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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용 님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죽어도 좋을 만큼 귀한 진리'에 대한 갈망이 있었고 그것을 찾아 끊임없이 헤맸습니다. 그러다 정토회를 만나 불교대학 수업을 듣게 되었고, 정토회와의 인연을 이어나가기 위해 안산 다문화센터 봉사를 시작하여, 지금은 정토사회문화회관 보리수 봉사까지 하고 계십니다. 보리수 봉사가 가성비 없는 무모한 도전이라고 느껴질 때도 있지만, 즐거움이 있는 놀이터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계신다는 말씀에서 참 고맙고 든든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조문도 석사가의(朝聞道 夕死可矣),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는 공자님 말씀이 있었습니다. 당장 죽어도 좋을 만큼 귀한 진리가 무엇인지 의문이 남았고 강하게 알고 싶어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양한 이야기로 잔잔한 여운과 가르침을 주는 법정 스님의 책 『무소유』를 읽으며, 불교는 교리를 내세우기보다 상대방을 포용하는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낀 경험도 있습니다.
대학을 다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불교에 관한 관심과 궁금증이 더해졌고, 카세트테이프에 담긴 법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불교에 대해 쉽고 편하게 찾아볼 수 있는 매체와 콘텐츠가 많지만, 저의 청년 시절에는 대중이 불법을 배울 기회가 흔치 않았습니다. 산사에서 들려오는 맑은 독경 소리가 마음에 다가왔지만, 불교 경전은 혼자 읽고 들어서는 어떤 뜻인지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2019년 거리에서 정토불교대학 포스터를 보았고, 다니던 회사에서 가까운 용산 법당을 찾아가면서 정토회와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용산 법당에서 매주 불교대학 수업을 듣고, 문경수련원에서 1박 2일 실천 활동을 하면서 300배 정진을 처음 했습니다. 다리도 아프고, 이걸 왜 하는지 분별심이 올라왔지만, 일단 경험으로 생각하고 끝마쳤습니다. 2020년 경전대학 수업 중 코로나로 인해 정토회 프로그램이 온라인과 으뜸절 위주로 변경되었습니다. 온라인 수업에 한계를 느끼고, 회사 일도 바빠 간신히 출석일만 채우고 졸업한 후 천일결사 기도는 한 달도 되지 않아 중단했습니다.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과 내 발로 정토회를 찾았던 인연의 끈을 놓고 싶지 않은 마음이 동시에 일어나면서 하나의 문제를 만들었습니다. 스님의 법문 중 ‘꽃이 예쁜 것인가, 내가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똥이 더러운 것인가, 내가 더럽다고 생각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떠오르면서 모든 문제의 중심이 내 마음에 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정토회와의 소중한 인연을 이어가고 싶어 홈페이지를 둘러보던 중 안산 다문화센터에서 봉사자를 모집하기에 신청했습니다. 기증 물품 정리와 청소를 하면서 센터를 방문하는 이주노동자 가족의 애환을 알게 되었고, 그렇게 시작된 주말 봉사는 서울 정토사회문화회관의 봉사로 이어졌습니다.
정토사회문화회관은 개관하던 날부터 많은 봉사자가 돌아가면서 건물 곳곳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지상 15층, 지하 5층인 건물을 관리하기에는 인원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월광 법사님의 권유가 있어서 방재실 근무 봉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2021년에는 보리수팀이 꾸려지기 전이라 근무 인원이 적어 CCTV, 전기, 소방 시설 등을 관리하는 이름도 생소한 방재실에 주로 저 혼자 있었습니다. 가장 예민하고 긴장되는 소임은 화재 수신반 근무였습니다. 수신반에서 경종이라도 갑자기 울리면 가슴이 쿵쾅거리고 무엇부터 해야 할지 당황스러워 요놈만 조용히 있어 주길 기도하며 지켜보았습니다.
지금은 보리수팀이 꾸려져 많은 봉사자가 함께하며 사전 및 수시 교육을 실시해 부담감은 많이 줄었습니다. 하지만 봉사자들 대부분이 가정과 직장 생활이 있고 방재실 업무가 낯선 비전문가들이어서 이런 시스템이 가성비 없는 도전이라는 생각에 전문 업체와 계약하여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현실적이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도 혼자가 아니라, 수행으로 모인 도반들이 함께 이 일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분명 건물 관리 외에 무언가 있다는 것이고, 그 무엇을 알아가는 것이 보리수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미연의 사고를 방지하고, 여럿이 쓰는 건물을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분야의 다양한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잘 맞아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이 제자리를 지켜주고 각자의 소임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모자이크 붓다를 실감했습니다. 지난 1차 만일결사 회향식에서 우리는 잠시 건물 관리인에서 벗어나 보리수 합창단으로 무대에 올랐습니다. 저는 노래는 잘하지 못하지만, 축구선수 복장을 하고 씩씩하게 참석했는데, 그것만으로도 스스로 뿌듯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잘하지 못해도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나면 수행과 일 사이에서 불쑥불쑥 올라오는 갈등을 보람과 자긍심이 쓱 밀어내는 것 같습니다.
보리수에서 밀어낸 갈등은 고스란히 집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피곤하다는 말 한마디에 아내는 “절에 그만 좀 가고 쉬면서 집안일도 신경 써달라”며 기다렸다는 듯 불만을 쏟아냅니다. 걱정인지 잔소리인지 모를 소리를 듣다가 다툼으로 말려들지 않기 위해 어딘가에 있는 내공을 끌어내어 욱하는 마음을 잠재우려 안간힘을 내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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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서 그냥 하다 보면 집에서도 포기한다”라는 법사님 말씀을 되뇌면서 수행적 관점으로 바라보려고 하지만 마주하는 현실은 위태위태합니다. ‘3년이나 했으니 회향해도 되지 않을까, 이렇게 사는 게 주인 된 삶이라 할 수 있을까?’ 수행보다는 고생이라는 생각에 부딪힐 때마다 흔들흔들 딜레마에 빠지곤 합니다. 보리수에서 외치는 일과 수행의 통일은 참 어려운 말로 다가왔습니다. 일을 수행처럼 참으면서 하라는 것인지, 힘든 일을 하면 수행이 된다는 것인지 도통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정토회와 인연에서 보리수 봉사까지,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참거나 힘든 일을 하라는 것은 내가 가져다 붙인 말일 뿐, 일과 수행은 다른 길이 아니었습니다. 이해와 갈등이 반복되는 일상 자체가 수행의 길임을 어렴풋이 깨달으면서 아내가 스승임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보리수에 처음 들어왔을 때 유수 스님이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연을 모두 들으시고는 명심문을 주셨습니다. 회사 일에 지쳐 있던 저에게 ‘편안하게 합니다’라는 명심문을 주시며 ‘나도 이 일 저 일하느라 힘듭니다’ 하시는데 웃음이 나면서 한편으로는 위안이 되었습니다. 복잡한 생각을 내려놓고 가르침을 따라가면서 그냥 해보는 연습을 반복했습니다.
처음 소임을 맡았을 때는 회사에서 하듯이 일에만 몰두했습니다. 아직도 일터에서 노동하듯 하는 것이 익숙하지만, 즐거움이 있는 놀이터로 만드는 주인의 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나는 이제 편안한 그늘을 드리우는 한 그루 보리수입니다.
글_송승용(보리수)
편집_월간정토 편집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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