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3.30 부탄 답사 6일째 (랑덜비)
“동생과 사이가 안 좋아서 어머니가 슬퍼합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부탄 답사 6일째 날입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6시에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한국에서 가져온 밑반찬으로만 밥을 먹다가 어젯밤 마을 주민이 가져다준 채소로 나물을 무쳐 여느 때보다 풍성하게 아침을 먹었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7시에 랑덜비 치옥 답사를 시작했습니다. 아침 일찍 집을 방문하면 실례가 될 것 같아서 먼저 농장을 둘러보았습니다.

트럭을 타고 마을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농장으로 갔습니다. 밭 주인 중 한 명인 청년도 동행했습니다.

“무슨 동물이 많이 들어오나요?”

“멧돼지, 사슴, 고라니요.”

농장을 둘러싸고 철조망 울타리가 쳐져 있었습니다. 밭에는 메밀이 심어져 있었습니다. 이렇게 철조망이 있지만 사슴과 멧돼지 등 야생 동물의 피해를 막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스님이 생각한 아이디어를 말해주었습니다.

“울타리 위에 와이어를 하나 더 설치하고 철조망을 동글동글하게 감싸줍니다. 아래쪽에도 땅을 파고 와이어를 하나 더 설치해서 철조망을 동글동글하게 감싸주고, 절반 정도는 땅에 묻습니다. 위아래로 원형 철조망을 감싸는 겁니다. 그리고 철조망 사이에 간격이 벌어지지 않도록 지그재그로 연결을 해야 합니다. 약간 경사지게 눕혀서 철조망을 심으면 야생 동물이 뚫고 들어오기가 어려워요. 제 생각에는 이렇게 철조망을 활용하는 방법이 가장 비용이 적게 들 것 같아요. 콘크리트로 울타리를 치려면 너무 힘이 들어요. 당신이 생각하기에 어떻게 하는 게 좋겠어요?”

“제안하신 방법이 더 좋겠네요. 그런데 해본 적이 없어서 실험을 한번 해 보면 좋겠습니다.”

“그럼 와이어를 지원해 줄 테니 한 번 실험을 해보세요.”

스님은 청년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두 차례 더 설명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와서 직접 설치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제가 여기 와서 살아야 해결이 나지 않을까 싶어요.” (웃음)

마을마다 야생 동물의 피해를 막아 달라는 요청이 많았는데, 과연 스님의 아이디어가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 직접 실험을 해봐야 할 것 같았습니다.

밭에는 비닐하우스가 설치되어 있었지만 사용하지 않는 상태였습니다. 외부 단체에서 지원한 것이지만 제대로 활용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비닐하우스를 보며 부탄 정부 관계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이곳은 날씨가 따뜻해서 비닐하우스가 크게 필요 없지 않나요? 제가 생각할 때 이런 게 낭비라고 생각해요. 외국에서 펀딩을 받아서 하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겁니다. 한국에서 비닐하우스가 유용하다고 해서 인도에도 비닐하우스를 지원하곤 합니다. 비닐하우스 하나씩 지원해 준다고 하면 모금하기가 쉽잖아요. 이런 사업 방식은 낭비입니다.”

“네, 맞습니다.”

스님은 밭 주인에게 질문했습니다.

“농사로 생계를 유지하려면 무엇이 가장 필요한가요?”

“5년 동안 연구를 해봤는데 생산량이 너무 적어요.”

밭농사의 생산량이 너무 적다면 닭을 키우는 건 어떤지 물어보았습니다. 병아리와 사료를 모두 구입하고 있어서 수입이 크게 남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병아리를 자체 부화하고, 농작물 부산물을 사료로 주지 않는 한 병아리 값, 사료값으로 다 나가는 상황이었습니다.

JTS 활동가들은 오늘 스님이 한국으로 떠나고 나면 마을에 살면서 가난한 집을 한 채 리모델링 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불을 때서 밥을 하고, 먹을 것도 구해야 합니다. 한 활동가가 저녁에 먹으려고 버려진 생강과 감자 한 알을 주워오자 모두 웃음이 터졌습니다. 사실은 감자가 아니라 감자 모양의 돌이었습니다.

“사실 이건 돌이예요.” (웃음)

또 다른 활동가는 불쏘시개에 쓸 자잘한 나무를 주워 왔습니다. 본격적인 야생의 삶을 앞두고 먹고살 걱정이 앞섰지만 모두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한 시간 동안 농장을 둘러보고 리모델링의 샘플로 연구해 볼 만한 집이 있다고 추천을 해주어서 함께 보러 갔습니다.

특히 부엌을 어떻게 리모델링 하면 좋을지 꼼꼼하게 살펴보았습니다.

“가난한 집을 두 곳 정도 더 보여주세요.”

스님과 JTS 답사단은 차를 타고 다시 이동했습니다. 차에서 내려 산 위로 한참 올라갔습니다.

집 상태가 많이 열악하여 집을 새로 지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정부 소유의 땅에 불법 건축한 집이어서 다른 곳으로 이주를 해야 하는데 마땅히 집을 지을 수 있는 땅도 없는 상태라고 했습니다.

다음 집으로 이동했습니다. 엄마, 아빠, 아들 세 명이 거주하는 집이었습니다. 외부에 부엌이 따로 있었고, 집 안에 방이 나누어져 있지 않아서 구획을 나눌 필요가 있어 보였고, 선반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해 보였습니다.

마을을 지나 농산물 가공 시설을 방문해 보았습니다.

외부 단체에서 겨자씨 기름을 짜는 기계를 지원해 주었는데, 기계가 한 번도 사용되지 않고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게옥에서 지붕 재료를 지원해 주었지만 그 외에는 다른 지원이 없어서 결국 예산 부족으로 건물을 짓다가 만 상태였습니다.

현지 사정에 맞지 않는 지원으로 자원이 제대로 활용되지 않는 모습을 보니 실제로 주민 생활에 꼭 필요한 지원인지 또 마무리까지 지원해 줄 수 있는 지를 잘 확인해야 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JTS 활동가들이 샘플을 만들어 보기로 한 집을 다시 찾아가 최종적으로 어떻게 고칠지 의논을 하고, 집주인에게 의견을 물어보았습니다.

스님과 JTS 활동가들은 다시 한번 집을 살펴보며 무엇이 가장 집주인에게 편할지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JTS 활동가들과 부탄 정부 관계자들의 의견을 종합해서 스님이 집주인에게 설명을 하고 괜찮은지 물어보았습니다.

“여기서 요리도 하고 난로도 쓸 수 있게 돌과 흙으로 화덕을 만들려고 해요. 연기는 밖으로 나가도록 연통을 만들 겁니다. 여기에서 솥을 걸면 밥을 해 먹을 수 있어요. 화덕이 있는 입구 쪽은 시멘트로 바닥을 만들려고 해요. 나무 바닥은 너무 높기 때문에 높이를 좀 낮추고, 입구까지 나무 바닥을 확장할게요. 양쪽으로 선반을 만들어서 물건과 요리 기구를 넣을 수 있도록 해볼게요. 괜찮겠어요?”

“좋습니다.”

집주인은 스님에게 감사의 의미로 인사를 했습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전해졌습니다.

집을 나와 랑덜비 치옥의 보건소로 향했습니다.

스님이 보건소 담당자에게 질문했습니다.

“랑덜비에는 몇 가구나 살고 있나요?”

“120 가구가 살고 있습니다.”

“현재 살고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됩니까?”

“514명이 삽니다.”

스님은 마을에 눈, 귀, 치아가 안 좋은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보고, 조사를 해줄 수 있는지 요청했습니다.

“노인들에게 제일 큰 어려움이 눈이 안 보이는 것, 귀가 안 들리는 것, 치아가 없는 것이잖아요. 어떤 사람은 눈을 수술하지 않고는 도저히 생활이 어렵겠다, 어떤 사람은 이가 하나도 없다 이런 것을 당신이 조사를 좀 해줄 수 있어요?”

“제가 그런 진단을 할 수는 없는데, 어떡하죠?”

“잘 안 보인다고 하거나, 잘 안 들린다고 하는 사람을 조사만 해주세요. 그러면 제가 전문 의사를 데려와서 체크해 볼게요. 모든 사람을 다 확인할 수는 없으니까 1차 조사를 해 달라는 겁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보건소를 나와 숙소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숙소에 돌아온 스님은 한국으로 돌아갈 짐을 쌌습니다. 내일부터 한국에서 여러 스케줄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1시에는 한국에서 만났던 부탄 국민 가수 우겐 님과 한국부탄우호협회 김민경 회장님이 스님을 만나기 위해 먼 길을 찾아왔습니다. 어제 겔레푸에서 출발하여 하루 종일 달려왔다고 합니다.

우겐 님이 스님에게 안부를 물었습니다.

“이 집에서 지내고 계시는 건가요?”

“밖에 돌을 쌓아서 솥을 걸어 두었어요. 나무로 불을 때서 밥을 해 먹고, 잠은 이 집에서 잡니다. 농업용수가 부족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산속으로 답사를 다니느라 옷이 시커멓게 변했어요.”

“얼마 전에 한국에서 뵈었는데, 오늘 부탄에서 이렇게 고생하며 다니고 계시다니 마술 같습니다. 우리 부탄 사람들도 부탄의 소중함을 모르는데, 스님께서 그 가치를 알아주시니까 너무 감사합니다.”

“조금만 일찍 왔으면 마을 사람들을 모아 놓고 우겐 님이 노래 한 곡을 불러주어야 하는데, 그걸 못해서 가장 아쉬워요.”

스님은 우겐 님에게 라면을 대접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먹을 수 있는 식량이 라면밖에 없어요. 라면을 같이 먹으면서 대화합시다.”

한국부탄우호협회 김민경 회장님은 스님의 활동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하면서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제안했습니다.

“스님의 하루를 매일 읽고 있는데 부탄 주민들의 자급자족을 위해 도움을 주고 계시더라고요. 제 생각은 농사를 도와주는 것도 좋지만, 숙박 시설만 보강이 되면 주민들에게 관광 수익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안을 듣고 나서 스님이 생각하는 부탄의 지속 가능한 개발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제가 하고 있는 일은 집이 없는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거나, 여성들의 부엌 환경을 개선해 주는 겁니다. 농사를 지을 수 있게 수로를 만들고, 야생 동물의 피해를 막는 울타리를 치고, 이런 일을 하고 있어요.

다만 미래의 관광은 달라질 겁니다. 소비하고 구경하는 관광은 점점 수요가 줄어들 거예요. 부탄의 시골 마을에 와서 한 달 살아보기 하듯이 체험하는 관광으로 점점 바뀌어 나갈 겁니다. 젊은 사람들은 시골 마을에 와서 봉사도 하고 가면 좋죠.

JTS가 부탄에서 하고자 하는 일

그래서 다음에는 한국에서 임업 전문가를 데려와서 산에서 버섯과 산나물을 어떻게 채취하면 좋을지 방법을 찾아보려고 해요. 부탄에도 다북쑥(개쑥), 고사리, 이런 나물이 산에 많은데 전혀 활용이 안 되고 있거든요. 어제는 산꼭대기에 있는 마을에 가봤는데 감자 농사를 많이 짓고 있는데도 판로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보관 창고를 지어서 출하 시기를 좀 늦추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어요.

저는 부탄 사람들에게 큰 시설을 지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속 가능한 개발의 모델을 만들려고 해요. 어떤 집은 닭을 50마리나 키우는데 사료를 구입해서 키우고 있었습니다. 이런 방식은 지속 가능한 방식이 아니에요. 사료 값이 계란 값이랑 비슷합니다. 집집마다 닭을 10마리씩 분산해서 농사지은 부산물로 키워야 지속 가능한 방식이거든요. 저는 기후 위기 시대에 자연환경을 지키는 방식으로 지원을 하려고 합니다. 자연환경이 청정한 곳에서 적게 소비하며 여유 있게 살되, 너무 열악한 생활환경은 개선해 주자는 거죠. 그런 모델을 만들려고 제가 부탄에 온 것이지 주민들에게 풍요로운 생활을 지원하려고 온 게 아닙니다.”

“한국에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도와주기도 바쁘실 텐데 부탄까지 와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날마다 스님의 하루를 잘 보고 있습니다. 늘 응원하겠습니다.”

대화를 더 나누고 싶었지만 출발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지난 6일 동안 함께 답사를 했던 부탄 내각실 직원들과 젬강 종각의 기획 담당관, 랑덜비 치옥의 촉바와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수고했어요. 고마워요.”

스님은 오늘부터 이 마을에서 한 달 동안 살아갈 JTS 활동가들에게도 인사를 했습니다.

“건강히 지내세요.”

“스님, 잘 다녀오십시오.”

차를 타고 12시에 랑덜비 치옥을 출발하여 왕두에 포드랑으로 향했습니다. 봉고차가 비포장 도로를 빨리 달리지 못해서 부탄 정부 관계자들이 탄 지프차를 타고 출발했습니다.

부탄 정부 관계자들이 팅티비에 있는 예빌렙차 국립 고등학교를 보여주고 싶다고 해서 잠시 학교를 둘러보았습니다. 1학년부터 10학년까지 550명의 학생이 공부하고 있었고, 전교생 중에 270명이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젬강 종각에서 제일 좋은 학교라고 소개해 주었습니다. 학교 시설이 깨끗하고 좋았지만 화장실은 보수해야 할 곳이 많았습니다. 선생님들은 스마트보드(전자 칠판)가 강당에 필요하다고 요청했습니다.

학교를 둘러본 후 다시 차에 타고 달리는데 트롱사 종각의 주지사가 스님에게 인사를 하겠다고 연락을 해서 정부 차를 타고 트롱사 종각까지 계속 이동하여 주지사와 30분 간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차담을 마친 후 다시 정부 차를 타고 해발 3500m 고갯마루를 넘어서 밤 10시 20분에 왕두 포드랑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이 숙소에 도착한 후 40분 뒤에 짐을 실은 봉고차가 도착하여 짐을 내린 후에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23일 행복학교 특강에서 질문자와 대화 나눈 이야기를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동생과 사이가 안 좋은 걸 어머니가 슬퍼합니다

“저는 막내동생과 성격과 기질이 맞지 않아서 별로 친하지 않습니다. 막내가 사춘기 때 버릇없는 언행을 해서 주먹으로 한 대 쳤고, 그 후로 사이가 더욱 벌어졌습니다. 또, 2년 전 의견 차이로 언쟁이 있었는데 저만 보면 답답하고 벽이 느껴져서 앞으로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얼마 전 막내가 결혼식을 했는데 저를 초대하지 않았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저도 막내가 꼴도 보기 싫어졌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이런 모습을 보시면서 슬퍼하십니다. 제가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친하게 지내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마음이 가는 대로 데면데면 하면서 지내도 되는 것인지, 스님의 조언을 구하고 싶습니다.”

“그냥 데면데면 하고 지내도 됩니다. 스무 살이 넘은 형과 동생은 과거에 한 집에서 한 부모 밑에서 가족으로 자란 기억이 있을 뿐입니다. 그 기억에 연연해서 그렇지 실제로 스무 살이 넘으면 모두가 독립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남남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사이가 좋으면 자주 만나면 되고, 사이가 안 좋으면 안 만나도 됩니다.

대신 질문자가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반성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동생이 버릇 없이 굴었다고 해도 주먹으로 때린 건 잘못한 거예요. 어떠한 문제든 폭력으로 푸는 건 잘못됐다고 반성하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동생과 안 만나고 지내는 건 괜찮지만, 나중에라도 동생을 만나면 ‘그때 네가 버릇이 없다고 생각해서 주먹으로 쳤는데 그건 내가 잘못했다. 사과할게’ 이렇게 말하고 사과를 하는 게 좋습니다. 부모라고 자식을 때릴 수 있다거나, 선생님이기 때문에 제자를 때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어떤 일이든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옛날에는 여자는 때려야 부드러워진다고 하면서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것을 정당화했고, 주인이 종을 때리는 것도 말을 듣게 하기 위한 것이라며 정당화했고, 선생님이 아이를 때리는 것도 교육 상 필요하다며 정당화했습니다. 이런 말들은 모두 폭력을 합리화하는 잘못된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질문자도 동생을 때린 일에 대해서는 사과를 해야 합니다. 그 외에 동생을 만나지 않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두 명 다 어릴 때부터 키워온 자식이기 때문에 형제 간에 다투는 모습을 보고 슬퍼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머니에게는 두 형제가 모두 한 가족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형과 동생의 입장에서는 각자가 다른 가족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각자 성인으로 살아가는 겁니다. 가정을 꾸린 남남이기 때문에 어머니와는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거예요.

어릴 때도 형제 간에 싸우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명절에 모여서 장기를 두거나 화투를 치며 내기를 하다가 형제들끼리 서로 싸우기도 합니다. 그때 부모는 싸울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부모님이 볼 때는 첫째가 이기든 둘째가 이기든 그 돈이 그 돈이기 때문입니다. 돈을 한쪽 호주머니에서 다른 쪽 호주머니로 옮기는 것이기 때문에 부모님 입장에서는 아무런 싸울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형과 동생의 입장에서는 서로 다른 호주머니로 생각하기 때문에 싸우게 됩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 형제들 사이의 재산 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성인이 된 다음에는 부모님의 재산을 두고 서로 경쟁하는 관계가 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옛날 왕조 시대에는 왕위를 두고 형제끼리 서로 경쟁을 해야 했기 때문에 서로 죽고 죽이는 관계였습니다. 이걸 두고 형제가 다른 형제를 죽였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두 성인이 권력을 두고 투쟁을 하느라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왕자가 아닌 사람은 애초에 그 경쟁에 참여할 수가 없습니다. 왕자 형제만 참여할 수 있는 경쟁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권력 투쟁이라고 바라봐야지 형제끼리 서로 죽인다고 바라보면 안 됩니다. 그것처럼 재산 분쟁도 남은 유산을 두고 형제끼리 서로 경쟁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은 애초에 그 경쟁에 뛰어들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니 유산을 두고 형제끼리 싸운다고 비판을 하는 건 잘못된 생각이에요. 애초에 유산을 두고 싸울 사람은 형제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남들은 그 경쟁에 끼고 싶어도 낄 수가 없기 때문에 남들과는 그런 분쟁이 일어날 수가 없는 거예요.

지금 질문자의 경우에는 형제 간에 가끔 보고 지내도 괜찮고, 자주 보고 지내도 괜찮고, 안 봐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볼 때는 아직 한 가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두 형제의 사이가 좋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요구를 질문자가 다 들어줄 수는 없어요. 어머니가 앞으로 매달 용돈을 천만 원씩 달라고 하면, 그런 요구를 질문자가 들어줄 수 없잖아요. 어머니의 요구가 있어도 질문자가 형편에 따라 50만 원을 드리든지, 100만 원을 드리든지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것처럼 형제 간에 사이좋게 지내라는 어머니의 요구도 질문자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됩니다. 지금은 어머니가 사이좋게 지내라고 해도 그렇게 되기가 어렵잖아요. 그러니 ‘죄송합니다. 대신 제가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그러나 동생을 때린 것에 대해서는 나중에 동생을 만나면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야 합니다. 아무리 형이라고 해도 동생을 때릴 권리는 없습니다. 그러니 그것에 대해서는 내가 잘못했다고 사과를 하고, 대신에 ‘네가 만나고 싶으면 만나고, 만나고 싶지 않으면 안 만나도 된다’ 이렇게 말해서 다시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항상 열어 놓고 살면 됩니다.

결혼식에 자기가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을 왜 초대하겠어요? 결혼하는 날은 기쁜 날인데, 괜히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이 와서 결혼식장이 어색해지면 안 좋잖아요. 그러니 질문자를 결혼식에 초대하지 않은 건 너무 당연한 거예요. 또, 질문자 입장에서도 안 좋아하는 사람의 결혼식에 굳이 갈 이유가 뭐가 있어요? 그런데도 이런 고민을 하는 이유는 아직도 형제 사이에 무엇이든 해야 하지 않느냐는 의무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형제니까 결혼식에 초대를 해야 한다든지, 형제니까 결혼식에 가야 한다든지, 이런 의무를 생각하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지금은 각자 독립된 인격이기 때문에 초대를 받으면 갈 수도 있고, 안 갈 수도 있습니다. 또 상대 역시 초대를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는 거예요. 이렇게 가볍게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저도 가볍게 생각을 하려고 했는데, 자꾸 마음이 무거워지곤 합니다. 제가 장남인데 결혼식에는 저만 초대를 안 한 것이 아니고, 가족 모두를 초대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만 결혼식에 다녀오셨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무리 내 동생이지만 조금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웬만하면 잘 지내는 게 좋다고 생각은 하지만, 동생이 계속 거부를 하니까 저도 정이 많이 떨어지고 데면데면 하려고 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에 부담도 됩니다.”

“지금 질문자가 형이라는 걸 쥐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형이라는 걸 쥐고 있기 때문에 이미 스무 살이 넘어서 각자가 독립된 인격이 되었는데도 아직도 ‘내가 형이니까 네가 먼저 와서 나한테 사과해라’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동시에 ‘내가 형이니까 동생을 잘 건사해야 하는데’ 하는 생각도 하는 겁니다. 한편으로는 괘씸한 동생한테 내가 먼저 손을 내밀기에는 체면이 안 선다고 생각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동생을 장남인 내가 잘 건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자기 내부에 이런 모순이 생겨서 일어나는 번뇌입니다. 형이니까 대접 받아야 한다는 생각도 버리고, 내가 동생을 건사해야 한다는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그냥 아는 사람을 만나듯이 대하면 돼요. 그리고 상대가 싫다고 하면 안 만나면 됩니다.

옛날에는 남자가 여자를 좋아해서 따라다닐 때, 상대방이 싫다고 해도 계속 따라다니는 것을 ‘열 번 찍어서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하는 말로 합리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상대방 집 앞에 가서 무릎 꿇고 고백하면 진실한 사랑이라고 했는데, 요즘은 그렇게 행동하면 성추행이 되거나 스토킹이 됩니다. 왜냐하면 상대가 싫다고 하는데 계속 접근하는 걸 법으로 금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부모라고 해도 자식을 때리면 폭력에 해당합니다. 아무리 부모라고 해도 자식이 싫다고 하는데 계속 연락을 해서 자식이 그걸 법적으로 고발하면 모두 접근 금지 명령이 내려집니다. 설령 부부라고 하더라도 상대가 싫다고 하는데 부부 관계를 요구하면 성추행이나 성폭행에 들어갑니다. 세상이 옛날과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러니 질문자도 ‘내가 형이다’ 하는 지나친 의무감이나 자존심을 내세울 필요가 없습니다. 본인은 형이라는 인정을 받고 싶겠지만 요즘 동생들은 아무도 형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요즘은 회사에서도 상사가 되면 목에 힘을 주려고 하지만, 요즘 젊은 사람들은 상사라고 해도 별로 신경을 안 씁니다. 지금 질문자는 그런 자의식 때문에 번뇌가 생기는 거예요. 주말에도 동생을 만나면 그냥 이웃집에 사는 청년을 만나듯이 먼저 인사하세요. ‘내가 형이니까 동생이 먼저 와서 인사를 해야 한다’ 자꾸 이런 생각을 하지 말고요.

사람들은 ‘아이가 어른을 보고도 인사를 안 한다’ 이렇게 말을 하는데, 왜 꼭 어린아이가 어른한테 와서 인사를 해야 합니까? 어른이 아이한테 먼저 인사를 하면 안 되나요? 사실 이런 것도 모두 나이를 갖고 부리는 기득권입니다. 그냥 아이가 보이면 먼저 가서 ‘잘 있었니?’ 하고 인사하면 어때요?

그러니 질문자도 동생을 보면 먼저 ‘잘 지내니?’ 인사하고, 헤어질 때는 ‘잘 가라’ 이렇게 인사를 하면 됩니다. 상대방이 반응을 보이든 안 보이든, 그걸로 기분 나빠할 이유가 없습니다. 내가 바다를 보고 ‘바다가 참 좋다’ 하면 내가 기분이 좋고, 산을 보고 ‘산이 참 좋다’ 하면 내가 기분이 좋습니다. 꽃이나 단풍을 보고 ‘예쁘다’ 하면 꽃은 대답을 안 합니다. 꽃을 예뻐하는 내가 기분이 좋을 뿐입니다. 그런 것처럼 동생을 만나면 내가 먼저 인사를 하면 되지, 자꾸 내가 형으로서 관계를 풀겠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관계를 풀겠다는 내 생각은 내 욕구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관계를 풀겠다는 생각도 하지 말고, 동생이 괘씸하니까 안 만나겠다는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두 생각을 다 버려야 해요.

동생이 나에게 다가오거나 대화를 요청하는 것은 동생의 문제이고, 나는 형제로서 대화하고 싶으면 하면 되고, 형으로서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하면 됩니다. 다만 동생이 그 대화에 응할지 안 할지는 그의 자유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별 문제가 없습니다. ‘형이 이야기를 하는데도 어떻게 동생인 네가 대답을 안 하냐’ 이런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동생이 나를 싫어하든 말든 나는 나대로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됩니다. 그걸 받아들이고 안 받아들이고는 상대방의 몫이에요. 그런데도 자꾸 ‘내가 형이다’ 하면서 강압을 하니까 동생은 그게 싫은 겁니다. 요즘 시대에 자꾸 그렇게 행동하니까 동생이 형을 볼 때는 ‘답답한 사람이다’, ‘꼰대다’, ‘형이라고 폼만 잡는다’ 이런 선입견이 생기는 거예요. 자꾸 똑같은 이야기를 해봐야 별 도움이 안 됩니다.

또 동생의 입장에서는 트라우마가 생겼을 수 있습니다. 옛날에 한 대 맞아서 기분이 나빴던 기억에 사로잡혀 있을 수가 있어요. 오히려 문제를 풀려면 그런 감정을 풀어줘야 합니다. 대신 내가 사과한다고 해서 동생이 용서해 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용서를 하든 안 하든 그것은 동생의 인생입니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는 ‘그때 때리면 안 되는 거였는데 때렸으니 미안하다’ 하고 사과하는 거예요.

옛날에는 부모가 자식을 때리고, 선생이 학생을 때리고, 형이 동생을 때리고, 선배가 후배를 때리고, 주인이 종을 때리고, 남편이 아내를 때리고, 이런 모습이 자연스러운 사회 현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닙니다. 회사 사장이 종업원을 때려도 안 되고, 선생이 학생을 때려도 안 되고, 부모가 자식을 때려도 안 되고, 형이 동생을 때려도 안 되고, 선배가 후배를 때려도 안 됩니다. 심지어 군대에서도 그런 행동은 못하도록 되어 있어요. 그만큼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상대가 싫다고 하는데 접근을 하는 것은 상대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입니다. 요즘은 그런 행위에 대해 접근 금지 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이런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그에 맞춰서 살아야 합니다. 그걸 모르고 자꾸 옛날이야기를 하면 꼰대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어요. 아직 젊은 사람이 벌써부터 꼰대 소리를 들으면 어떡해요?

그러니 가볍게 마음의 문을 열고 지내보세요. ‘내가 동생을 챙기고 건사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동생과의 관계는 만나도 되고, 안 만나도 됩니다. 연락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됩니다. 이렇게 자유롭게 생각을 하세요. 꼭 관계를 푼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는 내가 할 도리만 한다’ 이렇게 가볍게 생각하시면 좋겠어요. 어머니가 사이좋게 지내라고 하면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부족해서 생긴 일이니까 어머니는 너무 마음 상해 하지 마세요. 시간이 흐르면 해결이 될 겁니다. 기다려 주세요.’

나는 노력하지만 동생이 응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어요. 그런 이야기를 해봐야 어머니가 어떡하겠어요? 어머니가 동생을 설득할 수도 없잖아요.

‘어머니, 죄송합니다. 잘 지내면 좋겠는데, 아직 잘 안 됩니다. 제가 부족해서 그런 거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이렇게 가볍게 이야기하는 게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제가 형이라는 것에 대해 집착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장남이니까 관계를 내가 풀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풀려고 하다 보니까 저도 마음이 많이 무거워졌던 것 같습니다.”

내일은 아침 6시 30분에 숙소에서 출발하여 파로 공항으로 이동한 후 부탄을 출발하여 방콕 공항에 도착한 후 다음날 새벽에 한국 인천공항으로 들어갈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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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오늘도 감사합니다.()

2024-05-14 10:43:11

드림하이

“그냥 데면데면 하고 지내도 됩니다. 스무 살이 넘은 형과 동생은 과거에 한 집에서 한 부모 밑에서 가족으로 자란 기억이 있을 뿐입니다. 그 기억에 연연해서 그렇지 실제로 스무 살이 넘으면 모두가 독립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남남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사이가 좋으면 자주 만나면 되고, 사이가 안 좋으면 안 만나도 됩니다."

2024-04-04 18:23:28

CACTUS

꼭 내 가 해야 한다는 도리가 집착이라고는 생각 못했네요.
감사합니다.

2024-04-03 23: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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