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1.4 농사일
“일을 잘하면 일이 자꾸 늘어나서 고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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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북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달빛이 스러지고 날이 밝자 스님은 오랜만에 작업복을 입고 텃밭으로 갔습니다. 영하로 떨어진 날씨에 얼고 녹고, 얼고 녹으며 꿋꿋이 견뎌온 배추를 다 수확했습니다.

“창고에 저장해 두고 먹을 거니까 겉잎을 많이 떼지 않아도 돼요.”

스님이 배추를 뽑고 손질을 해서 차곡차곡 쌓아두면 행자님이 배추를 하나씩 신문지로 쌌습니다.

뒷 텃밭에 남은 배추도 다 수확했습니다. 빠르게 몸을 움직여도 손이 얼었습니다. 숨을 내쉴 때마다 뽀얀 입김이 퍼졌습니다.

신문지로 하나하나 포장한 배추는 창고에 차곡차곡 쌓고 부직포로 잘 덮어주었습니다. 남은 겨울 동안 먹을 소중한 양식입니다.

가을에 예쁜 꽃을 피웠던 화분들도 한 군데 모았습니다. 물을 듬뿍 주고 비닐과 부직포를 세 겹 덮었습니다. 그 위에 큰 방수천을 덮은 후 날아가지 않게 통나무와 벽돌을 올려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야 한 겨울에 얼어 죽지 않고 이듬해 또 싹을 틔워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배추를 다 뽑고 다시 빈 땅에 거름을 골고루 뿌려두었습니다. 농사의 마무리는 늘 다음 시작과 맞물려 있습니다.

“가시나무도 좀 정리해야겠어요.”

바빠서 정리하지 못하고 쌓아두었던 가시나무도 일정한 크기로 잘랐습니다.

자른 가시나무로 아궁이에 불을 지폈습니다.

지난가을에 수확해서 널어두었던 무청은 잘 말라있었습니다. 시래기를 포대에 다 담아두려고 했지만, 해가 떠서 물기 없이 바삭바삭했습니다.

“시래기는 오늘 넣으면 다 부서지겠네요. 다른 날 해 뜨기 전에 담아야겠어요.”

오전 내내 울력을 하고 점심시간이 되어 평화재단 기획위원들이 스님을 찾아왔습니다. 신년을 맞아 오늘부터 1박 2일 동안 기획위원들과 숙박 회의를 하기로 했기 때문입니다.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부터 저녁까지 기획위원들과 회의를 하고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달에 금요 즉문즉설 강연에서 있었던 즉문즉설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일을 잘하면 일이 자꾸 늘어나서 고민입니다

“스님께서 예전에 절에서 부목 생활을 하셨을 때 함께 일하던 거지가 똥지게를 20%만 채워서 쉬엄쉬엄 일하는 것을 보고 스님이 질책하니까 그 거지가 ‘막노동은 몸이 생명이고, 쉬는 시간 없이 일하는 걸 사장이 좋아한다’ 하고 대답했다는 일화를 이야기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저는 거지와 반대로 똥지게를 가득 지고 일하다 보니 사장이 좋아하긴 하는데 점점 똥지게를 늘려주고 있어서 어느 순간 ‘그 거지가 지혜로운 건가?’ 하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제가 열심히 일하는 것이 어리석은 행위일까요? 또 제가 앞에서 길을 이렇게 닦아 놓으니 결국 사장님한테만 좋은 시스템을 만들어주는 것 같고, 후배들이 일하기에는 안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까요?”

“지금 질문자가 하는 일이 막노동은 아니잖아요. 그 당시에는 제가 일을 할 때 항상 무리하는 편이었어요. 그래서 그 거지의 행동을 봤을 때 ‘게으름을 피운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지나 놓고 보니까 그 거지의 얘기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그러나 지속해서 일을 하는 것이 건강에도 좋고 남이 보기에도 좋기 때문입니다. 저는 원래 일을 바짝 하고 그다음에 좀 쉬고 이렇게 일을 하는 성격을 갖고 있어요. 거북이형보다는 토끼형에 더 가까운데, 수행을 하면서 조금씩 토끼형에서 거북이형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사람은 어떤 상황에 놓이든지 항상 적응을 하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일을 하는 능력이 100이라면 그 사람이 100의 능력을 발휘할 때 ‘참 일을 잘한다’ 이런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일을 잘한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상태가 일상화되기 때문이에요. 그 사람이 100의 능력으로 일한 만큼 거기에 따라서 보수를 더 주든지, 승진을 시켜주든지 했기 때문에 100의 능력이 일상이 되어버립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은 남편과 아내에 대해서 처음에는 고마워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남편과 아내에게 별로 고마운 마음이 안 들어요. 그게 일상화되어 버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헤어지거나 사라져 버리면 얼마나 필요한 존재였는지 뒤늦게 깨닫고 후회하게 되죠. 제가 아는 분이 남편이 돌아가셨다고 해서 제가 ‘남편 돌아가시고 어때요?’ 하고 물으니 그분이 웃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남편이 없어도 처음에는 크게 슬프지도 않았고 담담했는데, 매주 화요일마다 쓰레기통을 길가로 밀고 가서 내놓을 때마다 남편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였는지 느꼈다고 해요. 왜냐하면 미국은 쓰레기통을 일주일에 한 번씩 꼭 내놓는데 그걸 본인은 한 번도 안 했었고 평생 남편이 해왔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없다는 것을 그때서야 비로소 실감하게 되었다고 해요.

이렇게 우리는 곳곳에서 많은 사람의 보이지 않는 노고 위에서 생활해 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청소부를 하찮게 생각하는데 만약 청소부가 없다면 온 도시가 한 달 이내에 악취로 진동을 할 겁니다. 도지사나 시장이 없어도 한 달 사는 데는 큰 지장이 없을 거예요. 그런데 청소부가 없으면 생활에 큰 불편을 겪게 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잘 모릅니다. 특히 가족 관계는 더하죠. 옆에 있을 때는 ‘없는 게 더 낫겠다’ 이렇게 생각하지만 한번 없어져 보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그제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은 왜 이렇게 무딜까요? 이것이 바로 정신 작용의 성질입니다. 어떤 상황이든 그 상황이 계속되면 무뎌져 버려요. 그래서 질문자가 50의 능력만큼 일을 하게 되면 사장이 그에 따라서 일을 못 한다고 내보내든지, 승진을 안 시키든지, 월급을 낮추든지 할 겁니다. 그런데 질문자가 80의 능력만큼 일을 하게 되면 사장이 처음에는 정말 고맙게 생각하지만, 거기에 대해서 월급을 조금 올려주거나 직위를 하나 올려주면 사장은 할 일을 다 해버린 게 됩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80의 능력만큼 일을 하지 않을 때마다 실망하게 되는 거예요. 이것이 정신 작용의 성질입니다. 그래서 질문자가 열심히 일을 했기 때문에 사장이 더 많은 일을 해줄 것을 요구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입니다. 그것이 정신 작용의 성질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너무 무리하게 일을 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법륜 스님을 너무 좋아해서 ‘법륜 스님하고 상담 한 번만 하면 내 고민이 다 해결될 거야’ 이렇게 생각하고 정말 기뻐하면서 상담을 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막상 자신의 고민이 해결이 안 되면 굉장히 실망하게 됩니다. 그런데 법륜 스님을 한 번도 안 만난 사람이 지나가다가 우연히 즉문즉설을 들으면 ‘우리나라에 저런 분도 있었나?’ 하면서 너무너무 놀랍니다. 왜냐하면 아무런 기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좋아하거나 놀라는 것은 절대적인 실력 때문이 아닙니다. 내가 기대한 것보다 높으면 호의적 반응이 생기고, 내가 기대한 것보다 낮으면 실망이 생기는 거예요. 대통령도 처음에 국민의 지지도가 너무 높으면 나중에 실망하게 되었을 때 지지도가 팍 떨어지게 됩니다. 처음부터 지지도가 낮았다면 그대로 갑니다. 처음부터 지지도가 낮았기 때문에 지지도가 크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처럼 별 기대 없이 길가는 남자를 만나거나 길가는 여자를 만나듯이 그렇게 결혼하면 결혼 이후의 삶이 대부분 무난합니다. 때로는 ‘생각보다 괜찮네?’ 이렇게 생각할 가능성이 높아요. 그런데 돈이 많은지 유명한지 골라서 결혼하면 대부분 오래 못 갑니다. 그 이유는 상대에게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기대한 만큼 상대가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여러분들의 남편이나 아내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원하는 만큼 안 될 뿐이지 그 사람 자체는 문제가 없습니다.

질문자가 열심히 일을 하면 열심히 일한 것에 대한 대가를 사장은 다 지급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질문자에게 특별히 고마워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요. 사장이 나빠서가 아니라 인간의 정신 작용이 그렇다는 겁니다. 그래서 무리하게 일을 하지 말라는 거예요. 무리해서 일을 하면 그때만 좋고, 그 상태가 평균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질문자는 계속 과로하면서 부담을 안고 살아야 합니다. 질문자의 실력이 100이라면 한 70만큼만 적절하게 보여주면 상대가 처음에는 약간 실망할지 모르지만, 그 선에서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래서 조금만 잘해도 ‘어! 잘하네?’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죠.

여러분들이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너무 애를 쓰면 나중에 엄청난 부담이 됩니다. 너무 잘 보이려고 하면 그만큼 과부하가 걸리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돼요. 그래서 너무 잘 보이려고 하지 말고 적절하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면서 ‘상대방이 잘 봐주면 다행이고, 안 봐줘도 그만이다’ 이렇게 생각해야 부담을 좀 덜 느끼고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동료들이나 후배들한테 부담이 되느니 안 되느니 그런 건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질문자의 과민 반응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들은 그들대로 알아서 잘 살아갈 거예요.”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스님의 하루 영상을 볼 때마다 제 질문이 너무 하찮고 어리석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말씀 나눠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내일은 두북 수련원을 찾아온 손님들과 시간을 보낸 후 저녁에는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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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하이

그리고 다른 동료들이나 후배들한테 부담이 되느니 안 되느니 그런 건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질문자의 과민 반응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들은 그들대로 알아서 잘 살아갈 거예요.”

2024-03-23 21:08:01

배병갑

도지사 나 시장이 없어도 한달을 살수 있지만 청소부가 없으면 며칠도 사는게 불편하다. 이래서 스님의 법문은 늘 감탄이 나오게 하면서 신선합니다.

2024-02-13 12:55:51

윤정애

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2024-01-24 10: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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