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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년 아들이 6살 여아를 추행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 스님의하루

스님의하루

2025.01.29 수자타 아카데미 둘러보기
“4학년 아들이 6살 여아를 추행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수자타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의 수업을 참관하고, 지바카 병원을 둘러본 후 중·고등학생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한국의 설날입니다. 인도 공동체 대중도 어젯밤 나물, 전, 과일 등을 준비해 두고, 새벽 기도를 마치자마자 차례상을 차렸습니다.


스님도 공동체 대중과 함께 차례를 지냈습니다. 대중들은 차례로 잔을 올리고 삼배를 한 뒤, 영가단을 향해 해탈주를 세 번 봉독했습니다. 이어서 대중들이 스님께 세배를 올렸습니다.

"오늘은 한국의 설날입니다. 인도 공동체 대중 모두 성지순례를 준비하고 뒷정리까지 하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올해는 다들 건강하게 지내기를 바랍니다."

스님은 차례상 음식과 떡국으로 대중들과 함께 발우공양을 한 후, 대중공사 시간에 소심경 염불 소리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여러분, 소심경 염불의 속도가 약간 빠른 것 같습니다. 한 단락이 끝나고 다음 단락으로 넘어갈 때 숨이 가쁘게 넘어가는 느낌입니다. 정토회는 불교 의식을 최소화하고 있지만, 예불과 반야심경, 소심경만큼은 전통 방식을 잘 지켜서 하고 있습니다. 염불할 때는 정성을 담고 곡조가 변형되지 않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예, 잘 알겠습니다."

스님은 오전 9시부터 수자타아카데미를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둥게스와리 전정각산 주변의 15개 마을 중 자가디스푸르, 두루가푸르, 방갈비가 마을의 아이들과 맘꼬시힐, 아마르푸르, 가왈비가, 까나흘, 바가히 마을 등에서 일부 학생들이 수자타아카데미로 등교하고 있습니다.

먼저 1~2학년 교실을 방문해 학생들에게 어느 마을에 사는지, 어떤 과목과 스포츠를 좋아하는지, 미술·음악·댄스·태권도 중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는지 등을 물었습니다.

"여러분, 수업을 하면서 필요한 것이 더 있나요?"

"네, 없습니다."

"밥은 맛있어요? 더 먹고 싶은 것이 있나요?"

"없습니다."

"연필이나 노트 같은 학용품은 충분한가요?"

"네, 충분합니다."

"선생님이 스님이 물어보면 다 충분하다고 대답하라고 시켰어요? (웃음)"

"아니요. (웃음)"

오늘은 스님이 교실을 방문하는 날이라 학생들은 모두 깔끔하게 교복을 입고 단정한 모습으로 등교한 듯했습니다. 30년 전 둥게스와리에 처음 학교를 세울 때 아이들의 모습과 비교하면, 지금 수자타아카데미 학생들은 어느 도시의 사립학교 학생들 못지않게 보였습니다.

스님은 특별 교실도 둘러보았습니다. 이번에 교실 두 개를 터서 만든 도서관과 시청각 교육실을 둘러보았습니다.

학교 도서관을 둘러보던 스님은 학교 책임자인 아자이 님에게 물었습니다.

"책이 너무 적은 것 같은데, 책을 더 구입할 방법은 없나요?"

"현재 인근 도시인 가야나 파트나에서 구할 수 있는 책은 모두 도서관에 있습니다. 더 구매하려면 델리에서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학생들이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나요?"

"네, 많이 이용하는 편입니다."

이후 스님은 3~4학년 교실을 방문했습니다. 예전에는 스님의 질문에 아이들이 대답을 하지 못하고 눈만 꿈벅였지만, 이제는 우렁차게 대답을 잘했습니다.


이어서 대형 거울이 설치된 춤 연습실과 태권도 도장을 둘러보고 또 학생들이 사용하는 화장실도 둘러보았습니다.


다음으로 5~6학년 교실을 방문해 보았습니다.

"지금 무엇을 배우고 있나요?"

"지리를 배우고 있습니다."

"제가 하나 질문해 볼게요. 사람의 이동 수단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데, 무엇일까요?"

"도로로 이동하는 것, 물로 이동하는 것, 하늘로 이동하는 것입니다."

"맞아요. 그러면 도로로 이동할 수 있는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기차, 자동차, 릭샤, 자전거…"

"그러면 이동 수단 중에서 가장 많은 물건을 한꺼번에 운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기차요!"

"아니에요. 여러분이 기차밖에 못 봐서 그럴 수도 있어요. 가장 많은 물건을 운반할 수 있는 것은 배입니다. (웃음)"

스님은 아이들과 교과 내용을 주고받으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초등학교 교실을 모두 둘러본 후, 스님은 지바카병원으로 이동했습니다.

병원으로 향하는 길에 한국에서 온 스님과 불자가 수자타아카데미를 방문했다는 소식을 듣고 잠시 시간을 내어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스님, 안녕하십니까. 얼마 전 룸비니에서 대중들과 함께 성지순례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희도 전정각산을 들렀다가 혹시 스님을 뵐 수 있을까 해서 왔는데, 직접 만나 뵙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어서 오세요. 오늘은 하루 종일 학교를 둘러보는 일정이라 이곳에 있었습니다. 지금 병원을 둘러보러 가는 길인데, 함께 가시겠습니까?"

"네, 감사합니다."

스님은 손님들과 함께 지바카병원으로 이동했습니다. 병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건물 바깥에서는 다리를 다쳐 온 여성이 접수를 기다리고 있었고, 병원 안에서는 손가락에 화상을 입은 환자가 진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병원을 찾은 환자들에게 한 사람씩 다가가 왜 왔는지, 어디가 아픈지, 어느 마을에서 왔는지, 무엇을 타고 왔는지 등을 세세히 물었습니다. 병원에는 갓 태어난 아기를 등록하러 온 부모들도 있었습니다.

한 학생은 부모님이 집을 비운 사이 머리 위 선반에 있던 큰 물건이 발 위로 떨어져 다쳤다며, 까미스왈 님에게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몇 년째 지바카병원에서 봉사하고 있는 수자타아카데미 학생 로시니도 이 날은 병원을 찾은 사람들이 많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지바카병원을 둘러본 후 손님들과 함께 JTS 센터로 이동해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이후 아이들과 점심 공양을 하기 위해 쁘락보디홀로 향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점심 공양을 하려 했지만, 이미 11시 30분이 넘어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쁘락보디홀에 들어서자 공양을 마친 몇몇 아이들이 환하게 웃으며 큰 소리로 인사했습니다.

"스님, 어서 오세요!"

"밥은 맛있어요? 뭐가 더 들어가면 맛이 있을 것 같아요?"

아이들은 말없이 웃었습니다.

스님은 아이들과 함께 바닥에 앉아 공양을 한 후, 쉬지 않고 7~8학년 학생들이 있는 교실로 이동했습니다.

"여러분은 오전에 봉사하고, 오후에 공부하는 거죠?"

"네."

"혹시 봉사를 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까?"

"없습니다."

스님은 학생들에게 어떤 봉사를 하고 있는지 세세하게 물었습니다. 학생들은 유치원에서 어린아이들을 가르치거나 또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는 학생들은 유치원 아이들을 목욕시키거나, 학교 전체를 청소하는 공동 울력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고학년 학생들에게는 어떤 과목을 좋아하는지, 장래 희망이 무엇인지, 더 심층적으로 배우고 싶은 과목이 있는지, 혹은 관심 있는 예체능 활동이 무엇인지 등을 물었습니다.


"혹시 봉사하는 유치원 중에서 보수가 필요한 곳이 있습니까?"

"저는 나훌나가르 유치원에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유치원에 수도가 설치되어 있는데, 수도꼭지가 없습니다. 수도꼭지가 있으면 아이들이 사용하기 더 수월할 것 같습니다."

"저는 두루가푸르 유치원에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유치원 내부 벽 미장이 수리가 필요하고, 바닥도 움푹 패인 곳이 많아서 아이들에게 위험합니다. 전체적으로 점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7~8학년 학생들이 유치원의 어린아이들이 불편한 점이 무엇인지, 무엇이 필요한지 직접 요청하는 모습이 무척 어른스러워 보였습니다.

스님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쉬지 않고 모든 교실을 둘러보았습니다. 이후 중등부와 고등부 학생들을 법당으로 모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이곳에 처음 온 것은 1993년, 둥게스와리 유영굴을 방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유영굴로 올라가는 길에 100명이 넘는 아이들이 구걸을 하고 있었습니다. 왜 학교에 가지 않고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구걸을 하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학교가 없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이렇게 많은데 학교가 없을 수 있느냐고 마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두루가푸르 마을 주민들과 논의한 끝에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짓기로 했습니다. 저는 마을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의 아이들을 가르칠 학교를 짓는데, 여러분도 뭔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우리는 가진 것이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렇다면 학교를 지을 땅이라도 기부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드루가푸르 마을 주민 10명이 1가타씩 땅을 내놓았고, 그렇게 해서 현재 교문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첫 번째 건물이 건축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들녘에 우물 하나만 있었습니다. 그 우물에서 물을 길어 마을 사람들이 함께 힘을 모아 건축을 시작했습니다. 스님도 두루가푸르 마을에 방을 하나 얻어 함께 일했습니다. 염소가 살던 방이었는데, 염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고 그곳에서 생활했습니다. (웃음) 바닥에 깔린 지푸라기를 걷어내고 새 지푸라기를 깔아 침낭을 펼쳐 잤습니다. (웃음)

마을 아이들을 모두 불러 모았더니 100명이 넘었습니다. 두 반으로 나누고, 둥게스와리 마을에서 8학년까지 나온 청년 두 명을 찾아 나무 밑에서 한 반씩 가르치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학교가 시작되었습니다.

1년 만에 교실 4칸이 지어졌습니다. 3칸은 교실로 사용하고, 1칸은 선생님들과 제가 생활하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지역에 콜레라가 번지면서 학교가 콜레라 환자들을 위한 임시 수용시설로 바뀌었고, 저도 환자들을 돌보다가 콜레라에 걸렸습니다. (웃음)

그렇게 어렵게 학교가 운영되었는데, 아이들이 학교에 오면 자꾸 쓰러졌습니다. 쉬는 시간이 되면 모두 대추나무 밑으로 가서 대추를 주워 먹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스님은 보드가야의 버마 박사님을 불러 학생들의 건강 상태를 확인했습니다.

‘영양실조네요. 약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급식을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학생 수가 150명에서 300명으로 늘었습니다. 다른 마을의 정부학교에 다니던 학생들까지 모두 수자타아카데미로 몰려왔고, 학교는 2층을 증축하게 되었습니다.

학교를 세운 지 3년 만에 졸업생이 생겼습니다. 다른 학교에서 전학 온 학생들 덕분에 1~5학년 과정이 모두 갖춰졌기 때문입니다. 첫 졸업생은 남녀 3명씩 총 6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남학생들은 소하이푸르에 있는 정부학교로 진학했지만, 여학생들은 학교를 가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여자아이들이 중학교에 가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학생들이 찾아와 울면서 말했습니다.

‘정부학교까지는 너무 멀어서 부모님이 보내주지 않습니다. 중학교 과정을 만들어 주세요.’

저는 초등학교 과정만 운영한다고 설명하며, 부모님을 설득해 정부학교에 보내달라고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음 해에도 졸업생 4명이 더 늘었고, 여학생 7명이 다시 찾아와 울면서 중학교 과정을 개설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 해, 유치원을 처음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초등학생들이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학교에 오다 보니 수업이 방해될 정도로 시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어린 동생들을 따로 모아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중학교를 다니고 싶어 하는 여학생들에게 물었습니다.

‘너희가 유치원 아이들을 돌볼 수 있겠니?’

‘네,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오전에는 유치원 아이들을 돌보고, 오후에 중학교 공부를 하면 어떻겠니?’

‘좋아요!’

이렇게 해서 중학교가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마을마다 유치원이 늘었고, 중학생 수도 늘어났습니다. 수자타아카데미는 초등학교까지는 공부만 하면 되지만, 중학교 과정부터는 역할을 해야 배울 수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대부분 일하러 갔기 때문에 중학교 진학자가 많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점점 중학생이 늘어났고, 중학생이 유치원생을 가르치고, 고등학생이 초등학생을 가르치고, 대학생이 되면 중학생을 가르치는 시스템이 자리 잡았습니다.

학생들은 자신의 공부도 하면서 열심히 가르쳤기 때문에 수자타아카데미 학생들은 정부에서 실시하는 시험에서 대부분 상위권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다만, 산스크리트어나 영어 같은 전문 과목은 자체적으로 가르칠 수 없어서 외부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제가 이런 수자타아카데미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우리가 일반 학교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수자타아카데미가 좋은 학교라고 생각합니까?“

"네!"

"가야에 있는 사립학교보다 시설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까?"

"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합니다. 공부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자타아카데미는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정직해야 합니다. 또 잘하든 못하든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학교 청소도 직접 하고, 어린아이들도 직접 돌봅니다. 여러분도 유치원 아이들을 돌볼 수 있죠?"

"네!"

"8학년 학생들은 1~2학년을 가르칠 수 있죠?"

"네!"

"부처님은 왕자로 태어나 모든 것을 가졌지만, 세상의 고통을 보고 궁을 떠났습니다. 나무 밑에서 자고 검소하게 살면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는 삶을 사셨습니다. 우리는 부처님처럼 살지는 못하더라도, 부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알겠지요?"

"네!"

스님은 학생들에게 새해 용돈을 나누어 주고, 학년별로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은 수자타아카데미 출신으로 외부 정부학교에 다니며 봉사하는 학생들을 따로 모아 전공, 학교생활, 졸업 요건 등을 물으며 고등교육의 운영 상태를 점검했습니다. 또한 봉사와 나눔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한 후, 이들에게도 용돈을 나누어 주고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은 마지막으로 특수과목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을 모아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우리 학교는 다른 학교들과 조금 다릅니다. 수자타아카데미는 JTS에서 운영하는 학교입니다. JTS는 모든 스태프가 자원봉사로 일하고 있고, 수자타아카데미도 역시 자원봉사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교 운영은 고학년 학생들이 저학년을 가르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가르치는 산스크리트어, 댄스, 태권도, 영어 같은 과목은 우리 학생들이 스스로 가르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꼭 배워야 하는 과목이기에 여러분께 도움을 요청드리는 것입니다. 다른 곳에 비하면 강사료가 많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학교 운영 취지를 이해하고, 조금은 봉사하는 마음으로 함께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선생님들은 학교 운영 방식과 취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고개를 숙이며 경의를 표했습니다. 스님은 특수과목 선생님들에게도 선물을 전하고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긴 하루 일정이 마무리되는가 싶었지만, 한국에서 온 스님 한 분이 스님을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2009년, 법륜스님이 진행한 성지순례에 참여했던 분이었습니다. 그해의 성지순례가 무척 인상 깊어, 수자타아카데미를 잊지 않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제가 2009년 성지순례를 하면서 이곳 수자타아카데미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깜깜한 상태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법륜스님께서 대중에게 상황을 설명하셨습니다.

'이곳에도 전기를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려면 정부에 뒷돈을 줘야 합니다. 저는 뒷돈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이렇게 깜깜한 것입니다.' 그때 스님의 말씀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습니다. (웃음) 오늘 저는 보드가야에서 전정각산을 왕복 도보 순례하는 일정이었습니다. 전정각산을 내려와 다시 보드가야로 걸어가려던 참에 혹시 법륜스님이 계실까 해서 들렀는데, 이렇게 뵙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스님도 반갑게 맞이하며 말했습니다.

"네, 저도 1년에 한 번 이 기간에만 인도에 머무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어 반갑습니다."

스님은 모든 일정을 마친 후 숙소로 돌아와 원고를 교정하고, 저녁 공양을 마친 뒤 휴식을 취했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1월 24일 바라나시에서 생방송으로 진행된 금요 즉문즉설에서 질문자와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4학년 아들이 6살 여아를 추행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에게는 굉장히 사랑스러운 두 자녀가 있는데요. 첫째는 자기가 할 일을 척척 잘하는 조금 무뚝뚝한 딸이고, 둘째는 4학년 올라가는 애교 많은 아들입니다. 아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안아주고 뽀뽀해 주고 엄마가 만든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고 해줍니다. 엄마랑 100살까지 같이 살겠다고 말하는 정말 애교 많은 아들이었는데요. 어느 날 학원에서 전화를 한 통 받았습니다. ‘어머니, 학원에 오셔서 CCTV 영상을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하고 말해서 학원에 찾아가 영상을 봤는데, 아들이 6살짜리 여자아이를 추행하는 모습이 찍혀 있었습니다. 정말 뉴스에 나올만한 영상이었거든요. 굉장히 충격을 받아서 그날 밤에 아들을 붙잡고 굉장히 많이 울었어요. 지금은 사고를 수습하고 센터를 다니면서 치료를 받고 있기는 한데, 솔직히 그 이후로 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예전처럼 대하기가 정말 힘들어요. 항상 같이 어울리던 가족과도 그 집에 어린 딸이 있어 만나기 꺼려집니다. 평상시와 다름없이 저를 대하는 아들에게 ‘엄마가 너를 예전처럼 대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하고 말했습니다. 자꾸 영상 속 아들 모습이 떠오르고, 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이 부모가 생각하는 그런 착한 아이가 안 되고 말썽을 일으키는 아이가 되면, 부모로서 속상한 마음이 이루 말할 수가 없죠. 그러나 크게 생각하셔야 돼요. 내 예상을 벗어났기 때문에 큰 일로 느껴지기는 하지만, 더 크게 보면 큰 일은 아닙니다.

그리고 아이가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알기 위해 전문가와 상담을 해야 합니다. 먼저 대부분의 11살짜리 남자아이가 성적 호기심이 있는지 없는지 전문가에게 물어봐야 돼요. 성적 호기심이 있는 게 보통이라고 하면 호기심 자체는 정상이에요. 그런데 11살짜리 아이는 보통 성적 호기심이 없다고 하면, 아이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애가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하지만, 사람에 따라 다 다릅니다. 만약 자기도 모르게 호르몬 분비 이상으로 성적 호기심이 일어났다면, 스스로 통제할 수가 없는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럼 전문가에게 의뢰해서 치료를 해야 합니다. 호르몬의 문제라면 스스로 통제가 안 돼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나쁜 일을 했다고 호통친다고 해서 어떻게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런 게 아니라 11살짜리 남자아이들 대부분이 성적 호기심이 있다면, 호기심 자체는 병이 아니고 행동으로 옮긴 것이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종의 윤리적인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아이와 이렇게 대화를 해야 합니다.

‘성적호기심이 있을 수는 있는데 그렇다고 그 호기심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타인에게 평생 큰 상처가 된다. 이 일로 그 아이는 일생을 고통 속에 살 수도 있다. 너는 단순한 호기심이지만 그 아이에게는 엄청난 고통이기 때문에 절대로 삼가야 된다.’

상대 아이나 부모에게는 변명하지 말고 사과를 한 후 필요하면 배상도 해야 됩니다.

호기심 자체가 정상이라면 행위를 문제 삼아야 하고, 호기심이 비정상이라면 치료해야 합니다. 호기심이 일어나는 건 정상이지만 행위에 문제가 있다면 호기심이 타인에게 어떤 고통과 상처를 주는지에 대해 아이와 대화를 해나가야 합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앞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행위를 자제할 수 있도록 예방하는 게 중요합니다. 야단만 치면 아이는 숨어서 몰래 해버립니다. 그러면 큰 사고가 일어날 위험이 있습니다. 타인의 동의 없이 마음대로 하는 행동이 얼마나 상대에게 피해를 주는지를 아이가 자각하도록 대화하고, 호기심이 있더라도 자제하는 훈련을 해야지 야단칠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아이를 엄마로서 부담스러워하거나 창피하게 생각하지 말고, 아이를 보호하는 측면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아이의 의식이 비정상이라면 치료를 해주고, 정상이라면 행위를 자제해서 앞으로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엄마가 도와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엄마와의 스킨십이 아이에게 어떤 성적 호기심을 일으키는지, 아니면 엄마가 스킨십을 거부했을 때 더 문제를 일으키는지, 이것도 전문가와 상담을 해보면 돼요. 아이가 치료를 해야 되면 치료를 하고, 자제하는 훈련을 받아야 되면 꾸준히 대화를 하면서 자제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됩니다.”

“네, 현재 센터를 다니면서 치료도 받고 있고, 야단도 쳤고 대화도 많이 했습니다. 아빠와도 대화하고 있고요. 그런데 문득문득 그 영상이 떠오르니까 ‘아이가 왜 그랬을까’ 자꾸 생각이 나고, 아이를 평상시처럼 대하는 게 어려워지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아이를 자꾸 피하게 되고요. 제가 항상 해주던 것도 아이 아빠에게 자꾸 미루게 됩니다. 저도 고쳐 나가야 되는데 어떻게 고쳐 나가야 되는지를 모르겠어요.”

“그 영상을 자꾸 생각하는 건 질문자의 문제잖아요.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는 것은 자신의 문제입니다. 그걸 자꾸 아이한테 책임을 물으면 안 됩니다. 그 생각만 하면 내가 아이를 가까이 오게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은 자기 문제입니다. 자기가 자기 문제도 해결 못 하면 아이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지금 질문자는 엄마로서 ‘아이를 어떻게 도울 것이냐’에 초점을 안 맞추고 있습니다. 미래에 아이에게 올 위험을 생각해서 아이에게 어떤 도움을 주어야 하는지에 더 집중해서 생각해야 됩니다.

그리고 아이가 어느 정도 크면 엄마마저도 이성으로 보일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옷을 갈아입거나, 샤워를 할 때도 아이를 위해서 일정한 조처를 취해야 합니다. 아이가 어릴 때처럼 행동하면 안 됩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이런 교훈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아이를 두려워하거나, 아이를 싫어하거나, 이런 것은 자신이 풀어나가야 할 문제이지 아이를 위하는 행동이 아닙니다.”

“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내일은 인도JTS 스테프들과 함께 라즈길로 소풍을 다녀올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0

0/200

김종근

감사합니다

2025-02-11 05:55:52

KSY

"내 예상을 벗어났기 때문에
큰 일로 느껴지기는 하지만,
더 크게 보면 큰 일은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2025-02-05 19:46:34

정 명

수자타 아카데미의 역사를 다시 들으니
새삼스레 감동이 또 느껴지네요
아들 어머니 충격이 컸겠지만 스님 말씀대로
현명한 대처 잘 하시면 좋겠네요

2025-02-05 16:5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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