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6.9. 모내기
퇴직해서 함께 사는 미운 남편, 어떤 마음으로 봐야 할까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모내기를 돕고 613만인대법회 원고를 수정했습니다.


어제 종일 내리던 비가 그쳤습니다. 구름 사이로 해가 비쳤습니다. 스님은 새벽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논으로 나갔습니다. 농사팀 행자님들이 논을 평평하게 고르는 써레질을 하고 이제 막 이앙기로 모를 심고 있었습니다. 트랙터로 땅을 한차례 평평하게 고르는 작업을 해두었지만, 사람의 손으로 세심하게 다듬어야 할 부분이 있었습니다.




모를 심는 방향을 보고 스님이 물었습니다.

“이 방향으로 심으면 가지런하게 맞추기가 어려운데, 왜 이렇게 심고 있어요?”

“어제 비가 내려서 트럭이 이 논까지 올라올 수가 없었습니다. 저 아래에서 모판을 다 옮겨야 하는데 이 방향으로 작업하면 모판을 입구에 가져다 두면 되거든요. 그리고 저쪽 논둑이 약해서요.”

“모판이 문제라면 제가 논둑 안쪽으로 옮겨줄게요. 이렇게 심으면 가지런하게 심기지가 않아서 피가 많이 자라고 수확하기도 어려울 거예요.”

“네, 그럼 방향을 바꾸겠습니다.”

행자님이 이앙기의 방향을 바꾸어 모를 심기 시작했습니다. 이앙기가 지나가자 논은 점점 초록색으로 물들어갔습니다. 마치 하나의 거대한 수채화가 완성되어 가는 과정처럼, 논에 생명의 색이 더해졌습니다.



스님은 무너진 논둑을 보수하고 논 아래로 내려가 모판을 옮겼습니다.




3일 전, 스님은 하루종일 경주 남산을 안내하고 온 후로 다리에 심한 통증이 생겼습니다.

“스님, 다리는 괜찮으세요?”

“아직 아프네요.”

아프다고 하시면서도 스님은 모판을 다 옮기고 논으로 들어가 기계가 미처 심지 못한 빈 땅에 모를 심었습니다.

“7월에 부탄에 가면 주민들과 함께 모내기를 하기로 했어요. 어차피 모심는 연습을 좀 해둬야 해요.”(웃음)


한 손으로 모를 쥐고 다른 손으로 부드럽게 흙 속에 모를 심는 모습은 정성을 다한 기도와도 같았습니다. 허리를 숙여 모를 심을 때마다 잔잔한 논물 위로 비친 그림자와 닿았습니다. 스님은 이미 모내기를 마친 아랫논으로 가서도 모가 비어있는 곳에 모를 심었습니다.




행자님들은 잘 작동되지 않는 이앙기를 고쳐가며 계속 모를 심었습니다.

스님은 계속 모를 심었습니다. 노래를 잘 부르는 농사팀 행자님이 농사지으며 노래 부르는 영상을 만들어서 홍보를 하면 좋겠다고 하자 스님이 모내기 노래를 알려주었습니다.

“모내기 노래 들어봤어요? 가사를 들어보면 슬퍼요.

‘해는 지는데 고개 숙여 모를 심네. 다리 사이로 논 끝이 한참 남았네. 해는 지고 별이 뜨네 논은 끝이 없고. 우리네 인생도 이와 같아 쉬지 않고 일하네. 한 줄 한 줄 심어가며 희망을 심네. 모가 자라 푸른 들판 되면 우리 마음도 푸르리.’”

계속 모를 심다가 9시가 넘어 울력을 마쳤습니다. 남은 일은 농사팀 행자님들에게 맡기고, 스님은 하루종일 613만인대법회에 발표할 평화선언문을 교정하고 업무를 보았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달 1일 뉴저지에서 열린 즉문즉설 강연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퇴직해서 함께 사는 미운 남편, 어떤 마음으로 봐야 할까요?

“남은 인생은 온전히 나만의 삶을 위해 살고 싶은데 살아온 습관 때문에 쉽지가 않습니다. 어떻게 노후를 살면 좋을까요? 노년을 대비하는 마음을 가르쳐주세요. 그리고 정년 퇴직해서 함께 살고 있는 싫고 미운 남편은 어떤 마음으로 봐야 제 마음이 편할지 궁금합니다.”

“최근에 제가 시골에서 할머니 할아버지 170여 분을 모시고 남원 실상사에서 노인잔치를 했습니다. 할머니들의 얘기를 들어보니까 늙어서 남편이 먼저 일찍 죽는 게 큰 복이래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남자들이 참 불쌍해요. 남자와 여자가 집안의 가사를 동등하게 하면 이런 문제가 없는데, 퇴직한 후에도 여자가 남자에게 음식도 차려줘야 하고, 방청소도 해줘야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젊었을 때에는 남편이 돈을 버니까 큰 문제가 아니었는데, 늙어서 자기 몸도 움직이기가 어려운데 계속해서 남편 시중을 들어야 하니까 부인이 힘들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감 없는 집이 부러운 거예요. 남편이 행여라도 병이 들어 누워 있으면 어디 놀러 가지도 못하고 남편 밥을 차려줘야 되잖아요. 그래서 할머니들이 ‘늙어서 남편이 일찍 죽으면 그것도 복중의 복이다’라고 하는 거예요.

질문자는 남편이 안 죽어서 지금 복을 못 누리고 있다는 얘기 같은데, 막상 영감이 먼저 죽으면 섭섭합니다. 병들어 누워 있으면 차라리 죽으면 낫겠다 싶은데, 죽고 나면 또 섭섭해집니다. 그래서 질문자는 ‘조금 힘은 부치지만 혼자 안 살고 남편과 함께 살아서 좋다’ 하는 생각을 가지셔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에 남편이 먼저 돌아가시게 되면 ‘이제 자유로워서 좋다’ 하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늘 이 두 가지 관점을 가지고 살아야 어떤 일이 생겨도 구애받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늙어서 어떻게 노후를 마련해야 되느냐’ 이런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아침 식사 했어요?”

“간단하게 먹었습니다.”

“지금 누구하고 살아요? 부부만 살아요? 자식들하고 함께 살아요?”

“부부만 삽니다.”

“질문자가 밥을 해요?”

“각자 해요.”

“무슨 말이에요? 각자가 밥을 한다니요?”

“서로 밥 먹는 시간이 달라서요.”

“밥은 질문자가 해요? 밥도 각자가 해서 각자 먹어요?”

“밥은 제가 하고, 자기가 먹고 싶은 거 알아서 챙겨 먹어요.”

“그러면 질문자에게 부담은 없네요.”

“아침은 그렇습니다.”

“점심은요?”

“점심은 나가서 먹습니다.”

“나가서 어떻게 먹어요? 둘이 같이 나가서 먹어요? 각자 먹어요?”

“점심은 시니어 센터에 가서 해결합니다.”

“그렇군요. 한국에도 요즘은 다 노인정에 가서 점심을 먹어요. 저녁은 어떻게 해결해요?”

“저녁은 제가 합니다.”

“저녁만 해결하면 되니까 아직은 별로 힘이 들지 않겠네요.”

“나이가 팔십이 되니까 그것도 힘들어요.”

“팔십 년이나 다리를 사용했는데 고장이 좀 나는 게 정상이지 어떻게 멀쩡하겠어요? 그 정도면 큰 문제없어요. 그리고 질문자가 구십이 되기 전에 남편이 먼저 죽을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지금 크게 걱정할 게 없는데도 자꾸 노후를 걱정하는데 그럴 필요 없어요. 노후 보장이 점점 더 좋아지는 쪽으로 가고 있어요. 옛날에는 노후 보장이 안 되니까 반드시 자녀들이 부모를 보살펴야 했어요. 요즘은 아이들이 적게 태어나다 보니까 자식들이 부모를 보살필 수가 없어요. 아이가 하나 태어나면 그 아이에게 따라붙는 어른이 8명이라고 해요. 엄마 아빠 있고, 엄마 쪽에 또 엄마 아빠 있고, 아빠 쪽에 또 엄마 아빠 있으니까 벌써 6명이잖아요. 거기에 엄마 쪽이나 아빠 쪽에 이모나 고모 하나씩 따라붙으면 적어도 8명에서 10명이 한 아이에게 매달리게 됩니다. 요즘 결혼하는 사람이 50%가 조금 넘는데 거기서 겨우 아이 하나만 태어나다 보니 아이들 버릇이 나빠지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문제예요.

이와는 반대로 노인 인구는 계속 증가하고 있어요. 옛날에는 결혼하면 한 20년 정도 부모를 모시면 됐는데, 지금은 평균 수명이 60세에서 90세로 늘어나서 50년 이상 모셔야 해요. 그러니 자녀들 입장에서 부모를 모시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옛날에는 자식이 보통 대여섯 돼서 누가 모셔도 모셨는데, 지금은 많아야 둘이니 자녀들에게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어요. 그러니 노인이 돼서 ‘자녀들이 전화를 안 한다’, ‘보러 오지 않는다’ 하는 생각은 일절 하지 마세요. 그들이 불효자라서 그런 게 아니고, 사회 구조가 이전과 현저히 바뀌었어요. 이제 우리의 노후는 자식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보장이 되어야 합니다.

한국에서는 재산이 전혀 없는 사람은 정부가 운영하는 양로원으로 들어가면 돼요. 현재 시골에서 논이나 밭이 좀 있고 집이 있는 사람이 제일 어려운 사람이에요. 이 사람들은 정부의 지원 대상에 안 들어가요. 자식이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고요. 그렇다고 자식들이 부모를 돌보는 것도 아니고, 시골에 있는 땅도 현금화가 안 되죠. 옛날 집 한 채 있어 봐야 상태가 아주 열악하다 보니 현금 가지고 있는 것보다 훨씬 못해요. 땅이나 집을 팔아버리고 요양원에 들어가면 되는데, 생각이 옛날에 머물러 있다 보니 죽을 때까지 땅 한 마지기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고집해요. 그리고 자식들이 돌보지 않아도 이걸 자식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죠. 이게 본인들에게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일인데도 그렇게 삽니다. 그러니 자신의 처지를 한탄해도 이를 해결할 방법이 없어요.

그래서 JTS에서는 정부 지원의 대상은 아니지만 실제 사는 것이 열악한 사람, 즉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람을 찾아서 돕는 일을 하고 있어요. 지금은 그 상황이 여러모로 많이 좋아졌어요. 정부는 노인연금으로 거의 40만 원씩 지급하는데 제가 볼 때는 10여 년 안에 100만 원쯤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이전에 국민연금도 들어 놨다면 국민연금까지 합해 노후걱정은 안 하셔도 되는 겁니다. 물론 ‘큰 집을 유지하고, 자동차도 가지고, 가끔 외식도 하면서 살겠다’라고 하면 그건 정부나 그 어떤 종교도 해결해 줄 수가 없어요.”

“그런 문제를 말씀드린 게 아니고요. 먹고사는 건 다 먹고살아요. 제 문제는 이 나이에 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하는 거예요. 젊어야 할 수 있는 거는 기운이 없어서 못합니다.”

“나이 80이 넘었는데 뭘 하려고 해요?”

“그래도 집에만 있으면 제가 인간으로 살아가는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요.”

“젊었을 때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늙어서는 아무 일도 안 하시고 가만히 있어도 괜찮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숨 넘어갈 때까지 일해야 해요? 정 그러면 집을 절 가까이로 옮겨 절에 가서 마당을 쓸거나 다른 소소한 일거리를 찾아서 하면 됩니다. 교회에 다니시면 그곳에서 봉사거리를 찾으시면 좋습니다.

제가 구상하고 있는 것은 나이 든 사람들이 절에 들어와서 죽는 날까지 살게 하는 거예요. 물론 그냥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사는 게 아니라 염주를 만들든지 다른 소일거리를 하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생기를 잃지 않고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노인들이 노인정이나 양로원에서 보호만 받는 구조에 놓여 있는 것도 찬성하지 않지만, 젊은이처럼 일을 하겠다고 욕심을 내는 것에도 찬성하지 않습니다. 욕심을 좀 내려놓아야 됩니다.

우리 사회에서 노인들이 일하기 제일 좋은 곳은 종교 단체인 것 같습니다. 가까이에 있는 절이나 교회에 가서 거들어 주면 밥도 얻어먹을 수 있으니까요. 아니면 노인정에 가서 봉사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지금 나이 80이 넘었는데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겠다’ 하는 것은 욕심이에요. 내려놓으셔야 됩니다. ‘이렇게 사는 게 의미가 있는가?’ 하는 생각을 버리시고, ‘젊었을 때 할 만큼 했다. 집에만 있으면 심심하니까 이제는 놀기 삼아 그저 소일거리로 조금 봉사하겠다’ 하고 자꾸 스스로를 위로하세요. 교회에 다니세요?”

“네.”

“교회에 일거리가 없어요?”

“나이가 많으니까 못하게 해요.”

“노인이라고 자꾸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앉아서 쉬세요’ 하고 대하는 것은 좋은 게 아니에요. 노인이라도 뭐든지 할 수 있으면 하도록 자꾸 일거리를 줘서 움직이게 해야 건강에 좋고 운동이 됩니다. 그래서 시골 노인들이 좋아요. 제가 사는 동네에 100세 할머니가 계시는데 아직도 밭에 가서 일합니다. 걷지는 못해도 엉덩이에 종이 박스 하나 붙이고 밭에 가서 일해요. 자식들은 하지 마시라고 말리지만 그분에게는 그게 운동이에요. 물론 밤에 아프다는 소리를 하지만 그게 삶의 의지입니다.

노인들은 이렇게 대하면 됩니다. 낮에 일하겠다 하면 호미 챙겨드리고, 밤에 아프다 하면 주물러 드리면 됩니다. 그것이 그 어르신에게 삶의 생기를 불어넣어 줍니다. 물론 노인들에게 무리하게 일을 시켜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운동 삼아하도록 해주어야 해요. 제가 노인정에 가서 늘 법문 하는 것이 ‘이제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놀이 삼아하세요’입니다. 노인은 무리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몸이 많이 아프거든요.

질문자도 한번 소일거리를 찾아보세요. 정 할 일이 없으면 나중에 저한테 연락처를 주세요. 저는 일이 무궁무진하게 많은 사람이거든요. 늙어서 못 움직여도 오시겠다면 받습니다. 그냥 있지 마시고 소일거리를 찾아서 조금 움직이는 게 좋아요. 사시는 곳은 아파트입니까? 정원이 있는 집입니까?”

“아파트예요.”

“단독주택 같으면 약간 풀이라도 뽑으면서 움직이면 좋은데, 그럼 남의 집 풀이라도 좀 뽑아주세요.”

“예, 잘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내일은 하루 종일 6.13만인대법회 행사에 발표할 한반도 평화선언문 원고를 쓰고, 행사 준비에 집중한 후 해질녘에는 논에 나가 모내기를 도울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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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현

일을 놀이 삼아 가볍게 하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고맙습니다🙏

2024-06-14 14:30:07

범해

80대 부인의 하소연에 시원하게 즉설하시는 스님 법문에 70후반인 저 또한 지혜를 얻습니다. 지인,친구들에게 퍼날르고 싶네요.
감사합니다.

2024-06-14 13:47:11

김종근

감사합니다

2024-06-13 17:4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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