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02.19. 백일법문 3일째, 수행법회, 평화재단 연구세미나
"남편의 코인 투자로 전 재산을 잃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법륜스님의 백일법문 3일째 날입니다. 하루 종일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종교인 모임과 수행법회, 평화재단 행사가 열렸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오전 7시에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목사님, 신부님, 주교님, 교령님, 교무님이 차례대로 지하 1층 식당에 도착했습니다.

평화재단 실무자들이 정성껏 준비한 아침 밥상으로 식사를 한 후 평화재단 회의실로 자리를 옮겨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종교인 모임의 좌장인 박남수 교령님이 여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오늘이 을사년이 시작되고 첫 모임입니다. 올해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 해입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지 120년, 1945년 광복이 된 지 80년, 1948년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지 77년이 되는 해입니다. 역사적인 의미를 보면 올해가 정말 중요한 해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의미 있는 한 해를 시작하는 첫 모임이니까 이에 맞는 의제를 스님께서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함께 논의해 보고 싶은 의제를 제안했습니다. 우선 7월에 열리는 국제화해학회 종교분과 콘퍼런스에 어떻게 참여할 것인지 세부 프로그램을 공유하고 의논했습니다.

콘퍼런스의 주제는 ‘아시아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 간 대화’입니다. 스님은 지난 20년 동안 종교인 모임이 해온 일에 대해 이야기하며 스리랑카에도 이와 비슷한 모임이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남한과 북한의 화해를 위해서 남과 북의 종교인이 만나는 일도 중요하지만, 남한 내부의 각 종교 간의 대화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난 20년간 종교인 모임을 해왔습니다. 평화재단 종교인 모임이 그동안 해온 일은, 첫째, 종교인들이 협력하여 남북 간의 대화를 이끌어 내고 화해를 주도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종교인이 남북 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종교인이 갈등을 부추겨서 대결 구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화해를 주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남북 교류뿐만 아니라 종교인들 간에 다양한 교류 활동을 주도해 왔습니다. 둘째, 여러 종교인들이 서로 대화하면서 북한에 대한 인도적인 지원을 해왔습니다. 셋째, 국민 통합을 위해서 진보와 보수의 갈등을 화해시키는 데에 역할을 해왔습니다. 서로 적대시하는 분위기를 서로 화해하고 협력하는 분위기로 전환하는 역할을 하자는 취지에서 오늘날까지 종교인 모임을 이어왔습니다.

제가 2023년에 스리랑카를 방문했는데요. 저희 모임처럼 스리랑카에도 비슷한 활동을 하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극한의 내전 상황에서도 스리랑카의 국민 통합을 위해서 이슬람교, 힌두교, 가톨릭, 불교 등 여러 종교의 지도자들이 대화하는 모임을 운영하고 있는데, 저는 그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들어보면 저희가 배울 점이 많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국제화해학회에 그분들을 초대해서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어서 오늘 본격적으로 논의해 보고자 하는 의제를 제안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회 혼란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까요?

“오늘 논의해 보고 싶은 주제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어떻게 하면 현재 상황에서 탄핵 국면을 좀 평화롭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만약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인용되지 않는다면 나라가 대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반대로 탄핵이 인용되면, 인용되지 않을 때보다야 덜하겠지만 보수 세력의 반대가 계속해서 거세질 것입니다. 이어지는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도 진보가 이기면 보수 쪽에서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할 것이고, 진보가 져도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아무리 국회에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한 정당이라 하더라도 대선에서 지면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처럼 전 국민이 양분되어 갈등이 커질 것입니다. 그래서 제일 좋은 방법은 바로 윤석열 대통령이 스스로 하야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국정이야 어떻게 되든 모르겠다는 지금과 같은 입장이 아니라, 스스로 하야를 함으로써 사회 혼란을 잠재우는 역할을 해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그러면 자신도 재판에서 정상 참작이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한다면 윤석열 대통령이 적어도 그런 정도의 결단을 해줘야 합니다. 물론 이러한 결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비상계엄이라는 자충수를 저지르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사회 혼란을 조금이라도 막으려면 윤석열 대통령을 설득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둘째,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 국면에서 종교인 모임이 어떤 역할을 해야 나라가 안정을 되찾을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현재와 같은 제왕적 대통령제는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계속해서 문제를 발생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대통령의 권한 일부를 총리와 내각에 이관시키고, 중앙 정부의 권한을 지방으로 분권화시키고, 승자독식의 선거법을 개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다음 대선까지 시간이 짧기 때문에 모두 한꺼번에 개정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하는 헌법 개정만은 빠르게 이뤄내야 합니다. 그래서 대통령 선거와 동시에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를 함께 시행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새로 선출된 대통령이 곧바로 제7공화국을 출범해서 선거가 끝난 후 누가 이기고 지든 정쟁을 완화해 가는 방향으로 가야 나라가 덜 시끄러워질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저희가 조용히 뒤에서 설득하는 쪽으로 행동하는 게 나은지, 사회 원로들이 모여서 성명서를 내고 공개적으로 행동하는 게 나은지, 어떤 방법이 좋을지 함께 토론을 해보면 좋겠습니다.”

목사님, 신부님, 주교님, 교령님, 교무님, 모두 각자의 의견을 자유롭게 이야기했습니다.

종교인 분들 모두가 제왕적 대통령제의 한계를 지적하며 헌법 개정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였지만, 이행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조금 더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아직 헌법재판소에서 대통령의 탄핵 인용 여부에 대한 판결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기로 하고 논의를 마쳤습니다.

스님은 종교인 분들을 배웅한 후 3층 설법전으로 향했습니다. 설법전에서는 오전 9시부터 한 시간 동안 사시예불을 한 후 잠시 자리정돈을 하고 있었습니다.

250여 명의 대중들이 자리한 가운데 오전 10시 15분이 되자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낭독하며 수행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도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여 온라인으로 참석했습니다. 대중들은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점점 심화되고 있는 기후 위기의 징조들과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이후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국제사회에 대해 언급하며 지금처럼 사회가 혼란스러운 시대에 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 중요한지 강조하며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괴로워하고 힘들어하는 것은 전부 물질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게 아닙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괴로움의 해결책을 전부 물질적인 것에서 찾고 있습니다. 내가 돈이 더 있으면 또는 집이 더 크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리석음과 중독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

정말로 생계가 어려워 괴롭다면 물질적인 지원이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밥을 못 먹어서 삐쩍 마른 사람에게는 식량을 주면 됩니다. 이것은 물질적인 지원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너무 많이 먹어서 살이 쪄서 건강이 위험하다면 물질적인 지원으로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비만은 스스로 욕구를 조절해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인이 맛에 중독되어 있으면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영양실조를 퇴치하는 것보다 비만을 퇴치하기가 훨씬 더 어렵습니다. 뭔가 부족한 것을 해결하는 일보다 과잉인 것을 해결하기가 더 어려운 법입니다.

어리석음과 중독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정신적인 치유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대부분의 종교는 무언가를 빌면 들어준다는 식의 소비주의를 부추기는 방식을 추구해 왔습니다. 어리석음과 중독성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은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그 해법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그 가르침에 따라 수행 정진하는 것은 어떤 종교적인 의미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개인의 자유로운 삶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인류의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입니다.

정토회 회원들은 이런 관점을 갖고 꾸준히 정진해 왔습니다. 새해에는 더 집중해서 이 좋은 법을 이웃에 널리 전하기 위해서 2025년 한해를 특별 정진 기간으로 정했습니다. 첫 100일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좀 더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백일 법문을 하고 있습니다. 100일 동안 자기 정진도 열심히 해야겠지만 그와 함께 전법을 열심히 하는 것도 무척 중요합니다. 정토불교대학 접수 마감이 이제 2주일 남았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첫 출발인 정토불교대학에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도록 여러분 모두 적극적으로 전법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온라인에서 두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남편의 코인 투자로 전 재산을 잃어서 허탈한 마음이라며 어떻게 하면 편안해질 수 있는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남편의 코인 투자로 전 재산을 잃었습니다.

“저와 남편은 아이 두 명을 키우면서 집을 마련하고자 돈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남편이 코인 투자를 해서 전 재산에 가까운 돈을 잃었습니다. 남편은 투자금뿐만 아니라 저 몰래 대출을 받고 노후 대비 연금도 해지했습니다. 심지어 제가 하지 말라고 했던 코인 선물까지 했습니다. 지금도 믿기지 않을 만큼 충격이 큽니다. 남편이 큰돈을 날린 것은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남편은 결혼 전에도 결혼 자금을 날린 적이 있는데, 그때도 지금처럼 미안하다고 사과했습니다.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이 느껴지고 무기력해지면서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허탈합니다. 아이들을 생각해서 다시 한번 마음을 잡아볼까 싶다가도 믿음을 저버린 남편과 돈 문제가 또 발생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같이 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아이들과 제가 편안해질까요?”

“편안한 것이 목적입니까?”

“저도 편안하고 아이들도 잘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그냥 편안하면 됩니다. 편안한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남편이 결혼 전에 결혼 자금을 날렸다면 그때 딱 감을 잡았어야지요. 그러면 결혼식 날짜를 잡아놨더라도 결혼을 그만뒀어야지요. 그런데 ‘결혼식 날짜를 잡아놓고 파혼을 어떻게 해!’하고 여기까지 와서 일이 더 크게 벌어진 거예요.

그러면 지금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그만두는 것이 낫겠다고 결정하고 이혼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둘째, 첫 번째 돈 사고를 쳤을 때도 파혼하지 않고 지금까지 잘 살아왔으니까 또 살아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남편이 다음번 사고를 치기까지 좀 더 살다가 그때 가서 그만두는 거예요. 그때 그만두더라도 그동안 아이들을 잘 키웠으니까 좋은 일입니다. 셋째, 남편이 다음 사고를 또 치더라도 ‘지금 이 사고를 치고도 살았는데, 더 못 살 이유가 없다’ 하고 생각하며 계속 같이 사는 거예요. 잠잠하다가 남편이 또 사고를 치면 ‘한번 사고 치고도 살고, 두 번 사고 치고도 살았는데, 한 번 더 사고를 친다고 못 살 이유가 없다’ 하고 생각하면 죽을 때까지 같이 살 수도 있습니다.

질문자가 편안하게 사는 데 있어서는 남편이 사고를 치고 안 치고가 아무런 문제가 안 됩니다. 첫 번째 사고를 치고 나서 지금까지 굶고 살았다면 편안하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첫 번째 사고를 쳤을 때도 집세를 내면서 애도 낳아서 키웠습니다. 또한 두 번째 사고를 쳤다고 해서 당장 길거리에 나앉아서 천막 치고 사는 것도 아닙니다. 객관적 사실만 놓고 보면 별문제가 아니에요. 그래서 ‘남편이 사고를 안 치면 살 거야!’ ‘남편이 사고를 치면 안 살 거야!’ 이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남편이 앞으로 사고를 날마다 칠 건 아니잖아요. 지금 반성했으니까 사고를 치더라도 10년 후에나 칠 거예요. (웃음)

그런데 질문자가 이번 일로 남편을 문제 삼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오히려 남편이 사고 치는 횟수가 잦아집니다. 사고 치는 시간의 간격이 짧아져요. 왜냐하면 남편을 자꾸 문제 삼을수록 남편은 대박을 쳐서 아내에게 나의 능력을 보여주고 싶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고를 빨리 치게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가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요. 그런데 다음부터는 어떻게 할래요?’ 이렇게 물어보면서 남편을 문제 삼지 않게 되면, 압박을 덜 받기 때문에 당장 본전을 찾아야겠다는 생각도 덜 하게 됩니다. 물어보고 남편이 앞으로는 안 하겠다고 하면 계속 같이 살면 됩니다. 그러나 남편이 앞으로 사고를 안 친다는 보장은 없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의 마음속에 ‘이번 한 건만 잘하면 어려움을 다 극복할 텐데!’ 하는 유혹이 계속 생기기 때문입니다. 질문자의 말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이번에 내가 제대로 한탕해서 과거에 잃은 돈까지 보상받아서 아내에게 내 능력을 보여주겠다’ 하는 유혹을 갖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또 사고를 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남편이 거짓말을 한 게 아닙니다. 지금은 사고를 안 치겠다는 게 실제의 마음이에요. 그 말을 못 믿으면 안 돼요.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점점 유혹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둘이나 있다고 하니까 그냥 계속 살아봐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옛날이야기를 보면 아이가 둘일 때까지는 아내가 도망을 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아이가 둘일 때는 양쪽으로 한 명씩 아이를 안고 도망을 가면 되는데, 아이가 셋이면 아이 하나 때문에 도망을 못 갑니다. 질문자는 아이가 두 명이라서 도망갈 가능성이 좀 있기는 한데, 그래도 제가 볼 때는 그냥 살아봐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남편이 다음부터는 절대로 사고를 안 치겠다는 말을 믿어서 같이 산다는 결정을 내리면, 다음에 사고를 쳤을 때 ‘또 나를 실망하게 했다!’ 이렇게 됩니다. 그러지 말고 남편에게 ‘사고를 쳐서 재산을 날렸지만, 아직 밥은 먹으니까 열심히 해보십시오’ 이렇게 격려를 해주고 그냥 아이를 키우고 사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 남편이 아무 재산이 없는데 질문자에게 양육비를 줄 형편도 안 되잖아요. 지금은 이혼을 해봤자 실익이 별로 없습니다. 남편이 양육비를 줄 형편도 못 되기 때문에 이혼을 하게 되면 질문자 혼자서 애 둘을 책임져야 합니다. 그럴 바에야 같이 사는 것이 낫습니다. 굳이 남편을 버릴 이유가 없어요. 남편이 집에서 애라도 보게 하는 게 낫습니다. 지금은 남편을 살살 달래서 같이 살다가 재산이 조금 모여서 반만 딱 나눠도 남편 없이 살 수 있겠다 싶을 때 그때 이혼을 생각해 봐야죠. 남편이 괘씸한 건 이해가 되는데, 지금은 질문자가 이혼한다고 실익이 하나도 없다는 겁니다. 질문자의 생각은 어때요?”

“맞는 말씀입니다.”

“숨겨놓은 재산이 좀 있어요?”

“없어요.”

“그러면 이혼해서 뭐 해요? 남편에게 애라도 보게 하고, 밤에 잠이라도 같이 자는 게 이익이잖아요. 지금 이혼하면 아이들은 누가 볼 것이며, 지금 질문자의 나이가 젊은데 밤마다 느끼는 외로움은 어떻게 해결할 겁니까? 남편을 믿을 수 있거나 남편을 좋아해서 같이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남편이 비록 많은 실망을 주었지만 실익을 생각하면 이혼하는 것은 실속이 없는 선택이라는 겁니다. 좀 더 같이 살아보고 나중에 실익이 있는지 따져 봐서 결정하는 게 좋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이미 결혼을 했으니까 이혼은 하면 안 된다’ 하고 생각하는 것은 현실적인 접근법이 아닙니다. 저는 지금 질문자에게 아주 현실적으로 얘기하는 거예요. 질문자의 생각은 어때요?”

“맞는 말씀입니다.”

“남편을 믿을 수 있어서 같이 산다기보다는 지금 이혼해 봐야 별로 이익이 없다는 겁니다. 애들한테도 아빠가 있는 것이 좋잖아요. 그런 역할 정도만 해줘도 감사한 일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남편의 등을 두드려 주고 격려를 해주어야 밖에 가서 막노동이든 무슨 일을 해서라도 돈을 조금이라도 벌어옵니다. 지금은 남편을 야단치기보다는 오히려 살살 달래서 같이 데리고 사는 게 당분간은 낫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제가 이런 주제로 여러분과 대화를 하니까 다른 스님들이 저를 보고 ‘스님이 부처님 법을 얘기해야 하는데, 법륜스님은 왜 부처님 법은 얘기하지 않고 세상 사람들이 사는 얘기만 하고 있습니까?’ 이렇게 묻습니다. 그런데 이것도 다 부처님 법이에요. 부처님 법이 우리의 삶과 따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지금의 감정에 휩쓸리면 어리석은 행위를 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제1의 화살은 맞을지언정 제2의 화살은 맞지 마라.’

사람들은 감정에 휘둘려서 두 번째, 세 번째 손실을 계속 입게 됩니다. 이미 첫 번째 손실이 생겨 버렸다면 두 번째 손실은 안 생기도록 하는 것이 현명한 사람입니다. 이것을 주식에서는 ‘손절매’라고 합니다. 주식이 원래 산 가격보다 내려가서 지금 천 원을 손해 보고 있다고 합시다. 좀 더 두면 오천 원을 손해 보겠다 싶으면 천 원만 손해 보고 주식을 파는 게 이익이에요. 이것을 손절매라고 합니다. 인생은 손절매를 잘해야 합니다. 꼭 돈을 벌어야 이익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손해를 보긴 하지만 적게 손해를 보는 것도 이익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부분 손절매를 못 합니다. 손해를 보는 게 싫으니까 본전을 찾을 때까지 계속 시도를 합니다. 그래서 천 원 잃을 것을 만 원 잃고, 천만 원 잃을 것을 일억 잃는 일이 발생하는 거예요. 노름을 하다가 가진 돈을 어느 정도 잃어버렸을 때 손 털고 집에 오면 손실이 적은데, 본전을 찾을 생각에 집을 담보로 해서 한 판만 더 하다가 결국 집도 날리는 일이 생기는 겁니다.

인생은 절대로 계획대로 안 됩니다. 손해가 날 때도 있고 이익이 날 때도 있는데, 이익에 너무 욕심을 내면 오히려 손해가 납니다. 이익도 적당하게 보고 멈춰야 해요. 주택을 사서 집을 팔 때도 적당한 이익에서 멈추고 관심을 끊어야 합니다. 더 손실이 더 나겠다고 판단이 되면 지금까지의 손실을 감수하고 딱 손을 떼야 합니다. 당장은 손해를 본 것 같지만, 멀리 보면 오히려 이익을 본 것이 됩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예요. 연애하다가 생기는 징후를 보고, 위험하겠다는 판단이 들면 멈춰야 합니다. 그런데 결혼식 날짜까지 잡아놓고 어떻게 결혼을 깨냐고 말합니다. 그래서 결혼을 하면 중간에 이혼을 하고 싶어도 이제 애가 문제가 됩니다. 결혼 전에는 결혼 날짜가 문제였는데, 이제는 또 애가 문제가 되는 거예요. 앞으로 좀 더 살다 보면 이제 또 다른 게 문제가 되겠지요. 그래서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 ‘그때 그만둘걸!’ 하고 후회해 봐야 소용없습니다.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은 되돌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질문자도 ‘결혼 전에 그만두지 못한 것처럼 지금도 끌고 가 봐야 소용없다. 지금 그만두는 것이 낫겠다!’ 이렇게 판단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질문자의 얘기를 들어보니까 전 재산을 다 털고 아무것도 없는데 지금 이혼을 해봐야 실익이 없습니다. 그냥 같이 살면서 생활비라도 조금 받아내고, 집안일이라도 하게 하는 게 좋습니다. 좀 더 같이 살아보고 나중에 이혼하든지 하고, 좋으면 계속 살면 됩니다.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정해진 법이 없습니다. 수행이란 선택권을 항상 내가 갖는 것입니다. 이 선택권을 지금 써버릴 것인지, 좀 두고 쓸 것인지, 끝까지 안 쓸 것인지, 모두 내가 결정하는 거예요. 어떤 경우에도 결정권자가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합니다. 상대방이 바람을 피워서 이혼했다고 생각하면 결정권자가 내가 아니라 상대방이 됩니다. 내가 상대방 때문에 이혼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이것은 수행적 관점이 아닙니다. 어떤 사건이 생겼을 때 내가 어떻게 할 것인지는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내가 결정해야 아무 뒤끝이 없어요. 그렇지 않으면 피해 의식이 남습니다. ‘저 인간만 사고를 안 쳤으면 벌써 집도 사고 잘 살았을 텐데!’ 이렇게 생각하면 계속 원망이 남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남편과 계속 살 것인지 헤어질 것인지를 내가 결정하게 되면, 더 이상 과거를 갖고 얘기하지 않게 됩니다. 질문자는 어리석게 살래요? 똑똑하게 살래요?”

“똑똑하게 살겠습니다.”

“그러면 지금 남편에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야단을 쳐야 할까요, 살살 달래야 할까요?”

“살살 달래서 역할을 주면서 살아보겠습니다.”

“이혼을 하더라도 충분히 이익이 될 때 해야 합니다. 지금은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요. 이번에는 봐줄 테니까 앞으로 잘하세요’ 이렇게 남편을 살살 달래면서 사는 게 좋습니다. 살아보고 좋으면 계속 같이 살면 됩니다.”

“네, 잘 알았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12시가 다 되었습니다. 다음 주 수행법회를 기약하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점심식사를 한 후 오후 1시부터는 9층 강당에서 ‘제7공화국 준비, 새로운 헌법’을 주제로 열린 평화재단 2월 공개강좌에 참석했습니다. 한동대학교 이국운 교수님이 ‘리갈리즘에서 책임정치로’라는 제목으로 주제 강연을 했습니다.

이 교수님은 한국 정치가 ‘리갈리즘(legalism)’이라는 법률 중심의 정치 행태에 깊이 빠져 있으며, 이는 법을 통해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는 구조를 만들어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스님은 교수님의 강의 내용을 경청한 후 열정적으로 강의를 해준 교수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평화재단 2월 공개강좌를 마쳤습니다.

오후 4시부터는 평화재단 기획위원회 회의에 참석하여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 현황과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이후 남북 관계와 북미 관계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 속에서 평화재단의 역할에 대해 두 시간 동안 토론을 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나니 해가 저물었습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들이 백일법문을 듣기 위해 정토사회문화회관을 찾아왔습니다.

저녁 7시 30분에는 저녁반 수행법회 생방송을 3층 설법전에서 시작했습니다. 350여 명의 대중이 자리한 가운데 스님이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오전 법회처럼 기후 위기와 급변하는 국제사회 속에서 수행자는 어떻게 중심을 잡고 살아가야 하는지 이야기한 후 대중들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한 시간 동안 두 명이 질문을 했는데요. 한 명은 온라인에서 질문을 하고, 한 명은 현장에서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이혼을 한 후 13살 연하의 남자 친구를 사귀었는데 얼마 전 이별을 했다며 이별의 아픔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13살 연하 남친과 헤어지고 너무 괴로워요

“제가 이혼하고 나서 13살 연하인 남자 친구를 사귀었어요. 남자 친구도 이혼한 상태였고, 처음에는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사귀었어요. 하지만 그 사람은 대를 이어가야 하는 장손이라 좋은 배필이 생기면 보내주는 조건으로 만났는데, 만날수록 욕심이 났습니다. 그래서 지난번에 이 욕심을 어떻게 해야 할지 스님께 질문드렸더니, 인연이 될 때까지 만나고 인연이 끝나면 ‘그동안 고마웠고 행복했다, 잘 가라’ 이렇게 하라고 하셨거든요. 그 후 2년 만에 이별했는데요. 지금 많이 힘듭니다. 자꾸 찾아오는 추억들이나 이런 것을 어떻게 하면 내쫓을 수 있을까요?”

“젊은 남자하고 2년간 사귀면서 재미를 보았으면 그 정도의 과보는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요?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는 법입니다. 앞으로 2년간은 추억 속에서 사세요.”

“2년씩이나 괴로움을 감수해야 해요?”

“즐거운 시기를 2년이나 보냈으니까 괴로운 시기도 2년을 보내야죠.”

“아무 때나 자꾸 찾아오는 기억을 어떻게 하지요?”

“원래 기억이라는 것은 아무 때나 찾아오는 거예요. 기억나는 것을 제어할 수 있다면 누구나 기억을 안 하고 살겠지요. 나쁜 기억을 갖고 사는 사람도 있는데, 질문자는 좋은 기억을 갖고 못 살 이유가 뭐가 있어요? 다 배부른 소리입니다. 좋으면 좋은 것에 대한 과보가 따르고, 나쁘면 나쁜 것에 대한 과보가 따르는 게 이치입니다. 어떻게 좋은 것만 계속 가질 수 있겠어요? ‘재미를 봤으니까 과보가 따르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니 별일 아니에요. 누가 나를 두드려 패는 것도 아니고, 누가 내 재산을 훔쳐 간 것도 아니고, 누가 날 성추행한 것도 아니고, 누가 나한테 욕설을 한 것도 아니잖아요. 너무 그리우면 찾아가서 만나보면 되잖아요.”

“장가를 가겠다고 소개팅을 하고 있는 중이라 제가 찾아갈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결혼한 남자도 이혼시키고 사는 세상인데 그것이 무슨 상관이에요? 내가 너무 아프면 그렇게라도 해야지 어떡할 거예요? 가서 멱살이라도 잡고 끌고 와서 살면 되지요.”

“제 심정은 그렇게라도 하고 싶습니다.”

“심정대로 해보지 그래요?”

“양심적으로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요.”

“그렇게 해도 괜찮아요.”

“괜찮아요?”

“범죄를 저지르는 것도 아닌데요, 뭐.”

“기도라도 하고 싶어요”

“뭐 그런 일로 기도까지 하려고 그래요? 너무 보고 싶으면 전화하면 되고, 그래도 보고 싶으면 만나면 되고, 너무 같이 살고 싶으면 울면서 하소연을 하면 됩니다. 남자의 부모가 자꾸 애가 필요하다고 요청하면 아이를 입양하면 됩니다. 안 그러면 남자한테 어디 가서 애 하나만 만들어 오라고 하세요. 그리고 ‘내가 키워줄게’ 이러면 돼요. 길은 수천, 수만 가지가 있습니다.

다만 이렇게 나이 차이가 나는 사람과 2년 사귀다가 이 정도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보면, 5년 살다가 헤어지면 5년의 대가를 지불할 것이라는 점을 예상할 수가 있습니다. 10년 살다가 헤어지면 또 그만한 아픔의 대가를 지불하게 될 거예요. 그러니 조금 더 재미를 보고 조금 더 크게 대가를 지불하든지, 이 정도의 즐거움만 누리고 이 정도의 대가만 지불하든지, 그것은 질문자가 선택할 문제입니다. 10만 원을 빌려서 쓰고 10만 원을 갚는 게 나은지, 쓰다 보니 재미가 있으니까 100만 원을 빌려와서 쓰고 나중에 100만 원을 갚는 게 나은지, 더 재미가 붙어서 1,000만 원을 빌려다 쓰고 나중에 1,000만 원 갚는 게 나은지, 그건 질문자의 선택입니다. ‘돈을 빌려 썼더니 갚으려니까 힘드네. 이 정도 선에서 멈춰야겠다’ 하면 지금이라도 멈추면 됩니다. 미련이 남아서 한 번 더 하는 것은 본인의 선택입니다.”

“2년 좋았으니까 2년 아프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생살이에는 공짜가 없습니다. 길을 가다가 돈을 주우면 언젠가는 돈을 잃는 날이 오고, 갑자기 누군가 이유 없이 도와주면 횡재했다 싶지만 언젠가는 내가 이유 없이 손실을 보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 어떤 사람한테 이유 없이 욕을 먹어서 억울해도 너무 억울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살다 보면 어떤 사람한테 이유 없이 칭찬 듣는 일도 생기게 됩니다. 종합해서 평균을 내보면 인생은 모두 평균 점수가 똑같아요. 법륜스님의 인생 평균이나 여러분들의 인생 평균이나 다 똑같습니다. 여러분들은 ‘법륜스님은 유명해서 좋겠다’ 하고 생각하지만, 유명한 법륜스님은 길거리에 나가서 밥도 한 그릇 자유롭게 먹기가 힘들어요. (웃음)

여러분은 좋은 옷을 입고 싶어 하죠? 그런데 좋은 옷을 입고 다니면 불편한 점이 많습니다. 주스라도 묻으면 닦느라고 정신이 없어요. 애를 데리고 다니다가 갑자기 애가 넘어지면서 주스를 쏟았다고 합시다. 좋은 옷을 입고 다니면 내 옷에 뭐가 묻었는지를 걱정할까요? 애가 다쳤는지를 더 걱정할까요? 내 옷에 뭐가 묻었을까를 더 걱정하게 됩니다. 남의 것이 좋아 보이지만 꼭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윤석열 대통령 같은 사람이 안 됐기 때문에 탄핵받을 일도 없고, 감옥 갈 일도 없는 겁니다.

요즘 인공지능 기술을 가지고 서로 경쟁이 치열한데, 그 사람들은 지금 머리가 아픕니다. 맨 앞에 가는 사람은 자기들끼리 1등, 2등 한다고 싸우지만, 10등 밑으로 밀리면 별로 경쟁할 게 없어요. 11등과 12등은 별로 경쟁을 안 합니다. 그러나 1등과 2등은 엄청나게 경쟁을 하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장점과 단점을 모두 종합하면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여러분들도 다 부족한 것 없이 괜찮은 조건에서 살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잘났다는 생각도 버리고, 못났다는 생각도 버리라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은 한 남자가 두 여자하고 사귀거나 한 여자가 두 남자하고 사귀면, 좋아 보이죠? 그냥 옆에서 구경하기에 좋아 보이는 것일 뿐입니다. 정말 좋은지 한번 해보세요. 한 사람도 감당을 못하는데 둘을 감당하기는 더 어렵습니다.

인생은 시야를 크게 해서 보면 아무 차이가 없어요. 하루살이의 일생을 보면, 어떤 것은 낮 12시에 죽는 것도 있고, 오후 4시에 죽는 것도 있고, 어쩌다가 몇 마리는 밤 10시에 죽는 것도 있어요. 하루살이들끼리 보면 수명이 짧은 놈, 수명이 긴 놈, 엄청나게 차이가 납니다. 그러나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어때요? 오후 4시에 죽거나, 밤 10시에 죽거나 모두 오늘 죽는 하루살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오래 살았느니, 일찍 죽었느니, 부자다, 가난하다, 사귀는 사람이 있다, 사귀는 사람이 없다, 이렇게 부러워하기도 하고 교만하기도 하는데, 세세하게 보면 끝이 없습니다. 만약 아주 세세하게 본다면, 얼굴이 아주 아름다운 여성이라 할지라도 땀구멍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구더기 같은 세균이 바글바글해요. 그렇게 자세히 보면 가까이 가기도 싫을 겁니다. 땀구멍마다 구더기가 바글바글 한데 그게 우리 눈에는 안 보이니까 예뻐 보이는 거예요.

구더기를 디테일하게 보면 무게나 길이, 주름 수가 다 다릅니다. 그중에 어느 구더기가 잘생긴 구더기일까요? 멀리 떨어져서 보면 다 고만고만하고, 그 구더기가 그 구더기입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도 가까이서 보면 하나하나 다 다른 것 같지만, 멀리서 보면 그 사람이 그 사람이에요. 늙었다, 젊었다 하지만 얼마나 차이가 나겠어요? 좁게 보면 차이가 나겠지만 크게 보면 별 차이가 없습니다. 가까이서 보고 세세하게 보면 차이가 나고 서로 달라요. 그런데 멀리서 보면 다 같아요. 이것을 ‘불일불이(不一不二)’라고 합니다.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닙니다.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합니다. 깨끗한 것도 아니고 더러운 것도 아닙니다. 깨끗하다고 할 수도 있고, 더럽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깨끗한 것도 아니고 더러운 것도 아니고,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다’라고 하는 것이 ‘공’입니다. ‘깨끗하기도 하고 더럽기도 하고,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하다’라고 하는 것이 ‘색’입니다. 그래서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다’하고 말하는 겁니다.

자세히 봐서 힘들면, 조금 멀리 떨어져서 보면 됩니다. 멀리 떨어져서 보니까 좀 허전하면, 자세히 들여다보면 됩니다.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너무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겁니다.

인연을 지으면 반드시 과보가 따릅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질문자는 ‘조금 사귀다가 헤어지니 괴롭구나. 즐거움을 1년 지속하면 괴로움이 1년 커지고, 즐거움을 2년 지속하면 괴로움이 2년 더 커지겠구나’ 이렇게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즐거움 때문에 괴로움을 같이 가져간다면 어리석은 자입니다. 괴로움을 보고 즐거움마저도 버려야 지혜로운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용기를 내어 솔직하게 질문을 해준 분에게 청중들 모두가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대중들은 모둠별로 동그랗게 둘러앉아 마음 나누기를 하였고, 스님은 설법전을 나와 정토회관으로 향했습니다.

내일은 백일법문 4일째 날입니다. 아침 일찍 평화재단에서 북한 전문가들과 조찬 모임을 한 후, 오전과 저녁에는 ‘예불문’을 주제로 열린법회 3강을 하고, 오후에는 JTS 이사회와 에코붓다 이사회를 할 예정입니다.


2025 3월 정토불교대학

전체댓글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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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주

마나님, 투자사기로 전재산을 날려서 죄송합니다. 부처님 마지막 말씀이 ‘아무도 믿지마라‘ 였다고 들은 것 같은데, 나는 전혀 알지 못하는 사기꾼들에게 재산을 탕진했군요. 불쌍히 여겨 거두어 줘서 감사드립니다. 근데,,, 우리 아이 하나잖아요… 또, 한 아이는 뭐죠?

2025-03-02 20:25:09

지명화

고맙습니다 지금에서 보면 좋고 나쁜 것이 있지만 멀리서 보면 평균적이다... 일희 일비하지 않고 넓은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볼 수 있도록 연습하겠습니다

2025-03-01 11:51:32

권영숙

과거 조상들의 희생이 오늘 우리 현재를 살렸듯, 오늘 우리 국민의 선택은 후손들의 미래를 살리는 일입니다. 그래서 더 긴장하고 신중할 수밖에 없겠지요. 스님의 화합메시지는 마음에 담겠습니다.

2025-02-27 12: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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