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3.7 필리핀 민다나오 답사 3일째 (빵아라이-아얀 마을, 미타뿔 마을)
“ADHD를 가진 아이를 어떻게 돌봐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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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필리핀 민다나오 답사 3일째입니다. 오늘은 원주민 마을 두 곳을 방문하여 학교 상태를 점검하고 마을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아직 컴컴한 새벽 4시 55분, 스님과 JTS 활동가들은 조용히 숙소를 나와 차를 타고 키타오타오군으로 출발했습니다.

가는 길에 아침 일찍 문을 연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오늘은 두 발로 강을 건너고 산을 넘어서 오지 마을에 가야 하기 때문에 아침을 든든히 먹었습니다.

차를 타고 2시간 30분을 달려 7시 30분에 디공안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이 오전에 가 볼 마을에서 차를 세워 놓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입니다. 차를 세워 놓고 장갑을 끼고 물병을 하나씩 들고 원주민 마을로 출발했습니다. 어제 함께 군수를 만났던 교육청 원주민 담당관과 대외 협력 팀장 및 공무원들과 이 지역의 군인들도 동행했습니다.

디공안 마을을 벗어나자 넓은 강이 나왔습니다. 일행은 운동화와 양말을 벗고 강으로 들어갔습니다. 날이 더워서 물이 시원하게 느껴졌습니다. 뾰족뾰족한 돌을 밟는 느낌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야, 저절로 발 마사지가 되네요.”

넓은 강 너머에는 높은 산이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옥수수 밭과 산 아래 마을을 지나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원주민 담당관의 안내로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을 따라 산을 올랐습니다. 한 발만 잘못 내디뎌도 낭떠러지였습니다. 어느덧 아까 지나왔던 강과 들판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산 위에서 보는 풍경은 산 아래에서 보았던 풍경과 또 다르게 아름다웠습니다.

산 하나를 넘자 큰 산속에 둘러싸인 마을이 보였습니다.

“저곳이 빵아라이-아얀 마을입니다.”

산길을 돌고 돌아 빵아라이-아얀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이 마을에는 마티살록(Matigsalug) 부족이 모여 살고 있었습니다.

학교에는 아이들이 수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 지붕 아래 모든 학생들이 함께 수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을 본 아이들이 축복을 받기 위해 달려 나와 손을 내밀었습니다. 스님은 환하게 웃으며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이마에 스님의 손을 댄 후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JTS 일행이 모두 도착하자 다투(Datu, 촌장)가 닭을 들고 나와 전통적인 환영 의식을 시작했습니다. 손님을 환영하고 축복하기 위해 닭을 제물로 바치고 그 피를 마을의 중요한 장소나 의식을 진행하는 사람들에게 뿌린다고 했습니다. 닭의 피가 악령을 쫓아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스님은 정중하게 닭을 죽이지 않고 의식을 진행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다투는 요청을 받아 살아 있는 닭을 들고 열정적인 목소리로 축복을 해주었습니다.

의식을 마치고 다투가 스님에게 한 말씀을 요청했습니다. 학교에 마을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습니다. 스님이 한 마디를 하면 이원주 님이 영어로 통역을 하고, 학교 선생님이 영어를 원주민어로 통역해 주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왔습니다. 이렇게 갑자기 방문했는데 전통적인 방식으로 따뜻하게 환영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전통을 지키는 것 자체가 큰 자부심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제가 속한 곳은 살생을 금지하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전통을 모두 수용하지 못한 점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이곳에서 약 60명의 어린이들이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공부보다 일을 하는 게 더 나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는 다양한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무엇을 하든 공부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일한다 하더라도, 생활 수준이 갑자기 좋아지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교육을 받고, 한 세대가 지나면 여러분의 생활이 지금보다 훨씬 개선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의 교육에 투자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어릴 때 이와 같은 시골에서 자랐습니다. 제 아버지께서는 학교에서 공부하는 걸 반대하셨어요. ‘공부해 봐야 돈이 되나, 밥이 되나?’라고 말씀하셨지만, 제가 공부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이 공부해야만 여러분의 미래에 희망이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선생님이 있기 때문에 수업을 할 수는 있지만, 현재 교실 상태가 너무 열악합니다. 아이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교실을 개선해 보려고 합니다. 저희는 여러분에게 학교 건물을 단순히 지어주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모두와 함께 짓고자 합니다. 따라서 여러분 모두의 참여가 필요합니다. 감사합니다.”

스님이 한 마디를 할 때마다 주민들은 박수를 쳤습니다. 스님의 발언에 이어 다투도 인사말을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희는 진심으로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우리 주민들은 여러분이 우리 마을에 방문해 주셔서 매우 행복합니다. 처음 이 마을에 살기 시작했을 때 모든 주민들은 언젠가 이곳에 학교를 만들자고 꿈꾸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자녀들이 우리처럼 교육 받지 못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희들은 십시일반 정성을 모아 이곳에 작은 학교를 지었습니다. 그렇지만 많이 허술합니다. 학교를 짓는 데에 필요한 자재는 저희들이 옮기겠습니다. 한국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분들이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러분이 한국까지 안전하게 돌아가시고 신께서 축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다투의 환영사를 듣고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JTS 일행을 흥미롭게 구경했습니다. 스님과 JTS 활동가, 교육청 관계자, 학교 선생님은 어떻게 학교를 증축하면 좋을지 논의했습니다.

ㄱ자로 학교를 증축하고 총 네 칸의 교실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시멘트를 운반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에 시멘트와 목재를 혼합한 방식으로 학교를 짓기로 했습니다.

학교 뒤편 언덕에서는 어린아이들이 활기차게 놀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커다란 바나나 잎을 타고 까르르 웃으며 언덕을 내달렸습니다. 또 나무 아래로 길게 늘어진 줄기를 꼭 붙잡고 공중으로 날아간 후 다시 땅으로 돌아오는 놀이를 했습니다. 놀이터나 장난감이 없어도 아이들은 충분히 행복해 보였습니다.

논의를 마치자 마을 사람들은 삶은 고구마, 땅콩, 옥수수, 카사바, 바나나를 내주었습니다. 소박하지만 마을에서는 가장 귀한 음식입니다.

감사히 먹은 후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갔습니다. 햇살이 뜨거워져 땀이 줄줄 흘러내렸습니다. 가끔씩 부는 바람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습니다.

10시 40분에 디공안에 도착해 다음 마을로 출발했습니다. 다음 마을 역시 산속에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경사가 더 심하다고 했습니다. JTS 활동가들은 스님의 건강을 고려해 오토바이로 가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인근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오토바이를 타고 마뚜뻬 마을로 출발했습니다. 뒤에 한 사람을 더 태우거나 오토바이 옆에 나무판자를 대고 세 사람씩 더 태웠습니다.

그러나 오토바이로 가는 길도 쉬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평탄한 길은 없었습니다. 돌과 돌 사이를 지나고, 오르막길을 오르고, 개울을 열두 번도 넘게 건넜습니다.

약 한 시간을 달려 12시가 다 되어 미따뿔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전통의상을 입은 마을 아이들이 전통 춤을 보여주며 일행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따뜻한 환영을 받은 후 일행은 먼저 학교로 가보았습니다. 나무로 지은 건물이 하나 있었습니다. 학교 뒤로 공터가 있었습니다. 지금 있는 학교는 바닥을 콘크리트로 보수해서 유치원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뒤편에 교실 네 칸이 있는 건물을 짓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땅이 경사가 져서 시멘트로 기둥을 세우고 수평을 잡아 건물을 짓기로 했습니다. 이곳 역시 자재 운반이 만만찮아 보였습니다.

학교를 둘러보고 오니 마을 사람들이 환영 의식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다투가 닭으로 JTS 일행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이번에도 마을에 요청해 닭을 죽이지 않고 의식을 진행했습니다.

의식이 끝나고 마을 주민들이 스님에게 한 말씀을 요청했습니다.

“여러분의 따뜻한 환영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곳에 오는 길을 보니, 길이 멀고 험해서 여러모로 불편함을 겪으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을에 아이들이 많은데 학교 시설이 부족하네요. 우리가 손을 잡고 함께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만들어 보면 좋겠습니다.

JTS와 지역 정부, 교육청 그리고 여러분의 힘을 모아 아이들이 더 나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교실을 만들고자 합니다. 자재를 운반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여러분이 협력해서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아이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봉사해 주실 수 있는 분이 있는지 묻자 너도 나도 손을 들었습니다.

환영 의식을 마치고 마을 주민들이 준비해 준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삶은 고구마와 옥수수, 바나나에 쌀밥과 생선, 고기반찬도 있었습니다. 이 마을에서는 구하기 어려운 재료들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먹을 수 있을 만큼 음식의 양도 넉넉했습니다. 손님들이 먼저 먹고 가면 주민들이 나누어 먹기 위해 충분히 준비했다고 했습니다.

스님은 식사를 준비하는 데에 얼마나 들었는지 물어보고 더 넉넉하게 보시금을 드렸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마을 사람들과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다시 산길을 올랐습니다. 이번에는 오토바이를 타지 않고 걸어서 갔습니다.

땀이 비 오듯 흘렀습니다. 산을 오르고 내리기를 여러 차례 반복해 한 시간 만에 라보론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서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JTS 활동가들은 내일까지 답사를 하지만, 스님은 오늘이 마지막입니다. 교육청 원주민 담당관 에드윈 님이 스님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 연세가 많으신데 이렇게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JTS 덕분에 원주민 아이들의 삶을 더 많이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이 글을 읽을 수만 있어도 국가의 문제들이 줄어들고 발전할 수 있습니다. 다음에는 더 많은 산길을 준비하겠습니다.”(웃음)

에드윈 님은 원주민 출신으로 JTS의 취지를 정확히 이해하고 정말 오지에 있는 원주민 마을들을 추천해 주었습니다. 스님 역시 에드윈 님에게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계속 열악한 지역을 찾아내 주시면 뭐든지 지원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스님, 한국까지 안전하게 돌아가세요. 다음에도 꼭 또 오세요.”

스님은 교육청 관계자에게는 장애 아동을 위한 교실이 필요한 곳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라보론 마을에서 조금 더 걷자 도로가 나왔습니다.

답사에 동행했던 현지인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3일 동안 같이 답사를 했지만 고생을 많이 해서인지 정이 많이 들었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차를 타고 발렌시아에 있는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땀을 씻어내고 공항으로 출발하기 전에 필리핀 JTS에서 봉사 활동을 했던 제시 님이 찾아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제시 님은 은퇴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은퇴 후에 JTS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해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이제 정말 헤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수고한 활동가들과 함께 숙소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5시 30분에 라귄딩안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휴가 잘 보내고 갑니다. 마지막까지 수고해 주세요.”

덜컹거리는 차 안에서 스님은 피로를 풀었습니다. 창 밖은 곧 붉게 물들더니 어두워졌습니다. 3시간 30분을 달려 9시가 넘어 라귄딩안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밤 10시 40분에 라귄딩안 공항을 출발해 12시 5분에 마닐라 공항 2 터미널에 도착했습니다. 2시 40분에 마닐라에서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하기 때문에 10분 만에 쏜살같이 터미널을 나왔습니다.

마닐라 공항에는 허춘, 김영미 님이 나와 있었습니다. 2 터미널에서 3 터미널로 가야 하는데 가는 길이 멀어서 차로 태워주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고 공항으로 들어가 탑승 수속을 마친 후 새벽 2시가 넘어 인천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앉자마자 비행기가 출발하기도 전에 잠이 들었습니다. 2시 40분에 출발하기로 한 비행기는 연발하여 새벽 4시가 넘어 이륙했습니다.

내일은 밤새 비행기를 타고 오전 8시 40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정토회관으로 이동하여 정비하는 시간을 가진 후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주 금요 즉문즉설 강연에서 질문자와 스님이 나눈 대화 내용을 전하며 글을 마칩니다.

ADHD를 가진 아이를 어떻게 돌봐야 할까요?

“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워킹맘입니다. ADHD(주의력 결핍 과잉행동 장애) 경계 판정을 받은 아들을 키우면서 막막함과 괴로움을 많이 느낍니다. 저는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졸업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천일결사기도를 한 지 만 3년이 됩니다. 스님의 가르침과 정진 덕분에 마음이 많이 편안해지고, 제 삶을 있는 그대로 긍정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힘들고 괴로워질 때가 있습니다. 철없이 행동하고 공부도 안 하며 무기력해 보이는 고등학생 아들을 보면 요즘도 가끔 잔소리를 하게 되고 실망을 느끼게 됩니다. 아이를 병원에 데리고 다니는 것도 힘들고 지칩니다. 나중에 아이가 잘 커서 독립을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됩니다. 제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아들을 키우고 수행을 해나가야 할까요?”

“질문자는 수행해서 자신이 좋아졌다고 말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아이가 환자라는 것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 아이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환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래도 그 아이 나름대로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하지만 질문자는 내심 아이가 다른 아이처럼 행동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현재 아이의 모습이 불만스럽기 때문에 감정이 조금 가라앉았다가도 어느 순간 아이에 대한 불만의 감정이 튀어나오는 겁니다. 먼저 아이가 환자라는 것을 질문자가 받아들여야 합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자식을 환자로 받아들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차라리 눈에 보이는 신체적인 장애가 있다면 받아들이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정신적인 질환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환자로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부모는 은연중에 ‘우리 아이가 조금만 정신을 차려서 열심히 살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아이가 할 수 없는 것을 끝없이 기대하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부모의 입장에서는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이지만 아이의 입장에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것을 자꾸 요구하게 되면 아이는 심리적으로 더욱 위축되고, 나중에는 부모에 대해 저항감이 생기거나 자존감이 낮아지는 문제가 생깁니다.

정신 질환이 없는 사람을 100퍼센트라고 가정할 때, 우리 아이는 한 80퍼센트 정도 사회적 활동이 가능한 상태라고 인정해야 합니다. 아이를 보는 기준을 100퍼센트가 아닌 80퍼센트 정도로 가져야 합니다. ‘그래도 제때 일어나서 밥을 먹고 학교에도 간다’ 이렇게 아이가 할 수 있는 행동 중에서 긍정적인 모습을 찾아내야 합니다. 요즘 아이들 중에는 방에서 나오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학교를 가지 않거나 인터넷 세상에만 빠져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도 합니다. 증상이 더 심해지면 주변인들에게 폭력성까지 드러내기도 합니다. 다른 관점으로 보면 아이의 증상이 크게 심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질문자가 희망을 품게 되는 것입니다. 질문자가 볼 때는 아이가 조금만 정신을 차리면 질문자가 바라는 대로 될 것 같지만 아이는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마치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가 벌떡 일어서서 걷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가 병원에서 ADHD 경계 판정을 받았다고 하니 그것을 감안하고 아이를 봐야 합니다.

아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격려와 지지를 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이가 방에만 틀어박혀 있다면 ‘밖으로 쏘다니면서 사고를 안 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라고 생각하고, 학교를 잘 다닌다면 ‘학교만 가줘도 다행이다’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아이가 교과 성적이 낮아서 위축감을 느낀다면 부모는 ‘괜찮아, 공부가 전부는 아니야, 넌 할 수 있어!’라고 격려해줘야 합니다. 공부를 잘하게 되어 1등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든 행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아이가 속상해서 의기소침해질 때 질문자는 ‘그 정도만 해도 괜찮아. 어떤 상황이든 엄마는 너를 아끼고 사랑할 거야’라고 지지해주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아이가 무조건 잘한다고 치켜세워서는 안 됩니다. 너무 과하게 칭찬하면 아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자기 모습과 비교하면서 오히려 위축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적절한 수준에서 아이에게 격려와 칭찬의 말을 해준다면 현재보다 아이의 상태가 좋아질 수 있고, 질문자도 행복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아이에게 많은 격려와 지지를 해주며 양육해도 사회에서 적응을 잘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직접 낳아서 키운 엄마부터 아이를 문제시한다면 그 아이가 사회에서 잘 적응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아이는 엄마에 대해 ‘항상 나를 사랑하고 격려해 주신다’는 믿음이 있을 때, 인생을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습니다. 아무리 밖에서 힘든 일을 겪어도 언제든지 따뜻한 엄마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엄마가 아이를 자꾸 문제시하거나 내친다면 아이는 밖으로만 돌게 되어 어려운 상황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를 과잉보호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밥을 안 먹는다고 해서 아이를 따라다니면서 밥을 떠먹이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밥을 안 먹는다고 아이에게 짜증을 내서도 안 됩니다. 식사 때가 되었음을 알려서 아이가 밥을 먹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먹지 않으면 그냥 치우면 됩니다. 이렇게 상식적인 수준에서 판단해서 양육하되 아이에게 지나친 기대를 하면 안 됩니다.

‘우리 아이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아이는 잘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잘 살겠다는 기도를 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잘 살 수도 있고, 못 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이는 문제가 없다, 지금도 잘 살고 있다’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질문자의 생각에는 기도문이 현실과 잘 맞지 않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질문자의 기대에 못 미쳐서 일어나는 생각일 뿐입니다. 아이에 대한 기대가 크면 아이를 문제시하기 때문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기대를 낮추면 아이는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자신의 기대보다 못한 것일 뿐입니다.

남편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도 평범하게 잘 사는 사람인데 내가 남편에게 바라는 기대에는 못 미치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나의 기대를 낮추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기대가 크면 자꾸 잔소리를 하게 되고, 부부가 서로에게 기대가 크면 갈등을 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말씀대로 아들에 대해서 기대를 낮추겠습니다. 욕심을 버리고 섣부른 희망을 갖지 않겠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정진해서 마음을 비우도록 하겠습니다”

"욕심을 버린다거나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아이가 처한 현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질문자가 아이에 대한 기대를 일부러 낮추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아이의 처지가 그 정도인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달리기에서 다른 아이들은 100m를 12초에 달릴 수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내 아이는 20초로 달립니다. 그러면 내 아이의 체력을 그 정도로 인정해야 합니다. 개선한다고 하면 1초나 2초 정도를 줄이는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가장 빨리 달리는 아이를 기준으로 삼으면 12초에 달리지 못하는 우리 아이는 영원히 문제가 있는 아이가 되는 것입니다. 아이의 상태를 계속 문제 삼으면 질문자도 힘들고 아이도 힘듭니다. 그러면 부모와 자식 간에 서로 괴롭히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것은 전생의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니고, 사주팔자에 정해진 것도 아닙니다. 인연의 과보를 몰라서 생기는 어리석음의 결과입니다.

질문자의 기대와는 맞지 않을 수 있지만 지금 그 아이의 처지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잘하고 있다!’ 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면 우선 질문자의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그러면 아이도 엄마로부터 편안한 기운을 받게 됩니다. 결국은 엄마와 아이가 둘 다 좋아질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전체댓글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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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오늘도 감사합니다.()

2024-04-03 18:12:55

드림하이

아이가 속상해서 의기소침해질 때 질문자는 ‘그 정도만 해도 괜찮아. 어떤 상황이든 엄마는 너를 아끼고 사랑할 거야’라고 지지해주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아이가 무조건 잘한다고 치켜세워서는 안 됩니다. 너무 과하게 칭찬하면 아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자기 모습과 비교하면서 오히려 위축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

2024-03-28 02:15:02

세등명

지난달 ADHD검사에서 아이의 충동성이 높게 나와 걱정도 많고 아는게 없어 막막하기도 했습니다.
귀한 법문 감사합니다.

2024-03-22 02: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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