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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의 종속국이 되지 말고, 주인국이 되어라.’
물빛 공원으로 들어섰을 때, 깃발 하나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85년 전 행동하는 수행자, 용성스님의 유훈이 걸린 깃발이었습니다. 이 깃발에 심장이 ‘쿵’ 했습니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지만, 더위가 달아나고 온몸에 전율이 일었습니다.
85년이 흐른 지금, 이미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대한민국이 “과연 주인국이 되었는가? 주인국이 되었는가? 주인국이 되었는가?” 용성스님의 목소리가 시대를 뛰어넘어 들려왔습니다. 이 나라의 현실을 떠올리니, 용성스님의 이 유훈은 우리에게 하는 준엄한 요구 같기도 하고, 절박한 부탁 같기도 했습니다.
‘용성스님, 강대국의 종속국이 아닌 주인국의 국민으로 살기 위해 오늘 만인대법회에 왔습니다.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일제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목숨을 걸었듯, 우리도 한반도 평화를 지키고자 이 자리에 왔습니다.’
벅찬 감정이 아주 짧게 올라왔습니다. 물론 그 감정은 뙤약볕 아래에서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순간순간 변하는 제 마음을 보고, 부처님의 가르침인 ‘제행무상’을 다시 깨닫습니다.
‘둥둥둥’
북소리를 시작으로 사회자 김병조 님은 행사 시작을 알렸습니다. 만 명이 모였지만, 단 한 명만 존재하듯 행사장은 차분했습니다.
이런 행사를 많이 다녀본 사람은 압니다. 대체로 무대에서 하는 말은 행사장에 앉아있는 사람과 따로 논다는 것을요. 그러나 정토회 행사라 다른 것인지, 만인대법회의 중요성 때문인지 만 명은 하나가 되어 행사에 집중했습니다.
제가 앉은 자리 바로 앞은 그늘이었습니다. 그늘에 앉은 도반들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아, 저들은 전생에 나라를 구하고, 나는 나라를 팔아먹었나?’ 그늘에 앉은 도반들을 부러워하다 못해 저는 취재를 핑계로 슬쩍 빠지려고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너무 놀라 바로 주저앉았습니다. 도반들이 그 강한 태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조용히 행사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반들이 마주한 태양과 제가 마주한 태양이 달랐을까요? 순간 부끄러웠습니다.
“한반도의 평화, 국민 통합, 국가의 지속적 발전을 기원하는 만인대법회를 마련했습니다.”
법륜스님은 인사말을 시작으로 만인대법회에 참여한 종교계, 정치인, 시민 사회 원로분을 소개하고, 환영사를 들었습니다.
만인대법회의 핵심 중 하나가 도문 큰스님의 법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법문 내용도 궁금하지만, 도문 큰스님이 과연 법문을 10분 안에 마칠지 제겐 큰 관심이었습니다.
“모든 악업을 짓지 말아라.
많은 선을 받들어 행하라.
저절로 그 마음을 청정히 하여라.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니라.”
역시 한다면 하는 도문 큰스님입니다. 10분 안에 끝난 스님 법문은 그날의 태양만큼이나 강렬했고, 군더더기가 없었습니다.
도문 큰스님은 만인대법회에 모인 우리에게 ‘나만을 위해 살지 말고 나와 너 모두를 위해 살라’는 뜻으로 ‘혜등명 여래불’이라는 불명호를 만인에게 주었습니다.
2024년 전쟁 위험에 처한 한반도 평화를 위해 ‘만인평화선언’과, ‘평화와 통합을 향한 만인의 다짐’도 했습니다.
3.1 독립운동의 비폭력 정신을 계승하고, 독립운동가 백용성 조사의 유훈을 계승해 ‘대한정국 미래로 800년’을 향하며, 한반도 평화를 위해 온 국민의 마음을 모으자고 결의했습니다.
‘만인의 다짐’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로 ‘사슬 끊기’와 ‘통합의 촛불’ 점화식을 33명의 사회 인사들이 함께했습니다. 분단의 사슬, 대립의 사슬, 미움의 사슬을 끊고 '화합과 통합'으로 나아가기를 모두가 염원했습니다.
어느덧 1부가 끝나고, 재치있는 김제동 님의 울림 있는 사회로 2부를 시작했습니다.
대한민국의 평화는 여러분이 만듭니다.
대한민국의 평화는 우리가 만듭니다.
평화는 우리에서 시작하고, 우리가 열어갑니다.
우리가 주인이고, 우리가 이 나라를 강대국의 종속국이 아닌 주인국으로 만듭니다.
그렇게 만 명이 평화의 홀씨가 되어 널리 널리 날아갈 것을 다짐했습니다.
끝으로 평화 행진을 위해 40개의 만장기가 무대에 섰습니다.
‘대한정국 주인 되어 세계평화 선도하라.’깃발을 선두로 해서 사회 인사들이 평화 행진에 동참했습니다.
행사는 끝내기로 한 시간에 정확히 마쳤습니다. 행사는 끝났어도 눈치 없는 태양은 여전히 혼자 행사 중이었습니다.
도반들은 나무 그늘을 찾아 도시락을 까먹었습니다. 서로 싸 온 음식을 나눠 먹고 쉬는 시간을 가진 후, 퇴장 순서대로 조용히 행사장을 빠져나갔습니다. 역시 소란스럽지 않았습니다.
참고로 태양은 끝까지 우리를 소란스럽게 놔두지 않았고, 입을 꾹 다물게 했습니다.
만 명이 움직이다 보니 죽림정사까지 걸어가는 시간도 꽤 오래 걸렸습니다. 온 힘을 쥐어 짜내면서 마지막까지 자신과 싸우는 느낌이었습니다. 정말 숨이 턱턱 막혔고, 태양이 머리를 눌러 아팠습니다. 행사에서 받은 감동이 사실 무너지려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땀을 뻘뻘 흘리며 안내하는 봉사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봉사 조끼까지 입어 더 더워 보였습니다. 그렇게 땀을 흘리면서도 우리에게 “수고하셨습니다. 편안히 돌아가세요.”라고 웃는 봉사자였습니다.
우리는 행사라도 봤지만, 그 봉사자들은 행사도 못 보고 뙤약볕에 서 있었는데 즐거운 얼굴이었습니다. ‘저것이 바로 주인된 마음인가?’ ‘그렇구나, 도문 큰 스님만 법문한 것이 아니었구나. 지금 저 봉사자가 몸으로 법문하고 있구나.’
그 순간 지쳐서 쪼그라들고 짜증을 준비하던 마음이 조금씩 펴졌습니다. 그제야 저도 봉사자들에게 “고맙습니다.”라는 진심을 꺼냈습니다.
정토회는 이상한 조직입니다. 처음도 끝도 다 ‘나누기’입니다. 나눌 것이 뭐가 그리도 많은지 돌아가는 버스에서까지 말을 시킵니다. 그런데 말이죠? 도반들의 나누기도 기막힌 법문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날 처음도 끝도 큰스님에게서, 봉사자에게서, 도반에게서 법문을 들었습니다.
“강대국의 종속국이 되지 말고, 주인국이 되어라.”
한반도에 전쟁 기운이 감돕니다. 세상에 착한 전쟁은 없습니다. 정의로운 전쟁도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갈림길에 섰습니다. ‘평화로 갈 것인가, 갈등의 대치국면으로 치달을 것인가.’ 이 물고를 어디로 트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의 운명이 달렸음을 만인대법회에서 느꼈습니다.
도문 큰스님에게 받은 ‘혜등명 여래불’이 된 만인이 발원합니다.
‘세계평화가 오기를 발원합니다.’
‘한반도에 평화가 오기를 발원합니다.’
‘평화를 향해 행동하는 양심이 되기를 간절히 발원합니다.’
다음 주 6월 25일 화요일에 범상치 않은 참가자들의 소감이 이어집니다.
글_권영숙 (서울제주지부 서초지회)
사진_613대법회 행사기록파트(김광섭, 박세환, 이승준, 이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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