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깨달음의 장에서 받았던 정성스러운 공양을 보답하려고 바라지장에 참가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소감문을 소개할 때마다 느낍니다. 한 번으로는 부족해, 두 번 세 번 다녀오시는 분들도 많고요. 때론 바라지장 소감문을 읽는 것은, 너무 뻔한 레퍼토리의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결말을 알 것 같은 드라마일수록 금세 몰입해서 나도 모르게 울고불고하게 된다는 거? 오늘 소개할 드라마의 주인공은 조향숙 님입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에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정토회와 법륜 스님을 만났습니다. ‘깨달음의 장’과 ‘나눔의 장’을 연이어 다녀오면서 살아갈 힘을 얻었습니다. 그때마다 정성껏 음식을 차려주는 바라지분들이 고마워서 언젠가 나도 바라지로 봉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바쁜 일상 탓에 잊고 지내다가, 인생의 큰 파도가 다시 밀려와서야 ‘바라지장’에 참가 신청을 했습니다.
나눔의 장에서부터 잡고 있던 화두를 바라지장 나누기 시간에 조금씩 내놓았습니다. 많이 가벼워졌지만 제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어떤 결론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유치원 다닐 때 이혼하고 혼자서 두 아들을 키우며, 집에서 ‘아빠’라는 단어는 금기어가 됐습니다. 전남편에 대한 미움으로, 한창 아빠의 사랑을 받고 보호받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 줄 몰랐습니다. 지금은 아이들을 위해 전남편과 협조하면서 친구처럼 지냅니다.
평소 요리를 잘 못하고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는 성격도 아니어서 바라지장에 참가 신청을 하고도 갈지 말지 망설였습니다. 그렇다고 취소할 용기도 없었습니다.
8월 중순 문경수련원에 도착하니 폭염에도 불구하고 전국 각지에서 열 분이 넘게 와 있었습니다. 공양간에는 밥솥, 칼, 도마, 화구 할 것 없이 엄청난 크기를 자랑했는데, ‘요리도 못하는 내가 여기서 뭘 할 수 있을까?’, ‘잘못 찾아온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괜스레 주눅이 들었습니다.
첫째 날은 혹시라도 실수해서 피해를 주면 어쩌나 걱정스러웠는데, 팀장님이 각자에게 맞는 소임을 주고 방법도 자세히 알려줘서 큰 어려움 없이 해낼 수 있었습니다.
제 소임은 과일 담당이었습니다. 집에서는 대충 깎아서 먹다가 남으면 버리는 것이 예사였는데 여기서는 달랐습니다. 사과 한 쪽이라도 낭비되지 않도록 수련생 수에 맞춰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계산해서 준비했습니다. 희석한 식촛물에 과일을 깨끗이 씻어서 균등하게 나눠 잘라 접시에 담았습니다. 길가에서 따온 들꽃 한 송이를 과일 위에 조심스레 얹어서, 눈으로 보아도 맛과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과일 한 접시를 올렸습니다.
둘째 날 저녁, 다 함께 둘러앉아 나누기를 했습니다. 저마다의 아픈 상처를 꺼내놓으니,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되어 가까워지는 듯했습니다. 저도 사회에서는 흉이나 낙인이 될까 두려워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하던 마음을 조심스레 끄집어냈습니다. 제 나누기에 다른 바라지 분들이 진심으로 공감해 주고 따뜻한 마음을 나누어주었습니다.
한 방에서 여러 명이 단체로 잠을 자다 보니 어색하고 불편해서 밤마다 뒤척였습니다. 새벽 4시에 예불로 시작하는 공양간 소임은, 연일 계속되는 폭염으로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곤 했습니다. 그렇게 4박 5일이 지나니 몸은 피곤한데 이상하리만큼 정신이 또렷해지고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워져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한 달쯤 지나자, 부정적인 옛 마음으로 돌아가는 게 느껴졌습니다. 9월 중순에 다시 바라지장에 참가 신청을 하고 문경으로 향했습니다. 땀 흘려 집중해서 일하는 속에 복잡한 문제들은 단순해졌고, 다른 바라지들의 나누기를 들으면서 내 문제를 객관적으로 보는 눈도 생겼습니다. 법사님, 법우님, 팀장님, 그리고 바라지 도반들이 은근슬쩍 건네는 말씀은 생각할수록 깊은 울림이 되어 일상으로 복귀한 지금도 감사함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 법우가 “강렬한 태양 빛으로 비추면 빛을 보는 사람의 눈이 멀고 타들어 가지만, 은은한 달빛으로 비추면 오래 볼 수 있고 항상 뒤에서 비춰줄 수 있어 좋다”라고 한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저도 아들들에게서 한 발짝 떨어져 은은한 달빛이 되어 비춰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전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큰아들에게 가서 밥해주고 챙겨주던 것들이 큰아들을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은 제 집착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바라지장에서 다른 분들의 나누기를 들으면서 저절로 깨달았습니다. 법륜 스님이 스무 살이 넘은 자녀는 그냥 지켜보라고 하셨는데, 바라지장을 두 번 다녀오고 나서야 비로소 아들에게 집착하는 내 모습이 객관적으로 보였습니다.
한 끼의 식사도 대충 대충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서 올리는 법을 공양간에서 배웠습니다. 밥 담당은 밥을, 김치 담당은 김치를, 국 담당은 국을, 반찬 담당은 반찬을, 빠듯한 시간 속에 정신없이 서두르면서도 모두 맡은 소임에 정성을 다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한 끼를 차리더라도 아침 일찍 일어나 정성을 다하고, 과일도 배운 대로 씻고 잘라서 예쁘게 담아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듯 식구들에게 올렸습니다. 날이 갈수록 아들과의 관계가 점점 좋아지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걸림이 줄었습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좋겠지만, 또다시 불안의 파도가 밀려오더라도 이제는 당당한 수행자로서 긍정적 관점으로 돌리겠습니다.
아들들은 자기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잘살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엄마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 주니 고맙습니다. 부처님 법을 만나서 수행자의 삶을 살기까지 귀한 인연을 맺어준 아들이 바로 부처님입니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은은하게 제 길을 열어가면 그 빛이 아들들에게 닿아 환하게 비추리라 생각합니다.
글_조향숙( 강원경기동부지부)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전체댓글 13
전체 댓글 보기정토행자의 하루 ‘월간정토’의 다른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