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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명이 모인다고 하니, 화장실 사용이 영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러나 저의 염려와는 달리 ‘2칸이겠지’라고 생각했던 화장실은 6칸이었습니다. 줄이 길었지만, 금세 제 차례가 되었고, 손도 씻을 수 있었습니다. 철저한 준비에 놀랐습니다!
새벽에 버스를 타고 죽림정사에 도착해 수많은 봉사자를 만났습니다. 행사가 시작되고 도문 큰스님이 뙤약볕에 휠체어를 타고 나올 때 너무 감동했습니다. 그러나 내빈 소개와 축사가 이어지면서 그 감동은 온 데 간 데 사라졌습니다. 그늘도 없는 땡볕에 2시간 정도 있으니 너무 덥고 짜증이 났습니다. 조장 소임이라 자리 이동하는 도반을 챙겨야 하니, 참석자들에게 너무 배려가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급기야 오만가지 분별심이 나고 화가 나 혼자 나무 그늘 쪽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보니 의자에 앉아 있는 분들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대부분 자리에서 이탈하지 않고 2~3시간을 감격한 상태로 끝까지 참석했습니다. 저의 분별심이 부끄러웠습니다. 분명 감동이 90%, 더위의 불편함이 10%였지만, 더위를 참지 못해 이 귀한 행사의 의미를 잠시 망각하고 욱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땡볕에 방긋 웃으며 친절하게 안내하는 봉사자들, 질서 정연한 행렬들, 쓰레기 없는 뒷마무리는 저의 예상을 뛰어넘는 정토회 행사였습니다. 봉사자들과 참석자들 모두 수행자이자 보살이었습니다. 온라인으로 시작한 정토 생활에서 직접 경험한 6.13 만인대법회는 제게 큰 감동이었고, 저의 분별심을 제대로 보았습니다.
어떤 행사보다 뜻깊은 행사임에도 참여하는데 갈등이 많았습니다. 그 생생한 현장에서 좋지 않았던 순간은 없었습니다. 물론 뜨거운 햇빛과 주룩주룩 흐르는 땀방울에 옷이 젖었지만, 그 불편함이 무색할 만큼 모든 프로그램이 큰 울림이었습니다. 그중 울컥했던 건 정말 단순하고 많이 했던 박수! 하나 짝 둘 짝짝 각자의 자리에서 하는 그 작은 행동, 만인의 박수가 만인의 마음이 한마음이 되는 만인대법회 그 자체였습니다.
대법회 참석을 알리는 모둠장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모둠장은 받을 때까지 전화했습니다. 모둠장 체면을 생각해서 행사에 참석했고, 강제로 끌려왔지만 새롭게 발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회원이 귀찮게 느끼더라도 받을 때까지 전화하는 것이 전법의 한 방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 중 하나는 저처럼 수행의 돌파구를 맞이할 계기가 될 것이니 의미 있게 느낍니다. 처음에는 ‘괜히 왔나’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안 왔으면 어쩔 뻔했나 하는 마음입니다. 함께해서 기쁩니다.
전주 3호차 기수를 맡았습니다. 버스 번호가 표기된 깃발을 들고 우리 버스에 탄 도반들을 대법회장까지 안내하는 역할입니다. '평소 길치고 내 물건도 챙기지 못하는데, 40명 넘는 사람들을 끝까지 챙길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습니다. '내가 깃발을 들었으니 내가 나를 빠트리는 일은 없겠지? 내가 깃발 들고 총총히 다른 버스에 타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나를 따라 우리 3호차 사람들이 우르르 6호차에 탄다면?' 물론 재밌긴 하겠지만, 그런 장면을 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행사장에 도착하니 걱정이 싹 사라졌습니다. 각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을 챙기는 외부 안내팀 봉사자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여기서 다른 버스 참가자들 올 때까지 잠시 기다리세요. 이 길로 가다가 팻말을 든 사람을 만나면 멈추세요.” 등등 실수할 여지 없게 아주 여러 번, 모든 길을 봉사자들이 안내했기 때문입니다. 대법회장에서는 많은 모자이크 붓다가 목격되었습니다. 특히 외부 안내팀 봉사자들은 제게 특별히 길을 안내해 준 거리의 모자이크 조각들이었습니다.
내부안내가 무얼 하는지도 모르는데 회의를 들어오라 합니다. 무슨 회의 장면에 제가 끼워져 있었습니다.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회의에 두세 차례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워크숍 1박 2일을 죽림정사에서 했는데, 온라인으로 본 대표님을 비롯하여 유명한 분들이 다 있었습니다. 연예인을 본 듯 감개무량했습니다. 아~ 총력전이구나~!
한편으로 물빛공원에 줄자로 의자가 몇 개 들어갈지 재면서 '이게 어떻게 마무리가 될지?' 아득했습니다. 매번 그림이 달라지고 결정된 것이 번복되면서 '어떻게 일이 치러질지?' 불안은 고조되었습니다.
D-day 5일 전 머리를 맞대어 시뮬레이션하고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었습니다. 회의를 거듭할수록 점점 단순해지고 명확해져 정토행자의 일 처리 방식에 감탄했습니다. 전날에도 새로운 의견을 내고 리허설하고 의자 수와 위치가 이상하다고 세고 또 세고 오르락내리락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드디어 6.13 만인대법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모두 긴장하며 입장, 퇴장 동선을 반복했습니다.
서로 눈이 마주칠 때마다 싱글벙글 반가워하고 아이처럼 상기되고 즐거웠습니다. 역사의 현장에 정토회원으로 있는 것으로도 가슴 벅찬 하루였습니다. 큰 그림을 그리며 이끌어준 총괄, 부총괄, 팀장, 담당자를 따라 조금이나마 잘 쓰여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6,000석 자리 구역을 만들기 위해 물빛공원에 처음 방문했을 때, 암담 그 자체였습니다. 어떻게 이곳에 만 명이 더군다나 6,000석 자리가... 그런데 줄자로 실측하고 계산하니 만 석은 거뜬히 가능했고, 깔개보다 의자가 자리를 덜 차지했습니다. 날이 갈수록 의자가 더 많이 깔렸으면 했지만, 8,000석으로 확정되었습니다. '2~3시간 동안 깔개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불편할까?'라는 미안한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드디어 당일 아침, 버스가 도착하여 용성교로 맑은 미소로 회원들이 들어오니 가슴이 뭉클하고 그동안의 노고가 사라지는듯했습니다.
입장과 퇴장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퇴장 시 손을 흔들며 "더운 날씨에 수고 많으셨다"라고 인사하니 "너무 수고 많으셨다"라는 화답이 돌아왔습니다. 아침의 그 감동보다 더 진한 감동으로 눈시울이 울컥했습니다. '역시 우리는 정토행자구나!' 무사히 6.13 만인대법회를 마친 이 원이 한반도 평화와 국민통합의 발판이 되기를 발원했습니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이 느끼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만 명이나 모인다니 부담스럽고 발원문도 와닿지 않았습니다. 독립운동가 용성 스님의 생애를 자세히 살펴보고 모둠 활동으로 역사 기행도 하면서 점점 대법회의 의의를 깊이 이해했습니다. 퍼포먼스를 맡아 도반들과 함께 동작을 연습하고 ‘칼 군무’가 될 때까지 맞춰나가는 과정도 기분 좋았습니다. 대법회 당일, 땡볕에 앉아 대기하는데 달걀부침처럼 익는 것 같았고, 퍼포먼스도 어쩐지 힘없이 끝나 버린 것 같았지만, 오히려 연습하는 과정이 에너지 넘치고 즐거웠습니다. 이렇게 각자 맡은 소임을 다 해 큰 탈 없이 치른 것 자체가 모자이크 붓다였습니다. 그리고 ‘힘을 모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얻는 계기였습니다. (해가 너무 뜨거워 해탈 직전까지 갔습니다!!)
저는 이번 행사에서 외부 안내를 했습니다. 행사에 참여할 수 없었지만, 깊은 감동과 보람이 있었습니다. 외부 안내 구역은 행사 후 퇴장할 때가 중요했습니다. 퇴장할 때 참석자들이 죽림정사에서 용성 조사를 참배하도록 동선이 짜여 있었습니다. 행사를 끝내고 나오는 사람들은 지친 기색도 없이 모두 밝았습니다. 뙤약볕 아래에서 통행 정리하는 저에게 많은 사람이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저도 즐거운 마음으로 화답했습니다. 그러나 만인은 참으로 많았습니다! 목이 마르고 입술이 탔습니다. 하지만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져 난간 사이에 숨겨둔 물을 마실 새도 없었습니다.
잠시 행렬이 멈추었을 때, 참가자들에게 "오늘 즐거웠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한 회원이 대뜸 "저는 오늘 기절했다가 깨어났어요."라고 했습니다. 내가 깜짝 놀라 ‘혹시 강한 햇볕 아래에서 너무 힘드셨나요?’라고 말하려는 순간, "행사가 기절할 만큼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그래서 기절할 뻔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새벽도 아닌 한밤중인 2시 40분에 일어나 2시간 30분 거리의 장수로 운전해서 떠난 저를 걱정하면서 기다리던 아내는 내가 집으로 돌아오자 "정말 수고가 많았다."라며 반겨 주었습니다. 아내와 마주 앉아 오늘 하루를 잘 보냈다며 늦은 저녁 식사를 하는데 텔레그램 외부 안내팀 방에 메시지가 떴습니다.
"여러분! 그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소임은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귀가하면 우선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 후 배우자에게 ‘여보! 오늘 당신이 도와준 덕분에 죽림정사에 가서 만인 대법회를 무사히 성대하게 치룰 수 있었소. 이 모두가 당신이 도와준 덕분이오.’라는 감사 전하기 소임이 남았습니다.”라는 만인대법회 준비위원장인 유수 스님의 전언이었습니다.
이번 행사에 경찰병력 54명이 투입되었지만, 그들의 행적은 보이지 않았고 정토회 봉사자들의 힘으로 교통 통제가 잘 이루어져 경찰도 참 감사한 것 같았습니다. 이런 큰 행사가 한 번씩 있느냐는 저의 질문에 경찰 간부는 선뜻 장수가 생긴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경찰들이 돌아가는 길에 오늘 출동해서 행사를 도와준 것에 감사의 마음으로 깍듯이 인사하니 차 창문을 내리고 손을 흔들며 너무 수고들 했다며 인사해 주었습니다. 그들도 감동이 가득한, 어쩌면 환희심조차 가득한 모습으로 보였습니다.
갑자기 시작된 허리 통증, 다행히 진통제 주사와 약을 처방받아 출발할 수 있었습니다. 몸 상태를 염려하며 편안한 자리를 내어주는 도반들 덕분에 시작부터 감동이었습니다. 볼 수 없는 행사장 풍경이 아쉽기는 했지만, 우리는 한마음 한뜻으로 모였음을 공감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뙤약볕에 빨갛게 익은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며 나보다는 상대를 염려하며 응원하고 감사하는 모습이 감동이었습니다. '이렇게 한마음 한마음이 모여 만인이 되고 천만인이 되고 온 나라 온 인류가 될 수 있다'라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 자리에 제가 있어 참 좋았습니다.
동선 안내 봉사를 하면서 손자의 부축을 받고 만인대법회에 참석한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올 때도 갈 때도 손자의 부축을 받으며 지팡이를 짚고 밝은 얼굴로 가는 모습이 뭉클했습니다. 평화 재단 버스가 도착했고, 참가자들은 꼭지님의 안내에 따라 지정석으로 이동했습니다. 그중 무릎 수술로 다리가 불편해 늦는 도반을 기다리는 참가자를 보았습니다. 뒤처진 그분들을 안내하려고 하니 통일 의병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자리로 안내해 드리겠다"라고 하니, "천천히 찾아가면 되니 괜찮다"라고 했습니다. 나이 들어 몸은 불편해도 씩씩한 주체적인 통일 의병이었습니다.
나이가 많고 몸이 불편해도 법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6.13 만인대법회가 끝나고 같이 활동했던 나이 많은 도반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항암 투병 중인데 다녀갔다고 합니다. 나이도, 아픈 몸도, 뜨거움도, 먼 거리도, 간절함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님을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모두의 간절함이 모여 한반도의 평화와 국민통합이 꼭 이루어질 것 같습니다.
6월 13일 새벽, 핸드폰 벨이 울렸습니다. 비몽사몽 중 알람이 울린 것으로 착각했습니다. 조장의 전화였습니다. 깜짝 놀라 시간을 보니 새벽 4시 34분! 예정된 버스 출발 시간을 넘긴 시간이었습니다. “어떡해! 어떡해!!”를 외치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데 침착하고 여법한 조장은 “씻지도 말고 옷만 입고 상주보건소로 오세요” 했습니다. 씻지 않고 옷만 입고 문경에서 상주로 빛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내달린 결과, 상주보건소에서 합류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통일의병 자격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스스로 통일의병이라 생각합니다. ‘의병’, 두 글자를 떠올리면 늘 동학농민혁명 ‘우금치 전투’ 시작을 알리는 큰 북의 진동이 제 심장을 울립니다. 결연함과 단호함이 쿵쿵쿵!! 온몸의 세포를 떨게 합니다. 백성이 주인 되는 자주 독립국을 간절히 바랐던 동학농민혁명군의 마음으로, 당당하게 6.13 만인대법회에 함께 했습니다.
‘1만 인이 한자리에 함께 한다.’라는 사실이 든든하고 힘이 되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도문스님 법문 전 잠깐 눈 감고 입정할 때였습니다. 지저귀는 새소리만 들리던 그때, 물빛공원의 1만인 모두가 하나가 된 듯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버스 안에서 발원문을 낭독했는데, ‘우리나라의 역사와 민족정신을 계승하려면 지금 평화가 매우 절실하다’라는 생각에 마음이 절절했습니다. 날은 무척 더웠지만, 뙤약볕에 앉아 있는 퍼포먼스 팀과 봉사자들을 보며 저는 감사한 마음으로 알아차렸습니다.
햇볕에 목 뒷부분이 따끔따끔 아파도 지나친 더위에 저절로 눈이 감겼습니다. 퍼포먼스 팀의 절도 있는 동작을 보며 기운을 차렸고, 행진 시간에 김제동 님이 “아프가니스탄, 팔레스타인, 우크라이나, 우리나라까지 전쟁이 멈추길 바란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울컥하며 간절히 발원했습니다. 대법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가족들이 “무척 덥고 힘들었을 텐데, 얼굴이 밝아 보인다.”라며 신기해했습니다. 바로 불법의 힘이고, 모두의 힘인가 봅니다. 함께해서 영광이고 감사했습니다.
전쟁 중에도 “크리스마스나 올림픽 같은 행사가 있을 때, 잠시 휴전한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멈출 수 있는 전쟁이라면 정말 영원히 멈출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모두가 두려움 없는 행복한 하루를 살 수 있지 않을까?’라고 희망해 봅니다. 이번 대법회에 참여하여 외면하던 전쟁과, 평화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어 감사합니다.
역사적인 순간에 참여할 수 있어 정말 감사하고, 애국가를 부를 때 뭉클하고 눈물이 나왔습니다. 햇볕에 타서 얼굴이 붉게 익은 봉사자들이 밝은 미소로 “수고하셨다”라고 인사할 때 무척 고마웠습니다. 이런 봉사자들 덕분에 오늘 행사가 잘 진행된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동생이 와 만나러 가고 싶었지만, 참았습니다. 오늘 심은 평화의 씨앗이 세계로 널리 널리 퍼져나가기를~~
하차가 완료되고 외부 안내팀이 한숨 고르는 즈음, 외부 안내 상황실을 찾아 총괄님께 물었습니다.
리포터 : 시나리오대로 잘 진행되었나요?
총괄 : 외부 안내가 제일 잘 진행된 것 같아요. 우리 봉사자들이 워낙 꼼꼼히 준비해 주어서 편하게 잘했습니다.
리포터 : 예상대로 안 된 부분이 있나요?
총괄 : 저 버스가 왜 저기서 오지? 그럼 한 1초 뇌 정지!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은 버스가 몇 대 있긴 했지만, 우리 정토회원들은 정말 놀라워요. 이 더위에 동요하지도 않고 정말 차분하게 질서 정연한 모습을 보여줬어요. 또 여기 상황실이 무대 현장이랑 좀 멀어서 그런지 몰라도 어쩜 이렇게 숨소리조차 안 들릴 정도로 조용한지요.
리포터 : 제가 방금 현장에 있다 왔는데, 여기 만 명이 모인 게 맞나 의구심이 들 정도로 차분해요.
참가자들은 봉사자들의 길고 긴 노고와 준비에 감탄하고, 봉사자들은 한 치 동요 없이 질서 정연하게 행사에 참여하는 참가자들에게 놀랐습니다. 같은 정토행자로 서로에게 놀라는 정토회! 이런 우리라면 대한 정국 800년의 역사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평화와 화합이 멀지 않음을 느낍니다.
취재_정토행자의 하루 희망리포터 일동
사진_613대법회 행사기록파트(김광섭, 박세환, 이승준, 이영아)
편집_정토행자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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