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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INEB(참여불교국제네트워크) 방문단이 정토회 견학을 시작한 지 2일째 되는 날입니다.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새벽 4시 30분, 대웅전에서 예불과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동남아 스님들도 한국 정토회에서 하는 방식으로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 108배를 함께 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뇌정산의 맑은 아침 공기를 마시며 발우공양을 하러 대수련장으로 이동했습니다.
INEB 방문단을 포함하여 행자대학원생, 백일출가생, 깨달음의장 바라지, INEB 바라지 등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발우공양을 시작했습니다.
“불생가비라 성도마갈다 설법바라나 입멸구시라”
음식을 다 먹은 후 발우를 김치 조각으로 깨끗이 닦아 먹었습니다. 깨끗한 물로 한 차례 헹군 후 그 물을 퇴수통에 붓고 발우공양을 마쳤습니다.
“아차세발수 여천감로미 시여아귀중 개령득포만”
공양을 마치고 스님이 발우공양을 하는 의미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한 이 공양을 ‘발우공양’이라고 합니다. 독송한 경전은 ‘소심경’이라고 합니다. 발우공양은 세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음식을 남기지 않기 때문에 ‘절약 공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자기가 먹는 음식이 다른 사람과 섞이지 않기 때문에 ‘청결 공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과 밥을 함께 먹어도 어떤 전염이 일어나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또, 발우를 씻은 물이 깨끗하다는 것은 발우가 깨끗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셋째, 절에 사는 대중들은 모두 같은 음식으로 공양합니다. 공개된 자리에서 함께 먹으며, 어른 스님이라고 더 좋은 음식을 드시거나 많이 드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평등 공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음식이 내 앞에 오려면 수많은 사람의 공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음식을 맛으로 먹지 않고, 수행을 위한 약으로 먹습니다. 먹기 전에는 굶주린 사람들을 생각해서 그들을 위해 먼저 밥 한 톨을 나눕니다. 또, 평소에 꼭 나쁜 짓을 하지 않더라도 나의 생존은 다른 생명의 죽음이나 노고로 유지됩니다. 그래서 내 삶을 항상 경계하는 다짐을 합니다. 마지막에는 이 음식을 먹고 모든 악을 멈추며 모든 선을 행해서 도를 이루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그리고 밥을 먹습니다.
오늘 직접 발우공양을 해보면서 느끼셨겠지만 좀 복잡한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정토회에서는 하루에 세 번 모두 발우공양을 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이런 발우공양의 정신을 잊지 않기 위해 하루에 한 번은 꼭 발우공양을 합니다. 정토회는 형식적 전통은 대부분 현대에 맞게 변화를 시켰지만, 아침 예불과 발우공양만큼은 전통을 그대로 지키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 시대에 우리가 발우공양의 정신을 계승한다면, 소비를 줄여서 남은 것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개인에게는 수행이 되며, 지구적으로는 기후 위기를 막을 수 있고, 사회적으로는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습니다. 이런 일석삼조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 발우공양 정신입니다.”
발우 공양을 마치고 8시 30분부터 명상원에서 INEB 방문단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제에 이어서 오늘은 정토회의 회원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스님의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정토회 회원 교육의 내용은 부처님의 삶을 기준으로 하고 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은 어떤 신비한 존재로서의 부처님이 아니라 역사적 존재로의 부처님을 연구하고 따릅니다. 즉, 역사적 인물로서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삶을 연구합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생활하는 기준입니다. 또 그것으로 현대의 여러 문제를 풀어가는 데에 응용합니다. 생활 수준은 전 세계 70억 인류의 중간 이하로 하고 있습니다. 과거 부처님처럼 살지는 못하더라도 그 기준을 세계 인류의 중간 이하로 정해두었습니다. 한국 사회를 기준으로 한다면 하위 10퍼센트 이하로 한다는 원칙입니다. 우리는 현재 어떤 옷을 입더라도 부처님보다 잘 입게 됩니다. 무엇을 먹더라도 부처님보다 잘 먹게 됩니다. 또한 어디에서 자더라도 나무 밑에서 주무신 부처님보다 더 편하게 잘 수 있습니다. 이런 기준에 의하면 수행자는 조금 불편하더라도 먹고 입고 자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어쨌든 저희는 이런 부처님의 삶과 가르침을 기준으로 생활합니다.
개인의 자유와 행복에 대한 문제부터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문제, 환경 위기를 극복하는 문제들을 풀어나가려고 할 때 정토회 회원들은 붓다의 삶과 그 가르침을 기준으로 논의합니다.
‘우리가 부처님처럼 살 수는 없지만 그분의 삶을 지향하자. 그리고 그것을 기준으로 생활해 보자’
이런 관점입니다. 부처님 당시에 종교 지도자는 브라만이었습니다. 하지만 불교는 출가자가 지켜야 할 삶의 원칙만 수용한다면 부처님은 그가 어떤 계급이라 하더라도 상가 구성원이 되어 수행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즉, 브라만교는 신분에 의해서 종교 지도자가 되었지만, 불교는 그것과 관계없이 누구나 다 이런 삶의 원칙을 지킴으로서 수행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토회도 회원의 종교나 신분을 절대 따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지향하는 원칙만 지킨다면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불교 신자나 스님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원칙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정토회 회원이 될 수 없습니다. 부처님 당시의 출가 대중 안에서는 브라만이나 크샤트리아, 수드라 같은 카스트 차별이 일절 없었습니다. 모든 구성원이 평등했습니다. 이처럼 현재 정토회 안에서도 이런 원칙만 지킨다면 그가 스님이거나 불교 신자라도, 또 다른 종교를 믿더라도, 차별하지 않으며 서로 평등하게 대합니다.”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진 후 스님이 지난달에 부탄을 답사하고 온 모습을 영상으로 보았습니다. 부탄에서 온 스님을 비롯하여 동남아 스님들 모두가 스님이 오지 마을을 답사하는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스님은 부탄 지속가능한 개발 사업의 취지와 향후 계획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저희는 올해 부탄에서 지속 가능한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기후 위기가 더 심해지면 모두 부탄으로 이주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웃음)
부탄 사람들은 지금 호주로 많이 떠납니다. 그 빈자리에 우리가 들어가면 어떨까요? (웃음) 부탄에서 제일 가난한 곳이 젬강이라는 곳입니다. 20개의 주 중에서 빈곤율이 제일 높습니다. 앞으로 5년간 프로젝트를 진행해서 기후 위기 시대에 대안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삶의 모델을 만들려고 합니다.”
스님은 부탄에서 온 도르지 스님을 향해 웃으며 말했습니다.
“도르지 스님이 직접 책임지고 이 프로젝트를 해보세요. 오죽했으면 제가 호주에 가서 부탄 청년들에게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얘기를 하려고 계획하겠습니까?” (웃음)
이어서 전통방식의 예불문을 설명하고 정토회의 천일결사 기도법에 담긴 수행의 원리와 의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정토회의 천일결사 기도를 함께해 보셨는데요. 이번 시간에는 그 내용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수행문을 읽고 기도를 시작합니다. 전통적으로는 반야심경을 독송하는데 우리는 그것을 새로 바꿔서 합니다. 보통 반야심경을 외우면 그 의미를 잘 모르고 독송하는데, 그 뜻을 정확히 하려고 수행문을 새로 만들었습니다. 수행문 속에는 수행의 관점과 원칙이 들어가 있습니다. 첫 번째가 ‘모든 괴로움은 다 내 마음에서 일어난다’ 하는 것입니다. 모든 괴로움은 자기에게서 생기는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것이 밖에서 온다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이곳, 저곳, 이 사람, 저 사람을 찾아다니며 행복과 자유를 구합니다...”
그리고 각종 법회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고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은 후 오전 프로그램을 모두 마쳤습니다.
11시 30분에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먼저 식사를 준비해 준 대전충청지부 봉사자 분들을 위해 동남아 스님들이 축원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축원 기도를 마치고 다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동남아 스님들과 환담을 나눈 후 오후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오후 1시부터는 어제 다 하지 못한 참가자 소개 시간을 가졌습니다. 태국에서 온 비구 스님들과 비구니 스님이 자신이 속한 단체에서 하고 있는 활동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먼저 태국에서 온 차이야폰(Chaiyaporn) 스님과 프라설트(Prasert) 스님이 소개를 했습니다.
“저희들은 태국에서 온 비구 스님입니다. 방콕 근처에 있는 ‘아쇼카람’이라는 절에서 살고 있습니다. 빨리어와 아비 달마를 가르치고 있고, 장애인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환우들을 돕기 위한 마라톤 대회도 엽니다.”
다음은 태국에서 온 사카다라니(Saccadharani) 비구니 스님이 소개를 했습니다.
“저는 태국의 남부 지방, 말레이시아 국경에 위치한 작은 비구니 사찰에서 왔습니다. 노숙자들, 부상당한 사람들, 독거노인들, 고아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가난한 집의 어린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절이 무슬림 지역에 있기 때문에 평화 컨퍼런스도 열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성들을 위한 명상 수련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주 소박하게 살고 있지만 마음은 항상 충만합니다. 아직 태국에서는 비구니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스리랑카에 가서 계를 받고 있습니다.”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은 후 참가자 소개를 모두 마쳤습니다.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진 후 이번에는 스님이 필리핀 민다나오 분쟁 지역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 하고 있는 JTS 사업을 소개하는 영상을 함께 보았습니다. 영상을 본 후 스님은 JTS가 구호 활동을 하는 원칙에 대해 자세히 소개해 주었습니다.
다음은 정토회의 수련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정토회의 수련 프로그램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고뇌가 사라진 상태를 조금이라도 직접 체험해 보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세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첫째, 깨달음의장입니다. 둘째 나눔의장, 셋째 명상수련입니다.
상가 공동체에 들어온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일체의 장이라는 프로그램도 있습니다. 일체의 장은 일하는 가운데 알아차림을 유지하는 수련 프로그램입니다. 대부분의 수련이 어떤 생산적인 활동 없이 앉아서 명상을 하는 등 어떤 것에 집중하는 프로그램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일상적으로 노동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노동하는 가운데 알아차림을 유지하는, 즉 노동과 수행을 따로 하는 게 아니라 그것이 통일된 프로그램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활동은 크게 생산활동과 소비활동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명상이나 종교 활동은 대부분 소비활동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명상을 생산활동과 결합한다면 우리는 따로 휴식 시간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유흥이나 여가 활동을 즐길 이유도 없어집니다. 일하는데 스트레스가 없다면 따로 휴식을 취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또 일상에서 괴로움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수행도 따로 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제 여러분이 한 질문 중에 병이 생기고 나서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병이 생기기 전에 예방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정토회에서는 일과 수행의 통일이란 실험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세 가지 프로그램 중에서 깨달음의 장은 첫 입문 과정에 해당합니다. 선불교에서 말하는 ‘마음 알아차림’의 원리를 기초로 해서 누구나 일상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든 프로그램입니다. 선불교에서는 생각을 번뇌라고 합니다. 생각이 일어나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서 그때의 마음 상태를 알아차리는 것을 선불교에서는 ‘자기를 본다’ 하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경전을 읽거나 교리를 얘기하는 것도 다 번뇌로 봅니다. 그래서 생각이 끊어진 자리로 돌아간다는 관점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그러면 누가 한 번 직접 체험해 보실래요?”
깨달음의 장의 일부분을 체험할 수 있게 수련의 한 프로그램을 스님이 직접 진행해서 보여주었습니다.
체험을 마치고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질문이 계속 이어졌지만 마쳐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내일 계속 대화를 이어나가기로 하고 서둘러 짐을 챙겨 모두 차에 올라탔습니다.
이제 문경 수련원에서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INEB 방문단은 대구로 향했습니다. 차로 2시간 30분을 달려 저녁 7시에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강연이 열리는 대구은행 제2본점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INEB 방문단과 함께 강연장으로 입장했습니다. 강연장 입구에는 만석이 되어서 입장하지 못하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시민들이 많았습니다. 스님은 양해를 구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못 들어오시는 분들은 유튜브로 강연을 봐주세요."
저녁 7시 30분이 되자 사전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흥겨운 노래에 이어 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을 함께 보았습니다.
소개 영상이 끝나고 스님이 무대에 오르는 동안 400명의 청중들은 큰 박수로 환호했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인사말을 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이런저런 일과 예기치 못한 사건들로 괴로울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이런 고민들을 하게 되는데요. 그런 고민들을 친구가 친구에게 얘기하듯이 가볍게 내어놓고 서로 대화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원래 부처님의 가르침은 교리나 경전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시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고뇌를 가지고 부처님과 대화를 하다가 대화 중에 스스로 깨달았습니다. 부처님과 대화를 나눈 사람들이 자각을 하고 그 고뇌로부터 벗어난 대화 내용을 모아놓은 것이 바로 경전입니다. 본래부터 불교 교리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런 수많은 대화가 먼저 있었고, 나중에 후대 사람들이 대화의 핵심 내용이 무엇인지 정리해서 나온 게 교리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교리를 먼저 공부하기 때문에 지식은 많이 늘어나는 반면 고뇌는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자, 그럼 여러분의 고뇌를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유튜브 생방송에는 6,200여 명이 접속했습니다. INEB 방문단은 청중석의 맨 뒷자리에 앉아서 통역을 통해 강연을 참관했습니다.
먼저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오늘은 여덟 명이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다양한 연령대의 가지각색의 사연이 담긴 질문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아들이 곧 장가를 가는데 어떻게 시어머니 노릇을 잘할 수 있는지 스님에게 걱정스러운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질문자는 지금 자기 아들이 장가간다고 자랑하고 있는 것 같네요. '우리 아들 장가가는데 스님은 아들 없죠?' 하고 얘기하는 것 같아요. (웃음)
며느리 노릇은 내가 안 하고 싶다고 안 할 수가 없습니다. 결혼을 하게 되면 내 남자의 어머니가 계시니까 며느리 노릇을 안 할 수가 없어요. 며느리 노릇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할 수밖에 없었지만, 시어머니 노릇은 내가 안 하면 됩니다. 그런데 얘기를 들어보면 시어머니 노릇을 하고 싶다는 것 같아요. 시어머니 노릇을 하기 싫으면 그냥 안 하면 됩니다. 시어머니 노릇이 얼마나 힘든지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나는 시어머니 노릇을 안 하겠다' 이렇게 내가 입장을 정해버리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 시어머니 노릇을 안 하는 방법은 이렇게 쉽습니다.”
“남도 아니고 그래도 34살까지 키운 아들인데요.”
“며느리가 34살까지 키운 남자를 데려가니까 본전을 좀 뽑겠다는 얘기지요?”
“아니요. 저는 스님 법문을 많이 들어서 제 옆에 있는 늙은 남자와 사이가 좋습니다. 그래서 아들 부부한테 질척거리지는 않을 것 같은데도 걱정이 됩니다.”
“그러니까 시어머니 노릇을 안 하면 된다니까요. 질문자는 시어머니 노릇을 하고는 싶은데 어떻게 하면 잘하는지 고민을 하고 있어요. 시어머니 노릇을 가장 잘하는 방법은 시어머니 노릇을 안 해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고부간의 갈등은 애초에 없습니다. 아들 부부가 오면 ‘이웃집 젊은 부부가 놀러 왔나 보다’ 이렇게 생각하고 잘 대해주면 돼요. 이웃집의 젊은 부부한테는 간섭을 안 하잖아요. 시어머니 노릇을 잘하는 방법은 일체 간섭을 안 하는 것입니다. ‘시어머니 노릇을 나는 안 하겠다’, ‘나는 시어머니가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돼요. 그게 뭐가 어렵다고 그래요? 젊은 부부가 오면 그냥 밥 해주고, 이렇게 저렇게 대우만 해주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문자가 자꾸 '내가 얼마나 아껴서 키운 아들인데 네가 공짜로 데려갔으니까 나도 본전 좀 뽑아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하니까 고민이 되는 겁니다. 며느리가 집에 올 때마다 '밥도 네가 하고, 청소도 네가 해라', '나한테 와서 절도 해라' 이런 요구 조건을 붙이니까 며느리들이 힘들어하는 거예요. 며느리는 결혼할 때 남자만 보고 결혼했지, 그 남자 등 뒤에 늙은 여자가 있는 줄 미처 생각을 못했어요. 알기는 알아도 그게 가슴에 안 다가왔어요. 그런데 막상 결혼해서 보니 뒤에 늙은 여자가 딱 붙어 있어요. 그래서 힘든 거예요. 한 남자를 두고 두 여자가 경쟁을 하게 되니까 힘든 겁니다.
질문자가 아들의 등 뒤에 붙어 있는 늙은 여자 노릇을 딱 끊어버리면 며느리는 질문자와 전혀 시비할 일이 없습니다. 아들이 장가 안 가고 집에 있으면 심부름을 시킬 수도 있고 좋은 점도 있지만 걱정이 되잖아요. 그런데 어떤 여자가 와서 고민거리를 해결해 주니까 얼마나 고마워요? 항상 '우리 아들과 살아줘서 고맙다' 이렇게 생각하면 저절로 시어머니 노릇을 잘하게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한 남자를 두고 젊은 여자하고 늙은 여자가 경쟁을 하면 늙은 여자가 아무리 노련해도 경쟁에서 이길까요, 질까요?”
“집니다.”
“대다수가 젊은 여자에게 집니다. 그러니 아예 경쟁을 안 해야 돼요. 이제 결혼했으니까 남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웃집 젊은 부부가 놀러 왔다’ 이렇게 생각해야 해요. 내 아들이라고 생각하면 '며느리 역할을 어떻게 해라' 하고 자꾸 요구가 생기기 때문에 갈등이 일어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질문자가 딸 집에 갔다고 합시다. 딸은 아침에 누워 자고, 사위가 일어나서 음식을 차려놓고 애들 밥도 먹이면, 질문자가 볼 때 보기 좋을까요, 안 좋을까요?”
“보기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들 집에 갔는데, 며느리는 자고, 아들이 일찍 일어나서 밥을 하고 애들 밥 먹이면 기분이 나쁠까요, 안 나쁠까요?”
“속이 뒤집어질 것 같습니다.”
“질문자가 좋은 시어머니가 되기 어려운 이유를 아시겠어요? '우리 아들이 참 훌륭하구나. 제 아버지를 안 닮아서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질문자도 남편이 그렇게 해주기를 원했잖아요. ‘우리 남편이 못해준 것을 우리 아들은 저렇게 잘하니 참 보기 좋다’ 이렇게 생각하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딸네 집에 가서 사위가 밥을 하는 모습은 좋아 보이는데, 아들네 집에 가서 아들이 그럴 때는 눈이 뒤집히잖아요. 그래서 고부간에 갈등이 생기는 겁니다. 이해가 되셨어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질문자는 좋은 시어머니가 되고 싶어요? 아니면 아예 시어머니 노릇을 안 하는 게 좋겠어요?”
“시어머니 노릇을 아예 안 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잘하셨어요.”
“스님,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사전에 신청한 질문을 다 받고 현장에서도 세 명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손을 든 사람이 더 많았지만 이미 2시간이 지나 있었습니다. 대화를 마치며 스님이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대화를 나눠보니까 별일 아니죠? 여러분이 사는 것도 다 별 일 아니에요. 이런저런 일이 있어도 살만해요. 그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지나놓고 돌아보면 다 괜찮았어요, 안 괜찮았어요?”
“괜찮았어요.”
“그것처럼 지금도 괜찮아요. 지금 괜찮은 줄 알고 웃으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미래에도 괜찮아집니다. 자꾸 지금이 안 괜찮다고 생각하면 그 기운에 의해서 나중에도 안 좋아집니다. 이렇게 관점을 갖고 늘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혼자서 안 되면 행복학교에 등록해서 다니면 조금 도움이 될 거예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곧바로 무대 위에서 책 사인회를 했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줄을 서서 스님의 사인을 받고 돌아갔습니다. 스님은 책 사인회를 하면서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참석자들이 모두 강연장을 빠져나가고 스님은 오늘 강연을 준비해 준 대구경북 지역 행복시민들과 기념사진을 함께 찍었습니다. 모두 뿌듯한 얼굴로 '행복시민 파이팅'을 우렁차게 외쳤습니다.
스님은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대구를 출발하여 두북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차로 한 시간을 달려 밤 11시가 되어 두북 수련원에 도착한 후 INEB 2일째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두북 농장을 둘러보고 농사일 체험을 하고, 살리고 센터를 방문하여 재활용 유통 사업에 대한 설명을 듣고, 오후에는 운문사를 방문하여 비구니 스님들과 대화를 하고, 저녁에는 스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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