로 들어가니 강연장 입구가 떠들썩했습니다. 넓은 마당에는 국화축제가 한창이고
건물로비에는 자원봉사자들이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한 톤 높은 목소리로 안내를 하고 있었습니다.
자원봉사자도 많고, 강연들으러 온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완도와는 완전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연세드신 분도 많고 젊은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해남은 1년전 귀농한 희망지기 중심으로, 10여명의 일반인들이 모여서 강연 3주전부터
‘희망세상만들기 해남준비모임’을 만들어서 적극적이고 다각적인 방식으로 홍보를 해 나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강연전 로비가 그렇게 밝고 신난 분위기였나 봅니다.
질문도 많았습니다. 그 중 한 분의 질문을 올려봅니다.
“스님. 저는요, 장례식장 염습관에서 일을 합니다. 일을 한 지는 오래되었습니다.
일을 하러 입관실로 들어갈 때 어떨 때는, 마지막에 가시는 모습을 제가 염한다는 생각에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들어가는데, 어떨 때는 내가 많고 많은 일 중에 이런 일을 선택해서 이런 고민을 할까 하며
집에서부터 가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가면서 기도하고, 당돌하게 부처님께 따집니다.
부처님이 저에게 이 일을 하라고 여기까지 데려왔는데 왜 오늘은 제 마음이 이렇습니까 합니다.
이럴 때는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제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요?”
“생선가게 주인이 매일 생선을 다듬잖아요? 그럴 때 어떨까? 생선가게 주인이 생선을 사와서
배도 따고 소금으로 간해서 쌓아놨다가 팔고 그러잖아요? 생선파는 할머니가 어떤 날은 팔기 싫고
어떤 날은 팔고싶고 그럴까? 생선가게 주인같은 마음으로 하면 됩니다.”
“그럴 때 제 마음이 기도가 부족해서 그런지, 여자라서 그런지...”
“생선가게 주인같은 마음으로 해라, 그냥 무심히 해라 이 말이예요. 의미도 부여하지 말고,
좋으니 나쁘니 따지지도 말고 하세요. 생선가게 할머니가 생선을 다듬는 것은 손님을 위해서죠?
자기도 시신을 염할 때 생선을 다듬듯이 상주를 위해서 필요한만큼, 무심히 하시면 됩니다.”
“그것은 일단 입관식에 들어가서 일이고, 들어가기 전에 마음이 착찹할 때가 있어요.”
“생선가게 주인도 어떨 때는 장사하러 가기가 싫을 때도 있어요. 일반 직장 다니는 사람도
직장 가기싫을 때도 있고 그래요. 공부하는 아이도 하고 싶은 날이 있고, 하기 싫은 날이 있듯이,
자기 마음에서 하기 좋고 싫은 것이지 시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 말이예요.”
“알았습니다. 잘 알겠습니다.(박수)”
해남은 강연 마치고도 로비가 떠나갈 듯 떠들썩했습니다. 책을 사는 사람도 많고, 스님 사진을 찍겠다고
밀려오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자원봉사자 단체사진을 찍을 때도 일반 사람들이 스님을 찍느라
혼잡할 정도였습니다. 스님께서 해남에서 활동하신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다음 강연장인
익산으로 향했습니다.
익산으로 가는 길에 차안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강연 전 원광대학교 총장님과
사전 간단한 차담을 나눴습니다. 총장님이 통일부 장관이 되기 전부터 스님과 인연이 있었는데
지금은 익산으로 내려와 2년째 총장직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익산 강연장은 1200석인데 사람들로 꽉 찼습니다. 원불교의 고향인만큼 객석에는 교무님들도
여러분 앉아 계셨고, 대학교내라서인지 학생들도 많았습니다.
오늘 강연장 분위기는 다른 때와 좀 달랐습니다.
스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곳이 원불교 본산이라 그런지, 철학적 질문이 많아서 그런지
원론적인 이야기들이 많았는데, 특히 공사상에 대한 스님의 설명에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공감을 했습니다.
원론적이면 지루할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고 깊이 경청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스님께서 워낙 쉬우면서
핵심적으로 설명해 주셔서 사람들이 감탄을 하며 듣는 분위기였습니다. 대학생, 청년들의 질문이 많았고,
마지막에는 취업을 많이 시켜야만 학교가 유지될 수 있는데, 취업할 생각을 안하는 학생들을 대체
어떻게 취업할 생각을 하도록 할 수 있는지 묻는다며, 오죽했으면 제가 여기서 질문을 하겠냐는 교수님의
익살스러운 질문에 다같이 한 판 웃기도 했습니다.
요즘 강연장에서 젊은 사람들에게서 가장 자주 듣는 질문 중의 하나가 꿈이 없어서,
목표가 없어서 괴롭다는 질문입니다. 오늘도 해남과 익산에서 같은 질문한 젊은이들이 있었습니다.
“22살 여대생이예요. 꿈이 없어요. 하고 싶은 것이 없어요.(울먹이며) 항상 그냥 작게는 하고 싶은 것은 많아요.
나이가 20살이 넘었잖아요? 돈은 제가 벌어서 꾸미고 싶은 것은 꾸미고 싶어요. 항상 하고 싶은 것만
조그맣게 있다 보니까 허황된 꿈이 많아요. 현실을 깨달아야 하는데 현실을 깨닫는 방법을 몰라요.”
“자, 여기 이 학생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어요?
꿈이 없다고 했다가 허황된 꿈이 많다고 했다가 왔다갔다 해요. 왔다갔다 하는 지금의 상태가 고민이예요?”
“예.”
“꿈이 없는 것은 좋아요. 하고싶은 것이 있으면 못하면 괴롭잖아요? 꿈이 없다는 것은
아무거나 해도 된다는 말이잖아요? 아무거나 해도 되는 것이 도인수준이예요. 자기는 수행도 안 하고
도인의 경지에 들었어.(사람들 웃음) 꿈이 있어야 한다, 하고 싶은 것이 있어야 한다는 세뇌교육 때문에
꿈이 없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 같애요. 학교 교육이 잘못된 거예요.
다람쥐가 산에서 팔딱 팔딱 뛰고 살면서 꿈을 가지고 살까요, 그냥 살까요?”
“그냥요.”
“자기도 그냥 살면 돼요. 네 가지만 안 하면 돼요. 때리거나 죽이는 일, 남의 물건을 빼앗거나 훔치는 일,
남을 성추행하거나 성폭행하는 일, 남을 속이거나 거짓말 하는 일, 이 4가지만 안하면 뭐든지 해도 됩니다.
혼자 살면 이 네가지도 안지켜도 돼요. 우리가 혼자 살아요, 같이 살아요?
혼자 사는것보다 같이 사는 것이 이익이기 때문에 같이 사는 거예요.
서로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같이 사는 단위를 공동체라고 해요. 가장 작은 공동체가 가족공동체고,
가장 큰 공동체가 인류공동체예요. 그러기 때문에 서로를 해치거나 손해를 끼치거나 상대를 괴롭히거나
상대를 속이는 것은 결국 나에게 되돌아오는 거예요. 화를 자초하는 것이 되는 거예요. 인과응보가 되는 거지요.
그래서 이 네 가지는 하지 말라는 거예요. 네 가지를 하게 되면 공동체가 깨집니다.
이 네가지를 빼고는 자유롭게 살면 돼요. 꿈이 있어야 된다, 목표가 있어야 된다는 것은 아무 문제가 안돼요.
특별히 잘 하는 것이 없다는 것은 아무 거나 해도 된다는 거예요. 걱정할 것 없어요.”
“만약에 사람들이 다 자기 자유만 찾으면 어떻게 해요?”
“어디까지가 내 자유냐? 상대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데까지가 내 자유예요.
내 종교의 자유는 상대의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데까지예요. 공동체를 이뤄서 같이 살아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남의 생명을 해치지 않고, 남을 손해끼치지 않고, 남을 괴롭히지 않고,
남을 속이지 않는 속에서의 자유가 나의 자유입니다.
자기는 오늘 가서 아르바이트를 구해서 자기 삶을 독립해야 돼요. 아르바이트 자리가 없으면 집에서라도
아르바이트를 해야 됩니다. 삶이 자립이 되면 그런 황당한 고민은 안 생깁니다.
남의 희생 위에 얹혀 살면 공상이 생기는 거예요. 허황된 생각이예요. 내가 내 삶을 자립한 상태에서
이 네가지 빼고 무엇을 해도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요. 내가 벌어서 뭘 하든 상관없어요.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립을 해야 합니다.”
익산 강연은 뜨거운 호응 속에서 마무리되었습니다.
희망지기님을 비롯한 자원봉사자님들, 큰 행사 준비하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내일은 경기도에서 강연이 있어 익산에서 강연을 마친 후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내일 오전은 경기도 연천, 오후에는 경기도 성남에서 강연이 있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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