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거사님들과 함께 울력을 하기로 한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해가 뜨자 울력할 준비를 했습니다. 작업복을 갈아입고 행자들과 미리 낫과 톱을 갈아놓았습니다.
오전 9시가 되자 대구경북 지부, 부산울산 지부, 경남 지부에서 거사님들 20명이 도착했습니다. 거사님들은 두북 수련원 운동장에 있는 나무들과 죽림정사에 있는 나무들을 가지치기할 때도 큰 역할을 해주신 분들입니다. 힘을 많이 써야 하거나 전문 기술이 필요할 때마다 시간을 내어 봉사를 해주고 있습니다.
거사님들은 둥글게 선 채로 스님에게 삼배로 인사를 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인사말과 함께 오늘 해야 할 일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추운 날씨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점심은 라면 한 그릇이면 되겠죠? 냉이를 캐서 맛있게 끓여 드릴게요. (웃음)
산 위에 30년 전에 밭이었던 곳이 있는데 잡목이 무성하게 자라 있어요. 아카시아 나무와 덩굴이 가득한데 톱과 낫으로 모두 쳐내는 일을 해주시면 됩니다. 다 걷어내고 4월에 과일나무를 심으려고 해요. 점심 먹고 오후에도 일을 해야 하니까 오전에 너무 무리하지 않도록 해주세요. 스님이 옆에 있으면 자꾸 무리해서 일을 하게 된다고 하니까 저도 한쪽에서 조용히 일을 하겠습니다.”
이어서 일할 때 집중 과제로 삼을 명심문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일은 이치에 맞게 합니다.”
명심문을 세 번 외치고 산 위로 올라갔습니다. 스님이 멈춰 선 곳에 덩굴이 무성했습니다. 어디까지가 밭이고, 어디까지가 밭둑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여기에 각자 톱이나 낫을 하나씩 들고 뿔뿔이 흩어져서 작업을 하겠습니다.”
아침 기온이 영하 6도까지 떨어지면서 강추위가 찾아왔습니다. 다들 옷과 장갑을 따뜻하게 입고 울력을 시작했습니다.
산 위로 찬바람이 쌩쌩 불었지만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습니다. 가시덤불이 옷 속을 뚫고 얼굴을 할퀴었습니다. 거사님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덤불을 베어나갔습니다.
10시 30분이 되어 잠시 쉬었습니다. 작업은 고되지만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휴식을 마치고 다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나무를 휘감고 있는 칡넝쿨을 힘껏 잡아당겨 낫으로 베어낸 후 무성한 줄기들을 베어냈습니다. 키가 무척 큰 나무는 아래쪽에서 넝쿨을 벴습니다.
세 시간의 작업 끝에 가시덩굴로 무성하던 밭 두 개가 원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거사님들 솜씨가 참 좋네요. 시야가 확 트였어요. 수고했어요! 점심 먹으러 내려갑시다.”
인도에서 온 보광법사님은 오전 내내 봄나물을 뜯었습니다. 쑥, 달래, 냉이, 민들레가 가방 속에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겨울을 견디고 땅 위로 나온 냉이는 향기도 좋고, 뿌리도 굵었습니다.
점심식사로 나온 라면에 냉이가 들어가 있었습니다. 얼큰한 국물에 은은한 봄향기가 배어있었습니다.
맛있게 라면을 먹고 나서 볕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힘이 있을 때 빨리 은퇴를 해서 봉사하러 오세요. 거사님들이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이번에 부탄을 답사해 보니까 가장 큰 문제가, 첫째, 야생 동물로부터 농작물을 보호하기 위해 울타리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둘째, 산속에 사니까 식수 부족이 심각했어요. 셋째, 부엌을 개선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거사님들 중에 누가 부뚜막을 잘 만드는 방법을 개발해 주면 좋겠어요. 부탄 주민들은 방 안에서 돌멩이 세 개 놓고 그 위에 솥을 걸고 밥을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방 안이 그을음 때문에 새까맣게 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 정짓간이 따로 있어서 거기서만 불을 때었잖아요. 그래서 부탄에도 부뚜막을 화로처럼 만들도록 해서 불을 때도록 해주려고 합니다. 연탄아궁이처럼 만들면 뚜껑을 닫아놓으면 난로가 되고, 솥을 걸면 밥을 해 먹을 수 있거든요. 거기에 연통을 연결해서 집 밖으로 연기가 나가도록 하고요.”
“우리나라처럼 구들장을 놓아서 온돌방을 만들면 안 될까요?”
“그러면 일이 너무 많죠. 추운 지역에는 돈이 좀 들어도 그렇게 하면 좋을 것 같네요. 그런데 제가 답사한 젬강 지역은 인도 국경변에 있는 남쪽 지역이라 얼음이 얼지는 않아요. 그래서 부뚜막을 세 개 정도 샘플로 만들어서 부탄 주민들에게 보여주려고 해요. 본인들이 직접 사용해 보고 나서 가장 적합한 것을 골라서 본인이 제작하도록 하는 거죠.”
거사님들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이야기했습니다.
“로켓 스토브를 대량으로 구입해서 보급하면 어떨까요? 로켓의 원리를 이용해서 만든 스토브가 있어요.”
“황토나 벽돌로 아궁이를 제작하게 하는 것은 어떨까요? 황토와 시멘트를 섞으면 아궁이를 만들기에 더 낫습니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듣고 스님이 대답했습니다.
“구입해서 주는 것은 지속가능할까요? 돈 주고 사서 주는 것은 고장 났을 때 부품을 구할 수가 없잖아요. 제가 생각하는 방식은 재료만 주고, 제작은 주민들이 하도록 하는 겁니다.
솜씨 있는 거사님들이 직접 부탄에 가서 일주일 동안 지내면서 같이 샘플을 만들어야 주민들이 배울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은퇴하기 전에 기술을 전부 배워 두세요. 그래야 저랑 부탄에 가서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죠.”
점심식사를 하고 나서 오후에도 남은 작업을 계속 이어나갔습니다.
밭의 사면과 길에 난 덩굴도 제거했습니다.
두 시간의 작업 끝에 밭이 본래의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수고했어요! 이제 마무리합시다.”
다행히 해가 넘어가기 전에 작업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다 함께 둥글게 서서 마음 나누기를 했습니다. 한 분씩 돌아가며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밭이 시원해지니까 제 마음도 시원합니다. 하루 종일 잘 놀았습니다.”
“언제 다 끝내나 했는데 함께하는 힘이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나 보다는 둘이 좋고, 둘 보다는 셋이 좋구나 생각했습니다.”
“밭이 훤해져서 여름에 예초하기가 정말 편할 것 같아 기쁩니다.”
“일하면서 맑은 공기를 마셔서 아주 상쾌했습니다.”
“정토회에 나가면 여성들이 늘 많은데, 오늘은 남자들끼리만 일하니까 카타르시스를 느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이 소감을 말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조금씩 일을 해야 하는데, 올해는 해외 일정이 너무 많이 잡혀 있어서 오늘 한꺼번에 밭정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바쁜 가운데 시간 내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도 오랜만에 일을 하니까 힘이 부치네요. 나이가 들었나 봐요. 이 밭에 과일나무가 얼마나 잘 자랄지 모르지만 과일이 열리면 여러분들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마음껏 드십시오.”
다 함께 명심문을 크게 외친 후 울력을 마쳤습니다.
봄이 되면 과일나무에 새싹이 돋아날 것을 생각하니 벌써 마음이 푸근해졌습니다.
거사님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산 너머로 해가 저물었습니다.
저녁에는 1년 만에 귀국한 보광법사님을 위해 간단히 환영모임을 했습니다. 식사 후에 스님은 원고 교정과 여러 가지 업무들을 처리하고 일찍 취침했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11월에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즉문즉설 강연에서 스님과 질문자가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저는 젊었을 때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는 제가 평소에 원하였던 베짱이의 모습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베짱이로 산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돈은 많이 벌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산 후 지금은 베짱이의 삶처럼 여유를 부리고 있는데도 인생이 별로 재미가 없습니다. 싸울 일이 없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돈 벌 일이 없어서 그런 건지 모르지만, 왜 젊었을 때만큼 재미가 없어졌는지 알 수가 없어서 궁금한 마음에 질문을 드립니다.”
“질문 내용을 들어보니까 곧 마약을 하겠네요. (웃음) 그런 심리 상태에서 가장 유혹에 넘어가기 쉬운 것이 마약입니다. 이것저것 다 해 보았는데도 ‘또 재미있는 것이 없을까’ 하는 생각을 자꾸 하면 그럴 가능성까지도 있다는 겁니다.”
“제가 전혀 못하는 것이 노름과 마약입니다.”
“지금은 그런데 앞으로는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거예요.”
“저는 그런 것과는 가까이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이렇게 농담을 하는 이유는 다른 것에 있지 않습니다. 인생을 살 때 재미있는 어떤 것을 자꾸 찾으면 안 된다는 말씀을 드리려고 농담을 한 겁니다.
재미를 계속 찾으면 궁극적인 도착지가 어디가 될까요? 자꾸 쾌락을 추구하게 되면 종착역은 마약입니다. 처음에는 ‘옷을 잘 입는다’, ‘차를 좋은 걸로 산다’ 이렇게 기호품과 사치품을 소비하면서 즐거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마지막 종착지는 마약에 닿기가 쉽습니다.
질문자를 비난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즐거움을 너무 찾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그냥 ‘괴로움이 없으면 그것이 곧 행복이다’ 이렇게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것이 건강인가요? 사람마다 체형도 다르고, 힘도 다르고, 다 다른데 어떤 게 건강일까요? 아프지 않으면 건강한 겁니다. 100미터 달리기를 몇 초안에 드는 기록을 내어야 된다든지, 턱걸이는 몇 번 해야만 된다든지, 역기를 얼마만큼의 무게로 들어야 된다든지, 이러한 것이 건강의 증표가 될 수 없습니다. 몸의 상태는 다 다르지만 ‘아프지 않으면 건강하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행복이란 괴로움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 질문자의 말을 들어 보면 별로 괴로움이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아무 문제없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꾸 특별히 재미있는 일을 찾게 되면 호강에 받쳐 요강을 깨는 일이 생기는 겁니다. 마약이나 노름처럼 엇길로 뻗어나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마침 마약이나 노름은 안 한다고 하니까 천만다행이다 싶습니다. 그래서 ‘다른 재미있는 것이 없을까?’ 하고 찾으면 위험합니다. 그러니 ‘괴롭지 않으면 다행이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질문자는 특별하게 믿고 있는 종교가 있습니까?”
“저는 천주교 신자입니다.”
“그렇다면 감사기도를 하셔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 덕분에 저는 큰 어려움 없이 잘 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감사기도를 하고, 그다음에는 은혜받은 것을 주변 이웃에게 베풀어야 해요. 큰돈을 기부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작은 봉사를 하든지, 작은 기부를 하든지 해서 베풀면서 살아야 합니다. 적절하게 베풀면서 사는 삶은 현재 나의 행복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는 방법입니다. 또한 꾸준히 베푸는 행위는 자기가 가진 재정을 유지시키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복을 짓기도 하고, 복을 까먹기도 합니다. 그래서 첫째,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둘째, 조금 베풀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자세를 가지게 되면 삶의 만족도가 점점 높아지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겠습니다.”
내일은 하루 종일 정토회 전법행자대회에 참석한 후 저녁에는 두부를 만들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65
전체 댓글 보기스님의하루 최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