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두북 수련원을 찾아온 평화재단 기획위원들과 하루 종일 시간을 보냈습니다.
평화재단의 다양한 사업들에 대해 대화를 나눈 후 손님들이 돌아가고 스님은 무청 시래기를 정리했습니다. 지난가을 무를 수확할 때 무청은 따로 모아 바람이 잘 통하고 그늘진 곳에 널어 두었습니다. 두 달 정도 지나자 자연 건조가 잘 되어서 모두 거두어 포대에 담은 후 창고에 보관했습니다. 밭은 빈 땅이 되었지만 창고에는 무, 배추, 시래기로 가득 찼습니다. 올 한 해 동안 밥상을 책임질 소중한 먹거리입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에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5천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새해 들어와 첫 번째 즉문즉설이 되네요. 연말 잘 보내시고 새해는 잘 맞이하셨는지요? 새해 벽두부터 남북의 양 최고 지도자가 거의 막말에 가까운 말들을 하더니 드디어 오늘 서로 힘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한반도에 전쟁의 먹구름이 짙게 끼는 것 같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중동 전쟁을 보면 아무런 죄가 없는 어린이, 여성, 노인들이 수도 없이 죽어가고 있고, 건물은 거의 초토화될 정도로 파괴되고 있습니다. 새해에는 대한민국이 그런 대열에 참여하는 나라가 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어떤 경우에도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사람과 사람, 부부나 친구 간에도 서로 말이 너무 세게 나가다 보면 주먹다짐을 하게 되잖습니까? 그래서 상대가 화가 나서 말을 세게 하거나 칼을 휘두르면 약간 피해 줘야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배를 드러내놓고 ‘그래, 찔러라 찔러!’, ‘네가 찌를 용기나 있어?’ 이런 식으로 대응하기 때문에 결국 칼부림이 일어납니다. 칼을 먼저 휘두른 사람이 물론 잘못을 했지만, 거기에 맞대응을 하게 되면 상해를 입게 됩니다.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상해를 입으면 그만큼 손해입니다. 전쟁에서 누가 이기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전쟁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부상을 당하며 재산을 잃느냐가 더욱 중요합니다.
국가 지도자라면 국민의 재산과 안전을 보호해야 합니다. 물론 어쩔 수 없이 전쟁이 난다면 상대의 어떤 공격에도 충분한 방어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것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평화적으로 관리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때일수록 너무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차분한 마음으로 우리의 안전을 우리가 지켜나가는 관점을 가졌으면 합니다.
2023년은 이런저런 이유로 어렵게 살았다 하더라도 2024년 새해부터는 마음가짐을 좀 단단히 해서 현실의 여러 조건에 휘둘리지 말고 중심을 잡으며 주인 된 자세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사전에 네 명이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어린 시절에 화를 내고 싸우는 가정에서 자랐다며 어떻게 하면 화를 다스리고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참아보려 하지만 감정 조절이 너무 힘듭니다
“기쁨, 슬픔, 화남과 같은 감정 조절이 너무 힘듭니다. 머리로는 지켜보자 참아보자 하지만 오르내리는 감정을 다스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는 어릴 때 어른들이 화를 많이 내며 서로 싸우는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저도 47년을 화내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부정적인 생각과 화나는 감정을 알아차리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바이킹이나 롤러코스터를 탈 때처럼 화가 저도 모르게 올라오면 가라앉기를 기다립니다. 그러고 나면 뒷골이 땅기고, 피곤하고, 안압이 올라오는 등 몸이 너무 아픕니다. 저는 어떻게 연습해야 화도 다스리고 몸도 아프지 않을 수 있을까요?”
“질문자는 어릴 때부터 화를 잘 내는 어른들 속에서 자라서 화를 내는 까르마가 있습니다. 그걸 개선하기는 쉽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성질대로 살면서 그 과보를 받으며 사는 길이 있습니다. 성질대로 살면서 몸도 안 아프고 사람들과 갈등도 없는 길은 없어요. 그건 욕심입니다. 그래서 ‘내 성질대로 살고 그에 따른 손실은 기꺼이 감수하겠다’ 이런 관점으로 살아도 됩니다. 만약 남편이 떠난다면 ‘나같이 성질 많이 내는 여자를 누가 좋아하겠어?’ 하면서 받아들이는 거예요. 아이들이 가출하면 ‘그래, 엄마 성질이 이러니까 아이들이 집을 나갈 수도 있지’ 하면서 과보를 받아들이면 됩니다. 이렇게 가족들이 떠나면 떠나는 대로 살고, 돌아오면 돌아오는 대로 문제 삼지 않고 사는 길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자기 성질대로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손실을 받고 싶지 않다면 내 성질을 개선해야 합니다. 성질은 어릴 때 형성되었기 때문에 개선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화가 나도 손실을 생각해서 참습니다. 그런데 세 번 이상은 참지 못합니다. ‘보자, 보자 하니까!’ 이런 말도 있잖아요? 누군가에게 화가 나도 한두 번은 참다가 세 번째는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이게 세 번씩이나!’ 하면서 터뜨립니다. 화를 반복해서 참다 보면 압력이 쌓여서 결국 터지는 거예요. 화를 내고 나면 또 후회하죠. 이걸 반복하는 게 우리들의 일상입니다.
참는 방법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닙니다. 사람이 자기감정대로 다 표현하면서 살면 주변에 사람이 줄어듭니다. 다른 사람에게 이런 고민을 얘기하면 ‘그래도 네가 좀 참아라, 참는 게 약이다’ 이런 말들을 많이 하죠. 하지만 참으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화를 터뜨리면 손해를 보고 참으면 병이 되는 게 우리의 딜레마예요. 이 문제에 대해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신 분이 부처님입니다. 그 방법은 바로 ‘알아차림’입니다. 화가 나면 ‘화가 나는구나!’ 하고 그냥 알아차리는 거예요. 화를 냈다면 ‘아, 내가 화를 냈구나!’ 하고 알아차립니다. 내가 화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 과보를 기꺼이 받는 겁니다. 화를 냈으면 당연히 그 과보를 받아야 하지 않겠어요? 만약 내가 남의 물건을 훔쳤다면 벌을 받아야겠죠? 이처럼 화를 냈다면 그 과보를 기꺼이 받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화가 올라오는 순간 감지를 하면 ‘화가 올라오는구나!’ 하고 알아차립니다. 화가 날 때 알아차릴 수 있으면 화를 안 내면서 참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면 손해 볼 일도 없고 스트레스받을 일도 없습니다. 이것을 알아차림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나는 화가 나지 않는 사람이 되겠다’ 이런 목표를 세우면 안 됩니다. ‘화를 내지 말아야지’ 하고 결심했는데 화를 내면 후회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화를 내야지, 내지 말아야지’ 이런 생각을 하지 말고 다만 ‘화가 일어나는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연습을 해야 해요. 질문자가 살아온 배경을 보면 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일단 화를 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시면 좋겠습니다. 화가 일어날 때 알아차리면 전보다는 화가 조금 줄어들 수 있어요. 이런 관점으로 가볍게 연습을 해보면 좋겠습니다. 순간적으로 화를 내버렸을 때 ‘죄송합니다. 제가 성격이 좀 그렇습니다. 미안합니다’ 하고 바로 사과하면 사람들과 같이 사는데 큰 지장은 없습니다. ‘나만 화내나? 너는 화 안 내나?’ 이러면 싸우게 돼요.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깜박 놓쳤습니다’ 하고 바로 사과하면 어떻게 싸움이 일어나겠어요? 나도 모르게 화를 냈다면 바로 사과를 하면 됩니다. 화가 올라올 때 알아차렸다면 화를 내지 않아 보는 거예요. 이를 악다물고 참으면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래서 ‘참지 않고, 다만 알아차린다’라는 겁니다.
이렇게 방법을 알았다고 해서 앞으로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고 생각하시면 안 돼요. 쉽게 해결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화가 날 때 알아차려서 안 낼 수 있으면 제일 좋습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화를 내버렸다면 사과하는 연습을 해보세요. 화내는 성질에 대해 시비하지 않으면 자신에게 실망을 하지 않고 꾸준히 해나갈 수 있습니다. ‘화를 내지 말아야지’ 하고 결심했는데 화를 내면 자신에게 실망을 하게 됩니다. 억지로 참으면 스트레스가 되고요. 화를 참으면 내는 것보다는 손실이 적지만 나를 괴롭히게 돼요. 괴로움이 없는 경지로 가는 길은 아닙니다. 그래서 넘어지면 알아차리고 일어서고, 또 넘어지면 다시 알아차리고 일어서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안 넘어질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은 ‘6개월 된 갓난아기가 어떻게 하면 넘어지지 않고 잘 걸을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는 수도 없이 넘어지고 걷고 넘어지고 걷는 과정에서 결국 걸을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한 일 년 정도 지나면 아이가 잘 걸을 수 있게 되죠. 그래서 이런 과정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도저히 감정이 잘 조절되지 않는다면 병원에서 안정제를 조금 처방받으시면 좋습니다. 약을 가지고 계시다가 화가 올라올 때 먹으면 훨씬 도움이 돼요.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지만 응급치료는 가능하다고 말씀드립니다.”
“네, 6년 동안 스님 법문을 들으면서 제 성격을 많이 고쳤습니다. 원래 사과를 절대 안 하는 성격이었는데 이제 미안하다는 말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너무 어렵게 생각했었던 것 같아요. 스님 말씀 듣고 조금 단순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엄마랑 언니들이 저한테 악담을 했습니다. 자존감이 떨어지고 언니들의 말에 휘둘려요. 가족은 진짜 저를 잘 아는 걸까요? 저는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자녀 셋을 가진 아빠입니다. 가족 부양을 명분으로 남을 누르고 온갖 방법을 동원해 돈을 벌고 상류층으로 가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까요?
이겨내야 할 것과 내려놓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습니다. 실패를 더 많이 했고, 지금도 실패를 하고 있는 것은 저의 탐욕 때문일까요?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다음 주에는 서울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즉문즉설 강연이 열린다는 소식을 함께 공유하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인간 붓다 수업을 듣고 있는 정토불교대학 학생들과 궁금한 점에 대해 대화하는 즉문즉설 시간을 가진 후 오후에는 농사팀 행자님들과 올해 농사 계획에 대해 회의를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51
드림하이
화를 터뜨리면 손해를 보고 참으면 병이 되는 게 우리의 딜레마예요. 이 문제에 대해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신 분이 부처님입니다. 그 방법은 바로 ‘알아차림’입니다. "
2024-03-23 21:24:58
김송주
화를 내면 안 된다가 아니라 화를 내는 것을 자연스럽게 바라보겠습니다. 다만 알아차리는 연습을 꾸준히 해보겠습니다. 화를 냈으면 바로 사과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