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6.5.22. 애광원 나들이, ‘행복한 대화’ 전남대 강연
“길가에 핀 한 포기 풀처럼 겸손하게 살고 싶은데, 방법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오전에는 쌍계사로 애광원 나들이를 다녀오고, 저녁에는 전남대학교에서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강연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새벽 6시 30분에 두북 수련원에서 경남 하동군에 있는 쌍계사로 출발했습니다.

오늘은 애광원 생활인들과 나들이를 가는 날입니다. 애광원과 스님의 인연이 시작된 것은 23년 전의 일입니다. 2003년 태풍 매미로 남해안 지역이 큰 피해를 보았을 때 거제도에 있는 애광원도 큰 수해를 입었습니다. 그때 JTS에서 애광원의 피해 복구를 도왔습니다. 복구가 끝난 후 스님이 김임순 원장님에게 앞으로 무엇을 도와드리면 좋겠냐고 물으니, 원장님은 "장애인들은 바깥나들이를 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나들이를 도와주셨으면 좋겠다"라고 하셨습니다. 이후 정토회에서는 매년 봄과 가을마다 애광원 생활인들과 함께 나들이를 하고 있습니다. 상반기에는 경증 생활인과, 하반기에는 중증 생활인과 함께 나들이를 떠납니다.

이번 애광원 나들이는 경남지회에서 준비해 주었습니다. 애광원에서는 경증 생활인 30여 명과 직원을 포함해 42명이 참석했고, 정토회 회원들 45명까지 모두 포함하여 총 90여 명이 나들이에 동행했습니다.

오전 9시 30분에 쌍계사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주차장에서 봉사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나들이가 시작되기 전 봉사자들과 다 함께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애광원 생활인들을 태운 버스가 쌍계사로 오는 길에 휴게소를 두 번 들르는 바람에 도착 예정 시간이 다소 늦어졌습니다. 스님은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전화로 급한 업무를 처리했습니다.

이어 애광원 선발대 차량이 도착했습니다. 올해 103세이신 김임순 원장님이 차에서 내리셨습니다. 스님은 차 앞으로 다가가 휠체어에 앉으신 김임순 원장님을 반갑게 맞이하며 인사했습니다. 김임순 원장님은 오랜만에 애광원 나들이에 동행해 주셨습니다.

“꽃밭은 잘 가꾸고 계세요? 쌀이나 김치가 필요하면 저한테 연락해 주세요. 보내 드릴게요. 보고 싶으면 연락해 주세요. 제가 언제든 찾아가겠습니다.”

김임순 원장님은 스님의 목소리를 듣고 반가워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드디어 버스 2대가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버스 출입문 앞에서 생활인 한 명 한 명의 손을 잡아주며 맞이 인사를 건넸습니다.

스님을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하는 생활인도 있었습니다. 오늘 나들이는 생활인 1명과 봉사자 1명이 짝이 되어 하루를 함께 보낼 예정입니다. 둘씩 짝을 지은 일행은 쌍계사 입구 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쌍계사 입구 안내판 앞에 모두가 모였습니다. 스님이 무선 송수신기를 통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늘 애광원 생활인 여러분과 함께 봄나들이를 왔습니다. 오늘 우리가 온 곳은 쌍계사입니다. 이 절이 처음 지어진 때는 신라 시대입니다. 지금 있는 건물들은 그 이후에 지어진 전각들입니다. 맨 처음 역사 기록에는 옥처럼 맑은 샘물이 솟는다는 뜻으로 ‘옥천사(玉泉寺)’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해요. 그 후에 쌍계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이 절에는 역사적인 유물이 아주 많습니다. 국가 지정 문화재인 국보가 1개 있고, 보물도 8개나 있습니다. 수많은 문화재가 이 절에 간직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올라가면서 쭉 둘러보겠습니다. 눈으로 보면서 ‘아, 이게 국보구나’ 하고 알면 되고, 오늘은 나들이를 온 것이니 편안하게 구경하시면 되겠습니다.

이번 주 일요일이 어떤 날인지 아세요? 바로 부처님오신날입니다. 그래서 연등을 많이 달아 놓았습니다. 연등 구경도 같이 해보겠습니다. 쌍계사를 둘러보고 점심을 먹은 뒤, 송림으로 이동해서 재미있게 놀아봅시다.”

이어서 애광원 송우정 대표이사님의 인사말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따뜻한 봄날에 법륜 스님과 정토회 봉사자님들을 만나 쌍계사라는 좋은 곳에 함께 올 수 있어서 정말 좋습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를 보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네!) 봄에 오니까 또 좋지요? 늘 가을에 오다가 이렇게 봄에 꽃이 필 때 오니까 저도 참 좋네요. 스님과 정토회 봉사자분들 모두 바쁘신데도 애광원 식구들을 위해 하루 시간을 내주셔서 너무 감사하지요? 다 함께 ‘감사합니다’ 해볼까요? (감사합니다!) 좋은 시간 보내겠습니다.”

다 함께 단체 사진을 찍고 일주문을 향해 올라갔습니다.

스님이 일주문 앞에서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여기를 일주문이라고 합니다. ‘삼신산 쌍계사’라고 한문으로 적혀 있어요. 일주문을 기준으로 이 바깥은 중생의 세계이고, 안쪽은 부처님의 세계입니다. 이제 두 번째 문을 지날 겁니다. ‘금강문’이라고 쓰여 있네요. 불교에서 금강은 어리석음을 부수고 지혜를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금강문 안에 있는 험상궂게 생긴 상은 귀신을 쫓는 신이고, 사자를 탄 분은 문수보살, 코끼리를 탄 분은 보현보살입니다.”

조금 더 걸어가니 문이 하나 더 나타났습니다.

“이곳은 천왕문입니다. 여기부터는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네 명의 천왕을 모시고 있어서 사천왕이라고 부릅니다. 착한 사람은 보호하고 나쁜 사람은 쫓아내는 신들입니다. 동쪽, 서쪽, 남쪽, 북쪽을 지키는 하늘의 신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다음으로 9층 석탑이 보였습니다. 9층 석탑을 돌아 대웅전으로 향했습니다. 워낙 많은 인원이라 대웅전에 모두 들어가 참배하기에는 장소가 좁고 몸이 불편해서 시간도 오래 걸려, 대웅전 앞마당에서 다 함께 삼배를 올린 뒤 자리를 이동했습니다.

다시 대웅전 계단에 모여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나들이 참여자들이 조별로 사진을 찍는 동안 스님은 쌍계사 종무소로 향했습니다. 스님은 애광원 나들이를 할 수 있도록 장소를 배려해 준 쌍계사 종무소에 초파일 연등 보시금을 전달하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주차장 쪽에서는 김임순 원장님이 스님과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원장님, 대표이사님, 스님이 생활인들과 조별로 번갈아 가며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사진 촬영을 마친 후, 쌍계사에서 유명한 금당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대웅전에서 금당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가파른 계단이 이어졌습니다. 스님과 애광원 생활인들은 서로를 챙기며 조심조심 계단을 올랐습니다. 쌍계사 금당 안에는 일반적인 불상 대신 ‘육조정상탑’이라는 7층 석탑이 모셔져 있습니다. 이 석탑 아래에는 불교 선종의 제6대 조사인 혜능대사의 두개골(頂相)사리가 봉안되어 있다고 합니다. 스님은 금당 안으로 들어가 정성껏 참배를 올렸습니다. 금당 안에서 기도를 올리던 불자 세 명이 스님을 알아보고 다가와 삼배로 인사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스님은 금당에서 나와 나들이 참여자들에게 천천히 둘러보고 조심해서 내려가라고 안내했습니다.

이어 스님은 송우정 대표이사님과 함께 완만한 산책로를 따라 걸어 내려왔습니다. 대표이사님에게 쌍계사 금당에 얽힌 이야기를 설명하며 내려오던 중, 길가에서 샘물을 발견하고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여기 샘물 한 모금 마셔보세요. 이 물이 차를 우려내기에 최고로 좋은 물이랍니다.”

스님은 옆에 놓인 바가지로 샘물을 떠서 한 모금 마신 뒤, 대표이사님에게도 물맛을 보라며 권했습니다. 물맛이 좋은 샘물 바로 옆에는 작게 고인 웅덩이가 있었는데, 그 안에 개구리 한 마리가 죽은 채 떠 있었습니다. 스님은 죽은 개구리를 발견했으나 승복 소매와 자락이 길어 직접 건져내지 못하자, 봉사자 중 한 명이 웅덩이에서 개구리를 건져내 주면 좋겠다고 나지막이 말했습니다. 이에 거제지회 지회장님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죽은 개구리를 조심스럽게 건져내 주었습니다. 스님은 천천히 걸어 쌍계사 주차장으로 내려왔습니다.

준비된 차량에 탑승해 인근 식당으로 이동했습니다. 나들이 참가자들도 모두 식당에 모여 비빔밥 정식으로 점심 식사를 맛있게 했습니다. 식당 주인이 스님을 알아보고, 매실 고추장을 선물했습니다. 스님도 감사의 표시로 신간 『탁! 깨달음의 대화』를 선물했습니다.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차로 30분가량 이동하여 하동 송림공원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섬진강 변에 자리 잡은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2005년 2월에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제444호로 지정된 곳입니다. 푸른 소나무 숲이 하얀 섬진강 모래톱과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었습니다.

스님은 강변길을 따라 산책하며 애광원 식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어갔습니다. 나들이 참여자들은 소나무 숲 화장실 근처의 넓은 공터에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기다리던 레크리에이션 시간이 되었습니다. 통영에서 온 실버 레크리에이션 강사 봉사자가 신나는 음악에 맞춰 가벼운 몸풀기를 시작하자 현장의 흥이 한껏 돋아졌습니다.

풍선과 스티커를 이용한 재미있는 게임이 이어졌고, 음악에 맞춰 애광원 생활인들이 신나게 춤을 추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마지막에는 참여자 모두가 길게 줄을 지어 기차놀이를 하며 온 동네가 들썩이도록 어우러져 놀았습니다.

스님은 레크리에이션이 시작되는 모습을 잠시 지켜본 후, 섬진강 물이 흐르는 강변으로 내려가 주변을 세심히 살펴보았습니다. 강물이 비교적 맑았습니다.

강변을 잠시 둘러보고 돌아오는 길에 김임순 원장님을 만났고, 두 분은 함께 어울림 마당이 펼쳐지는 공터로 돌아와 참가자들이 신나게 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습니다.

즐거웠던 레크리에이션 시간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스님은 애광원 원장님과 대표이사님, 그리고 생활인들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늘 수고해 주시는 선생님들에게 스님의 신간 『탁! 깨달음의 대화』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이제 송림공원에서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봉사자들이 스님께 마무리 인사 말씀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인사말 대신 다 함께 찬송가를 부르자고 하였습니다.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진 애광원의 원장님과 대표이사님, 생활인들도 스님의 선창에 맞춰 다 함께 찬송가를 따라 불렀습니다.

‘내 주를 가까이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노래가 끝나자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습니다.

“오늘 재미있었어요? 다음에는 어디로 갈까요? 어디든 가고 싶은 좋은 곳이 있으면 언제든 이야기하세요.”

스님의 인사말에 이어 김임순 원장님이 따뜻한 마무리 인사를 해주셨습니다.

“오늘 이렇게 좋은 날씨와 시간을 하느님께서 주시고, 법륜 스님이 이 멀리까지 오셔서 함께해 주시고 봉사활동도 같이 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원장님의 인사 말씀이 끝나자마자 스님이 “할렐루야~!” 라고 하자, 참가자들은 한바탕 크게 웃으며 우레와 같은 박수를 쳤습니다.

마지막으로 단체 촬영을 한 뒤 차량으로 이동했습니다.

스님은 공터에서 주차장까지 김임순 원장님의 휠체어를 직접 밀며 아름다운 강변 산책로를 함께 걸었습니다.

애광원 나들이의 마지막 목적지는 ‘해뜰목장’이었습니다. 차로 40여 분을 달려 목장에 도착해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는 체험 프로그램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목적지 주소를 찍고 운전해 갔으나 목장이 쉽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종착지에 도착했는데도 사방을 둘러봐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다른 참여자들은 이미 도착했다고 연락이 오는데, 버스도 사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마중 나온 봉사자의 안내를 받아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니, 눈앞에 탁 트인 푸른 목장이 펼쳐졌습니다. 길가 밖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던 곳인데, 완만한 고개를 하나 넘으니 아름다운 목장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먼저 도착한 참여자들은 잔디밭 위에서 삼삼오오 거닐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동물 먹이 주기 체험을 하기에 앞서 가벼운 안전 교육을 받기 위해 교육장으로 이동했습니다. 강사님은 풀을 줘야 하는 동물과 당근을 줘야 하는 동물을 구분해 설명해 주었고, 동물들이 반가움에 입을 크게 벌리더라도 물지 않으니 너무 겁먹을 필요 없다는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생활인들은 손마다 먹이 바구니를 하나씩 들고 목장 안으로 향했습니다.

염소, 양, 말, 토끼, 닭 등 다양한 동물들에게 다가가 먹이를 건넸습니다. 처음에는 다가오는 양이 무서워서 주춤거리던 생활인들도 금세 요령을 익히고 흥미진진하게 체험에 참여했습니다. 스님도 양에게 다가가 당근을 먹여주었습니다. 목장을 한 바퀴 도는 내내 동물들에게 먹이주는 체험을 하며 애광원 생활인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어느덧 오후 4시가 되었습니다. 저녁 7시 30분부터 광주 전남대학교에서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강연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강연 전 학교 관계자들과의 차담 시간을 고려하면 늦어도 오후 4시에는 출발해야 했습니다.

스님은 송우정 대표이사님에게 저녁 강연 일정으로 인해 끝까지 함께하지 못하고 먼저 자리를 뜨게 된 점에 대해 정중히 양해를 구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 오신 날 생활인들에게 과일 공양을 올리고 싶다며 준비해 온 보시금을 전달했습니다. 대표이사님 역시 애광원에서 정성껏 준비한 선물을 스님께 전하며 깊은 감사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스님은 전남대학교로 출발하기 전, 휠체어를 타고 계셔 목장 위쪽까지 올라오지 못하신 김임순 원장님께 다가가 정중히 작별 인사를 드린 뒤 차량에 탑승해 광주로 향했습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스님은 밀린 업무를 체크하고 소통을 했습니다. 잠깐씩 눈을 붙여 휴식을 하기도 했습니다. 강연장에 도착하기 전 스님은 마지막 휴게소에 들러 간단하게 우동 한 그릇으로 저녁 식사를 해결했습니다.

저녁 6시 30분, 전남대학교 총장 접견실에서 차담이 진행되었습니다. 전남대학교 이근배 총장님을 비롯한 학교 관계자들, 그리고 이번 즉문즉설 강연을 공동 주최한 전남대학교 윤동규 총학생회장과 차담 시간을 가졌습니다. 행복시민들과 전남대 총학생회가 연대하여 공동으로 주최한 덕분에 사전 신청이 꾸준히 이어졌고, 특히 20~30대 젊은 층의 참여율이 매우 높았다고 합니다. 사전 신청자 수만 이미 전남대 대강당의 900석 좌석을 훌쩍 초과한 상태였습니다. 스님은 방명록에 메시지를 남기고, 차담에 참석한 분들에게 신간 『탁! 깨달음의 대화』를 한 권씩 선물했습니다.

강연 시간이 다가오자 스님은 강연장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대강당 로비는 강연 접수를 하려는 시민들로 북적였습니다. 스님은 강연에 참석하러 온 시민들과 봉사자들에게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대기실에서 잠시 숨을 고른 뒤 무대 뒤편으로 올라갔습니다.

본 강연에 앞서 사전 공연으로 해금 연주가 펼쳐졌습니다. 연주자 5명이 무대에 올라 ‘칠갑산’, ‘행복한 사람’, ‘홀로 아리랑’ 등 총 3곡을 아름다운 선율로 들려주었습니다. 스님은 무대 뒤편에서 해금 공연을 들었고, 공연이 끝난 뒤 연주자들을 격려하며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했습니다.

곧이어 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이 끝나고, 마침내 스님이 환한 미소와 함께 무대 위로 걸어 나왔습니다. 청중들의 박수 소리가 우레와 같았습니다.

“안녕하세요. 봄도 이제 끝자락에 와 있습니다. 이런 늦은 봄날, 광주 시민 여러분과 만나게 되어 참 기쁩니다. 오늘 즉문즉설은 특별히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와 행복 시민이 공동으로 주최했습니다. 강연에 직접 참가해 주신 전남대학교 총장님과 총학생회장님, 그리고 전남대 동문회에 박수 부탁드립니다. 학교 측에서도 광주 시민 여러분을 위해 많은 배려를 해 주셨습니다. 공동 주최이다 보니 강당 사용료와 주차비가 무료이고, 더불어 제 강연도 무료입니다. (모두 웃음)

저는 출가해서 불교를 배울 때 학비를 내지 않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저도 어디를 가든 평생 강사료를 받지 않고 법문을 합니다. 공짜로 배웠기 때문에 공짜로 강연을 합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공짜는 아니에요. 정확히 말하면 후불제예요. 즉문즉설에서 대화를 나누고 무거운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내려놓게 되었다면, 그 감사한 마음을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면 됩니다. 재정적으로 보시하거나 봉사를 통해 베풀어도 좋습니다. 노동의 대가를 돈으로 계산하는 방식이 아니라 서로 베풀면서 이 사회를 더 좋은 곳으로 함께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오늘 대화를 통해 조금이라도 기쁨을 얻었다면 그 기쁨을 이웃에 나누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제일 쉬운 강의가 즉문즉설입니다. 누가 어떤 질문을 할지 모르기 때문에 미리 준비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 준비 없이 몸만 오면 됩니다. 보통 강의를 유익하게 하거나 재미있게 만드는 것은 강사의 책임인데, 즉문즉설은 질문자와 함께 만들어 갑니다. 질문이 재미있으면 즉문즉설도 재미있어집니다. 어떤 내용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정해 놓은 것도 없습니다. 질문에 따라 학교 강의처럼 되기도 하고, 때로는 상담하는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이렇게 여러분의 관심사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여기까지 와서 왜 저런 질문을 할까?’ 싶으면, 본인도 손을 들고 질문하면 됩니다. 주제는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물이 그릇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듯이 질문자에 따라 대화의 내용도 이리저리 달라집니다.

어떤 사람은 ‘법륜 스님은 어떻게 항상 정답을 줄 수 있습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런데 저는 답을 준 적이 없습니다. 정답을 주는 것이라면 즉문즉답이지 즉문즉설이 아니지요. 저는 다만 대화를 나눌 뿐입니다. 상대가 어떤 이야기를 하든 대화는 나눌 수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를 꺼내더라도 들어주고 몇 마디 함께 나누는 것은 가능합니다. 그래서 어떤 이야기를 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다만 대중이 모인 공공의 자리이기 때문에 욕설은 삼가면 좋겠습니다. 또 많은 사람이 듣기에 지나치게 혐오스러운 이야기도 조금은 삼가해주면 좋습니다. 만약 어떤 젊은이가 성적인 고민이 있어서 대화를 나누고 싶더라도, 듣는 사람이 불편하지 않도록 표현을 조절해 주면 좋겠어요. 혹시 질문자가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도 듣는 사람들 역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듣기에는 거북하지만, 당사자에게는 괴롭기 때문에 꺼내는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또 즉문즉설에서 나눈 이야기를 가지고 험담해서는 안 됩니다. 어떤 이야기든 대화의 소재일 뿐입니다. 누군가 남편이나 아내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일상 속 부부 관계의 한 사례일 뿐이지 사실 여부를 따지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대화를 통해 ‘별일 아니네.’ 하고 자각하거나, ‘이렇게 하면 되겠네.’ 하는 생각이 들면 질문자는 답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답을 준 것은 아닙니다. 자각이 일어나면 스스로 답을 찾은 것이고, 자각이 일어나지 않으면 아직 답을 스스로 못 찾은 것입니다. 저는 대화를 하면서 본인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도와줄 뿐입니다.

예를 들어 한 방에서 백 명이 똑같은 조건으로 잠을 자더라도 모두 다른 꿈을 꿉니다. 같은 시공간에 있지만 각자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호랑이에게 쫓기는 꿈을 꾸고, 어떤 사람은 강도와 싸우는 꿈을 꿉니다. 이렇게 꿈의 내용이 모두 다릅니다. 그렇다면 모두를 악몽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호랑이 꿈을 꾸는 사람은 이렇게 도와주고, 싸우는 꿈을 꾸는 사람은 저렇게 도와줘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무슨 꿈을 꾸든 상관없이 흔들어 깨우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자신이 꾸는 꿈의 내용에 맞춰 스님이 답을 주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처럼 우리가 겪는 괴로움도 정신적으로 보면 모두 꿈과 같은 것입니다. 그 꿈에서 깨어나는 출발점이 바로 자각입니다.

사람은 어떤 이유로 꿈에서 깨어나게 될까요? ‘이거 꿈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눈을 뜨게 됩니다. 강도에게 쫓기는 꿈을 꾸다가도 ‘꿈인가?’라는 생각이 들면, 더 이상 도망가기보다 눈을 뜨려고 하게 됩니다. 그런데 막상 눈을 뜨려 하면 잘 안 떠집니다.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져요. 이렇게 ‘이게 꿈은 아닐까?’ 하고 의심해 보는 것이 바로 자각이에요. ‘내가 욕심이 많나?’ ‘내 성격이 너무 급한가?’ 이렇게 자신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각이 일어나면 변화가 가능해집니다.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이 지팡이를 짚고 가다가 낭떠러지로 향하고 있다면, 그냥 두면 그대로 떨어져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마치 운명이 정해진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낭떠러지가 바로 앞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면 피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각이 일어나면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깨달음입니다. 깨달음이란 모르던 상태에서 아는 상태로 전환하는 것을 뜻합니다. 백두산 높이가 2,744미터라는 사실을 몰랐다가 알게 되는 것처럼 지식적인 앎은 깨달음이 아닙니다. 자신이 어리석은 줄 모르다가 알게 되는 것을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무지의 상태에서 벗어나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이렇게 자기 상태를 알아차리게 되면 변화의 가능성이 생깁니다. 다시 말해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꾸준히 그런 관점을 가지고 연습하다 보면, 습관적이고 무의식적으로 앎이 없이 행하던 어리석음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질문할 때 ‘어떤 질문을 해야 하나?’라고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무언가 힘들어서 말하고 싶거나 의문이 생기면 그냥 질문하면 됩니다. 이런 관점을 먼저 말씀드리고 대화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청중들과의 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5명이 사전 질문자로 선정되어 대화를 나눴고, 현장에서 4명의 질문자와 대화를 더 나눴습니다. 이 중에서 동시에 손을 들어서 가위바위보를 통해 질문할 기회를 얻게 된 21세 청년의 대화 내용을 소개합니다.

길가에 핀 한 포기 풀처럼 겸손하게 살고 싶은데 방법이 궁금합니다.

“저는 스물한 살 국어교육과 2학년입니다. 스님 말씀 중에 기억나는 내용이 세 가지 정도 있는데요. 첫 번째는 ‘길가에 있는 풀 한 포기처럼 살아보라.’라는 말씀이고요. 두 번째는 ‘과거의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라. 지금의 나도 부족할 수 있고 실수할 수 있는 존재다.’라는 부분입니다. 마지막으로 ‘느낌에 대해 알아차리는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제가 여쭤보고 싶은 것은 어릴 때의 제 모습들을 떠올리면 아직도 부끄러운 마음이 올라온다는 점입니다. 저는 진정으로 길거리에 있는 풀 한 포기처럼 살아가고 싶은데요. 스스로에게 너그러우면서도 겸손한 태도로 살아가려면 어떤 마음으로 기도하고 살아야 하는지 알려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질문자가 지금 스물한 살이라고 했나요? 그 나이에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마음 가는 대로 살아보면 됩니다. 스물한 살인데 벌써 겸손까지 너무 신경 쓰고 살면 활달하게 살기가 어렵습니다. 애늙은이라고 하지요. 너무 조심하고 미리 대비하면서 살지 말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한번 살아보세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다 보면 옆 사람이 질문자의 어떤 행동에 대해서 불편함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때 상대가 나에게 문제를 제기하면 고치면 되는 거예요. 예를 들어 내가 좋아서 여자 친구 어깨에 손을 살짝 올렸는데, 여자 친구는 나와는 다르게 ‘손 내려, 터치하지 마.’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안 물어보고 터치하면 안 되는구나!’ 하고 알면 됩니다. 그런데 행동도 하기 전에 미리 ‘여자 친구에게 터치하면 안 되지.’ 하고 아무것도 안 하면 실제로 여자 친구의 마음이 어떤지 알 길이 없어집니다. 일단 뭐든지 해보시기를 바랍니다. 해봤는데 상대방이 싫어하면 ‘아, 싫어하는구나.’ 하면 되고, ‘나는 좋아서 했지만, 세상에서는 하지 말라고 하는구나.’ 하고 배우면 됩니다. 내가 미리 ‘이것은 하면 안 돼, 저것은 하면 안 돼, 잘 보이려면 이렇게 해야 해.’하면서 조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백 가지 정도 예상을 하고 대비해도 실제 세상 사람들은 질문자처럼 생각을 안 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생각을 지나치게 많이 한다고 볼 수 있어요. 아마 백 가지 중에 질문자와 비슷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서른 가지도 안 될 거예요.

부처님은 딱 다섯 가지만 말씀하셨습니다. ‘남을 때리거나 죽이지 말라’, ‘남의 물건을 뺏거나 훔치지 말라’, ‘성추행이나 성폭행하지 말라’, ‘욕설하거나 거짓말을 하지 말라’ 마지막으로 ‘술을 마시고 취한 행동을 하지 말라’입니다. 이 다섯 가지만 빼고는 너무 남 눈치 보지 말고, 또한 남의 행동에도 간섭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는 이것보다 규칙이 더 많이 주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다섯 가지만 지켜도 세상에서의 갈등이 90퍼센트 이상 없어질 겁니다.

여러 상황에 대비해서 미리 너무 많이 고려할 필요는 없어요. 질문자가 말한 ‘겸손’이라고 하는 것도 상관과 부하직원 같은 지위를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면 나보다 높은 사람을 만나면 기가 죽게 됩니다. 그건 겸손이 아니라 ‘비굴’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나보다 지위가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 앞에서는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서 교만해집니다. 이럴 때 비굴하지 말고 당당하게 살라고 하지요.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게 살라고 합니다. 그런데 교만과 겸손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면 되는 거예요.”

“어렵네요.”

“예를 들어 상관과 부하를 다르게 보지 않고 똑같이 본다는 말입니다. 돈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 학생과 교수도 똑같이 보는 거예요. 그렇게 보면 나보다 지위가 높거나 낮다고 해서 다르게 대하지 않고 그냥 한 사람으로 대하게 됩니다. 나는 그냥 한 사람으로 대한 것뿐인데, 세상 사람들은 ‘저 사람은 높은 사람 앞에서도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도 특별히 잘난 척하지 않고 똑같이 대하면, 세상 사람들은 ‘저 사람 참 겸손하다.’라고 평가를 합니다.

그러니까 ‘당당함’과 ‘겸손함’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사과는 사과로 보고 배는 배 그대로 보면 되는 거예요. 사과가 더 좋고 배가 더 나쁘다고 보지 않고 똑같이 보는 겁니다. 차별이 존재하는 세상 속에서도 나는 차별하지 않고 원래 존재 그대로 평등하게 대하면, 세상 사람들이 나를 볼 때 ‘높은 사람 앞에서는 당당하고 낮은 사람 앞에서는 굉장히 겸손하네.’라고 말하는 겁니다. ‘겸손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겸손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질문자가 하고 싶은 대로 했는데, 누가 ‘너 좀 거만하네.’라고 하면 조금 겸손하면 되고, ‘너 좀 비굴하네.’라고 말하면 당당하게 살면 됩니다. 이렇게 하면서 자연스럽게 균형점을 찾아가는 거예요. 젊은이가 처음부터 겸손하고 당당하게 살기는 쉽지 않습니다. 작은 일이라도 처음부터 잘되지는 않습니다.

예전에 짚으로 새끼를 꼬아서 끈을 만들었는데, 그것도 처음부터는 잘되지 않습니다. 두 손으로 자꾸 새끼를 꼬아 봐야 실력이 느는 거예요. 사람들의 평가에 ‘그것도 일리가 있네.’ 하고 받아들이면 너무 휘둘린다고 하고, 또 내 나름대로 중심을 잡는다고 하는데, 남이 볼 때는 ‘고집쟁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고집쟁이’나 ‘휘둘린다.’ 하는 것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남의 말을 들어야 할 때인데, ‘자기중심을 잡는다.’라고 하면 남이 볼 때는 ‘고집이 세다’고 하고, 지금은 중심을 잡아야 할 때인데, 남의 말을 들으면 ‘귀가 얇다’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게 딱 맞춰서 되지 않습니다. 많은 경험을 쌓아가면서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이게 바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중도(中道)’라는 거예요.

중도는 이론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외줄타기할 때 안 떨어지고 잘 타는 방법은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똑바로 줄을 밟고 가는 것입니다. 말로는 ‘똑바로 가면 됩니다.’라고 한마디로 할 수 있지요. 그런데 실제로 줄 위에 올라가 보면 잘 안됩니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가능하니까 금방 되나요? 그것도 아닙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지만, 몸과 마음으로 익히기까지는 많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저렇게 하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그래도 또다시 올라가고 또 떨어지고 또 올라가고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스스로 적절하게 균형을 잡으면서 걷게 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질문자는 아직 젊습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은 젊은이에게 함부로 살라고 하는 뜻이 아닙니다. 너무 조심하고 미리 대비하고 이것저것 고려하면서 움츠러들지 말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한번 해보라는 겁니다. 그러다가 옆에서 누군가 주의를 주거나 방법을 알려 주기도 합니다. 저도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이렇게 즉문즉설을 합니다. 질문에 답을 한창 하고 있는데, 옆에서 ‘시간이 되었습니다.’ 하는 쪽지가 들어올 때가 있어요. 그렇다고 무조건 그만해야 하나요, 계속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야 하나요? 너무 시간에 쫓기면서 답하기 바쁘면 내용에 재미가 없어지겠지요? 가능하면 정해진 시간을 맞춰야 합니다. 저는 오래 했기 때문에 이제는 상황을 보면서 적절하게 조절할 수 있게 되었어요. 예를 들어 ‘질문할 사람 손 드세요.’ 했는데, 아무도 손 드는 사람이 없으면 끝날 때가 되었다는 거겠죠. 반대로 손을 많이 들고 질문을 하려고 하는데, 저 뒤에 사람들이 한 사람씩 빠져나가는 게 보여요. 그러면 청중이 갈 시간이 되었다는 뜻이겠죠. 이럴 때는 상황을 잘 살펴서 질문이 많아도 그냥 끝내기도 하고, 또 사람들은 들을 준비가 되어 있는데 질문이 없으면 그때도 끝냅니다. 제가 제일 짧게 강연했을 때는 15분 만에 끝냈을 때도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질문해서 대화를 했는데 다음 질문이 없어서 그냥 끝낸 것이었어요(웃음). 제가 일방적으로 강연을 하는 게 아니라 서로 대화하는 자리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더 이상 대화하지 않겠다는데 굳이 계속할 이유가 없는 거지요. 그리고 제가 강사료를 받으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하지만, 저는 그게 아니니까 누구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대화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마음껏 하고 없으면 가면 됩니다. 결국 이런 것을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조절하는 겁니다.

근데 실제로는 말처럼 단번에 되지는 않습니다. 많은 경험을 쌓아야 해요. 그냥 무턱대고 반복하는 경험이 아니라, 하면서 다른 사람 얘기도 듣고 수정도 하고 바꿔가면서 유연하게 해야 합니다. 똑같은 방식만 고집스럽게 반복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입니다. 경험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수정하고 고쳐가면서 해봐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물리가 트이다’라고 하듯이, 어느 순간 저절로 아는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자동차를 고치는 사람이 물리가 트이면 시동 소리만 들어도 ‘어디가 고장 났네.’하고 알게 됩니다. 의사가 물리가 트이면 환자가 딱 들어올 때 얼굴 색깔만 봐도 ‘이거 무슨 병이구나.’하고 어느 정도 짐작이 됩니다. 물론 요즘처럼 기계로 검사해서 아는 수준은 물리 터졌다고 볼 수는 없겠죠. 그래서 무턱대고 하는 경험이 아니고 항상 수정해 가면서 연습해 봐야 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질문자도 젊은이답게 도전도 해보고 이렇게 저렇게 궁리하면서 연습하듯이 직접 해보면 됩니다. 그리고 잘못하게 되면 가볍게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시 해보겠습니다.’라고 얘기하면 됩니다. 너무 무겁게 살지 말고 가볍게 살아보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이것저것 눈치 보고 망설이지 말고 도전해 보시고, 옆에서 주의를 주는 것도 잘 들어봐야 하겠지요?”

“네, 잘 들어야 합니다.”

“무조건 복종하라는 의미가 아니고 ‘가볍게 받아들이기’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교수님께서는 이런 관점이구나, 이 친구는 이렇게 보는구나!’ 하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이렇게 할 때 그 경험이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청중과의 대화가 끝나고 책 사인회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싸인을 받기 위해 줄을 길게 섰습니다. 싸인을 받으며 스님께 고맙다든지 건강하십시오라며 스님께 인사를 했습니다.

이후 즉문즉설 강연을 준비한 행복시민들과 단체 기념 촬영을 하고 강연 전체 일정을 마쳤습니다. 밤 10시가 되어서야 스님은 차량에 탑승해 서울로 출발했습니다. 서울 서초동 정토회관에 도착하니 새벽 1시가 넘었습니다. 오늘 스님의 하루는 두북에서 출발해 경남 하동에서 애광원 나들이를 하고, 광주로 이동해 강연을 마친 후 서울에 도착한 긴 여정이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불교대학 온라인 즉문즉설이 있고, 오후에는 부처님오신날 전야 문화제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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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광(달빛)사실에 깨어 있겠습니다

스님의 하루팀분들 영상팀분들 스님과 함께하신 모든분들 일체중생 자연의 한량없는 은혜속에 오늘도 살아있어 스님의 하루를 읽을 수 있어행복합니다. 내 주를 가까이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찬송가 들으니 감동의 눈물이 납니다. 고맙습니다.

2026-05-25 08:33:56

길상화

감사합니다

2026-05-25 08:28:31

손경희

잘 읽었습니다. 가볍게 사는 지혜를 주신 스님께 고마운 마음입니다. 지금, 여기에 깨어있으면서 모든 만물을 평등하게 보는 관점을 놓치지 않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26-05-25 08:2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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