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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스님의 백일법문 31일째 날입니다. 하루 종일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종교인 모임과 수행법회, 평화재단 행사가 열렸습니다.
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겨우내 앙상했던 가지마다 진달래가 꽃망울을 틔울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목련은 보드라운 솜털을 두른 꽃망울을 꼭 움켜쥔 채, 따스한 봄 햇살을 가득 머금고 있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오전 7시에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목사님, 신부님, 주교님, 교령님, 교무님이 차례대로 지하 1층 식당에 도착했습니다.
평화재단 실무자들이 정성껏 준비한 아침 밥상으로 식사를 한 후 평화재단 회의실로 자리를 옮겨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종교인 모임의 좌장인 박남수 교령님이 여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오늘은 기분 좋은 소식을 전하면서 모임을 시작하고 싶었는데, 헌법재판소 판결이 계속 연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나라 전체가 극심한 분열 속으로 빠지고 있는 형국입니다. 국민들이 불안 속에서 나라에 대한 걱정을 해야 하는 그런 상황입니다. 하루속히 나라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이어서 7월에 국제화해학회(IARS) 주최로 열리는 ‘화해를 위한 아시아 종교 간의 대화’ 행사 프로그램에 어떻게 참여할지 세부 일정을 공유하고 종교인 분들의 의견을 수렴했습니다. 평화재단에서는 이번 학회에 스리랑카 종교인 모임을 초대했습니다. 스리랑카 종교인 모임은 지난 30여 년간 이슬람, 힌두교, 기독교, 불교 등 다양한 종교 간의 화합을 위해 여러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종교인 분들은 “스리랑카의 종교 갈등과 민족 갈등의 경험을 한국의 분단 상황과 비교 분석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며 모두 함께 대화 모임에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박남수 교령님은 적극 찬성의 의견을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과제가 화해와 소통, 통합이 가장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에 저희가 종교 간의 화해를 이루는 모습을 이번 행사를 통해 국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면 국민 통합에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종교인 분들의 의견을 수용해서 다른 종교인들도 많이 참석할 수 있도록 대화 모임을 열어 두기로 했습니다.
이어서 시국 현안에 대한 대화를 이어 나갔습니다. 종교인 분들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판결 여부를 지켜본 후 다시 논의를 하기로 하고 일단 논의를 마쳤습니다.
모임 중에 고(故) 김명혁 목사님의 따님 부부가 찾아왔습니다. 생전에 김명혁 목사님이 종교인 모임에 대해 많은 애정을 갖고 참여하셨기에 꼭 찾아뵙고 싶었다며 인사를 드리러 온 것입니다.
따님 부부가 김명혁 목사님의 일생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해서 종교인 분들은 각자 자신이 기억하는 목사님의 모습에 대해 한 마디씩 해주었습니다. 스님도 김명혁 목사님과의 기억을 떠올리며 한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제가 김명혁 목사님을 처음 만난 것은 1997년입니다. 그때 북한에서 식량난이 발생해서 어떻게 인도적 지원을 할 것인지 머리를 맞대고 논의를 한 것이 첫 만남이었어요. 그때만 해도 우리는 북한과 연락이 닿을 수 있는 통로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소개해 준 유진 벨 재단(Eugene Bell Foundation)을 통해서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유진 벨 재단의 린튼(Linton) 박사님도 늘 자신을 소개할 때 ‘나는 짐을 나르는 당나귀에 불과하다.’라고 자임을 했습니다. 그후 종교인 모임에서 첫 사업을 한 것이 1997년 3월에 강원도에서 감자가 썩어 나간다는 소식을 접하고 감자 1,690톤을 트럭 99대에 실어서 보낸 일입니다. 그 후에는 밀가루 300톤을 싣고 개성에 함께 가서 전달하고 오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Korean Sharing Movement, KSM)에서 함께 북한 동포를 도왔습니다. 그러다 북한 주민의 대량 아사 소식을 듣고 북한 인도적 지원을 위한 100만 인 서명 운동을 하면서 김수환 추기경님, 강원룡 목사님, 송월주 스님을 어른으로 모시고 김명혁 목사님, 오태순 신부님, 저 이렇게 세 사람이 실무를 맡았습니다. 그때 시작해서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왔으니까 벌써 30년이 다 되어가네요. 그때는 김명혁 목사님도 젊었습니다. (웃음)
종교인 모임이 오랜 시간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김명혁 목사님의 온화한 성품 덕분입니다. 어르신들이 모두 돌아가시고 나서는 김명혁 목사님이 종교인 모임의 좌장 역할을 해오셨습니다. 저도 크리스마스 때마다 강변교회에 가서 찬송가를 부르며 '새벽송'을 다녔습니다. 한국복음주의협의회(Korea Evangelical Fellowship) 회장을 역임하셨으니까 주변에서 왜 스님과 어울리느냐고 문제 제기가 많았다고 해요. 그래서 어느 날은 설교 시간에 ‘저 뒤에 앉아 계시는 법륜스님까지 포함해서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품 안으로 인도를 해야 합니다.’ 하고 말하니까 그다음부터는 아무도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웃음)
김명혁 목사님과 함께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며 추억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눈가가 촉촉이 젖어왔습니다. 지난 시간들이 마음속에 따뜻하게 스며드는 듯했습니다.
종교인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따님이 감사의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아빠가 항상 종교인 모임을 가기 전날에는 ‘내일 종교인 모임이 있다.’ 하시면서 기대감을 갖고 계셨어요. 다녀와서는 늘 기분이 좋으셨고, 나라를 걱정하고 생각하는 모임이니까 스스로도 자랑스러워하셨던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스님이 평화재단에서 김명혁 목사님에게 주는 공로패를 따님에게 전달했습니다. 작년 11월에 평화재단 창립 20주년 기념행사에서 김명혁 목사님에게 증정한 것인데 따님에게 전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조촐하게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헌신적인 활동으로 한반도 평화와 국민 대통합의 힘든 여정을 함께 개척하고 평화재단의 오늘을 만들어주신 공로를 치하하며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이 패를 드립니다.”
모두 축하의 박수를 보내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은 종교인 분들을 배웅한 후 3층 설법전으로 향했습니다. 설법전에서는 오전 9시부터 한 시간 동안 사시예불을 한 후 잠시 자리 정돈을 하고 있었습니다.
130여 명의 대중들이 자리한 가운데 오전 10시 15분이 되자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낭독하며 수행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도 화상 회의 방에 입장하여 온라인으로 참석했습니다. 대중들은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봄소식을 전하며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내일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춘분입니다. 요즘 해가 좀 일찍 뜬다고 느끼십니까? 도시에 살면 늘 건물 안에 있어서인지 못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 이례적인 늦겨울 추위로 지난 2월은 유난히 추웠습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겨울도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처럼 어느덧 코끝에서 봄기운이 느껴집니다.
백일법문을 시작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영상을 통해 여러분들이 봉사하는 모습을 보니까 각 으뜸절에서는 봄맞이가 한창인 것 같습니다. 봄이 오면 곧 부처님 오신 날이 다가오니까 이미 연등 작업을 시작한 곳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봉사해 주는 정토회 회원 여러분께 진심을 담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봄이 올 때를 가만히 관찰해보면 아직 하얗게 눈이 덮여 있는 중에도 그 밑에서는 눈이 녹은 물이 졸졸 흘러내립니다. 여전히 얼음이 꽁꽁 얼어 있어도 그 밑에서는 얼음의 두께가 점점 얇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개울가에는 봄이 오는 소식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한반도에 드리워졌던 한랭 전선이 알게 모르게 조금씩 물러나듯이 전쟁의 위기도 조금씩 완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완연한 봄을 느끼게 되기까지는 아직 여러 날이 남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금씩 변화하고 있습니다.
지금 국내적으로 많은 불안이 잠재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 선고일이 임박했습니다. 선고가 되면 일시적으로 많은 혼란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혼란을 지나 결국에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차피 일어날 수밖에 없는 혼란이라면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하면 혼란을 짧게 끝내고, 부작용이 적은 방향으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갈지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지금 세상에는 내 편이 아니면 적대시하고, 견해가 다르면 비난하는 풍조가 만연해 있습니다. 그러나 나와 다른 그들도 하나의 나라, 하나의 지구 안에 함께 살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싸우고 있지만 그 밑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서로 공생하는 관계입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 마음속에 분노와 미움이 사라집니다. 분노와 미움 없이 서로 다른 견해를 평화적으로 조율해 나가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입니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민주주의가 발전하기는커녕 오히려 후퇴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위기를 잘 극복하면 오히려 민주주의의 선진국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학생들을 보면 보통 여름 방학이 끝나고 가을에 성적이 크게 오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여름 더위에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공부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럴 때 열심히 공부하면 성적순이 뒤바뀌는 경우가 생기는 겁니다. 그것처럼 위기가 곧 기회입니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서 어려울 때 잘 대응하면 우리가 바라던 소정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위기를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자, 그럼 대화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온라인에서 한 명이 질문을 하고, 이어서 현장에서 한 명이 손을 들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마음 나누기를 할 때 불편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고 하면서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조언을 구했습니다.
“저는 이제 막 정토경전대학을 졸업한 신입 정토회 회원입니다. 도반과 마음 나누기를 하다 보면 ‘이 말을 하면 분명히 듣기 싫은 사람이 있겠지만’ 혹은 ‘이 말을 하면 분위기가 안 좋을 걸 알지만’ 이렇게 덧붙이고는 수행이라는 명목 아래 마음 나누기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누기를 듣고 불편한 마음이 드는 제가 마치 수행이 부족한 사람이 되어 화살을 대신 맞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모든 일에 수행이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상처 주는 말을 하고도 ‘괴로우면 수행이 부족한 네 탓이야!’ 이렇게 화살을 돌려도 되나요? 만약 제가 수행이라는 이름으로 인도에 봉사를 하러 가버리면 남편과 아이들이 상처받을 게 분명합니다. 그런데 나는 수행하러 가는 거니까 남편과 아이들에게 책임을 돌려도 되는 건가요? 수행이라는 명목으로 어디까지 허용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수행의 관점에서는 상대가 무슨 말을 하든 그 말을 듣고 내가 기분이 나쁘다면 그것은 내 문제입니다. 그 말을 한 상대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러니 질문자가 수행이 부족한 게 맞습니다. (웃음)
그리고 본인이 인도에 봉사하러 가고 싶으면 남편이든 아이든 남겨두고 가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봉사하러 가고 싶으면 가면 되고, 안 가고 싶으면 안 가면 됩니다. 내가 아이들을 두고 인도로 떠나는 것은 아이들에게 죄를 짓는 행위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인도에 안 가는 이유가 아이들을 사랑해서일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내가 집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인도에 가는 것보다 집에 있는 게 더 낫기 때문입니다. 내가 인도에 봉사하러 가기로 했다면, 집에 있는 것보다 인도에 가는 게 더 낫기 때문입니다. 누구 때문에 간다거나 안 간다거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이유는 내가 관점이 분명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무슨 얘기든 다 나눌 수 있는 것이 ‘마음 나누기’입니다. 무엇이든지 다 물을 수 있는 것이 ‘즉문즉설’이고요. 다만 그 자리에 함께 있는 청중들을 배려해서 혐오감을 주는 얘기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첫째, 욕설이나 남이 들으면 듣기 거북한 얘기는 좀 자제해야 해요. 둘째, 너무 장황하게 말하면 안 됩니다. 청중들은 질문자의 얘기를 들으러 온 것이 아니잖아요. 스님의 얘기를 들으러 왔는데 질문자가 30분 동안 본인 얘기를 하면 참가자들이 힘들어하겠지요. 그래서 이 두 가지만 유의하면 됩니다. 물론 이 두 가지도 자기가 꼭 하고 싶다면 해도 됩니다. 저는 즉문즉설 하다가 막 욕을 하는 사람도 여러 명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분이 안 풀리니까 어쩔 수 없는 거예요. 그러나 가능하면 이 두 가지는 좀 유의해 달라는 겁니다.
마음 나누기를 할 때도 혐오감을 주는 얘기는 가능하면 안 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무리 나누기라지만 욕설을 하거나 성적인 얘기를 하면 듣는 사람이 좀 곤란하잖아요. 저는 질문자가 괴롭다고 하는 것이라면 어떤 질문이든 그 주제로 대화를 합니다. 그런데 청중 중에는 듣기가 좀 힘든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두 가지를 제외하고 ‘내가 기분이 나빴다.’, ‘내가 힘들었다.’ 이런 나누기는 얼마든지 내놓아도 괜찮습니다. 무슨 마음이든지 나누라고 해서 마음 나누기라고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질문자도 나누기 순서가 되면 상대가 문제라서 내가 기분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그 얘기를 듣는 동안에 제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이렇게 마음 나누기를 하면 됩니다.
상대가 뭐라고 하든지 나는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수행입니다. 그런데 수행은 나한테만 적용해야지 남한테 적용하면 안 되는 원칙이 있습니다. 칼은 요리하는 데만 사용해야지 남을 해치는 데 사용하면 안 되는 것과 같습니다. 때로는 수행도 남한테 적용하면 비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을 내가 수행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한테 ‘네 수행으로 받아들여라!’ 하고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화를 버럭 내니까 상대방이 ‘수행자가 화를 내면 됩니까? 수행으로 받아들이세요.’ 하고 말한다면 ‘네’ 하고 그렇게 하면 됩니다. 그런데 내가 상대방에게 수행으로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건 안 돼요. 수행은 남한테 적용하면 안 됩니다. 질문자는 지금 내가 좋은 건 받아들이고 싫은 건 안 받아들이겠다는 거예요. 그것은 수행이 아닙니다. 수행하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사는 모습과 다를 바가 없어요. 상대방이 무슨 말을 하든 그 말에 기분이 나쁘다면 그건 자기 문제로 보는 게 수행입니다.
예를 들어 누가 스님이 좋다고 하면서 껴안았다고 합시다. 그러면 기분이 나쁘잖아요. 나는 안 좋아하는데 껴안으니까요. 그럴 때는 앞으로 그러지 않도록 말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기분이 나쁜 건 내 문제예요. 그 사람을 문제 삼으면 안 됩니다. 기분이 나쁘지 않은 상태를 유지한 후 상대에게 말을 해야 합니다. 첫 번째, ‘네가 나를 좋아해 주니 고맙지만 나는 싫다.’ 하고 내 의사를 표현해야 합니다. 두 번째, ‘이러면 성추행이다.’ 하고 명확하게 말해야 합니다. 세 번째, ‘이러면 고발한다.’ 하고 경고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단계적으로 나가야 합니다. 나를 만져도 가만히 있는 게 수행이 아니에요. 다만 기분이 나쁜 건 내 문제라는 것입니다. 상대가 나를 만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면 딱 잘라 말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기분이 안 나쁘면 그냥 놔둬도 되는 걸까요? 그때는 선택의 문제입니다. 질문자가 인도에 가고 싶으면 가는 선택을 하고, 안 가고 싶으면 안 가는 선택을 하면 됩니다. 다만 수행은 선택에 대한 결과를 내가 책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그냥 인도로 떠나버리면 가출인데, 수행을 하기 위해 갔다고 하면 수행이 되어버리잖아요.”
“질문자가 수행이라고 해도 수행이 안 됩니다.”
“수행을 면죄부처럼 이용하지 않을까요?”
“아무도 그렇게 이용하지 않습니다. 질문자가 가고 싶으면 가면 되고, 안 가고 싶으면 안 가면 됩니다. 자꾸 남을 얘기할 필요가 없어요.
부처님이 부모가 출가하지 말라고 해서 안 했으면 부처가 될 수 없었습니다. 한 나라의 왕이 되는 것과 출가해서 깨달음을 얻어 지금 우리에게 법을 전해주는 것 중에 어느 쪽이 인류에게 더 큰 도움이 됐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릴 때는 부모에게 많은 도움을 받지만, 성인이 되면 부모는 더 이상 도움이 되기보다는 주로 장애가 됩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식에 대해서 가족적 애정의 범위를 넘어서는 부모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정반왕은 아들이 부처님인데도 법문에 대해 궁금해서 물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부처님이 무슨 옷을 입고, 무엇을 먹고, 어디에서 자는지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정반왕에게는 오직 내 아들이라는 생각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스승인 부처를 보는 눈이 없었던 거예요.
질문자가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기 위해서 인도에 가도 괜찮습니다. 자기가 볼 때는 남편과 아이를 내팽개치는 일 같겠지만 어쩌면 더 좋은 일일 수도 있어요. 자기가 가고 나서 남편이 더 좋은 여자를 만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그건 장담할 수가 없는 겁니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런 일은 수행을 떠나서도 마찬가지예요. 자기가 지금은 결혼해서 애 낳고 살고 있지만, 더 좋은 남자가 생겨서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그 남자하고 살러 갔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것은 죄일까요? 죄가 아닙니다. 남편을 두고 다른 남자와 사는 게 지금 우리나라 법에서는 죄로 성립이 안 됩니다. 그래서 가도 돼요. 그런데 그런 결정을 내렸을 때 나중에 아이나 남편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후회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결정을 안 하는 거예요. 부처님은 출가 후에 자신이 태어난 카필라바스투가 코살라국의 공격으로 멸망했을 때도 후회하거나 동요되지 않으셨어요. 그것이 부처님과 일반인의 차이예요. 집을 떠나느냐, 안 떠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집을 못 떠날 때는 나중에 후회할 것까지 대비해서 못 떠나는 겁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까지 뛰어넘을 때 비로소 출가가 되는 거예요. 단지 현실에 불만이 있어서 집을 나간다면 그것은 가출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아무 문제가 없어요. 스님이 지금 결혼한다고 해도 아무 문제가 없고, 여러분이 출가한다고 해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우주적인 차원에서 인간 세상을 바라보면 인간이 개미처럼 작게 보일 거예요. 개미 떼와 같이 수많은 인간 중에서 어느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는 일이 그렇게 중요한 일일까요? 여왕벌이 수많은 벌 중에서 수컷 벌 하나를 만나 교미하는 일이 그렇게 중요한 문제일까요? 모두 사람들의 생각일 뿐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행위를 하면 그것에 대한 대가가 따릅니다. 만약 부모를 미워했다면 나중에 미워한 대가가 따르는 거예요. 그래서 현명한 사람은 미래의 고통을 미리 예방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지금 하는 어리석은 행위를 멈추는 거예요. 미래의 고통을 기꺼이 받겠다는 각오를 하면 상관없어요. 모든 건 다 자기가 결정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자꾸 누구를 원망하는 이유는 자기가 결정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결정해야 그 결과에 대해서 자기가 책임을 지는 거예요. 내가 주식을 샀으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요? 내가 져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자기가 주식을 사 놓고 누가 권유해서 샀다고 합니다. 누가 권유한 건 맞아요. 그러나 최종 결정은 내가 내린 겁니다. 만약 증권사 직원이 나의 의사와 전혀 관계없이 위조해서 주식을 샀다면 사기가 됩니다. 그러나 사기가 아닌 이상 최종 결정권자는 바로 자신입니다. 질문자도 이렇게 관점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12시가 다 되었습니다. 다음 주 수행법회를 기약하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 1시부터는 10층 회의실에서 ‘대한민국의 글로벌 반도체 전략’을 주제로 열린 평화재단 연구 세미나에 참석했습니다. KIST 인공지능 반도체 대학원 원장 유회준 교수가 '반도체 시장의 세계 현황과 국가별 정책, 대한민국의 AI 반도체 현황과 전략'에 대해 강연을 해주었습니다.
“미국은 반도체 산업을 국가 안보의 핵심으로 인식하며,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CHIPS Act’, ‘NSTC(내셔널 세미컨덕터 테크놀로지 센터)’ 등을 통해 자국 내 반도체 산업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반도체 인력 양성에 집중 투자하고 있으며, 동경대학과 동경공업대학을 중심으로 연구 개발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반도체 자립을 위해 오픈소스 반도체 생태계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리스크-V(RISC-V) 기반 CPU 및 GPU 개발을 통해 미국의 제재를 회피하려 하고 있습니다.
서울시에는 더 이상 데이터 센터를 지을 수 없습니다. 전력 부족 때문입니다. AI 반도체는 이제 에너지 효율성이 핵심 과제가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범용 CPU가 다양한 연산을 처리했지만, 이제는 AI 전용 칩이 더 경제적이고 효율적입니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강국입니다. 반도체 설계 시장에서 대한민국의 점유율은 19%로 보이지만,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는 1~2%에 불과합니다. 정경 분리를 통해 중국 시장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미국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되, 중국과의 협력도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대만은 매년 15,000명의 반도체 전문가를 양성합니다. 한국도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미국의 생성형 AI 시스템은 주로 서양인 데이터를 학습한 결과를 기반으로 합니다. 따라서 한국인 얼굴을 생성하려면 별도로 학습해야 합니다. 이제 손을 이용해 가상 공간에서 도자기를 빚거나 색을 입힐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패권 경쟁은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국가 간 기술 전쟁입니다. 대한민국은 메모리 반도체 강점을 살려 AI 반도체 시장을 선도해야 합니다. 반도체 산업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기업, 연구소, 정부 간의 긴밀한 협력이 필수적입니다.”
2시간 동안 강연을 한 후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국의 차세대 반도체 기술 전략과 인재 양성 방안에 대해 다양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이 열강을 해준 유회준 교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저희가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제가 기여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이 이 분야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역할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3월 평화 연구 세미나를 마쳤습니다.
오후 4시부터는 평화재단 기획위원회 회의에 참석하여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 현황과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이후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 속에서 평화재단의 역할에 대해 두 시간 동안 토론을 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나니 해가 저물었습니다. 산뜻한 봄바람을 맞으며 많은 시민들이 백일법문을 듣기 위해 정토사회문화회관을 찾았습니다.
저녁 7시 30분에는 저녁반 수행법회 생방송을 했습니다. 3층 설법전에는 100여 명의 대중들이 자리하고, 정토회 회원들은 온라인 화상회의 방에 접속한 가운데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오전 법회처럼 봄소식을 전한 후 정토회 회원들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온라인에서 두 명이 질문하고 현장에서 한 명이 손을 들고 질문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어릴 때 자라면서 엄마한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많았고, 그것이 지금까지 인간관계를 맺는 데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며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 시작이 엄마와의 관계입니다. 어렸을 때는 제가 죽음으로써 엄마한테 복수하고 싶었습니다. 자라면서는 엄마를 죽이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제 마음의 밑바닥에 복수심이 있어서인지 사회생활에 어려움이 많습니다. 예전에는 상대방과 싸워서 이기려고만 했는데, 몸이 아프고 나서는 제가 덜 힘들기 위해서 갈등 상황을 피했습니다. 그런데 회피하다 보니 손해를 보는 경우가 생깁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로 잘 지낼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상대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 자기 자신을 보호하려고 대응하는 것을 세상에서는 정당방위로 인정하지만, 수행적 관점에서는 권장하지 않습니다. 정당방위의 개념과 복수의 개념은 많이 다릅니다. 저 사람이 나를 한 대 때리고 갔는데, 생각할수록 분해서 다음 날 나도 가서 한 대 때렸다면 이건 복수입니다. 상대방이 때리는 순간에 제지하거나, 혹은 칼로 찌르려고 할 때 막다가 상대방 팔이 부러지는 것은 정당방위에 해당합니다. 상대가 나한테 위해를 가하는 중에 내가 흥분해서 필요 이상의 폭력을 행사했다면 이때는 정당방위라고 주장할 수는 있지만, 폭행죄나 살인죄로 다툴 여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나한테 위해를 가하는 시점이 아닌 그 이후에 상대방을 때리거나 죽였다면 그때는 살인죄나 폭행죄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감정적으로 보면 저 사람이 나를 한 대 때려서 나도 한 대 때렸는데 그게 뭐가 잘못이냐고 항변하는 마음이 들 수가 있습니다. 옛날에는 복수를 인정하는 문화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불법행위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경찰에 신고해서 공권력으로 처벌하게 되어 있습니다. 개인이 응징하는 것이 아니라 법에 따라 처벌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법으로 처벌하도록 할까요? 개인적으로 응징을 하면 과잉 보복을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내가 한 대 맞았을 때 한 대만 때리면 분이 풀릴까요? 한 대 맞았으면 두 대는 때려야 분이 풀리겠죠. 나라와 나라 간에도 그렇습니다. 지금 이스라엘과 하마스를 보면 상대국에서 미사일 한 발을 쏘면 열 발을 쏘잖아요. 이렇게 개인이 사적으로 응징을 하면 과잉 대응을 하기 때문에 법으로 처벌하도록 만든 거예요.
질문자가 가지고 있는 마음이 이런 복수심에 해당합니다. 질문자는 어릴 때 어머니에게 상처를 입은 것입니다. 그래서 복수하고 싶은 거예요. 복수를 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상대방을 해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을 해치는 것입니다. 자신을 해치는 방법으로 자해하거나 자살하는 거예요. 엄마가 나를 사랑한다는 걸 알고 그 마음을 이용해서 복수하는 것입니다. 내가 죽어버리면 엄마가 후회하고 슬퍼할 것을 알고 그렇게 하는 겁니다. 이런 행동은 부부나 부모 자식 사이처럼 아주 가까운 관계에서 일어납니다. 왜냐하면 서로 잘 모르는 사이에서는 내가 죽는 게 상대방에게 심리적으로 큰 영향이 없기 때문입니다. 복수심에 상대를 죽이는 행동과 내가 자살하는 행동은 똑같은 심리에서 일어나는 행동입니다.
지금 질문자의 상태는 트라우마에 해당합니다. 정상적인 심리 상태를 넘어서서 질환에 가까워 보입니다. 그래서 전문가에게 치료를 받아야 해요. 치료를 받는 게 나쁜 게 아니에요. 보통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본인의 감정을 제어할 수 있는데, 혼자서 조절이 안 되는 사람은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고 약물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첫째, 정신 건강 의학과에 가서 전문가에게 상담 치료를 받아 보세요.
둘째, 수행으로 극복하고자 한다면 어머니에게 감사 기도를 해야 합니다. 복수하고 싶은 사람에게 오히려 감사하라니까 어려울 거예요. 그러나 치료법은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복수심을 없애겠다는 것보다 더 적극적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내는 거예요. 감사하는 마음을 내면 복수심이 없어집니다. 원망하는 마음은 감사하지 않아서 생기는 겁니다. 예수님도 원수를 미워하지 말라고 하지 않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잖아요. 원수를 아무리 미워하지 않으려 해도 자꾸 미워지니까 거기에 대한 처방으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내면 미워하는 마음은 저절로 없어집니다. 남한테 도움을 받고 싶은데 뜻대로 안 돼서 괴로울 때도 마찬가지예요. 도움받을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소극적인 방법입니다. 보다 적극적인 방법은 남을 도와줄 마음을 내는 것입니다. 남을 도와줄 마음을 내면 도움받으려는 마음이 저절로 없어집니다. 그것처럼 사랑하는 마음을 내면 미워하는 마음이 없어져 버립니다.
대승 불교의 수행법도 이와 같습니다. 소승 불교의 수행법은 ‘미워하지 마라.’, ‘화내지 마라.’ 이런 것이라면, 대승 불교의 수행법은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라.’, ‘화내지 않고 방긋 웃어라.’ 이렇게 마음을 바꾸는 것입니다. 웃으면서 ‘예’하고 하는데 미운 마음이 생기겠어요? 이렇게 적극적인 마음을 내서 미워하는 마음을 극복하는 것이 수행으로 치료하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도저히 감사하는 마음이 안 일어난다면 다른 방법이 없어요. 그럴 때는 먼저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 게 좋습니다. 감사 기도를 하라고 하면 대개는 소리를 지르고 악을 쓰면서 염주를 집어던질 정도로 저항감이 생깁니다. 나한테 무릎 꿇고 빌어도 시원찮은데, 내가 왜 고마워해야 하냐며 감정이 더 미쳐 날뜁니다. 이때 억지로라도 계속 감사 기도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어머니에게 받았던 상처가 아물면서 감사하는 마음이 올라옵니다. 그러면 치유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엎드려 절을 하면서 미운 기억은 떠올리지 말고, 감사한 생각을 자꾸 떠올려야 합니다. 어머니가 나를 먹이고, 보살피고, 돌봐주던 생각을 하면서 ‘감사합니다.’ 하고 되뇌다 보면 마음에서 변화가 일어납니다. 병원 치료와 병행하면 더 좋아요. 감사하는 마음이 안 들어도 억지로라도 감사 기도를 지속하면 치유가 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런데 하다가 그만두면 원점으로 돌아갑니다.
부모이기 때문에 감사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이 방법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아주 적극적인 방법입니다. 대승 경전인 금강경을 보면, 수보리 존자가 ‘어떻게 하면 괴로운 마음을 없앨 수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까 부처님이 ‘일체중생을 구제하겠다고 마음을 내라.’ 하고 말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금강경에서는 이 부분을 대승 불교의 핵심이 담겼다고 해서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이라고 제목을 붙였습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가장 적극적인 수행 방법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감사 기도를 한번 해보세요.”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용기를 내어 솔직하게 질문을 해준 분에게 청중들 모두가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대중들은 모둠별로 동그랗게 둘러앉아 마음 나누기를 하였고, 스님은 설법전을 나와 정토회관으로 향했습니다.
내일은 백일법문 32일째 날입니다. 아침 일찍 평화재단에서 북한 전문가들과 조찬 모임을 한 후, 오전에는 정토사회문화회관 3층 설법전에서 경전 강의 4강을 하고, 저녁에는 지하 대강당에서 불교사회대학 4강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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