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02.05. 부탄 트롱사 답사 2일째(장비, 랑틸, 율링 치옥)
“저를 괴롭히는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안녕하세요. 부탄 트롱사주 답사 둘째 날입니다. 오늘은 랑틸 게옥(Langthil Gewok)의 장비(Jangbi) 치옥 왐링(Wamring) 마을, 랑틸(Langthil) 치옥, 율링(Yuling) 치옥을 방문했습니다.

부탄에서 지속 가능한 개발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작년에는 시범사업을 진행했습니다. 올해는 그 성과를 젬강주와 트롱사주 전역으로 확대하기 위해 지난 연말부터 스님이 모든 마을을 직접 답사하며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작년 12월과 올해 1월에는 젬강주의 40개 치옥을 답사했고, 2월에는 트롱사주의 25개 치옥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원고를 교정하고, 랑틸의 민박집에서 아침 공양을 했습니다.

공양 후 오전 8시에 숙소를 출발해 1시간가량 이동한 뒤 장비 치옥의 왐링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장비 치옥은 원주민들이 사는 마을입니다. 주민들은 마을 입구에 솔잎을 깔아 길을 만들고, 줄을 지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법당에 참배하고 환영 의식을 마친 후, 마을에서 준비한 차를 마셨습니다. 차를 마시며 린첸 님에게 말했습니다.

"일전에 들으니 품졸 마을이 가장 어렵다고 했는데, 전기 검침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왐링 마을의 가구당 전기 소비량이 더 적다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품졸이나 왐링이나 비슷할 텐데, 어쩌면 왐링 주민들이 더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 와 보게 되었네요. 안 그래도 이곳을 방문하고 싶었습니다."

마을 주민들과의 대화를 시작하려던 찰나, 촉바가 다가와 오늘이 부탄 왕자의 생일이라며 마을 사람들과 함께 기도를 드리고 싶다고 요청했습니다. 스님은 이를 흔쾌히 받아들이고 왕자의 생일을 축하하는 기도를 함께한 후, 본격적으로 주민들과의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여러분은 주로 어떤 농사를 짓고 있습니까?"

"옥수수와 벼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벼농사는 얼마나 합니까?“

"100에이커 정도 됩니다.“

"24가구가 100에이커를 경작하는 것은 많은 편이 아닌가요?“

"네, 농업용수가 부족합니다.“

"농수로는 정비되어 있습니까?“

"네, 파이프로 농수로가 연결되어 있지만 물이 부족한 상황이고, 다른 수원지에서 농수로를 추가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럼 쌀과 옥수수를 농사지으면 자급자족이 가능합니까? 아니면 판매도 하나요?“

"판매는 하지 않고, 마을에서 소비할 정도입니다.“

"오렌지나 카다멈 같은 특용작물도 재배하나요?“

"아닙니다. 카다멈을 이제 막 시작했는데, 종자를 구매할 돈이 없습니다.“

주거 환경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습니다.

"왐링 마을에서 집이 없는 가구는 몇 가구나 됩니까?"

"4가구 정도 됩니다."

"집 안에 칸막이가 없거나 집안 환경이 열악한 가구는 몇 가구나 됩니까?"

"칸막이가 있는 집도 있고, 없는 집도 있습니다. 어떤 집은 바닥이 흙으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비만 안 새고 잠만 잘 수 있으면 그만입니다."

어느 정도 마을의 현황을 파악한 후, 스님은 부탄에 온 이유와 JTS에서 진행하려는 지속가능한 개발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온 불교 승려입니다. 한국은 여기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 살던 우리가 어떤 인연으로 이렇게 만나게 됐을까요? 우리 모두가 부처님의 제자라는 인연이 있습니다. 부처님의 제자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만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저는 국왕님의 초청으로 이곳에 왔습니다. 부탄의 국가 정책은 자연환경을 보존하고 전통문화를 지켜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전통 옷을 입고, 집을 지을 때도 전통식으로 짓고 있으며, 오랫동안 믿어온 불교 신앙도 유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통을 지키더라도 생활이 너무 불편하면 안 됩니다. 인간 문명은 점점 더 편리한 방향으로 발전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우리는 전통을 지키면서도 편리함도 함께 갖춰야 합니다.

부탄도 팀푸 같은 도시는 집이 대부분 아파트로 현대적인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 도시에 사는 손자, 손녀들은 시골에 오기 싫어합니다. 시골 할머니 집에 가면 방 안에서 불을 피워 연기가 나고, 방에 칸막이가 없어 자기 방이 없죠. 화장실도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할머니 집에 오기를 꺼리지요? (웃음)

여러분이 생활하는 환경을 지금보다 편리하고 깨끗하게 개선할 수 있습니다. 집이 없는 사람은 집을 지어야 하고, 집이 있지만 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면 시설 개선을 해야 합니다. 집 안에 칸막이가 없으면 칸막이를 설치해야 합니다. 할머니·할아버지 방, 젊은 부부방, 아이들 방, 최소한 세 개의 방은 따로 나누어야 합니다. 부엌도 연기가 나지 않도록 개선해야 합니다. 요즘은 전기로 밥을 짓기 때문에 선반을 만들어 도구를 올려놓고 요리도 서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방 안에도 선반을 두어 바닥에 물건을 놓지 않으면 공간을 넓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릇도 바닥이 아닌 선반에 차곡차곡 정리해야 합니다. 집이 크거나 부자가 아니라도 집이 편리해야 합니다. 그렇게 만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네, 그렇게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JTS에서 집수리를 지원하려 합니다. 그런데 첫째, 어떻게 하면 좋은지 여러분이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을마다 시범적으로 집 한 채씩을 먼저 고치겠습니다. 그러면 그 집을 보고 따라 하면 됩니다. 둘째, 집을 고치려면 재료가 필요합니다. 재료뿐만 아니라 기술과 연장도 필요합니다. 망치나 톱 같은 연장을 갖추고, 여러분이 직접 수리 기술을 익히면 앞으로 지속적으로 집을 고칠 수 있습니다. 목수처럼 잘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생활이 좀 더 편리하게 만들 수는 있습니다. 화장실도 조금 더 깨끗하게 만들고요. 집 바닥이 흙으로 되어 있는 곳이라면, 잠자는 공간은 나무 바닥으로 하고 부엌 바닥은 시멘트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바깥에 수도가 있는 곳도 시멘트로 정리하면 더욱 위생적일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운동을 해 봅시다.

또 동네 길이 흙으로 되어 있으면 아이들이 걸어 다닐 때 미끄러질 수 있으니, 시멘트로 포장하면 다니기 편할 것입니다. 농수로도 흙으로 되어 있으면 물이 유실되기 쉬우니, 시멘트로 만들면 좋습니다. 요즘에는 물 사용량이 증가해 식수가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레바티 치옥에서는 멀리서 파이프를 연결해 식수를 공급한 적도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사는 마을을 조금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봅시다. 정부가 해 주기만을 기다리지 말고, 여러분이 직접 하겠다고 하면 필요한 재료는 JTS가 지원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신청하면 첫째, 이것이 정말 필요한 것인지, 둘째, 스스로 할 수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점검이 완료되면 재료를 지원합니다. 지금 우리가 시범 사업을 진행한 지 1년 정도 되었습니다. 납지 치옥 아시죠?“

"네."

"납지 치옥에서는 농수로를 시멘트로 만들었고, 추가로 계속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콜푸 치옥에서는 경사가 심해 차가 오르기 어려운 구간이 있었는데, 시멘트로 덮어 차량이 원활하게 다닐 수 있도록 도로 일부를 포장했습니다. 님숑 치옥에서는 한 가장이 집을 짓다가 돌아가셔서 마을 사람들이 함께 도와 그 집을 완성했습니다. 품졸 치옥은 집 한 채를 수리하고, 부엌에 선반도 만들었습니다. 레바티 치옥에서는 7km 떨어진 곳에서 식수를 끌어와 모든 집에 수도를 설치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주민들이 직접 해낸 것입니다. 이런 일들을 여러분도 함께하자는 말을 하려고 왔습니다.(웃음) 필요 없다면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이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하겠습니다.’ 하면 검토 후에 지원하겠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해 주세요’ 하는 요청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그런 요청은 정부에 하면 됩니다.

꼭 호주까지 가지 않더라도 지금 여기 우리 마을에서 잘살아야 합니다. 부자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깨끗하고 편리하게 살 수는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가 대신 해 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해야 합니다. 이렇게 내 손으로 우리집과 마을을 더욱 깨끗하고 쾌적하게 만들어 봅시다. 이해되셨나요?“

"네."

"그럼, 한번 해 볼 생각이 있습니까?"

"네."

"제가 말한 것 말고도 더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저는 젬강 지역도 마을마다 모두 다녀보았습니다. 여러 마을을 방문하면서 직접 집 안에도 들어가 보고, 어떤 곳에서는 하룻밤을 묵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어떤 부분이 불편한지 몸소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드린 것들은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여러 마을을 돌아보며 실제로 필요하다고 느낀 것들입니다.”

스님의 이야기가 끝나자, 군수님이 질문을 했습니다.

"수원지부터 논까지 2km 거리인데, 예산이 부족해 1km까지만 파이프로 농수로를 설치했습니다. 파이프를 추가로 지원해 주시면 나머지 구간까지 완성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시멘트로 농수로를 만들었지만, 모두 파손되어 지금은 파이프로 다시 설치하는 중입니다. 지원해 주실 수 있을까요?”

"우리가 지원하는 데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 주민들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둘째, 환경을 파괴하지 않아야 합니다. 셋째, 유지보수가 가능해야 합니다. 주민들이 직접 수리할 수 있어야 하지요.

우리는 가능한 한 부탄에서 생산되는 재료를 사용하려고 합니다. 식수는 깨끗해야 하므로 파이프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농수로는 파이프가 꼭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파이프는 100% 해외에서 수입해야 하지만, 시멘트는 부탄에서 생산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농수로에는 시멘트만 지원 가능합니다.“

"스님, 이곳은 지형적으로 산사태가 자주 발생하는 지역입니다. 산사태가 나면 시멘트 구조물은 부서지지만, 파이프는 상대적으로 덜 파손됩니다.“

"네, 저도 파이프의 효율성은 인정합니다. 젬강에서도 파이프 지원 요청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젬강과 트롱사 전체 농수로를 파이프로 지원하려면 수요가 너무 많아집니다. 정부 프로젝트를 통해서는 파이프 설치를 신청할 수 있지만, JTS는 부탄에서 생산되는 시멘트를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우리의 지원 기준은 주민들이 직접 할 수 있는 작업만 해당합니다. 예를 들어, 도로포장을 해야 하는데 포크레인이 필요하거나 전문 기술자가 와야 한다면, 이는 정부가 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주민들이 직접 할 수 있는 작은 작업은 우리가 지원할 수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부가 지원할 수 없는 작은 부분들을 우리가 돕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격을 명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울타리를 치려 할 때 쇠 파이프와 철망을 사용하려면 정부의 지원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나무 기둥을 박고 철조망을 설치하겠다면, 이는 우리가 지원할 수 있는 사업입니다. 동물들, 특히 멧돼지가 많다면, 밑으로 파고들지 못하도록 울타리의 아랫목을 촘촘히 설치해야 합니다. 노루나 고라니처럼 뛰어넘는 동물들이 많다면, 울타리 높이를 2m 정도로 올리면 됩니다. 하지만 온 산을 철망으로 둘러싸는 것은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므로, 이런 대규모 프로젝트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야 합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JTS 사업은 정부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원래는 개인이 부담해야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으로 하지 못하는 경우 지원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마을 주민도 질문을 했습니다.

“1980년대에 절을 지을 때 1층을 먼저 만들었는데, 당시에는 철 지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몇 년 동안 나무 기둥이 비를 맞아 썩었고, 그 상태에서 위층을 올려서 지었더니 구조가 약해져서 계속 수리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절을 수리하는 것도 지원해 주실 수 있나요?”

"집이 절보다 더 좋다면 절을 먼저 수리해야 하지만, 절보다 집이 더 나쁘다면 집을 먼저 고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웃음)

제가 보기에는 지금 여러분은 집을 먼저 고쳐야 합니다. 집은 우리가 매일 사는 곳이고, 절은 가끔 사용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집을 먼저 고친 후, 다음에 절을 수리하는 것이 맞습니다. 원래 이 예산은 한국의 불자들이 절을 짓기 위해 보시한 돈입니다. 그러나 저는 절보다 사람이 먼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집을 고치는 데 사용하려 합니다. 그런 제가 부탄까지 와서 절을 짓겠습니까?(웃음) 저는 여러분이 집을 고치는 걸 도와드리고, 여러분이 살 만해지면 여러분이 힘을 모아 절을 고치면 됩니다. 불사를 하면 복을 받는다고 하지요?“

"네."

"그럼 복은 여러분이 받으세요. 저는 여러분의 집을 고치겠습니다. (웃음) 여러분은 집은 안 고쳐도 절은 먼저 고치고 싶지요? 그 마음은 훌륭합니다. 하지만 먼저 집을 정비하고, 길을 만들고, 물을 확보하고, 농사짓는 환경을 개선하고, 짐승이 들어오지 못 하도록 한 후, 그다음에 절을 고쳐야 합니다. 부처님 가르침에 ‘보살은 중생의 고통을 구제해야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 저는 여러분을 돕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절을 고쳐주세요. 이것이 올바른 순서라고 생각합니다."

대화를 마치고 왐링 마을 주민들은 형편이 넉넉하진 않지만, 정성을 다해 마을에서 생산한 농산물을 스님에게 올렸습니다. 스님은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보시물을 다시 주민들이 나누어 먹을 수 있도록 돌려주었습니다.

"여러분, 이렇게 많은 것을 보시했는데, 저는 다시 여러분께 돌려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불전에 공양을 올리면 부처님이 직접 드십니까, 아니면 여러분이 내려서 드십니까?“

"내려서 먹습니다. (웃음)"

"그렇습니다. 저에게 올렸으니, 이제 여러분이 가져가서 드시면 됩니다. 저도 여러분께 조금 보시하겠습니다."

스님은 촉바에게 보시금을 전달했습니다.

"이 보시금은 왐링 마을 주민들을 위해 써주세요.“

스님은 왐링 주민들이 다른 지역보다 더욱 어려운 형편임을 알고, 보시금이 꼭 필요한 이들에게 돌아가도록 당부했습니다. 그때, 마을 주민 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스님, 먼 길을 오셨는데, 저희가 충분한 공양을 올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스님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많이 받았습니다. (웃음)"

1시간가량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 스님은 왐링 마을의 극빈자 가정을 방문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한편, 왐링 절 바깥에는 기도를 하기 위해 찾아온 장비 치옥 주민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스님이 촉바에게 물었습니다.

"이분들은 왜 대화 시간에 들어오지 않고 여기 앉아 있습니까?"

"모두 연로하신 분들이고, 기도하러 오셨습니다."

스님은 노인들에게 다가가 한 분, 한 분 눈을 맞추며 자세히 물었습니다.

"아, 한번 해보세요. 이를 가지고 계십니까? 귀는 잘 들립니까?“


대부분 치아가 없었고,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할 일이 많겠네요. (웃음)“

스님은 트롱사주 기획관에게 마을마다 이가 없는 사람,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사람, 집이 없는 사람, 집이 없으면 나무는 준비되어 있는지, 땅은 있는지 등 자세한 조사를 진행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이후 촉바의 안내를 받아 집이 없는 극빈자의 임시 거처로 향했습니다.

노부부가 거처를 마련하지 못해 막내딸과 함께 임시로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거처를 둘러보았습니다. 이어서 집이 없어 이웃집에서 지내고 있는 젊은 부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두 가정 모두 원래 살던 집을 다른 가족에게 물려주고, 본인들은 새로운 집을 마련하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스님은 이들에게 직접 노력할 의지가 있다면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촉바에게 물었습니다.

"촉바, JTS 활동가들이 품졸 마을에 머물며 사업을 진행했지요. 집 한 채를 수리하고, 부엌을 개선했으며, 칸막이도 설치했습니다. 그리고 마을 전체에 화장실이 부족해 절 앞에 공용 화장실도 새로 만들었습니다. 그 후 품졸 마을에 가 본 적 있습니까?“

촉바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네, 스님. 다녀왔습니다. 이전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처럼 변했습니다. 감사합니다."

11시 30분에 왐링마을을 나와 랑틸 치옥으로 출발했습니다. 이동하는 중에 한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오후 1시 30분이 되어 랑틸 치옥에 도착하자, 트롱사 주지사가 현장 답사에 동행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을 주민들도 절 입구에서 길게 줄을 서서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스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축복해 준 후, 주민들과의 대화를 위해 마련된 공간으로 이동했습니다.


스님은 트롱사 주지사와 함께 랑틸 마을 주민들과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랑틸 치옥에서는 주로 어떤 농사를 짓습니까?“

"논농사와 옥수수를 재배합니다.“

"주민들의 주요 수입원은 무엇입니까?“

"이곳은 과수나 카드멈 농사가 많지 않아, 대부분 외부로 나가서 일을 합니다.“

지금까지 답사한 마을 중에 외부 노동이 주된 수입원이라고 한 마을은 처음이었습니다. 스님은 계속 질문을 이어갔습니다.

"농사만으로 식량 자급은 가능합니까?"

"약 50% 정도 자급하고, 부족한 부분은 일당을 받아 생활합니다."

"그렇다면 랑틸 치옥 사람들은 농사보다 노동을 더 많이 하고 있습니까?"

"네, 농사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노동은 주로 어떤 일을 합니까?"

"집을 짓는 일을 합니다."

"랑틸 치옥 주민들의 생활 수준은 다른 마을에 비해 어떤 편입니까?"

"중간 정도입니다. 논농사를 짓긴 하지만, 짐승 피해가 큽니다."

"이곳은 도로 아래에 논이 있어서 짐승 피해가 적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까?"

"멧돼지와 원숭이로 인한 피해가 심각합니다."

스님은 주민들의 옷차림을 보며 질문을 이어갔습니다.

"품졸이나 왐링 마을에 가면 사람들의 옷차림만 봐도 어려운 형편이 바로 느껴지는데, 여기는 그렇지 않군요. 겉보기에는 여러분의 생활이 괜찮아 보이는데, 촉바 이야기를 들어보면 농사짓는 양이 적다고 하네요.”

"스님을 뵙기 위해 깨끗하게 씻고, 제일 예쁜 옷을 차려입고 왔습니다. (웃음)"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웃음)“

"그런데 위에서 내려다보면 논이 상당히 많아 보이는데, 왜 경작지가 적다고 이야기합니까? 왐링은 24가구가 125에이커를 경작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는 70가구인데도 30에이커밖에 안 됩니까?“

"다른 치옥들은 대부분 치옥 사람들이 소유한 땅이지만, 랑틸 치옥은 왕족과 붐땅 지역 주민들의 땅이 대부분입니다."

"그렇다면 소작을 하는 경우, 주인과 노동자가 수확물을 어떻게 나눕니까?"

"예전에는 50대 50으로 나눴는데, 요즘에는 일부 주인이 노동자에게 70%를 주고 본인은 30%를 가져갑니다."

"그렇다면 주인이 씨앗이나 비료를 지원해 줍니까?"

"아니요, 아무것도 지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수확한 것 중 주인의 몫은 직접 가져다 드려야 합니다. (웃음) 계산해 보면 노동비도 나오지 않습니다. (웃음)"

대화가 이어질수록 주민들은 더욱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눴고, 분위기는 무겁지 않고 오히려 유쾌했습니다.

"그렇다면 농수로 같은 시설이 필요할 텐데, 이런 것은 주인이 만들어 줍니까? 아니면 농사짓는 사람이 직접 해야 합니까?"

"농사를 짓는 사람이 직접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농사로는 식량을 해결하는 정도이고, 옷을 사고 아이들 교육을 시키려면 현금이 필요할 텐데, 다른 마을들은 오렌지나 카드멈을 재배합니다. 여러분은 돈을 어떻게 벌어서 사용합니까?"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남편들이 외부로 나가 노동을 해서 돈을 벌고, 다른 하나는 해외에 나가 있는 자녀들이 생활비를 보내줍니다."

"이 동네 70가구 중 집이 없는 사람은 몇 가구입니까?“

"집이 없는 가구는 없습니다.“

"그러면 집은 있지만 칸막이가 없거나 시설이 열악한 가구는 몇 가구나 됩니까?“

"약 10가구 정도 됩니다.“

"이곳은 다들 전기로 밥을 짓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집 안에 물건을 올려놓을 선반이 있습니까?“

"요즘은 대부분 깨끗하게 정리하며 살아서 선반이 있습니다.“

"부엌 작업은 앉아서 합니까, 서서 합니까?“

"서서 합니다. 예전 부엌은 집 밖에 두고, 술을 만들 때 사용합니다. (웃음)“

"화장실은 깨끗합니까?“

"네, 깨끗하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웃음)“

소유한 자산이 많지 않아 생활이 빈곤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대화를 나누어 보니 경제적 어려움이 크지는 않아 보였습니다.

"촉바가 마을에 수입이 거의 없다고 했지만, 노동을 하거나 해외에서 돈을 받는 경우도 있군요. (웃음)“

"네, 다만 식수 문제가 있습니다. 수원지는 있지만 물탱크가 없습니다.“

"물을 많이 써서 그런 것 아닙니까? 혹시 하루에 두세 번씩 머리를 감습니까?“

"그런 것도 있지만, 물이 부족합니다.“

"세탁기가 있는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거의 모든 가구가 있습니다.“

"세탁기가 있으면 물을 많이 사용합니다. 랑틸은 트롱사종각과 가까워서 정부 지원을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려는 일은 정부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우리가 재료를 제공하면, 주민들이 직접 공사를 해야 하는데 가능하겠습니까? 예를 들어, 집집마다 돈을 내서 노동자를 고용한다면, 이 프로젝트는 진행할 수 없습니다. 이 사업은 주민들이 필요한 것을 직접 해결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네, 자재만 지원해 주시면 우리가 직접 하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여러분은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하니, 지금처럼 자체적으로 잘 유지하고, 정말 어려운 사람들에게 지원의 기회를 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스님, 저희가 겉으로 보기에는 옷도 잘 입고 괜찮아 보이지만, 대부분 대출을 받아 생활하고 있습니다. 매달 갚아야 하는 돈이 많습니다. 가난해 보이는 왐링 마을 사람들은 카드멈을 재배하면서 매달 저축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웃음)"

랑틸 주민들은 쾌활하게 답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재료만 지원하면 직접 할 수 있다는 것이 확실합니까?“

"네, 스님께서 지원해 주시면 노동은 우리가 하겠습니다.“

"우리의 원칙은 첫째,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지원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화학제품 사용을 최소화하려 합니다. 식수는 깨끗해야 하므로 파이프를 사용할 수밖에 없지만, 농수로 같은 경우는 시멘트로 만들어야 합니다.“

스님은 JTS의 지원 원칙을 설명하며, 노인들의 건강 상태를 확인한 후 랑틸 치옥 주민들과의 대화를 마쳤습니다.

오후 2시 40분에 오늘 마지막 답사지인 율링 치옥으로 출발했습니다. 곧 멀리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마을에 가까워질수록 크고 웅장한 건물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이곳은 1839년경 트롱사의 주지사가 건립한 영드롱 초링 궁전(Yungdrung Choling Palace)으로, 부탄 왕조의 조상인 15세기 고승 테르톤 페마 링파의 등신불(스님이 수행 중 열반에 들어 그대로 불상이 된 경우)이 모셔져 있는 성지 중 하나였습니다.

궁전 입구에는 마을 주민들이 줄을 서서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민들은 솔잎을 태워 연기를 피우며 스님의 방문을 환영했고, 촉바가 앞장서서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스님은 마을 주민들의 머리에 손을 얹어 축복하며, 촉바의 안내를 따라 궁전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궁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거의 수직에 가까웠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사람이 오르내리면서 발판이 마치 양초를 바른 듯 반질반질하고 미끄러웠습니다.


스님은 궁전 안 법당에서 참배를 한 후, 주민들과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촉바가 먼저 마을 현황을 설명한 후, 스님이 마을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JTS 프로젝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첫째,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고, 둘째, 생산 시설을 보완하는 것입니다.

주거 환경 개선은 우리가 생활하는 집과 마을을 정비하는 것입니다. 농번기에는 농사에 집중하고, 농한기에는 생활 시설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고자 합니다. 생산 시설을 보완하고 수확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시간이 다소 걸리겠지만, 농사 방법을 개선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땅에 더 많은 거름을 공급하는 방법, 가구별로 따로 하던 못자리를 공동으로 조성해 사용하는 방식, 수확량을 늘리고 품질을 높이는 방법, 이모작을 위한 적절한 작물 선택 등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농산물이 한꺼번에 생산되고 출하되면 가격이 하락하므로, 조기에 수확하는 방법을 찾거나 저장 시설을 마련해 늦게 출하하는 방식도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오렌지나 카드멈 외에도 수익을 낼 수 있는 새로운 과수를 발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런 노력을 지속하면 점진적인 변화가 이루어져 지금보다 훨씬 살기 좋은 환경이 조성될 것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모두 호주나 팀푸로 떠나면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비록 큰 부자는 되지 못하더라도, 이 지역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마을을 만들어 봅시다.

그런 취지에서 여러분 개인이든 마을이든 필요한 것이 있으면 JTS에 제안해 주세요. 다만, 이 프로젝트는 우리가 대신 해주는 사업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모여서 의논하고 아이디어를 내 요청하면, JTS가 검토한 후 지원합니다.

이러한 사업을 통해 단순히 경제적 성장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자치 역량을 강화하는 것도 목표입니다. 정부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우리 마을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한 주민이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아보카도를 심어 봤는데, 다 죽었습니다.“

스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어떤 작물이든 무조건 심는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문가가 기후와 토양이 적합한지 먼저 분석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이곳에서 오렌지를 심으면 남쪽 지역보다 수확량이 떨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율링 치옥의 환경에 맞는 작물을 선택해야 합니다."

스님은 주민들에게 앞으로의 농업 방향도 함께 고민해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겔레푸 신도시가 조성되면 채소 수요가 많아질 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채소 농사를 확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주지사님과도 협의하면서 진행해 봅시다."

이때, 한 주민이 트롱사 주지사에게 호소했습니다.

"주지사님, 마을에 원숭이가 너무 많습니다. 다른 동물들보다 원숭이가 특히 문제입니다. 100여 마리가 떼를 지어 마을을 습격하니 피해가 너무 큽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주지사가 잠시 고민하더니 농담 섞인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면 원숭이를 모두 잡아 가구마다 한 마리씩 키우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렇게 하면 개체 수가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오늘 율링 마을 대화의 핵심 주제는 ‘원숭이를 키우자’군요. (모두 웃음)"

스님은 농담을 섞어가며 마을 주민들과의 대화를 유쾌하게 마무리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마을 주민들이 인사를 건넸습니다.

"스님, 먼 길을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스님은 주민들과 대화를 마친 후, 주지사 및 행정관들과 어떻게 하면 사업을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지 함께 연구하자고 이야기했습니다.

이후, 오늘의 일정을 마치고 랑틸에 있는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숙소에 도착하니 어느덧 저녁 6시가 다 되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숙소에서 씻고 업무를 보며 하루를 정리했습니다.

내일은 랑틸 게옥의 당둥 치옥을 답사한 후, 드락텡 게옥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1월 24일 진행된 금요 즉문즉설에서 질문자와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저를 괴롭히는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저는 20년이 넘도록 친구나 가족에게도 말하지 못한 수치스러운 기억이 있습니다. 예민했던 사춘기 시절, 체격이 큰 친구에게 일명 '샌드백'이라 불리며 두들겨 맞았고, 그 친구의 숙제를 대신 해줘야 했습니다. 한 번은 제가 수술을 받고 학교에 갔는데, 엄살을 부린다며 수술 부위를 걷어 차여 재수술을 해야 했습니다. 장난이라며 제 머리를 태우기도 했고, 기절시키는 장난으로 실제로 기절하기도 했으며, 돈도 빼앗기는 등 많은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학창 시절 내내 괴롭힘에서 벗어나고 싶어 자는 척을 해보기도 했지만, 자고 있는 저의 머리채를 잡아 흔들어 깨워 다시 괴롭혔어요. 졸업하면 모든 고통이 끝날 줄 알았지만, 사회에 나가서도 부당한 처사와 괴롭힘을 겪었습니다. 그때부터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내가 무엇을 잘못했을까?’ 하는 생각을 반복하게 되었고, 피해 의식, 자괴감, 열등감, 분노, 억울함이 깊어졌습니다. 성인이 된 후 공황장애로 정신과 치료를 받아보기도 했지만, 시간당 10만 원이 훌쩍 넘어가는 상담 비용 때문에 결국 치료를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최근 들어, 가까운 친구나 가족, 회사 동료가 조금이라도 저를 무시하는 발언을 하면 쉽게 분노하고 싸움으로 이어지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미운 대상은 끊임없이 생겨나고 사라지곤 합니다. 왜 저는 어딜 가든 약자가 되고, 당하기만 하며 살아갈까요? 어떻게 하면 과거에 저를 괴롭혔던 상대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저를 함부로 대하거나 무리한 요구를 하는 사람들에게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을까요?”

“첫째, 어떤 한 사람이 계속 나를 괴롭힌다고 느껴진다면, 그 문제가 그 사람에게 있는지, 아니면 나에게 있는지는 확률이 반반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그 사람이 정말 객관적으로 나를 괴롭히는 건지, 아니면 내가 그 사람의 행동을 과도하게 해석하여 피해 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인지를 따져보아야 합니다. 둘째, 두 사람이 나를 괴롭힌다고 느껴진다면, 즉 여기서는 이 사람이 나를 괴롭히고, 저기서는 저 사람이 나를 괴롭힌다고 느껴진다면 그들보다는 나에게 원인이 있을 확률이 더 높습니다. 셋째, 내 주위에 세 명이 있는데 세 명 모두가 나를 괴롭힌다고 느껴진다면, 이 경우에는 문제의 원인이 그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있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한 사람만 미운 경우에는 문제의 원인이 반반일 수 있지만, 두 사람이 밉다면 나에게 문제가 있을 확률이 3분의 2로 높아지고, 세 사람이 밉다면 나에게 문제가 있을 확률이 4분의 3에 달한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느끼기에는 상대가 나를 괴롭힌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게 꼭 괴롭힘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누군가가 지나가다 머리를 툭 치거나 욕을 할 수는 있지만, 그런 일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흔한 일이에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종종 발생할 수가 있는 일입니다.

살다 보면 싸우기도 하고, 때리기도 하고, 맞기도 하고, 욕하기도 하고, 욕을 얻어먹기도 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물론 그 순간에는 기분이 나쁠 수 있지만, 잠을 자고 나면 다시 괜찮아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게다가 수행을 많이 한 사람이라면 한 대 맞거나 욕을 먹어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가 있죠. 하지만 수행을 하지 않았더라도 정신적으로 강한 사람이라면, 한 대 맞거나 욕을 들었을 때 순간적으로 기분이 나쁘지만 며칠이 지나면 다시 괜찮아집니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약간 문제가 있으면, 상대가 나를 때리거나, 나에게 욕을 하거나, 내 물건을 뺏거나 훔쳐 갔을 때, 그 일이 나에게 깊은 상처를 남겨서 엄청나게 괴로워지게 됩니다. 하루 이틀이 지나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상처가 커지게 돼요. 마음속에 분노가 생겨서 복수를 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는 거죠.

질문자의 경우 처음에는 한 사람이 학교 다닐 때 자신을 괴롭혔다고 하니까, 만약 그랬다면 그때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얘기해서 개선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기억이 점점 약화되어야 하는데, 지금까지도 그 기억이 질문자의 생활을 괴롭힌다면 이미 트라우마가 된 거예요. 과거의 상처가 여전히 질문자에게 남아 있는 겁니다.

또 다른 사람을 만나도 같은 문제가 반복된다면, 두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첫째, 질문자가 정신력이 약해서 상대방의 괴롭힘을 과도하게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상대가 괴롭힌 정도보다 질문자는 그것을 더 강하게 느낀다는 겁니다. 그 트라우마 때문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어려워지는 문제가 발생한 겁니다. 그 친구가 아직도 연락을 하거나 만나자고 해서 괴로움을 계속 겪고 있다면, 그 친구와의 관계는 우선 끊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질문자가 그것을 감당할 능력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친구와의 만남이 이미 지나간 일이고 과거의 기억 속에만 존재할 뿐이라면, 트라우마에 대한 치료가 필요해요. 트라우마 치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미 지나간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입니다. 이미 지나간 일은 과거에 녹화된 기억일 뿐이고, 지금은 현실이 아닙니다. 그 일이 떠오를 때마다 '이건 환상이다' 하고 생각하며 관점을 바꿔야 해요.

그러나 아무리 '이건 환상이다' 하고 생각해도 계속 머릿속에서 그 기억이 떠나지 않는다면, 그때는 다른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 친구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면 마당에서 뛰거나 텔레비전을 보는 등의 방법으로 채널을 바꾸는 거예요. 이것은 그 순간에서 벗어나는 임시적인 해결책입니다.

더 근본적인 해결책은 이미 지나간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과거는 그저 기억 속에 있을 뿐 실제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공(空)입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는 더 이상 없는 것입니다. 이 점을 자꾸 명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문제의 원인을 그 사람에게만 돌리지 말아야 해요. 세상은 원래 욕도 하고, 남의 돈을 떼먹기도 하고, 배신도 하는 등 다양한 일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세상에 병균이 없으면 좋겠지만, 병균은 항상 존재합니다. 그렇다고 병균을 다 없앤 무균 상태에서만 살 수는 없습니다. 병균이 있어도 나에게는 면역력이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 거예요. 안 그러면 무균실에 들어가 있어야 하잖아요. 운전할 때 다른 차가 급정거를 하거나 차선을 바꾼다고 해서 화를 내기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상황을 감안하고 운전해야죠. 급정거에 대비해 앞차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갑자기 끼어드는 차량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운전해야 합니다. 사고가 생길 때마다 '왜 이런 일이 생기지?'하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너무 피해 의식을 갖고 있는 데에서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문제의 원인은 나에게 있다' 하고 관점을 바꾸는 것이 필요합니다.

질문자는 병원에 다니면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으니, 효과가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기보다는 조금 더 의사와 상담하며 치료를 지속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지나간 과거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자꾸 과거의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이건 환상이다’ 하고 돌이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만약 그것조차 안 된다면, 생각을 다른 방향으로 돌려야 합니다.

물론 이런 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이런 사람들도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나쁜 사람을 다 잡아 죽일 수도 없고, 감옥에 보내거나 처벌할 수도 없습니다. 세균을 다 없앨 수 없는 것처럼, 그런 사람도 존재하는 것이 이 세상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 그런 상황이 객관적으로 너무 심각해지면, 항생제를 먹고 주사를 맞는 것처럼, 우리는 적절한 대응을 해야 합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네. 교통 규칙이 있지만 이를 지키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말씀에 저도 공감이 갔습니다. 저도 운전하면서 교통법규를 완벽하게 지키지 않는 부분이 있거든요. 그런 점에서 제 자신이 과거에 너무 끌려갔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는 현재에 깨어 있는 연습을 해보겠습니다.”

“나를 때리기도 하고, 물건을 뺏어가기도 했던 그 친구가 지금도 여전히 나를 때리고 물건을 뺏어가고 있나요?”

“요즘은 그 친구를 만날 일이 없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그 친구가 나를 때리고 내 물건을 뺏어가서 괴로웠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내가 괴로운 이유는 누구 때문인가요?”

“그 누구도 아니고 저의 기억 때문에 괴로운 것 같습니다.”

“그 기억은 누구의 기억이에요?”

“제 기억입니다.”

“그럼 지금은 누구 때문에 괴로운 거예요?”

“저 때문에 괴로운 것 같습니다.”

“괴로워지고 싶으면 계속 괴로워하면 돼요. 하지만 내가 지금 괴롭지 않으려면, 그런 생각이 들더라도 '이건 지나간 일이다'라고 생각하면서 그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만약 지금도 그 친구가 계속 나를 때리고 내 물건을 빼앗고 있다면, 경찰에 신고해서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그게 아니라면 현재 상황에서는 그 친구의 문제가 아닌 겁니다. 지금은 그 친구의 문제가 아니고 바로 내 문제입니다. 그 친구가 죽든 살든 그건 내 문제와 관계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깡패에게 납치를 당했어요. 깡패가 그 사람에게 나쁜 일을 하라고 시켰는데 거부하니까 마약 주사를 강제로 놓았어요. 내가 마약을 안 맞겠다고 저항했지만 결국 강제로 주사를 맞고 마약 중독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경찰에 의해 구출되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사람이 집에 돌아왔을 때 마약 중독 증상이 여전히 있을까요, 없을까요?”

“여전히 있습니다.”

“그 사람이 집에 돌아와서도 여전히 마약을 한다면, 그 사람 본인이 처벌을 받을까요? 예전에 나에게 마약을 강제로 투약한 사람이 처벌을 받을까요?”

“본인이 처벌받습니다.”

“그것처럼 누가 어떻게 시작했든 이제는 내 문제가 된 거예요. 그래서 ‘이건 내 문제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자꾸 그 사람의 문제라고만 생각하면 해결책이 없습니다. 하지만 내 문제로 받아들이면 내가 해결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내가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기억에 집착해서 지금 내가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 사람이 나를 괴롭히는 게 아니에요. 내가 나를 괴롭히는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는 거죠. 과거는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단지 기억일 뿐이라고 자꾸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기억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합니다.”

“과거의 기억이 습관처럼 올라오는데 어떻게 하면 될까요?”

“습관처럼 올라오니까 그걸 막을 방법이 없지요. 나도 모르게 올라오는데 내가 어떡하겠어요? 그러니 과거의 기억이 올라올 때마다 ‘이건 환상이야. 바보 같은 생각이야’ 이렇게 자꾸 자각해야 합니다. 그 정도가 심하면 약을 먹어야 합니다. 약을 먹으면 과거의 기억이 안 올라오는 게 아니라 조금 덜 올라옵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전체댓글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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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근 ㅣ

감사합니다

2025-02-13 05:42:56

임영현

부탄에서 각 게옥을 방문하셔서 그들의 생활을 개선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감사한 마음이 올라왔으며, 내용 중에 잠만 잘 수 있는 곳이면 충분하다는 어느 주민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무언가 자각을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2025-02-11 20:11:03

지명화

감사합니다

2025-02-11 15: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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