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02.07. 부탄 트롱사 답사 4일째(쿵가랍텐, 이사, 탁치 치옥)
“아이들이 옷을 허물 벗듯이 그냥 벗어 둡니다, 어떡하죠?”

안녕하세요. 부탄 트롱사주 답사 4일째 날입니다. 오늘은 드락텡(Dragteng) 게옥의 쿵가랍텐(Kuengarabten), 이사(Uesa), 탁치(Taktse) 마을을 찾아가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하고 원고를 교정한 후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식사를 준비해 준 쿵가랍텐 비구니 절에 보시금을 전달하고, 드락텡 게옥 사무실로 이동했습니다.

쿵가랍텐 주민들과의 대화는 드락텡 게옥 사무실에서 하기로 했습니다. 스님은 9시 10분에 드락텡 게옥 사무실에 도착했습니다. 게옥 사무실 2층에 쿵가랍텐 마을 주민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추운데 괜찮아요? 아침 일찍 오느라 고생했어요. 아침밥은 먹고 오셨어요? 저는 이 앞에 비구니 절에서 잤습니다. 그래서 금방 왔습니다.”

스님은 가벼운 인사말로 주민들과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하려고 하는 일은 정부가 하듯 뭔가를 일방적으로 해주는 일은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생활환경이 열악하다 보니 특히 아이들이 많이 불편해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기숙사 생활을 많이 하잖아요. 기숙사 시설이 잘 되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현대적으로 되어 있다 보니 가난한 집 아이들은 집안 환경이 기숙사보다 안 좋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집에 가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시대에 맞게 주거 환경을 개선했으면 합니다.

부탄은 잘 사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못 사는 것도 아닙니다. 가난한 나라에 가서 보면 집도 없고 물도 없고 도로도 없고 전기도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아프리카를 빼고 전 세계를 다 다녀보았는데, 부탄은 국민소득이 높은 것은 아니지만 생활환경은 괜찮은 편입니다. 물이 부족하긴 하지만 대부분 물이 공급되고 있습니다. 음식이 없어서 굶는 사람도 없습니다. 옷도 모두 입고 있습니다. 집 없는 사람이 몇몇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집이 있습니다. 집 앞까지 도로가 나지는 않았지만 치옥까지는 도로가 나 있습니다. 특히 다른 나라보다 나은 것은 집집마다 전기가 공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육이 보편적으로 시행이 되고 있고, 아픈 사람이 기본적인 치료를 받을 수는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부탄에만 있고 다른 나라에는 안 가보니까 이곳에서의 삶이 좋은지 안 좋은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부탄은 유럽, 일본, 한국에 비해서는 가난합니다. 그러나 정말 가난한 나라와 비교하면 주민들의 생활 수준이 좋은 편입니다.

저는 부탄이 가난해서 도와주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기후 위기 시대에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 보기 위해서 부탄에 온 것입니다. 부탄은 자연환경을 잘 지키는 나라에 속합니다. 기후 위기가 곧 도래한다고 하는데, 여러분들은 아직 그걸 못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곧 부탄 사람들도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첫 번째로 히말라야 설산에 빙하가 줄어들기 때문에 수력발전을 할 수 있는 물의 양이 줄어들 것입니다. 산에 있는 식수원의 물도 갈수록 줄어들 것입니다. 부탄은 조금 불편한 정도이지만 세계는 이미 사람이 살기 어려울 정도로 기후가 변화하고 있습니다.

부탄은 다른 나라와 국가 정책이 다른 점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자연을 보호한다는 것입니다. 헌법에 산림을 60퍼센트 이상 유지하도록 하라고 명시되어 있는 나라입니다. 둘째, 전통문화를 지키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전통 옷을 입고 있잖아요. 집도 전통 방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외국인들이 부탄 여행을 오고 싶어하는 이유는 이렇게 자연환경과 전통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점이 모두 좋지만은 않습니다. 전통 옷을 입으면 불편하잖아요. 저도 승복을 늘 입고 있는데 생활하기에는 불편합니다. 옷 소매가 금방 새까맣게 변합니다. 가사를 입고 다니면 행동하기가 불편해요. 집도 전통적으로 지은 집이 현대적으로 지은 집보다 바람이 더 많이 들어오고, 보온이 잘 안 됩니다. 또 자연을 보호하려고 하다 보니까 짐승들이 계속 농작물에 피해를 줍니다.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면 자연과 전통을 보호하는 게 좋고, 개인을 생각하면 전통문화와 자연환경을 지키는 것은 불편한 일입니다. 그러나 편리만 추구하다 보면 자연환경을 파괴하고 전통문화도 잃어버리고 공동체가 붕괴되어 버립니다. 편리하게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의 자연환경을 파괴하기 때문에 저는 여러분들처럼 불편함을 감수하고 자연환경을 지키고 사는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생활이 많이 불편해 보이는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사실은 쿵가랍텐 마을은 도움을 주어야 할 대상에 해당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살만 한 곳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장비 치옥 같은 곳은 많은 개선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집 없는 사람은 집을 지어야 하고, 집이 있더라도 내부가 너무 열악하면 집수리도 해야 합니다. 발링 치옥도 열악한 편이었습니다.

제가 열악한 곳만 방문하겠다고 하니 트롱사 주지사님이 ‘우선 트롱사에 있는 모든 치옥을 방문해서 주민들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면 좋겠습니다’ 하고 제안했습니다. 왜냐하면 전체적으로 괜찮아 보인다고 하더라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려운 가정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야기하는 내용이 여러분들에게 해당 사항이 있는지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스님은 쿵가랍텐 주민들에게 집 짓기와 집수리와 관계된 주거환경 개선과 농수로, 울타리 등 생산시설 개선에 대해 안내하고, 정부 프로젝트와 JTS 프로젝트를 구분해서 이해할 수 있게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제가 부탄에 처음 온 지 2년이 되었고, 이 사업을 시행한 것은 1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여러 곳을 답사했고, 지난 1년 동안 여러 마을에서 시범 사업을 해보았습니다. 납지 치옥에서는 농수로를 놓았고, 동네에 걸어 다니는 길을 포장했습니다. 콜푸 치옥에서는 경사가 심한 도로를 다섯 군데 포장했고, 님숑 치옥에서는 집 한 채를 지었습니다. 품졸 치옥에서는 집 한 채를 고쳤고, 한 집은 부엌을 고쳤습니다. 젬강의 고싱 치옥과 레바티 치옥에서는 식수 사업을 했습니다. 랑덜비 치옥에서는 집 한 채를 고쳤습니다. 이렇게 시범 사업을 하면서 변화의 효과를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지난가을에는 촉바들과 모여서 연수를 진행하여 구체적으로 사업을 어떻게 해나갈지 함께 연구했습니다. 그래서 젬강은 주 전체를 개발하기로 했습니다. 젬강이 부탄 전체에서 빈곤율이 가장 높기 때문입니다. 트롱사는 원래 콜푸 게옥만 하려고 했으나, 주지사님이 트롱사주도 전부 방문해서 필요한 것이 있는지 같이 점검하자고 해서 이렇게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쿵가랍텐 치옥 주민들에게 더 구체적으로 질문을 했습니다. 집 없는 사람이 있는지 묻고, 집 안의 칸막이 상태, 부엌 상태, 식수 상태, 농수로 상태, 마을 길 포장 상태, 울타리 상태, 노인들의 건강 상태를 확인했습니다. 쿵가랍텐 마을도 막상 대화를 해보니 지원이 필요한 가구가 여럿 있었습니다.

“주지사님의 말이 맞았네요. 막상 와보니 이곳도 할 일이 많네요.” (웃음)

쿵가랍텐 주민들은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스님이 우리 마을을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님은 이사 치옥으로 이동했습니다.

이사 치옥 주민들과 대화를 하기 전에 행정관과 마을 소화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사 치옥은 집이 다 모여 있어서 화재의 위험이 큽니다. 작년에 마을에 소화전을 설치했는데 물탱크가 완성되지 않아서 아직 사용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탄에서는 소화전 관리를 경찰이 맡아서 하는데, 이사 치옥의 경우 주에서 거리가 멀어 경찰 지원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에게 소방 교육을 시킬 예정입니다.”

행정관이 스님에게 이사 치옥의 소방교육 과제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스님은 행정관의 이야기를 듣고 소화전을 답사해 보기로 했습니다.



스님이 소화전과 이사 치옥까지 거리를 가늠해 보고 말했습니다.

“이사 치옥을 모두 안전하게 하려면 소화전이 두 개는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콜푸 치옥도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소화전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스님은 마을 주민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하여 11시 40분부터 이사 치옥 주민들과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스님이 먼저 주민들에게 필요한 사항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주민들이 대답했습니다.


“농수로가 필요합니다.”

“기계가 다닐 수 있는 농로가 필요합니다.”

“논에 큰 돌을 제거하고 싶습니다.”

“화장터가 필요합니다.”

스님은 JTS 원칙과 지원할 수 있는 것들을 주민들에게 세세하게 설명하고, 이사 치옥 주민들에게 납지 치옥의 농수로 공사 모습을 담은 영상을 보여주었습니다. 영상을 보고 나니 주민들과의 대화 분위기가 갑자기 활기를 띄면서 적극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스님이 말했습니다.

“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여러분들이 사는 집을 고치는 것입니다. 이사 치옥은 살만하기 때문에 제가 오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주지사님이 가보자고 해서 왔는데, 이곳도 할 일이 있긴 있네요. 원래 주지사님과 같이 오기로 했는데, 어제 주지사님이 갑자기 인도로 출장을 가셨어요. 품졸 치옥에 집 수리하는 모습도 영상으로 한번 볼래요?”

“네!”

이사 치옥도 집수리가 필요한 곳이 여러 가구 있었습니다.

“그런데 집집마다 이렇게 고쳐 줄 수는 없어요. 그래서 한 개의 집을 고쳐 줄 테니 모두 그 집을 가서 한번 보세요. 우리 집도 이렇게 고치면 되겠다 싶으면 연장을 줄 테니 자기 집을 스스로 고치면 됩니다. 그렇게 한번 해 봅시다. 여성들은 부엌을 이런 식으로 고치면 좋겠어요?”

“네, 좋겠어요.”

“남자들에게 부엌 좀 고쳐 달라고 이야기하세요. 남자들은 왜 밥만 먹고 부엌을 안 고쳐줘요? 부엌을 안 고쳐주면 앞으로 밥을 주지 마세요.” (웃음)

할아버지 한 분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습니다.

“멀리 한국에서 오셔서 저희에게 도움을 주시는데, 저희가 스님의 성함도 모르고 보내드리는 것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스님의 성함을 알고 싶습니다.”

“저는 그냥 라마예요.”

“진심으로 스님의 성함을 알고 싶습니다.”

“저는 법륜스님입니다. 법륜은 다르마 차크라, 법의 수레바퀴라는 뜻입니다. 바퀴가 굴러다니듯이 부처님의 법을 전 세계로 널리 전하라고 은사 스님께서 지어주셨습니다. 이름대로 살다보니 여기까지 굴러왔습니다.” (웃음)

“우리 마을에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마을은 도로 옆에 있어서 겉보기에는 괜찮아 보입니다. 실제로 1970년대에는 잘 살았습니다. 그런데 2025년에도 그때와 달라진 게 없이 똑같은 상황입니다.”

“앞으로 좋아질 거예요. 생활 개선이 1차 프로젝트이고, 수익 구조 개발이 2차 프로젝트입니다. 2차 프로젝트는 벼농사의 수확량을 늘리는 것, 유통하는 것, 판매하는 것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채소나 과수를 심을 때는 기후 조건에 맞아야 해요. 누군가 오렌지를 심으면 잘 된다고 해서 여러분도 이곳에 오렌지를 심었을 텐데, 한번 보세요. 이렇게 작잖아요. 오렌지는 판방처럼 따뜻한 지역에 심는 거예요.

나중에는 관광 상품도 마련해야 합니다. 관광객이 많이 올 때를 대비하여 집을 고쳐서 민박도 할 수 있게 준비해야 합니다. 납지 치옥에서는 벌써 그에 대비해서 준비를 하고 있어요. 우리 모두 힘을 합해서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어 봅시다.”

오후 1시에 미팅을 마치고, 주민들이 준비한 음식으로 미팅 장소에서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 후에는 이사 치옥의 한 할머니의 집을 방문하여 집 안 상태를 살피고, 어떻게 하면 시설을 개선할 수 있을지 JTS 활동가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사 치옥을 출발하여 오후 1시 50분에 탁치 치옥에 도착했습니다. 법당 안에 들어서자 스님을 기다리던 마을 주민들이 일제히 일어나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스님은 법당을 참배한 후 주민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 법좌에 올랐습니다.



먼저 촉바가 마을 현황을 설명했습니다. 촉바의 설명이 끝나고 스님은 마을 주민들과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외국에서 온 스님은 처음 보죠?”

“네.”

“원숭이처럼 이상하게 생겼습니까?”

마을 주민들이 크게 웃자 조용했던 분위기가 삽시간에 풀렸습니다.

“보름달처럼 잘 생기셨습니다!”

“고맙습니다.”

마을 주민들에게 부엌 상태가 어떠한지, 아직 집안에서 불 피우는 사람이 있는지, 집 안에 칸막이는 있는지, 식수 문제와 도로 문제는 없는지, 다양한 질문을 하며 마을 현황을 살폈습니다. 특히 야생동물의 피해가 심하다고 하여 울타리 치는 법에 대해서 자세하게 안내를 했습니다.

집이 없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파악했습니다. 집이 없다는 사람이 다섯 명이나 되었습니다.

“이사 치옥은 집이 없는 사람이 한 가구도 없었는데, 여기는 왜 이렇게 많아요?”

“동부에서 이사 온 분들입니다.”

탁치 치옥 주민들은 적극적으로 스님과 대화를 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스님이 말했습니다.

“이곳은 잘 살아서 도와줄 일이 없겠다고 생각했는데 직접 와서 보니 할 일이 많네요.”

“도움이 필요한 일이 너무 많습니다. 저희가 다음에 스님이 오실 때에는 많은 일을 해놓고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탁치 치옥 미팅을 마치고 스님 일행은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스님은 숙소에서 원고를 교정하고 업무를 본 후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해 12월 23일 인천국제공항공사 임직원을 위해 열린 즉문즉설 강연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아이들이 옷을 허물 벗듯이 그냥 벗어 둡니다, 어떡하죠?

“저는 아들 둘을 키우고 있습니다. 초등학생이랑 중학생을 키우고 있는데요. 저랑 아이 아빠는 기본적인 생활 습관과 인성을 굉장히 중요시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생활 습관을 교육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수십 번 얘기해도 안 고쳐지는 경우가 너무 많거든요. 그럴 때는 애들한테 계속 강요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아이들이 하고 싶은 대로 두어야 하는 건지 궁금합니다. 다른 하나는, 제가 인성을 중요시한다고 했잖아요. 제가 너무 편하게 대해서인지, 아이들이 가끔 선을 넘을 때가 있어요. 엄마를 친구같이 대하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아이들이 부모에 대한 존경심을 좀 가졌으면 하는데, 그런 게 안 될 때는 갈등이 생깁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아들의 생활 태도에서 구체적으로 뭐가 문제예요? 정리 정돈을 잘 안 합니까?”

“옷도 그냥 그대로 허물 벗어놓듯이 벗어놓습니다. 저는 옷을 세탁기에 갖다 놓고, 양말도 안 뒤집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지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옷을 건조기에서 빼서 다 뒤집어야 하잖아요. 저는 워킹맘이라 살림까지 챙기기가 힘든 부분이 있는데 애들은 그런 거를 몰라주니 섭섭한 마음도 좀 있습니다.”

“언제부터 애들 보고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고 가르쳤어요?”

“어릴 때부터 그렇게 한 것 같습니다. 제가 너무 강요한 부분이 있을까요?”

“두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어요. 첫째, 어릴 때는 그냥 내버려 두었다가 이미 습관이 되어 버린 뒤에 고치려고 했을 수 있습니다. 그건 질문자의 잘못이에요. 둘째, 질문자가 아이들이 동의할 수 없을 만큼 무리하게 요구해서 아이들의 마음속에 반발심이 일어났을 수 있습니다. ‘너는 그렇게 말해라! 나는 이렇게 한다’ 하는 태도로 부모의 말을 안 듣는 거예요. 이런 두 가지 경우에는 애들을 야단쳐서는 잘못된 습관을 고칠 수 없습니다.

아이의 자아가 형성되는 데에 보통 3년 정도 걸립니다. 즉, 3살 때까지 자아가 대부분 형성되는 것이죠. 그 시기에 아이를 학대하면 대뇌 발달이 굉장히 미약해집니다. 그래서 3살 때까지는 야단을 치면 안 됩니다. 사랑으로 보살펴야지 아이가 심리적으로 상처를 받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어른들은 아이가 어리니까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어릴수록 더 신경을 많이 써야 해요.

자아가 형성되는 3살 때까지는 바깥에서 보고 듣고 냄새 맡는 모든 경험이 아이의 뇌에 그대로 새겨져 버립니다. 이것을 각인 작용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각인된 것은 나중에 잘 안 바뀝니다. 그 경험이 ‘나’라고 인식하는 것의 모체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 ‘천성은 안 바뀐다’, ‘천성이 변하는 것을 보니까 죽을 때가 다 되어 가는구나’ 이런 속담들이 생긴 것입니다.

아이를 어릴 때 입양하면 그 아이는 생물학적으로 내 유전자를 갖지 않았을 뿐이지 심성은 내 아이예요. 엄마라는 것은 기른 자라는 뜻이지 낳은 자라는 뜻이 아닙니다. 옛날에는 낳은 자가 곧 기른 자와 일치하기 때문에 주로 낳은 자가 엄마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DNA로 친모와 친부를 확인하는 것은 사실 인류학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미래에는 대부분의 여성이 자신의 자궁이 아니라 인공 자궁을 통해서 아이를 낳게 될 수도 있어요. 그러면 낳은 자가 누구냐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집니다. 요즘 대리모는 아이를 낳아도 엄마가 되지 못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기른 자가 엄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른 자’란 아이의 자아의 형성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양육자를 말합니다.

내가 직장 다니며 바빠서 시어머니한테 아이를 3살까지 키워달라고 맡겼다면, 그 아이의 정신세계에서 엄마는 누구일까요? 할머니가 엄마입니다. 유모에게 맡겼다면 유모가 엄마예요. 의식의 차원에서는 낳아준 사람이 엄마지만 무의식 속에서는 할머니가 엄마입니다. 그래서 꿈속에서는 엄마가 할머니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아이를 내 자식으로 키우려면 3살 때까지는 내가 키워야 합니다.

자아가 형성된 후 4살부터는 배움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유치원 과정과 초등학교 과정에서는 아이가 ‘따라 배우기’를 합니다. 뭐든지 모방을 해요. 원숭이보다 더 모방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엄마는 하지 않으면서 아이 보고 이래라저래라 하면 절대로 교육 효과가 없습니다. 아이는 항상 마음속으로 ‘엄마는?’ 이럽니다. 지금 질문자가 좀 충격받을지 모르겠는데, 이런 현상이 나타났다면 어쩌면 자기는 안 하면서 애들에게만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했을 수 있습니다. 한집에 사는 아빠가 옷을 아무 데나 벗는다든지, 아니면 엄마가 그러든지, 누군가가 그렇게 해서 아이들이 따라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그냥 보는 대로 따라 배우니까요.

여러분이 자기는 늦게 들어오면서 아이 보고 ‘10시까지 들어와라’ 이러면, 아이들이 힘에 눌려 당장은 따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을 못 해서 그렇지 속으로는 ‘엄마는?’ 이래요. 그래서 그건 교육 효과가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가 버립니다. 억압된 심리는 다 원래대로 돌아갑니다. 회사에서 상사와 부하의 관계가 자유롭고 친구 같은 분위기 속에서는 아무리 상하관계가 있다 하더라도 하극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하극상이 일어나는 곳은 항상 질서와 위계를 중요시하는 군대, 경찰, 조폭과 같은 조직입니다. 심리가 억압되면 기회가 왔을 때 반드시 치고 올라갑니다. 그래서 애들이 사춘기가 되어 아빠 엄마가 뭐라고 할 때 항의하고 대들면 ‘이게 어디 부모한테 대들어?’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어릴 때 심리가 억압됐구나’ 하고 이해해 주어야 합니다. 어릴 때 심리가 억압되어 자기 할 말을 못 하고 눌러 놓았기 때문에 기회가 생겼을 때 치고 나오는 거예요.

아이들이 엄마에게 스스럼없이 이야기한다는 것은 나쁜 게 아니에요. 항상 대화를 해야 합니다. 야단을 치는 건 3일만 지나면 효과가 없어집니다. 화내지 말고 벗어놓은 옷을 앞에 놔두고 대화를 나누어 보세요. ‘엄마가 일하니까 네가 정리를 도와주면 좋지 않을까?’ 이렇게 한 번 말했는데 안 따른다고 해서 포기하면 안 됩니다. 아이들은 열 번 스무 번 반복해야 이해를 합니다.

이렇게 아이들은 따라 배우는 성질이 있습니다. 그래서 모범을 보이는 게 교육이지 가르치는 게 교육이 아닙니다. 특히 생활 습관이나 성격은 항상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아이가 검소하게 살기를 원하면 돈이 있어도 부모가 검소하게 살아야 됩니다.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어디를 가도 항상 KTX를 타거나 비행기를 타거나 호텔에서 잘 겁니다. 그럼 아이는 태어나서 호텔에서 자 본 기억밖에 없습니다. 뭘 타도 비행기나 KTX밖에 타본 적이 없게 됩니다. 그래서 요즘 젊은 아이들은 여러분들이 생각하듯이 여행을 가면 여관이나 민박집에서 자지 않습니다. 세 번 여행 갈 것을 한 번만 가더라도 돈이 있든 없든 호텔에서 자고 그걸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자랐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겸손하기를 원하면 엄마가 아빠에게 겸손해야 합니다. 남녀는 평등하지만, 아이가 따라 배우게 하기 위해서는 겸손한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엄마와 아빠가 서로 손가락질하고 싸우면 아이가 전혀 겸손해질 수가 없어요.

아이들과 갈등이 생기는 이유는 이런 아이들의 성질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나는 잘한다고 했는데 성질을 모르니까 갈등이 생기고 안 맞는 거예요, 모든 고통은 무지에서 비롯됩니다. 하나님이 벌주는 것도 아니고, 전생에 죄지은 것도 아니고, 궁합이 안 맞아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몰라서 생기는 거예요.

먼저 아이를 관찰해 보세요. 이래라저래라 하기 전에 애들이 어떻게 사는지 쭉 관찰해 보는 겁니다. 내 기준에 좀 안 맞더라도 ‘그래, 옷을 잘 개어 놓는 것이나 그냥 벗어 놓는 것이나 그게 그거다’ 이렇게 생각하고 그냥 놔두는 방법이 있습니다. 야단치는 것보다는 그냥 내버려 두는 게 훨씬 낫습니다. 야단을 치면 상처만 받고 고쳐지지도 않습니다. 내버려 두면 일단 고쳐지지는 않아도 상처는 안 받잖아요. 그러다가 가끔 아이의 방이 너무 지저분하다 싶으면 ‘이렇게 계속 살아도 괜찮겠니?’ 하고 물어보세요. 괜찮다고 하면 ‘그래, 그렇게 살아라’ 그러면 돼요. 아이가 ‘문제인 것 같아요’ 하고 대답하면 ‘그래. 엄마가 봐도 문제인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좋겠니?’ 이렇게 대화를 해야 합니다. 강압적으로 다그치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이미 엄마의 말은 만성이 되어 버렸어요. 야단을 치고 협박을 해도 안 먹혀요. 엄마가 때려 봐야 어느 정도인지 다 알아요. 다리가 부러지도록 안 때리는 걸 다 압니다. 무서운 건 한두 번 때릴 때지 그다음부터는 이미 내성이 생겨서 교육적 효과는 전혀 없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전체댓글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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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량

진작에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2025-02-16 07:22:46

김종근

감사합니다

2025-02-13 15:20:20

최인자

감사합니다.
억압된 심리는 기회만 생기만 폭발한다.
항의하고 대들 때 '어릴때 심리가 억압됐구나' 이해하기.
야단 치는것 보다 그냥 두는것이 더 좋다.
성질을 모르니까 갈등이 생기고 고통은 무지에서 온다.
좋은 말씀 다시 새깁니다.

2025-02-13 08:2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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