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12.16 필리핀 민다나오 방문 5일째, 필리핀 JTS 사업논의, 마닐라 이동
“별로 잘하는 게 없어서 고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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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필리핀 민다나오를 방문한 지 5일째 되는 날입니다. 민다나오에서 맞이하는 마지막 아침입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를 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7시 30분부터 필리핀 JTS 활동가들과 수행에 대해 점검하는 간담회 시간을 가졌습니다.

향훈 법사님과 활동가 네 명은 스님에게 삼배의 예로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먼저 지난 1년 동안 학교 네 개를 짓고 준공식까지 무사히 마치느라 수고한 활동가들을 격려했습니다.

“이번에 다들 잠도 못 자고 행사를 준비하느라 수고들 많았습니다. 내년 사업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잠시 후 이사회를 통해서 결정을 할 예정입니다. 새로운 이사진과 대표 선출에 대해서도 의논을 통해 결정할 계획이고요. 그 결정에 따라 일하는 방식이 달라질 텐데 주된 내용은 이사회에서 논의하기로 하고, 지금 이 자리에서는 두 가지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겠습니다.

첫째, 지금까지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는 어떤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면 좋을지, 그리고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건의 사항이 있으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이사회에 반영할 수 있도록 건의해 주시면 됩니다. 둘째, 개인적으로 생활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거나, 수행 차원에서 어려운 점이 있으면 마음 편히 이야기를 하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누구든지 손을 들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각자 수행의 과제에 대해 한 가지씩 질문을 했는데요. 그중 한 명은 필리핀에 봉사를 하러 왔지만 본인이 별로 잘하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며 어떤 마음으로 지내야 할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별로 잘하는 게 없어서 고민입니다

“뭔가 변화하고 성장하기를 기대하고 필리핀에 왔는데, 8개월이 지난 지금 제가 별로 잘하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에 행사를 준비하면서도 별로 잘하는 게 없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고, 도반들과도 그냥저냥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향훈 법사님이 저에게 잘하고 있다고 늘 말씀을 해주십니다. 처음에 올 때는 밑바닥부터 업무를 배워서 성장하는 내가 되길 기대하는 마음이 있었고, 영어도 잘하는 걸 기대했고, 도반들과도 잘 어울려서 지내는 내가 되기를 기대했습니다. 전반적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실력이 차곡차곡 쌓이는 모습을 기대했는데, 제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환경을 바꾸었는데도 예전과 똑같이 살고 있습니다. 그저 즉흥적으로 주어지는 일에 맞춰서 사는 모습에 실망감도 느낍니다. 시간이 지나도 영어 실력이 늘지 않고, 제가 아는 몇 단어로 그냥 얼렁뚱땅 하고 있어서 제 모습이 못마땅합니다. 영어 공부할 시간이 주어져도 피곤하면 그냥 자버리고, 개인 수행도 열심히 할 것이라고 다짐했는데 거의 안 하고 있습니다. 시간만 때우고 사는 것 같아서 자괴감이 들면서도 동시에 이렇게 사는 게 편안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떡하면 좋을까요?”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 공부를 1등 해야겠다, 이렇게 겉으로 욕심을 내는 것처럼 질문자는 자신에 대해 지나친 기대와 욕심을 가지고 있어요.

외국에 나가서 10년을 살아도 그 나라 언어가 유창하지 않은 게 대부분입니다. 생각하지 않고도 말이 저절로 나오는 모국어가 아닌 이상은 아무리 오래 살아도 현지 언어를 유창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생각을 먼저 하고 말을 하는 단계에서는 아무래도 현지인과 차이가 납니다. 8개월 만에 언어를 잘하겠다는 생각은 스스로를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에 비해 언어능력이 특출나다고 생각해요?”

“아니요.”

“그런 것도 아닌데 8개월 안에 유창하게 영어를 잘하고자 하는 건 얼토당토않은 목표입니다. 여기에 온 지 8개월 밖에 안 되는 질문자가 제대로 하는 게 없는 건 정상입니다.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고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닌데 어떻게 8개월 만에 잘하겠어요. 지금 질문자는 태어난 지 8개월 밖에 안 된 아기가 ‘저는 아직 뛰지도 못합니다’ 하고 말하는 것과 같아요. ‘걷지도 못하면서 날려고 한다’는 옛말이 있듯이 지금 질문자는 자기 자신에 대해 지나친 기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가 부족해 보이는 거예요.

다른 사람이 ‘괜찮아, 잘하고 있어’ 하고 말하는 것은 실제로 잘한다는 뜻이 아니라 크게 기대를 안 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질문자가 평소에 아이디어가 아주 많다거나, 백일 출가를 할 때 아주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었나요?”

“아니요.”

“저도 굉장한 실력을 가진 사람이 필리핀에 왔다는 보고를 받은 적이 없어요. 만약 그런 평가를 받았다면 앞으로 필리핀 사업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사람들이 기대도 하고 그에 따른 피드백을 주거나 했을 텐데, 그런 경우가 아니기 때문에 지금 질문자가 이렇게 와서 활동하고 부족한 일손을 보태주는 것만 해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대가 크면 그만큼의 성과가 없을 때 실망도 큽니다. 그러나 특별한 기대가 없는 경우에는 이렇게 생활하고 활동해주고 있는 것만 해도 잘한다고 느껴집니다.

예전에 인도에 봉사를 하러 간 사람이 현지에 도착한 후 일주일 만에 집에 가겠다고 해서 결국 집으로 돌아간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질문자는 8개월이 되었는데 그런 난동을 피우는 것도 아니니까 법사님이 보기에는 잘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겁니다.

결혼을 할 때도 ‘상대방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크면 결혼생활이 오래가기가 어렵고, 길 가다가 만난 사람들은 백년해로를 한다’ 하고 제가 자주 법문을 했잖아요. 이 말은 기대가 크면 그만큼 실망이 크고, 상대방에 대한 기대가 없으면 옆에 있어주는 것만 해도 고맙게 느껴진다는 뜻입니다. 절에서도 어떤 스님이 유명하면 뭔가 특별한 게 있다고 생각해서 기대를 많이 합니다. 그런데 막상 시봉살이를 시작하고 나면 3년 정도 살다가 짐을 싸서 떠나는 경우가 많아요. 왜냐하면 옆에서 지내보니 자기 공부에 크게 진척이 되는 것도 없고, 큰스님이라고 하지만 같이 살아보면 큰스님도 밥 먹고 똥 누면서 지내니까 실망하고 떠납니다. 그런데 이는 스승한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너무 큰 기대를 가지고 왔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질문자에 대해 큰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니까 여기 와서 활동하는 것만 해도 고맙게 느껴지는 겁니다. 아침 예불에 나오는 것만 해도 잘하고 있는 것이고, 당번을 정하면 돌아가면서 일하는 것만 해도 잘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여기에 온 지 8개월 밖에 안 되기 때문에 누구도 ‘운전을 잘해라’, ‘영어를 유창하게 해라’, ‘새로운 걸 개척해라’ 이런 것을 기대하지 않아요. 그러니 부담 갖지 않아도 됩니다.

대신 시간이 지나면 기대치가 올라가는 부분은 있습니다. 여기 온 지 3년이 지나면 ‘온 지 3년이나 됐는데 아침에 일어나지도 못하냐’, ‘온 지 3년이나 됐는데 아직 소통이 서투르냐’ 이런 잔소리가 조금씩 나옵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사람들이 기대를 하지 않을 때 오히려 살기가 좋은 거예요. 그러니 지금은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사람들이 ‘지금 잘하고 있다’라고 하는 말도 꼭 일을 잘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제 값을 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향훈 법사님도 질문자가 말썽을 피운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그렇다고 질문자 때문에 고민이니까 다시 데려가라는 말도 없는 걸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스님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거예요. 지금 고민은 질문자가 스스로를 과대평가해서 생기는 문제입니다. 스님이 보기에는 질문자가 여기에 와서 이렇게 살아가는 것만 해도 용합니다.” (웃음)

“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대화를 다 마치고 나서 활동가들은 스님에게 삼배로 인사를 했습니다.


곧바로 8시 30분부터는 필리핀 JTS 이사회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이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필리핀 JTS 20년사를 기록한 백서를 증정했습니다.

“그동안 수고들 많으셨습니다. 앞으로도 수고해 주세요.”

이어서 향후 필리핀 JTS를 어떤 방향으로 운영할 것인지 의논했습니다. 작년 사업 결과를 공유하고 내년 사업 계획을 결정한 후 필리핀 JTS의 새 대표를 누구로 할지, 이사회의 구성원은 누구로 할지 결정하고 이사회를 마쳤습니다.

잠시 휴식을 했다가 오전 9시 30분부터는 이번 JTS 방문단과 필리핀 JTS 활동가들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서 간담회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은 방금 전 이사회 논의 결과를 공유해 주었습니다.

“필리핀 JTS가 이 정도 규모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대부분이 이원주 대표님의 공덕입니다. 그러나 본인이 사의를 표현한 지 벌써 2년이 지났습니다. 이번에 4개 학교 준공식까지만 맡아 달라고 부탁해서 올해까지 함께 해 주셨고요. 그 덕분에 앞으로 새로운 사업 방식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정말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이사회에서는 새로운 대표로 노재국 거사님을 선출했습니다.”

대중들은 지난 20년 동안 헌신해 준 이원주 님과 새롭게 대표를 맡은 노재국 님에게 큰 박수로 감사와 축하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이어서 이원주 대표님이 소감을 한 마디 했습니다.

“후임 대표님이 새롭게 일을 잘할 수 있도록 인수인계를 잘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은 노재국 신임 대표님이 소감을 한마디 했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이원주 대표님 만큼은 못 합니다. 많이 부족해도 못 마땅해하지 마시고 이해를 잘해주시기 바랍니다.”

모두 큰 박수로 다시 한번 두 분에게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어서 내년도 필리핀 JTS의 사업 계획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부키드논 주 교육감님이 40개의 원주민 마을에 학교를 지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장애인 특수학교는 15개 정도를 지어달라고 요청했고요. 교육감님이 구체적인 요청을 해오면 JTS의 사업 원칙과 맞는 곳부터 선정하여 학교 건축을 시작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어서 이사회에서 논의한 내용을 공유한 후 사홍서원을 끝으로 이번 4박 5일 동안의 필리핀 민다나오 방문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다 함께 JTS 센터 앞마당으로 나와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을 찍은 후 짐을 싣고 모두 버스에 올랐습니다.

10시 30분에 JTS센터를 출발하여 가가얀 데 오르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공항에 도착하기 전에 식당에 들러 점심 식사를 하면서 스님은 다시 한번 그동안 수고한 필리핀 JTS 활동가들을 격려했습니다.



2시 30분에 가가얀 데 오르 라긴딩안 공항에 도착하여 체크인을 하고 수하물을 부친 후 필리핀 JTS 활동가들과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다들 수고했어요. 오늘은 푹 쉬세요.”

“감사합니다. 스님.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내년에 더 건강한 모습으로 뵙겠습니다.”

오후 4시에 가가얀 데 오르 라긴딩안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민다나오 섬을 떠나 바다 위를 날았습니다. 5시 30분이 넘어 마닐라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이규초 님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모두 이동하여 저녁식사를 한 후 필리핀 JTS 대표 이임식과 취임식을 했습니다. 이원주 전 대표님의 이임사에 이어 노재국 새 대표님의 취임사를 듣고 모두가 축하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스님은 필리핀 정토회 회원들과 대화 시간을 가진 후 밤 12시에 마닐라 공항으로 이동해 체크인 수속을 했습니다. 탑승구 앞에서 출발 시간을 기다리며 스님은 원고 교정과 여러 가지 업무들을 처리했습니다.

새벽 2시 50분에 마닐라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4시간을 비행하여 한국 시간으로 오전 8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이로써 4박 5일 동안의 필리핀 민다나오 방문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내일부터는 한국에서 다시 스님의 하루가 계속됩니다.

전체댓글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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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하이

큰스님이라고 하지만 같이 살아보면 큰스님도 밥 먹고 똥 누면서 지내니까 실망하고 떠납니다. 그런데 이는 스승한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너무 큰 기대를 가지고 왔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2024-03-22 13:51:48

이주현

자신에 대한 기대가 현실과 잘 맞는지 점검할 수 있었습니다.고맙습니다 .~^^

2024-01-25 15:13:07

오정숙

스님의 명쾌하신 말씀 고맙습니다.

2024-01-24 08:3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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