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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부탄답사 11일째 날입니다. 오늘은 싱칼(Shingkhar) 게옥의 왐링(Wamling), 츠리사(Thrisa), 라디(Radi), 님숑(Nimshong) 치옥을 방문하여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새벽에 수행과 명상을 하고, 한국과 소통하며 여러 업무를 처리했습니다. 7시 30분에 숙소에서 준비해 준 아침식사를 하고 답사를 출발하기 전에 집주인과 잠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왐링 사람들은 그래도 조금 잘 사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좁카 게옥을 갔을 때는 같은 젬강 지역이지만 형편이 많이 어려워 보였거든요.”
“네, 왐링 치옥이 아주 잘 사는 것은 아니어도 다른 치옥들보다는 형편이 조금 나은 편입니다.”
스님은 왐링 지역의 어려운 점과 주민들의 생활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던지며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출발 시간이 되자 스님은 집주인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습니다.
“식사와 숙소를 준비해 주셔서 잘 먹고 잘 쉬었습니다.”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숙소를 나와 왐링 유치원으로 이동했습니다. 이곳에서 마을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서인지 유치원에 모인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촉바가 확인해 보니 주민들이 이제 막 오는 중이었습니다. 스님은 주민들과의 약속 시간이 될 때까지 유치원 뒤 계단식 논을 둘러보았습니다.
“이곳도 수로 보수가 필요하겠네요. 그런데 이곳까지 시멘트를 들고 나르는 일이 쉽지 않겠어요.”
논의 수로를 점검하며 걸음을 옮기던 중, 저 멀리 주민들이 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9시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이자 부탄 전통 환영식을 간단히 진행하고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스님이 주민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습니다.
“여러분,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중국보다 더 멀리 동쪽에 있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촉바에게 마을 현황에 대해 설명을 들은 후 스님은 JTS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갔습니다.
“JTS 프로젝트는 집을 개선하고 울타리를 치고, 농수로와 상수도를 정비하여 마을을 살기 좋은 환경으로 만드는 일입니다. 그런데 제가 듣기로는 왐링은 사람들이 다들 잘 산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여기는 도울 게 별로 없다고 하더군요. (웃음)
도울 게 없다면 오히려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집안에 칸막이를 치거나 선반을 만들고, 부엌시설을 고치는 등 생활환경을 개선하겠다면 지원해 드립니다. 촉바가 상수원이 부족하다고 했는데 그 이외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습니까?”
이에 한 주민이 답했습니다.
“농수로 보강이 필요합니다. 정부에 요청했지만 예산이 없다고 해서 조금씩 수리하며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매년 산사태가 발생해 수리한 농수로가 자주 고장 납니다. 자재 지원만 해주시면 튼튼하게 정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님은 이어 트롱사에 있는 납지 마을의 사례를 들려주었습니다.
“트롱사에 있는 납지 마을을 아십니까?”
“네, 알고 있습니다.”
“납지 주민들도 여러분처럼 농수로를 보수하고 필요한 부분을 시멘트로 작업하고자 했습니다. 지난 6월에 350m를 만들었는데, 여름 농번기에는 쉬었다가 지금 다시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농수로를 보수하려면 시멘트와 재료를 메고 농수로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이것을 할 수 있겠습니까? 콤샤르와 발도 치옥에서도 하겠다고 해서 지금 준비하고 있는데, 요즘 사람들은 힘든 일을 잘 하려 하지 않잖아요.”
이에 주민들이 답했습니다.
“왐링은 주 농사가 논농사라 물이 없으면 농사가 어렵습니다. 자재만 지원해 주시면 공사는 우리가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모여 이야기할 때는 다 하겠다고 하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면 사람들이 공동 노동에 나오지 않아서 어려움을 겪곤 합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현재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모두 참여할 수 있느냐에 달렸습니다. 특히 수로 작업은 남자들이 많이 나서야 합니다.”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스님이 다시 한번 지원 원칙을 설명했습니다.
“옛날에는 부탄 사람들도 동네 일에 적극적으로 나섰는데, 요즘은 정부 지원이 잘 이루어지다 보니 마을 공동 일을 잘 안 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여러분이 필요하다고 요청해야만 지원합니다. 어려운 지역은 무엇이든 하겠다고 하지만, 살만한 지역은 선뜻 나서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왐링도 살만하기 때문에 쉽지 않겠다 싶어요. (웃음)
여러분이 결정을 해야 합니다. 정부가 해주길 원한다면 기다려야 합니다. 그 기간이 1년이 될지 5년이 될지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 농사를 위해 필요한 물이니, 우리 스스로 농수로를 수리하겠다고 한다면 지원하겠습니다. 다만 촉바 혼자 모든 것을 책임질 수는 없습니다. 재료를 갖다 놓고 일할 사람이 없다면, 그 재료를 다 버리게 되잖아요.”
이후에도 ‘직접 할 수 있다’, ‘없다’는 주민들의 의견이 엇갈렸지만, 스님은 필요한 사항은 지원하겠다고 약속하고 대화를 마쳤습니다.
10시가 되어 다음 답사지인 츠리사 치옥으로 출발했습니다. 차를 타고 약 한 시간을 이동해 오전 11시에 츠리사 절에 도착했습니다. 절 입구까지 차가 들어갈 수 없어 절 아래에 차를 세워두고 걸어서 올라갔습니다.
절로 향하는 길에는 집집마다 울타리가 제법 잘 되어 있었습니다.
“와, 이곳은 지금까지 다녀본 마을 중에 울타리가 제일 잘 되어 있네요.”
“네, 작년에 정부 지원사업으로 10km 정도 길게 울타리를 설치했다고 합니다. 전체적으로도 그렇고 가구마다 울타리도 잘 되어 있는 편입니다.”
절 입구에 마을 주민들이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법당에 들어가 참배를 한 후 간단한 전통 환영식을 진행했습니다.
법당에서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려고 했으나 내부 공간이 좁아서 절 뒷마당으로 이동했습니다. 따뜻한 햇살 아래 스님은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주민들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들어보았습니다.
“집이 없는 사람이 5명 있습니다.”
“카다멈 농장이 있지만 물이 부족합니다. 수원지와의 거리가 3.5km에 달합니다.”
“식수가 부족합니다.”
“마을에 머리를 다친 아이, 다리가 불편한 아이, 곰에게 공격을 당해 장애를 가진 주민이 있습니다. 이들을 위한 지원이 필요합니다.”
스님은 약 1시간 동안 츠리사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며 여러 문제를 세심히 점검했습니다.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 재료를 지원하면 마을에서 집을 지어줄 수 있는지, 카다멈 농장 근처에는 몇 가구가 사는지, 자재만 있다면 직접 식수 공사를 할 수 있는지, 방 안에는 칸막이가 있는지, 불은 어떻게 지피고 있는지, 부엌은 어떤 상태인지 등 주민들의 생활환경과 주거환경에 대해 자세히 물었습니다.
스님이 꼼꼼히 질문하며 개선 방안을 제안하자 주민들은 점차 마음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경직되어 있던 분위기가 풀리고, 생활환경을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드러났습니다. 대화가 끝난 후 주민들은 스님에게 정성스레 준비한 선물을 가져왔습니다. 말린 고추 한 바구니였습니다. 주민들이 직접 키우고 말린 정성이 담겨있는 선물이었습니다.
“여러분, 선물 잘 받았습니다. 제가 받아서 다시 여러분께 돌려드리겠습니다. 이 선물은 마을 주민들이 고루 나누어 쓰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저도 사례를 하겠습니다. 촉바는 마을을 위해 써주세요.”
스님은 촉바에게 보시금을 전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어서 주민들이 준비한 점심 식사를 하고 다음 답사지인 라디마을로 이동하기 위해 절을 나섰습니다.
절을 나서려던 중 한 아이가 스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눈에 초점이 없고 단정한 차림도 아닌 것으로 보아 촉바가 이야기했던 장애가 있는 아이로 보였습니다. 스님은 그 아이에게 다가가 머리에 손을 살며시 얹고 축원을 해주었습니다. 스님은 부탄 사업을 책임지고 있는 실무자에게 장애아동을 위한 교육 시설도 필요할 것 같다며 앞으로 대책을 세워보자고 했습니다.
다시 차를 타고 약 1시간을 이동해 오후 1시 40분에 라디 치옥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는 촉바의 집에 주민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촉바의 집은 작고 소박했지만 손님을 모시기 위해 정갈하게 정리한 모습이었습니다. 길쭉한 공간에는 작은 법당도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법당을 참배한 뒤, 주민들과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주민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JTS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이어서 주거환경과 관련된 여러 질문을 던졌습니다. 집에서 아직도 불을 피워 조리를 하는지, 집 안에 칸막이는 되어 있는지, 화장실은 모두 갖추고 있는지, 부엌에 조리대는 있는지, 집 안에 선반은 있는지 등 주민들의 생활 전반을 세심히 살폈습니다.
또한 마을에 장애가 있는 사람이 있는지도 확인했습니다. 대화가 이어지면서 라디마을 사람들은 점점 활기를 띠었습니다.
“한 3년 정도는 우리 마을을 우리가 직접 가꿔봅시다. 여러분, 할 수 있겠어요?”
“네, 자재만 주시면 해보겠습니다! 우리 마을을 우리가 가꿔보겠습니다!”
주민들은 큰 소리로 답하며 의지를 다졌습니다. 대화를 마친 스님은 라디 마을 사람들의 배웅을 받으며 마지막 답사지인 님숑치옥으로 출발했습니다. 약 1시간 정도 차를 타고 오후 3시 45분에 님숑 초등학교에 도착했습니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는 마을 사람들이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민들의 환영 인사를 받은 뒤 학교 강당으로 이동해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님숑마을 촉바가 마을 현황을 설명했습니다.
“마을에 식수가 부족하고, 오래된 농수로의 수리가 필요합니다. 집이 없는 가구가 있고, 마을의 생활환경 전반을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인사말을 전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저 동쪽 멀리에 있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여기까지 오려면 한 번에 올 수 없고, 방콕이나 델리를 경유해야 합니다. 이렇게 먼 곳에서 부탄까지, 또 부탄에서도 님숑까지 와서 여러분을 만난다는 것은 매우 깊은 인연이 있어서입니다.”
스님은 어떻게 부탄에 오게 되었는지, JTS 프로젝트의 취지와 지원 가능한 내용을 하나하나 설명했습니다. 오늘만 해도 네 번째 답사였지만, 스님은 처음 이야기하는 것처럼 차분하고 세심하게 말을 이어갔습니다.
“저는 지금 젬강 주의 40개 치옥을 다 돌아보고 있습니다. 마을 주민의 집에서 잠도 자봤습니다. 어떤 집은 많이 춥더군요. 제가 여러분보다 두꺼운 옷을 입었는데도 춥더라고요. 그렇다고 집 안에 불을 때면 연기 때문에 힘들고요. 이런 불편함들을 우리가 함께 바꿔보자는 겁니다. 또 사람이 사는데는 물이 필요하잖아요. 시멘트와 파이프는 JTS에서 지원할 테니 마을 사람들이 함께 상수도를 정비해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정부가 해줄 때까지 기다릴래요, 아니면 여러분이 직접 하실래요?”
한 주민이 답했습니다.
“스님께서 재료만 지원해 주시면 우리가 할 수 있습니다.”
스님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촉바 혼자 대답하면 뭐해요. 동네 사람들은 가만히 있는데 자재만 받고 아무도 일을 안 하면 촉바 혼자 어떻게 감당하겠어요? (웃음)”
처음엔 수줍어서 말이 없던 주민들이 점차 자신감 있게 말했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스님은 레바티 마을 주민들의 사례를 들려주며 용기를 북돋았습니다.
“여러분, 레바티 치옥을 아십니까?”
“네.”
“레바티 주민들도 물이 부족했어요. 새로운 수원지를 찾았는데 7km나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주민들이 ‘이 물은 앞으로 우리 아이들도 써야 한다’며 무조건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파이프와 시멘트를 지원했습니다. 여자들은 땅을 파고, 남자들은 파이프를 메고 산에 올라갔습니다. 강을 건널 땐 철사로 묶어서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결국 두 달 만에 마을 집집마다 수도꼭지를 설치했어요.
준공식 때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할 수 있을까 의심했고, 여러분은 스님이 지원해 줄까 의심했지만 이제 서로 믿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레바티 주민이 하는 일이라면 뭐든 지원하겠습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며칠이나 일을 했냐고 물어봤더니 29일씩 일했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마을 사람들이 협력해서 이룬 거예요.”
스님은 주민들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도 할 수 있겠습니까?”
“네, 우리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하겠다면 JTS에서 지원하겠습니다. 생활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기술이 필요할 땐 기술을 알려주고, 도구가 필요하면 도구를 지원하겠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생활환경을 개선해 나가면 좋겠죠?”
“네, 좋겠습니다!”
님숑 주민들은 힘차게 대답했습니다.
스님은 대화를 마무리하며 주민들과 작별 인사를 나눴습니다.
“자, 그러면 여기까지 하고 마무리하겠습니다.”
대화를 마친 후 하루 종일 4개 치옥을 함께 답사했던 싱칼게옥 멍미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낭칼 게옥으로 이동했습니다.
저녁 6시 40분이 되어 낭칼게옥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해가 지고 어두운 밤이 되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숙소에 짐을 풀고 일행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오늘 답사한 마을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식사 후에는 원고 교정을 하고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낭콜 게옥의 냐카르-첼당, 캄종, 덩망 치옥을 답사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11월 25일 포항에서 열린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내용을 소개해 드립니다.
“내가 돈을 많이 벌겠다. 내가 승진을 하겠다, 이런 것을 가지고 욕심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내가 승진을 하겠다고 노력한 결과 승진이 안 됐을 때 그로 인해 괴로워하면 욕심이라고 하는 겁니다. 내가 서울대학교에 가겠다고 노력을 했지만 결국 떨어지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시 도전하면 되고, 떨어지면 또다시 도전하면 되는 겁니다.
이렇게 해보고 안 되면 저렇게도 해보고, 저렇게 해보고 안 되면 이렇게도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그만두면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괴로워하고만 있다면 그건 욕심이에요.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면 어느 정도의 열의를 가지고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만큼의 노력을 안 해놓고는 안 됐다고 ‘나는 자격이 없나 봐’, ‘나는 실력이 없나 봐’, ‘내 적성에 안 맞나 봐’ 하면서 패배감을 갖는다면 그건 욕심 때문입니다. 내가 바라는 것이 그 규모가 크다고 욕심이 아니에요. 욕심을 가졌는지 원을 가졌는지 구분하는 기준은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괴로움이 일어나느냐를 보면 됩니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여자나 혹은 어떤 남자를 좋아해서 고백을 했는데 상대가 싫다고 해서 괴로워한다면 이것은 욕심이에요. 내가 상대를 좋아하면 상대도 나를 좋아해야 한다는 마음이 있는 겁니다. 상대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자기 혼자 사랑을 고백해 놓고 ‘네가 어떻게 나를 안 받아줄 수 있느냐’ 하면서 일방적 생각을 하는 것이 욕심이에요. 만약 내가 좋아한다고 고백했는데 상대가 싫다고 했을 때 욕심이 없는 사람은 ‘그래. 아무리 좋아해도 상대가 싫어한다면 어쩔 수 없지’ 하고 그만두거나, 아니면 예전에는 그 사람이 나를 싫어하는지 좋아하는지 몰랐는데 지금은 나를 싫어한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그러면 싫어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게 하려면 내가 어떤 노력을 하면 되지?’ 하고 연구를 합니다. 상대가 싫어한다고 이것을 실패한 것으로 규정할 게 아니라 싫어한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을 좋아하도록 만들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를 연구해야 하는 겁니다. 그러려면 그 사람이 뭘 좋아하는지를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본인한테도 물어봐서 호감을 살 수 있는 어떤 행위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런 문제로 낙담하거나 괴롭거나 패배감이 들지 않습니다. 그 일이 안 됐기 때문에 패배감이 드는 게 아니고 욕심을 부렸기 때문에 패배감이 드는 겁니다.
질문자는 지금 ‘시험에 합격하면 무조건 승진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회사 입장에서는 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승진할 기본 자격을 갖춘 사람인 겁니다. 그중에 누구를 승진시킬 건지는 또 다른 관점에서 보는 거예요. 그런데 질문자는 시험만 합격하면 무조건 승진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회사를 한번 연구를 해보세요. 꼭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시험을 쳐서 10명이 합격했다면 10명 중에 승진할 사람을 3명 정해서 승진을 시키는 거예요. 그다음에 또 시험을 쳐서 5명이 합격했다면, 앞에 합격한 사람 7명을 포함하여 이제 승진 대상자는 12명이 됩니다. 그중에 다시 5명을 승진시킨다고 할 때, 이 사람은 먼저 합격했기 때문에 먼저 승진시키고, 이 사람은 나중에 합격했기 때문에 나중에 승진시킨다는 규정은 없는 겁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합격한 것만 가지고 무조건 승진이 될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에 자신의 예측과 결과가 안 맞는 거예요.
그러면 질문자의 경우 제일 좋은 방법은 시험에서 떨어지는 겁니다. 그러면 이런 고민을 하나도 안 해도 돼요. 매년 대충 시험 쳐서 떨어지는 겁니다. 또 시험 쳐서 떨어지고 하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승진에 대해서 기대를 안 하니까 시험이 나와 아무 상관이 없게 되잖아요. 그거보다야 한번 만에 합격해 놓고 기다리는 게 낫지 않아요? 다섯 번 떨어지고 여섯 번째 합격해서 승진하는 게 나아요? 한번 만에 합격해서 기다리다가 6년 있다가 승진하는 게 나아요?”
“둘 다 별로예요. 왜냐하면 시험을 매년 치는 것을 하기 싫기 때문입니다.”
“만약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어느 것을 선택하겠어요?”
“스님 말씀처럼 회사에서 어떤 걸 원하는지 보고 접근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회사는 자격을 갖춘 사람 중에 회사가 보기에 괜찮은 사람을 임명하는 구조를 갖고 있는 겁니다. 질문자가 시험에 합격해서 자격을 갖췄는데도 회사가 임명을 하지 않을 때는 질문자가 윗사람들한테 약간 뻣뻣하게 행동했거나 특별히 눈에 띌 만한 성과가 없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승진하고 싶다고 해서 로비를 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직장 상사와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실 때 대화를 하면서 선출 기준이 뭔지 자연스럽게 슬쩍슬쩍 물어보는 거예요. 어떤 서류를 잘 만들어야 한다든지, 브리핑을 잘해야 된다든지, 이런 걸 알고 나서 최종 선발되는 결과를 보면 ‘우리 회사는 저런 사람을 선발하는구나’ 하고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질문자가 그 선발기준에 잘 맞춰서 생활하든지 아니면 ‘뭐 그렇게 까지 해서 승진을 해야 하나? 나는 그냥 꾸준히 월급만 받으면 된다’ 이렇게 입장 정리를 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빨리 진급은 되었지만 이사로 올라가기 바로 직전의 직위에 있으면서 이사로 못 올라가면 잘릴 확률이 높습니다. 요즘에는 옛날보다 직위에 따른 월급의 차이가 별로 크지 않습니다. 그러니 좀 천천히 가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 저 같으면 오히려 다른 사람들 먼저 진급시켜 달라고 하겠어요. 사장이 ‘자네 이번에 승진해야 하지 않나?’ 하고 얘기하면 이렇게 대답하는 겁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우리 팀에 아무개가 젊은 사람이지만 애도 둘이고 먼저 승급을 시켜주면 좋겠습니다. 저는 사는 것도 괜찮고 천천히 올라가겠습니다.’
이런 정도의 마음을 가지면 회사 생활이 편안하지 않을까요? 회사는 그 사람이 정말 필요하면 내가 승진을 안 하겠다고 해도 승진을 시키고, 필요 없으면 내가 승진을 하겠다고 해도 승진을 안 시켜줍니다. 그런데 마치 질문자는 내가 승진을 원하면 승진을 시켜줘야 하고, 내가 원하지 않으면 안 시켜줘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겁니다. 승진시킬 수 있는 권한이 자기한테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거예요. 승진은 사장이 그들만의 기준으로 알아서 선발하는 것입니다. 승진하고 싶으면 그 기준을 알아서 그 기준에 맞추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 먼저 올라가고 저는 천천히 올라가겠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살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걱정만 하고 있으면 나만 손해입니다.
그리고 부산 살다가 포항 와서 6년 살았으면 부인과 애들한테 ‘나는 포항에서 사는 게 참 만족스럽다. 너희는 어떠니?’ 이렇게 물어보면 됩니다. 그러면 ‘아빠가 만족하면 저희도 괜찮습니다’ 하고 대답할 수도 있고, ‘우리는 도저히 못 살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할 수도 있습니다. 그 의견을 들어보고 가족이 도저히 못 살겠다고 하면 월급이 좀 적더라도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는 게 좋습니다. 그런데 ‘조금 불만이 있지만 그래도 아빠가 좋다니까 여기서 지낼게요’ 이렇게 대답하면 ‘미안하다’ 하고 질문자가 가족들에게 다른 서비스를 좀 해주면 됩니다.
무엇보다 가족들에게 최고의 생활 조건을 갖춰주겠다는 생각은 안 하면 좋겠습니다. 그것도 욕심이에요. 어느 정도 갖춰주어야 최고의 생활 수준인가요? 집 평수를 늘려주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물질적인 것은 형편 되는대로 살고, 가족들 특히 아내의 이야기를 좀 들어주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같이 대화하고, 같이 놀아주고, 설거지 좀 해주고, 이런 것을 가족들이 원하는 것이지 돈을 많이 벌어다 주기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여간 한국 남자들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어요. ‘돈만 많이 벌어서 갖다 주면 가족들이 만족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큰 착각입니다. 제가 여성들과 얘기해 보면 물론 남자가 돈을 많이 버는 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게 최우선순위는 아니에요. 그런 것보다는 같이 대화도 좀 나누고, 같이 생활도 좀 나눠서 하고, 이런 모습을 더 원합니다. 그러니 가장이라고 너무 부담 갖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스님 말씀을 들은 것이 제 인생에 큰 변화의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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