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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부탄 답사를 시작한 지 10일째 되는 날입니다. 오늘 오전에는 발도(Bardo)게옥의 디갈라(Digala)치옥에서 주민들과 대화를 나눈 후 콤샤르 치옥으로 이동해 발도 게옥의 촉바들과 농수로 프로젝트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오후에는 싱칼(Shingkhar)게옥으로 이동해 싱칼 치옥 주민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하고 판땅 JTS센터에서 실무자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한 후 오전 8시에 길을 나섰습니다. 약 1시간을 차로 이동해 디갈라 치옥의 절에 도착했습니다. 법당에 약 40여 명의 마을 주민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먼저 촉바가 디갈라 치옥의 현황을 설명했습니다. 촉바의 이야기를 듣고 스님이 질문을 시작했습니다.
“집 없는 가구는 몇이나 됩니까?”
“다섯 가구인데, 세 가구는 이미 신청해서 지원을 받기로 했고, 한 가구는 재료만 받아 놓은 상태입니다.”
“그들은 왜 집이 없습니까?”
“어렸을 때부터 가난했기 때문입니다.”
“집이 있는 사람들은 집 내부에 공간을 구분할 수 있는 칸막이는 있습니까?”
“거의 다 없습니다.”
이어서 부엌 환경에 대해서도 물어보았습니다.
“부엌은 모두 집 안에 있습니까?”
“네, 집 안에 있습니다.”
“전기로 밥을 짓습니까?”
“전기가 들어오지 않을 때는 나무로 밥을 합니다. 집 안에서 나무를 떼서 조리합니다.”
“부엌의 그릇은 선반 위에 놓습니까, 아니면 통에 그냥 담아 두고 사용합니까?”
“통에 담아 두고 사용합니다.”
스님은 주민들의 삶의 환경을 세심하게 살피며 질문을 이어갔습니다.
“남자들은 무엇을 합니까? 왜 여자들이 해주는 밥만 먹습니까? 선반도 만들어주고 아궁이도 고쳐주면 좋잖아요.”
“선반을 만들 줄 모릅니다.”
“여자들이 힘들게 밥을 해주면, 남자들이 부엌을 고쳐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부인들도 모두 도망갈 겁니다.”
“네, 맞는 말씀입니다!” (모두 웃음)
스님과 주민들 사이의 대화는 점점 활기를 띠었습니다. 처음에는 긴장했던 주민들도 점차 웃음을 띠며 스님의 질문에 적극적으로 대답하기 시작했습니다. 한 남자가 손을 들고 말했습니다.
“스님, 저는 제가 밥을 합니다.”
“그래요? 정말입니까?”
“네, 요즘은 남녀평등입니다.” (모두 웃음)
스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민들에게 부엌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도 설명해 주었습니다.
“부엌 조리대의 높이를 올리면 서서 편하게 조리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조리를 하는 집도 있던데, 배우면 되지 않겠습니까?”
“조리대를 만들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만들 줄 모르는 사람도 많습니다.”
“집에 망치나 톱 같은 도구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목수 일을 하는 사람만 도구를 가지고 있습니다.”
“연장을 지원해 드리면 직접 할 수 있겠습니까?”
“네, 연장만 있으면 가능합니다.”
“선반 만드는 기술은 2~3일만 배우면 됩니다.”
“맞습니다. 배우면 할 수 있습니다.”
어느덧 촉바는 대화에서 물러나고, 주민들이 저마다 자신의 집안 사정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촉바는 어디 가고 다들 직접 대답합니까?”
“촉바가 마을 집집마다 사정을 알지는 못하니 저희가 대신 대답하겠습니다.” (웃음)
“그래요. 여기 오다 보니까 도로가 망가진 곳이 세 군데 있던데, 산골짜기에서 도로를 가로질러 물이 지나가고 있었어요. 그런 곳은 왜 안 고치고 그대로 두고 있습니까?”
“해 보긴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겨울이라 물이 졸졸 나오지만, 여름에는 물이 콸콸 쏟아져서 시설을 해도 다 쓸려가 버립니다.”
“그러면 땅 아래에 관을 묻어서 물이 적을 때는 아래로 흐르게 하고, 물이 많아져서 넘칠 때는 시멘트 위로 흘러가게 하면 되잖아요. 시멘트를 덮어야 그 위로 차도 다닐 수 있고요. 이런 도로 공사는 정부에서 해 주면 좋겠지만, 예산이 부족하면 동네 남자들이 함께 힘을 모아 해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곳은 동네 남자들이 많네요.”
“네, 해볼 수 있습니다.”
충분히 대화를 나눈 후 스님은 마을 주민들의 요청 사항과 문제점을 정리하며 실질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면 JTS와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일입니다. 하지만 마을에서 책임지고 지어야 합니다. 재료만 지원받고 집을 짓지 않으면 재료가 낭비됩니다. ‘JTS에서 재료만 주면 우리 마을이 짓겠습니다’라고 약속해야 합니다.”
스님은 전통적으로 마을에서 서로 도왔던 방식에 대해 언급하며, 주민들에게 스스로의 책임을 강조했습니다.
“한 달 내내 도와주기는 어렵겠지만, 2주일 정도는 도와줄 수 있습니다. 부탄에서는 전통적으로 그렇게 해왔잖아요. 그리고 집주인도 책임을 져야 합니다.”
이에 주민들은 동의하며 답했습니다.
“네, 그런데 아무 능력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마을에서 집을 지어줘야 합니다.”
“네, 너무 가난한 사람은 전적으로 지원해 줄 수 있습니다.”
스님은 이어서 집수리와 주거 환경 개선에 대한 두 번째 제안을 했습니다.
“둘째, 연장을 드리고 교육도 시켜드릴 테니까 집을 수리해 보면 어떨까요? 먼저 한 집을 샘플로 만들어 보여 드릴 테니 다른 집들도 그 집을 참고해서 수리하면 되잖아요.”
주민 중 한 사람이 난색을 표하며 말했습니다.
“집수리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스님은 우선순위를 제안했습니다.
“우선은 집에 칸막이를 설치하고, 부엌과 방에 선반을 설치하며, 화장실이 지저분하면 고쳐야 합니다. 손님이 오면 방 하나 내어줄 수 있고, 화장실도 사용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아들딸이 장가가고 시집가서 도시에서 살다가 손주들을 데리고 할머니 집에 와야 하는데, 집에 연기가 가득하고 화장실도 더럽고 잠잘 곳도 없다면, 누가 할머니 집에 오고 싶어하겠습니까?”
이에 주민들은 공감하며 답했습니다.
“네, 맞습니다. 자식들이 집에 안 오고 싶어합니다.” (웃음)
스님도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집이 작더라도 깨끗하고 편리하게 만들어야 해요.”
“네, 맞습니다.”
“겨울에 일이 없다고 집에서 술만 마시지 말고, 이런 일들을 좀 해 보세요.” (웃음)
스님은 논밭과 마을 환경 개선에 대한 세 번째 제안을 이어갔습니다.
“셋째는 논밭에 나무를 잘라 말뚝을 박고 울타리를 치는 일입니다. 할 수 있겠습니까?”
“네, 할 수 있습니다.”
스님은 주민들에게 자립적인 노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말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 마을을 조금 더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어 봅시다. 정부가 개인 살림을 모두 도와줄 수는 없습니다. 이런 일은 우리 스스로 해야 할 몫입니다. 도로나 상수도 같은 공공시설은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정부 예산이 부족하면 몇 년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어요. ‘우리가 하겠습니다’ 하면 제가 재료를 지원해 드릴 테니 여러분이 직접 해보세요. 트롱사 주의 콜푸 치옥을 아십니까?”
“네.”
“콜푸는 마을로 올라가는 길이 너무 가팔라서 사람들이 힘들어했는데, 마을 주민들이 함께 모여 다섯 곳에 도로를 포장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차가 잘 다닐 수 있게 되었어요. 마을 사람들이 대부분 참여해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우리도 자재만 있으면 할 수 있습니다!”
“정부 예산은 도로 공사 같은 큰 사업을 하고, 집을 고치고 마을 길을 수리하는 일은 우리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우리 마을은 우리 스스로 가꿔 나갑시다.”
“네, 알겠습니다!”
대화는 약 1시간 동안 이어졌습니다. 대화를 마칠 무렵 주민들의 얼굴에는 활기가 돌았고 분위기도 한결 밝아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이 함께 염불을 하며 마치자고 제안했습니다.
“다 함께 염불하며 이 시간을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디갈라 마을 주민들의 염불 소리가 법당 안을 가득 채웠습니다. 스님도 두 손을 모으고 함께 염불을 했습니다.
10시 20분에 차를 타고 콤샤르 치옥으로 이동했습니다. 풀라비 촉바의 집에서 발도 게옥 책임자들과 농수로 프로젝트 회의를 진행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발도 게옥에서 제출한 신청서를 검토해 보니, 다른 마을에 비해 예산이 높게 책정되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이러한 차이가 발생한 원인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풀라비 촉바의 집에 도착해 점심 식사를 하고 바로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먼저 예산에 관한 세부적인 사항을 질문했습니다.
“이번에 농수로 공사에서 수리하는 구간은 몇 미터이고, 새로 시공하는 구간은 몇 미터입니까?”
“견적을 낼 때 그렇게 자세히 나누지 못했습니다. 전체 길이를 대략적으로 계산해서 한꺼번에 예산을 냈습니다.”
“그럼 견적은 누가 냈습니까?”
“기술자가 계산했습니다.”
“기술자가 현장을 방문해서 견적을 낸 것입니까?”
“아닙니다. 현장을 방문하지 않고 거리만 계산해서 견적을 냈습니다.”
스님은 발도 게옥의 예산이 다른 마을에 비해 많이 책정된 이유를 설명하며, 해결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다른 마을에 비해 발도 게옥에서 제출한 예산이 많이 나왔습니다. 제 생각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기술자가 현장을 방문해 정확한 견적을 다시 내는 것입니다. 둘째, 현재 신청한 예산의 절반으로 먼저 시작하고, 필요에 따라 추가 지원을 받는 방법입니다. 견적을 다시 받으면 공사 시작이 늦어질 수 있으니, 바로 시작하려면 두 번째 방법이 현실적일 것 같습니다.”
스님은 콤샤르 촉바에게 잘못된 견적이 나오게 된 문제를 지적한 후, 농수로 공사를 진행할 때 주의해야 할 점과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하나하나 설명했습니다.
“수로는 물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고, 비가 많이 와도 무너지지 않도록 튼튼하게 설계해야 합니다. 돌과 시멘트를 활용해 둑을 보강하고, 물이 넘칠 때를 대비해 물 빠짐 구간도 추가로 고려해야 합니다.”
회의 말미에 스님은 격려의 말을 전했습니다.
“콤샤르 촉바는 이번 프로젝트가 처음이니, 기획 담당관께서 꼼꼼히 챙겨주세요.” (웃음)
“네, 알겠습니다.”
1시 40분에 회의를 마치고 다시 차를 타고 다음 게옥으로 향했습니다. 약 한 시간을 이동한 후 싱칼 게옥에 도착했습니다. 촉바와 겁의 안내를 받아, 주민들이 모여 있는 싱칼 게옥 미팅홀로 갔습니다.
미팅홀은 꽤 넓고 음향 시설도 갖춰져 있었으며, 약 30여 명의 싱칼 치옥 주민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전통적인 환영식을 간단히 진행한 뒤, 촉바가 마을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주민들에게 인사말을 전하고, 어려운 점에 대해 물었습니다.
주민들의 요청사항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무릎이 아픈 사람이 많습니다. 치료할 수 있는 약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집이 없어서 집을 짓고 싶습니다. 나무 재료비가 너무 많이 듭니다.”
“집을 수리하고 싶습니다.”
다른 치옥들에 비해 주민들의 생활은 조금 나아 보였고, 요청도 많지 않았습니다. 스님은 주민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JTS의 지원 원칙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JTS에서는 내가 집을 고치고 싶은데 도저히 형편이 안 되는 사람을 지원합니다. 여러분들이 신청한다고 해서 정부 프로젝트처럼 무조건 해주는 게 아니에요. 직접 집을 방문해 조사를 하고, ‘이 사람은 정말 지원이 필요하다’고 판단되었을 때 지원합니다. 판단하는 기준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집이 꼭 필요한 것인가?
둘째, 스스로 집을 지을 수 없을 만큼 가난한가?
셋째, 본인이 직접 지을 수 있는가, 또는 마을 사람들이 함께 지을 수 있는가?
이 세 가지를 충족해야 지원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데 도구가 없으면 도구를 지원합니다. 식탁을 만들 줄 모르면 식탁 만드는 기술을 배울 수 있게 지원합니다. 집을 짓는 것은 전문 목수가 해야 하지만, 집을 수리하는 기술은 여러분이 배워 둬야 앞으로도 계속 고칠 수 있으니까요.”
스님은 지원 우선순위에 대해서도 강조했습니다.
“같은 젬강 주 안에서도 깊은 산골에 있는 마을은 더 도와야 하고, 이곳처럼 생활 수준이 조금 나은 마을은 조금 덜 도울 예정입니다. 좁카 게옥 알죠? 좁카 게옥의 치옥에 가 보니 정말 어렵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 곳은 조금 더 많이 도와야 합니다.”
한 주민이 물었습니다.
“무릎이 아픈 사람이 많습니다. 의료 지원은 어렵습니까?”
“네, 우선은 주민들의 생활 개선이 첫 번째입니다. 두 번째는 공공시설 개선입니다. 세 번째가 의료 지원입니다. 의료 지원은 하긴 하지만 후순위가 될 겁니다. 앞으로 게옥에서 사람을 파견해 여러분의 상황을 점검할 예정입니다. 예를 들어, 집이 필요한 사람 중 가족이 5명인 사람과 1명인 사람이 있다면, 가족이 많은 사람을 우선 지원합니다. 아들딸이 도시에 있긴 하지만 전혀 도움을 주지 않는 경우와 정말 도와줄 가족이 없는 경우라면, 도와줄 가족이 없는 사람을 먼저 지원합니다.
전기도 없고 바닥도 없다고 해서 찾아가 봤더니, 술병이 많이 쌓여 있고 집주인이 계속 술만 마시고 있는 경우라면 순번이 뒤로 밀립니다. 술 마실 돈은 있는데 집 고칠 돈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이해하셨습니까?”
“네.”
“불편한 것이 있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자는 안 됩니다. 스스로 고칠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JTS에 신청하더라도 내가 직접 고쳐야 합니다. 집에 칸막이가 필요한 사람은 칸막이를 신청하고, 선반이 필요한 사람은 선반을 신청하세요. 다음에 저를 만날 때는 좀 낡은 옷을 입고 오세요. 여러분이 다 잘 사는 줄로 제가 오해하잖아요.” (웃음)
“저희가 너무 더럽게 입고 오면 스님이 실망하실까 봐 오늘 깨끗한 옷으로 갖춰 입고 왔습니다.” (웃음)
스님은 싱칼 치옥 주민들과 약 1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뒤, 마을에 있는 기숙 학교로 가보았습니다. 학생 수 115명, 기숙 학생 100명으로 규모가 큰 학교였습니다.
학교 내부를 둘러보니 기숙사와 화장실은 큰 문제가 없었지만, 세면장은 보수가 필요했고, 정화조는 이미 가득 차 확장이 필요했습니다.
학교 주변을 둘러보는데 학생들이 다니는 길 중 움푹 파여 위험한 구간이 보였습니다. 교내 수로의 일부가 끊겨 비위생적인 곳도 있었습니다.
스님은 답사를 마치고, 기획관에게 학생들을 위해 지원해야 할 내용을 하나하나 정리해서 말해주었습니다.
5시에 답사를 마치고 왐링에 있는 숙소로 갔습니다.
숙소에 도착해 일행들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 후 원고 교정을 하고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싱칼 게옥의 왐링, 츠리사, 라디, 님숑 치옥을 답사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16일 성남시에서 열린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강연 내용을 소개해 드립니다.
“질문자는 100미터를 몇 초에 달립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고등학교 때 체력 검사를 해봤을 거 아니에요. 그때 얼마 나왔어요?”
“한 10초 정도 나왔던 것 같아요.”
“아니, 멀쩡한 사람이 왜 그런 모자라는 소리를 해요? 지금 100미터 세계 최고 기록이 9.58초예요. 올림픽에서 1등 하는 사람이 10초 정도에 달리는 겁니다. 그런데 질문자가 10초에 달렸다고요? 질문자는 대략 17초 정도는 달렸어요?”
“그보다는 좀 더 빠른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빠르면 몇 초쯤 되는데요? 15초에는 달렸어요?”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17초에 달리는 사람과 비교하면 15초에 달린 것은 빨리 달리는 거예요, 느리게 달리는 거예요?”
“빨리 달린 거예요.”
“그러면 13초에 달리는 사람과 비교하면 15초는 빨리 달린 거예요, 느리게 달린 거예요?”
“느리게 달린 거예요.”
“조금 전에는 빠르다고 하더니 금방 느리다고 말하네요. 그러니까 15초는 빠른 것도 아니고 느린 것도 아닙니다. 15초가 ‘빠르다’, ‘느리다’ 하는 것은 비교해서 나오는 것이지 단독으로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15초는 13초보다는 느리고, 17초보다는 빠른 겁니다. ‘15초는 빠르다’ 하는 말은 원래 없어요. ‘15초가 빠르다’ 하고 말할 때는 ‘17초보다 빠르다’에서 ‘17초보다’가 생략된 것입니다. ‘15초가 느리다’ 하는 것은 ‘13초보다 느리다’에서 ‘13초보다’가 생략된 말이에요.
그것처럼 질문자가 ‘잘하는 게 없다’ 고 하는 말은 엄격하게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키가 작다고 할 때, 만약 본인의 키가 160이라면 170인 사람보다 작은 거예요. 달리기는 13초 달리는 사람보다 느린 겁니다. 공부 역시 ‘1등보다 못한 2등이다’ 하는 식의 사고를 하는 겁니다. 자기를 평가하는 기준치를 스스로 높이 설정해 놓은 거예요. 그러다 보니 자기는 모든 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이것도 부족하고, 저것도 부족하고,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 거예요. 질문자가 부족한 것은 실제로 부족해서 부족한 게 아닙니다. 속된 말로 눈이 너무 높아서 생긴 문제입니다. 공부도 1등, 달리기도 1등을 해야 한다고 기준을 너무 높여 놓으니 ‘나는 잘하는 게 하나도 없다’ 하는 자기 비하가 일어나는 겁니다. 내가 부족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욕심이 너무 많아서 생긴 문제예요.
질문자의 자존감은 뭔가 노력을 해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헛된 욕심으로 기준을 높여 놓은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눈을 치떴던 것을 내리깔아야 해요. 눈을 약간 내리깔면 ‘내가 잘하는 게 많네’ 이렇게 관점이 바뀝니다. 질문자는 지금 자신이 못나서 못난 것이 아니라 잘나고 싶어서 못나게 된 것입니다. 잘나고 싶은 생각에 사로잡혀서 못난 자신을 보고 있는 거예요.”
“네. 감사합니다.”
“엄청나게 알아듣기 어려운 이야기인데, 금방 알아듣네요. 우리가 열등해서 열등의식이 생기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은 대부분 부모 때문에 열등의식이 생깁니다. 왜 그럴까요? 부모가 눈이 너무 높아서 그렇습니다. 아이가 5등 해서 오면 ‘참 잘했다’ 하고 칭찬해 주어야 하는데, 1등을 기준으로 삼아서 ‘너는 왜 5등밖에 못하니’ 하고 말해 버립니다. 뭐든지 ‘너는 그것밖에 못 하느냐’ 는 시선으로 보니 아이들이 심리적으로 열등의식을 가지게 되는 겁니다.
지난번에 제가 어떤 미국인과 이야기를 하다가 ‘미국 교육에서 제일 좋은 점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칭찬을 많이 해 준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학생이 조금만 글을 잘 써도 ‘너는 글을 참 잘 쓴다’, ‘너는 소설가가 되겠다’ 하는 식으로 칭찬을 해 준다는 겁니다. 한국 사람들이 들으면 너무 과장된 표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만큼 학생들을 칭찬해 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잘한 부분보다 못한 부분을 지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 모두 욕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기준이 너무 높아서 항상 못한 부분이 자꾸 눈에 보이게 되니까 그걸 지적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이 늘 기가 죽습니다.
실상은 잘한 것도 없고, 못한 것도 없습니다. 서로 다를 뿐이에요. 나라는 사람은 종합적인 존재입니다. 그런데 인물은 배우하고 비교하고, 노래는 가수하고 비교하고, 달리기는 운동선수하고 비교하고, 법문은 법륜 스님하고 비교하는 거예요. 분야별로 잘난 사람들과 비교하며 내가 인물이 잘났나, 노래를 잘하나, 키는 큰가, 운동을 잘하나, 말을 잘하나 하면서 자신을 못났다고 생각합니다. 법륜 스님 하나만 가지고 비교하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몇 가지는 내가 법륜 스님보다 못 하지만 훨씬 더 많은 부분에서 ‘내가 법륜 스님보다 낫네’ 하는 게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남들의 좋은 점만 다 비교하니까 ‘나는 잘하는 게 하나도 없네’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예요. 여기 있는 그 누구도 못난 사람이 없습니다. 동시에 잘난 사람도 없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다 존엄하고 존중할 만한 사람들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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