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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스님이 부탄을 답사한 지 5일째가 되는 날입니다. 부탄 공무원들과 함께 파로 탁상 사원을 답사하고, 전 부탄 GNH 책임자였던 카르마 치팀 님을 만나 대화를 나눈 후 이번 답사를 마무리했습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6시에 부탄 비구니 재단(BNF)에서 아침 식사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오전 7시 정각에 수행법회 생방송을 했습니다. 한국 시간으로 오전 10시입니다. 정토회 회원들이 화상회의 방에 모두 입장하자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지난주에는 베트남에서 수행법회를 했는데 지금은 부탄에 와 있습니다. 베트남 일정을 마치고 캄보디아로 가서 왕립불교대학 여학생 기숙사 준공식에 참석했습니다. 먼저 그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보겠습니다.”
이어서 지난 4일 캄보디아 바탐방 왕립불교대학 여학생 기숙사 준공식을 했던 모습을 영상으로 보았습니다.
“잘 보셨지요? 여러분이 보시한 작은 정성들이 모여서 그들에게는 꿈에만 그리던 희망을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캄보디아 바탐방 왕립불교대학 여학생 기숙사의 완공은 그들에게 평생의 꿈이었던 일이었습니다. 먼 미래에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했던 일이었는데 여러분이 낸 보시금으로 그 꿈이 눈앞의 현실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번 준공식은 그들의 삶에 큰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그동안 후원해 주신 JTS 후원자 여러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서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JTS는 여러분들이 보시한 돈으로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과 세상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을 세계 곳곳에서 하고 있습니다. 죽어서 좋은 곳에 태어난다든지, 복을 받는다든지, 하는 기대감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함으로써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될 때 우리는 자존감을 갖게 되고 뿌듯함을 느끼게 됩니다.
내가 맛있는 밥 한 그릇 먹고 좋은 옷 한 벌 사 입는 것보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나눠주고 헐벗은 사람에게 옷을 나눠줄 때 우리는 더 큰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내 개인의 욕망이 충족됐을 때 얻는 기쁨보다 집 없는 사람이 더위와 추위와 비를 피해 안락한 곳에서 잘 수 있도록 해줄 때 우리는 더 큰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일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일입니다. 내가 내 몸을 씻듯이 내가 내 물건을 챙기듯이 세상의 일을 나의 일처럼 하는 것이 바로 자비심입니다. 자비심이 있어야 세상을 위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위한 일을 내 일처럼 기꺼이 할 때 그 마음을 이름하여 자비심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이 자리를 빌려서 봉사해 주시고 보시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세 명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불과 얼마 전까지 함께 활동했던 동료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니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며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하는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함께 활동하던 동료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힘들어하던 저를 따뜻함으로 감싸주었고, 고비 때마다 용기와 희망을 안겨주며 저를 여기까지 이끌어 준 동료입니다. ‘안녕, 잘 가!’하고 하늘나라로 보내긴 했지만, 가슴이 너무 아프고, 같이 활동했던 모습들이 자꾸 떠오릅니다. 힘들 때 함께 해준 고마움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이 더 큽니다. 어떤 마음을 가져야 제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함께 생활하던 가족이나 직장 동료나 친지나 친척이나 친구가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면 우리들의 마음은 허전해지고,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게 됩니다. 저는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아끼는 애완용 동물이 죽어도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가지고 있던 집이 불타버리거나 돈을 잃어버려도 허전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내가 아끼던 물건을 잃어버려도 며칠째 그 생각이 나는 게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지금 질문자가 한 얘기는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꽃이 아무리 예쁘고 내가 그 꽃을 아무리 좋아해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서 그 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는 거예요. 꽃이 피어 있을 때는 예쁘지만, 꽃잎이 떨어지면 그냥 쓰레기밖에 안 되잖아요. 물론 꽃이 예쁘다고 꺾어서 보관하는 사람도 있고, 잎이 떨어져서 낙엽이 돼도 낙엽을 모아 놓고 그 아름다움을 기억하고 간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쓸어서 버리게 됩니다. 우리가 꽃을 쓸어서 버리는 이유는 꽃을 좋아하지 않거나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꽃이 제 할 일을 다 했기 때문입니다. 꽃이 늘 피어만 있으면 꽃이 제 할 일을 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보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꽃 자체는 꽃잎이 떨어지고 열매를 맺어야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내가 좋다고 꽃의 생명성을 부정하면 안 되잖아요.
아무리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고 예뻐해 준 부모라 하더라도 돌아가시게 되면 시신입니다. 늙어서 돌아가셨든, 병으로 돌아가셨든, 사고로 돌아가셨든, 안타깝다고 해서 시신을 계속 방안에 모셔두면 시신이 부패해서 썩는 냄새가 나고 구더기가 생기게 됩니다. 내가 아끼고 사랑한 것만 생각하면, 내 부모를, 내 자식을, 내 형제를, 어떻게 땅에 묻거나 불에 태울 수 있겠어요? 그러나 어떤 이유로 죽었든 생을 마감하게 되면 우리는 그를 땅에 묻거나 불에 태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이고 현실이에요. 아무리 아끼는 물건이라도 깨지면 버려야 합니다. 소중함을 모르기 때문에 버리는 게 아니라 더 이상 쓸 수가 없어서 버릴 수밖에 없는 거예요. 안 아껴서 불에 태우고 안 아껴서 땅에 묻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더 나쁘게 되기 때문에 돌아가시면 우리는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습니다. 봄이 되면 봄을 받아들이고, 여름이 되면 여름을 받아들이고, 가을이 되면 가을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처럼, 이 현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봄을 좋아한다고 해서 여름이 돼도 가을이 돼도 겨울이 돼도 봄을 그리워한다면, 그는 현실에 깨어있지 못한 거예요. 봄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이해되지만, 그는 꿈속에서 사는 사람입니다. 부서지면 버려야 하듯이 돌아가시게 되면 땅에 묻거나 화장을 해야 합니다.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과거의 기억에 집착하면 현실이 바뀌어도 녹화를 해놓은 것처럼 과거의 기억에 계속 사로잡히게 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런 우리들의 삶을 부정하는 게 아니에요. 울고불고 애달파한다고 해서 그가 다시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내가 건강해지는 것도 아니고, 우리 가족한테 좋은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방 안에 모셔놓는다고 해서 부모님께 좋은 것도 아니고 나에게 좋은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땅에 묻는 겁니다. 망자의 물건이 보이면 자꾸 집착하게 되기 때문에 옷도 태우고 방안도 정리하는 게 보통입니다. 집착이 좀 강하면 돌아가신 분의 물건을 그대로 보존해 놓고 5년이고 10년이고 잊지 못하기도 합니다. 이것을 옛날에는 사랑이라고 했는데, 요즘은 집착이라고 표현합니다. 정신과에서는 사로잡힌 상태, 즉 ‘편집증’이라고 부릅니다.
지금 당장은 그 기억에서 벗어나기는 어렵겠지만 이런 현실을 우리가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분이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편안할 수가 있는가’하고 반문할 수는 있어요. 그러나 ‘내가 슬퍼하는 것이 그분에게 좋은가’ 하는 점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내가 슬퍼한다고 그분에게 좋은 것도 아니고, 나에게 좋은 것도 아니에요. 왜냐하면 그분이 만약 영혼이 있어서 나를 바라본다 하더라도, 내가 슬퍼하고만 있는 것보다 내 삶을 잘 살아가는 것을 그가 더 좋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죽음도 삶과 같이 한 과정으로 보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여여하다’ 하고 표현합니다. 지금은 그분이 돌아가신 지 며칠 안 됐으니까 슬픈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마음의 집착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합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지금 여기에 깨어 있는 관점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집착을 하니까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영혼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드는 거예요. 이것은 다 번뇌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집착을 내려놓고 지금 여기에 늘 깨어있으면 사람을 잃거나 물건을 잃는다 해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왕 사는 하루인데, 지금 여기에 깨어있는 하루를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스님께서 사람의 생명을 꽃잎이 떨어지는 이치에 비유해 주셔서 금방 알아듣고 이해했습니다. 동료와 함께했던 일들은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겠습니다. 집착을 내려놓는 연습도 꾸준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질문에 모두 답변을 한 후 스님이 닫는 인사를 했습니다.
“저는 오늘 부탄 답사를 마치고 내일은 인도 아쌈 지역으로 가서 홍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도울 예정입니다. 여러분들은 직장도 다녀야 하고 집안일도 해야 하니까 제가 대신 여러분의 눈이 되고 손이 되고 발이 되어서 이 세상에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역할을 해나가겠습니다. 다음 주에 또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생방송을 마치고 나니 오전 8시가 되었습니다. 아침 일찍 생방송을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파로(Paro)에 있는 탁상 사원으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처음 스님이 부탄을 방문했을 때 운전을 해주신 기사 분이 다시 나왔습니다.
“스님, 다시 뵙게 되어 기쁩니다. 건강하신가요?”
“네, anytime, everywhere, everything is okay!” (언제 어디서나 모든 것이 좋습니다.)
스님은 활기차게 대답했습니다.
차로 1시간 40분을 달려 9시 50분에 탁상 사원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파로 주의 농업담당자, 기획담당관, 중앙정부 공무원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부처님이 처음 설법하신 날이라 공무원들이 휴일인데도 스님과 답사를 하기 위해 아침 일찍 탁상 사원에 모였습니다.
스님은 지난 4월 방문 때 파로 주지사님과 해발 3100미터에 위치한 탁상 사원까지 함께 등산을 하며 탁상 사원을 참배하고 친환경적으로 이곳을 관광할 수 있게 개발하는 방법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실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과 더 세부적으로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공원 주변을 둘러보기 전에 함께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부탄에 온 이유는 주로 가난한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에 목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 파로(Paro)에 있는 탁상 사원에 와보니까 관광객이 많은 데 비해 기반 시설이 너무나 부족해 보였습니다. 탁상 사원은 부탄을 상징하는 곳인데 친환경적으로 개발이 되면 좋겠다 싶어서 제가 몇 가지 조언을 해드릴까 합니다.”
“이렇게 직접 방문해 주시고 도움을 주셔서 저희가 감사합니다.”
먼저 농업담당관에게 추수가 끝난 논에 녹비 작물을 심어보면 좋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벼를 추수할 때쯤 논에 풀씨를 뿌리면 풀이 자라고 그 풀을 갈아엎으면 화학비료 없이 논을 기름지게 할 수 있습니다. 혹시 그 방법을 파로 지역에서 사용하고 있습니까?”
“파로는 안 하고 있지만 동쪽에 일부 지역에서는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널리 알려진 방법은 아닙니다.”
“유기농을 하면 화학비료를 쓰지 않기 때문에 거름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이 방법을 사용하면 소먹이도 되고 논에 거름도 줄 수 있습니다. 더불어 이곳은 관광지이기 때문에 관광 측면에도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4월에 꽃이 피면 이곳 일대가 꽃밭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지도를 보면 비행장 주변이 대부분 논입니다. 가을에 추수하고 이 풀씨를 뿌려 놓으면, 봄에 꽃이 피어서 논 전체가 다 꽃밭이 될 것입니다. 일부는 베어서 소먹이로 쓰고, 일부는 갈아엎어서 거름으로 쓰고, 더불어 꽃밭이 형성되면 관광자원으로도 쓸 수 있습니다. 비행기가 착륙할 때 관광객들이 마치 꽃밭에 내리는 기분이 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꽃이 피는 시기에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다음은 기획담당관에게 탁상 사원 주변을 어떻게 개발하면 좋을지 스님의 생각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앞으로 관광객이 늘어나면 여기가 너무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외국인이 하루에 100달러의 관광 세금을 지불하면서까지 부탄에 오고자 하는 매력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그 이유는 자연환경이 좋고 무엇보다 부탄의 한적한 분위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적한 매력을 기대하고 왔는데 교통 체증에 시달리거나, 탁상 사원을 오르내리는 계단에서 줄 서서 기다려야 한다면 부탄의 장점이 살아나지 않습니다.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먼저 탁상 사원으로 들어오는 도로에 교통 체증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곳에 오는 모든 관광객이 다 탁상 사원에 올라가지 않아도 되도록 대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우선 탁상 사원을 올라가지 않고 입구에서도 사원을 감상하고 참배할 수 있는 시설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환경조사를 해서 입구에 넓은 공원을 조성하고, 명상 시설 등이 들어오도록 해야 합니다. 나무를 베어내지 않고도 주차장을 넓힐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주차장의 위치를 이동해야 합니다. 마을을 통과하지 않는 새로운 진입로를 만들면 교통체증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앞으로 부탄에 인도 관광객들이 엄청나게 몰려올 것입니다. 인도의 경제가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한국에서 우리가 경험한 일입니다. 중국의 경제가 발전하면서 중국 관광객들이 한국으로 엄청나게 몰려들자 그로 인한 부작용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부탄도 앞으로 다가올 문제에 대비해서 지금부터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공무원들도 스님의 생각에 모두 동의했습니다. 40분간 대화를 마치고 함께 공원 입구를 둘러보았습니다.
“자, 그럼 직접 다니면서 설명하겠습니다.”
공원 입구는 현재 아무 시설도 없이 공터로 되어 있었습니다.
“여기에 공원을 만들면 좋겠어요. 전면이 통유리로 된 큰 법당을 짓고 관광객들이 탁상 사원을 참배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하루에 한 번은 전통 방식으로 예불을 하면 그것 자체가 관광 상품이 될 수 있어요. 어차피 저 높이 있는 사원까지는 모든 사람이 가지 못합니다. 다리가 불편한 사람은 여기서 탁상 사원을 바라보고 참배할 수 있게 하면 좋을 것 같아요. 다른 한쪽은 부탄 사람들이 가볍게 소풍을 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한쪽은 소풍을 올 수 있게, 한쪽은 참배를 할 수 있게, 이렇게 공원을 조성해 보면 좋겠어요.”
길을 따라 더 올라가 보았습니다. 등산로마다 나무뿌리가 많이 드러나 있었습니다.
“나무뿌리를 보호할 수 있게 이런 곳은 나무 데크로 길을 만들어서 그 위로 다닐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말을 타고 다니는 길과 사람이 다니는 길이 분리가 안 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말 타는 것을 아예 없애든지, 말이 다니는 길을 따로 만들든지, 어쨌든 사람이 다니는 길과 말이 다니는 길을 분리하는 게 필요합니다. 말이 가다가 놀라면 사람이 다치는 사고가 날 위험이 있습니다. 길에 말똥이 많이 떨어져 있는데 냄새도 심하고 경관을 해칩니다.”
공원 입구를 둘러본 후 공원 입구에서부터 마을까지 이어지는 도로를 걸어 내려가며 살펴보았습니다. 스님은 곳곳에 개선해야 할 점들을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다시 차를 타고 이동하여 주변을 더 넓게 살펴보았습니다.
관광객이 많아질 것을 대비하여 주차장을 넓게 확보해야 하는데 어느 지역이 좋을지,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진입로를 확보하려면 어떻게 길을 새로 놓으면 좋을지, 공무원들에게 지도를 보여주며 가장 적절한 위치를 제안했습니다.
현재의 진입로는 민가 사이를 지나가야 해서 도로가 매우 좁습니다. 스님은 관광객이 많아지면 교통 체증이 생길 수 있어서 새로운 진입로를 개설해야 한다며 몇 가지 대안을 알려주었습니다.
더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팀푸에서 2시부터 약속이 잡혀 있었습니다. 공무원들에게 비누와 치약을 선물하고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한국에서 전문가를 데려와서 환경영향평가를 하고 종합설계도를 만드는 데까지 제가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부탄의 관계자들도 한국에 가서 공원과 숲이 실제로 어떻게 만들어져 있는지 답사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다음에는 한국에서 전문가들을 한번 데려오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2시에 파로를 출발하여 1시 40분에 팀푸에 있는 한식당 산마루에 도착했습니다. 김밥 한 줄로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2시부터 다쇼 카르마 치팀(Dasho Karma Tshiteem) 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치팀 님은 부탄에서 왕립공무원위원회 의장과 GNH(국민총행복지수) 위원장을 역임한 분입니다. 현재는 부탄 청년들의 국가 봉사를 촉진하기 위해 부탄 전역에서 ‘데숲(De-Suups)’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먼저 스님이 이번 상반기에 젬강과 트롱사에서 진행한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한 시범 사업의 결과에 대해 공유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치팀 님이 진행하고 있는 데숲 프로그램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자세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이어서 현재 부탄 정부가 집중하고 있는 겔로프 신도시 개발 사업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요. 스님은 부탄이 갖는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개발을 하면 좋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부탄은 부탄이 갖는 장점을 살리는 개발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나라가 개발한 것을 따라 하려고만 하면 ‘부탄은 불리한 점이 많다’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인구가 적다’, ‘나라가 작다’, ‘산이 많다’ 이렇게 불리한 것만 생각하면 부탄이 가진 장점을 전혀 살릴 수 없습니다. 그런데 거꾸로 ‘부탄이 갖는 장점이 무엇일까’ 이렇게 접근하면 굉장히 많은 장점을 갖고 있습니다. 부탄은 공기도 맑고, 물도 깨끗하고, 인구도 적고, 숲이 많고, 전통문화를 잘 유지하고 있고, 아직 자본주의가 많이 침투하지 않았고, 왕을 중심으로 국민들이 단결되어 있습니다. ‘부탄이 가진 많은 장점을 살려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이렇게 접근해야 합니다. 그래야 세계 어떤 나라도 못하는 것을 부탄이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부탄에서 하려고 하는 지속 가능한 개발에 대해 캄보디아의 어떤 스님한테 얘기했더니 지원만 해주면 자기들도 나서서 해보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아직은 좀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지속 가능한 개발이 실제로 가능한지 부탄에서 먼저 실험을 해보고 있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빈곤 퇴치 사업이 아니라 ‘사람이 어떻게 살 때 기쁨과 자존감을 누리는가’ 하는 것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다양한 시도와 실험을 통해 점검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카르마 치팀 님은 스님의 생각에 존경의 마음을 표하면서 동시에 부탄 사람들도 점점 돈에 집착하는 경향이 커져가고 있음을 우려했습니다.
“스님 말씀이 맞지만, 사람들의 욕심은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그래도 비교적 부탄 사람들은 욕심이 덜 하고 삶에 만족스러워합니다.”
“제가 지금 부탄 공무원들과 함께 일하고 있는데, 다른 나라 공무원들과 비교하면 굉장히 청렴하고 열의가 있습니다. 젊어서 아직 경험이나 아이디어가 부족해서 그렇지, 조금만 훈련을 시키면 훌륭한 사람이 될 것 같습니다.”
“이렇게 부탄을 지원해 주셔서 정말 기쁩니다.”
“저는 지원해 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같이 한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국가든 NGO 단체든 대부분 지원만 해주지 주민들과 함께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스님께서는 주민들과 함께하시니까 굉장히 색다른 방식으로 여겨집니다. 이런 새로운 접근 방식이 나중에 굉장한 가치를 갖게 될 것 같은데, 스님의 활동이 기록으로도 잘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1시간 30분 동안 대화를 나눈 후 마지막으로 스님이 향후 계획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올해는 시범 사업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앞으로 5년 동안 젬강 전체를 개발하기 위한 실험입니다. 다음 5년은 부탄 전체를 개발하기 위한 젬강에서의 실험이 될 것입니다. 여러 가지 실험을 해보면서 어떤 것이 문제가 있는지 파악해서 개선하면, 부탄 전체에 확산을 시킬 수가 있을 것입니다. 부탄의 젊은이들이 외국에 나가서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면서 기쁨을 느끼는 청년들도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습니다.”
스님은 치팀 님이 운영하는 데숲 프로그램과 JTS의 지속 가능한 개발 프로젝트가 나중에는 유기적인 협력를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3시 30분에 타라아냐 재단(Tarayana Foundation) 책임자가 찾아왔습니다. 타라아냐 재단은 첫 번째 태후인 아쇼 도르지 왕모의 주도로 2003년에 설립되었습니다. 부탄의 빈곤층을 지원하고 지속 가능한 개발을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빈곤 완화, 교육 강화, 보건 및 위생 개선, 환경보호, 사회적 통합을 목적으로 주거개선, 교육지원, 공동체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스님이 부탄에서 지속 가능한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소식을 듣고 직접 만나보고 싶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서둘러 타라아냐 재단으로 향했습니다.
재단 책임자의 안내를 받아 첫 번째 태후의 왕궁으로 가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왕비의 손자가 린포체인데, 마침 함께 자리해서 불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아직 나이가 어린 린포체이지만 훌륭한 스님이 되려면 어떻게 수행을 해야 하는지, 중생을 교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며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스님은 어떻게 해야 자비심이 생기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중생을 교화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 그들의 고통을 깊이 느껴야 합니다. 그래야 자비심이 생깁니다. 그러나 세상 속에 들어가면 많은 유혹도 있습니다. 그때 그 유혹을 잘 이겨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스님의 여러 가지 경험담을 들려주었습니다.
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후 기념사진을 찍고 다시 산마루 식당으로 돌아왔습니다.
오후 5시 30분부터는 부탄 비구니 재단(BNF)에서 활동하는 비구니 스님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부탄에는 구루린포체가 남긴 발자국이 소중한 성지가 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구니 스님들은 바위에 새겨진 발자국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돌이 발생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용암이 천천히 식으면서 만들어지는 화강암이 있습니다. 둘째, 모래, 흙, 유기물 등의 퇴적물이 압력을 받아 굳어져 만들어지는 퇴적암이 있습니다. 셋째, 기존의 암석이 열과 압력을 받아 변화되어 만들어지는 변성암이 있습니다. 돌에 조개껍데기나 물고기, 공룡 발자국 등이 찍혀 있다면 그 돌은 퇴적암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조개껍데기나 물고기와 같은 화석이 발견되었다면, 그곳이 예전에 바다였음을 말해 줍니다. 히말라야 산에 올라가면 조개껍데기 화석이 많이 발견됩니다. 그것은 원래 바다 밑에 있던 지형이 압력을 받으면서 습곡 작용으로 솟아올라 지금의 히말라야산맥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바위에 발자국이 있다면 발생학적으로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최근 천 년 이내에 밟아서 발자국이 생긴 게 아니에요. 그래서 15세기에 누가 남긴 발자국이라고 그것을 자꾸 신성하게 여긴다면 나중에 사람들의 과학 지식이 늘어나면 문제 제기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열 가지가 좋아도 어떤 한 가지의 주장이 틀렸다고 밝혀지면, 나머지 주장도 다 틀렸다고 부정해 버리는 위험이 있습니다. 그런 부작용이 있기 때문에 너무 신비화시키는 것은 꼭 좋은 일만은 아닙니다.”
계속해서 비구니 스님들의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요즘 인도에서 유행하는 명상법 중에서 6개월간 수련하면 명상할 때 공중에 뜰 수 있다고 하는 게 있습니다. 스님은 그 명상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명상을 하면 공중 부양하듯 약간 뜨는 경우가 있다고 저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말을 듣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중에 떠서 뭐 하게요? 그래서 무슨 좋은 일이 있어요? 비행기는 수백 명을 태워서 미국까지 가는데 그게 더 신기한 일 아니에요?’
왜 비행기가 공중에 뜨는 건 신기해하지 않고, 사람이 공중에 뜨는 건 신기하게 여길까요? 그 이유는 비행기가 뜨는 원리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공중에 뜨는 원리는 아직 우리가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모른다’ 하는 무지에서 비롯된 신비주의입니다. 부처님은 신비주의를 부정했습니다.
우리가 무지할 때 일어나는 현상으로 다른 하나가 바로 두려움입니다. 부처님은 무지가 없었기 때문에 두려움도 없었고, 신비주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후대에 사람들이 종교를 만들어서 신비주의와 두려움에 대한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했습니다. 무지로 인한 두려움을 이용해서 ‘지옥에 간다’ 하고 협박하고, 신비주의를 이용해서 ‘천당에 갈 수 있다’ 하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갖게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당근과 채찍입니다. 종교에서 사람들에게 주로 하는 말이 ‘이거 하면 천국 간다’ 하는 유혹과 ‘이거 안 하면 지옥 간다’ 하는 협박입니다. 만약에 무지가 사라진다면 두려움과 신비주의도 함께 사라지기 때문에 협박이나 유혹이 통하지 않게 됩니다.
바위에 린포체의 발자국이 생기고, 명상하면 공중 부양을 하는 등의 신비한 현상이 사실인지 아닌지 헷갈린다는 말 자체가 무지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인데 오히려 부처님의 가르침을 신비화시켜서 다시 인간을 어리석게 만들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현상을 마주할 때는 ‘왜 이런 현상이 생기지?’하고 원인을 찾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신비주의와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반야심경에서는 신해행증(信解行證)을 강조합니다. 믿음, 이해, 실천, 증득, 네 가지가 우리가 수행하는 단계입니다. 믿음을 가져야 출발할 수 있고, 붓다 담마의 원리를 이해해야 밝아질 수 있고,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스스로 경험하고 증득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괴로움이 없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해가 저물었습니다.
저녁 6시 20분부터는 이번에 부탄 답사를 함께 다녔던 중앙정부 공무원들, 부탄 비구니 재단(BNF) 사무국장 타시 님, 비구니 스님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먹고 싶은 것 마음껏 드세요.”
저녁을 먹으며 부탄에서 함께 보낸 시간을 나누었습니다.
“스님이 오시기 전에 매일 비가 많이 왔는데 신기하게 스님이 오신 기간에만 비가 적게 왔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신비주의를 조장하는 겁니다. 마침 비가 적게 올 때 스님이 왔습니다. 이렇게 말해야죠.” (웃음)
중앙정부 공무원들은 배우는 것이 너무 많았다며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산마루 식당을 나왔습니다. 우기가 끝나고 9월부터는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한 시범 사업이 더욱 활발하게 진행이 될 예정입니다. 스님은 중앙정부 공무원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습니다.
“잘 가요. 다음에 또 봅시다.”
부탄 답사를 함께 한 도르지 스님도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이번에 스님과 함께 다닐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수행 열심히 하시고 마을 주민들을 위해서도 힘써주세요.“
“네, 제가 스님이 하시는 일을 잘 이해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성심껏 하겠습니다. 스님이 오실 때마다 함께 하고 싶습니다.”
저녁 8시가 넘어서 대화를 마치고 BNF 재단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로써 지난 5일 동안의 부탄 답사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산사태가 많이 나는 우기에 스님이 방문하는 것을 모두가 만류했지만 다행히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답사를 다닐 수 있었습니다.
내일은 부탄을 떠나 인도로 갑니다. 차를 타고 국경을 넘은 후 기차를 타고 인도 아쌈 주로 가서 홍수 피해 긴급구호 현장을 둘러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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