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02.08 부탄 트롱사 답사 5일째(누비)
“전공이 적성에 맞는지 고민입니다”

안녕하세요. 부탄 트롱사 답사 5일째입니다. 오늘은 누비(Nubi) 게옥의 지(bji) 치옥, 심푸-다바(simphu-daba) 치옥, 벰지-첼라(Bemji-chella) 치옥을 방문하여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하고 원고를 교정한 후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젬강 콤샤르 지역에서 올라온 농수로 만들기 견적 그리고 업무 진행 상황을 JTS 실무자와 함께 점검했습니다.

오전 8시 30분에 오늘의 첫 번째 답사지인 지(bji) 치옥으로 출발했습니다. 차를 타고 40분을 이동하니 멀리에서 향나무를 태워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하얀 연기가 보였습니다. 마을 입구에 점점 가까워지자 연기 사이로 스님을 기다리고 있는 주민들이 보였습니다.


스님이 차에서 내리자 주민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며 스님 일행을 마을로 안내했습니다. 노래를 부르는 주민들과 함께 걸어서 마을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스님은 법당을 먼저 참배하고 차를 마신 후 주민들과 가깝게 앉기 위해 법좌 아래로 자리를 옮겨 앉았습니다.


게옥의 리더인 겁의 안내로 누비 게옥에 대한 현황을 들었습니다. 이어서 촉바가 지 치옥에 대한 현황을 설명했습니다.

스님은 빨리어로 삼귀의를 한 후 마을 주민과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 입구에서 여기까지 오도록 노래까지 불러가면서 환영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겁이 환영 인사도 해주시고, 촉바가 마을 사정을 잘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여러분들의 사정은 잘 알았습니다. 또 이렇게 형편이 어려운데도 많은 공양물을 준비해 주셨네요. 공양을 올리신 모든 분들이 공양 올린 공덕으로 건강하시고, 하시는 일마다 모두 잘 되기를 불법승 삼보님들께 기원합니다. 저도 여러분께 조그마한 보시금을 올리겠습니다. 마을을 위해 써주십시오. 제가 답사 중이기 때문에 제가 받은 공양물을 여러분께 다시 공양 올리겠습니다.”

스님은 보시금을 촉바에게 전달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온 승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많이 요청하는 ‘도로를 포장해 주세요’, ‘전기를 넣어주세요’ 하는 것들은 제가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부처님의 법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하면 그것은 제가 할 수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주로 하는 일은 부처님의 법을 설하여 사람들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부처님이 계시지 않아도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만큼 큰 공덕이 있는 공양이 네 가지가 있다. 첫째,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주는 것이다. 둘째, 아픈 사람에게 약을 줘서 치료하는 것이다. 셋째, 가난한 사람을 돕고 외로운 사람을 위로하는 것이다. 넷째, 수행을 잘하는 청정한 수행자를 외호하는 것이다. 이 네 가지는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의 공덕과 같다.’

이런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제가 하는 법문을 듣고 괴로움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보시를 합니다. 저는 그 보시금을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서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부탄은 자연환경과 전통문화를 잘 보존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자연환경과 전통문화를 잘 보존하려면 생활이 조금 불편한 것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탄의 왕께서는 두 가지 방식을 병행해 보기로 했습니다. 겔레푸에는 신도시를 만들어서 개발을 하고, 그 외 지역은 자연환경과 전통문화를 지키는 방식을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20년 후에는 다시 두 방식을 합하여 개발도 하면서 전통문화를 지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스님은 주민들에게 부탄 정부의 정책에 대해 설명한 후 그 속에서 JTS는 어떤 원칙을 갖고 주민들과 함께 일하고자 하는지 설명을 이어나갔습니다. 우선 편리하고 깨끗하게 생활환경을 개선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선반을 만들고, 화장실을 깨끗하게 하고, 부엌에는 연통을 달아서 연기를 없애는 등 현재의 집을 수리해서 생활환경을 개선하는 방식을 제안했습니다.

“부자처럼 사는 것은 아니더라도 지금보다 더 편리하고 깨끗하게 살 수는 있습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을 고치고 수리해서 쓰자는 거예요. 좋습니까?”

“네, 좋습니다.”

“그리고 동물들 때문에 농사짓기가 쉽지 않죠?”

“네, 맞습니다.”

“제가 오면서 여러분들이 밭에 울타리를 쳐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울타리를 치면 소만 못 들어올 뿐 다른 야생 동물은 다 들어와요.”

스님은 주민들에게 울타리를 치는 방법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했습니다.

“우선 멧돼지는 땅을 파고 들어오니까 철망을 땅에 붙여서 하나를 치고, 밑을 촘촘하게 쳐야 합니다. 그렇게 해도 멧돼지가 들어온다면 구멍을 막아야 합니다. 짐승이 아무 곳으로나 들어오는 게 아니라 다니는 길로 다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짐승에게 뚫리는 길을 잘 관찰했다가 뚫리면 두 번 세 번 계속 막으면 됩니다.

그리고 노루는 울타리 위로 뛰어서 들어옵니다. 그래서 높게 한 줄을 더 쳐야 합니다. 맨 아래는 촘촘히 3개 내지 4개의 줄을 친 다음, 중간에 2개의 줄을 친 다음, 맨 위에 한 번 더 줄을 치면 됩니다. 그렇게 해서 7개 내지 8개의 줄을 쳐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지금 듬성듬성 짐승이 드나들 수 있게 줄을 쳐 놓았어요.”

“철조망을 사야 하는데 돈이 없어서 그렇게라도 줄을 쳐 놓은 겁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에게 철조망을 지원하겠습니다. 그런데 기둥을 나무로 하면 썩기 때문에 매년 수리를 해야 하니까 일이 많다고 쇠파이프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하는데요. 그런데 나무 중에 장마철에 잘라서 땅에 꽂아두면 살아나는 나무가 있지요? 그런 나무를 철조망 사이에 군데군데 꽂아두면 됩니다. 3년 정도 지나면 그 나무가 팔뚝만큼 굵어져서 처음 세웠던 나무 기둥이 썩어도 괜찮습니다. 살아있는 나무가 울타리가 됩니다. 그 나무가 너무 커지면 밭에 그늘을 만든다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럴 때는 나무의 높이가 2미터 정도 되었을 때 잘라주면 됩니다.

내년에 어느 집에서 철망을 제일 적게 쓰고 동물 피해가 적었는지 비교해 보고, 제가 표창을 하겠습니다. 그러면 다음부터는 표창을 받은 집의 울타리 치는 방법을 배워서 모두가 따라 하면 됩니다.”

스님은 마을에서 도로가 경사나 커브가 심해서 포장이 필요한 구간이 있는지, 집이 없는 가구가 있는지 조사한 후 식수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물탱크를 확장하는 공사를 지원해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서둘러서 하면 힘이 듭니다. 농사도 지어야 하니까 농사가 없는 겨울에 일을 하세요. 농한기 때도 놀지 않고 이런 일을 하면 됩니다.”

“스님께서 재료만 지원해 주신다면, 농사를 안 짓는 2개월간 도로를 먼저 수리하겠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적극적이고 활발했습니다. 스님과의 대화가 끝나자 마을 주민들이 노래 공양을 올린 후 스님과 단체사진을 찍고 싶다고 요청했습니다.


주민들은 스님이 처음 마을을 들어왔을 때처럼 다시 노래와 춤으로 스님을 마을 입구까지 배웅했습니다. 스님은 차를 타면서 마을 주민들과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전통을 지켜줘서 고맙습니다.”

12시 50분에 두 번째 방문지인 심푸다바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주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노래하는 여성들의 안내에 따라 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법당 참배를 마치고 스님이 자리에 앉자 주민들이 차례로 스님에게 공양물을 올렸습니다.



주민들과 대화를 시작하려는데 주민들이 듬성듬성 앉아 있었습니다. 스님이 자리를 정리했습니다.

“자, 다들 앞으로 모여 앉으세요. 안 예쁜 사람은 뒤로 가서 앉아도 돼요.”

스님의 가벼운 농담으로 마을 주민들의 분위기가 편안해졌습니다.


스님은 한국 경제의 성장과 발전에 대한 설명을 하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은 한국이 잘 산다고 생각할지 모르는데 저는 과연 한국이 잘 사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은 모두 좋아졌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괴로움과 갈등은 점점 더 커지고 있어요. 여러분들도 경제 개발만 해나가면 한국처럼 될 겁니다. 젊은이들이 모두 큰 도시나 외국으로 나가고, 시골에는 노인들만 남겠지요.”

“네, 맞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경제 발전을 하면 집도 좋아지고, 옷도 잘 입게 되는 건 맞아요. 그런데 가족들이 다 흩어져서 살아야 돼요. ‘아들이 생활비만 잘 보내주면 자주 못 봐도 괜찮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괜찮아요.”

“스님, 요즘에는 핸드폰으로 아들 얼굴을 보고 삽니다.” (웃음)

스님도 마을 주민들도 함께 웃었습니다.

“경제 수치로만 잘 산다고 기준을 잡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해서 부탄의 4대 국왕은 국민총행복지수(GNH)라는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공기가 얼마나 맑으냐, 물이 얼마나 맑으냐, 마을의 공동체성은 얼마나 있는가, 사람들은 얼마나 건강한가, 이런 것이 경제 발전보다 더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이 기준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소비가 많아지니 기후가 변화하면서 산불이 나고, 폭풍이 생기는 등 삶의 많은 부분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GNH 개념이 더 중요해진 거예요.

그러나 부탄은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자연을 보호하자는 국가 정책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은 편리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자연을 보호하고 전통을 지키더라도 지금보다는 편리하고 깨끗하게 살 수 있게 생활환경을 개선해야 합니다.”

이어서 스님은 우선 열악한 생활환경을 개선해 나가자고 제안한 후 주민들에게 JTS 기금이 모여지는 경로와 사용 원칙에 대해 안내했습니다. 그리고 마을 주민들의 어려움을 살폈습니다. 집이 없는 사람이 있는지, 집 안에 칸막이는 있는지, 집 안에서 불을 때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스님은 촉바의 보고에서 심푸다바 마을에 유목을 하는 주민들이 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이 누구인지 주민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유목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손 들어보세요. 듣기로는 호랑이가 야크를 잡아먹는다면서요. 정말 호랑이를 봤습니까?”

“실제 본 적은 없습니다”

“그러면 야크는 실제 몇 마리나 피해를 입습니까?”

“1년에 다섯 마리 정도가 호랑이에게 죽습니다.”

“정부의 보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맞나요?”

“보험 제도가 있는데 가입비가 1년에 소 한 마리당 200눌트럼입니다. 외국인이 조성한 기금으로 운영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조금 비싸네요. 이 부분을 어떻게 지원할지 제가 고민해 보겠습니다.”

“호랑이 피해는 정말 큽니다. 어떤 때는 마을에 내려와서 소를 잡아먹기도 합니다.”

“개인에게는 호랑이가 위험하고 해로운 동물이지만, 부탄 전체로 보면 자연환경이 그만큼 잘 보존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호랑이를 직접 본 사람이 있습니까?”

“스님, 호랑이를 직접 만나면 죽습니다.”


심푸다바 주민들의 재치 있는 답변에 참가한 사람 모두가 여러 번 웃었습니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대화를 마무리하고, 스님은 주민들이 준비해 준 음식으로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점심 식사를 마친 후 다시 여인들의 노랫소리에 맞춰 마을 입구로 나왔습니다. 스님은 노래로 환송해 준 주민들에게 염주를 선물한 후 벰지첼라 치옥으로 이동했습니다.



오후 3시 30분에 누비 게옥 사무실에 도착했습니다. 누비 게옥 사무실에는 벰지첼라 치옥 주민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스님은 촉바가 설명하는 마을 현황을 듣고 나서 트롱사주 답사를 시작하게 된 인연을 이야기하며 뱀첼라 주민들과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공양물을 올려주어 고맙습니다. 제가 트롱사에 오기 전에는 젬강의 40개 치옥을 방문했습니다. 원래 JTS 사업은 젬강 주만 하기로 했었습니다. 그런데 젬강 주 인근에 트롱사 주에 속한 골푸 게옥이 있었고, 골푸 게옥이 JTS의 시범사업 지역으로 선정이 되었습니다.

골푸 게옥 사업을 하다 보니 트롱사 주지사님과 자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품졸 마을이 어려운 곳이라고 들어서 품졸 마을을 가보게 되었는데 많이 열악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장비 치옥과 발링 치옥이 어렵다고 해서 그 마을을 둘러보려고 했는데, 트롱사 주지사님이 ‘스님, 이왕 오신 거 트롱사 주 전체 치옥을 방문해 보시면 어떻습니까?’ 하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면서 트롱사주에도 어려운 사람들이 있으니 만나보자고 했습니다. 그런 인연으로 오늘 여러분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트롱사 주도 막상 방문해 보니 젬강과 별로 차이가 없어 보여요. 차이가 있다면 트롱사 주는 집 없는 사람이 조금 적은 것 같습니다. 젬강은 남쪽이라 따뜻해서 그런지 임시 가옥에 사는 사람이 많았어요. 튼튼한 나무로 집을 지어서 살고 있기에 제가 보기에는 제법 괜찮아 보였어요. 그래서 제가 ‘이 정도면 괜찮지 않으냐’ 하고 물었더니 임시 가옥이라고 했어요. 부탄은 돌과 흙으로 지어야 집이라고 하고, 나무로 지은 것은 임시 가옥이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스님은 지금까지 방문하면서 알게 된 점을 나누면서 JTS 프로젝트는 반드시 주민들이 직접 참여해야 프로젝트가 진행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런 후 주민들의 요구 사항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주민들은 ‘식수가 부족합니다’, ‘절에 숙소를 짓고 싶습니다’, ‘전기 울타리를 사용하기 위해 배터리를 지원해 주세요’ 등 다양한 요청을 했습니다. 스님은 각각의 요청에 대해 JTS의 사업 원칙에 맞추어서 주민들에게 답변을 했습니다. 집이 없는 사람은 있는지, 집안에 칸막이나 선반은 모두 있는지, 화장실은 깨끗하게 있는지도 함께 확인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요청한 내용들을 전부 검토해서 어떤 것은 정부 프로젝트로 할 것인지, 어떤 것은 JTS프로젝트로 할 것인지 순서를 잡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정부가 예산이 넉넉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그래서 정부에 요청을 하면 시간이 많이 걸릴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정부가 해줄 때까지 기다리든지, 아니면 JTS에 지원을 요청해서 직접 해결하면 됩니다.

팀푸나 호주 같은 곳에 가지 않고 우리 동네에 살더라도 깨끗하고 편리하게 살자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목표입니다. ‘도시 사람들이 우리보다 돈이 많을지는 몰라도 우리는 맑은 공기를 마시고, 좋은 물을 먹고, 경치 좋은 곳에 살고 있어서 그들이 부럽지 않다’ 하는 자부심을 가져야 해요. 너무 돈, 돈, 돈 하지 마세요. 내가 사는 곳을 내가 살기 좋게 만듭시다. 갑자기 나에게 큰돈이 생길 리가 없고, 큰 집을 지을 수도 없습니다. 있는 집을 고쳐서 깨끗하고 편리하게 삽시다.


“네, 잘 알겠습니다”

“저에게 이렇게 많은 음식을 주면, 여러분의 집에 먹을 게 있어요? 촉바에게 보시금을 드릴게요. 마을 사람들을 위해 써주세요. 제가 여러분들을 위해 축복한 음식이니까 다시 가져가서 여러분이 드세요.”

스님은 주민들이 공양을 올린 음식들을 다시 주민들에게 돌려주었습니다.

벰지첼라 마을 사람들과의 대화를 마치고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세 곳이나 방문하고 나서 숙소에 도착하니 저녁 6시 10분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씻고 나서 원고를 교정한 후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작년 12월 청년들을 위한 청춘톡톡 즉문즉설 강연에서 질문자와 스님이 대화 나눈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전공이 적성에 맞는지 고민입니다

“저는 대학생입니다. 현재 전공이 제게 맞는지 고민이 됩니다. 이 길이 올바른 선택인지 계속 헷갈립니다. 인생에 정답이 없다는 것은 알지만, 이 고민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학생이니까 그런 고민을 하는 것이 이해는 됩니다. 하지만 여기 계신 어른들에게 물어보세요. 지금 하는 일이 본인 적성에 맞아서 하는 분이 얼마나 될까요? 아마 거의 없을 거예요. 저도 승려 생활이 제 적성에 맞아서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종교를 싫어했어요. 초등학교 때는 교회를 열심히 다녔습니다. 중학교 때는 불교 학생회 활동도 해봤지만, 종교라는 것이 너무 허황되게 느껴져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경상도 사투리로 말하자면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는 것 같았지요. 저는 과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학교 근처 절에 계신 스님께 붙잡혀서 억지로 출가하게 되었어요. 처음엔 과학과 종교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승려 생활도 오래 하다 보니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처님, 예수님, 공자님과 같은 성인의 가르침은 후대로 내려오면서 돈벌이를 위해 신비주의로 변질되었습니다. 그러나 허황한 이야기들을 덜어내고 사회와 역사의 현실 속에서 그분들이 실제로 어떤 가르침을 전했을지를 생각하며 성경과 불경을 다시 바라보면, 그 시대의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큰 희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도 승려로서 2,600년 전 고타마 싯다르타가 인생을 고민하고 출가해 수행 정진한 끝에 깨달음을 얻고 사람들을 교화했던 그 길을 따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분의 가르침을 공부하며 그의 삶을 흉내 내듯 살아가고 있는데, 그렇게 지내다 보니 나름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요.

늙으면 좋은 것이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바로 ‘중’하고 ‘호박’이에요. 젊은 중이 유명해지면 혹시 사고라도 치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늙은 중이 되면 그런 걱정이 없어지잖아요. 마치 늙은 호박이 더 맛있는 것처럼요. 저도 젊을 때는 승려가 나에게 딱 맞는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살아보니 내가 원해서 선택한 길이 아니었지만 꽤 괜찮아요. 물론 시행착오는 많았지만요. 그래서 저는 젊은이들을 만나면 이렇게 묻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선택한 길을 가고 있지 않느냐? 그런데 나는 내가 원하는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스승이 주는 길을 따라왔는데, 지나고 보니 원치 않던 길을 꾸준히 걸어온 것도 괜찮은 것 같다. 그런데 정작 너희는 스스로 선택해 놓고 왜 후회하고 있느냐?’

질문자가 전공을 공부해 보니 나와 전혀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에요. 나에게 무엇이 맞지 않는지 알게 되었으니까요. 이 경우 전공을 바꾸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정말 내 길이다!’라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고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이 길이 나에게 딱 맞다!’라고 느끼는 경우는 사실 극히 드물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하는 공부나 직업 혹은 배우자가 본인과 딱 맞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너무 완벽한 선택을 찾으려 하지 마세요. 도저히 못 하겠다 싶으면 바꿔도 되지만, 그렇지 않다면 일단 계속해 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입니다.”

“도저히 못 할 정도는 아닙니다. 다만 저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 좀 많아요. 현재 의과대학을 다니고 있는데, 부모님께 경제적 부담을 많이 주는 것도 고민입니다. ‘꼭 의사가 되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요.”

“의과대학 공부가 많이 힘들어요?”

“공부 자체는 괜찮습니다.”

“그렇다면 그냥 하세요. 부모님은 아마 빚을 내서라도 질문자가 의사가 되는 데에 투자하실 용의가 있을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훨씬 더 위험한 투자도 하는데 의과대학 공부는 비교적 안전한 투자예요. 미국에서 의과대학을 다니던 한 학생이 본과 2학년이 되어 도저히 못 다니겠다고 저한테 고민을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냥 졸업이나 해라’ 하고 대답해 주었어요. 그 젊은이가 지금은 LA에서 아주 잘 나가는 정신과 의사가 됐습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어요. 정토회 회원의 자녀였는데, 본과 2학년쯤에 도저히 의과대학을 못 다니겠다고 해서 제가 ‘그냥 졸업만 해라. 졸업하고 나면 같이 세계 구호 활동이나 하러 가자’ 하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 젊은이도 지금은 한국의 유명한 병원에서 의사를 잘하고 있어요. 또 어떤 분은 서울대 의예과를 다니다가 노동운동을 하면서 제적이 되었습니다. 그분은 다른 대학교 한의학과에 입학해 한의사가 되었고, 민주화 이후에 서울대가 학생운동으로 제적된 학생들의 복학을 허용하면서 다시 서울대 의예과에 입학해서 졸업을 했어요. 그렇게 해서 한의사, 양의사 자격을 모두 취득해서 현재는 대학병원에서 두 분야를 다 아우르고 있습니다.

의사가 되었다가 정말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두신 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일단 졸업은 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졸업 후에 의사로 일하다가 그때 그만두어도 되기 때문입니다. 의과대학 공부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다면 그만두라고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학업을 계속하는 것이 좋습니다.

질문자가 의예과 학생이니 잘 알겠지만 걱정이 너무 많으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경우일 수 있어요. 질문자는 걱정이 많은 편이니 정신과 상담을 받으면서 심리적인 안정을 찾은 후 공부를 계속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질문자처럼 의사가 되기를 포기할 뻔했지만 제 조언을 듣고 결국 의사가 된 사람들은 저에게 소환권이 있습니다. 제가 어디에 병원을 만들거나 해외에서 구호 활동을 하게 되면 ‘직장을 그만두고 이쪽으로 와주세요’라고 요청할 권리가 있는 거예요. 왜냐하면 제가 없었으면 의사가 되지 않았을 것 아닙니까? 그러니 적당하게 일하다가 적절한 시기가 되면 그만두고 봉사하러 나오세요. (웃음)

예전에 20년을 감옥에서 살다가 나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조급한 마음에 이것저것 하려고 해서 제가 ‘천천히 하라’ 하고 조언했어요. 결국 그 사람이 돈을 벌어서 집을 샀고, 고마운 마음에 저를 찾아와 ‘스님, 이 집은 스님 집입니다’ 하는 거예요. ‘그래? 그러면 내가 너한테 맡길 테니까 잘 관리를 해라’라고 말했습니다. 그 뒤 그 사람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둘 낳았어요. 그런데 마침 북한에서 굶어 죽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서 인도적 지원이 필요해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사람을 불러서 ‘옛날에 네가 내 집이라 했던 것을 이제 쓸 데가 있으니 돌려달라’ 하고 말했죠. 그랬더니 그 사람이 ‘벌써 10년이나 지난 일이고, 이제 아이도 둘인데 어떻게 돌려드립니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건 네 사정이고, 네가 분명히 그 집은 스님 집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지금 사람들이 굶어 죽고 있어서 내가 인도적 지원에 써야겠다’ 하고 말했어요. 그랬더니 그 사람이 차마 그 집을 돌려주지는 못하고 담보 대출을 받아서 천만 원을 가지고 왔습니다. 제가 이렇게 돈을 버는 사람입니다. (웃음)

오늘 질문자도 의사를 그만두면 모르겠지만, 나중에 졸업하고 의사가 됐다는 소문이 나면 제가 찾으러 갈 거예요.” (웃음)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전체댓글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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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근

감사합니다

2025-02-13 15:44:58

임영현

각 치옥내 주민들이 스님을 맞이할 때 노래를 부르며 공양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전통문화의 가치가 저에게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도 균형잡힌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꾸준히 수행정진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2025-02-13 12:12:54

범해

"늙으면 좋은 것이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바로 ‘중’하고 ‘호박’이에요. 젊은 중이 유명해지면 혹시 사고라도 치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늙은 중이 되면 그런 걱정이 없어지잖아요. 마치 늙은 호박이 더 맛있는 것처럼요.^^^"

젊은이들의 진로즉설 명쾌합니다. 감사합니다.

2025-02-12 17: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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