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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스님은 오전 8시에 외국인을 위한 영어 즉문즉설 생방송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2백여 명의 외국인들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사회자가 활기차게 인사를 했습니다.
“Happy New Year, it’s good to have you join us.”
이어서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지난 한 해에 무슨 일이 있었든 지나가 버린 일이니까 잊어버리시고, 새해에는 좀 더 자유롭고 행복한 한 해를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새해를 맞이했지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과 가자 지구 폭격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해가 바뀌어도 인간의 갈등과 고통은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네요. 제가 살고 있는 한반도에도 긴장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새해 첫날부터 남한과 북한이 서로 강경한 말싸움을 하더니 서로 마주 보고 사격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한쪽에서 어떤 일로 화가 나서 험한 말을 하면 다른 쪽에서는 맞대응을 하지 말아야 하는데, 혹시 질까 봐 험한 말로 맞대응을 하기 때문에 싸움이 확대되는 것입니다. 상대가 화를 낼 때 자리를 피하는 것을 비겁하다거나 굴복한다고 여기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자리를 피하는 이유는 비겁하거나 굴복해서가 아니라 싸움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개인 간의 관계에서 한쪽이 화를 내면 자리를 피하는 것이 현명한 행동입니다.”
다음은 스님이 지난 11월에 막사이사이상 수상식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온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중동과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의 참혹함이 끝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이 세상에 착한 전쟁은 없다’는 스님의 기조연설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다음은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중 한 명은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며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I lost my mother about 2 weeks ago. We've been living apart. I moved to New York about 30 years ago to go to school and my family never left South Korea. My mother lived alone in South Korea for the last 15 years and I live in New York. But we're very close, we FaceTime almost every day. She used to visit me every year for months. She came to visit me this summer, too.
She was healthy but all of a sudden her health became very critical in such a short time so I came back here in early November and she was already in a very critical condition so I lost her about two weeks ago. Now I just keep blaming myself for everything. I should have come here two weeks earlier, I really think she would have been alive and she would have been fine because it was just a matter of time. But regardless, she’s gone and how am I going to take this? I don't know how to live with it.
My second question is that there are legal things I need to take care of. I don't know if I'll stay until next month for sure. At first I thought it would be better for me to stay here until I got all the legal paperwork done, but now I'm thinking that maybe at some point it would be better for me to go back and do it from the States, getting back to normal life and deal with it remotely hiring a lawyer here and come back when I need to. Those are my two questions. Thank you very much.”
(저는 2주 전에 어머니를 여의었습니다. 저희는 떨어져 살았어요. 저는 약 30년 전에 학교를 다니기 위해 뉴욕에 갔고, 가족들은 한국을 떠난 적이 없습니다. 어머니는 지난 15년 동안 한국에서 혼자 사셨고 저는 뉴욕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거의 매일 화상통화를 할 정도로 매우 가깝게 지냈습니다. 어머니는 매년 몇 달씩 저를 방문하시곤 했어요. 이번 여름에도 저를 보러 오셨습니다.
어머니는 건강했지만 갑자기 짧은 시간에 건강이 매우 위독해져서 제가 11월 초에 이곳으로 돌아왔을 땐 이미 매우 위독한 상태여서 약 2주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저는 모든 것을 제 탓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2주만 더 일찍 왔어도 살아계셨을 것이고, 시간문제였기 때문에 괜찮으셨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어쨌든 엄마는 떠났고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두 번째 질문은 제가 처리해야 할 법적인 문제에 관한 것입니다. 다음 달까지 머물 수 있을지 확실히 잘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법적 서류 작업을 마칠 때까지 여기에 머무르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조만간 미국에 돌아가서 정상 생활로 돌아가 여기에서 변호사를 고용해서 원격으로 처리하고 필요할 때 돌아오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가진 두 가지 질문입니다. 감사합니다.)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아쉬움과 슬픔이 매우 클 것입니다. 먼저 위로를 드립니다. 어제 뉴스에서 자기가 키우던 애완용 강아지가 죽었다고 슬퍼서 약 1억 원을 들여 복제 강아지를 만들었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강아지 한 마리도 애착을 가지게 되면 슬픔이 매우 큽니다. 뿐만 아니라 그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서 어떠한 대가도 치르겠다고 하는 것이 현실이에요.
이 슬픔은 어머니라서 생겼다기보다는 내가 그만큼 어머니에 대한 애착이 강하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애완용 동물에게도 집착을 하면 큰 슬픔이 오는데 하물며 어머니에 대해서 말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어머니를 지금 되살릴 수 없잖아요. 설령 복제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 모양만 복제를 할 수 있습니다. 복제된 인간은 모양만 어머니와 같은 모양이지 내가 생각하는 어머니는 될 수 없습니다. 육체적인 모습을 제외하고 어머니가 가지고 있는 요소는 갖추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어머니를 닮은 인형과 같습니다.
어머니를 다시 되살린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어렵습니다. 계속 집착해서 어머니를 그리워하면 할수록 죄의식을 갖게 되거나 슬퍼져서 괴로움만 쌓이게 됩니다. 이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첫째, 괴로움에서 벗어나려 하지 말고 괴로움 자체를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방법이 있습니다. 둘째, ‘내가 이렇게 괴로워한다고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하는 관점을 갖는 방법이 있습니다. 내가 괴로워한다고 해서 어머니가 다시 살아 돌아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좋은 곳에 가게 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나를 잘 아는 가족들이 더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사는 사회가 더 좋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괴로워하면서 건강을 해치거나 다른 일도 못 하게 되면, 나에게 남는 이익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런 행동을 계속할 것이냐는 겁니다. ‘아무 쓸모없는 일이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지금 괴로워하는 것을 멈춰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괴로워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질문자는 지금 ‘내가 조금 일찍 왔으면 어머니가 죽지 않았을 것이다’ 하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며칠 더 산다고 해서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앞으로 10년 지난 뒤에 한번 뒤돌아보세요. 어머니가 10월에 돌아가셨는지, 11월에 돌아가셨는지가 큰 문제가 될까요?
첫째,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둘째, 지난 과거가 지금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본인의 아쉬움이 크기 때문에 그걸 합리화하기 위해서 ‘이랬으면 됐을까’, ‘저랬으면 됐을까’ 하는 여러 가지 생각이 자꾸 떠오르는 겁니다. 지금 질문자는 사로잡혀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어머니에 대한 애착이 강했기 때문에 아쉬움도 큰 겁니다. ‘내가 뭔가 했으면 돌아가시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된다는 것은 사로잡혀 있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이런 질문자의 모습을 보고 과연 좋아할까요? 주위에 있는 가족들도 이런 질문자의 모습을 보고 좋아할까요? 이미 일어난 일이니까 이제는 사로잡힘을 내려놓고 마무리를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은 어머니가 유산을 남겼다는 얘기 같네요. 아무런 유산을 남기지 않았으면 법적인 문제가 없습니다. 유산을 남겼다고 하면 그것은 법에 정해진 대로 해결하면 됩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신다면 아버지에게 자녀들의 1.5배가 돌아가고, 자녀들에게 N분의 1씩 돌아가게 됩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시지 않는다면 남은 자녀들에게 각각 N분의 1씩 돌아가게 됩니다. 그건 질문자가 여기에 있든 미국에 있든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가족 간에 합의해서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고 그냥 정해진 대로 나누는 것이 가장 비용을 절약하는 방법입니다. 만약 가족 중에 본인이 남자라서 또는 장자라서 좀 더 유산을 갖겠다고 하면 분쟁이 됩니다. 이 경우는 유산을 조금 더 갖겠다고 하는 이익의 문제이기 때문에 형제간에 싸울 필요는 없고, 변호사를 고용해서 법률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그 문제로 형제간에 다툴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형제간의 우애 문제가 아니고 그냥 이익을 두고 서로 더 많이 가지려고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법률이 정해진 대로 처리하면 됩니다. 평소에 어머니로부터 증여를 많이 받았든, 어머니를 많이 모셨든, 이런 행위와 법률적인 문제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현재 가족으로 남아 있는 형제는 N분의 1씩 똑같이 나누어 갖게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아들을 낳아놓고 집을 나갔다가 30년 후에 죽은 아들의 유산을 받으러 왔다고 합시다. 윤리적으로 생각하면 자격이 없다고 하지만 법률적으로는 자격이 있습니다. 유산은 그전에 무엇을 했는지가 중요하지 않아요. 가족 간에 어떻게 배분되는지 법에 정해져 있습니다. 형제가 유산을 좀 더 가지려고 한다고 해서 기분 나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본인은 더 갖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니까요. 법에 나와 있는 대로 그냥 처리하면 됩니다. 그래서 유산 문제는 질문자가 한국에 있든 미국에 있든 큰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풀 가능성이 있으면 대화를 해보는 게 낫고요. 법률로 해결한다면 한국에 있으나 미국에 있으나 큰 차이가 없습니다. 더 질문이 있습니까?”
“No, I believe that’s it. Thank you so much.”
(아니요, 그게 다인 것 같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슬퍼하세요. 그래서 건강도 좀 나빠져야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이 좀 줄어들지 않을까 싶네요. 바보 같은 짓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하는 것도 괜찮아요. 어머니는 죽기까지 했는데 내가 이렇게 건강하면 안 되잖아요. 많이 아프고 손실도 생겨야 심리적으로 보상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I don't know I'm just trying to get through the day every day so I'm trying not to do anything special. I just have to go with the flow.”
(매일 하루하루를 버텨내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특별한 일을 하지 않고 그냥 흘러가는 대로 따라가려고 해요.)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나도 따라서 죽어야지, 이렇게 생각하고 어머니를 따라서 죽으려고 그래요?”
“No, but I have thought about it. I don't think my mother would be happy, so I'm not going to say the thoughts that come to my mind, but...”
(아니요, 하지만 생각은 해봤어요. 어머니가 기뻐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런 생각을 말하지는 않겠지만…)
“나도 따라 죽는 것을 어머니가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면, 이렇게 괴로워하고 슬퍼하는 것도 어머니가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살아서도 어머니의 말을 안 듣고, 죽어서도 어머니의 말을 안 듣겠다는 것이 되는 겁니다.”
“No, it’s not like that I don’t want to listen to her. It's hard not to be this way.”
(어머니의 말을 듣기 싫어서 그런 게 아니고, 이렇게 하지 않기가 힘듭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어머니의 말을 안 듣는 것 아닙니까? 지금 질문자는 어머니가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잖아요.
‘지금 내가 어떻게 하면 어머니가 기뻐하실까? 장례 치르고 나서 웃으면서 잘 살아가는 게 어머니가 원하는 것이 아닐까? 어머니가 살았을 때는 원하는 대로 못 해줬지만, 죽어서는 어머니가 원하는 대로 한번 해줘야겠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될까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라도 어머니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그대로 하면 효녀가 되잖아요. 돌아가신 뒤에 효녀가 되어보는 건 어때요? 옛날에는 부모를 따라 죽는 것을 효녀라고 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어머니를 따라 나도 같이 죽는 게 효녀일까요? 요즘은 나도 같이 따라 죽으면 정신질환자라고 생각해요. 질문자와 대화를 해보니까 평소에도 질문자는 어머니의 말을 잘 안 들은 것 같아요. 죽은 뒤에도 이렇게 어머니의 말을 안 듣겠다고 하는 것을 보니까 살아서는 더 어머니의 말을 안 들었을 것 같아요. (웃음)
어머니가 기뻐하는 행동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내가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라도 어머니의 마음을 받아서 행복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을 해보면 어떨까요? 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진정으로 효도를 하는 길입니다.”
영어 통역으로 두 명과 대화를 나누다 보니 벌써 마쳐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9시가 넘어서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방송실을 나온 스님은 업무를 보다가 점심 식사를 하고, 12시에 차를 타고 두북 수련원을 출발해 남해로 향했습니다.
최근에 각종 언론에서 많은 펜션이 문을 닫고, 마을마다 빈집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실제로 사람들의 생활상이 어떤지 답사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2시간 30분 동안 차를 타고 달려 남해에 도착해 곳곳을 둘러보고 살펴본 후 저녁 8시에 다시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왔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에는 실내에서 원고 교정과 여러 가지 업무들을 보았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주간반 전법회원 법회를 생방송하고, 오후에는 공동체 지부 공청회에 온라인으로 참석한 후, 저녁에는 저녁반 전법회원 법회를 생방송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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